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장미(33)
김형엽
그들은 양평에서 오는 직행버스을 기다렸다가 올라 탔다. 평일에다 비가 많이 와서 그
런지 버스는 자리가 많이 비워 있었다. 그들은 거의 뒷좌석으로 가서 앉았다.
유 형사는 비가 내리는 창 밖을 쳐다 보았고 주 형사는 밤새 옆방의 신음소리 때문에
잠을 설친 까닭인지 앉자마자 눈을 감아 버렸다. 비가 많이 쏟아져 길이
미끄러웠지만 직행 버스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일차선의 도로를 잘 달려 나갔다.
도로에는 차도 그렇게 많지 않아 속도를 내기에도 안성맞춤 이었다.
( 엄청 밟아 되는군. )
유 형사는 창밖을 내다 보면서 버스가 너무 빨리 달린다고 생각 했다.
그 때 뒤에서 경적 소리가 울렸다. 버스 기사는 빽밀러를 슬쩍 쳐다 보더니
우측으로 버스를 붙혀 주었다. 그러자 검정색 그랜저가 중앙선을 넘어
버스를 추월했다.
" 앗. 저차는.... "
유 형사는 추월하는 그랜저를 보고 놀라며 주 형사를 흔들었다.
" 왜 그래.. 서울까지 갈 때까지만 잠 좀 자자구. "
" 그 놈들이야. "
주 형사도 눈을 크게 뜨며 창 밖을 내다 보았다. 그러나 이미 그랜저는
버스를 추월하고 한참을 앞으로 빠져 나가 달리고 있었다.
" 저놈들이 어딜 가는 걸까. "
유 형사는 어찌할 바를 몰라 망설이다가 그랜저를 추적하는 것을 포기 했다.
" 서울로 올라 가는 거겠지. "
주 형사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러나 유 형사는 그 그랜저를 쫓아갔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버스안에서 별 도리가 없었다.
버스가 20 여분을 달리더니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유 형사가 운전석을 통해 앞을
내다 보았더니 검문소에서 검문을 하느라 몇대의 차가 늘어서 있었다.
유 형사는 곧장 운전석으로 가더니 자기의 신분을 보여주고 문을 열어 줄
것을 요구했다. 버스의 문이 열리자 그는 조금 걸어서 검문소 안으로 들어갔다.
" 수고하십니다. "
유 형사는 자기의 신분를 밝히고 전화를 이용했다.
그는 교통부에 있는 동기에게 현재 사정을 간략하게 설명한 후 그랜저의 차량번호를
알려주고 추적을 요구했다. 그리고는 검문소를 나와 다시 직행버스로 올라갔다.
" 어딜 갔다 오는 거야. "
눈을 뜬 주 형사가 밖에서 올라오는 유 형사를 의아스런 눈으로 쳐다 보았다.
" 응. 그랜저의 추적을 의뢰하고 왔어. "
" 아까 그 차... "
" 그래. 놈들이 이 빗속에 움직이는 것이 아무래도 수상해. "
" 그러면 그 차가 가는 곳까지 따라 갈 거야. "
" 아직은... 일단 반장님을 만나서 의논한 후 행동을 시작 해야지. "
주 형사는 입을 크게 벌리며 하품을 하면서 기지개를 폈다.
" 벌써 서울이네. "
" 그래. 차가 없으니까 쉽게 빠져 나온거지. "
직행버스는 검문소를 빠져 나와 상봉터미널로 향했다.
사내는 한참을 비를 맞고 서 있었다.
( 젠장... 이렇게 되면 오늘뿐 아니라 내일도 이 곳을 빠져 나가기가 힘들겠는데..)
사내는 덤덤히 바다를 쳐다 보았다. 예정대로 되었다면 오늘 하지도를
빠져나가 서울로 가서 피노키오와의 거래를 끝낸 후 내일쯤 홍콩으로 가려 했던
사내의 계획은 무참히 깨어지고 만 것이다.
( 시간이 지나면 경찰이 냄새를 맡을텐데... )
사내는 바다를 다시 한번 쳐다보고 나서 걸음을 옮기었다. 사내가 동굴문을
열고 들어서자 유 영옥은 일어나 사내에게 다가 갔다.
" 어떻게 되었어요. 오늘 갈 수 있는 건가요. "
사내는 그녀를 한번 쳐다보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도 날씨 상태가 워낙 좋지 않아 짐작은 했지만 사내에게 그 사실을
확인 받자 심한 허탈감을 느꼈다. 그녀는 다시 바닥에 주저 앉았다.
남편의 얼굴과 어머니의 얼굴이 서로 교차하면서 지나 갔다.
" 나가서 먹을 것을 좀 구해 볼께. "
사내는 비닐 봉지를 들고 동굴밖으로 사라 졌다. 이제는 동굴 입구를 닫지도 않았다.
하기야 동굴 밖으로 빠져 나간다 해도 하지도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녀는 일어서서 밖으로 나갔다. 금방 빗줄기가 온 몸을 적시었다.
그러나 옷이 젖는 것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산으로 올라갔다. 비가와서 산길은
미끄러웠다. 그러나 그녀는 주위의 나무 뿌리와 가지를 잡으면서 금방
정상에 올라 섰다. 산 정상에는 온통 바위 뿐이었다. 주위를 살펴보았다.
사방이 다 바다였고 그 바다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거센 파도만이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허망한 마음이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밀려 올라왔다.
천둥소리가 사방을 울렸다. 갑자기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산을 내려갔다. 그러나 올라올 때보다 내려가는 것이 더 힘들었다.
그만큼 길이 비로 인해 미끄러웠다. 샌들을 벗어 손으로 들고서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그러나 곧 미끄러지면서 넘어지고 말았다.
" 아 ---- "
넘어 지면서 다리가 나무 뿌리에 걸려 서너바퀴를 굴렀다. 입고 있던 남방과 치마도
군데군데 찢겨 나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