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장미(100)
김형엽
별장안에는 잔류 인원이 3 명이 남아있었다.
" 옥향은 어때 ? "
" 예. 다행히 죽지는 않았습니다. 충격으로 놀라서 깨어나지 못해서 물을
좀 먹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
서대문을 관할하는 민 칠성이 목소리를 낮게 깔면서 설명했다.
" 지금 어디 있나 ? "
" 3 층 방에 데려다 눕혔습니다. "
" 음... "
쌍칼은 잠시 고심을 하다가 다시 걸음을 별장 밖으로 옮겼다.
" 일단 너희들은 여기서 대기하도록. 수시로 핸드폰으로 연락을 할테니까 자리를 잘 지키도록 해. "
" 알겠습니다. "
3 명의 사내들은 쌍칼이 나가는 뒤모습을 바라보며 허리를 90 도 꺽으며 인사를 했다.
쌍칼은 곧 지하로 내려가 그랜저에 올라탔다.
( 피카소... 기필코 네 놈을 내손으로 잡고야 말테다. )
쌍칼은 이를 악물면서 차의 키를 돌렸다. 요란한 소리가 지하를 울리더니 곧
차가 미끄러질듯 하면서 지하를 빠져나와 곧 도로로 나갔다. 떨어지는 빗방울이
창문을 세차게 두들겼지만 쌍칼은 순식간에 100 키로 넘게 차를 몰고 앞으로 나갔다.
북한강은 쏟아지는 비 때문에 물흐름이 빨랐다. 그리고 물이 불어나면서 온갖
쓰레기더미들이 휩쓸려 떠내려 왔다. 시커먼 물체가 곧 바로 떠내려 가지 않고
물가에 다가왔다. 그건 커다란 나무토막 이었다. 그 나무토막을 불들고 있는 물체가 있었다.
바로 피카소였다. 나무토막이 물가로 완전히 닿자 피카소는 나무토막을 잡았던 손을
풀고 밖으로 기어나왔다. 그리고는 하늘을 바라보며 눕더니 심하게 숨을 헐떡거렸다.
빗줄기가 떨어지면서 얼굴을 때렸지만 피카소는 움직이지도 않고 눈을 감은채 가쁜
숨만 몰아쉬었다.
30 분이 흘렀을까. 피카소는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그리고 반대편을 바라보았다.
황 필두의 별장은 보이지도 않았다. 온통 칠흙같은 어둠뿐이었다.
( 대체 얼마나 흘러 내려온거지. )
피카소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그는 랜턴을
키려다가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물이 흐르는 반대편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얼마를 걸었을까 ?
황 필두의 별장이 어렴풋이 시야에 들어왔다.
( 음. 거의 다 왔군 )
황 필두의 별장이 보이자 그의 걸음이 조금 빨라졌다. 그러다 어느 지점에 닿자
조심스럽게 손으로 랜턴을 가리면서 불을 켰다. 작은 불빛이 어둠속에서 반짝거렸다.
( 음. 저기 있군. )
그는 바위밑에서 커다란 봉지를 꺼내었다. 그리고는 입고 있던 잠수복을 벗어
던지고는 봉지속에 뭉쳐있던 츄리닝을 꺼내 갈아입었다. 옷을 갈아입고 발에도
운동화로 갈아 신자 그는 천천히 뛰면서 산을 이동했다. 그의 모습은 완전히 변해있었다.
머리는 하얗고 덥수룩하고 길었으며 코에도 허연 수염이 길게 늘어진것이 누가 보아도
60 은 다 된 노인처럼 보였다.
양수리에는 자정이 거의 다 된 시간이라 대부분 상점은 문이 닫혀있었고 몇개의
가게만이 형식상 열러있었지만 물건을 사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피카소는 주위를 살피면서 양수리를 지나갔다. 다행히 그를 눈여겨 보는 사람이
보이지 않자 그는 유유히 양수교로 향했다. 주변에 주차된 승용차들을 지나 다리 입구에
도달했을때 미동도 하지 않던 그랜저가 갑자기 시동을 거는 소리가 들렸다.
