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장미(87)
김형엽
( 유 영옥... 정말 아름다운 여인이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해가 가지 않는
여자야. 그 여자를 당장 잡아와서 모든 사실을 자백받고 그 자가 있는 곳을
자백하라고 하면 어쩜 일이 쉽게 풀리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후 사정을 모르고
섣불리 일을 벌렸다가 괜히 결혼한 지 얼마 되지않은 가정이 파괴되는 수도 있다.
일단은 유 영옥이라는 여자가 어떻게 그 자와 같이 배를 타게 되었는지 원인을 알아야 한다. )
주 형사는 조금전 아파트에서 본 유 영옥의 모습을 떠 올렸다. 수퍼안에서 서로의
눈이 마주쳤을때 본 모습과 우산을 받쳐 쓴 뒤 모습등을 그려보았다.
( 아름답지만 무엇인가 불행을 안고 사는 여자같았어. 그 여자에게 어떤식으로
접근을 하는것이 좋을까? 그리고 그 여자는 정말 우리가 찾는 자의 행방을 알고 있을까?
또 그 여자도 역시 죽은 유 혜란이 처럼 그 자의 운반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게 활동하다가 또 다시 그 자의 손에 죽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
주 형사는 다리를 내리고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 그녀를 죽게 내버려 둘수는 없다. 감시해야 한다. 24 시간 철저히 놓치지 않고
감시해야 한다. )
주 형사는 갑자기 전화수화기를 들더니 버튼을 눌렸다. 그리고 다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잠시 기다리니까 전화벨이 울렸다.
" 여보세요. "
주 형사는 급하게 수화기를 들었다.
" 예. 저 강 민구 입니다. "
" 수고하는군. 그래 황 필두의 상태는 어떤가? "
" 아침에 양평의 별장으로 들어갔습니다. 현재 평온한 상태입니다. "
" 그래. 철수하게. 더 이상 황 필두의 뒤를 밟아보아야 나올게 없을 것 같아. "
" 그렇지만... "
" 내가 반장님에게 보고할테니 지금 곧 이리로 돌아오게. "
" 알겠습니다. "
수화기를 내려놓은 주 형사가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이려고 할때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 예. 수사반의 주 형사 입니다. "
" 나야. "
" 아. 길준이. "
" 그래. 자네가 부탁한 두 사람중 권 상철이란 사람은 전혀 기록이 없고
조 봉석이라는 사람은 일본에 갔다가 온 적이 있군. "
" 일본. 언제 갔다 왔지? "
" 응. 8 월 3 일 오전에 출국했다가 8 월 6 일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어. "
" 8 월 3 일에 일본으로 출국했다고. "
" 그래. 출국신고서에는 회사 업무로 인한 출장으로 표기되어 있어. 조 봉석이
다니는 회사명은 가야무역으로 되어 있네. 뭔가 잡혔나. "
" 글쎄. 아직은 잘 모르겠어. "
" 내가 그리고 가겠네. "
" 알겠네. "
주 형사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 8 월 3 일... 같은 날 두 부부는 똑 같이 비행기를 탔다. 남자는 일본으로,
여자는 여수로. 그것 참 묘한일이군. 조 봉석은 회사일로 출장을 갔다고 치고 유 영옥은
남편인 조 봉석이 없는 틈을 타 여수로 내려갔다. 어쩌면 남편이 없는 집에 혼자 있는
틈을 이용해 시부모를 뵈러 간 것이니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문제는
어떻게 해서 그 자와 동행을 하게 되었는지 그게 문제야.... 마치 유 영옥이가 남편이
없는 틈을 이용하여 그 자와 같이 행동을 했다면... 그리고 여수의 시부모를 만났으니
유 영옥으로서는 아무런 뒤 탈이 없는 완전한 알리바이를 만들어 놓은 셈이고... )
주 형사는 다시 의자에 깊숙히 몸을 들이 밀고는 눈을 감았다. 머리가 복잡해지는
느낌을 받으면서 피곤함이 밀려왔다. 손가락 사이에 담배는 홀로 타들어가면서 연기만
허공으로 날리고 있었다.
황 필두의 별장 2 층 회의실에는 커다란 원탁이 회의실 중앙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 원탁을 둘러싸고 20 여개의 의자가 놓여있었는데 자리가 꽉 차 있었다.
