회색강(6)

             김 헌 일

     우리는 유러카 대평원의 초입 어느 지점에서 길을 바꿀 예정이었다. 그곳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추게취 산맥의 울울한 심장부에서 회색의 물결을 반짝이며 괴괴히 흐르고 있는 크닉강을 따라 그 안 깊숙한 곳에 몸을 숨기고 있을 크닉빙하로 데릭을 찾아갈 것이었다.
     우리가 탄, 로버트의 82년식 포오드 트럭은 몸을 연신 뒤우뚱거리며 넓은 하이웨이를 달려나갔다. 노랗게 변한 오리나무며 자작나무 버드나무의 덤부렁듬쑥한 숲 뒤로 머리에 만년설을 인 켐벨 산이 몸을 조금씩 돌려 앉으며, 그 위압적인 자태를 끈질기게 보여오고 있었다.
     로버트는 그가 애지중지하는 다갈색 마도로스 파이프를 이쪽저쪽으로 옮겨 물며 운전에 열중해 있었다. 우리의 가슴속에는 모처럼 한적한 교외로 나온 상큼함이 슬며시 머리를 쳐들고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다가 불과 엿새 전 데릭이 이 길로 차를 몰고 갔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내곤 아연 긴장해 버리곤 했다. 나는 아파트에서부터 뒷호주머니에 찔러 가져온 신문을 펼쳐들었다.
     - 살인 용의자 사망.
     경찰은 범행을 자백한 범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말했다.
     (데일리 뉴스. 마릴리 엔지.)
     신문의 첫머리엔 그렇게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금발을 가진 미모의 소녀 사진 한 장과 함께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수줍은 듯 미소를 띄고 있는 동양계 남자의 사진을 총천연색으로 걸어두고 있었다. 사내의 사진엔 뜻밖에도 윤이라는 한국이름이 또박또박 덧붙여져 있었다.
     - 와실라에 거주하는 에이미 수우 베고비치를 납치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었던 21세의 대학생은 지난 일요일 오후 자살을 하기 전, 범행을 자인하는 자백서를 썼다. 경찰은 범인 윤경수가 알라스카 주립병원에서 사망하기 수 시간 전인 오전 열한 시 경 자신이 구금되어 있던 델라니 형무소에서 어떤 종류의 독극물을 삼킨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에이미(18세)의 죽음이나 살인용의자에 대한 단서를 거의 가지지 못하고 있던 경찰은 윤에게 혐의를 두게 된 경위나 그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하여 아무 것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뜻밖의 경우에서 대하게 된 한국인의 이름에서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러나 신문에서는 그가 한국교포라는 사실을 별다르게 취급하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그냥 한 인간의 이야기였으며, 이 사회의 한 단면으로 취급되었을 뿐이었다.
     어쨌거나 나는 찜찜한 기분이 되어 기사를 한달음에 읽어 나갔다. 신문에 난 사건의 경위는 이러하였다. 에이미는 이웃에 사는 친구 와다의 집을 보고 있었다. 그때 와다와 윤이 와다의 집에 와서 몇 가지 소지품을 챙겨 가지고 나갔다. 그리고 둘은 독수리강 부근에서 야영을 즐겼다. 다음날 저녁 에이미는 그녀의 남자 친구와의 전화통화 도중 누군가의 노크소리에 잠시 자리를 뜬 후,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실종신고를 받고 수사에 나선 경찰은 팔마로 가는 고속도로 상에서 윤을 체포하였다. 그리고 윤은 칠팔 명의 수사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에이미의 부모에게 보내어 질 자술서를 쓰게 되었다.
     " 당신 딸에게 못된 행위를 해서 정말 미안합니다. 그러나 내가 왜 그랬는지 나도 모르겠습니다. "
     그로부터 여섯 시간 후, 윤은 갑작스런 신체적 이상증세를 보였고 병원으로 후송되고 나서 한 시간을 넘기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그러나 경찰은 윤이 죽은 이유에 대하여 말하기를 거부하였다. " 경찰은 아무 것도 모르고 있어요. 그 녀석은 정신병자입니다. 분명히 놈은 내 딸을 범했어요. 그래서 죽인 거죠. 그래 놓구선 이제 와서 오, 하느님 제가 실수를 범했어요 하고 능청을 떨고 있어요. "
     성적 폭행 흔적은 없었다는 경찰의 단언에도 불구하고 소녀의 아버지는 그렇게 주장하고 있었다.
