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유 영옥이 자신의 아파트를 빠져 나온 시간은 10 시쯤이었다.
시장 바구니를 들고 시장을 향해 나갔지만 목적은 따로 있었다. 그녀는 어젯밤에 검
정색 승용차가 주차했었던 곳으로 갔다. 단지내의 주차장엔 밤에는 많은 차량이 주차
되어 있었지만 지금 시간에는 서너대의 차만 주차되어 있었다. 그녀는 바닥을 유심히
들여다 보았지만 자신이 찾고자 하는 핏자국 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 이상하다. 그게 칼이었다면 틀림없이 피가 흘러 내렸을텐데... )
한참 주변을 맴돌다가 결국은 포기하고 말았다.
( 내가 잘못 보았을까 ? .... )
그녀가 돌아서서 시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길때 무엇인가 바닥에서 태양빛과 반사하여
반짝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 아니 저게 뭘까 ? )
곧 반짝거리는 것을 주었다.
( 어머. 귀걸이네. )
그녀가 주운것은 여자들이 귀에 거는 귀걸이였다.
( 어쩌면 이렇게 예쁘게 만들었을까 ? )
자기 자신도 몇개의 귀걸이를 보유하고는 있었지만 지금 주운것을 보고는 감탄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건 진주로 만들어 졌고 참으로 정교하게 제작된 것이었다.
( 혹시 이것이 그 여자의 것이 아닐까 ? )
그녀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시 한번 주변을 살펴 보았다. 그러나 다른 한쪽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지갑을 꺼내어 귀걸이를 집어 넣고 시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 광경을 유심히 살펴보는 한 사내가 있었다. 그녀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오
른쪽 아파트 10 층 중간에서 처음부터 그녀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던 사내가 팔짱을
낀채 반쯤 열린 창문으로 시장을 향하고 있는 그녀의 뒷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사내의 얼굴에는 살기로 가득찬 웃음이 감돌았다. 마치 먹이를 발견한 한 마리의
야수처럼 그녀의 뒷 모습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수인선 산업도로에는 오후가 되면서 하행차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강 만구는 4.5 톤 트럭에 짐을 가득 싣고 부산을 향해 가는 중이었다.
안산 공장에서 일찍부터 짐을 싣기 시작했지만 10 시가 넘어서야 다 실을수 있었다.
( 개자식들... 차를 새벽같이 갔다 놓았으면 짐을 빨리 실었야지. 10 시 전에는 이
놈의 수인선 산업도로를 벗어났어야 하는데... )
그는 공장에서 짐을 늦게 실은것에 대해 투덜거렸다.
도로 좌우의 논에는 벼가 알맞게 자라고 있었다. 그는 곧 고속도로 진입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이 쯤에서 소피나 보고 갈 생각을 하면서 적당히 차를 세울만한 곳
을 찾았다.
( 아.. 저기가 좋겠군. )
그는 트럭을 도로 한쪽으로 붙여 세웠다. 그리고는 운전석에서 내려 논 바닥을 향해
소변을 보았다. 소변을 다 보고나서 바지 작크를 채우려던 그의 눈에 무엇이 보였다.
( 으잉. 저게 뭐지 ? )
논 고랑사이에서 허연 물체가 보였다.
( 아니 저거 사람 다리 아닌가 ? )
그는 놀랐지만 뒷걸음은 치지 않았다. 논 고랑 사이의 물체를 확인하고 픈 충동을 느
끼면서 물체 가까이 갔다.
" 으악 .. "
그는 그 물체가 사람의 시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자빠졌다. 그
러다가 빠른 동작으로 일어나서는 차도로 뛰어 들어 지나가는 차를 무작성 세웠다.
" 끼익 ---- "
승용차가 급 브레이크를 밟았다. 아슬아슬하게 사고는 나지 않았다.
" 야 ! 새끼야. 너 미쳤어. "
승용차에서 40 대 초반의 사람이 운전석에서 내리자 마자 호통을 치며 강 만구의 멱살
을 움켜 잡았다.
" 아.. 잠깐만요. 미안합니다. "
강 만구는 고개를 꾸벅거리며 승용차 운전수에게 사과를 했다.