원탁 중심의 모서리에는 황 필두가 앉아 있었고, 좌측으로는 쌍칼이,
우측으로는 장발을 축으로 서열순으로 20 여명이 자리를 꽉 채웠다. 황 필두의
얼굴에는 무척이나 심기가 불편한 모습이었고, 남은 20 여명의 표정도 모두가 굳게 굳어 있었다.
" 요즈음 와서 왜 이렇게 되는일이 없나. 대체 이유가 뭐야. "
황 필두의 노도와 같은 호령이 회의실 안을 울렸다.
" 피카소를 잡으러 갔던 쌍칼도 실패하고, 또 석양파의 황소에게 중간 보스급이
망치와 불곰이 맥없이 당하고, 형사들은 왜 자꾸 나를 미행하고 있는지 대체
우리같은 거대한 조직이 갑자기 왜 이렇게 된건지 설명좀 해 봐. "
황 필두가 원탁을 주먹으로 내리치면서 호통쳤다.
" 이래 가지고서야 어디 마음놓고 다닐수가 있으며, 또한 누굴믿고 일을
시킬수가 있겠어. "
" 죄송합니다. 회장님. "
좌측의 쌍칼이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면서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 흠... "
황 필두는 꺼지듯 한숨을 몰아 내 쉬었다.
" 앉아. "
" 예. "
쌍칼은 다시 의자에 앉았다.
" 우선 석양파의 일을 맡았던 동대문의 김 도식. "
" 예. "
커다란 대답 소리에 모두들의 시선이 좌측 중간쯤에 자리를 잡고 있던
김 도식에게 쏠렸다. 김 도식은 의자에서 일어서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 상세하게 얘기해 봐. "
" 예. 보고 드리겠습니다. "
김 도식은 자세를 약간 좌측으로 틀고 황 필두를 바라보고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 일단 망치와 불곰으로 하여금 석양파가 운영하는 업소를 돌게 하였습니다.
일단 석양파의 두목인 황소 문 호석이 직접 나서게 하기 위한 수단 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가장 규모가 큰 스타나이트클럽을 쳤습니다. 그 곳에는 황소가
직접 나타나지 않아서 조무라기들만 손을 보아 주었습니다. "
황 필두는 앞에 놓인 상자속에서 시가를 한개 꺼내 입에 물었다. 우측의 장발이
라이타를 켜 불을 붙였다.
" 두번째로 간 곳은 제기동의 '초야' 라는 룸살롱 이었습니다. 망치와 불곰은
그 곳을 손님으로 위장해서 술을 마시다가 시비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마찬가지로 조무라기들을 상대로 망치가 밖에서 한바탕 벌렸고 불곰은 계집을
하나 잡아서 룸 안에서 즐기고 있었습니다. 당시 스타나이트클럽에서 황소에게
연락을 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곧 '초야' 에서도 황소에게 연락을 했던 관계로
몇분 지나자 황소가 '초야' 에 나타났습니다. "
황 필두는 시가를 신경질적으로 이빨로 깨물면서 연기를 내 뿜었다.
" 황소인 문 호석의 실력이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불곰과 망치면 충분히 잠재울수
있다고 생각한 저의 불찰이었습니다. 불곰과 망치는 황소의 손끝하나 건드려
보지 못 하고 당했습니다. "
" 어느 정도야. "
" 망치는 머리가 깨져 약 3 주 지나면 정상적으로 활동이 가능하지만 불곰은 잘못되면
거의 남자 구실을 할 수 없을 것으로 진단 결과가 나왔습니다. "
" 남자 구실을 못하다니 ? "
" 예. 룸살롱의 계집하나가 깨진 맥주병으로 불곰의 거기를 그대로 찍어 버렸답니다.
그래서 수술은 해 본다고 했지만 워낙 상처가 심해 불가능 할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
" 바보같은 놈들. "
" 그래서 곧 아이들을 모아 제가 직접 나섰는데 ... "
" 그랬는데. "
" 모두 어디론가 잠적하고 없었습니다. 석양파에서 운영하는 모든 영업장이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나이트와 룸살롱은 물론 호프집마저 굳게 문을 닫고
간판마다 내부수리중 이라는 간판만 붙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한 곳은
문을 부수고 들어가 보았지만 정말로 개미 새끼 한마리도 없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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