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바닥을 찾습니다
평범한 이들의 소설 창작에 보내는 박수, <한겨레21> ‘손바닥 문학상’ 공모

반갑게 인사합니다.
즐거운 일에 환호합니다.
온기를 만들어냅니다.
인생을 담고 있습니다.
나쁜 일에서 물러납니다.
뺨을 때립니다.
<한겨레21>이 ‘손바닥 문학상’을 공모합니다. ‘손바닥 문학상’은 힘없는 사람들의 작은 웅얼거림을 듣습니다. 나쁜 세상의 뺨을 후려쳐주십시오. 착한 세상을 맞대어 악수하고 박수쳐주십시오. 세상에 대한 응어리를 소설로 풀어주십시오. 세상 모든 일이 당신의 손바닥 안에 있습니다. 도전하십시오. <한겨레21> ‘손바닥 문학상’은 기성·신인 가리지 않지만 신인을 더 좋아합니다.
-대상: 동시대 사회적 이슈를 주제나 소재로 한 창작문학
-분량: 200자 원고지 60~70매
-응모요령: 한글이나 워드 파일로 작성해 전자우편(palm@hani.co.kr) 접수
-마감: 10월30일 밤 12시
-문의: palm@hani.co.kr, 전자우편으로만 받습니다.
-수상자 특전: 수상작은 소정의 고료와 함께 <한겨레21>에 게재하고, 수상자는 일정 기간 필자로 기용됩니다.
제3회 <한겨레21> 손바닥 문학상 수상작 발표 [2011.12.05 제88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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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회 손바닥 문학상’ 수상자 김정원·최호미·전구현·이보리씨(왼쪽부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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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21> 제3회 '손바닥 문학상' 수상작이 선정됐습니다. '큰 손바닥' 부문에서 김정원씨의 <너에게 사탕을 줄게>가 당선작으로 선정됐고, 이보리씨의 <인형의 집으로 어서 오세요>와 이도원씨의 <가난한 사람들>이 공동 가작으로 뽑혔습니다. '작은 손바닥' 부문에서는 전구현씨의 <랩탑>이 당선작으로, 최호미씨의 <나는 외롭지 않다>가 가작으로 선정됐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수상자 외에도 글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당선작 2편은 <한겨레21> 888호에, 가작 3편은 889호에 소개됩니다. ‘ |
여성 노동자의 고공농성을 다룬 소설 <오리 날다>의 ‘손바닥 문학상’ 당선을 계기로, <한겨레21>은 소설 같은 현실과 역사를 돌아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오리 날다>를 감상한 뒤, 일제강점기에서 오늘까지 끝없이 농성으로 몰릴 수밖에 없었던 ‘난쟁이들’의 외침을 되새기고, 한국 사회를 성찰하는 농성의 사회사를 짚어본다. 그리고 기륭에서 용산까지, 최근에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농성장의 이면과 농성 뒤의 얘기도 담았다. 생사의 경계까지 오갔던 단식농성·점거농성·고공농성은 일단 멈췄지만, 그들의 투쟁과 삶은 여전히 계속된다. 이명박 정권의 등장 뒤로 ‘한반도의 농성장화’ 현상은 더욱 심해졌기 때문이다. 편집자
신수원
1
똥을 담은 바구니가 휘청휘청 줄을 타고 내려가고 있다. 어젯밤 몸 밖으로 밀어낸 배설물을 담은 바구니는 줄 끝에 매달려 허공에서 바람을 따라 겅중거렸다. 공중에는 늘 크고 작은 바람이 지나다녔다. 고공을 가르는 바람에 탑 철제 난간이 둔중하게 흔들렸다. 흔들림이 난간 바닥을 딛고 있는 발바닥에 전해지면서 바닥에 깔린 스티로폼이 푹 꺼지는 착각이 일었다. 곧바로 온몸을 전율처럼 감싸는 현기증이 뒤따랐다. 나는 허리에 닿아 있는 위쪽 난간을 힘주어 잡고 몸의 중심을 유지했다.
철제 난간을 붙잡고 서서 바구니가 무사히 역 광장에 있는 동료들에게 도착하는 것을 지켜본다. 광장을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이 간혹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두레박처럼 매달려 내려가는 바구니를 올려다보았다. 똥바구니는 무사히 땅에 안착해서 치워졌다. 동료들은 변기를 통째로 내려달라고 했다. 매번 변기를 받아 내려 깨끗이 닦아서 올려주기 위해 그것만을 담당하는 동료까지 정해졌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았다. 한두 번으로 끝날 일도 아니고 매일 대소변을 동료에게 맡겨 치우게 하는 것은 공중에서 잠을 자고 하루를 견디는 것보다 불편한 일이었다.
나는 동료들이 배설물에 손을 대지 않도록 날마다 일정한 규칙으로 치러지는 의식처럼 배설물을 정성들여 처리했다. 신문지로 여러 겹 꼭꼭 싸매고 돌돌 말아 다시 비닐에 넣어서 내려보냈다. 그마저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바구니가 무사히 지상에 안착해서 쓰레기봉지에 들어갈 때까지 난간에 선 채 땅으로 향한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아침마다 귀한 연인을 배웅하는 사람처럼 망연히 서서 똥을 담은 검은 비닐봉지가 쓰레기 무더기에 묻혀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안심을 했다.
아침 8시 철탑 아래 광장에는 여느 때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빠르게 지나고 있었다. 오늘 모인 출투 대오는 여섯이었다. ‘대오’라는 표현이 옹색한 인원이었지만 우리는 그렇게 말했다. 해고된 공장의 출근 시간에 맞춰 정문으로 출근 투쟁을 나가기 위해 내가 있는 ○○역 광장의 폐쇄회로 탑 아래에서 사전 집결을 했다. 동료들의 얼굴을 일일이 살필 수는 없지만 참여하는 사람은 빤했다. 해고된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참여 인원은 줄어들었다. 휴대전화 문자 한 통으로 해고 통지를 받았을 때 생겼던 크고 강한 분노와 정의감은 시간 앞에서 한없이 초라하고 무력해졌다.
최소의 생활비는 한두 달 만에 바닥을 드러냈고 쌓이는 연체 고지서의 압박과 앞날의 불안 앞에서 해고로 입은 자존심의 상처를 돌아보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이 되었다. 작은 힘이라도 한목소리로 단결해야 한다는 구호와 약속을 뒤로한 채 일용직이든 파트타임이든 일을 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동료들은 흩어졌고 대오는 줄었다.
원숙이가 손을 흔들었다.
