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장미(9)
김형엽
그녀는 씁쓸한 표정으로 식탁을 치웠다. 삼계탕이 들어있는 냄비를 보고 고개를 흔들었다.
( 날이 덥다고 그이가 주말에 삼계탕이나 먹자고 했었어. 그래서 사온것이 틀림없는
데 못 먹고 간거야. )
비닐 봉지에 냄비속의 내용물을 쏟아 버렸다.
( 일단 기억이 날때까지 그이에게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말아야 겠어. 도데체 무슨일
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어. )
그녀는 시장 바구니와 우산을 들고 아파트를 나섰다. 그녀가 제일 먼저 찾은 곳은 닭집이었다.
"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
그녀가 닭집 주인에게 인사를 했다.
" 어머. 새댁이군. 왜 또 닭사러 왔어. "
" 네.. "
" 어제는 삼계탕 한다고 사가더니 오늘은 또 어떤 요리를 할거야. "
그녀는 닭집 주인의 말을 듣고서 틀림없이 어제 닭을 사간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 네. 오늘도 삼계탕 할거야요. "
" 그래. 신랑이 삼계탕을 상당히 좋아하는 모양이지. "
" 네. "
닭집 주인여자는 여러마리의 닭중 제법 큰 것을 골랐다.
" 매일 이렇게 남편 몸보심 시켜주고 새댁이 견딜수 있겠어. "
닭집 주인과 그녀가 마주보며 살며시 웃었다. 그녀는 닭집을 나와 지하 수퍼에 둘러
필요한 물건을 몇가지 더 샀다. 그녀가 아파트 단지로 들어설 때 검정색 승용차 한대
가 막 빠져 나가고 있었다. 그녀는 무심코 그 차를 보다가 운전석에 앉은 사내와 시
선이 마주쳤다. 운전석에는 검은 양복의 신사가 썬글라스를 쓰고 그녀를 바라보고 이
내 시선을 앞으로 고정하고 차를 몰고 아파트 단지를 빠져 나갔다.
( 누구지? 어디서 본 것같은 얼굴인데.... )
그녀는 승용차가 보이지 않을때까지 쳐다 보면서 생각을 해 보았지만 그 사내가 누구
라는것을 끝내 알지 못했다.
그녀는 다시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 그이가 오기전에 부지런히 삼계탕을 끓여 놓아야지. )
그녀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주 형사는 12 시 정오가 다 되어서야 충청남도 당진의 한아름 보육원을 찾았다.
아침 8 시에 간단한 해장국을 먹고 2 년 후배인 강 민구 형사와 유 혜란의 과거 행적
을 알아보기 출발한지 꼭 4 시간만에 도착한 것이다.
그들은 원장실에서 40 이 조금 넘은 듯한 민 소영 원장과 마주 앉았다. 원장은 유 혜
란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한참을 울어되다가 입을 열었다. .
" 유 혜란이 이 곳에 온 것이 5 살때니까 1976 년이지요. "
" 어떻게 온 것이며 또 누가 같이 온 사람이 있었습니까? "
" 아니요. 같이 온 사람은 없었어요. "
원장이 잠시 허공에 시선을 둔채 생각에 잠겼다.
" 그날도 오늘처럼 이렇게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었어요. 그 때 나는 서울생활에
무력감을 느끼고 이 곳으로 오게 되었어요. 제 나이 27 세였었지요. 우연히 혜란이와
나는 이 곳을 같이 들어 왔어요. "
주 형사는 민 소영 원장의 과거가 그리 순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짐작하였다.
강 형사는 주 형사의 옆에 앉아서 열심히 원장의 얘기를 기록하였다.
"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이곳으로 들어 오는데 혜란이가 비를 맞은채 서 있었지요.
집과 부모에 대해서 물었지만 계속 고개만 흔들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일단 이 곳으로 데려오게 되었지요. 혜란이는 일주일이 지나서야 입을 열기 시작했어
요. 그것도 나하고만 얘기를 나누었지 다른 아이들이나 그 당시의 원장님 하고도 얘
기를 하지 않았어요. 나는 유독 혜란이에게 신경을 많이 썼었요. 그 아이가 자기 자
신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곤 이름과 나이 뿐이었어요. 그럭 저럭 보육원 생활이 익숙
해 지면서 혜란이도 커 갔지요. 얼굴이 유난히 예뼈서 많은 사람들로 부터 귀여움과
사랑을 받게 되었어요. 그런데 혜란이가 15 세 되던해였어요. 이 곳 청소원으로 일
하고 있던 박씨가 사고를 저질렀지요. 그 날은 보육원에서 아이들과 봄 소풍을 가는
날 이었는데 하필 혜란이가 아펐어요. 하는 수 없이 혜란이만 남겨 두고 가게 되었지요. "
원장은 허공을 쳐다보며 한 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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