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장미(108)
김형엽
" 그나저나 그 자가 황의 부하에게 당했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요? "
" 만약에 그 자가 당했다면 시체조차 찾기 힘들거야. 그렇지만 내 생각으로는 당할것
같지 않아. 황의 부하들을 따 돌렸을 것 같아. "
최 반장은 열린 창문으로 담배연기를 내 뿜었다.
" 주 형사도 같이 데리고 갈 것 그랬나 봅니다. "
" 왜. "
" 그 자가 황 필두와 거래가 끝났다면 다시 유 영옥을 볼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요. "
" 그건 그렇지만 일단 유 영옥이 사실을 인정만 한다면 그 자의 인상착의는 물론 다른
정보도 얻을수 있을거란 기대도 있으니까 아직까지는 감시해 볼 가치가 있어. "
지프는 곧 수인선 산업도로로 들어섰다. 평일이라 차가 그리 많지않아 도로를 달리는
차들의 속도가 빨랐다.
" 황 필두가 인정을 할까요? "
" 기대할 수 없겠지. 담당 의사를 족쳐서 상처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조사해 볼 수
밖에 없을거야. "
" 그렇지만 황의 부하들이 이미 의사를 협박했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
" 그래도 알아내야지. "
최 반장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밖의 경치를 바라보았다.
처음 유 혜란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부터 보름정도가 지났지만 어느정도의 윤곽은 잡을
수 있었지만 사실 찾고자 하는 인물에 대해서는 하나의 단서조차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죽은 자의 이름으로 활동을 하고 황 필두와 연관이 있다는 것이 고작이었다.
최 반장은 굉장히 초조했지만 젊은 형사들 앞에서 좀처럼 내색을 하지 않을 뿐
속으로는 상당히 고심하고 있었다. 지난번 여수까지 갔을때도 일말의 희망을 갖고서 사건의
해결을 기대하였지만 거대한 파도속을 뚫고 바다를 향하는 개미파를 그저 바라만
보다가 온 결과뿐이었다. 그 당시야 거대한 파도때문에 할 수 없었다고 해도 이번
두번째의 싸움은 감시만 제대로 했어도 일거에 황 필두와 조직, 그리고 그 자를
한꺼번에 일망타진 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최 반장은 그것이 너무 아쉬웠다.
사건이라는 것이 몇일을 꾸준히 감시해 아무일 없다가도 단 하루 잠깐 소홀하면
터지는 것이 사건이다. 최 반장은 아쉬운 감정을 애꿎은 담배로 풀었다.
어느 새 차는 구리 - 신갈간 고속도로를 달렸다.
지프가 달리는 반대 방향에서 연두색의 소나타 개인택시가 질풍같이 스쳐 지나갔다.
운전수는 힘을 주어 핸들을 잡고 속도를 내고 있었고 뒤 좌석으로는 남녀가
어깨를 기댄 채 앉아 있었다. 사내는 검정색 썬글라스에 짙은 곤색의 양복차림이었고
여자 역시 이제 처음 입어본 것 같은 새 옷의 꽃무늬가 그려진 원피스 차림이었다.
여자는 신기하기라도 한 표정을 짓고 연신 바같의 경치를 보았지만 남자는 잠이
들었는지 고개를 고정시킨채 움직이지 않았다.
" 아직도 멀었어요. "
여자가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조그맣게 물었다.
사내는 여자의 얼굴을 한번 바라보다가 어깨에 얹은 팔로 여자를 자기옆으로 당겼다.
" 이제 거의 다 왔어. "
그들은 양평에서 택시를 대절한 피카소와 송 나영이었다.
송 나영은 피카소의 같이 가자는 제의를 듣고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이틀간
사내와 몸을 섞으면서 사내에게 조그만 정을 느꼈다. 그리고 현재 자신의 생활이 한낱
식당 종업원이라는 것이 싫었다. 사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돈과 매너,
그리고 남자다운 기풍에 매료되어 선듯 사내를 따라 나섰던 것이었다.
" 손님. 안산에 다 왔는데 어디로 차를 댈까요? "
기사가 백밀러를 통해 뒤에 앉아있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사내는 몸을 앞으로
당기면서 좌우를 잠시 살펴보았다.
" 상록수 역으로 좀 가 주시오. "
" 알겠습니다. "
차는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곧 수인선 산업도로로 접어 들었다. 상록수 역까지는 불과
10 분여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사내는 처음에 약속한 금액을 운전수에게
건네주고 가방을 들고 내렸다.
" 이 곳에 살고 있어요. "
나영이 사내에게 바싹 붙으면서 사내의 오른쪽 팔을 자신의 손으로 잡았다.
" 아냐. "
" 그럼 이 곳에 왜 왔어요? 그리고 살고 있는 집은 어디고요. "
" 어디가서 점심이나 먹지. "
사내가 자신의 질문에는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나영은 불쾌한 기분을 느끼지 않았다.
아직도 자기자신이 신기 할 뿐이었다.
사내는 상가가 밑집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평일인데도 상가에는 사람이 많았다.
" 양식 사 주세요. "
나영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사내를 바라보았다.
" 양식이라... "
사내는 주위의 건물들을 바라보다가 '뜨락' 이라는 레스토랑 간판을 찾았다.
" 저기로 가지. "
사내가 이끄는 데로 나영은 따라 갔다.
5 층 건물의 2 층에 위치하고 있는 '뜨락' 의 레스토랑은 실내분위기가 은은했다.
지은지 얼마되지 않아 건물 자체도 깨끗했지만 실내의 장식이 꽤 돈을 많이 들었을
거라는 짐작을 처음 와 보는 사람은 누구든지 느낄 수 있었다. 중앙으로 테이블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벽을 끼고는 칸막이 식의 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 두분 이십니까? "
단정한 복장의 웨이타가 공손히 인사를 하며 그 들에게 다가왔다.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안으로 들어섰다.
" 룸으로 드시겠습니까? "
" 그러지. "
그 들은 웨이타가 안내하는 데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나영은 신기한 듯 좌우로
고개를 돌리면서 실내의 분위기에 절로 입이 벌어지며 속으로 감탄을 했다.
실내에는 몇몇 사람들이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모두들 20 대 초반의
남녀들이었다.
그들은 후미진 곳의 룸으로 안내되었다. 원탁의 테이블이 중앙에 위치하고 의자
역시 입구를 중심으로 'ㄷ' 자 형태로 배치되어 있었다. 족히 여섯명은 능히
앉을수 있는 자리였다. 웨이타는 메뉴판을 사내에게 건내고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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