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회 철도문학상 공모전 안내


 ○ 공모기간 : 2024. 4. 22.(월) ~ 6. 2.(일)


 ○ 공모분야 : 산문 및 운문


 ○ 작품주제 : 철도를 주제로 한 작품


 ○ 공모자격 : 국민 누구나


 ○ 응모방법 : 이메일 접수(krcf@hanmail.net)

  - 이메일 제목 : 참가대상-참가분야-이름

  - 작품 파일 명 : 참가대상-참가분야-이름(작품명)

  - 첨부파일 제목 : 참가대상-참가분야-이름(참가신청서)

   ex) 한국중학교-산문-김대한(철도) / 한국중학교-산문-김대한(참가신청서)

        일반-운문-홍길동(기차) / 일반-운문-홍길동(참가신청서)


 ○ 작품서식 : 한글파일(제목24p, 본문13p, 바탕체, 가운데정렬)


 ○ 유의사항

  - 국내외 타 공모전, 문학지 등에 출품되지 않은 본인의 순수한 창작품이어야 함

  - 응모작품은 반환되지 않으며, 표절 또는 이전에 발표된 작품인 경우 당선 취소

  - 소속, 이름, 간단한 약력 및 연락처는 참가신청서에만 기재

  - 기존 철도문학상에 수상한 자는 응모 불가

  - 작품서식 및 파일명 등 규격을 지키지 않고 제출한 경우 실력 처리


 ○ 주최 : 국토교통부 

 ○ 주관 : 한국철도문화재단, 한국철도협회, 국가철도공단, 한국철도공사, 주식회사에스알

 ○ 후원 : 한국철도기술연구원



기차와 함께 하는 여행


제10회 철도문학상 당선작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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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철도문화재단
 647회  2024-06-14 17:17

 

 제10회 철도문학상 공모전에 응모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심사 절차를 통해 다음과 같이 수상자가 결정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향후 시상식 관련하여 수상자분들께 개별 연락 드리겠습니다.


 다시 한번 응모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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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철도문학상 수상 작품 모음집

2025년 제11회 철도문학상 공모전 안내 (공모기간 : 2025. 4. 21.(월) ~ 6. 1.(일))



[우수상] 사북역, 이름 없는 열차 / 정재돈

 

불빛이 죽어버린 탄광촌, 차츰 이름이 희미해져가는 열차가 있다
허름한 옷 입은 오후가 아쉬운 탄식을 쏟아내며 갱 입구로 나왔다 
닫힌 탄광의 문 앞에 서서 입은 옷을 벗으려 하는 햇살, 아련한 옛 기억을 더듬고 있는 것일까

 

누구나 한때 헐벗은 적이 있지만 햇살은 연탄처럼 누더기 옷을 기워가며 입던 때를 잊으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녹슨 철문 출입금지 푯말, 마치 외부와 단절하고 살아온 독거노인을 보는 것 같다 삭막한 오후의 하품이 갱 입구에 눌어붙었다

 

광부들의 땀 냄새 묻은 철로, 자식이 꿈이고 희망이었을 고된 삶의 현장, 생존의 끈으로 묶여있던 인차가 덩그러니 멈춰있다. 차츰 이름이 지워져 가는 열차들, 사북역 철로를 따라 가장들의 텁텁했던 한숨이 갱 입구까지 줄지어 앉아있다

 

만차의 꿈을 달리던 사북의 시간은 멈췄고 지난날 산업 전사들의 애끓는 숨소리도 멈춰있다. 나는 문득 갱 입구, 군데군데 남아있는 시커먼 흔적들에게 미안했다. 낡은 철로는 차츰 밤으로 향하고 희미한 달빛 속으로 마지막 석탄냄새가 풍겼다

 

광부들의 혼이 피어난 사북역, 그들의 애끓는 가슴앓이가 지천의 산에 애잔한 야생화로 피어났다. 갱도 안에 별처럼 아름답게 박힌 흔적들, 문득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나 석탄을 가득실고 나에게 깜냥깜냥 다가올 것만 같다

 

 

 

 

 

 

   

[우수상] 마지막 기차와 기관사 / 이숙희

   

