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출·퇴근길의 추억
[발표]출퇴근길의 추억 우수작 강정민(ho089)·정순옥(jso6110) (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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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ohmyedit) | 2014.07.03 17:14 | 조회 : 546 | ||||||||||||||||||
지난 5월 26일부터 6월 26일까지 진행한 '출퇴근길의 추억' 기사공모 우수작으로 강정민(ho089), 정순옥(jso6110) 시민기자의 글이 선정됐습니다. 강정민, 정순옥 기자님께는 상금 10만 원(사이버머니로 지급)을 드립니다. 공모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14.06.29 09:58
최종 업데이트 14.06.29 09:58
가까이 오는 자전거가 보인다. 자전거가 내 옆을 지나가는데 누가 한쪽 가슴을 만진다. 어, 이게 뭐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지? 멍했다. 곧이어 이 상황이 뭔지 알게 되었다. 소리라도 질러야 하나 하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돌아보니 놈은 후드 티를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자전거를 탄 채 이미 멀어져 갔다. 욕이라도 해야 속이 시원할 텐데 아무리 악을 써도 자전거까지 들릴 거리가 아니다. 지금 여기서 소릴 지르면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될 게 뻔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뒤돌아 전철역으로 향해 걸었다. 가슴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퇴근길이었다. 그때 나는 영등포의 어느 보습학원의 강사였다. 학원에서 강사일 마치고 전철역을 향해 걸어가다가 생긴 일이다. 전철역까지 가야 하는데 버스 노선이 없어 항상 걸어 다녔다. 여태 이런 일은 없었는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걷고 있자니 분노가 속에서 휘몰아쳤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마음으로 집에 가긴 글렀다. 부모님께 내 언짢은 마음을 숨길 수도 없고 그렇다고 속상한 일을 부모님께 풀어내는 건 더더욱 싫었다. 집에 가기 전에 누구라도 만나 기분을 풀어야 할 거 같았다. 생각난 사람은 남자 친구뿐. 늦은 시간이었지만 남자 친구 집으로 전화했다. 벌써 20년 전이다. 손전화도 삐삐도 없던 시절이다. 남자 친구 부모님이 전화를 받으면 뭐라고 말해야 하나 걱정을 하면서 신호대기음을 듣는데 다행히 남자 친구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 볼 수 있어? 집 앞으로 갈게." 내 손을 잡고 동네를 돌아준 남자친구, 참 고마웠다 남자 친구는 머뭇거림 없이 나온다고 답했다. 혜화동 전철역을 나오니 편한 차림의 남자친구가 보였다. 호기심 가득 찬 남자 친구의 얼굴은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느냐 묻고 있다. 집에서 나온 차림은 편안해 보였다. 슬리퍼 신고 '츄리닝' 바지에 사파리 잠바를 입고 있다. "뭐 먹으러 갈래?" 그런데 유난히 사파리 잠바 주머니가 불쑥 나와 있다. 안에 뭐가 들었나 물었다. "나오려는 데 돈이 없잖아. 그래서 500원짜리만 모아 둔 돼지저금통에서 돈 좀 꺼내 왔지."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남자 친구의 이런 차림은 처음이다. 사귀기 전에는 깍듯한 선배님이었는데 이렇게 슬리퍼와 츄리닝 차림에 500원짜리 동전을 가져온 것도 남자 친구의 빈틈을 보여 주는 거 같아 좋았다. 맛있을 거 사 줄려고 돼지 저금통을 가르고 동전 수를 세었을 남자 친구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남자 친구는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지도 않았지만 나는 술술 이야기했다. 그 날 남자 친구는 내 마음이 풀어질 때까지 내 손을 잡고 동네를 몇 바퀴 돌아주었다. 그리고 안아주었다. 마음 속에 휘몰아치던 분노들이 스르르 녹았다. 그러고 나서 집에 웃으며 들어갈 수 있었다. 그때 돼지저금통 배 갈라 동전 들고 나온 남자 친구는 결혼 20년차 내 남편이 돼 있다. 돌이켜 보니 그 날의 기억은 따뜻했던 우리 남편 모습 '베스트 5위' 안에 들어간다. 그 날 날 위로 해 줄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면 밤에 잠들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 뒤로도 학원 강사 일을 그만둘 때까지 늦은 밤 퇴근으로 곤혹스러운 일이 많았다. 