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장미(15)

                                                     김형엽

   그녀는 봉석을 받아 들이면서 조금전의 장면을 떠 올리려고 애썼지만 떠오르지 않았다.
   봉석은 힘차게 상하운동을 하면서도 손으로는 집요하게 그녀의 가슴을 애무했다. 그녀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잡념을 떨쳐버리려고 봉석의 품속으로 더욱 파고 들어갔다. 봉석의 호흡이 점점 빨라져 갔다. 그녀의 팔에 힘이 더 들어가면서 조금이라도 봉석의 품으로 빠져 들어가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 같았다. 그녀는 멀리서부터 아득히 들려오는 남편의 외침을 듣고 있었다. 그 외침은 점점 커지기 시작했고 마침내 고막 고막마저 뚫어 버릴 듯 크게 들리더니 이내 깊은 정적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녀는 힘차게 밀려왔다 빠져 나가려는 봉석을 움직이지 못하게 조여갔다. 봉석은 그녀의 몸 위에 엎드린 채 숨을 가쁘게 내 쉬었다. 그녀의 손이 땀으로 범벅이 된 봉석의 등을 쓰다듬었고 또 다른 한 손으로는 머리를 매 만졌다.
    ( 그래. 변해가고 있는거야. 이 사람도 이제 성에 눈을 뜨는 것 같아. )
    봉석은 하복부를 조이는 그녀의 힘에 감탄을 하면서도 너무 빨리 눈을 뜨는 것에 약간은 불안하기도 하였다.
   ( 하지만 이건 당연한 것이야. 우리는 서로 부부인데... 우리 둘 만의 특권인것을 )
   봉석은 다시 서서히 일어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를 안은 채로 위치를 바꾸려고 했다. 그러자 그녀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 왜. 어제 아침에는 나를 깨우지도 않은채 올라가더니.. "
   " 내가 언제. "
   그녀가 부정하면서 혀를 살짝 내밀었다.
   " 어허. 이젠 오리발까지 내밀어. "
   봉석이 힘을 주어 그녀를 안을 채 몸을 돌렸다. 서로의 위치가 바뀌었다. 그녀는 부끄러웠지만 무엇인지 모를 욕망이 가슴 밑바닥부터 자신의 마음을 치고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천천히 허리를 움직였다. 그녀 자신도 놀라고 있었다.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 그녀를 타 오르게 만들었다. 그렇게 놀라면서도 그녀는 봉석의 몸 위에서 이제까지는 느껴보지 못했던 기분을 느끼기 시작했고 열린 입에서는 끝없이 알 수 없는 신음 소리가 터져나왔다.
   순간. 또 하나의 환영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번에 어렴풋이 모습이 보였다. 건장한 육체를 가진 사내의 모습이었다.
    ( 데체 뭐야. 금방 그 모습은 누구지? " )
   그녀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눈을 뜬 상태로 멍하니 봉석을 쳐다 보았다.
   " 왜 그래. 당신 "
    봉석은 갑자기 멈춘 그녀를 올려다 보며 손으로 얼굴을 매만졌다.
    " 아.. 아무것도... 그냥 갑자기 부끄러운 마음이 생겨서... "
    그녀는 얼굴을 숙여 봉석의 가슴에 파묻었다.
    " 괜챦아. 누구든지 다 하는 것인데.. "
    봉석은 아직까지는 아내가 부끄러워 한다는 것에 약간의 안도의 숨을 내 쉬면서 그녀의 등을 토닥거려 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상체를 일으키면서 두 팔로 봉석의 두 다리를 잡았다. 그녀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두개의 가슴이 출렁거렸고 그 물결은 침대까지 가만두지 않았다. 봉석은 그녀의 두 다리를 손으로 가볍게 잡아주었고 그녀의 몸 놀림은 더욱 빨라지고 거세졌다. 다시 한번 건장한 사내의 모습이 그녀의 뇌리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 누구야. 대체.... )
   그녀는 욕망과 의아함이 뒤섞인채 봉석의 몸 위에서 흔들거렸다. 갑자기 봉석의 두팔이 힘을 주면서 그녀의 허리를 움켜잡자 그녀도 더 이상 참지 못하는 듯 봉석의 몸 위로 쓰러졌다. 봉석이 길게 숨을 몰아 내 쉬고 그녀는 엎어진 채로 스치고 지나가버린 사내의 얼굴을 생각했지만 안개속에서 보일듯 보일듯 윤곽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녀는 거친 숨을 내쉬면서 무엇인가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 했다.
   ( 누구이길래 자꾸 내 앞에 나타나고 있는거지. )
   봉석은 비에 맞은듯 땀으로 범벅이 된 그녀의 등을 천천히 쓰다 듬자 고개를 들어 봉석을 쳐다 보았다.
    " 씻지 않을래요. "
    " 응.. 당신 먼저 가. "
   그녀는 봉석의 품 속에서 빠져나와 알몸인 채로 욕실로 향했다. 봉석도 천천히 몸을 일으켜 경대위에 담배를 한대 뽑아 불을 붙였다. 샤워기를 돌리자 차가운 물이 그대로 그녀의 맨살위로 떨어졌다.
    " 아. 시원해. "
   그녀는 땀으로 젖은 몸을 그대로 물로 씻어 냈다.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차가운 물이 그녀의 온몸 구석구석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녀는 쏟아지는 물을 온 몸으로 맞으면서 거울을 쳐다보았다.
   ( 틀림없이 무슨 일이 있었어. 그 사내... 그 사내와 내가 무슨 일을 ... )
   그녀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 정말 그런일이 있었다면 지금 남편과의 정사는 생각지도 못 했을 일이다. 그런데 왜 자꾸 남편과의 정사때 그 사내의 얼굴이 나타났을까 ? )
    그녀는 불안한 마음을 떨쳐 버리 듯 머리를 흔들었다. 기억나지 않은 지난 하루를 어 떡해든 생각해 보려고 했지만 무엇인가 잡힐듯 하면서도 결국 생각을 해 낼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