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장미(19)
김형엽
최 반장이 귀걸이를 다시 비닐봉지에 집어 넣었다. 그 때 주 형사와 유 형사가
룸으로 들어 섰다.
" 아무도 본 사람이 없습니다. 반장님. "
" 사건이 점점 어려워 지는군. "
최 반장은 의자에서 일어서며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 자. 손 유미씨. 혹시라도 무슨일이 생기면 연락을 주세요. 우리는 일단
돌아가야겠어요.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
" 알았습니다. "
그들 일행은 룸을 나와 차에 올랐다.
" 본부로 들어 갈거지요. "
운전석에 앉은 주 형사가 백밀러로 뒤에 앉은 최 반장에게 물었다.
" 그래 일단은 본부로 가서 다시 생각좀 해봐야 겠어. "
" 할 수 없이 제가 정리한 자료를 갖고 한 사람씩 조사할 수 밖에 없겠는데요. "
주 형사 옆에 앉은 유 형사가 안전벨트를 조이며 뒤에 앉은 최 반장을 쳐다 보았다.
" 음.. 시간이 상당히 걸리겠군. "
차가 서서히 출발했다.
최 반장은 창밖을 쳐다보며 담배를 한대 꺼내 물었다. 무엇인가 얻을수 있었던 것을
놓쳤다는 허무함이 최 반장의 표정을 더욱 어둡게 만들었다.
( 20 년 형사 생활을 하면서 가장 어렵고 힘든 사건에 휘말리는 것 같군.
데체 어떻게 생긴 놈일까...... 사람 죽이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 놈이야...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할 지 모르겠군.... )
최 반장은 연신 담배를 빨고 연기를 내뿜었다. 주 형사가 무엇이라고 말을 하려다가
최 반장의 표정을 살펴보고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유 영옥은 오전에 남편 조 봉석이 일본으로 떠나자 자신도 친정 어머니가 계신
여수로 가기 위해 짐을 챙기고 있었다. 오후 3 시 30 분 출발 비행기라 약간의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기에 느긋한 마음으로 집안도 정리하였다. 그녀가 핸드백속에 작은
지갑을 꺼내어 약간의 돈을 집어 넣으려고 할 때 이상한 물건을 발견하였다.
( 어머? 이게 뭐지 )
지갑속에서 꺼내든 것은 귀걸이였다.
( 아니 이게 무슨 귀걸이지. )
손바닥위에 귀걸이를 올려놓고 유심히 바라 보았다.
( 앗. 그... 그렇다. )
그녀는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그대로 주저 앉고 말았다. 그 동안
기억되지 않았던 일들이 마치 영상처럼 흘러 지나갔다. 봉석을 기다리다가
목격한 장면에서 부터
그 사내에게 당했던 모든 일들이 머리속에 생생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 맞아.. 그렇게 주사를 맞고 나서 기억이 나지 않았던 거야..... )
갑자기 그녀는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었던 날들의 기억은
그녀를 허망하고 슬프게 하였다.
( 흐윽... 그런 몸으로 그이와 또 다시 몸을 섞고... 어떻게 또 어머님을
만날뵐 수 있을까..... )
그녀의 눈물은 그칠줄 몰랐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이젠 더 이상 나올 눈물이 없었을까? 그녀의
얼굴은 온통 눈물자국으로 얼룩져 있었고, 시선은 촛점도 잃은채 움직이지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던 그녀가 몸을 움직인 것은 2 시간 정도 지나서였다. 거실을 지나
욕탕으로 들어가 샤워기의 물을 틀었다. 옷을 입은채로 샤워기에 물을 그대로 받았다.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물에 젖은 모습을 거울로 바라다보는 얼굴에는 눈물인지
물인지 구분할 수 없는 것이 한없이 흘러내렸다.
( 그래.. 하는 수 없어. 어느 누구에게도 얘기할 수 없는 거야. 너와 나만이 알고
있으면 돼. )
그녀는 거울속에 또 다른 그녀에게 다짐을 하였다. 똑같은 얼굴이었지만 서로에게
굳게 약속을 하였다. 천천히 젖은 옷을 벗기 시작했다. 옷을 입고 있었던 모습이
순식간에 눈부신 나신으로 변하자 천천히 비누를 꺼내 온 몸에 칠했다. 구석구석 한 군데
빠진곳없이 열심히 비누칠을 하였다.
잠시후 그녀는 안방에서 외출복으로 갈아 입었다. 배지색의 바지에 반팔 셔츠를
입고나서 시계를 한번 들여다 보고는 후다닥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녀가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3 시 15 분이었다.
비행기 출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서둘렀다. 모든 수속을 마친 후 중간좌석을
배정받아 자리에 앉아 안전벨트을 착용하였다. 긴장감이 한꺼번에 풀려나가듯
비행기의 이륙과 동시에 눈을 감았다.
그녀는 숲을 헤메이고 있었다. 벌써 몇 시간째를 걸었지만 숲은 계속 이어져 갔다.
그녀는 얇은 잠옷 차림이었지만 넘어질 때 돌과 나무가지에 찢겨져 거의 알몸
상태였다. 자신이 어떻게 이런 곳에 오게 되었는지도 생각이 나지도 않았고 다만 어떻하든지
이 곳을 나가려고 애를 썼다. 몸에는 나무가지에 걸리거나 바위에 부딪쳐서인지
곳곳에 피멍이 들어 있었고 그 상처 부위에서는 조금씩 피가 흘러 내리고 있었다.
그렇게 지친몸을 이끌로 걸어가던 그녀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건장한 사내가 굵은 나무가지 뒤에서 나타났다. 그 사내는 마치 밀림의 타잔처럼
몸의 아랫부분만을 가린 복장이었고 얼굴에 검정색 썬그라스를 끼고 있었다. 햇볕에 탄
사내의 육체는 검고 탄탄해 보였다. 그녀는 놀라면서 몸을 돌려 왔던길로 다시
되돌아서서 뛰어갔다. 사내도 그녀를 따라 갔다.
" 가까이 오지마... 안돼.. "
지친몸의 그녀는 점점 사내와 가까워져 갔다. 불과 50 미터도 가지 못하고 넘어지고
말았다. 숨을 헐떡거리며 주저 앉아 있는 그녀의 앞에 사내가 우뚝 섰다. 그리고는
천천히 썬그라스를 벗었다.
" 너는 달아날 수 없어. 이젠 내 손아귀에서 빠져 나갈수 없는 거야. "
사내가 한 손으로 그녀의 턱을 움켜 쥐면서 얼굴을 마주대하게 하였다.
" 놔. 놓으란 말이야. "
그녀가 반항하면서 손으로 사내의 팔을 뿌리치려 했지만 사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사내의 또 다른 한손이 그녀의 뺨을 내리쳤다. 그녀는 맥없이 쓰러지자
이번에는 몸에 걸친 옷 조각들을 사정없이 잡아 당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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