“언니, 저 왔어요.”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였다. 원숙이는 하청라인 일용직으로 나가고 있었다. 하청 생산라인에서 생긴 당일 결원을 충당하는 일종의 스페어 인력이었다. 갑자기 일이 생기거나 휴가를 낸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의 자리를 채워 일하고 일당을 받았다. 아침 일찍 라인이 돌아가기 전에 현장에 도착해서 대기하고 있다가 결원이 있으면 라인에 투입돼 일당을 벌 수 있었지만 허탕을 치고 돌아올 때도 많았다. 막노동 인력시장에서 일거리가 주어지는 방식과 비슷했지만 따지고 보면 그보다 못한 조건이었다. 원숙이가 소속된 인력회사와 배당된 하청별로 인력을 실어다주는 곳이 각각 달라 관리 명목으로 일당의 일부를 떼어갔다. 하청라인에서 일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보다 적은 원숙이의 일당은 막노동 인력시장에 비해 훨씬 많은 중간 손들을 거치고 난 뒤 원숙이에게 전해졌으므로 턱없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양손을 흔드는 것으로 원숙이에게 반가움을 전했다. 원숙이가 한 손을 귀에 대며 나중에 통화하자는 제스처를 보냈다.
“그래, 알았어.”
내가 원숙이에게 큰 소리로 대답하자 동료들이 입에 손을 모아 하늘을 향해 외쳤다.
“그 동네 오늘 공기는 어떻습니까? 간밤에 춥지는 않으셨어요?”
“높은 동네는 살 만합니다. 좋아, 바람이 차긴 한데 아직은 괜찮습니다.”
손을 흔들면서 전철역을 지나는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도록 빠르지 않고 또렷하게 큰 소리로 답한다. 흔드는 손을 따라 윗옷이 가슴께까지 부풀며 바람에 들썩였다.
여전히 봐주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리 처연한 생존 방식도 사람들의 무관심과 망각을 이길 수는 없었다. 광장을 지나는 사람들은 출근길을 서두를 뿐 한 달 가까이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는 똑같은 풍경에 아무런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오랜 투쟁은 구경거리조차 되지 못했다. 다 그렇게 사는 거라며 복잡하게 굴지 말고 체념하라는 욕설은 관심이었으므로 차라리 달았다. 견디기 어려운 것은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는 고립감이었다. 철저한 무관심은 거액의 보상금을 노리는 짓거리라는 오해나 동료들의 배반보다 예리한 칼날이 되어 가슴을 후볐다.
2
똥이 담긴 바구니를 내려보내고 오늘 필요한 생필품과 식사가 담긴 바구니를 받았다. 공수 작업이 끝나자 그나마 고개를 들어 힐끗 봐주던 사람들의 눈길도 없어졌다. 사람들은 시설물에 얼마간 불편을 주겠다는 공사 중 팻말을 보는 것처럼 탑 아래 광장을 덤덤히 지나쳤다. 난간에 서 있는 내 모습은 정작 바구니에 담겨 내려가는 똥만큼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쓴 입맛을 다시며 난간을 잡고 멀리 뿌연 하늘을 바라보았다. 전철역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언제나 스모그가 끼어 있었다. 스모그를 뚫고 하루를 밝히는 해가 힘겹게 빛을 발했다. 다른 날보다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햇살은 어정쩡하게 회색 하늘에 가려져 있었다. 탑에서 맞는 해는 따갑고 길었다. 오늘 낮 동안은 강렬한 땡볕을 피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가벼운 현기증이 일었다. 반사적으로 난간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 삼복더위가 지나고 탑에 올라온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한여름과 같은 기온이어도 9월의 바람과 볕은 아침저녁으로 많이 달라지고 있었다. 허리와 등줄기가 뻐근했다. 광장의 천막 주변으로 경찰차가 상주하고 있었고 사업장 담당 이 형사가 무전기를 들고 한가로이 동료들을 살피고 있었다.
간혹 사람들은 연인의 변심과 혹은 구직의 어려움에 분노해 즉흥적으로 한강 다리 위에 올라가 자살 시위를 하는 사람을 볼 때처럼 고공의 폐쇄회로 탑에 올라가 있는 무모함에 혀를 차며 지나갔다. 2년6개월이 넘도록 온갖 방법으로 진행한 농성과 항의는 사람들에게 그러려니 하는 익숙함만을 던져줘 도저히 충격이 되지 못했다. 세상의 관심과 사람들의 눈길을 한 번만이라도 붙잡아보자고 안 해본 노릇이 없었다. 눈비를 맞으며 아침마다 공장문 앞으로 가서 노래와 구호를 외치며 하루를 시작했고, 근처 사업장이나 버스 정류장, 전철역에서 카드대출 사채 전단을 뿌리는 사람들과 섞여 뿌린 홍보 전단이 수십 만 장이었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억울한 사정을 알리기 위해 탈진을 해서 실려갈 때까지 단식을 한 적도 있었다. 목숨을 걸었지만 단식으로 얻은 세상의 반응은 신문의 칼럼 두 번과 정말 죽을 각오를 했으면 쇼하지 말고 죽어보라는 노조 홈페이지의 댓글이었다. 밥 먹듯이 경찰서로 연행이 되었다. 전경 두 사람이 사지를 들면 힘에 부쳐 단 몇 초도 버티지 못하고 전경버스에 짐짝처럼 실렸다. 내 몸을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무기력함은 참담했다. 그렇게 전경버스에 실려 수도권 아무 곳에나 짐짝처럼 버려졌다. 주위를 둘러보면 논밭만 있는 이름도 모르는 곳이기도 했고 거대한 쓰레기 매립지이기도 했다. 달랑 들려가는 연행을 저지하고 조금이라도 더 버텨보려고 쇠사슬로 서로의 몸을 엮어 고정하고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육교와 전철역에서 연좌농성을 한 적도 있었다. 지나가던 대여섯 살배기 아이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저 사람들 왜 저래?”
몹쓸 것을 보기라도 했다는 듯 아이 엄마가 아이 얼굴을 가렸다.
“너도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돼. 알았지? 얼른 가자.”
손을 잡은 엄마에게 이끌려가는 아이는 고개를 돌려 자꾸만 우리를 돌아보았다. 아이가 보이는 관심을 무용담 삼아 그날 일과를 얘기 나눌 만큼 우리는 세상의 관심에 목말라했다.
