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장미(109)
김형엽
" 어머. 어쩜 이렇게 장식이 멋있지요. "
나영은 웨이타가 나가자 의자에서 일어나 실내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사내는
그런 나영의 모습이 우습게만 보였다.
" 웬만한 식당은 다 이래. 어서 먹을거나 골라. "
나영은 사내가 주는 메뉴판을 받아 펼쳐 보았다. 순간 크게 놀라며 입을 벌렸다.
" 어머나.. 무엇이 이렇게 비싸요. "
나영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사내를 바라보았다.
" 양식집 처음 와 봤어. "
나영은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실 이런데에 들어 올 기회조차 없었다.
그만큼 가난하게 살아 온 그녀였기에 모든것이 신기하고 놀라움 뿐이었다.
" 그럼 내가 먹는 것으로 같이 먹어. "
" 알았어요. "
잠시 후 웨이타가 들어와서 사내와 몇 마디 주고 받더니 다시 나갔다.
사내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오후 2 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 집에는 언제 가요? "
나영이 물 한모금을 들이키고 입을 열었다.
" 집... 어디가 좋겠어. "
" 그런 대답이 어디 있어요.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있을텐데. "
" 난 집이 없어. "
" 그럼 어디서 자요. "
" 발길 멎는데가 내 집이지. "
" 피.. 그런 대답이 어디 있어요. "
" 나영이는 집이 어디야. "
" 저는 아주 시골이야요. "
" 시골 어디. "
" 강원도 산골 이야요. 이름을 말해도 알 수 없을 거예요. "
" 그 곳에 누가 살고 있는데. "
나영은 가냘프게 한 숨을 내 쉬었다가 입을 열었다.
" 제가 집을 나올때는 어머님과 병든 아버님, 그리고 남동생이 하나 있었지요. "
" 언제 집을 나왔는데. "
사내는 썬글라스를 벗어 식탁위에 올려놓았다.
" 제가 15 살때 나왔으니까 벌써 8 년이 넘었내요. 아마도 아버님은 병에 못 이겨
돌아가셨을 거예요. "
나영의 한 숨은 더 커졌고 목소리 또한 떨리고 있었다.
"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아. "
" 싫어요. 이제 이런 몸으로 집에를 가면 뭘 하겠어요. "
" 왜. 나영이가 어때서. "
나영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채 고개만 가로 저었다.
그 때 노크소리가 들리며 웨이타가 들어섰다. 수많은 음식이 식탁위를 메꾸었다.
조금전의 슬픔 따위는 순식간에 잃어버리고 나영은 처음 보는 음식에 상당한 호기심을
느끼면서 식탁위를 바라보았다. 음식이 식탁을 가득 채우자 웨이타는 공손이 인사를 했다.
" 맛있게 드십시요. "
웨이타가 나가자 사내는 우선 맥주를 들었다.
" 자 우선 맥주부터 한잔 하지. "
나영은 잔을 들어 사내가 따라주는 맥주를 받았다. 사내는 자신의 잔에도 역시
맥주를 가득 채웠다.
" 자 건배. "
나영은 입가에 환한 미소를 머금고 사내의 잔에 자신의 잔을 살짝 갖다 댔다.
" 앞으로 나영의 행복을 위해서. "
" 고마워요. "
둘은 맥주를 반쯤 들이키고 나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나영은 사내가 하는 동작을
열심히 따라하면서 맛있게 음식을 먹었다.
그들이 '뜨락' 레스토랑을 나왔을 땐 3 시였다.
" 너무 배가 불러요. 움직이지도 못 하겠어요. "
나영이 사내에게 매달리며 자신의 배를 쓰다듬었다. 사내는 집을 나온지 8 년이
넘었는데도 아직까지 청순하고 천진스러운 모습이 살아있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 저기에 가서 쉬지. "
사내는 3 층 건물의 모텔을 가리켰다.
" 어머. 대낮에 저런곳을 들어가요. "
나영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사내는 아랑곳 하지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곧 모텔로 들어섰고 3 층의 방을 안내 받았다. 나영은 쑥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얼굴이 붉어졌다.
사내는 가방을 내려 놓고 상위를 벗어 침대위에 내려 놓았다.
" 왜 대낮에 이런데 오는것이 이상해. "
나영은 앉지도 못 한채 멀쓱한 표정을 지은채 사내만 바라보았다.
" 이리와 앉아. "
사내의 말이 끝나자 조금씩 발걸음을 옮겨 사내의 옆에 가서 앉았다.
사내는 썬글라스를 벗어 내려놓더니 나영의 어깨를 손으로 잡아끌며 침대로 쓰러졌다.
나영이 잠시 놀라 몸을 움츠렸다가 사내쪽으로 몸을 돌렸다. 코앞에 사내가 보였다.
사내의 손이 나영의 볼을 쓰다듬었다. 까닭없이 나영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렸다.
" 울고 있나. "
사내의 말이 떨어지자 나영은 사내의 가슴에 고개를 묻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기쁨의
눈물이었다. 이제까지 집을 나와 생활하면서 지금처럼 이렇게 따뜻하고 무시당하지도
않으면서 대우를 받는것이 그녀에게는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고 또 기쁨이었다.
돈 몇푼에 자신의 몸을 학대하는것 하고는 지금 이 사내가 하는 것이 비록 진실인지 아닌지
는 몰라도 나영이 자신에게는 현재가 너무 행복한 순간이었다.
사내는 들썩이는 어깨를 토닥거리면서 나영의 몸을 안았다.
" 이제 그만 울어. 다 큰 아가씨가 이렇게 눈물이 흔해서야 되겠어. "
" 미.. 미안해요. 제 자신도 모르게 그만... "
" 됐어. 잠시 쉬었다가 해야 할 일이 있어. "
" 제가요? "
" 응. 한 시간 정도 있다가 여자를 만나야 돼. "
" 여자요? "
나영이 의아스런 표정을 지으며 상체를 일으켰다. 사내도 따라 일어나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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