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장미(53)
김형엽
" 랜턴을 꺼내봐. "
영옥이 빠른 동작으로 가방속에서 작은 랜턴을 꺼내어 건네주자 사내는 불을
켜서 기관실 내부를 살폈다. 기관실이 환해지면서 영옥은 사내의 어깨에서
흐르는 피를 발견했다.
" 어머. 피가 많이 흘러내리고 있어요. 어떡하지요 ? "
" 괜챦아. 어서 이 곳을 빠져 나가야 해. "
사내는 다행히 키가 그대로 꽂혀 있는 것을 발견하고 곧 시동을 걸었다.
그러자 뒷부분에서 강렬한 소리가 들리면서 배가 기우뚱 거렸다. 배 밑부분이
바닥에 닿아있어서 쉽게 빠져 나가지 못 했다. 사내는 한 손으로
방향키를 틀며 세차게 힘을 주었다. 잠시후 배가 후진하면서 바다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사내의 이마에서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곧 배가
회전을 하면서 위치를 바꾸었고 앞으로 힘차게 달려 나갔다. 사내가 긴 한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털석 주저 앉았다. 영옥이 가방속에서 수건을 꺼내어
사내에게 다가갔다.
" 옷을 벗으세요. "
" 괜챦아. "
사내는 귀챦은 듯 영옥을 외면했다. 그러자 영옥이 사내앞으로 다가서더니
강제로 옷을 벗기기 시작하자 사내는 어쩔수 없다는 듯 그녀가 하는데로 몸을 맡기었다.
곧 사내의 상의가 벗겨졌다.
" 어머. 이 피좀 봐. "
사내의 어깨부위가 많이 찢겨져 있었다. 그리고 붉은 피를 계속 내뿜고 있었다.
" 상처가 너무 커요. "
영옥이 수건으로 사내의 상처부분을 눌렀다.
" 음... "
사내는 고통스런 표정을 지었지만 입을 열지는 않았다. 영옥은 다시
가방속에서 자신의 티를 꺼내었다. 그리고는 사내의 상처난 부위를 수건으로
감싼 후 티로 감아 단단히 묶었다. 사내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구름이 군데군데 있었지만 날은 완전히 개어 있었다.
" 몇시나 되었지. "
그녀가 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 새벽 3 시가 넘었어요. "
" 3 시... 배 밑에 좀 갖다와. 쓸만한 물건이나 옷이 있는지. "
" 알았어요. "
그녀는 랜턴을 비추고 배 밑으로 들어갔다. 사내는 상처부위를 손으로 만져보다 몸을
일으켜 전방을 주시했다.
( 돌산방죽에도 놈들이 대기하고 있겠지. 어디로 가야할까.... 아침 7 시 정도면
육지에 닿을 수 있을텐데..... )
사내는 기관실을 둘러 보았다. 벽에 박혀있는 도끼가 눈에 들어왔다. 도끼를 벽에서
뽑아 들었다. 유심히 들여다 보다가 바다로 던져 버렸다. 밑에 내려갔던 영옥이
손에 몇가지의 물건을 들고 올라와서 기관실로 들어섰다.
" 다행히 입을 만한 옷이 몇개 있어서 가져왔어요. "
사내는 그녀가 내려놓은 옷들중 밤색의 티와 얇은 배지색의 점버를 집어들었다.
" 다행이군. 이거라도 입고 다닐수 있게 되었으니. 그건 또 뭐지. "
그녀의 왼 손에는 전화기를 들고 있었다.
" 무선전화기 같아요. "
사내는 전화기를 받아 들었다.
" 잘 되었군. "
사내는 곧 신호음을 확인하더니 버튼을 눌렀다. 그녀는 그런 사내의 모습을
무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전화가 연결되었는지 사내의 표정이 차가와지는 느낌을 받았다.
" 나 피카소요. 피노키오를 부탁하오. "
사내는 허공에 시선을 둔 채 묵묵히 수화기를 들고 있었다.
( 피카소.. 피노키오.... )
그녀는 이상한 말을 하는 사내를 의아하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 후후.. 오랫만이오. 피노키오. "
" ..... "
" 이렇게 깊은 밤에 단잠을 깨어 미안하오. 당신께서 보내준 선물은 잘 받았오.
덕분에 무사히 배를 타고 하지도를 빠져 나가고 있오. "
" .... "
" 지원병을 보내야 할것 같소. 당신이 아끼는 병아리들이 고통스러워 하고 있으니
빨리 구조대를 보내 치료를 해 주어야 목숨이라도 건질수 있을것이오. "
" ...... "
" 그리고 당신에게 전해야 할 물건이 있으니 기다리고 있으시오. 이번엔 물건을
전하면서 댓가로 당신의 목을 가져가야겠오. 그럼 만나는 날까지 열심히
살아있기를 바라겠오. "
사내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 배가 육지에 닿으려면 약 3 시간정도가 걸릴텐데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는게 어때. "
" 괜챦아요. 그냥 여기 이대로 있겠어요. "
" 피곤할텐데... "
" ..... "
" 집으로 돌아가면 이제까지의 모든일을 다 잊어 버려. 약속한데로 두번 다시
당신앞에 나타나지 않겠어. "
" ..... "
" 당신 남편이 돌아오는 날 가게되어 다행이라 생각해. "
그녀의 눈에서 어느 새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 여보.... )
그녀는 속으로 남편을 부르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사내가 손을 뻗어 울고있는 그녀를
살며시 끌어 당겨 품에 안았다. 그녀는 더 크게 흐느끼며 어깨를 들썩 거렸다.
그들이 탑승한 배는 계속해서 앞으로 달려 나갔다. 하늘에 수 많은 별들이 배를 따라
움직이듯 따라갔다.
안산경찰서 강력계 사무실에는 아침부터 최 장환 반장이 피워되는 담배로 인해
사무실안이 자욱한 연기로 가득차 있었고 최 반장 맞은편에는 주 우남 형사가
책상위에다 귀걸이를 내려놓고 바라보면서 슬금슬금 최 반장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 주 형사. "
담배를 비벼 끄면서 최 반장이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 예. "
주 형사도 일어났다.
" 유 형사에게 전화해서 국내에서 활동하는 자들의 신상명세가 다 나왔는지 알아봐. "
" 예. 알겠습니다. "
주 형사는 곧 전화 수화기를 들어 다이얼을 눌렀다.
( 젠장. 여수에서 돌아온 지 벌써 1 주일이 지났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어. 해외에서
들어 온 인물은 다 조사가 끝났지만 그 자는 없었고, 항구를 통해 들어오지도 않았고
그렇다면 결국 국내에서 활동하는 자라는 얘기인데... 대체 누굴까 ? )
최 반장은 사무실을 왔다갔다 하면서 고심하더니 다시 담배를 꺼내 물었다.
( 국내에서 활동하는 자라면 그렇게 쉽게 사람을 해치지는 않을텐데...
국내에서 활동하는 자는 분명히 아닐거야. 괜히 유 형사에게 쓸데없는 일만 시키는 것 같군. )
" 반장님. 유 형사가 지금 이리로 출발하겠다고 하는데요. "
" 그렇게 하라고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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