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등단한 세 분, 축하드립니다.
축사를 준비하면서 저는 신인들에게 할 이야기보다는 저 자신의 신인 시절이 많이 떠올랐습니다. 등단하고 5년, 첫 시집 내기 직전 1987년 여름. 당시 저는 잡지 기자였습니다. 마침 대선배시인을 인터뷰할 기회 있었습니다. 그때 선배 시인께서 애송이 시인인 저에게 “이문재 시인 마음에 들지 않는 시는 발표하지 마세요”라고 충고하셨습니다.
당시 저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웃었습니다. '그걸 말씀이라고 하시나, 청탁이 안 와서 못 쓰지.' 하룻밤에 시 10편은 쓰던 시절이었습니다. 마음에 안 들면 폐기하고 새로 썼습니다. 충고는 금방 잊었습니다.
그런데 두번째 시집 낸 30대 중반 어느 날 그 선생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돌이켜 보니 마음에 들지 않는 시, 글을 여기저기 마구 발표했더군요. 편집자 재촉을 견디지 못했다는 말은 핑계가 되지 않았습니다. 계간지에는 일단 싣고, 나중에 시집 묶을 때 손 보자는 다짐도 제대로 지키지 못했습니다.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을 발표하지 않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깨달았습니다.
문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하면 이상한 사람이란 소리 듣는 시절입니다. 저는 비틀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문학이 세상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문학이 세상에 의해 바뀌어도 좋다는 말은 아니다.'
제게 이런 생각을 갖게 만든 인물이 있습니다. 1인 혁명을 주장한 미국의 아나키스트 애먼 헤나시(Ammon Hennacy)입니다. 그는 1인 시위를 많이 했습니다. 피켓을 들고 서 있으면 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물었대요. "그렇게 해서 세상을 바꿀 수 있겠느냐"고. 그럼 헤나시는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이 나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은 확신한다"고 답했답니다.
세상을 바꾸려는 문학보다 세상에 의해 바뀌지 않는 문학이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조금이나마 바꾸는 문학은, 세상을 바꾸려는 문학이 아니라 세상에 의해 바뀌지 않는 문학일지도 모릅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을 발표하지 말라는 충고는 아직 실천 못하고 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은 발표하지 않는다는 이 한 가지 태도가 세상에 의해 바뀌지 않는 것이겠구나. 그것이 바로 세상에 의해 바뀌지 않는 작가정신의 토대일 것입니다.
축하는 여기서 마지막입니다. 오늘 이 순간부터 여러분은 전적으로 오로지 여러분 혼자서 문학을 헤쳐가야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당부를 드립니다. 오늘 드린 당부의 말씀이 앞으로 여러분이 문학 활동을 하시는 동안 영원히 생각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