하루 중 가장 힘겨운 것은 배설 행위였다. 먹고 싸는 일이 이렇게까지 구차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몸을 돌리기도 좁은 공간의 코앞에서 대소변을 치우다 보면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물을 내리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세세한 정황을 어쩔 수 없이 맛보게 되었다. 변의 굵기와 냄새는 물론 색깔과 점도까지 일일이 오감을 자극했다. 싫다고 피할 수도 빠르게 서두를 수도 대충 처리할 수도 없을 정도로 공간은 좁았다. 고개를 돌리는 간단한 몸놀림도 쉽게 할 수 없었다. 난간 밖으로 떨어지면 무엇이든 끝이었다. 난간을 벗어나는 순간 다시 주워 담거나 회복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정된 고공의 공간은 같은 속도의 조심스러운 몸가짐과 움직임만을 허락했다. 마치 정해진 법칙대로만 움직이는 제의에 임하는 것과 같은 엄숙함이 요구됐다. 밥을 먹는 것, 잠을 자는 것, 배변에 이르는 모든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한결같은 속도와 침착함이었다. 나는 아이들이 사용하는 오리변기에 앉아 신문지를 깔고 일을 보았다. 35m 고공에서 오리변기에 앉아 배설하는 일은 시간이 지나도 익숙한 일상이 되지 못했고 그때마다 낯설었다. 집을 벗어난 환경만으로도 변비에 걸리기 일쑤인 과민성 대장을 생각하면 공중에서, 더구나 사방이 개방된 곳에서 배설이 가능하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었다. 난간 바닥에는 스티로폼을 깔고 난간 테두리를 따라 현수막을 둘러 가리개로 삼고 있었지만 엉덩이를 까고 내 속에서 무언가가 쑤욱 빠지게 하기 위해 힘을 주고 기다리는 작업은 곤욕스러웠다. 변기에 앉아 있는 와중에 강한 바람이라도 불면 흔들리는 탑의 진동을 느끼며 이미 시작된 배변을 순조롭게 마무리하지 못해 쩔쩔맸다. 철제 난간을 붙잡고 1초라도 빨리 그 상황을 벗어나려고 나도 모르게 헛심을 주고 또 주었다. 그럴 때면 밀폐된 일상적인 화장실에서의 배변이 눈물겹게 떠올랐다. 밀폐된 공간을 갈구하며 눈을 감아 나를 밀폐시켰다. 오리변기를 타고 앉아 지상 35m의 공기를 맡으며 눈을 감고 힘을 주노라면 현기증이 일어 난간을 잡은 손에 더욱 힘을 꽉 주어야 했다.
식사와 물수건, 생수 등이 담겨 올라온 바구니의 내용물을 차례대로 정리했다. 입안이 까칠했다. 생수를 따서 입안 가득 한 모금 마셨다. 탑 기둥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여전히 아침 해가 가려져 있는 하늘은 흐렸다. 동료들이 계열사 앞과 국회 앞으로 오전·오후 농성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전철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바구니에 담긴 물수건으로 얼굴과 손을 닦았다. 하얀 물수건이 새카맣게 변했다. 도심의 전철역 하늘 가운데를 지나는 공기는 탁하고 검었다. 바람이 잦은 날은 목구멍이 칼칼해 한낮의 더위가 사라지면 마스크를 한 채 밤을 보내기도 했다. 밝은 아침 마스크 바깥쪽을 보면 전철역의 하늘처럼 진한 회색이 돼 있었다. 뒷물을 하고 속옷을 갈아입고 싶었다. 고공농성을 자원했을 때 의식주의 어려움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나름대로 치밀한 대비를 하고 마음의 준비를 다졌다. 고공에서 잠을 자고 일과를 보내는 것 다 좋았다. 씻지 못하는 것도 별 문제가 아니었다. 둔감해지지 않는 것은 배설과 속옷을 갈아입는 정도였다. 팬티를 벗을 때면 아래에서 누가 보기라도 하는 것은 아닐까 싶은 불안감과 가랑이 사이 생살에 닿는 바람이 싫었다. 불편해 갈아입기를 미룬 팬티 안쪽은 분비물이 체온에 굳어 구덕구덕 코딱지처럼 켜를 만들기도 했다.
3
고향에서 서울로 처음 왔을 때가 열일곱이었다. 큰언니는 중학교 진학조차 못한 어린 나이에 구로공단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아버지는 중학교를 졸업한 나를 큰언니에게 올려보냈다. 큰언니와 함께 지내던 가리봉 사글세방을 사람들은 ‘닭장집’이라고 불렀다. 아기자기한 큰언니의 자취 살림과 날마다 냄새가 좋은 스킨·로션을 바르는 것이 좋았다. 시골에 비해 비좁고 답답했지만 모든 게 편리한 곳이었다. 가장 불편한 것은 화장실이었다. 아침 출근 시간이 같은 사람들은 배설을 하는 시간도 거의 일치했다. 조금 일찍 일어나서 일을 보면 되겠다 했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 또한 그 집에 사는 사람의 3분의 1은 되는 셈이어서 일찍부터 화장실 앞은 꼬리를 물고 줄이 이어져 있었다. 겨우 줄을 서서 들어간 화장실에서 앞사람이 본 배설물의 냄새를 고스란히 맡아야 하는 일은 식구들이 비위가 좋다고 인정한 나의 속이 뒤집힐 정도였다. 그렇게라도 일을 무사히 치르는 아침은 행운이었고 앞에 늘어선 줄의 길이가 같아도 성격 느긋한 누군가가 오래도록 나오지 않으면 화장실 진입을 포기하고 출근을 서둘러야 했다.
큰언니 소개로 공장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모든 게 신기했다. 반듯하게 잘라진 가죽들이 미싱을 순서대로 지나고 기계 두어 개를 지나면 별의별 모양의 가방으로 뚝딱 만들어졌다. 나는 미싱 받침대 두 개를 오가며 실밥을 잘라내고 이어진 물건들을 낱개로 챙기고 다음 미싱으로 옮겨 정리해주는 일을 했다. 종일 쪽가위를 사용하느라 엄지 손끝이 짓무르고 파스를 붙이도록 손목이 아팠지만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출근하면 잠깐 사이 점심시간이 되었고 금방 퇴근 시간 벨이 울렸다. 이어지는 야근 잔업이 고됐지만 수당을 생각하면 별것 아니었다. 어차피 일찍 집에 가도 텔레비전을 보는 것밖에 하는 일도 없었다.
공장에서도 문제는 화장실이었다. 점심시간에는 화장실마다 사람이 들어차 있어서 줄을 서도 시간 내에 들어갈 수 없었고, 작업 시간에 화장실을 가는 것은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었다. 급하게 미싱사 언니에게 얘기하고 갔다 하더라도 반장에게 걸리면 본보기로 혼쭐이 났다. 소변을 보고 오는 것도 힘든데 큰 볼일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집에서는 공동 화장실에서, 공장에서는 작업 시간과 전쟁을 치르느라 사나흘에 한 번 변을 보기도 편치 않은 날들의 연속이었다.