    " 그 날밤 내 아들이 돌아왔을 때, 그 녀석에게서 이상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단 말예요. 그런데 그 놈이 자백을 했다니 믿을 수가 없어요. 만약 그 애가 정말 자백을 했다면, 그건 경찰이 그렇게 몰아붙였기 때문이에요. 더구나 그 애가 자살을 했다니요. 왜죠 ? 그 애가 잘못한 게 있다면 이 나라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뿐이에요."
     살인용의자의 어머니 윤정은 그렇게 울부짖고 있었다.
     그리고 신문엔 한국에서 태어나 두 살 때 미국으로 이주해 와서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하는 윤경수에 대한 대학 친구들의 진술도 친절히 덧붙여져 있었다.
     " 난 완전히 어리둥절해서 갈피를 잡을 수가 없어요. 다른 누구라면 몰라도 그가 그랬다니요. 그는 가짜 총까지도 싫어했기 때문에 써바이벌 게임에서도 늘 제외되었죠. 만약 그 녀석이 어떤 범죄를 저지르고자 마음 먹었다해도 그걸 행동에 옮길 수가 없었을 거예요. "
     나는 신문에서 시선을 떼어냈다. 차는 힐랜드 부근 숲을 지나가고 있었다. 차창을 스쳐 가는 숲의 모습이 휘휘해 보였다. 윤이 시체를 버렸다는 쓰레기장이 이 근처에 있었다. 그러나 에이미의 시체는 여태껏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신문엔 적혀 있었다.
     나는 카세트에 음악 테이프를 밀어 넣으며 담배를 피워 물었다. 모든 것이 의혹투성이였다. 과연 윤이 그 여자를 죽였는지, 정말 그랬다면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는 천연덕스런 변명은 무엇이며, 범인 윤은 또 왜 죽었고, 그가 감방에 들어가기 전 철저한 몸수색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마셨다는 독극물은 어디에서 구한 것이며, 기자의 추측대로 둘의 동반자살 기도였다면 누구의 구속받음도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이곳에서 그 동기는 무엇이었는지, 갑자기 머리가 혼란스러워져서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내 모양을 훔쳐본 로버트가 어깨를 한차례 으쓱해 보였다. 그도 이 사건을 충분히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무심히 스쳐 지나가는 아스팔트길을 색안경 너머 뚱한 눈길로 바라보던 그가 갑자기 선문답(禪問答)이라도 하자는 짓인지 알듯 모를듯 이상한 말을 흘려 놓았다.
     " 정말 모르겠어. 사람들은 너무나 지쳐있어. 지금 우리에겐 어떤 것이 필요 해. 그런데 그것이 무엇일까? 먹을 것 마실 것 즐길 것같으면 모두 마켓에서 얼마든지 쉽게 구할 수가 있을 텐데 말야. "
     유러카 지방에 도착해서 로버트는 핸들을 남으로 꺾었다. 네 시간을 줄곧 달려왔으므로 새벽부터 서둘렀음에도 시간은 벌써 오후 한 시를 넘기고 있었다. 우리가 새로운 길에 꺾어든지 얼마 되지 않아 넓고 평평한 아스팔트길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숲 사이로 여러 갈래의 작은 길만 흩어져 있었다.
    우리는 그중 하나를 택하여 숲으로 기어들었다. 숲은 전나무 솔송나무 삼나무 가문비나무 등으로 빼곡하였다. 나무의 높이는 어림잡아 3-40 미터 또 밑동은 서너 아름은 충분히 됨직해 보였는데, 줄기가 휘어짐이 없이 곧게 뻗어 오른 것이 그것들이 이제 막 땅을 뚫고나와 하늘을 향해 기세 좋게 솟아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습기를 알맞게 머금은 공기에는 상크름한 기운이 배어있었다. 그 공기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스테고사우르스 모사사우르스 혹은 시조새 아케오프테릭스 등이 판을 치는 공룡시대의 현장에 맞부닥뜨려질 것만 같았다. 정말 숲이 살아있는 느낌이었다. 그 거대한 덩치가 낮게 엎드려 숨을 고르고 있다가 어느 순간 우지끈 몸을 일으켜 우리를 향해 덮쳐올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어쩌면 데릭 그 녀석도 이 숲에서 길을 잃고 어떻게 되어버린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그만 주눅이 들어 입을 꽉 다물고 오솔한 냉기가 감돌고 있는 숲길만 내다보았다. 나무뿌리며 자갈들이 마구 솟아나고 엉켜있는 흙길을 굴러가느라 자동차의 핸들이 제멋대로 나도는 통에 로버트는 그것을 바로 잡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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