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장미(112)

                                                     김형엽

    " 이 케이크는 그 분이 드리는 마지막 선물입니다. 그리고 그 분 말씀이 다시는 만나거나 연락할 일이 없을테니 마음 편안하게 갖고 행복하게 사시라고 했습니다. "
   영옥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입가에 잔잔한 미소만 지었다.
   그 때 카운타에서 마이크 음이 나왔다.
   " 손님중 송 나영씨 있으시면 전화 받으세요. "
   송 나영은 깜짝 놀랬다. 어떻게 자기를 찾는 전화가 왔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시 한번 방송이 나오자 나영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
   나영은 카운터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곧 바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고 그대로 해야 돼. "
   " 네. 말씀하세요. "
   나영은 사내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고 느끼면서 귀를 기울였다.
   " 물건은 받았지. "
   " 네. "
   " 그러면 그 곳에서 나와서 곧 바로 택시를 잡아. 절대로 이 곳으로 오면 안돼. 택시를 타고 안산역으로 가자고 해. 그래서 안산역에 도착하면 지하철 타는 곳으로 곧바로 들어가. 무슨 얘기인지 알겠어. "
   " 네... 그런 다음에는... "
   나영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 내가 안산역으로 갈 것이니까 걱정하지 말고 침착하게 행동해. 가급적 나가자 마자 바로 택시를 잡아서 빨리 가자고 해. "
   " 아.. 알았어요. "
   " 그래. 지금 빨리 계산을 하고 그 여자와 헤어져. 어서 출발해. "
   전화를 끊고 난 나영은 숨을 크게 내 쉰 다음 먼저 계산을 했다. 그리고 자리로 돌아와 영옥에게서 받은 상자를 들었다.
   " 자. 이제 그만 갈까요. "
   영옥은 나영의 표정이 왠지 불안해 보였지만 자신도 빨리 이 곳에서 벗어나고 싶어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 안녕히 가세요. "
   영옥은 짤막하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은 제과점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영옥은 좌측으로 가고 나영은 오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거기서 난감해 진것은 주 형사였다.
   ( 이거 큰 일이군. 누구를 따라가야지. )
   점점 멀어져 가는 두 여자를 바라보면서 주 형사는 유 영옥을 선택했다.
   ( 그래. 또 누구를 만날지도 모르니까. )
   주 형사는 유 영옥이 가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다가 다시 멈추었다.
   ( 이상하다. 뭔가 잘 못 되었어. )
   그 때서야 주 형사는 유 영옥이 지금 들고가는 상자가 처음에 아파트를 나올때 들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 맞아. 상자가 바뀌었어. )
   주 형사는 얼른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이미 나영은 택시에 몸을 실었고 택시는 유유히 상록수 역을 돌아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 이런 제기랄..... )
   주 형사는 부랴부랴 자신이 세워놓은 승용차 쪽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곧 포기했다. 도저히 따라 잡을수가 없었다.
   주 형사는 허탈한 마음으로 다시 유 영옥의 모습을 찾았다. 다행히도 유 영옥의 모습은 아직 시야에 보였다. 주 형사는 빠른 속도로 달려갔다. 유 영옥의 모습이 건물 모퉁이를 막 돌아섰다. 주 형사는 놓치지 않으려고 있는 힘을 다해 뛰어갔다. 주 형사가 막 모퉁이를 돌때 유 영옥은 코리아 백화점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 젠장... 사람 많은 곳만 골라서 가는군. )
   주 형사는 투털거리면서 놓치면 끝장이라는 생각으로 부랴부랴 길을 건너 백화점을 향해 뛰었다. 그러나 주 형사가 백화점 안으로 들어서자 유 영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 어디로 간 거지. )
   백화점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물건을 고르거나 이동하고 있었기에 복잡하기 그지 없었다. 주 형사는 사람들 사이를 뚫고 지나가면서 유 영옥의 모습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 젠장... 2 층으로 올라 간 것일까? )
   얼마를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던 주 형사는 포기하고 백화점 밖으로 나갔다.
   곧 바로 공중전화가 설치되어 있는 곳으로 가서 전화를 들었다.
   " 아. 송 경사. 나 주 형사야. "
   " ..... "
   " 반장님 있어. "
   " ...... "
   " 뭐라고. 유 형사와 같이 양평에 갔다고... "
   주 형사는 직감적으로 아침에 최 반장이 보여준 신문의 기사를 떠 올렸다.
   " 알았어. 나중에 다시 걸께. "
   주 형사는 맥없이 수화기를 내려 놓은채 주차되어 있는 차로 향했다.
   ( 반장님의 추측이 맞았나 보군. 그렇다면 놈은 지금 양평에 있다는 얘기인데. 그럼 유 영옥이 만난 여자는 누구지. 또 상자속에는 무엇이 들었던 것일까.... 단순히 친구를 만나서 서로 선물을 나눈 것일까.... )
   주 형사는 허탈한 감정을 씹으며 차에 올라탔다.
