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장미(96)
김형엽
" 어머. 이렇게나 많이. "
백만원짜리 수표 5 장이 들어있었다.
" 어때. 기분이 괜챦지. "
영옥은 수표를 펼치면서 입가에 환한 미소를 그렸다.
" 내일이 될지 모레가 될지 몰라도 일본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또 다시 지금 받은
만큼 보너스를 준다고 했어. "
" 정말이요. "
" 그럼. "
봉석이 영옥을 번쩍 안아서 한 바퀴 돌자 영옥이 떨어지지 않으려고 봉석의
몸을 두팔로 꼬옥 감았다. 봉석의 손이 영옥의 티를 헤집고 들어왔다.
" 잠깐만요. 찌게가 끓어요. "
영옥은 파고 드는 봉석을 떠 밀면서 봉석을 저지했다.
" 그래. 배가 고프면 힘도 쓰지 못하니까 일단 저녁을 먹자구. "
봉석은 다시 식탁의자에 앉고 영옥은 주방앞으로 갔다. 곧 식탁위에 여러가지 반찬과
밥이 채워지고 둘은 맛있게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 이번에도 김 과장님과 같이 가세요. "
" 아냐. 나 혼자가게 될거야. "
" 혼자요 ? "
" 응. 이미 지난번에 모든 설명이 다 끝난 상태이고, 이번에는 별 어려운
일이 없어서 나 혼자가도 충분해. "
" 그래도 우리나라도 아닌 일본에 가는 건데... "
" 걱정하지 않아도 돼. 지난번에 한번 가 보았으니까 별 문제 없어. "
영옥은 물컵에다 물을 채우고 봉석에게 주었다. 봉석은 물 한컵을 가볍게 들이켰다.
" 식사 더 하실거야요. "
" 아냐. 됐어. 나 서재에 가서 정리 좀 할테니까 천천히 먹어. "
봉석은 거실을 지나 서재로 들어갔다. 영옥은 남은 밥을 다 먹고나서 식탁을
정리 하였다. 그러다가 봉투속의 수표를 꺼내보더니 안 방으로 들어갔다.
장농을 열고 밑의 서랍을 열었다. 거기에서 조그마한 상자를 꺼내더니 뚜껑을 열었다.
상자안에는 여러개의 통장과 약간의 현금이 있었다. 봉투를 상자에 넣고 뚜껑을 닫았다.
( 잘됐어. 이 돈으로 주택자금 융자 받은 것을 갚자. )
영옥은 밝은 표정을 지으며 상자를 서랍속에 잘 넣고 서랍을 밀었다. 서랍을
밀던 영옥의 눈에 장농 깊숙히 쳐 박혀있는 가방이 보였다.
( 맞아. 내일 그 자를 만나기로 했지. )
영옥은 자신의 몸이 경직되어 가고 있는 것을 느꼈다. 잠시 그렇게 서 있다가 천천히
장농문을 닫았다. 창가로 가서 밖을 내다보았다. 비방울은 더욱 굵어져 땅을 완전히
적시고 있었다.
( 지긋지긋하게 내리는 군. )
영옥은 아파트 단지를 휘 둘러보더니 창문을 완전히 닫아 버리고 커텐으로
창문을 완전히 막아버렸다. 침대를 정리하고 밖으로 나가 주방을 말끔히 청소하고 나서
기지개를 크게 켰다. 영옥은 조심스럽게 봉석이 있는 서재의 문을 밀었다.
서류를 가방에 챙기던 봉석은 아내인 영옥이 들어오자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 조그만 기다려. 다 끝났어. "
" 알았어요. 방에서 기다리지요. "
영옥은 방 문을 살며시 닫고 욕실로 향하면서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았다. 시간은
9 시를 조금 넘어가고 있었다.
단지는 밤이 깊어가고 비방울마저 굵은 탓인지 오가는 사람의 모습도 뜸했다.
수 많은 차들이 주차하고 있었는데 그 중 한대의 차량안에서 미세하게 불빛이 반짝거렸다.
" 젠장. 이제 창문까지 완전히 닫혔군. "
주 형사는 담배연기를 내 뿜으면서 푸념인지 허탈인지 모를 한숨을 내쉬었다.
" 주 형사님. "
운전석 옆에 앉아 있던 강 형사도 담배를 피워물고 있었다.
" 왜. "
" 밤을 새면서 감시할 필요가 있을까요. 남편도 집에 와 있는데 설마하니
이런 밤중에 그 자와 만날까요. "
" 그래. 나도 아까부터 생각하고 있었어. 차라리 내일 아침 남편인 조 봉석이
출근을 하고 나면 직접 유 영옥이를 만나볼까 생각중이야. "
" 만나서 어떡하려고... "
" 사실 여부를 확인 해 봐야지. 무작정 이런식으로 언제까지 기다린다는 것도 무리인
것 같아. "
그 때 아파트 단지내 입구에 두 사람이 우산을 쓰고 들어왔다.
" 누가 오는데요. "
강 형사가 먼저 발견하고 담배를 끄자 주 형사도 빠른 동작으로 담배를 껐다.
단지로 들어서는 두 사람은 주위를 두리번 거리면서 조금씩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차 안에서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주 형사는 어쩐지 낯이 익은 걸음걸이라고 느꼈다.
" 반장님과 유 형사로군. "
주 형사는 최 반장과 유 형사인것을 확인하자 곧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들어 보였다.
최 반장과 유 형사는 곧 손짓을 발견하고 빠른 걸음으로 차로 다가가 뒷 자리로 올라탔다.
" 고생이 많군. 이렇게 비가 쏟아지고 있는데. "
최 반장은 옷을 털며 자리를 바로 잡아 앉았다.
" 저녁은 먹었어. "
유 형사도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주 형사를 바라보았다.
" 대충 빵으로 해결했어. "
" 유 영옥의 거주하는 아파트가 어디지. "
" 예. 저 곳 입니다. "
주 형사는 손가락으로 위치를 가르쳐 주었다.
" 더운 날씨에도 창문까지 닫혀 있군. "
" 예. 조금전 닫혔습니다. 한 시간전쯤 남편인 조 봉석이 회사에서 퇴근하고 현재는
둘만 있습니다. "
최 반장은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 옆에 앉아 있던 유 형사가 라이터의 불을
켜서 담배불을 붙였다.
" 모두들 가까이 와서 내 말을 듣게. "
최 반장의 말에 앞 좌석에 앉아 있던 주 형사와 강 형사가 고개를 돌려 뒤로 향했다.
최 반장은 담배를 깊숙히 빨더니 연기를 한 모금 내 뿜고는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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