소변은 방에 딸려 있는 아궁이를 겸한 작은 부엌 하수구에서 해결했다. 하수구를 향해 쪼그려 앉으면 아궁이에 걸려 있는 양은으로 만든 큰 물솥 날개가 엉덩이 곁에 닿을 만큼 좁은 부엌이었다. 더운 오줌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으면 아무도 없는 부엌의 찬장과 옆구리에 걸려 있는 양은솥이 알엉덩이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한쪽 팔을 다 뻗을 수 없는 좁은 공간에서 쌀을 씻고 설거지를 하고 오줌을 쌌다. 큰언니는 오줌을 눌 때마다 호수를 대고 빗자루로 씻어내리라고 했지만 나는 슬쩍 물만을 흘려보내고 그만이었다. 수채 구멍을 드나드는 커다랗고 시커먼 쥐가 지린내를 맡고 불쑥 튀어나올 것만 같아 아랫도리를 치키며 후다닥 방으로 들어왔다.
큰언니가 형부와 결혼을 해서 자리를 잡은 곳이 독산동이었다. 나는 동생과 독산동의 반지하 방으로 사는 곳을 옮겼고 구로공단은 세련된 디지털단지로 탈바꿈을 했다. 가방 공장에서 몇 차례 공장을 옮기는 동안 나는 전자부품을 조립하는 비정규직이 돼 있었다. 내가 원해서 직장을 옮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공장이 문을 닫기도 했고 중국으로 생산라인을 이전하기도 했다. 계열사 공장을 모두 합병하면서 감원 인력 대상이 되어 쫓겨나는 신세가 된 적도 있었다. 동생과 살게 된 반지하 전셋집은 주인집을 빼고 네 가구가 화장실을 함께 사용했다. 싱크대가 놓인 입식 구조의 부엌 바닥에는 씻을 수 있도록 수도와 하수구가 설치돼 있었다. 언니와 살던 닭장집에서 그랬던 것처럼 동생과 나는 소변 정도는 거기서 해결했다.
“언니 어떡하죠. 일 터졌어요.”
“왜, 원숙아.”
“사람들 전부 연행되었는데요. 다치고 병원이랑 경찰서에 있대요. 저밖에 없으니까 가봐야 할 것 같거든요. 여기는 단체 분들한테 연락을 드렸으니까 온다고 했는데요.”
“그래, 알았어. 침착하게.”
“단체 사람들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언니 혼자 있어도 괜찮은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경찰서가 두 군데로 나눠 있대요. 거기 다 가봐야 하고 병원도 그렇고.”
“그래, 염려하지 말고 네가 얼른 가서 뒷일 봐야겠다. 내 걱정은 할 거 없어. 얼마나 다쳤는지 여기서도 연락해볼게. 중간중간 꼭 연락주고.”
원숙이는 통화를 하면서도 천막에서 나와 탑을 올려다보며 말했고 나도 일어서서 난간을 붙잡고 나머지 한손에 휴대전화를 들고 말했다. 바람 소리가 들어가 휴대전화에서 쇳소리가 났다. 남아 있는 사람이 10여 명이 되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빠지고 나면 대여섯 명에서 서너 명이 일정에 참여하는 상황에서 몽땅 연행이 되었다면 연락을 취하고 일을 수습하는 것만으로도 원숙이 한 명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인원이 줄어들면서 전원 연행을 하며 대오를 자극하는 일보다는 무반응으로 일관하며 방치했다. 전원 연행은 불안한 조짐이었다. 뿌옇게 노을이 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기다란 전철이 요란한 신호음을 앞세우고 역에 들어서고 있었다. 육중한 전철이 들어올 때마다 그 속도와 무게가 탑에 전해져 진동이 왔다.
단체에서 온다는 사람들은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오지 않았고 동료들은 48시간 내에 풀려날 것이라는 연락을 원숙이에게서 받았다. 그 사이 나는 한 번 먹을 분량만을 남기고 생수를 마셨고 간식으로 초코파이 하나를 먹었다. 오리변기에서 소변을 두 차례 보았고 페트병에 그것을 따르는 의식을 무사히 치렀다. 여름이 지나고 있었지만 해가 지면 지상 35m 고공은 지상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바람이 차가웠다. 나는 겨울용 파카를 걸치고 지퍼를 여몄다. 역 광장에는 아무도 없는 깜깜한 천막이 스산하게 버티고 있었다. 동료들은 오늘 풀려나오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퇴근 시간에 맞춰 오겠다고 연락을 해왔던 단체에서는 아직 아무도 오지 않았다. 텅 비어 있는 천막 주변으로 사복형사 한 사람이 차에서 나와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배가 고팠지만 한 끼쯤 안 먹는다고 큰일 날 것은 없었다. 경찰서와 병원에 실려가 있는 동료들을 생각하면 여기서 한가로이 제때 식사를 하는 것도 미안할 노릇이었다. 동료들이 극성스러우리만큼 챙겨대지 않는다면 나는 하루 한 끼 정도만 먹으면서 이곳에 있고 싶었다. 괴로운 배변의 횟수도 3분의 1로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먹고사는 것을 살아가는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동료들이 고공농성을 하는 내게 그것을 허락할 리가 없으므로 나는 아예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서로 정해진 지침을 충실하게 따르는 것이 동료들을 번거롭게 하지 않고 수고를 덜어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식사의 횟수가 아니라 양을 줄여본 적도 있었다. 식사를 남기자 천막의 동료들이 지나치게 걱정을 하는 통에 변명을 하느라 서로 수선만 더하게 되었다. 그 뒤로 나는 어떤 꼼수도 부리지 않기로 했다. 올라오는 모든 것들을 먹고 주어진 시간에 충실히 잠을 자려고 했고 의연하게 일과를 채웠다. 아침이면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었고 낮이나 퇴근 시간에는 지원 방문을 오는 다른 사업장이나 지원 단체의 사람들에게 건재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난간에 서서 약식 집회를 했다. 나머지 시간은 땡볕을 막기 위해 비닐 사이에 헝겊을 덧대어 볕을 막고 책을 보았다. 해는 길고 따가웠다. 밤에는 파카를 껴입고 철탑에 기대앉거나 쪼그리고 누워 광장 옆의 백화점 건물 현관에서 쏟아지는 빛이 도로와 광장을 화려하게 덮는 것을 바라보았다.
오겠다던 지역 단체 사람들은 시간을 한참 지나 광장을 오가는 사람들도 뜸해지는 늦은 시간에 탑 아래로 모여들었다.
“일단 따뜻하게 식사하세요. 서둘러 온다고 했는데 연행자와 관련해서 의원님과 대책을 논의하고 오느라고 늦었습니다. 시장하셨을 텐데, 죄송합니다. 연행된 동지들은 별일 없이 풀려날 것 같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얼른 식사하십시오.”
