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장미(127)
김형엽
거실로 나간 황이 베란다의 창문을 열자 비방울과 함께 서늘한 바람이 거실로 스며 들었다. 난간에 걸쳐진 수건을 들어 얼굴과 몸에 맺혀진 땀을 닦고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서 엎드려져 있는 희진의 등부터 수건으로 닦아주기 시작했다.
( 좋은 계집이야. 길만 잘 들이면 옥향이 보다도 훨씬 나아. )
황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희진의 몸을 구석구석 수건으로 닦아주었다. 희진의 몸은 아직도 약기운에서 벗어나지 못해 무방비 상태였다. 황의 손이 움직이는데로 희진의 몸은 엎어졌다가 다시 바로 누워지고 있었다.
땀을 다 닦은 황은 희진을 반드하게 눕게 한 다음 다시 사지를 노끈으로 묶어 침대 모서리에 묶었다. 희진은 그래도 배시시 황을 바라보고 웃고 있었다.
( 그래. 웃어라. 정신이 제대로 돌아왔을때도 그렇게 웃기를 바란다. )
황은 침대에서 내려와 가운을 대충 걸치고 다시 거실로 나와 흔들의자에 앉아 비가 쏟아지고 있는 밖을 바라보며 시가에 불을 붙였다. 열려진 창문을 통해서 들어오는 바람속으로 시가의 연기가 빠른 속도로 휘 말렸다.
안산경찰서 강력계 사무실 회의실에는 밤 늦은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최 장환 반장을 비롯하여 5 명의 형사들이 사각 테이블을 가운데 놓고 빙 둘러앉아 주 우남 형사의 얘기를 열심히 경청하고 있었다. 그들이 뿜어대는 담배 연기때문에 회의실은 무척 공기가 탁했지만 그들은 그런것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도 않았다.
" 지금까지 제가 한 얘기가 오늘 유 영옥을 만나서 알아낸 정보의 전부입니다. "
주 형사는 약 30 분에 걸쳐 장황하게 설명을 하고 이제 막 끝내고 있었다.
" 일단 그 자의 정체가 밝혀진 것이군. "
제일 먼저 최 반장이 입을 열었다.
" 예. 그렇습니다. 이미 안 상철은 죽은 사람으로 판명이 났었고, 진 달호에 대해서 조사해 본 결과 1959 년 4 월 14 일 충북에서 태어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진 달호의 부모는 기록이 없으며 다만, 특이한 것이 있다면... "
주 형사가 말을 하여다가 주춤하자 성질 급한 안 길준 형사가 다구쳤다.
" 뜸 들이지 말고 빨리 얘기해. "
" 반장님께서도 아마 기억을 하실겁니다. 왜 지난번에 유 혜란의 과거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충남 당진의 한아름 보육원을 제가 갔다 온 적이 있었습니다. "
" 음. 그래 그 때 강 형사하고 같이 갔다 왔었지. "
"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뜻 밖에도 진 달호가 자란 곳이 바로 그 한아름 보육원이 최종 거주였던 것으로 밝혔졌습니다. "
순간 최 반장를 비롯하여 모든 형사들이 신경을 곤두 세우며 주 형사를 바라보았다.
" 저도 처음에는 상당히 놀랬습니다. 진 달호의 부모 행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진 달호 역시 고아였습니다. 진 달호와 유 혜란이가 이미 과거에 알고 있었던 사이였던 것인지는 내일 한아름 보육원에 가서 알아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
" 한아름 보육원의 원장이 이 사실을 안다면 무척이나 안타까워 하겠군. "
" 그럴겁니다. 그 때 제가 갔었을때 원장을 직접 만나보았는데 약 40 이 조금 넘은듯한 나이였습니다. 이름은 민 소영이었는데 무슨 사연인지는 몰라도 유 혜란과 같은날 보육원에 들어왔습니다. "
" 그렇다면 민 소영이라는 원장도 진 달호에 대해서는 잘 모를수도 있겠군. "
" 그럴지도 모릅니다. 지금 있는 민 소영 원장 이전에 보육원을 운영하던 원장을 만나보아야 진 달호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최 반장은 담배를 비벼끄더니 커다랗게 기지개를 켰다.