아까시나무의 집남자가 기차에 올랐다

영원히 닿지 못할 행성의 간이역들을 향해

같은 속도를 내며 그는 타원으로 돌고 있었다

기차는 알 약 한 봉을 목구멍에 털어 넣고

마지막 운행을 위해 레일 위에 섰다

몇 몇 사람들은 잿빛 코트를 입고

창가 의자에 기댄 채 캡슐처럼 녹고 있었다

경춘선 기차의 가뿐 숨소리가 그르렁 거리며

지나왔던 과거의 길들을 끌어당기고 있다,

아직식지 않은 커피 잔에는 벽보의 낙서들이 흔들린다

남자는 햇살의 밸브를 열어 언 강물 위에 풀어 놓았다

어디로 갔을까 더 이상 들리지 않는 물새소리

철길 옆 나뭇가지엔 흉흉한 소문들이 웅성였다

산의 허물을 밀어내고 터널을 빠져 나오던

기차는마디마디 꺾어진 몸뚱이 봉합하듯 어둠을 메워 넣고

바퀴에 감겨있던 기억들을 녹슨 레일 위에 펼쳐놓았다

강둑을 돌아 산모퉁이를 기어오르다 돌아보며

등 뒤에 버려진 무관심의 껍데기를 바라본다

그때 철컥철컥 귓전에 울리는 마지막 기침소리

멈춤 신호등 멈춤 신호등 멈춤 신호등

고독한 절지동물이 더듬이를 땅에 내려놓는 날

봄나물이 가득한 밥상을 누군가 흰 눈으로 덮어주었다

방금 전 폐역이 된 종착역이 쾡 해진 눈으로 작별인사를 한다

남자가 기차에서 내려 길을 걷는다

한때는 차창 밖으로 보였을 풍경들이 뒤 따라 오고 있다

오래된 철근 구조물이 링거를 맞고 폐목이 새 삶을 꿈꾸는 곳

역사 속으로 사라진 제복 입은 남자는

어느 경치 좋은 강변 가를 달리는 꿈을 꾸고 있을까

텅 빈 철로 위에 레일의 자유로운 영혼이 두 팔 벌려 누워있다

 

아까시나무의 집-정우영 유고시집



7회 철도문학상 운문부문 당선작
■ 우수상

 

문득나비 최연수

 

설레는 햇살 한 짐을 들쳐 멘 나비,
철둑 개찰구를 가뿐하게 빠져나온다

 

허공 몇 장을 넘겨 행선지를 훑더니
빠듯한 시간,
단락도 쉼표도 생략한 채 달아오른 철길을 읽는다

 

레일에 꽂힌 날개가 책갈피가 되는 느낌을
나는 이쯤에서 읽는다

 

저만치 소실점을 끌고 오전이 달려오고

 

점점 커지는 녹슨 울림을 완독하지 못한 날개가
사뿐열차 선 밖으로 물러선다

 

아른아른 계절을 싣고
휘우듬 오월의 행간을 빠져나가는 열차소리

 

달리는 것밖에 모르는 열차처럼
날아갈 일밖에 없는 나비는
얼마나 많은 꽃의 운명을 통과했을까

 

노곤함을 어깨 한켠으로 비스듬 내어주는 여행길
뿌리 깊은 족보가 어느새 너울너울 멀어진다

 

내게서 이미 날아가 버린 편도의 인연들

 

문득마음을 빠져나가는 가벼운 날개를
앞섶에 꽂고 싶은데
내 들숨과 날숨을 읽지 못한 나비의 속독이
저만치 멀다

 

나를 벗어난 여행은 다시
익숙한 노선을 따라 돌아올 수 있을까

 

저 너머차표 한 장을 들고
막 여름을 향해 들어서는 백모란
깨알 같은 KTX시간표가 초속으로 넘어간다

 

 

 

 

■ 우수상
사북 청년 노원숙
 
철길 끝에가만히누워본다

 

철길의 끝은 시작이 없어서
늘 끝에서 끝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아버지는 이 철길 끝에서 태어나
철길 위에서 오지 않는 광차를 기다리다 돌아가셨다
객지에서 불어온 훈풍에 훌쩍 떠나고 싶었겠지만
아버지는 레일을 받치는 나무처럼 식구들을 껴안았다
유곽을 전전하다 화장기 없는 얼굴로 귀향한 고모와
시꺼먼 러닝 자국과 함께 사우디에서 귀국한 삼촌을
아버지는 미동도 없이 온몸으로 받아내었다
흔들리지 않기 위해 철로를 붙잡고 납작 엎디어

