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장미(107)
김형엽
기사 내용은 조금 굵은 글씨로 '야밤의 폭력배 혈투' 라고 쓰여져 있었으며 내용은
양평교 우측 인근 마을에서 10 여명이 넘는 폭력배들의 집단 싸움을 골자로
동네 주민들의 신고로 경찰이 출두했을 당시는 이미 모든 싸움이 끝난후였다며 주민들의 불안함과
경찰의 출동 지연등의 내용으로 주로 경찰을 비판하는 내용이 핵심이 된 기사였다.
" 이 기사는 무엇때문에... "
주 형사와 유 형사는 기사를 다 읽은후 최 반장을 바라보았다.
" 그 부근은 비록 황 필두와의 별장과는 거리가 떨어져 있지만 그렇게 멀다고도 볼 수
없는 거리야. 오늘 아침에 김 형사를 황 필두의 별장으로 보냈어. 내 생각이 맡다면
어제 김 형사를 황 필두의 별장에서 철수시키지 말았어야 할 것을... "
" 반장님은 이 사건을 그 자와 황 필두 부하들의 싸움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 "
주 형사는 설마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어. 일단 김 형사가 출발한지도
두어시간쯤 되어 가니까 사무실에 가서 전화를 기다려 보지. "
" ...... "
" 주 형사는 계속 이 곳에서 유 영옥를 감시하고 유 형사는 나하고 같이 들어가지. "
" 예. 그럼 들어가시지요. "
최 반장과 유 형사는 주 형사만 남겨두고 걸음을 옮겼다. 주 형사는 최 반장에겐
인사를 하고 유 형사에게는 손을 흔들어 주었다.
두 사람의 모습이 멀리 사라지자 주 형사는 다시 유 영옥의 아파트로 시선을 옮겼다.
유 영옥의 아파트는 창문은 크게 열어져 있었지만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파트 입구로는 몇 명의 주부들이 오가는 모습이 보였지만 유 영옥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주 형사는 담배 한대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리고 천천히 차가 있는곳으로 다가가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았다. 그 곳은 유 영옥이 거주하는 아파트와는 거리가 많이
떨어져 있었지만 아파트 입구가 정면으로 보이기때문에 감시하기에는 별 지장이 없었다.
주 형사는 담배 연기를 길게 내 뿜으면서 조금전에 마주 앉았던 유 영옥의 모습을 생각했다.
( 볼수록 아름다운 얼굴이야. 그러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약하게 만드는 눈을 가졌어.
어떤 남자라도 같이 마주보고 있으면 마음이 허물어 질것 같은 모습이었어... )
시계를 바라 보았다.
어느 덧 11 시를 넘어 정오를 향해 분침이 움직이고 있었다.
주 형사는 담배를 비벼끄고 의자 깊숙이 몸을 밀었다. 반쯤 열어진 창문사이로 실날
같은 바람이 스치고 지나갔지만 한 여름의 태양빛이 내리쬐는 차 안은 여전히 더웠다.
( 차라리 어제처럼 비나 내리지. 그럼 더운 것이라도 좀 덜 할텐데... )
주 형사는 의자에 기댄채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았었도 실눈으로는 여전히 유 영옥의
아파트를 보고 있었다.
유 영옥은 얼마나 울었는지 침대 카바가 온통 젖어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나올 눈물이 없었는지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얼굴이 화장품과
눈물로 뒤범벅이 되어 엉망이었다. 침대에서 내려와 방바닥에 앉아 화장대에
비추어진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마르지 않은 눈물이 눈가에 그득했다.
휴지를 뜯어내어 얼굴을 닦으면서 커다란 한숨을 내 쉬었다.
그 때 전화벨이 울렸다.
" 따르르릉 -- , 따르르릉 ---- "
그녀는 전화벨 소리를 들으면서도 받지 않았다. 아니 받고 싶지가 않았다.
전화벨은 계속해서 울렸지만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은채 전화기만 바라보았다.
몇번을 그렇게 울리던 전화벨 소리가 멈추었다. 그녀는 또 다시 작은 숨을 내 쉬면서
일어나서 창가로 갔다.
오후가 되면서 태양빛은 더욱 뜨겁게 대지를 태웠다.
그녀는 단지내에 주차되어 있는 몇대 되지않은 차들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꼭 7 대가
주차되어 있었지만 사람이 들어있는 차는 한대도 보이지 않았다. 단지내 놀이터에서
는 유치원을 끝낸 아이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놀고 있었다. 그들이 뛰어 노는
모습은 그야말로 천지스럽고 평온해 보였다.