치한이 아니더라도 취객이 있었다. 꼭 술에 취한 아저씨들은 버스 안에서 그 많은 사람 중에 아가씨에게 가까이 와서 비틀거렸다. 곁에 와서 뚫어져라 쳐다보고 소리를 꽥 질렀다. 취객에게 봉변을 당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면 애써 앉은 의자에서 일어나고 내릴 정류장이 아닌 곳에서 내리며 자리를 피했다. 이런 일을 몇 번을 겪으면서 같은 방향 선생님을 기다려 같이 퇴근했다. 우리 집 정류장에서 내리면 가끔은 아버지가 나와서 기다리셨다. 그 날도 아버지가 나를 기다렸다. 아버지와 팔짱을 끼고 골목을 걸어 들어갔다. 그런데 술에 취한 젊은 남자가 골목에 떡 버티고 있었다. 이 취객이 우리가 가까워지자 말을 걸었다. "그런데 아저~씨, 옆에 아가씨 아저씨 딸이에요?" "내 딸인데......" "에~이 거짓말. 딸 아닌 거 같은데요. 아저씨 돈 많으신가 봐요. 젊은 여자 끼고 다니시게. 와~ 아저씨는 돈 많아서 좋겠다." 아버지 얼굴이 순간 구겨졌다. 똥물을 뒤집어 쓴 듯한 얼굴이다. 나와 아버지의 나이 차가 딱 마흔 살이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그런 오해를 안 받겠거니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술 취한 사람은 눈에는 뵈는 게 없는가 보다. 집을 코앞에 두고 이런 이상한 녀석을 만나다니. 재수가 없으려니........ 내가 느끼는 것보다 아버지가 느끼는 모욕감이 더 큰 거 같았다. 아버지와 나는 경보선수처럼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향해 걸었다. 혀가 꼬부라져서 비실비실 웃던 녀석은 시끄러운 소리에 밖을 내다보던 이웃 아줌마에게 떠들어 댔다. "아줌마 아줌마, 저기 가는 아저씨 있죠? 그 아저씨가 말이야. 젊은 여자 끼고 가면서 자기 딸이래. 거짓말을 그렇게 해." 큰 소리로 떠드니 내 귀에까지 들린다. 화가 난 아버지가 먼저 집으로 들어가셨다. 뒤따라 들어가는 내가 한쪽 손으로 대문을 닫으려는데 그냥 집에 들어가면 잠이 안 올 거 같았다. 억울했다. 얼굴만 빼꼼히 내밀고 나오는 대로 냅다 소릴 질렀다. "야이 새끼야! 정신 똑바로 차려! 나 우리 아버지 딸 맞거든." 그리고 재빨리 대문을 쾅 닫았다. 녀석이 쫓아올까 무서워서. "휴, 오늘도 살았구나"... 힘겨운 한 밤의 퇴근 그렇게라도 소릴 지르니 속이 다 시원했다. 아버지와 나를 무슨 원조교제라도 하는 것처럼 생각한 녀석이 괘씸했다. 화가 났다. 미친 녀석 아닌가? 그날 밤, 생각해 보니 그 젊은 남자도 안 된 녀석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그 나이 들도록 연애 한 번을 못 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연애를 못 한 이유가 돈 많은 남자가 젊은 여자를 다 채 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 같았다. 그러니 얼마나 못난 인간이란 말인가. 그 생각을 바꾸기 전까지 아마도 연애를 할 가능성은 없을 것이다. 학원 강사 일을 할 때는 퇴근이 그렇게 늦었다. 치한을 만나면 어쩌나 취객을 만나면 어쩌나 걱정하느라 가슴이 잔뜩 쪼그라진 채로 길을 걸었다. 간신히 집 대문 안에 들어서면 쪼그라진 가슴에서 휴 하고 한숨이 절로 나왔다. "휴~ 오늘도 살았구나!" 한밤의 퇴근은 그렇게 매일 힘겨웠다. 요즘은 어떨까? 잘은 모르겠지만 지금도 여전할 거 같다. 이제는 좀 달라졌으면 좋겠다. 한 밤 중에 일터를 나서는 젊은 여성들의 퇴근길도 편안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한다. 정순옥(jso6110) 밤마다 남편 찾아 나서는 여자, 접니다 [공모-출퇴근길의 추억] 남편과 함께 하는 퇴근길 14.06.22 21:12
최종 업데이트 14.06.23 11:03정순옥(jso6110) "어디에요?" "응, 지금 역에서 내려서 걸어가고 있어."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남편의 목소리에는 피곤함이 담겨 있었다. "쭉 걸어오고 있어요." "응." 통화를 끝내기가 무섭게, 나는 마음이 급해서 손에 잡히는 대로 옷을 걸쳐 입고 밖으로 나왔다. 잰 걸음으로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고, 횡단보도를 건너 단지 옆으로 이어진 길로 접어드니 밑으로부터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남편을 마중하러 가고 있다