" 저, 혹시 전화... 아니, 카폰 있으시죠 ? "
" 아니 이 양반이 지금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는거야. "
" 저기... 사람 시체가 있어요. "
" 뭐요 ? "
운전수는 강 만구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에 눈에는 푸르른 논만 보
일뿐 사람의 시체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 고랑밑을 보시오. "
운전수는 발걸음을 옮겨 논 가까이 갔다. 그리고는 고랑을 보곤 기겁을 했다.
" 윽... 정말 사람이네. "
운전수도 뒷걸음 치면서 물러났다. 승용차가 도로 중간에 서게 되자 그 뒤로 차량이
밀리면서 곳곳에서 경적을 울려되기 시작했다. 그 때 맞은편 도로로 경찰차가 지나가
다가 그 광경을 목격하고는 한 쪽으로 차를 세웠다. 곧 이어 운전석 맞은편의 안경을
낀 경찰관 한명이 차에서 내려서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 무슨일입니까 ? "
" 아. 마침 잘 오셨오. "
승용차 운전수와 강 만구는 경찰관을 시체가 있는쪽으로 데리고 갔다. 경찰관은 그들
이 가리키는 곳을 확인하더니 미간을 찌푸리고는 곧 서로 연락을 했다.
최 장환 반장과 주 우남 형사가 현장에 도착한 것은 그로 부터 30 분 지나서였다.
이미 시체는 고랑에서 꺼내어져 도로가에 올려져 있었다. 주 형사는 강 만구와 발견
당시의 얘기를 들어보았지만 특별하게 수사에 도움이 되는 내용이 없다고 느꼈다.
최 반장은 시체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 사인이 나왔습니까? 반장님. "
" 음.. 가슴을 흉기로 찍힌 것 같아. 그리고 사건 현장은 이 곳이 아니고 아마 다른
다른 곳에서 죽인 다음 이 곳에 버린것 같아. "
주 형사도 시체를 바라보았다.
20 대의 젊은 처녀였다. 얇은 브라우스와 짧은 치마 차림이었는데 브라우스는 온통
피로 물들어 있었다. 주 형사는 시체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 반장님. 상당한 미인인데요. "
" 그래. 정말 미인이야. 하지만 죽은 미인이지. "
최 반장은 씁쓸한 표정을 짓고 시체를 덮으려 했다.
그때 주 형사가 무엇인가를 발견했다.
" 아.. 잠깐만요. "
" 왜. 뭐라도 발견 했나. "
주 형사는 시체의 얼굴을 왼쪽으로 돌리고 시체의 귀에 달린 귀걸이를 떼어 냈다.
" 귀걸이가 특이 한데요. "
주 형사는 귀걸이를 최 반장에 보여주었다.
" 아주 고가품 같은것이 모양이 특이합니다. "
그 사이 감식을 끝낸 단원이 그들에게 왔다.
" 그래 뭐 좀 알아낸 것이 있소. "
" 예. 사인은 역시 예리한 칼날 같은것에 가슴을 찔린것 입니다. 그 외 약간의 상처
는 시체가 고랑으로 떨어지면서 생긴 타박상 정도 입니다. "
" 신원을 확인 할만한 것은.. "
" 현재로서 아무것도 없습니다. 소지품도 전혀 발견되지 않고... 지문 조회를 해 보
아야 알수 있을것 같습니다. "
" 부검은 ? "
" 일단 시체를 옮긴후에 결과를 별도로 보고 하겠습니다. "
최 반장은 담배를 한 대 꺼내어 입에 물었다. 주 형사가 그 옆에서 라이터를 켰다.
" 어째 쉽지 않은 사건같아 보이는 데. "
최 반장이 담배 연기를 내 뿜으면서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 반장님... 범인은 물론 남자이겠지요 ? "
" 글쎄... 흉기가 정확하게 심장을 향한것을 보면 상당한 고수 같아. "
" ....... "
" 단 한번으로 상대를 죽일수 있다는 건..웬지 서툰 초보자 같은 생각이 안 드는군."
" 그럼 전문가요 ? "
" 음... 일단 신원을 확인 하는것이 급선무 같아. "
주 형사는 손바닥의 귀걸이를 유심히 바라보다 상위 주머니에 넣었다.