 

사북후미진 탄광촌은 이제사람보다 석탄이 귀한 곳이다
눈 코 입만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곳에 철길이 있다
철길 끝은시작도 없고끝도 없으며,
가난한 아버지가아직도 내 손을뜨겁게 잡고 있다고,
일기에 쓴다또박또박

 

죽은 아버지가 일어나 갱도를 걷고 있다

 

 

 

■ 우수상

소금가루 같은 시간들 김정순

 

 

겨울 우리는 겨울이라는 두 글자에서 모든 추운 것들을 다 연상했었다 눈 내리는 밤이었다 눈이 틈을 타고 뼈로 스밀 것 같았다 몸통만 남은 나무처럼 우리는 껍질마저 금방 벗겨질 만큼 헐었고 틈이 벌어져 있었다 온기는 등을 통해 벽 쪽으로 순간이동하여 몸이 떨리는 방향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누군가의 껌 씹는 소리 얼음 깨는 듯하던  아마 새벽 세시 무렵 다리 한쪽을 꺼떡꺼떡 흔드는 남자의 시선 끝에는 허벅지를 다 드러낸 어린 여자가 금연 푯말 아래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우리는 지방의 어느 도시로 가는 중 이었다 버짐 핀 얼굴 볼에는 실핏줄을 하고 아침 해처럼 불쑥 솟을 초란한 희망을 품고 밤기차에 올랐다 그곳에는 해질녘이 되어도 해가 지지 않는 한 사람이 있었다

 

우리에게서는 소금기가 묻어났다 바다가 있는 곳을 지날 때 창문을 열었던 것 같다 그때 품었던 어떤 생각들이 절여져 간기를 품었던가 보다 밖에서 서성이는 찬 기운들이 서러워 미운 게 많았다 밤 깊도록 불을 환히 켜두고 있는 집을 보았을 때 허연 소금가루같은 시간들이 떨어졌다.


[제9회 철도문학상 최우수상]


한국철도협회 회장상


[산문-일반]


내 안의 주홍 글씨


천한 직업의 꼬리표 ‘굴지기’는 내 아버지의 또 다른 이름이다.

1970년대, 아버지는 철도 터널을 지키는 간수였다. 경산과 청도를 잇는 ‘남성현 터널’이 바로 그 일터다. 왕복 터널 길이 4.4㎞, 경부선

철도의 많은 터널 중 맏형격인 그곳에만 유일하게 간수가 존재했다.

간수 역시 엄연한 철도 공무원이지만 사람들은 아버지를 ‘굴지기’라고 불렀다.

기차의 기적 소리로 시간을 가늠하던 그 시절, 문명이라고는 작은 간이역이 전부인 우리 마을에는 철도 공무원이 많았다. 역무원과 객차

검수원, 선로 보수 요원, 건널목 간수까지 직종도 다양했다. 그 중에서도 왜 하필 굴지기란 말인가. 나는 터널을 지키는 아버지가 마뜩치

않았다. 무엇보다 사람을 얕보고 놀림조로 일컫는 굴지기라는 호칭이 싫었다. 물려받은 땅마지기가 없어 살림은 팍팍했지만 우리 가족에게

도 엄연히 택호가 있고 이름이 존재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동네 코흘리개까지 “굴지기네, 굴지기 아들, 굴지기 딸”로 불렀으니 말이

다,

우리 가족이 도매금으로 멸시를 당하는 것은 못난 굴지기 아버지를 둔 탓이라는 생각이 굳어지자 굴지기라는 주홍 글씨가 내 어린 가슴에

화인으로 박혔다. 오죽하면 가방끈이 짧은 당신은 굴지기가 딱 어울린다고 여겼을까. 이쯤 되니 볼품없는 누런 작업모에 기름때가 짜르르한

군청색 작업복을 걸친 아버지의 후줄근한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이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것도, 터널 경비가 아버지의 자존심이고 우리 가족의 생사여탈권을 쥔 목숨 줄이라는 것도 그때는 몰랐다. 존경이

없으니 살가울 리가 있겠는가. 가끔 마주하는 밥상머리에서도 부자간의 따듯한 대화는커녕 서로 눈을 맞추는 일도 드물었다. 황금색 금테

모자에 남청색 제복을 말끔하게 받쳐 입은 역무원 아버지를 둔 소꿉친구 금옥이가 얼마나 부러웠던지…….

