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장미(94)
김형엽
황은 두 다리를 쭉 편채 욕조 난간에 머리를 바치고 누웠다. 옥향은 황의
몸위로 자신의 몸을 포개고 엎드린채 고개만 황의 어깨위로 내밀고는 눈을 감았다.
" 오늘은 유난히 네가 더 이뻐 보이는 구나. "
" 피. 그럼 다른때는 안 이뻤나. "
" 아니. 늘 이뻤지만 오늘은 더 이쁘다는 거지. "
황의 손이 옥향의 등을 쓰다듬었다.
" 아빠. 이제 식사를 해요. 너무 힘을 뺐더니 배가 고파요. "
" 흠. 그러자구나. "
옥향이 먼저 일어나 커다란 수건을 꺼내 황에게 건네주고 나서 자신도 다른 수건을
내 몸을 감았다. 황은 대충 몸을 닦고 하체만 수건으로 가린채 거실로 나왔다.
" 비가 점점 굵어 지는구나. "
창 밖으로 비가 제법 쏟아지고 있었다.
" 이번 비가 그치면 여름도 다 끝나겠지요. "
옥향도 황의 옆으로 다가서서 밖을 내다보았다.
" 그래. 여름도 이제 다 지나갔어. 곧 가을이 다가 올 테니까. "
황은 옥향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 어두워 졌어요. 아빠. 얼른 식사를 하고 좀 쉬고나서 멋진 수영을 해요. "
" 그래. "
둘은 마주보며 웃다가 입을 살며시 맞추었다.
그들이 그렇게 창밖을 내다보는 장면을 북한강 건너에서 지켜보는 사내가 있었다.
바로 피카소였다. 피카소는 한 시간전부터 적당한 위치에 자리를 잡고
망원경을 통해 3 층을 지켜보고 있었다.
( 방에서 그렇게 땀을 빼고 그것도 모자라 욕탕에서까지. 40 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대단하군. )
피카소는 한 시간이 넘게 기다린 끝에 밖을 내다보는 황과 여자를 정면으로 보게 되자
조금은 흥분이 되었지만 이내 마음을 가라 앉히고 주위를 샅샅히 흩어보았다.
( 준비를 해야겠군. 놈들이 식사를 할때가 경계가 그런대로 느슨해 질것이니
그 사이에 침투해야 한다. 피노키오 네가 양수리 입구에서 부터 부하들을
배치시켰다고 안심하겠지. 그러나 이런 방법도 있다. )
피카소는 등에 짊어졌던 가방을 내려 짐을 풀었다. 갖가지 장비가 쏟아져 나왔다.
신속하게 입고 있던 츄리닝을 벗어 잠수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칼을 허리에 하나
차고 하나는 손에 들었다.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물칼퀴를 들고 산을 내려왔다.
( 물살이 그나마 약해진것이 다행이야. )
피카소는 북한강을 건너려는 것이었다. 무려 폭이 100 미터는 족히 넘었고 또 그동안
비가 많이 와서 물살도 그렇게 약한것이 아니었는데 어쩌면 무모할 수도 있는
짓을 지금 감행하려고 했다.
물가에 다가서자 신발을 벗어 곧 물칼퀴를 신었다. 그리고 천천히 북한강으로
들어갔다. 주위는 벌써 어둠이 깔려 그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았다.
북한강은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아무일도 없다는 듯 강은 말이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북한강 도로변에 검은 물체가 하나 보였다. 검은 물체는 천천히 북한강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이윽고 강변에 도착한 검은 물체는 물가에 엎드린 채 고개만 살짝
내밀고 움직이지 않았다.
