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회집 방 안에는 세 사람이 앉아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들은 주문한 회가 나오기도 전에 산낙지와 해삼, 멍게 등으로 벌써 두 병째의 소주병을 비우고 있었다.
" 반장님. 제 잔 받으시죠. "
" 이거 너무 속도가 빠른거 아냐. "
최 반장이 유 형사가 권하는 술잔을 받았다.
" 이봐 길준이. 속도 좀 줄여. 이렇게 마시다간 회도 나오기 전에 취하겠다. "
" 걱정도 팔자군. 우남이 자네나 반장님 주량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인데 이정도
가지고 벌써 몸을 사리면 어떡해. "
" 그러는 자네는.. 마치 밑빠진 독에 물 채우는 것과 똑 같지. "
한바탕 웃음이 쏟아 졌다.
그 때 방문이 열리면서 아주머니가 곱게 썰은 광어회를 들고 들어왔다.
" 호호. 상당히 재미가 있나봐요. 웃음 소리가 밖에까지 다 들리니. "
식탁위에 회를 놓으면서 아주머니가 한마디 했다.
" 그럼요. 재미 있지요. 우리 반장님이 저를 다 초대했으니 얼마나 재미있는 일입니까? "
유 형사가 능글맞게 웃으면서 아주머니에게 한쪽눈을 감았다.
" 에그 그저 유 형사님은 항상.... "
아주머니는 멋쩍게 웃으면서 밖으로 나갔다.
" 자. 안주도 새로 왔으니 건배 한번 더 하시지요. "
유 형사가 술잔을 높히 쳐 들었다.
" 좋아. 한번 마셔보자구. "
최 반장도 역시 잔을 높히 올려 유 형사의 잔에 부딪쳤다.
" 좋습니다. 가난하고 불쌍한 중생들을 위하여.. "
주 형사가 마지막으로 잔을 들었다.
" 위하여 ------- "
그들은 그렇게 술을 마시고 또 마셨다.
" 따르르릉 "
천장을 쳐다보고 있던 영옥은 깜짝 놀랬다.
( 전화가 고장이었는데 어떻게 신호가 울리지. )
전화벨은 5 - 6 회 정도 울리다가 멈추었다.
( 그래. 그 놈이 일부러 전화선을 끊어 났다가 이제 이은거야. 내가 좀 더 침착했다면 이렇게 당하진 않았을텐데... 바보같이... )
그녀는 남편이 전화를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안타까워 했다. 움직일 수 없는 자기자신이 너무도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 때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 아. 또 왔구나. 그 자식이 나타났어. )
그녀는 두려움과 절망감을 한꺼번에 느끼며 몸서리를 쳤다. 곧 방문이 열리고 사내가
들어섰다. 낮에 입었던 복장과는 달리 검은 양복에 넥타이까지 맨 모습이었으며 검은
서류가방을 들고 있었다. 사내는 거침없이 침대곁으로 다가가 자신이 가지고 온 가방
를 열더니 주사기를 꺼내었다. 순간 그녀는 크게 놀랬다. 그러자 갑자기 알 수 없는
공포심으로 눈이 커지면서 고개를 흔들어 되고 몸을 뒤틀었다. 사내는 아랑곳 하지도
않고 주사액을 한 두방울 떨어뜨리고는 그녀의 왼쪽 팔목을 잡았다. 그녀는 무엇인가
소리를 질려야 한다고 했지만 그건 입을 틀어막은 테이프 안에서 더 이상 밖으로 세어
나오지 못 하였다. 사내가 발버둥치는 그녀의 팔에 주사기를 꽂자 그녀의 온 몸이 부
르르 떨려왔다.
( 데체 무슨 주사일까? )
그녀는 너무 겁에 질려 금새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렸다. 주사액은 천천히 그녀의 몸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사내는 주사액이 다 들어가자 주사기를 뽑았다.
" 너무 걱정하지 마라. 기분이 좋아 질거야. "
( 설마 ...... )
그녀는 환각제 같은 것으로 생각이 들자 세차게 고개를 흔들며 울기 시작했다.
( 안돼... 이럴수가... )
사내는 시계를 쳐다 보았다. 차츰 그녀의 몸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처음에는 눈동자
의 촛점이 없어지더니 온 몸에서 뜨거운 열기가 솟아나오는 것 처럼 보였다.
( 약효가 시작 되는군. )
사내는 그녀에게 다가서서 그녀의 입에 붙였던 테이프를 떼어 주었다.
