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장미(8)

                                                     김형엽

    영옥은 한기를 느끼고 잠이 깨었다.
    눈을 살며시 뜨자 창밖이 훤했다. 몸을 일으키던 그녀는 깜짝 놀랐다.
    ( 아니. 이게 어떻게 된거야. 알몸으로 잠을 잤단 말인가. )
    그녀는 자기 자신의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것에 대해 무척이나 놀라면서 두손으로 머리를 만졌다.
    ( 으.. 왜 이렇게 머리가 아픈거지. )
    " 여보 -- "
    그녀는 봉석을 불러 보았다. 그러나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두 손으 로 침대를 붙잡고 방바닥을 발로 디디며 일어 섰다.
    ( 이 사람이 어디에 갔지? )
    그녀는 간신히 걸음을 방문으로 옮겨 문을 열었다. 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거실뿐 아니라 봉석의 서재에도 봉석은 보이지 않았다.
    ( 어딜 갔을까? )
    그녀는 다시 방으로 갔다. 방바닥에 자신이 입었던 옷들이 이리 저리 흩어져 있었다.
    ( 이상하다. 누가 옷을 이렇게 벗겼지. )
    그녀는 옷을 줍다가 브래지어의 끈이 떨어져 나간 것을 발견하였다. 무엇인가 그녀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지만 그녀는 머리가 깨어질 것만 같아 생각을 하지 못했다.
    ( 어떻게 된거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어.... )
    그녀가 시계를 쳐다보니 오전 9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 따르르릉 "
    그녀는 서너번 전화벨 소리를 듣다가 전화를 집어 들었다.
    " 당신이야. "
    " 아.. 여보. "
    " 어떻게 된거야. 어제는 전화도 받지 않고.. "
    " 전화요..... "
    " 왜 무슨일이 있었어. 어제밤 내가 이 곳에서 몇차례 전화를 계속 했는데 .. "
    " 어.. 어디 있어요. "
    " 무슨 소리야. 아직 부산이야. 11 시 비행기로 올라 간다고 했쟎아. "
    " ...... "
    " 무슨 일 있는거야. "
    그녀는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를 몰랐다. 봉석이 어제 부산에 내려간 것을 그녀는 생 각이 나지 않았다.
    " 내 얘기 듣고 있는거야. "
    " 예.. "
    " 무슨일이야. "
    " 아.. 아무일도 없어요. "
    " 정말이야. 그런데 왜 전화를 안 받았어? "
    " 글쎄요... 어제 일찍 잠이 들어서 못 받은것 같아요... "
    " 일찍 잠이 들었다고... "
    " 예... "
    " 정말 별일은 없는 거지. "
    " 예. 아무일도 없었어요. "
    " 알았어. 과장님이 기다리니까 이따 집에서 얘기해. "
    " 아.. 알았어요. "
    그녀는 수화기를 조심스럽게 내려 놓고 침대에 걸터 앉았다.
    ( 정말 어떻게 된거지. 왜 어제 일이 생각나지 않는 거야.... )
    그녀는 눈물을 글썽 거렸다. 금방 두 줄기 눈물이 볼을 타고 그녀의 넙적다리위로 떨 어 졌다. 아무리 생각을 하려고 해도 생각은 나지 않고 무엇인가 생각만 하려하면 머 리가 뻐개질 듯 아파 왔다.
    ( 모르겠어. 뭐가 뭔지 도데체 모르겠어... )
    그녀는 몸을 일으켰다. 흩어진 옷들을 들고 거실로 나가 욕탕으로 들어 갔다.
    세탁기에 옷을 집어 넣고 샤워기의 물을 틀었다. 시원한 물이 그녀의 몸 위로 쏟아졌 다. 순간 그녀의 머리속에 또 무엇인가가 스쳐 지나갔고 또 다시 머리가 아파왔다. 그녀는 두 손으로 머리를 누르며 생각해 보려고 애를 써 보았지만 끝내 알 수가 없었 다. 수건을 꺼내어 몸을 대충 닦고 방으로 들어가 옷을 꺼내 입었다. 침대를 정리하 고 거실 부엌으로 갔다. 까스렌지 위에 냄비 뚜껑을 열었더니 닭이 한마리 들어 있었다.
    ( 닭! 내가 닭을 샀었나. )
    이번에는 봉석의 서재로 갔다. 그러나 그녀가 찾는 봉석의 출장용 가방은 보이지 않았다.
    ( 정말 출장을 갔나? )
    그녀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 있을수 없는 일이야. 바로 어제일이 기억나지 않다니... 그럼 그저께는 .... )
    그녀는 이틀전의 일을 생각해 보았다.
    ( 맞아. 그이을 기다리고 있었어. 그런데 그이가 언제 들어왔지? )
    그녀는 다시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 으 -- "
    그녀는 침대위로 쓰러 졌다. 전신에 피로가 한꺼번에 쏟아 졌다. 팔목과 발목은 물 론이고 하체까지 통증을 느꼈다.
    ( 도데체 모르겠어. 데체 무슨일이 있었던 거야. )
    그녀는 다시 몸을 일으키고는 창가로 가서 커텐을 걷었다. 조금씩 비가 내리고 있었 다. 다시 커텐을 치고 거울앞에 섰다. 빠른동작으로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어 던져 다. 순식간에 알몸이 거울에 나타났다. 거울속의 자신의 모습과 실제의 모습을 번갈 아 살펴보다가 발목에 약간의 자국을 발견했다.
    ( 이게 무슨 자국이지.. )
    두 발목 모두가 똑같은 자국으로 약간 빨갛게 멍이 들은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발목 으로 손을 가져갔다. 손으로 누르자 통증이 왔다.
    ( 아프다. 왜 이 곳이 아플걸까? )
    그러다가 팔목에도 발목처럼 자국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 손목에도... 똑 같은 자국이야 )
    순간 그녀가 놀랬다. 팔목에 붉으스름한 자국이 발견 되었다.
    ( 이건 뭐야? )
    그녀는 팔목을 가까이 관찰했다.
    ( 이게 무슨 자국일까? )
    머리가 또 다시 깨어질 듯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일그러진 표정을 짓고 거울속 의 자신을 바라 보았다. 거울속에서 그녀가 고개를 흔들었다. 거울속의 비친 자신의 모습에서도 모른다는 표정밖에 보이지 않았다. 다시 옷을 입었다. 갑자기 허기를 느꼈다.
    ( 그래. 차근차근 생각하기로 하고 일단 뭐 좀 먹어야 겠다. )
    그녀는 머리를 만지고 약간의 화장을 하였다. 거실로 나가 식탁에 가 보니 쥬스와 잔 이 그대로 있었는데 잔에는 쥬스가 가득 들어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거들떠 보지 않 고 밥통을 열어서 밥을 꺼내었다.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내더니 순식간에 밥 한공기를 비웠다. 마치 몇끼 굶은 사람처럼 또 한공기를 푸더니 김치와 같이 입으로 쑤셔 넣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공기의 밥을 다 비우고 나서 쥬스가 들어있는 잔을 비우고 물을 따라 마셨다.
    ( 후... 이제야 허기가 좀 가신것 같군. 밥도 그대로인걸 보면 이제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았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