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장미(114)

                                                     김형엽

    " 잘했어. 자네 앞에 커다란 갈대숲이 보이지. 그 안으로 사람이 들어가면 찾을수가 있겠나. "
   유 형사는 최 반장이 가르키는 갈대숲을 보았다. 2 미터가 넘는 갈대들이 빽빽히 들어차 있었다. 갈대숲에서 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 낮인데도 이런데 밤이면 속수무책 이겠는데요. "
   " 내려가세. "
   최 반장은 담배연기를 내 뿜으며 허공으로 시선을 옮겼다. 하늘에는 새털구름이 은은하게 깔려 있었다.
   ( 놈은 살아있어. 황의 포위망을 뚫고 나간거야. )
   유 형사는 철조망을 넘어 최 반장 곁으로 갔다.
   " 다시 한번 병원으로 가 볼까요? "
   " 그러지. 일단 병원에 가서 황을 다시 만나보아야 겠어. "
   그들은 마을을 내려와 지프를 타고 다시 양지병원으로 갔다. 한가하던 도시가 퇴근시간이 임박해 지면서 차량의 숫자가 부쩍 늘어났다.
   병원에 도착하자 곧 담당의사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서류를 점검하고 있던 의사는 그들의 모습을 보자 인상이 찌그러졌다.
   " 어째서 또 오셨습니까? "
   " 미안하오. 그 환자 한 번만 더 만나보고 가겠습니다. "
   최 반장이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지으며 의사에게 다가갔다.
   " 알겠습니다. 하지만 환자의 의식이 현재까지도 깨어나지 못한 상태입니다. 말조차 듣거나 할 수도 없으니까 별 도움은 되지 않을겁니다. 따라 오십시요. "
   의사가 앞장서서 방을 나가자 최 반장과 유 형사가 뒤를 따랐다. 중환자실 307 호 병실의 문이 열리면서 세사람이 들어섰다. 중환자실에는 10 여명의 환자가 누워있었다.
   그 중에 의식이 있어 움직이는 환자는 둘 정도였다. 최 반장은 환자들을 바라보며 네 번째 침대에 붙어있는 명찰을 보았다. 매직펜으로 쓴 '황 필두'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적힌 침대가 보였다.
   " 자. 보십시요. "
   의사는 한발자욱 뒤로 물러섰다.
   최 반장과 유 형사는 붕대로 칭칭 감긴 황의 모습을 보았다. 붕대속으로 두 눈이 보였지만 굳게 감겨있었고 미세하게 숨소리만 가늘게 들렸다.
   " 실례지만 얼굴에 감긴 붕대는 언제쯤 풀게 되나요. "
   " 일주일은 지나야 할 것 입니다. "
   " 일주일이라.... "
   최 반장은 다시한번 황을 바라보았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쭉 흩어보고는 병실을 빠져나왔다.
   " 이제 되셨습니까. "
   "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의사는 인사를 하고 뒤 돌아 복도로 걸어갔다. 의사가 가는 편으로 한 사내가 다가왔다. 검은 양복에 중절모를 쓴 머리가 긴 사내였다. 그 사내는 곧 바로 최 반장과 유 형사가 서 있는 앞으로 다가섰다.
   ( 아니. 저자는.... )
   유 형사는 금방 장발을 알아 볼 수 있었다.
   장발은 그들 앞까지 다가서더니 눈을 깔며 아래위로 흩어보았다.
   " 저의 회장님께 무슨 용무가 있습니까? 대체 당신들은 누구요. "
   최 반장과 유 형사는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 당신들 형사요. 보아하니 이 곳 관할 형사도 아닌것 같은데 무슨 목적으로 이 곳에 오셨소. "
   " 장발. 나를 기억할텐데. 마약반의 유 길준을 잊지는 않았을텐데. "
   유 형사가 장발을 노려보았다.
   " 오라. 그러구보니 생각이 나는군요. 그러니까 2 년정도 지났지요. "
   " 기억이 난다니 다행이군. "
   " 그런데 무엇때문에 회장님을 만나러 왔지요. 2 년전 무죄로 밝혀져서 모든 것이 다 끝난걸로 아는데."
   " 안 됐군. 회장이 저렇게 다쳐서. 누구에게 당했나? "
   " 당하다니요. 의사에게 얘기도 못 들었습니다. 층계에서 발을 헛디져 구르게 된 사실을. "
   " 잘도 구워 삶아났더군. "
   " 무슨말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되는군요. "
   장발은 히죽히죽 웃어가며 유 형사의 말을 받았다.
   " 나머지 부하들은 어느 병원으로 옮겼나? "
   " 그건 또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입니까? "
   유 형사가 또 다시 말을 꺼내려고 하는데 최 반장이 저지시켰다.
   " 그만. 그만하고 돌아가지. "
   최 반장은 유 형사의 한쪽 팔을 끌어당기면서 앞장 섰다.
   " 안녕히 가십시요. 그리고 가급적 다시는 오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
   " 저 자식을 그냥.. "
   유 형사가 신경질적으로 몸을 뒤틀었지만 최 반장이 움켜지고 있는 손의 힘도 더욱 힘이 들어갔다.
   " 됐어. 나가세. "
   유 형사는 길게 한 숨을 몰아쉬며 최 반장을 따라 병원을 빠져나왔다.
   " 조금전 그 자가 누군인가? "
   " 황의 오른팔입니다. 이쁘장하게 생겼지만 왼팔인 쌍칼에 버금가는 실력의 소유자이면서 항상 안을 지키는 임무를 맡고 있습니다. "
   " 음. 그렇다면 지금 병원에 누워있는 자가 황 필두가 틀림없다는 얘기군. "
   " 그나저나 우리의 신분이 노출되어 버렸으니 앞으로 더 힘들겠는데요. "
   " 어차피 처음부터 힘이 들었던거야. 아직까지도 우리가 찾고자하는 자의 이름 석자도 모르쟎아. "
   두 사람은 지프속으로 몸을 실었다.
   " 감시 할 필요가 있을까요? "
   " 내일 아침 강 민구와 김 동석을 이 곳으로 보내야겠어. 움직일 수 없는 환자이지만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까 감시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
   유 형사는 차의 시동을 걸었다.
   지프는 유유히 병원을 빠져나갔다. 어느새 도로에는 퇴근시간이 넘어서인지 각양각색의 차량들이 도로를 채우고 있었다. 거리에는 어둠이 다가옴과 동시에 오색의 네온싸인들이 하나둘씩 빛을 발산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