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장미(85)
김형엽
여섯시간만에 가까스로 육지에 닿은 영옥은 사내가 상처부위에서 피를
너무 많이 쏟아내어 정신의 혼미해진 상태라 어쩔줄을 모르고 있었다.
다행히 주변에는 인적이 없어 다른사람의 눈에는 뜨이지 않았지만
사내의 상태가 거의 탈진 상태였기에 영옥은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 이봐요. 육지에 닿았어요. 어떻게 하실 건가요. "
영옥은 사내를 부축하여 앉게 하였다. 사내의 상의는 완전히 피로 물들어 있었다.
" 수건.. 수건 좀 이리 줘. "
사내는 가까스로 몸을 일으키며 갑판을 등뒤로 받치고 앉았다.
" 여기 있어요. "
영옥에게 수건을 건네 받은 사내는 몸에 묻어있는 피를 닦았다.
" 일단 당신부터 이 곳을 떠나. "
영옥은 사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나는 이 곳에서 상처를 치료하고 갈테니 먼저 떠나. 그리고 저 가방좀 당분간 갖고
있어. 내가 치료가 끝난 후 찾으러 갈테니. "
" 아니. 이런 몸으로 어떻게 혼자 움직이겠다는 거지요. "
" 걱정마. 어서 가. 서두르지 않으면 당신 남편보다 집에 늦게 도착 할지도 몰라. "
순간 영옥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 그래. 오늘이 그이가 일본에서 돌아오는 날이야. )
" 그리고 비행기는 이용하지마. 그 가방에 물건을 잘 간수해. 내 상의에
돈이 있으니 가급적 택시를 대절하여 서울로 가. "
영옥은 사내를 바라보다 결심한 듯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 조심해. 그리고 그 가방안의 물건을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도록 잘 관리해. "
" 알았어요. "
" 어서 가. "
영옥은 한번 더 사내를 바라보고 나서 배에서 뛰어 내렸다.
그렇게해서 하는 수 없이 그 가방을 직접 서울까지 가지고 오게 된 것이었다.
그녀는 가방안의 물건중 하나를 꺼내었다. 잠시 바라보다 다시 가방에 넣고 잠갔다.
( 그래. 내일 이 물건만 전해주면 모든것이 끝나는 거야. )
그녀는 고개를 두어번 끄덕이다가 일어나서 가방을 장농 깊숙히 밀어넣었다.
그녀는 침대에 엎드렸다. 전화대 옆에 자신과 남편의 신혼여행 사진 액자가 보였다.
제주 천지연 폭포앞에서 서로 가볍게 안고 찍은 사진이였다.
( 불쌍한 봉석씨.... 하지만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그 사실을 만약
당신이 알았을 경우 우리의 사이가 어떻게 될건지 물 보듯 뻔한데... )
어느새 그녀의 눈에서 흘러나온 눈물이 침대 시트를 적시고 있었다.
그 시각 주 우남 형사는 안산 경찰서에 도착하여 사무실로 들어갔다. 송 숙희 경사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어머. 어떻게 되신거가요. 오늘 하루 종일 걸리신다고 하시더니. "
" 아. 그렇게 되었어. "
주 형사는 최 장환 반장의 자리를 보았지만 텅 비워 있었다.
" 반장님은. "
" 예. 조금전에 전화를 받고 나갔습니다. 오후에 들어오시게 될 것 같다고 하시면서
급히 나가셨는데요. "
" 그래. "
주 형사는 곧 단말기 앞으로 가서 앉았다. 그 뒤를 송 경사가 뒤따라 왔다.
" 왜 다시 오셨어요. "
송 경사는 궁금한지 주 형사에게 바싹 다가갔다.
" 별일 아냐. 서류를 빼 놓고 간 것이 있어서 그래. 바쁘지 않으면
커피 한 잔 뽑아주겠어. "
송 경사는 틀림없이 딴청을 피는 주 형사의 심증을 읽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갔다.
" 알았어요. 뽑아 드리지요. "
" 미안해. "
주 형사는 곧 신원조회 화면을 열고는 조 봉석이라는 이름을 입력시켰다.
곧 여러명의 동명인이 화면에 나타났다.
( 음. 상아아파트 104 동 307 호.... 아. 바로 이 사람이군. )
주 형사는 자기가 찾고자 하는 인물을 찾아 곧 프린터했다.
" 그 사람이 누군인데 조회를 하지요. "
어느 새 들어왔는지 송 경사가 주 형사의 뒤에서 커피를 들고 있었다.
" 어.. 벌써 뽑았어. 자 이리 주지. "
주 형사는 송 경사로 부터 커피를 건네 받았다.
" 고마워. "
" 그 사람은 누구야요. "
" 아. 아냐. 그냥 조사해 볼께 있어서.... "
주 형사가 말을 얼버부리자 송 경사의 눈동자가 약간 치켜 올라갔다.
" 알았어요. 그냥 모른척 하고 말지요. "
송 경사의 입이 약간 튀어나오더니 돌아서서 제 자리로 돌아갔다. 주 형사는 자신의
뒤통수를 오른손을 굵으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 커피 맛있게 먹을께. "
주 형사가 커피를 치켜올리며 웃자 송 경사의 얼굴에도 미소가 잔잔히 그려졌다.
" 어서 일이나 보세요. "
주 형사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프린트 된 조 봉석의 자료를 흩어보았다.
( 평범한 사람이야. 전과 사실도 없고.... 가만 고향이 여수로 되어있네....
좋아. 일단 8 월 3 일 유 영옥이 탑승한 비행편의 남자 승객을 조사해 보자. )
주 형사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 서랍안에서 커다란 봉투를 꺼내었다.
( 유 영옥이 탑승한 시간이 3 시 30 분이니까... 그래 KE359 편이군. )
KE359 편에 탑승한 승객은 남자가 43 명에 여자가 19 명이었다.
주 형사는 탑승한 남자 승객의 명단을 흩어 보았지만 조 봉석이라는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 없는데.. 그렇다면 유 영옥의 좌석번호가 17C 니까 17B 나 17D 에 앉은
사람이 있을거야. )
그러나 17B 는 빈좌석이었고 17D 로는 여자의 이름으로 좌석 배정이 되어있었다.
( 음. 같이 간 사내가 없다는 얘기인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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