통화를 하고 약식으로 구호를 외치고 저녁을 올려주면서 사람들은 우왕좌왕했다. 그들에게는 바구니를 올리고 내리는 일이 익숙하지 않았다. 몇 차례 여기저기 통화를 하고 나서 올려준 저녁 식사 바구니에는 평소 먹던 것보다 고급인 도시락이 들어 있었다. 지역 국회의원이 보낸 것이라고 했다. 동료들이 만들어주는 별식이 가끔 올라오긴 했지만 대부분 시중에서 구입한 도시락으로 식사를 했다. 지역 의원이 보냈다는 도시락은 갖가지 튀김과 생선초밥까지 구색을 맞춰 들어 있었다. 초코파이 하나로 때운 속이 허했다. 아직 따뜻한 온기가 있는 된장 국물을 마셨다. 뒷맛이 들쩍지근했다. 한입에 들어오는 초밥을 씹자 코끝이 싸해지는 고추냉이에 눈물이 찔끔 났다. 식사를 마칠 때까지 단체 회원들은 탑 아래 천막 밖에 앉아 자리를 지켰다. 탑과는 꽤 먼 거리에 있었지만 동료들이 없는 천막을 지키는 그들이 고마우면서도 마음이 그리 편하지는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빈 생수통과 쓰레기들을 모아 바구니에 챙겨 내려보냈다. 소변을 담은 페트병이 거의 다 찼지만 나는 그것을 바구니에 담지 않았다.
흐릿해진 날씨가 가늘게 비를 뿌렸다. 아침에 동료들이 올려준 신문에서 확인한 일기예보는 아침 한때 안개 후 대체로 맑음이었다. 세계적인 자동차 산업 불황 여파를 타고 몰아친 국내 자동차 업계의 일방적인 대규모 구조조정 방침에 노조가 극렬하게 항의하며 농성에 돌입한 장면으로 채워진 신문이었다. 노조의 공장 점거 농성이 결정되기 전에 공장 굴뚝에 올라가서 농성 중인 간부들의 사진도 실려 있었다. 아득한 굴뚝에서 머리 위로 펼쳐든 띠수건에는 ‘해고는 죽음이다’라는 농성 구호가 적혀 있었다. 전 재산을 모아 아들·며느리까지 매달려 꾸려온 가게가 아무런 보상이나 대책 없이 철거되는 억울함을 항의하던 나이 든 가장들의 죽음을 말하는 기사도 지속적으로 실리고 있었다. 장례조차 미룬 주검이 안치된 영안실 대여료가 1억원대를 넘고 있다고 했다. 광화문에는 길거리에서 치러진 월드컵의 아쉬움을 채워줄 광장이 만들어졌으나 축제는 인정하지만 사람이 모이는 집회는 불허한다는 방침을 두고 칼럼과 논설은 연일 갑론을박했다. 그칠 비 같지 않게 빗줄기가 잦아졌다. 동료들이 모두 연행됐으므로 알아서 날씨에 대비해야 했다. 앉아 있는 공간만큼만 난간에 비닐을 덮어 천정을 만들고 옆으로 나와 우비를 챙겼다. 우비를 가지고 있으니 어지간한 비는 문제될 것 같지 않았다. 단체 사람들은 둘만 남고 돌아갔다. 동료들이 한 명도 없는 역 광장의 천막 안 불빛이 여리게 아른거렸다.
4
밤이 깊었다. 바람은 차가워지고 오솔한 한기에 명치가 떨렸다. 간혹 빠른 속도로 곁을 지나는 자동차 속도에 철탑이 울렸다. 전철역은 서늘한 불빛만을 달고 묵묵히 졸고 있었다. 첫 전철이 움직이는 시간이 다가오기 전까지 역 근처를 오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떨리는 속을 진정시키며 심호흡을 했다. 어깨를 등 바깥으로 한껏 젖히고 마시는 찬 공기는 시릴 만큼 푸르렀고 내뿜는 숨은 길었다. 철탑 난간을 잡고 바라보는 하늘은 어둠 속에서도 스모그를 품고 있는 것처럼 멀고 무거웠다. 따뜻한 물 한 잔이 생각났다. 생수로 입을 축일까 싶었지만 차가운 것이 싫었다.
늦게 먹은 초밥 때문인 것 같았다. 생소한 음식 탓으로 배가 살살 아팠다. 배변의 기운이 분명하게 감지되는 것은 좋은 징조라고 불안한 마음을 다잡았다. 엉덩이를 내놓고 있는 시간의 단축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콕콕 찌르듯이 아픈 배가 심상치 않았다. 동료들도 없는 상황에서 큰 탈이라도 났거나 몸에 문제가 생겨서는 곤란했다. 천막을 지키고 있는 지원 방문자들에게 험하고 수선스러운 꼴을 보이는 것은 난감한 일이었다. 배앓이가 심해져 단체 사람들에게 의존해야 하는 상상은 몇 안 되는 대오로 싸움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보다 더 초라하고 서글픈 일이었다. 침착하게 배를 달래며 몸이 보내는 신호에 촉각을 세웠다. 배가 부글거리면서 아파왔다. 참아서 달라질 지경이 아니었다.
오리변기에 엉덩이를 까고 앉았다. 나는 주로 새벽 시간에 배변을 시도했다. 주위의 시선에서 그나마 놓여나는 시간이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데도 탑 아래를 지나는 취객은 없는지 상주하고 있는 담당 이 형사가 올려다보는 것은 아닌지 하다못해 원거리에서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이라도 작동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했다. 그런 불안을 안은 채 소변은 밤까지 참을 수 없어 벌건 대낮에 땡볕 아래서 해결했다. 오리변기는 소변을 한 번만 봐도 출렁거렸다. 변기 받침을 들고 주둥이가 큰 페트병으로 옮겨 하루의 오줌을 모았다. 참기름이나 콩기름을 따르는 것 이상으로 긴장하고 조심스럽게 움직여도 오줌은 깔때기 밖으로 흘러 손이나 옷깃에 묻기 일쑤였다.
무서운 속도를 내며 달리던 자동차가 경적을 울렸다. 소리에 놀라 감았던 눈을 뜨며 난간을 꽉 잡았다. 빗물기가 남아 있는 철탑 난간의 습하고 싸늘한 기운이 손바닥을 감쌌다. 다시 마음을 진정시키고 눈을 지긋하게 감고 배설을 위해 집중했다. 오늘 먹었던 음식과 물의 양을 가늠하며 이 시간이 얼마나 길어질지를 생각했다. 살살 아프던 배가 울퉁불퉁 거리더니 삐죽삐죽 묽은 똥이 항문 사이로 비어져 나왔다.
