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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공지영씨 / 손홍주 <씨네21> 기자 lightson@cine21.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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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공지영씨의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는 깃털을 하나하나 골라 이불 속을 채우듯 사소한 일상을 그러모아 삶에 대한 푹신한 통찰을 담아낸 에세이 모음이다. 지난해 <한겨레> ‘esc’에 연재했던 글을 묶었다. 머리말에서 작가는 글을 쓴 동기를 이렇게 밝힌다. “나이가 들면서 내가 깨달은 것 중의 하나는 젊은 시절 내가 그토록 집착했던 그 ‘거대’가 실은 언제나 사소하고 작은 것들로 우리에게 체험된다는 사실이었다. (…)말하자면 고기압은 맑은 햇살과 쨍한 바람으로, 저기압은 눈이나 안개, 구름으로 온다는 것이다. (…) 그리하여 나는 거대한 것들, 이를테면 역사, 이를테면 지구, 환경, 정치 등의 파생물인 풀잎, 감나무, 라디오 프로그램, 반찬, 세금 같은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던 거였다.”
50원짜리 고액 지폐를 들고 설레는 마음으로 은행에 가던 꼬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보여주겠다는 청년의 말에 속아 유리구슬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눈을 감고 입을 다물고 오십까지 세라는 말에 그렇게 했더니, 지폐는 이미 사라져버린 뒤다. 어린 나이에도 자신의 어리석음에 속이 더 쓰렸던 꼬마는 어른이 되어서도 예쁜 패랭이꽃 무더기를 보고 의심이 인다. 가짜 꽃인가 하여 남보랏빛 꽃잎을 따 뭉갰더니, 손에 남보랏빛 진액이 묻어난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법은 간단했다. 시든 꽃잎이나 어그러진 이파리를 달고 있다면, 진짜인 것이다. 작가는 순간 깨닫는다. “살아 있는 것들은 대개 쓸모없는 것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 “나도 살아 있기에 보기에도 싫고 쓸모없고 심지어 버리면 더 좋을 군더더기를 가졌다는 사실”을.
어떤 남자와 9년을 부부처럼 살았다던 친구가 실연당하고 입원까지 하자, 작가는 다시 상처에 대해 생각해본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상처를 받고, 생명이 가득 찰수록 상처는 깊고 선명하다. 새싹과 낙엽에 손톱자국을 내본다면 누가 더 상처를 받을까. (…) 생명이라는 것은 언제나 더 나은 것을 위해 몸을 바꾸어야 하는 본질을 가졌기에 자신을 굳혀버리지 않고 불완전하게 놓아둔다. 이 틈으로 상처는 파고든다. (…) 상처를 버리기 위해 집착도 버리고 나면 상처가 줄어드는 만큼 그 자리에 들어서는 자유를 맛보기 시작하게 된다. 그것은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내리는 신의 특별한 축복이 아닐까도 싶다.”
작가에게는 세상살이 힘들 때 찾아가면 너른 마음으로 지리산 자락에 품어 주는 ‘낙장불입’ 시인과 ‘버들치’ 시인도 있다. 대학 4학년, 차비만 남기고 돌아오는 여행길에 버스 휴게소 오뎅(어묵) 파는 코너에 서서 “이담에 돈 많이 벌면 오뎅 많이 사 먹자”고 손을 꼭 쥐며 다짐하던 친구에 대한 애틋한 추억 덕분에, 9월의 싱숭생숭한 마음도 “내일 꼭 길거리로 가서 오뎅을 사 먹어야지” 하는 다짐에 금세 행복해진다.
밖에서 사람들한테 시달리고 집에 들어오면 반갑다고 모여드는 세 아이가 굶주린 ‘모기’ 같아 보일 때도 있지만, 예상치 못한 순간 엄마를 깨우치는 ‘예쁜 모기’이기에, 그는 기꺼이 헌혈한다. 촛불시위에 참가하러 광화문에 가겠다는 딸과 승강이를 벌이던 작가는 “네가 사막에 가고 산에 올라가고 세계의 오지에 간다면 물대포 쏘고 네 머리 휘어잡고 때리는 사람이 없지만……. 광화문엔 있잖아”라고 딸에게 말하는 순간, 젊은 시절 시위에 나가려는 자신을 말리던 부모님을 떠올린다. 부모님을 비겁하다 비난했던 그는 그제야 ‘부모 마음은 부모가 되어봐야 안다’는 “유명하고 오래되고 진부한” 이야기에 가슴이 사무친다. 결국 시위에 나간 딸은 뒤에 있던 남학생의 촛불에 머리를 그슬려 오징어 타는 냄새를 실컷 맡았으나 예의를 갖춘 사과를 받아 괘념치 않았다는 얘기를 들려준다. 이어지는 작가의 말이 가슴에 콕 박힌다. “조그만 잘못에도 곧바로 ‘제 탓이오’ 하는 이들이 촛불을 들고 모여들어 ‘당신 탓’이라고 하면 적어도 한 번쯤은 뒤돌아봐야 하는 것 아닌가.”
‘아주 가벼운 깃털’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시작한 글이었지만 가벼움에 대한 ‘지조’를 지키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고 작가는 털어놓는다. 책의 마지막, 자신이 묻고 답한 ‘자가 인터뷰’에서 그는 “하고 싶은 무거운 말을 꾹 참고 가벼운 이야기를 하느라 자신과 싸우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고 했다. ‘거대’의 어깨 위에 올라앉아 세상을 내려다보며 비난하고 호통치거나 몽상에 빠져드는 건, 어쩌면 얼마나 쉬운가. 사소한 것 하나하나와 씨름해야 한 발짝이라도 뗄 수 있는 보통 사람들 일상의 지난함과 고단함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작가가 털어놓는 시시콜콜한 일상과 그 단상이 독자들에게 소중한 건 그가 ‘아주 가벼운 깃털’을 용케 하늘로 날려버리지 않고 일상에 잘 붙잡아 둔 덕분일 것이다.
글 김일주 기자 pearl@hani.co.kr 사진 손홍주 <씨네21> 기자 lightson@cine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