   ( 다시 상아아파트로 가자. 가서 기다렸다가 다시 한번 만나 보자. )
   주 형사는 무엇인가 커다란 것을 잃은 것처럼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차를 몰았다.
    송 나영은 생전 처음 밟아보는 안산땅이 생소하기만 했다. 기사에게 요금을 지불하고 천천히 안산역 대합실로 향했다.
    많은 사람들이 대합실 입구에서 오가고 있었다. 나영은 눈동자를 돌리면서 사내의 모습을 찾았지만 사내는 보이지 않았다. 초조한 마음으로 상자를 든 손에 힘을 주면서 대합실로 들어섰다.
   표를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질서있게 줄을 서고 있었고 이제 막 종착역에 도착한 열차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개찰구를 통해 빠져나왔다. 나영은 사람들이 밀려 나오자 신문과 잡지들을 진열해 놓은 가판대쪽으로 가서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 때 누군가 자신의 팔을 움켜잡았다. 나영은 기겁을 하며 뒤로 한 발자욱 물러서면서 상대방을 쳐다보았다.
   " 어머. 언제 왔어요. "
   나영은 사내를 보자 안도의 한숨을 내 쉬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 잘했어. 자 날 따라와. "
   사내는 나영이 들고 있던 상자를 자신이 들고 한 손으로 나영의 손목을 잡아 끌었다.
   사내는 언제 준비했는지 나영에게 지하철 표를 주면서 자신이 먼저 개찰구를 통과하였다. 나영도 사내를 따라 표를 넣고 개찰구를 통과했다. 나영은 지하철이 처음이어서 자동으로 표가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이 신기한 듯 한참을 표를 만지작 거렸다.
   층계를 내려가자 곧 열차가 출발한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그들이 열차에 몸을 집어넣자 곧 문이 닫혔다. 그리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는 퇴근 시간이 되지않아 곳곳에 자리에 듬성듬성 있었다. 그들은 마침 통로쪽의 자리가 비어있어 앉을 수 있었다.
   " 어머. 기차가 참 깨끗해요. 저 솔직히 말해서 이거 처음 타 봐요. "
   " 그래. 이건 기차라고 하지않고 전철이라고 해. "
   " 그런데 이것 타고 어디까지 가요? "
   " 아까 그 곳으로 갈거야. "
   나영은 인상을 찌프리며 사내를 바라보았다.
   " 왜? "
   " 그럴걸 뭐 때문에 이 곳까지 오라고 했어요. "
   " 나중에 대답해 줄게. "
   나영은 더 이상 묻지 않고 차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수많은 아파트와 집들이 빽빽히 들어서 있었다. 사내는 전철안의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 이상해. 유 영옥도 형사가 자기를 미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어. 그렇다면 유 영옥이가 신고를 한 것도 아닐텐데... 무엇때문에 유 영옥을 미행하는 것일까.... 아무튼 형사가 그 곳에서 나영이를 선택하지 않은 것은 천만 다행이야. )
   사내는 무릎위에 놓여있는 상자를 가볍게 들어보았다. 상자는 묵직했다.
   ( 빨리 처리하고 떠야겠어. 유 영옥이에게 형사가 붙었다면 이미 내막을 알고 달려든 건지 몰라. 일단 오늘밤에 장 조영 그 자에게 일부를 처리하고 나머지는 내일과 모레까지 다 처분하는 거야. )
   사내도 무엇인가 점점 자기의 영역이 좁아지는 것을 느꼈다.
   " 무엇을 그렇게 생각하세요. "
   나영이 사내의 팔을 두 손으로 잡으며 부드럽게 웃었다.
   " ...... "
   사내는 아무 말도 없이 그냥 가볍게 미소만 지었다.
   " 아까 그 여자는 누구야요. 너무 이뻐서 저 자신도 질투가 나던데요. "
   " 미인이지. 얼굴뿐만 아니라 그것도 끝내주지. "
   " 그거라니요? "
   사내는 그저 웃기만 했다. 나영은 잠시 후 그것이 무슨 뜻인지를 알고 나서야 사내를 흘겨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나영은 사내의 어깨에 편안하게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열차는 제 속도를 유지하면서 거침없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 다 왔어. 내리지. "
   사내가 몸을 일으키자 나영이도 사내를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금방 상록수역을 빠져나와 곧장 낮에 방을 잡아 놓았던 모텔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서자 나영은 피곤한 듯 침대에 그대로 앞으로 넘어졌다. 침대가 출렁거리다가 다시 잔잔해 졌다. 사내는 방바닥에 상자를 내려놓고 포장을 뜯었다.
   " 그 안에 무엇이 들었어요. "
   나영은 엎드린 채 사내를 바라보며 물었다.
   " 알려고 하지마. 그냥 모르는 것이 좋아. "
   사내의 말에 나영이 몸을 일으키려 하다가 포기했다. 사내의 말대로 모르는 것이 사내의 마음을 편하게 한다면 굳이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 오늘 여기서 잘 거야요. "
   " 아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 나갈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