배변 때마다 신경을 건드리는 또 한 가지는 소리였다. 묽은 변이 나오기 시작하자 커다란 소리가 염려되어 시원스럽게 힘을 줄 수가 없었다. 방귀를 몰래 낄 때처럼 조금씩 힘을 조절하려 애를 썼다. 적막한 시간 몸을 빠져나가는 이물질들은 반드시 소리를 냈다. 철탑 아래 천막에서 잠이 든 지원방문자들이나 종종 광장에 차를 대고 밤을 새우는 담당 이 형사가 듣기라도 하는 것은 아닌지 가슴이 오그라들었다. 새벽녘 몸 밖으로 삐져나오는 그 소리는 아무리 의연하려고 해도 나를 수치스럽게 했다. 고공에서 치르는 배변의 불안과 수치스러움을 주는 소리, 번거로운 절차가 끔찍해서 처음 며칠은 오리변기를 사용하지 않고 참았다. 되도록 배변 횟수를 줄여볼 요량이었다. 가스가 차고 불러오는 배를 누르는 허리께가 빵빵해져서 속까지 더부룩해졌다. 참았던 배가 올챙이처럼 차올라 통증이 참을 수 없게 된 나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난생처음 오리변기에 앉았다. 한 손은 철탑 난간을 붙잡고 한 손으로는 배를 누르며 가스를 내보냈다. 그날 나는 쏟아낸 굳은 배설물을 처리하지 못하고 오리변기 등을 닫아만 놓은 채 한참 동안 망연히 탑에 서서 먼 하늘만 쳐다봤다.
변에 물기가 많아 오리변기에 깔았던 신문지가 소용없었다. 변기 아래 소변통까지 경계 없이 변이 흘러 있었다. 시큼하고 역한 냄새의 묽은 똥을 싸고 나자 창자를 찌르듯이 아프던 배는 진정이 되었다. 식중독이나 몸살 등으로 몸에 문제가 생기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었지만 오리변기를 처리할 길이 막막했다. 일단 변기 뚜껑을 닫고 앉아 있는 탑 반대편에 밀어놓았다. 스산해진 날씨는 간혹 가는 비를 뿌리다가 멈추기를 반복했고 방향 없는 바람이 제멋대로 불었다.
고공에서의 밤은 차갑고 길었다. 굵은 굴뚝 같은 원형 철탑을 따라 타원형으로 몸을 말고 토막잠을 청했다. 난간 철근 사이로 발이 빠져서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다가 겨우 위기를 넘겼다. 잠결에 몸을 뒤척인다는 것이 탑 난간 밖으로 밀려나 순식간에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둔중한 무게를 담고 둔탁한 소리를 내며 탑 아래로 떨어진 몸뚱어리가 땅에 처박히며 박살이 났다. 과속 차량들이 울리는 경적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잠에서 깼다. 탑에서 떨어지는 꿈보다 더 큰 공포가 느껴지는 소리였다. 두꺼운 파카 위로 드러난 뒷목은 식은땀으로 끈끈했고 때마침 스치는 고공의 바람에 등줄기가 서늘했다. 무슨 꿈이었는지 꿈을 꾸기는 한 것인지 조금 전의 일조차 기억이 선명하게 조합되지 않았다.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양팔로 부여잡듯 껴안았다. 까닭 모를 두려움이 고스란히 온몸을 짓눌렀다. 탑 기둥에 쪼그리고 앉아 다리 사이로 얼굴을 묻었다. 아래를 쳐다볼 수 없어 눈을 감았다. 큰 숨을 들이쉬고 바라보는 고공의 하늘은 아득했다. 바람은 차갑고 하늘은 아직 동을 틔우지 않고 있었다.
5
버스럭거리는 우비 소리에 잠을 깼다. 단추를 채우지 않고 걸친 우비 자락을 다잡아 여몄다. 몸을 움직이자 탑 기둥에 기대고 잠든 동안 접혀 있던 무릎이 찌릿하게 저렸다. 양쪽 어깨를 바깥으로 젖혀 심호흡을 하고 다리를 주물렀다. 전철 첫차가 아직 움직이지 않는 시간이었다. 광장이 소란스러워지고 있었다. 일어서려는데 저린 다리가 마비된 듯 힘을 주기 어려웠다. 주저앉아 급하게 다리를 주무르는 손을 놀리며 난간 사이로 광장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광장을 오가며 웅성거리는 사람들은 단체 회원 서넛과 사복을 한 형사들이었다. 휴대전화가 연방 울리고 있었다.
“서울 지역 해고자 회의 임영석이라고 합니다. 철제 난간을 강제 철거할 것 같아요. 다른 분들에게 아는 대로 모두 연락을 취했으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비도 오는데 개새끼들이 날을 잡은 것 같아요. 사람들 출근 시간 전에 끝내겠다는 건데요. 그러실 리 없지만 나쁜 마음을 먹으시면 안 됩니다. 민노총 당직자와 민변에도 연락을 했고 금방 많은 분들이 모일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힘내십시오.”
탑 위를 쳐다보며 다급하게 말하는 임영석이라는 사람의 목소리는 휴대전화에서인지 소리 높여 말하는 것이 육성으로 들리는 것인지 광장을 울리는 것처럼 크게 들렸다. 전경들과 낯선 사내들이 탑 주위로 겹겹이 매트리스를 설치하고 있었다. 소방차가 광장을 대낮처럼 밝히면서 들어오고 어느새 꼭대기에 사람을 실은 사다리차가 탑 쪽으로 붙고 있었다. 서서히 움직이는 사다리 소리를 들으며 나는 한 손으로 난간을 붙잡고 한 손을 치켜들며 구호를 외쳤다. 목소리 끝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성실교섭 촉구한다, 비정규직 철폐하자.”
가는 빗방울이 우비를 입은 어깨에 떨어지는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오른쪽 사다리차에는 전경 셋이 올라오고 있었고 왼쪽 사다리차에는 얼굴을 모르는 형사 둘과 담당 이 형사가 함께였다.
“진복연, 할 만큼 했잖아, 서로 좋게 좋게 내려가자.”
이 형사는 휴대용 확성기를 들고 말끝을 잘라먹으며 웃는 듯이 말했다.
“가까이 오지 말아요.”
나는 큰 소리로 말했다. 높은 곳에서는 에코가 들어간 것처럼 말소리가 울렸다. 난간을 잡은 손이 빗물에 미끈거렸다. 빗줄기는 점점 잦아지고 있었다. 발아래 깔아놓은 스티로폼이 발을 움직일 때마다 꿈틀거렸다.
“자자, 어차피 뛰어내리지도 못하잖아. 고생하지 말고 내려가자니까.”
이 형사와 사복에게 우산을 씌워주고 있는 전경의 얼굴은 굳어 있었지만 사복은 이 형사의 말에 노골적인 웃음을 지었다.
“성실교섭 촉구한다, 비정규직 철폐하자.”