다시 전화벨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전화를 노려보았다. 그러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수화기를 들어서
귀에 갔다 되었다.
" 여보세요. "
" 왜 이렇게 전화를 늦게 받는거지. "
그녀는 침대에 털썩 주저 앉았다. 하마터면 전화수화기 마저 떨어뜨릴뻔 했다.
바로 그 자였다.
" ...... "
" 집에 누가 같이 있나 ? "
" ... 없어요. "
" 목소리가 기운이 없군. "
" ....... "
" 무슨일이 있었나 ? "
" 아무일도 없었어요. 지금 어디 있지요 ? "
그녀는 경찰이 왔었다는 얘기를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경찰이 왔었다는 사실을
얘기하였다가는 자기자신을 죽여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오후 3 시쯤 근처에 가서 다시 전화를 할테니까 물건을 상자에 담아 포장을
좀 해두고 기다려. 남이 보아도 선물꾸러미처럼 보일수 있도록 예쁘게 포장해. "
" 알았어요. "
" 그럼 이따 다시 전화할 께. "
전화가 끊어지자 그녀는 수화기를 살며시 내려놓았다.
( 지금이라도 경찰에 신고를 할까.... 그렇게 되면 그 자는 잡을수 있겠지만 나는
어떻게 되는걸까.... 봉석씨가 모든 사실을 알고 나면.... 안돼.... 그건 너무나도
가혹한 일이야.... 하지만 경찰이 또 다시 와서 사실을 증명하려 한다면 어떡하지.)
또 다시 밀려오는 설움에 그녀의 눈가에 눈시울이 고였다.
(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 )
그녀는 자신의 운명이 너무도 어이가 없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 그 자가 잡혀도 안 돼. 그 자가 잡혀버리면 모든것이 다 밝혀지고 말 것이야. )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신이 안타까웠던지 또 다시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그녀는 그렇게 앉은채로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숨을 들이 쉴때와 내쉬때만 어깨부분
이 조금 움직일뿐 시선 조차도 허공에 머문채 그녀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안산경찰서 강력계 사무실에서는 최 장환 반장이 인상을 찌푸리며 담배를 연신
빨아되면서 전화을 받고 있었다.
" 그게 모두 사실이야. "
" ..... "
" 알았어. 그 병원에서 기다리게. "
최 반장은 수화기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반장님 예감이 맞으신 겁니까 ? "
유 형사가 최 반장에 바싹 다가갔다.
최 반장은 입안에 있는 담배연기를 길게 내 뿜고나서 입을 열었다.
" 황 필두가 당했어. "
" 황 필두가요... "
" 그래. 지금 양평 양지병원 중환자실에 있대. "
유 형사는 놀라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 추측건데 놈은 황의 별장에 단독으로 침입해서 일을 벌린후 황의 부하들에게
쫓기면서 치열한 싸움을 한 것 같아. "
" 그렇다면 황의 부하들에게 잡혔거나 죽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
" 글쎄. 아무래도 신문에 난 마을을 가 보아야 할 것 같군. "
" 지금 바로 출발하실 겁니까? "
" 그래야겠지. "
" 그럼 주 형사에게 연락해서 차를 몰고 오라고 할까요? "
" 아니. 주 형사는 그대로 놔두고 우리끼리 가지. 자네가 지프를 몰게. "
" 알겠습니다. "
최 반장과 유 형사가 출구로 나가려는데 식사를 막 끝나고 송 경사가 들어섰다.
" 어머. 또 나가세요. "
" 그래. 주 형사에게 연락이 오면 양평으로 갔다고 해. "
유 형사는 한 쪽 눈을 감아보이며 송 경사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 알았어요. "
송 경사는 빠른 걸음으로 사라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전화벨소리를 듣고 안으로 들어갔다.
최 반장과 유 형사는 지프에 올라탔다. 유 형사는 시동이 걸리자 지체하지 않고
지프를 몰았다. 지프는 쏜살같이 경광등을 밝히며 요란한 소리를 내더니 질풍같이 도로로
달려들었다.
" 좀 밟겠습니다. "
" 그래. 가급적 빨리 가자구. "
최 반장은 차가 달리기 시작하자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 천하의 황 필두도 어이없게 당하고 말았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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