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장미(37)
김형엽
그녀는 먼 바다만 무심코 쳐다 보았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산 위에서 사내가 바라보고 있었다.
( 음. 내일은 배가 올 지도 모르겠군. 현 상태로 파도만 줄어 든다면 가능할텐데..
배가 오지 않는 다면 이 곳 주민의 고깃배라도 끌고 가야겠지... )
사내는 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 벌써 오후 2 시로군. )
사내는 다시 동굴속으로 들어가 나뭇가지에 걸친 군복을 입었다. 아직 완전히 마르지
않아 차가웠지만 사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덤덤히 상의까지 걸쳤다. 봉지를 확인해
보니 고기가 아직 다섯마리 정도 남아 있었다.
( 고기는 이 정도면 됐고... 밥을 좀 구해 보아야 겠군. )
사내는 벗어 논 양복에서 지갑을 꺼내 만원권 몇장을 빼 내었다. 그리고는 동굴을
빠져나가 마을 쪽으로 갔다. 영옥은 비틀거리면서 다시 동굴속으로 들어왔지만 사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 어딜 또 갔지. )
그녀는 나무에 매달아 놓았던 사내의 옷이 없어진 것을 보고는 사내가 또 무엇을
구하러 간 것으로 생각했다. 그녀는 나무에 늘어 놓은 자신의 옷들을 만져 보았다.
남방이며 치마하며 조금씩 다 찢겨져 있었다.
( 말라도 못 입겠군. )
옷을 거두고 나서 자리에 가서 누웠다. 피곤함과 나른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커다랗게 하품을 하고 눈을 감았다. 그녀는 천천히 잠들어 갔다. 동굴속에는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만 간간히 들릴 뿐 조용했다.
안산 시경에는 점심을 먹고 난 세 사람이 차에 올라 탔다.
운전석에는 주 우남 형사가 앉았고 그 옆에는 유 길준 형사, 그리고 뒷 좌석에는
최장환 반장이 담배를 피워 물고 앉았다.
" 그럼 출발합니다. 반장님. "
주 형사가 시동을 걸고 차는 시경을 빠져 나갔다.
" 놈들이 이제 곧 순천 인터체인지를 빠져 나가겠군. "
" 걱정하지 마십시요. 순천 인터체인지를 빠져 나가면 저희 동료가 계속해서
미행하게 될테니까요. "
유 형사가 최 반장을 쳐다보며 멋쩍게 웃어 보였다.
" 주 형사. 몇시쯤이면 도착할 것 같은가. "
" 지금 시간이 2 시니까.. 8 시에서 늦으면 9 시정도나 되야 도착할 것 같습니다. "
" 흠.. 정말 저들이 그 자를 만날까? "
최 반장은 담배연기를 내 뿜으며 여러가지 생각을 해 보았다.
" 현재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일단 실마리를 풀기 위해서라면 이렇게 미
행을 하다가 뜻밖의 커다란 소득을 얻게 될지도 모르는 건데요. "
" 그렇다면 다행이지. 정말로 그 자와의 접촉이 이루어진다면 그 자의 정체도 알게될
것이고, 어떤 물증도 발견하게 될수도 있겠지. 일단 그 자와 개미파가 만나게 되는
이유는 십중팔구 거래를 위한 만남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왜
개미파에서 사람이 직접 움직여서 그 자를 만나려는 걸까? "
" 저도 그 점이 좀 의문스럽습니다. "
유 형사가 최 반장을 바라보았다.
" 이건 제 생각인데요. "
유 형사의 말에 최 반장과 주 형사의 시선이 모두 유 형사에게로 갔다.
" 2 년전 오 민우라가 피살되어 발견된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도 황 필두를 거의
잡았다고 생각을 했는데 마지막에 결정적인 증인이 될 수 있었던 오 민우가 뜻밖에
시체로 발견되어 결국 황은 무협의로 풀려날 수 있었지요. 지금 이 사건을 다루다 보니까
2 년전 오 민우와 비슷한 사건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따라서 제 생각이 맞는다면
지금 움직이는 것이 어쩜 황이 증거를 없애기 위한 것이 아닌가를 생각 해 보았습니다."
최 반장의 입에서 가느다란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 벌써 놈은 2 명을 살인했습니다. 경위가 무엇이었든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기
위한 수단이었겠지요. 하지만 황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이루어져 아무런 사고가 없기를 바랄 뿐이었겠지요. 하지만 이미 사건이 이
지경으로 접어들었고, 어쩜 이제는 이용 가치가 다 되었다고 판단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결정적으로 별장까지 미행당했던 것이 어쩜 황을 더
초조하게 했을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저것 종합해 본 저의 심증으로는 아마도
제거를 위한 행동을 시작한 것이 아닐까라는 추측입니다. "
"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는 일이군. "
" 네. 너무 오 민우의 사건과 흡사해서 그렇게 생각을 한 것입니다. "
" 오 민우는 어떻게 죽었는데? "
운전을 하던 주 형사가 물었다.
" 당시 오 민우는 행방불명이 되었지요. 그리고 나서 3 일후에 여수 바다에서
발견되었지요. 지금도 그들이 여수로 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그 자 역시 여수부근 어느 섬에서 기거하고 있다는 얘기가 성립될 수도 있습니다. "
" 그러나 과연 그 자가 지금 개미파가 가는 곳에 있느냐가 문제지. "
" 만약에 없다면요 ? "
" 없다면 우리가 얻고자 하는 정보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 될 수도 있지. "
" 결국 시간 낭비란 말씀이죠. "
" 그렇지만 개미파에서 황 필두의 왼손인 쌍칼이 직접 움직였다는 것은 무엇인가
커다란 일이 아니겠습니까 ? "
주 형사가 운전을 하면서 한 마디 했다.
" 그래.. 그것때문에 이렇게 따라 나선 거야. 일개 조무라기들이 움직였다면 이렇게
따라 날설 필요도 없었지. "
최 반장은 다시 담배를 한 대 꺼내 불을 붙였다.
어느새 차는 오산을 넘어 평택을 지나고 있었다. 밤새 퍼붓던 비도 전국적으로 소강
상태로 접어 들었는지 빗방울이 가늘게 고속도로를 적시고 있었다.
그들이 경기도를 빠져나갈 즈음 개미파 일행은 순천 인터체인지를 빠져나가 여수로
향하고 있었고 그 개미파의 그랜저를 먼 발치에서 엑셀 승용차가 따라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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