사복의 비웃음을 느끼며 나는 난간을 잡은 손을 놓고 무의식적으로 입에 밴 구호로 악을 썼다. 진회색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얼굴을 적시고 시리게 목을 타고 흘렀다. 점점 사다리차가 옆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방향을 틀어 발을 떼는 순간 바닥에 깔았던 스티로폼 틈이 벌어지면서 무언가가 아래로 떨어졌다. 탑 아래에서 올려다보던 단체 회원들과 그동안 불어난 몇몇 사람들이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동료들에게 편지를 쓰기 위한 필기구와 휴지 등을 담은 작은 사물함과 그 옆에 있던 어제 하루 모아놓은 오줌을 담은 페트병이었다. 바로 발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이 두려웠다. 빗물에 젖은 몸과 새벽의 한기에 몸이 와들와들 떨렸다.
“조심하자니까, 진복연, 어차피 내려갈 거잖아. 거 사람이 왜 그래. 여자가 똥오줌도 제대로 가리기 힘든 여기서 할 짓이 아니잖아? 좋게 내려가자.”
이 형사는 떨어진 것이 오줌을 담은 페트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새벽에 치러지는 수치스러운 소리와 배설물을 꽁꽁 싸매서 바구니에 내려보내는 절차와 오리변기 바닥에 담긴 오줌을 일일이 페트병에 모아 옮겨 담는 것을 모두 알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비정규직으로 어처구니없는 대우를 받으며 해고된 억울함과 서러움 때문이 아니라 모멸감이 치밀어 순간적으로 난간을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빗방울은 더욱 굵어졌다. 이빨이 부딪치도록 추위가 느껴졌다. 발이 미끄러지면서 균형을 잃고 휘청거렸다. 발에 밀린 스티로폼이 벌어져 뚫린 틈으로 아득하게 광장 아래가 보였다. 이 형사의 사다리는 내가 서 있는 측면으로 얼굴을 알아볼 정도까지 가까이 다가왔다. 한 발만 잘못 디디면 벌어진 바닥의 틈으로 발이 빠지거나 균형을 잃고 광장으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스멀댔다. 그들이 다가올수록 내 머리 속에는 온통 처리하지 못한 오리변기 생각뿐이었다. 잠꼬대로도 중얼거릴 비정규직 철폐 구호도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시선도 까맣게 생각나지 않았다. 묽은 배설물이 담긴 오리변기를 어떻게든 처리해야 한다는 조바심에 안달이 났다. 이 형사에게 또는 이 형사 옆의 저 사복에게 아니면 철탑을 철거할 누군가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오리변기를 생각했다. 수치스러움에 눈을 감았다. 몸이 떨렸다. 등 뒤쪽으로 접근하던 사다리의 전경들이 탑 기둥 중간에 안전하게 조준한 사다리를 대고 비정규직 철폐 현수막을 걷어내고 있었다. 나는 난간을 잡고 몇 걸음 뒤로 발을 옮겼다. 하늘색 주둥이를 한 오리변기가 비를 맞고 있었다. 묽은 똥의 흔적이 누렇게 변기 밖으로까지 흘러나와 있었다. 나는 한 손으로 난간을 잡고 천천히 무릎을 굽혔다. 싸늘한 쇠파이프의 감촉과 물기를 머금은 녹 냄새가 훅 진하게 스쳤다. 한 손으로 뚜껑을 열고 변기를 들고 일어섰다. 이 형사와 또 한 명의 사복은 얼굴에 여유를 머금고 여전히 비웃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빨간 휴대용 확성기를 입에 대고 다시 무언가 말을 하려는 이 형사가 타고 있는 사다리를 향해 오리변기를 힘껏 던졌다. 말의 안장처럼 등에 신문지를 덮은 하얀 오리가 빗속에서 공중을 날았다. 첫 전철을 타려고 새벽을 서두르며 광장을 지나는 우산들이 커다란 점처럼 하나둘 늘어났다. 철길 저쪽에서 전철이 역을 향해 들어오고 있었다. 전철이 들어오는 진동 때문인지 추위 때문인지 난간을 잡은 두 팔에 경련이 일었다.
올해 손바닥 문학상은 두 부문으로 분리해 공모했다. ‘큰 손바닥’ 부문은 일반 단편소설 분량의 원고를, ‘작은 손바닥’ 부문은 흔히 엽편(葉篇) 혹은 장편(掌篇)이라 부르는 콩트 분량의 원고를 받았다. 단편과 콩트는 분량이 다를 뿐 아니라 장르의 본질 자체가 다르므로 당연히 심사와 시상도 분리해 진행했다.
‘큰 손바닥’의 노동과 가족과 전쟁
큰 손바닥 부문에서는 11편이 본심에 올라왔다. 단순히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과 소설이라는 물건을 제작하는 일은 썩 다르다. 사람이 아니라 캐릭터가 있어야 하고, 줄거리가 아니라 플롯이 있어야 하고, 문장이 아니라 스타일이 있어야 한다. 이 점에 둔감한 작품들은 소중한 진심이 느껴져도 일단 내려놓았다.
심사위원들이 진지하게 의견을 나눈 작품은 6편 정도였다. 박목우씨의 <어린, 책>은 전쟁으로 고통받은 이라크 국민에게 바쳐진 사랑 이야기다. 문장을 세공하는 데 들인 노력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가독성에 문제가 있다는 평, 소설을 쓰기 위해 확보돼야 할 산문적 거리가 확보돼 있지 않아 감상적이라는 평이 있었다.
윤희정씨의 <아르바이트>에는 반도체 회사에 근무하다 백혈병에 걸린 인물과 이를 은폐하는 거대기업의 냉혹한 간부가 나오지만 서술은 제3자에게 맡겼다. 덕분에 생경함을 눅이고 울림을 높일 수 있었다. 삼성반도체 산재 사건을 다룬 것임을 알겠거니와, 현실을 직시하고 용기 있게 재현하려는 의지는 언제나 이렇게 감동적이다. 그러나 서술이 소박해서 소설로서의 긴장이 약했다.
