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장미(106)
김형엽
" 실은 저도 그와 비슷한 귀고리를 한 개 갖고 있습니다. 어떤 죽은 여자의 유품으로
하나를 간직하고 있는데 너무 흡사해서.... "
" 그래서요. 이것이 그 여자의 한 쪽 귀고리라도 된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 "
영옥은 반발적으로 주 형사를 쏟아보며 얼굴을 찡그렸지만 가슴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 아. 그런뜻은 아닙니다. 오해하지는 마십시요. "
" 그런데 왜 한 쪽 귀고리를 마저 보자고 하지요. 방에 있어요. 갖다 확인해 드릴까요. "
영옥은 떨면서도 단호하게 얘기하려고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너무 실례를 해서. "
" 그럼 이제 돌아가세요. "
" 예. 협조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
주 형사는 인사를 꾸벅하고 구두를 신었다. 그러자 영옥이 문을 열어 주었다.
" 아. 혹시라도 나중에 알리바이를 조사하게 되면 시어머님 계시는 곳의 주소를 알려
주실 수 있으시지요. "
영옥은 또 한번 현기증을 느꼈다.
" 그럴 필요 조차도 없으니까 당장 나가요. "
영옥은 떠밀듯이 주 형사를 밀어내고 나서는 문을 큰소리가 나게 닫아버리고는
자물쇠를 채웠다. 그리고는 냉장고에서 물통을 꺼내 그대로 입으로 가져갔다.
( 이럴수가... 어떻게 이럴수가 있는 거야.... )
그녀는 거실 바닥에 맥없이 주저 앉았다. 어느새 두 눈에서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 안 돼. 안 돼.... )
그녀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다가 소리내어 엎드려 울기 시작했다.
여수에서의 사건이 영화필름 돌아가 듯 그녀의 뇌리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일어서서 힘없이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침대에 엎드렸다.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는 일이 또 다시 자신앞에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에 그녀는
놀라움과 허탈감에 가슴이 텅 빈것 같았다.
( 모든것이 그 자와 연결되어 있어. )
그녀는 귀고리를 떼어내어 침대위에 놓았다.
( 그래. 그날 밤 그 여자는 분명히 죽었어. 형사가 가지고 있던 귀고리가 이것과
틀림없다면... )
그녀는 갑자기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 만약 이 귀고리 때문에 내가 그 여자를 죽인 범인으로 몰리게 되는것은 아닐까 ?
안 돼. 있을수도 없는 일이야.... 그건 말도 안돼. )
그녀는 귀고리를 손에 들어 쓰레기통에 쳐 넣었다.
( 아냐. 만약에 그 형사가 또 다시 귀고리를 들고 찾아와서 확인을 한다면.... )
그녀는 안절부절하다가 다시 귀고리를 쓰레기통에서 꺼내고나서 어찌할 바를 몰라
망설이다가 다시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 어떡하지... 이미 경찰은 모든 사실을 확인하였는지도 모를텐데.... 그리고
나중에라도 내 알리바이를 확인하기 위해 여수에 계신 어머님을 찾아간다면....
모든게 끝이야... 그렇게 된다면 모든것이 끝이야..... )
그녀는 침대에 얼굴을 파묻고 소리내어 흐느꼈다.
그 시각.
주 형사는 아파트를 빠져나와 먼 곳에서 떨어져 유 영옥의 아파트 입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 틀림없이 귀고리가 똑 같아. 어째서 그 귀고리를 유 영옥이가 갖고 있을까 ?
정말로 동일품이 있는걸까 ? .... )
주 형사는 끝까지 또 다른 한개를 확인하지 않고 나온 것을 후회했다.
주 형사는 은근히 여자의 입에서 모든 사실을 자백받기를 기대하고 방문을 했었다.
그러나 뜻밖에 여자가 강하게 나오자 자신도 모르게 약해지고 말았다. 약해졌다는
것보다 지금 현재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서 완강하게 사실을 밝히지 않는 여자가
너무 애처롭게 보였던 것이었다.
그 때 최 반장과 유 형사가 나타났다.
" 어떻게 됐어. "
최 반장은 담배 연기를 내 뿜으면서 주 형사에게 물었다.
" 완강하게 아니라고 하는데요. "
" 흠. 그럴테지. 사연이야 어쨌든 사실이 밝혀지면 현재의 생활이 모두 깨져
버릴지도 모를텐데 쉽게 대답하겠어. "
" 어떻하지요. "
주 형사가 근심스런 표정을 지었다.
" 어떡하긴. 이럴땐 할 수 없어. 연행해서 강하게 조사해야지. "
유 형사가 거칠게 나섰다.
" 안 돼. 그럴수는 없어. 확실한 증거도 없이 사람을 연행할 수는 없어. "
" 반장님. 혹시 유 혜란의 유품인 귀고리 갖고 계십니까 ? "
" 아. 그거. 여기 있지. "
최 반장이 안 주머니에서 조그만 비닐봉지를 꺼내었다.
" 자. 이거 말이지. "
주 형사는 비닐봉지를 건네 받아 귀고리를 꺼내어 손바닥위에 올려놓았다.
" 갑자기 귀고리는 왜. "
" 틀림없어요. 유 영옥이도 이것과 똑같은 귀고리를 끼고 있었어요. "
" 정말이야. "
유 형사가 놀라며 큰 소리를 냈다.
" 오후에 다시 한번 방문해 보겠습니다. "
" 이번엔 나도 같이 가지. "
유 형사가 주 형사에게 손가락을 펴 보였다.
" 아니. 나 혼자 가겠어. "
" 치이. 미인 구경은 혼자서 다 하겠단 얘기군. "
" 그래. 혼자 가도록 하고 가급적 유 영옥의 입에서 스스로 모든 사실을
얘기할수 있도록 유도해 보도록 하고... "
최 반장은 잠시 허공을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 이 신문을 좀 보게. "
주 형사와 유 형사는 갑작스럽게 최 반장이 내미는 신문을 보고 서로 의아스런운
표정을 지으며 신문을 건네 받았다.
" 거기 볼펜으로 표시한 곳 말이야. "
최 반장이 신문에 표시해 놓은 곳은 조그만 기사였다. 밑부분 하단에 짤막하게 대략
50 여자 정도의 기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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