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장미(101)

                                                     김형엽

    쌍칼 일행이 옥수수밭에서 무더기로 튀어 나오면서 랜턴을 비추더니 곧 들판을
   올라가는 피카소의 모습을 발견했다. 불과 10 미터 정도의 거리였다.
   " 저기 있습니다. "
   먼저 발견한 사내의 외침에 모두들 손에 쥔 랜턴이 피카소를 향해 불을 뿜었다.
   " 어서 쫓아라. "
   쌍칼의 목소리가 끝나는 동시에 10 여명의 무리들이 피카소를 따라 들판을 올라갔다.
   이제 피카소의 모습은 계속 뒤에서 비쳐되는 불빛에 모습이 확연히 보였다. 피카소는 머리에 씌운 가발과 코수염을 떼어버렸다. 그리고 가끔씩 뒤를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거리는 점점 좁혀져 갔다.
   ( 음. 고개가 얼마 남지 않았다. 제발 나무라도 많아야 할텐데.. )
   피카소는 안간힘을 쏟으며 고개위로 올라갔다. 무엇인가 바람소리를 내며 좌측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쌍칼의 무리들이 피카소와의 거리가 가까와지자 그 중 몇명의 무리들이 피카소를 향해 던지 칼이었다.
   드디어 피카소가 고개에 올라서자 밤꽃 냄새가 코를 찔렀다.
   ( 밤나무다. 잘 됐어. )
   피카소는 곧 내리막길로 밤나무가 무성한 곳으로 몸을 굴렸다. 불과 20 초도 안되어 쌍칼의 무리들이 고개위에 섰다. 그들은 곧 바로 밤나무 사이를 불로 비치면서 피카소를 찾으려고 혈안이 되었다.
   그 때 쌍칼이 10 여미터쯤 내려와서 걸음을 멈추었다.
   " 모두들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마라. "
   쌍칼의 갑작스런 명령에 부하들은 발소리를 멈추며 정지한 상태로 쌍칼을 주시했다. 웅성거리던 목소리와 발자욱소리가 멈추자 들판은 조용히 비 떨어지는 소리만 들릴뿐 조용한 정적이 감돌았다.
   " 놈은 지금 이 근처에 있다. 소리를 최대한 죽이고 불빛과 놈의 움직이는 소리로 놈의 행적을 찾아라. 조용히 하면 놈의 숨소리도 들을 수 있을거다. "
   쌍칼의 말에 부하들은 숨을 죽이면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랜턴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밤나무들은 잘 키워져 있었다. 그 중에 나무줄기가 굵은것은 사람하나를 가리기에도 충분했다.
   " 모두 흩어져서 찾아라. 발견과 즉시 소리를 크게 지르도록. "
   쌍칼은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물고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미 옷은 빗물에 온통 젖어 있었기에 바닥이 차가웠지만 오히려 시원함을 느꼈다. 쌍칼은 담배 한모금을 깊숙히 빨며 주변에서 서성거리는 부하들을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안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어 다이얼을 눌렀다. 신호음이 울리더니 잠시 후 상대방으로부터 응답이 왔다.
   " 나야. 쌍칼. "
   " ...... "
   " 어떻게 됐어. "
   " ...... "
   " 그럼 수술이 끝나봐야 알겠네. "
   " ...... "
   " 내일 아침 6 시면 알수 있다고. "
   " ...... "
   " 알았어. "
   " ...... "
   " 아직 못 잡았지만 이 근처에 있어. 반드시 잡아내고 말거야. "
   쌍칼은 통화를 끝내고 핸드폰을 다시 안주머니에 넣었다.
   ( 귀신같은 놈.. 하지만 틀림없이 이 근처에 있다. )
   쌍칼은 주위를 살피면서 천천히 담배연기를 뿜어댔다. 주위의 부하들이 조금씩 밤나무 숲을 살피면서 각자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쌍칼은 손에 쥐고 있던 담배를 마지막으로 깊숙히 빨고나서 꽁초를 바닥에 버리고 랜턴을 비추며 뒤로 돌아섰다.