고등학생이 되어 대구로 통학을 할 때다. 토요일 하굣길이었다. 책가방을 열차 난간에 내려놓고 시원한 바람을 쏘이며 파노라마처럼 밀려나는 풍경에

 혼을 빼앗기고 있었다. 그때다. 갑자기 기차가 굴속으로 빨려들었고, 순간 터널 천정에서 후드득 물줄기가 쏟아졌다. 비온 후에 종종 있는 일이다. 

승강구 맨 아래계단에 매달려가던 승객이 놀라 뒤로 물러나면서 내 책가방을 걷어찼다. 가방은 손쓸 틈도 없이 터널 속으로 굴러 떨어졌다. 난감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 아닌가.

그날 나는 생전 처음으로 아버지의 일터를 찾았다. 번듯한 사무실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터널 입구 벼랑 위에 까치둥지처럼 올라앉은 두어 평 남짓한 초소가 전부다. 

그곳에서 24시간 교대근무를 하면서 사람이나 동물들의 터널 접근을 막고, 오가는 열차마다 흰 깃발을 흔들어 안전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는 오전과 오후 하루에 

두 번 남폿불을 켜들고 상, 하행선 터널을 왕복하며 순찰을 돌았다. 그런 사실조차도 그때 알았다.

기가 꺾인 아들이 딱했는지 아버지는 뜻밖에도 야단을 치지 않았다. 몸 비빌 틈도 없는 완행열차의 애환을 짐작하고 계셨으리라. 불빛이 새 나가지 않도록 앞쪽으로만 빠끔하게 트인 남폿불을 켜든 아버지는 턱짓으로 따라오라는 시늉을 하고는 굴로 향했다. 불빛 한 점 없는 터널 안은 굴뚝 속을 방불케 했다. 당시만 해도 아침저녁으로 운행하는

통학 열차는 허연 석탄 연기를 산더미처럼 뿜어내는 증기 기관차였으니 쏟아내는 그을음이 오죽했으랴. 디젤 기관차 역시 적잖은 매연을 뿜어내고 다녔다.

굴속은 서늘했지만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매연 때문에 재채기가 나올 정도로 목이 칼칼했다. 어려움은 또 있었다. 보폭과 침목의 간격이

맞지 않아 걷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 틈에서도 아버지는 침목의 훼손과 레일을 고정하는 코일 스프링의 파손여부를 꼼꼼히 살피며 걸었다.

기차가 오면 벽체에 파 놓은 보호구에 몸을 피했다가 다시 걸었다.

책가방을 찾아 반대편 터널로 돌아오자 온몸이 시든 배춧잎처럼 축 처지고 두 다리가 후들 거렸다. 종일 초소에 붙박이가 되어 꾸벅꾸벅 졸다 오는 게 아버지의 일상이라고 여겼던 못난 아들이 부끄러웠다.

평생 컴컴한 굴속을 누비며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어둠 끝에는 반드시 빛이 있다는 희망, 아니면 굴비처럼 엮인 오남매 건사로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살림에 대한 절망이었을까. 어쩌면 무능과 가난을 자책하는 비통함에 절규했는지도 모른다.

그제야 철이 드는 것일까. 그날 이후 나는 아버지를 다시 보게 되었다. 음지에서 묵묵히 세상을 바꾸는 것이 철(鐵)이다. 그래서 쇠는 차갑지만 그 속은 따뜻하지 않는가. 침목에 굳건하게 뿌리를 박고 뻗어 있는 철길은 누운 자리를 원망하지 않지만 견뎌내는 고통은 묵직하다.

제 살을 깎아내면서도 꿋꿋이 그 자리를 지키며 수만 톤이나 되는 육중한 기차의 무게를 거뜬히 감당한다. 생명이 없는 물상도 함께하면 닮는 것일까. 철길과 평생 생사고락을 같이한 아버지의 삶도 그랬다.

