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장미(86)

                                                     김형엽

    주 형사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고 나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 할 수 없군. 43 명의 남자 모두의 신원을 다 확인해 볼 수 밖에. )
   주 형사는 탑승객 명단을 들고 단말기 앞으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는 상단에 있는 명단부터 한 사람씩 신원조회를 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갔다. 책상위에 있던 재떨이에 담배 꽁초가 수북히 쌓여졌다. 그러다가 갑자기 주 형사가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 앗. 이럴수가... "
   송 경사가 깜짝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무슨일이세요. "
   주 형사는 고개를 돌려 송 경사를 바라보았다.
   " 아. 아냐. 담배불에 손가락이 닿았어. "
   송 경사는 작게 한숨을 몰아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 조심하세요. "
   " 응. "
   주 형사는 36 번째의 명단을 조회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던 것이었다.
   ( 어떻게 이런일이 있을 수 있을까? 권 상철, 57 년 4 월 14 일생. 89 년 4 월 14일 교통사고로 사망. 그런데 죽은 사람이 어떻게 비행기 탑승자 명단에 들어있을까?)
   주 형사는 권 상철의 기록을 프린트하여 한참을 들여다 보았다.
   ( 음. 죽은지 4 년이 넘은 사람이 비행기를 탑승했다. 도데체 알 수 없는 일이군. 권 상철 역시 전과 사실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다. 최종 주소지는 서울 동대문구 면목동... )
   주 형사는 자리로 돌아와 앉아서 조 봉석가 권 상철의 자료를 책상위에 가지런히 놓았다.
   ( 전혀 다른 두 사람이다. 권 상철이 조 봉석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권 상철의 이름으로 여수행 비행기를 탄 사내는 누구지. 권 상철이 여기 이 자료대로 교통사고로 89 년 숨졌다면, 지금 권 상철의 이름으로 활동하는 자는 분명히 우리가 찾고 있는 자가 틀림 없을거다. )
   담배를 꺼내 입에 물어 불을 붙히고는 권 상철의 비행기 좌석를 확인하였다.
   ( 18D 면 유 영옥의 바로 뒤이면서 우측으로 한칸차이. 왜 같이 앉아 가지 않았을까. 한 비행기를 타면서 무엇때문에 따로 앉아 갔을까? 좌석도 많이 비워있었는데. 설마 그 때까지 서로 모르는 사이였을까? 그렇다면 어떻게 어떻게 배를 같이 타게 되었을까? )
   주 형사는 연신 담배 연기를 내뿜으면서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 주 형사님. 전화 받으세요. 유 형사님 입니다. "
   송 경사가 주 형사를 바라보며 생긋이 웃으며 전화수화기를 들어 흔들었다.
   " 알았어. "
   주 형사는 자기 책상앞에 놓여있는 수화기를 들었다.
   " 여보세요. "
   " 자리에 있었군. 그래 그 자료가 도움이 되었나. "
   유 길준 형사의 냉랭한 목소리가 주 형사의 귓전에 울려 퍼졌다.
   " 자네였군. 그래. 아직도 검토중이야. "
   " 그래. 뭐 쓸만한 정보라도 나왔나. "
   " 아니. 아직 별로 나오지 않았어. "
   주 형사는 사실대로 얘기 하려다가 잠시 미루기로 마음 먹었다.
   " 반장님은 . "
   " 상부에서 누가 오기로 했나봐. 오후에 들어 오신다고 하더군. "
   " ...... "
   " 아. 그리고 말이야 자네 이것 좀 알아봐 주게. "
   " 또 뭔가. "
   " 이름을 적어봐. "
   " 불러 보게. "
   " 조 봉석과 권 상철. 그리고 유... "
   " 유 .... "
   " 아닐세. 그 두 사람만 좀 알아봐 주게. "
   " 뭘. "
   " 최근에 혹시 그 두 사람의 이름으로 해외로 출국한 것이나 국내로 입국한 자료가 있는지 좀 알아보아 주게. "
   " 뭘 좀 건지것 같군. "
   " 아냐. 아직 쓸만한 정보는 되지 않아. 지금 당장 좀 알아 보았으면 하는데. "
   " 알았어. 하지만 혼자 욕심내면 안되네. "
   " 알았어. 그런 걱정일랑 하지 말게. "
   " 그래. 곧 알아보아 주겠네. "
   주 형사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담배를 한 모금 빨고는 재떨이에 비벼 껐다.
   ( 조 봉석의 고향은 여수다. 그렇다면 여수에 아직 부모님이 계실수도 있다. 그러면 유 영옥은 며느리로서 여수의 부모님들을 찾아 나설수도 있다. 그러나 남편인 조 봉석을 혼자 집에 남겨놓고 내려갈만한 급한일이 있었을까? 그렇다면 남편인 조 봉석은 유 영옥이 여수에 내려간 있는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
   주 형사는 의자 깊숙히 몸을 들이 밀고 다리를 쭉 뻗어 크게 기지개를 폈다.
   " 식사하셔야지요. "
   송 경사가 자리에서 웃으면서 주 형사를 바라보았다.
   " 어.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어. "
   주 형사는 벽에 걸린 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시계는 정오가 조금 넘었다.
   " 오랫만에 열심히 일하는 주 형사님을 보니까 참 멋있는데요. "
   " 그래. "
   주 형사와 송 경사는 마주보며 웃었다.
   " 먼저 다녀와. 나는 유 형사의 전화 좀 기다려야 하니까. "
   " 그러지요. 제가 먼저 다녀올께요. "
   송 경사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주 형사는 송 경사의 뒤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 역시 여자로군. 복장만 저렇게 입었지 마음은 역시 여자를 벗어날 수가 없어. )
   다리를 쭉 뻗어 책상위로 올리고는 의자에 깊숙히 등을 기대고는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