" 주 형사 ! 빨리 차에 올라타. "
어느 틈에 최 반장은 운전석 옆에 올라 타 있었다.
" 가시게요 ? "
" 그래. 뒤를 봐. 귀찮은 인물들이 나타나고 있쟎아. "
주 형사가 뒤를 보자 어떻게 알고 왔는지 몇몇 신문사의 차들이 도착되고 있었다.
주 형사도 얼른 운전석에 올라타고 시동을 걸었다. 저들과 부딪혀 봐야 좋을것이 하
나도 없다는 걸 알고 후다닥 차를 몰고 나갔다. 신문기자들은 사진을 찍으며 현장에
남아있는 경찰관들에게 질문을 던졌지만 경찰관은 신문기자들에게 별 도움을 주진 못
했다.
" 어디로 갈까요 ? 반장님. "
" 일단 본부로 가. "
" 네. "
그들의 차는 산업도로를 질풍같이 달려 나갔다.
" 따르릉 .... 따르릉 "
영옥은 거실에서 요리를 하다가 전화벨 소리를 듣고 방으로 들어가 수화기를 들었다.
" 여보세요 "
" 나야. "
남편의 목소리였다.
" 어머, 당신 아직 퇴근하지 않았어요. "
" 지금 들어갈건데 출장을 가야돼. "
" 출장이요 ? 언제요 ? "
" 오늘 6 시 비행기로 부산으로 가야하니까 준비 좀 해. "
" 오늘 간다고요 ?..... "
" 그렇게 됐어. 과장님하고 오늘 밤 9 시에 일본에서 오는 바이어들과 부산에서 만나
계약을 해야할 일이 생겼어. "
" ...... "
" 화 내지 말고... 지금 과장님하고 그리고 갈거니까 대충 준비를 해. "
" 알았어요. "
수화기를 내려 놓고 힘없이 침대에 앉았다.
가끔씩 출장은 가지만 이렇게 주말에 가는 것은 정말 싫었다.
( 에그... 삼계탕도 거의 다 익어가는데...)
투덜거리며 남편의 서재로 들어가 출장 가방을 꺼내왔다. 그리고 시계를 보았다.
오후 3 시였다.
( 집에 오면 3 시 20 분... 지금 시간에 차가 많이 밀리면 음식을 먹고갈 시간이 되
지 않겠군. )
까스렌지의 불을 끄고 남편의 옷 가지등을 챙겼다. 정확하게 남편은 3 시 20 분이 되
어 도착했고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입이 삐죽 나온 그녀의 얼굴을 매만지다가 입을 맞
추었다.
" 미안해... 갑자기 일이 바빠져서.. "
그녀는 한숨을 가볍게 내쉬었다.
" 언제 오시게 되지요.. "
" 아, 내일 오전 11 시 비행기로 올라 올거야. 이따 밤에 전화 할께. "
봉석은 그녀가 챙겨준 가방을 들고 나갔다.
" 잘 다녀 오세요. "
" 그래. 문단속 잘하고 있어. "
그녀는 거실문을 잠그고 창가로 갔다. 남편을 실은 차는 망설임없이 빠르게 아파트를
빠져 나갔고 그녀는 차가 보이지 않게 되자 침대로 가서 들어 누웠다. 천장을 바라보
는 그녀의 표정은 허탈감에 빠진채 멍한 상태로 멈추었다가 T.V 쪽으로 시선이 옮겨지
면서 리모콘을 작동했다. T.V 가 켜지면서 프로야구 중계 장면이 화면을 가득 메꾸었
다. 그러자 신경질적으로 스위치를 눌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축구하는 장면이 나왔고
곧 다른 방송국으로 옮겨보았지만 대부분의 방송사가 거의 스포츠 중심이었다. 주말
방송국의 프로그램은 거의 스포츠 중계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 그녀는 짧은 한
숨을 토해내면서 전원을 꺼 버리고는 거실로 나가 냉장고를 열었다. 오렌지 쥬스병을
꺼내어 컵에 한잔을 가득히 따르더니 쉬지도 않고 한잔을 다 마셨버렸다. 그리고 다시
한잔을 따를때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