" 음.... "
아픔인지 신음인지 알 수 없는 소리가 그녀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사내는 재빠른 동
작으로 그녀의 팔과 다리에 묶여졌던 나일론 끈도 풀어주었다. 그녀는 몸이 자유스러
워지자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눈동자는 완전히 풀려 있어서 앞에 서 있는 사
내가 누군인지도 구별하지 못 하였다. 그녀의 몸이 약간씩 떨기 시작하자 사내가 침
대위로 올라가 그녀를 안았다. 그러자 그녀는 거세게 사내품으로 파고 들었고 사내와
같이 침대로 엎어졌다. 사내의 손이 그녀의 목 뒷 부분을 가볍게 때렸다. 그러자 그
녀의 움직임이 멎었다. 그녀는 엎어진채로 숨만 내쉴뿐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사내가 침대위에서 일어 섰다. 사내는 알몸인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 주었다. 그리고
는 모든 증거물을 남김없이 회수하여 가방안에 집어 넣었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얼굴
을 한번 쳐다본 후 사내는 그녀의 아파트를 빠져 나갔다.
순천회집에서는 세 사람이 벌써 소주를 다섯병째 비우고 있었다.
그들은 아까처럼 큰 소리로 떠들지는 않았지만 조용히 얘기를 하고 있었다.
" 아니 그럼 반장님 생각이 틀림없다면 죽은 여자는 운반책이란 말씀이네요. "
" 그렇지. 이미 감식반에서 주 형사가 알아봤듯이 그 가방에서 소량의 히로뽕 흔적이
발견되었다면 틀림없이 단순한 살인 사건으로 볼 수 없지. "
유 길준 형사는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하면서도 무엇인가 큰 거물이 하나 걸려들지
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이었다.
" 조금전에 전문가 일지도 모른다고 하셨지요? "
" 그래. 초보자의 실력은 절대 아니야. "
" 그럼 혹시 홍콩이나 일본에서 활약하던 자가 국내로 침입한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
" 허어 이 사람 길준이 그걸 반장님께 물어보면 어떡해. 그런 조사를 자네가 해서 반
장님께 알려 주어야지. "
옆에 있던 주 형사가 소주를 한잔 들이키며 유 형사에게 권했다.
유 형사가 주 형사의 잔을 받았다.
" 자네 혹시 그 여자에 대해서 특이한 정보 같은것은 찾지 못했나. "
" 그래 아직 아무런 정보도 없어. 다만 고아였다는 것 밖에는 몰라. "
" 고아.... "
유 형사는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최 반장이 앞에 놓인 술잔을 쭉 들이켰다.
" 일단 확실한 물증같은 것도 없는 상태이고 죽은 유 혜란의 행적도 모르는 상태니까
유 형사 자네는 일단 출입국에 의뢰해서 최근에 동남아나 일본지역에서 입국한 자들의
리스트를 작성해 보고, 주 형사 자네는 유 혜란이가 생활했던 충남 당진의 한아름 보
육원에 가서 유 혜란의 과거를 한번 추적해 보아. "
" 인원은 보충이 없나요? "
주 형사가 혼자 가기가 싫은 듯 최 반장의 눈치를 살피었다.
" 내일 일단 상부에 보고해서 두 사람 정도 지원을 받을 계획이니까 걱정하지 말고 유
형사쪽은 직접 그 쪽에서 골라 보게. "
" 알겠습니다. "
그들은 다시 술잔을 돌리기 시작했다. 한 여름의 밤은 풀벌레 소리와 개구리의 울음
소리에 섞여 깊어만 갔고 하늘의 별이 하나둘 먹구름속으로 사라지면서 달마저 구름속
으로 들어가 버렸다. 한 두방울 빗방울이 떨어뜨리더니 순식간에 장대비로 바뀌었다.
그들은 자정이 다 되어 순천회집을 나왔다.
" 이런 우라질... 반장님 비가 엄청나게 쏟아 지는데요. "
주 형사가 회집을 나서려다 발걸음을 멈추었다.
" 그래.... 장마가 시작된다더니 이제 시작인가 보군. "
" 반장님. 저쪽 여관으로 가시지요? "
유 형사가 회집 뒤쪽의 여관을 가리켰다.
" 에그.. 또 외박을 해야 하나... 자네들이야 총각이니 무슨 걱정이 있어. "
최 반장이 푸념을 하며 발걸음을 여관쪽으로 옮겼다. 유 형사와 주 형사도 비를 맞으
면서 최 반장의 뒤를 따라 갔다. 비방울은 점점 굵어지고 급기야 천둥과 번개까지 동
반하면서 세상을 덮어 갔다. 그들은 온돌방에서 옷들을 다 벗어 던지고 깊은 잠 속으
로 빠져 들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