곧게 뻗은 길 밑으로는 길게 이어진 하천을 따라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는데 밤 12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군데군데 걷거나 뛰는 사람들이 눈이 띄었다. 그 여유로운 모습에 다리에 힘이 빠지는 것 같아 눈길을 돌려 앞만 보고 걸었다. 길 위에는 나 이외는 아무도 없었다. 가로등을 지나칠 때마다 하루살이들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갈 뿐. 지금 나는 남편을 마중하러 가고 있다. 올해 초, 갑자기 회사를 퇴직한 남편은 한동안 전전긍긍하더니 봄이 시작될 무렵부터 지인의 회사에 나가고 있다. 물론 정년퇴직이라는 게 직장인이라면 누구에게나 한 번은 겪는, 당연한 일로 어느 정도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보다 빨리, 뜻하지 않는 이유로 그만두게 되다 보니 무척 당황했다. 그렇다고 모아둔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직 아이 둘이 대학생이고 보니 당장의 생활마저 걱정되는 상황이었다. 남편은 퇴직하기 전에 다른 곳을 알아보고 수입이 연결될 수 있도록 하려고 했는데, 현실이라는 게 자신의 뜻과는 무관하게 다가온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그나마 알아본 일자리는 내년 여름이나 되어야 한다니 거의 일 년을 쉬어야 한다는 사실이 아마도 남편은 막막했을 것이다. 손에 쥔 것은 없어도 자존심 하나로 버티고 살아온 남편, 당장 먹을 것이 없어도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고, 하다못해 한 이불을 덮고 사는 나에게도 꼿꼿하게 자존심을 세우곤 한다. 그뿐인가? 아이들에게는 자상하다 못해 속이 빈 것처럼 무엇이든 해주는, 그러다 보니 정작 자신을 위해 쓸 여유가 없어 언젠가부터는 남편 모습이 초라해지는 것 같아 안타까워진다. 사계절 내내 한 켤레의 구두로, 그것도 낡아서 비라도 오는 날이면 양말이 젖어 수선 집에서 창을 갈아 신고, 남방도 목 부분이 달아 해져서 세탁소에서 바꿔 달아 입고, 소매 부분은 수선조차 할 수 없어 접어서 입고, 청바지는 해진 부분을 짜깁기 해서 입고…. "내 성격도 참, 한 번 마음에 드는 옷만 죽어라고 입으니…." 아이들 앞에서는 차마 사실대로 말할 수 없어 여유가 없는 게 아니라 당신의 성격 탓으로 돌리고. 그러니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그 속이 얼마나 답답했을지. 그러다가 찾아낸 방법이 내년 여름까지 살아가기 위해 지인을 도와주기로 했을 것이다. "월급은 예전과 좀 달라. 그러니까 내년 여름까지는 긴장하고 살아야 할 것 같아. 될 수 있으면 맞출 수 있도록 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그래도 다행이라며 나를 안심시키는 남편을 보며 자꾸 미안해졌다. 이럴 때 내가 도움이 되어주지 못한다는 사실에. 택시비 5000원 때문에...
그렇게 불안하지만 다시 시작된 남편의 직장 생활에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지인의 회사가 서울 강남에 있는데 퇴근 후, 술 한 잔 하다보면 집으로 오기 위해서는 전철이나 광역버스 막차를 타야 한다. 그렇게 해서 한 시간 반 정도를 버스나 전철을 타고 안산에 도착하면 시내버스가 끊겨 택시를 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택시비가 할증요금이 붙어 집까지 거의 오천 원 정도 나오는데 예전 같았으면 좀 비싸다 싶어도 그냥 타고 왔겠지만 지금은 걸어오는 것이다. 역에서 집까지 거의 40여 분 동안을 걸어서. "택시비가 할증이 붙다 보니 너무 많이 나와. 그리고 운동도 할 겸 걷기로 했어. 좋던데?" 어느 날, 땀으로 흠뻑 젖은 채 집으로 들어온 남편의 머쓱한 표정을 지금도 나는 기억한다. 남편의 늘어진 어깨도. 그리고 그날 밤, 자리에 눕자마자 코를 골며 자는 남편의 얼굴을 보며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자신이 하던 일과는 거리가 먼 일을 해야 하고, 그런 현실이 답답해 술 한 잔을 마시며 마음을 비워내고, 다시 또 혼자 터덜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남편의 지친 발걸음 때문에. 다음 날부터 나는 남편이 역에 내릴 시간쯤이면 통화를 하고 마중을 간다. 혼자 걸어오는 길을 함께 걸으며 지친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그런데 정작 남편은 내가 너무 많이 걷지 않도록 혼자서 한참을 걸은 후에야 나오라는 말을 한다. 비록 긴 시간은 아니지만, 설렘이나 기다림을 품지는 않았지만 남편과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서로의 마음 속을 들여다 보게 되고 다독여주게 된다. 그러면서 내일에 대한 희망도 갖게 된다. 한참을 걷다 보니 길 저쪽 앞에 낯익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반가운 마음에 내가 손을 흔들었지만 저쪽에서는 아무런 답이 없다. 그래도 나는 서운해 하지 않는다. 거리가 너무 멀어 보이지는 않지만 아마도 남편은 손을 흔드는 나를 보고 웃었을 것이다. 어린 아이처럼 환한 웃음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