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장미(22)
김형엽
그녀는 정말 억세게 재수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아무리 좁은 땅덩어리기는 하지만
어떻게 이런식으로 마주하게 될수 있을까하면서 한탄의 탄성을 내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 너무 걱정 하지마. 남들처럼 가정이나 파괴하고 돈이나 뜯어내는 파렴치한 인간은
아니니까. 당신 팔자라고 생각해. 그 날밤 당신이 나를 보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거야. "
" 그래서요. 그게 내 책임인가요. 그리고 이것이 지금 가정을 파탄으로 이끌고
있는 것이 아닌가요. "
" 그건 당신의 육체가 너무 아름다운 까닭이야. 당신은 당신의 육체때문에 내 마음을
바뀌게 하고 또 그것때문에 당신은 지금 살아 있는거야. 당신이 머지 않아 섹스에
눈을 뜨게되면 당신은 당신이 상상할 수 없는 굉장한 여자라는 것을 알게 될거야. "
" 그게 무슨 소리지요. "
" 시간이 지나면 알게 돼. "
" ..... "
그녀는 벽에다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 이 사내에게 오늘밤 또 다시 육체를 열어야 하다니..... )
그녀의 두 눈에서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내렸다.
사내가 뒷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그녀의 볼에 대었다. 그녀가 신경질적으로
손수건을 빼앗아 던져 버렸다. 그리고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소리내어 흐느꼈다.
사내는 창밖으로 바다를 바라 보았다. 멀리서 작은 섬들만이 가끔 보일뿐이었다.
한참을 요란한 소리를 내던 배의 엔진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 다 왔으니 준비하세요. "
사내는 배 위에 있는 청년의 목소리를 듣고 가방을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가방은 어깨위에 걸었다. 사내가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그녀는 손을 뿌리치고 자기
스스로 일어났다.
" 고분고분 말 들어. 이 곳에는 인적도 별로 없는 곳이야. 당신을 다치게 하고
싶지않은 것은 내 진심이야. "
" ..... "
배가 닿고 사내와 영옥은 배에서 내렸다. 이미 날은 조금식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 내일 정오쯤 이 곳으로 다시 배를 대어 주시오. 보수는 오늘만큼 드리겠오. "
" 알았오. "
청년은 다시 배를 돌려 돌산 방죽으로 향했다.
" 가지. "
사내가 앞장을 서고 그녀는 마지 못해 사내의 뒤를 따라 갔다.
섬에는 민가가 있기는 했지만 조용하기 그지 없었다. 사람의 자취도 눈에 띄지
않았고 집도 10 여채 정도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사내는 10 여채 정도의 집이 있는 마을을 지나 조그마한 산으로 향했다. 섬속의
산이었지만 제법 숲이 울창했다. 사내는 걸음을 빨리 했다. 영옥이 조금씩 뒤 떨어지자
사내가 다가와 그녀를 부축였다. 그녀는 사내의 부축을 받으면서 산으로 올라갔다.
그렇게 약 15 분쯤 오르던 사내가 나무가 수북이 쌓여있는 곳에서 멈추었다.
" 음. 예전과 다름없군. "
사내가 수북이 쌓여있는 나무를 한쪽으로 밀어 냈다. 영옥은 사내가 무엇을 하는건지
그저 지켜만 보고 있었다. 이윽고 쌓여있던 나무가 밀려 나면서 동굴이 나타났다.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 자. 들어가지. "
사내가 그녀에게 동굴로 들어가자고 하자 그녀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뒷걸음을 치려고
했다. 그러자 사내가 다가서며 그녀의 팔을 움켜잡고 동굴속으로 이끌었다.
동굴안은 깨끗했다. 한쪽으로는 물이 고여 작은 호수를 이루었고 그 물줄기는
동굴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사내가 한쪽 모퉁이에서 커다란 나무 상자를 끌어 냈다.
나무 상자의 뚜껑을 열자 그 안에는 여러가지 물품이 있었다. 사내는 우선 자리를
꺼내 바닥에 깔고는 그 위에 담요를 더 깔았다.
" 자. 좀 앉아서 쉬어. "
그녀는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짓고 사내의 동작을 바라만 보았다.
사내는 석유등에 불을 붙였다. 동굴안이 환해졌다. 사내는 동굴 입구로 가서 나무로
동굴 입구를 막았다. 그녀는 점점 불안해져 왔다. 한 여름에 동굴안은 입구마저
막아서인지 금방 더위를 느낄수 있었고 땀이 옷을 적시었다. 사내가 겉 옷을 모두
벗었다. 그러자 근육으로 뭉쳐진 사내의 육체가 불빛에 반사되어 더욱 검게 보였다.
그녀는 의식적으로 사내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사내는 그녀의 시선따위는 의식도 하지
않고 상자에서 다른 물건들을 꺼내었다. 남자가 입을수 있는 작업복과 랜턴을
꺼내더니 랜턴을 점검하였다. 랜턴은 작았지만 상당한 빛을 밝게 비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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