" 유 영옥씨가 아픔이 컸겠군. "
" 예. 제게 사실을 밝히면서 계속 눈물을 흘렸습니다. "
" 그렇게 밝힐 것을 좀 일찍이나 말 할 것이지. "
유 형사는 그래도 못 마땅스러운지 투덜거렸다.
" 자. 모두 내 말을 듣게. "
최 반장이 의자를 바싹 탁자쪽으로 당기며 다가앉자 다른 형사들도 가까이 다가앉으면서 최 반장을 바라보았다.
" 일단 주 형사는 내일 아침 일찍 한아름 보육원을 출발을 하게. "
"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
유 형사가 뒤 머리를 매만지면 최 반장을 바라보았다.
" 그럴 필요 없어. 유 형사는 따로 할 일이 있어. "
유 형사는 멀쓱한 표정을 지으며 주 형사를 바라보았다.
" 보육원에는 주 형사 혼자 가고, 유 형사는 김 형사와 같이 다른 것을 알아보게. "
" 무엇입니까 ? "
" 지금 현재 물건은 진 달호가 가지고 있어. 이미 황 필두와의 거래는 끝이 났으니까 황과의 거래는 있을 수가 없지. 그렇다면 진 달호는 그 물건을 다른 누군가에게 처분하려고 할 거야. 그리고 빨리 대한민국을 벗어 나려고 하겠지. 어차피 유 형사는 그쪽 계통으로는 발이 넓으니까 대상자를 뽑아서 혹시 최근에 은행으로부터 커다란 금액의 거래가 있는 자를 집중적으로 조사를 해 보게. 이미 진 달호와 거래가 이루어졌다면 적은 금액은 아닐거야. 그리고 진 달호의 출국 금지 조치도 취해놓고 사진을 전국 경찰망에 배포하게. "
" 예. "
유 형사는 자신의 수첩에 열심히 기록을 했다.
" 그리고 강 형사는 주 형사가 유 영옥씨로 부터 적어 온 전화번호를 추적하여 어디인지 소재를 파악하여 보고 황 필두의 부동산을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조사 해 보게. "
" 부동산은 왜 .... "
주 형사가 의아한 표정으로 최 반장으로 바라보았고 곧 다른 형사들도 역시 최 반장을 바라보았다.
" 유 형사는 지금 양평에 입원해 있는 황 필두를 어떻게 생각하나? "
" 어떻게 생각하다니요? "
" 그 자가 진짜 황 필두 라고 생각을 하나. "
" 네.. 그럼 반장님께서는 가짜라고 생각하십니까? "
" 그래. "
"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
" 자네가 만약에 황 필두였다면 그렇게 병원에 누워있는 상태로 경찰이 오기를 기다릴것인가, 아니면 이미 경찰에서 자신의 별장을 감시중인데 마침 이번 사건이 터졌으니 이 기회를 이용하여 경찰수사망에서 완전히 벗어 나겠는가? "
유 형사는 최 반장을 바라보며 입을 다물지 못 했다.
" 황 필두가 우리의 추측대로 진 달호에게 당했다해도 그렇게 누워서 경찰을 기다리지는 않을 놈이야. 이미 다른데로 거처를 옮겼을거야. "
" 그럼 병원에 누워있는 자는 누구지요? "
" 글쎄.. 아마도 황의 졸개정도 아니겠어. "
" 설마... "
" 아마도 우리 눈을 속이려고 그랬을거야. 지금쯤 어디 다른 곳에서 편히 쉬고 있을지도 모르지. "
" 그렇다면 결국 황 필두에게 농략당하여 우리의 정체만 드러낸 꼴이 되었다는 얘기군요. "
" 결국 그런 셈이지. 특히 자네의 얼굴은 잊어버리지도 않았을텐데 또 다시 미행당하는 것을 알게되었다면 황 필두는 앞으로 더욱 자신의 몸을 노출하려 하지 않을거야. "
유 형사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 일단 부동산을 조사하다보면 또 다른 별장이나 은신처 같은 곳이 있을거야. 그러니까 황 필두 명의로 된 모든 부동산을 빠른 시일내로 조사하여 결과를 보고 하게. "
" 알겠습니다. "
강 형사가 제법 큰 소리로 대답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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