( 아차. 놈들이 여기에서 기다렸단 말인가. )
피카소는 뒤에서 시동거는 소리가 들렸지만 뒤를 쳐다보지 않고 천천히 뛰었다. 차가
헤드라이트를 켜면서 천천히 다리로 진입했다. 뒤를 이어 또 한대의 차가 따라왔다.
차는 금방 피카소와 같은 거리를 유지했다. 차장문이 열리면서 쌍칼이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피카소는 슬쩍 쳐다보았다가 다시 앞을 바라보며 뛰었다.
쌍칼은 달리는 노인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갸우뚱 거리면서 망설이는 표정을 지었다.
( 아니. 이 밤중에 웬 조깅이야. 그것도 이렇게 비까지 쏟아지는 날씨에... )
쌍칼은 의심스러웠지만 전혀 피카소가 아니라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노인은 조금씩 속도를 빨리했다. 다리를 거의 지났다.
쌍칼은 옆의 부하에게 차를 세우라고 하면서 노인의 뒷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일순 두눈을 껌뻑거렸다.
( 아니.. 저럴수가. )
쌍칼은 뛰어가는 노인의 흰머리속으로 시커먼 머리카락을 보았다.
" 저놈이다. "
쌍칼이 차 문을 박차고 뛰어 나오면서 소리를 지르자 운전석에 앉았던 자와 쌍칼의
뒤를 따라오던 차에서 사내들이 한꺼번에 몰려나왔다.
( 아뿔사. 놈들이 알아차렸구나. )
피카소는 빠른 속도로 달렸다.
" 어서 잡아라. "
쌍칼은 달리면서 외쳤다. 피카소와의 거리는 30 여 미터 떨어져 있었다.
피카소는 다리를 건너자 도로를 벗어나 들로 향했다. 몇그루의 나무가 듬성듬성
있었고 민가도 몇채 보였다. 잠시 주츰하는 사이 쌍칼 일행의 목소리가 가까이 들렸다.
피카소는 비에 젖은 얼굴을 손으로 훔치며 민가를 끼고 앞으로 나갔다.
갑작스런 소란으로 동네의 개들이 하나둘 짖어되면서 주위가 갑자기 산만해지기 시작했다.
피카소는 계속해서 위로 올라갔다. 어둠속에서 여러개의 불빛이 비추어지면서 그중의
하나가 피카소의 모습을 잡았다.
" 저기다. "
어둠속에서 경적을 울리는 목소리가 들리면서 시커먼 무리들이 갑자기 한 곳으로 빛을
뿜어되자 피카소는 뒤를 한번 바라보다가 풀이 무성한 곳으로 몸을 숨겼다.
" 빨리 뛰어라. "
어둠속에서 쿵쿵거리는 발자욱소리가 사방을 울렸다.
피카소가 뛰어든 곳은 옥수수 밭이었다. 그는 두손을 이용하여 앞에 장애물을
제거하면서 정신없이 앞으로 달려나갔다.
( 이렇게 달리다간 지치고 만다. 그렇다고 정면으로 부닥쳐도 승산이 없다.
놈의 숫자가 너무 많아. 그리고 잘 훈련된 놈들만 골라져 있을거야.... )
피카소는 앞으로 나가면서 어떻게 할 것이가를 생각해 보았지만 별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상당히 지쳐있었다. 물살이 센 북한강을 건너온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시간이었다. 뒤에서 웅성거림과 땅을 스치는 발자욱소리가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옥수수 밭이 끝나자 허허벌판이 나타났다. 어디 한 군데 몸을 숨길만한 곳이
보이지 않았다. 날이 아무리 어둡더라도 이런 허허벌판에서는 금방 눈에 뜨게 마련이다.
피카소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앞과 위로는 몸을 숨길만한 커다란 나무조차도
없었고 뒤로는 쌍칼 일행이 바싹 다가오고 있었다. 좌로는 잔잔하지만 깊이를
알수없는 북한강이 버티고 있었다.
( 젠장. 어쩔 도리가 없군. 일단 위로 올라가서 고개를 넘어보자. )
피카소는 다시 고개를 올라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