   그 순간 무엇인가 이상한 것을 보았다. 쌍칼은 돌아서려다가 랜턴으로 이상하다고 느끼는 바닥을 비쳐보았다.
   ( 앗. 이건 피... )
   쌍칼은 잔풀이 조금씩 자란 바닥에서 빨간색의 피를 발견하였다.
   ( 틀림없는 피다... )
   쌍칼은 피가 떨어져 있는 바닥 주변을 집중적으로 살폈보았다. 피는 조금씩의 간격을 유지하면서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쌍칼은 마른침을 삼키면서 피가 떨어져 있는 바닥을 랜턴으로 비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잠시후 쌍칼앞에 굵은 밤나무가 가로 막았다. 쌍칼은 나무로 랜턴을 옮기었다. 나무 밑과 굵은 줄기에도 피는 조금씩 묻어있었다.
   ( 놈이 나무위로 올라간 것이 틀림없다. )
   쌍칼은 두어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느닷없이 소리를 질렀다.
   " 여기다. "
   쌍칼의 외침에 사방에 흩어졌던 부하들이 일제히 뒤를 바라보며 쌍칼에게 향했다. 쌍칼은 소리를 지르고 나서 나무위로 랜턴을 비추었다.
   그 순간 시커먼 물체가 나무위에서 떨어지면서 그대로 쌍칼에게 부딪쳤다.
   " 억 --- "
   쌍칼이 뒤로 자빠지면서 두세번 구르다가 나무에 걸려 멈추었다. 주위에서 시커먼 사내들이 한꺼번에 튀어나왔다. 검은 물체는 재빠르게 고개위쪽으로 달려나갔지만 사내둘이 앞을 막았다. 내려오던 오른쪽의 사내가 몸을 날려 검은 물체를 향해 날랐다. 사방에서 불빛이 검은 물체를 향해 빛을 뿜었다.
   순식간에 피카소는 모습을 드러내고 말았다. 피카소는 달려드는 사내를 슬쩍 피하면서 왼쪽에서 앞을 막고있는 사내를 향해 달려들었다.
   " 퍽 --- "
   둔탁한 소리가 어둠을 갈랐다. 피카소의 앞을 가로 막고 있던 사내가 짤막한 비명 소리와 함께 앞으로 쓰러졌다. 피카소는 앞에 쓰러져 있는 사내를 뛰어넘으면서 오르막길을 올랐다.
   순간 바람을 가르는 듯한 소리가 울리면서 무엇인가 피카소의 다리를 감아왔다.
   " 걸렸다. "
   체인을 검어진 사내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면서 팔에 힘을 주었다. 체인을 장난감처럼 갖고 논다는 둔치였다. 둔치가 던진 체인은 정확히 피카소의 오른쪽 발목을 감았다. 피카소는 그 자리에 주저 앉아 체인을 풀었다. 그러나 그 체인을 다 풀었을때는 이미 10 여명의 장정들이 자신에게 불을 비추며 다가서고 있었다.
   " 드디어 잡혔군. "
   쌍칼이 랜턴으로 피카소의 얼굴을 비추며 두어걸음 다가갔다.
   " 또 만났군. 그 때의 상처는 다 아문 모양이지. "
   피카소는 짧게 미소를 띄우며 쌍칼을 바라보았다.
   " 다행히 급소를 비껴나가 무사했지. 오늘은 그 날의 빛을 갚을수 있어 다행이군. "
   " 흥정을 하지. "
   " 흥정 ? "
   쌍칼이 코웃음을 치며 피카소를 노려보았다.
   " 그래. 무슨 흥정을 할까 ? "
   쌍칼은 한 걸음 더 앞으로 다가서며 피카소를 노려보았다.
