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장미(110)
김형엽
" 별일은 아니야. 그 여자가 주는 물건만 받아오면 돼. "
" 무슨 물건인데요? "
" 그런것은 묻지 말고 여자에게서 물건만 받아와. 그러면 되니까. "
나영은 더 물으려다가 입을 열지 않았다. 사내의 성격이 꼬치꼬치 따지거나 묻는것을
싫어하기 때문이었다. 나영은 가급적 사내의 기분을 망치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있었다.
" 알았어요. 저 좀 씻으께요. "
" 그래. "
나영은 욕실로 향했다. 사내는 일어나서 창가로 가서 밖을 내다보았다. 멀리로 아파트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사내는 길 건너에 상가를 흩어보다가 한 곳을 선택 하였다.
( 저기가 좋겠군. '상록수' 제과점이라.... )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T.V 옆에 있는 전화수화기를 집어들더니 빠른 동작으로 다이얼을 눌렀다. 신호음이 몇번 울리더니 상대방으로 부터 목소리가 들려왔다.
" 나야... "
" ...... "
" 4 시 30 분까지 상록수 역 뒷편에 보면 의류상가들이 있는 곳이 있어. 그 상가옆에 상록수 제과점으로 가져와. "
" ...... "
" 내가 직접 나가지 않고 어떤 여자가 나갈 것이야. 꽃무늬 차림의 20 대 여자가 찾아 갈테니까 그 물건을 그 여자에게 전해주면 돼. "
" ...... "
" 별 이상한 일은 없었겠지. "
" ...... "
" 그럼 약속 시간을 잘 지키라고. "
사내는 전화수화기를 내려놓고 다시 창가로 가서 밖을 내다보았다. 맑은 구름 사이로 뜨거운 햇살이 도시를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사내는 침대에 걸터 앉아 가방을 열어 작은 수첩을 꺼내었다. 수첩을 펼치자 많은 명단과 전화번호가 깨알같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 누가 좋을까? 한 탕에 처리하기에는 너무 많은 양이냐. 최소한 3 명 정도로 나누어 처리해야 할텐데... )
욕탕안에서는 물 쏟아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사내는 볼펜을 꺼내 세사람의 이름앞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 그래 이 정도의 사람이면 가능 할 것 같군. )
사내는 다시 전화수화기를 들었다. 그리고 첫번째 동그라미 표시가 된 번호의 다이얼을 눌렸다. 잠시 후 굵은 사내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 장 조영씨좀 부탁합니다. "
" ....... "
" 피카소라고 하면 알겁니다. "
사내는 기다리면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뽀얀 연기가 방안을 한 번 돌다가 창문을 통해 밖으로 사라졌다.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오랫만입니다. 장 사장님. "
" 정말이요. 그 동안 어디에 있었오. "
" 저를 찾으셨나요. "
" 그럼요. "
" 웬일로 저를 다 찾으셨지요. "
" 아. 몰라서 그러십니까. 지금 어딥니까? 제가 그리로 가지요. "
" 아..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그래 얼마나 필요하십니까? "
" 많이 있습니까? "
상대방의 목소리는 물건이 있다는 확신을 갖자 활기를 찾은 듯 들뜨기 시작했다.
" 큰 것으로 세장만 주십시요. "
" 큰 것으로 세장이라면... 3 억이나요. "
금액이 컸던지 상대방의 목소리가 커졌다.
" 1 키로 드리겠습니다. 제가 갑자기 급한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반 값에 드리는 겁니다. "
상대방은 1 키로라는 말에 또 다시 놀라면서 1 키로라면 3 억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 정말 1 키로나 되는 물건을 가지고 있습니까? "
" 허허.. 이 피카소를 의심하는 겁니까? "
" 아.. 아닙니다. 당신을 의심한다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지요. 불쾌하셨다면 사과 하겠습니다. 그래 언제가 좋겠습니까? "
" 오늘 밤이 좋겠습니다. 저녁 8 시에 연락을 할테니 그 때까지 돈을 좀 준비해 주십시요. "
" 알겠습니다. 모두 현찰로 준비해 놓고 기다리겠습니다. "
" 그럼. 나중에 연락하겠습니다. "
사내는 수화기를 천천히 내려놓았다.
" 무슨 전화를 그렇게 심각하게 하세요. "
어느 새 목욕을 마치고 나온 나영이 타올로 몸을 감은채 사내의 등 뒤에 와 있었다.
사내는 나영을 한 번 바라보고 나서 아직도 물기가 마르지 않은 얼굴을 손으로 토닥거렸다.
" 사업을 하고 있지. 나영이를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서. "
" 피이.. 무슨 사업을 전화로 해요. "
나영은 사내 옆으로 바싹 다가가 앉았다.
" 상처는 괜챦아요. "
" 바느질 잘 해. "
상처가 어떠냐는 질문에 느닷없이 바느질 얘기를 꺼내는 사내를 바라보고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 갑자기 웬 바느질을. "
사내는 와이셔츠를 벗었다. 단단한 상체가 드러나면서 배부분을 휘감은 천 조각이 나타났다. 오른쪽 부분이 시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 어머. 상처가 다시 터졌나봐요. "
나영이 발을 동동 그르며 어쩔줄 몰라했지만 사내는 천천히 몸을 감았던 천을 풀어 나갔다.
" 가방에서 상자 좀 꺼내와 봐. "
사내가 피에 엉켜 천이 늘어 붙은 것을 조심스럽게 띄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찢어진 부분에서 시커먼 피가 솟구쳐 나왔다.
그것을 보던 나영은 인상을 찌푸리며 사내에게 다가갔다.
" 이렇게 두면 곪아 버리겠어요. "
상처는 족히 10 센티는 찢어져 있었다. 사내는 상자속에서 지혈제를 꺼내 상처부위에 뿌렸다. 그리고는 바늘을 꺼내 실을 꽂았다.
" 뭘 하실려고 그래요. "
나영이 두 눈을 동그랗게 한 채 사내를 바라보았다.
" 그냥 바느질을 한다고 생각하고 꿰매면 돼. "
나영이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으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 나더러 상처를 꿰매라고요. 못해요. 할 수 없어요. "
사내가 나영의 손을 잡아 끌었다. 나영은 사내의 손에 끌려 천천히 몸을 일으켜 다시 침대에 앉았다.
" 할 수 있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거야. 알았지. "
나영은 대답을 하지 못하고 울먹거렸다.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져 나올것 같은 표정이었다.
" 그냥 옷 가지의 터진 부분을 꿰맨다고 생각하고 하면 돼. 할 수 있지? "
나영은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
사내는 나영의 이마에 입을 마추고 나서 라이터를 켰다. 빨간 불꽃에 솟자 바늘을 갖다 가열시켰다. 그리고 나서 바늘을 나영에게 건네주고 옆으로 누웠다.
" 빨리 시작해. "
사내의 재촉하는 말에 나영은 바늘을 잡고 사내에게 다가갔다. 손가락이 바르르 떨고 있었다.
" 빨리 해야 고통이 적은거야. 시간이 길면 길수록 고통은 더 심한 거라고. "
사내의 말을 듣자 나영은 결심이라도 한 듯 바늘을 찢어진 상처부위에 꽃았다.
" 읍... "
짧은 사내의 신음소리가 들렸다가 사라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