가족에게조차 멸시를 받았지만 한마디 불평 없이 묵묵히 소임을 다했다. 숨겨진 그 살뜰한 희생으로 우리는 안전하게 기차여행을 즐길 수 있지 않는가.

대학 입학 예비고사가 목전에 있을 때다. 갑자기 금옥이네가 이사를 갔다. 여객전무로 승차하여 밖을 나돌던 그녀의 아버지가 노름에 빠져

풍비박산이 난 것이다. 땅을 다 팔아도 빚이 남는다고 이웃들이 수군거렸다. 잘 돼서 떠났으면 좋으련만 금옥이가 딱해 가슴이 아팠다. 겉

과 속이 다른 그녀의 아버지를 보면서 굴지기 아버지를 둔 내가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장 아닌 막장에서 매일 탄가루를 마시면서도

아버지는 그 일을 천직으로 알고 그곳에 뼈를 묻었다. 내가 살아오면서 힘든 고비를 넘길 때마다 일생 외길만 고집하신 아버지를 떠올리면

거뜬히 견뎌낼 수 있었다.

유년시절, 누구나 그랬듯 내게도 기차는 희망이고 설렘이었다. 기적소리만 들어도 어디론가 기차를 타고 멀리 떠나고 싶은 충동에 온몸이

전율했다. 밤차의 유혹은 더했다. 그 길 끝에 있을 유토피아를 떠올리며 늘 환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래서일까 돌이켜보면 철도가 주는 아

버지의 녹봉으로 먹고 입고 자고 대학을 다녔다. 통학 열차에서 무지갯빛 꿈을 키우고, 철도 가족의 무임승차권으로 기차 여행을 즐기면서

세상 살아가는 법을 배웠으니 나를 키운 건 8할이 철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세월이 무더기로 흘러간 지금, 아버지의 흔적이 묻어있는 남성현역에는 이제 상, 하행선을 합쳐 하루 7회 무궁화호만 잠시 머물다 간다.

타고 내리는 승객이라야 종일 열네댓 명, 물론 굴지기도 없다. 대낮처럼 훤하게 불이 밝혀진 터널에는 첨단 장비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패랭이꽃 같은 누이들을 싣고 덜컹거리던 사람냄새 가득했던 비둘기호, 구수한 봇짐장수들의 푸념과 넋두리, 왁자지껄한 군용 열차의 군가 소리도, 

무임승차한 얌체 승객을 다그치는 역무원의 호각소리도 멎

은 지 오래다.

“따끈한 계란이 왔어요. 심심풀이 땅콩과 오징어가 왔어요.”

기차간에서 주전부리를 들고 외치던 홍익회 판매원들의 목쉰 소리도 이제는 들을 수 없다. 내 기억 저편에 남아있는 한 점 편린일 뿐이다.

터널속의 매연을 오랫동안 마신 탓이리라. 아버지는 폐가 좋지 않아 늘 기침을 달고 사셨다. 식구들의 끼니가 죽음을 부르는 분진보다 더

무서웠을 아버지, 결국 진폐증으로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생을 접었다. 밑바닥 삶이라고 하찮은 건 아니다. 평생 터널 바닥을 훑을망정

그 누구의 어깨도 밟고 일어선 적이 없는 아버지의 순수한 삶이야말로 진정 아름답지 않는가. 금수저가 되기보다는 고난과 역경을 딛고 행복

에 한걸음 다가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 아닐까. 목석같았던 아버지는 비록 살갑지는 못했지만 내 가슴에 몸으로 때우는 직업의 숭고함과 낮

은 자세로 살아가는 삶의 미학을 불립문자로 남기셨다.

아버지의 시간들로 가득한 터널을 빠져나온 고속열차가 탄식 같은 기적을 내뱉고 지나간다. 문 닫아걸고 기다림에 늙어가는 간이역이 아쉬운 것일까. 

 언젠가 내 영혼의 허기를 채우고 떠나갈 막차, 그 길 끝에는 아버지가 하얀 깃발을 흔들고 있을 것이다.


[한국 철도시설공단]제2회 철도문학상 공모전 당선작/<일반부 최우수상 수상> 국토해양부장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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