   " 내겐 아직 물건이 그대로 남아 있다. 황 필두는 그 물건을 포기하지는 못할텐데. "
   " 그래서. "
   " 물건을 돌려 주겠다. 그 대신... "
   " 그 대신... "
   " 나를 놓아줘. "
   " 풀어 달라고. "
   쌍칼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 웃기는 조건이군. 너는 어차피 고문에 못 이겨 물건이 있는 곳을 불게 될거야. 흥정같은 것은 전혀 필요가 없지. 차라리 이 자리에서 살려달라고 빌면 고려는 해 볼 수 있을거야. "
   " 어리석군. 황 필두가 물건도 찾지 못하고 나를 죽이는 것을 좋아할까? 무려 100억이나 되는 거금인데. "
   " 걱정하지 않아도 돼. 너는 반드시 입을 열게 될거야. 여기서 길게 시간을 끌 필요는 없지 않을까 ? 순순히 따라 갈건지 아니면 땅바닥에 질질 끌려갈건지 어서 결정을 하지. "
   " 쉽지 않을거야. "
   어둠속에서 한 줄기 섬광이 번득였다. 피카소의 손에 쥐어진 칼이 달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도 예리하게 반짝거렸다.
   " 꼭 피를 보겠단말이군. 하는 수 없지. 얘들아. 적당히 주물러 줘라. "
   쌍칼의 말이 떨어지자 사내들의 몸이 일제히 움직였다. 그렇게 쏟아지던 빗줄기가 희미하더니 곧 멈추었다. 피카소는 자세를 낮추고 두 팔을 조금 벌린 자세로 주위의 사내들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 모두 아홉명... 거기다 쌍칼까지 열명이다... 모두와 싸운다는 것은 역부족이다. 고개를 넘어 왔던길로 되돌아 가기보다는 차라리 계속 밑으로 달려 밤나무숲을 벗어나는 것이 수월할 것이야.... 그렇다면 밑으로 구멍을 뚫고 나갈수 밖에 없는데.. )
   " 야얏 --- "
   둔치의 외침소리가 울리면서 체인이 허공을 가르며 바람소리를 냈다. 피카소가 몸을 날려 피하자 체인이 스쳐 지나간 곳의 땅이 한움큼 파헤쳐졌다. 그 위력으로 보아 몸의 일부분을 정확이 가격하면 그대로 살쩜이 떨어져 나갈것 같았다.
   둔치의 공격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고 주위의 무리들도 조심스럽게 둔치의 공격을 바라보면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 휘익 --- "
   둔치가 휘두르는 체인이 포물선을 그리다가 갑자기 일직선으로 피카소의 정면으로 공격을 해 왔다. 피카소는 빠르게 몸을 뒤틀면서 자신이 들고 있던 칼을 들이대어 체인을 감았다.
   " 핑 --- "
   체인이 칼에 부딪치며 감기면서 불꽃이 튀었다.
   피카소는 칼에 감겨진 체인을 왼손으로 검어 쥐었다. 둔치 역시 힘을 주어 체인을 잡아 당겼다. 그렇게 둘이 팽팽하게 서 있자 이번에는 피카소의 뒤에 서서 기회를 엿보고 있던 일명 코뿔소라고 일컫는 문 성철이 커다란 기합소리를 지르며 피카소의 등을 향해 쇠파이프를 내리 찍었다.
   " 휭 --- "
   덩치가 커다란 코뿔소가 휘두르는 쇠파이프에서 강한 바람소리를 냈다. 피카소는 체인을 쥔 채로 땅바닥을 한바퀴 구르며 코뿔소의 쇠파이프를 피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둔치가 있는 힘을 다해 체인을 잡아당겼고 그 순간 피카소의 몸이 용수철처럼 일어나면서 몸이 하늘로 치솟아 올라갔다.
   " 앗. "
   둔치가 놀라며 뒷걸음치면서 피하려고 했지만 어느새 피카소의 몸이 내려앉으면서 오른쪽 발이 그대로 앞턱에 가서 꽂혔다.
   " 퍽 --- "
   비명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고 둔치는 그대로 뒤로 자빠져 일어나지 못했다. 숨죽이고 지켜보던 쌍칼이 놀란것은 물론이고 피카소를 에워싸고 있던 무리들도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아무리 둔치가 잡아 당겨 탄력이 있었더라도 조금전 피카소가 뛰어 오른 높이는 족히 이미터는 넘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