( 음. 생각보다는 많이 떠내려 오지 않았군. )
바로 피카소였다. 피카소는 자기가 출발한 지점과 직선으로 약 30 미터 정도 밑으로
흘러 내려 도착하였다. 물 밖으로 나와 물갈퀴를 벗어 손에 쥐고 목표 지점으로
천천히 이동을 하였다. 위로는 차도였지만 차도와 물사이의 간격이 5 미터는
되었기에 일부러 물가를 내려다 보기에는 피카소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피카소는 천천히 도로로 올라갔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황의 별장이 보였다. 그러나
별장 입구에서 부터 별장앞까지 건장한 사내들이 여러명이 별장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 음. 놈들이 많이 깔려 있어. 도로를 지나 산으로 올라가야 할텐데... )
그 때 양수리쪽에서 시외버스가 한 대 진입하고 있었다. 헤드라이트 불빛이 비쳐오자
도로에 서 있던 사내들이 불빛이 비치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시외버스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순간 버스가 지나감과 동시에 검은 물체 하나가
도로를 건너갔다. 황의 부하들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피카소는 빠르게 산으로 올랐다. 계속 내린 비와 지금 쏟아지고 있는 비 때문에 길도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산은 매우 미끄러웠다. 피카소는 주위의 나무가지와
돌부리를 잡으면서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산을 올랐다. 얼마쯤 오르자 피카소는 다시
내려가는 길목을 찾았다.
( 음.. 별장이 보이는 구나. )
피카소는 별장 뒤쪽으로 내려와 얼마간의 거리를 두고 몸을 웅크린 채 별장 주위를
살펴 보았다. 별장 뒤쪽으로도 황의 부하들은 지키고 서 있었다.
( 음. 별장 뒤쪽에도 배치을 했군. 그렇다고 못 들어갈 내가 아니다. )
피카소는 조심스럽게 별장으로 접근하였다. 황의 부하들은 시선이 모두 위로
향해 있었고 하수구쪽으로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피카소의 몸이 납렵하게 하수구
속으로 들어갔다. 물이 조금씩 흘러 내리는 하수구관을 손으로 더듬으면서 천천히 올라갔다.
어느 정도 올라가자 피카소는 작은 랜턴을 꺼내 불을 밝혔다.
( 음. 이정도면 밖에서는 전혀 눈치를 챌수가 없지. )
피카소는 랜턴으로 주위를 살피다가 닫혔져 있는 맨홀 뚜껑을 발견했다.
( 바로 저 곳이군. )
피카소는 빠른 동작으로 맨홀 밑으로 갔다.
( 수영장에 물이 차 있지 않아야 할 텐데..... )
피카소는 조금씩 맨홀뚜껑을 밀어 보았다. 다행히도 위에서 부터는 물이 흘러 나오지
않았다.
( 다행히 비워 있군. )
피카소는 뚜껑을 힘차게 밀어 올리고 자신의 몸을 맨홀 밖으로 뻬 내었다.
별장의 지하는 전혀 불이 켜져 있지 않아 어두웠다. 피카소는 맨홀뚜껑을
다시 막아 놓고 수영장위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먼저번에 보아 두었던 자리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 음. 지금 시간이 8 시다. 과연 황 필두가 언제 이 곳에 나타나는냐가
문제다. 이제 기다려 보는거다. )
피카소는 몸을 깊숙히 감추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어둠은 상아아파트에도 짙게 깔렸다.
주 우남 형사와 강 민구 형사는 승용차 안에서 비가 내리고 있는 밖을 아무런 표정도
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오후 1 시가 넘어 도착한 후 계속해서 그렇게
차에 앉아 있었다.
" 주 형사님. 배 고프지 않으세요. "
강 형사가 힘든 표정을 지으며 다리를 쭉 뻗으며 기지개를 켰다.
" 이렇게 차 안에만 있는 것도 고역이군. 자네도 힘들지. "
" 아직은 견딜만 해요. "
둘은 마주보며 멋쩍게 웃었다.
" 그런데 어떻게 된 거지요. 벌써 몇 시간을 이렇게 있었는데 얼굴 한번 비추지 않으니. "
" 그래. 나도 그 점이 이상해. 오전에 나 혼자 왔을때 장을 보았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창 밖으로도 얼굴 한번 비추지 않을까. "
" 불도 켜지 않은 것으로 봐서는 혹시 외출한 것이 아닐까요 ? "
" 글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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