박지현씨의 <동생을 찾아주세요>는 17살 소년의 가출과 실종을 다룬다. 심사위원들은 이 소설을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중산층 가족의 아들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묻는 소설로, 혹은 가족 구성원의 실종 이후에도 삶이 계속된다는 사실의 쓸쓸함을 되새기는 소설로 읽었다. 그러나 어떻게 읽어도 소년의 고민이 지나치게 추상적이라는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김인씨의 <영도 이하의 풍경>은 가족 내 근친상간이라는 소재에 도전했다. 진지하고 집요한 태도가 미더웠고 마치 천운영의 소설을 읽는 듯 여운도 강렬했다. 2인칭 시점의 서술 운용 방식이 근년에 밀리언셀러가 된 작품을 연상시킨다는 평도 딱히 비판은 아니었다. 그러나 다른 공모라면 모르겠으되 ‘손바닥 문학상’이 지금 굳이 선택해야 할 작품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기민호씨의 <구민을 위하여>는 어느 구청을 배경으로 몇몇 인물의 이야기를 느슨하게 펼쳐놓고 이를 노련하게 엮어나가는 한바탕 소동극이다. 여느 소동극이 그렇듯이 ‘그래서?’라는 반문을 남기는 허탈감이 찾아오기도 했지만, 소설가 김종광을 연상시키는 입담이 우리를 충분히 즐겁게 했고, 손쉽게 선악과 미추를 분별하지 않으면서 삶의 역동적 현장을 따뜻하게 응시하는 시선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였다.
김소윤씨의 <벌레>는 <영도 이하의 풍경>만큼 소재가 강렬하지도, <구민을 위하여>만큼 입담이 능란하지도 않았다. 대한민국 20대의 내면을 서울 노량진 고시촌을 배경으로 보여주는 방식도, 그 인물의 불안정성을 인물 자신에게만 벌레가 보이는 신경증으로 설명하는 착상도 딱히 신선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작품은 모든 면에서 가장 진솔했고(인물), 안정적이었으며(서술), 시의적절했다(주제).
절제의 묘미가 아쉬운 ‘작은 손바닥’
특히 소설 후반부에서 ‘커다란 나무에 점점이 매달린 붉은 꽃들’의 이미지가 ‘붉은 꽃이 화려하게 피어나 방 안을 가득 채우는’ 이미지로 이어지는 대목은 아름답다. 그 뒤에 주인공이 ‘나는 작은 벌레다’라고 말할 때 이 ‘벌레’는 더 이상 그로테스크하고 절망적이기만 한 벌레가 아니다. 바로 이런 것이 ‘소설적인’ 도약이다. 다른 작품들에는 이런 도약의 순간이 없었다. 우리는 김소윤씨의 손을 잡기로 결정했고 더불어 기민호씨의 어깨를 두드려주기로 했다.
공모 첫해인 탓이겠지만 작은 손바닥 부문에는 응모작이 많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 장르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는 응모작은 더더욱 적었다. 줄여 쓰고 짧게 쓰는 게 핵심이 아니다. 이 장르는 날카로운 잽이어야 하고, 우아한 측면 승부여야 한다. 결정적인 말은 하지 말아야 하고, 이야기는 적당한 순간에 슬그머니 놓아버려야 한다. 그런데 많은 작품이 짧은 분량 안에 정의로운 메시지를 단선적으로 눌러 담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
마지막에 함께 논의한 임상태씨의 <악어의 그림자는 어디로 갔을까?>는 알레고리를 도입했지만 메시지가 진부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여서 윤희정씨의 <방문>을 수월하게 가작으로 뽑았다. 현실 비판적인 언급들을 그다지 폼 나지 않는 주인공에게 맡겨 아이러니의 효과를 잘 살려냈고, 주인공의 진지하지 않은 비분강개를 “글쎄요… 저는 티비 검침원일 뿐입니다”라는 말로 무심히 받아치면서 이 장르의 묘미가 어디에 있는지를 산뜻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작은 손바닥 부문의 응모작들이 내년에는 더 풍성해지면 좋겠다. 분량 제한은 제약이면서 동시에 기회다. 체호프나 카프카의 사례가 보여주듯 원고지 20매는, 날카로운 현실 풍자에서부터 형이상학적 문제 제기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테마가 움직일 수 있는, 생각보다 꽤 넓은 운동장이다. 번득이는 재능은 오히려 이 장르에서 더 빛날 수 있다. 이 매력적인 장르를 대상으로 하는 희소한 공모에 더 많은 독자가 관심을 갖길 바란다.
심사위원 김선주·유용주·신형철
100여 편 응모작 가운데 노량진 고시촌 다룬 김소윤씨의 <벌레> 당선…
‘큰 손바닥’ 부문 <구민을 위하여>, ‘작은 손바닥’ 부문 <방문> 가작 선정
지난 10월31일 밤 12시에 공모를 마감한 뒤 박용현 <한겨레21> 편집장과 최근 소설가로 등단한 유현산 전 편집팀장, 한페이지단편소설(1pagestory.com) 운영자이자 소설가인 서진씨가 예심을 통해 큰 손바닥 부문 11편, 작은 손바닥 부문 8편을 가렸고, 본심은 김선주 전 <한겨레> 논설주간, 소설가이자 시인인 유용주씨, 문학평론가 신형철씨가 맡았습니다. 지난 11월10일 최종 심사회의를 열고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수상작을 결정했습니다.
큰 손바닥 부문 당선작에는 300만원, 가작에는 100만원, 작은 손바닥 부문 가작에는 50만원의 상금이 주어집니다. 또한 모든 수상자는 일정 기간 <한겨레21> 필자로 기용됩니다.
이번호에 <벌레>를 표지이야기로 소개한 데 이어 다음호에는 <구민을 위하여>, 그 다음호에는 <방문>을 싣습니다.
손바닥 문학상 공모는 내년에도 계속됩니다. 많은 응모 바랍니다. _편집자
수상 소감
내 유일한 항거와 변혁의 깃발
큰 손바닥 부문 당선 김소윤씨
글을 쓴다는 것은, 목소리를 내는 일이다. 차마 두 눈을 마주 보고 말할 수 없는 것도, 두 팔 들고 거리로 나설 수 없는 것도, 두 발로 뛰어들 수 없는 것도 글로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름의 생의 굴곡 속에서도 ‘하염없이 고독하고 기다리고 실망하고 그래도 여전히 사랑하는’ 이 일을 놓지 못하는가 보다.
스스로에게만 치열했던 이십대를 지나 조금쯤 주위를 둘러보게 된 삼십의 초입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야 나는 종종 두렵다. 그저 평범하다 여겼던 내 삶이 기적(?)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시끄럽고 부끄러운 세상 앞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나마 이러한 자각에서부터 ‘더 나은 세상’(할례에 신음하는 어린 소녀와 맹목적인 학대에 고통받는 아이들, 가난과 외로움에 시달리는 노인들, 죽음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는 이들이 조금만 더 줄어드는)이 시작된다고 슬픈 위안을 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내 유일한 항거와 변혁의 깃발, 초라한 한 줄의 글을 써나간다. 설사 이것이 나는 물론 세상 어느 한구석도 바꿀 수 없는 풋내 나는 짓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역시 부끄러운 세상의 한 점일 뿐인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니 말이다. 이제 막 익은 석류처럼 어여쁜 두 아이를 위해서라도, 돈과 명예와 허울 좋은 이름들을 좇는 이가 되지 않기를, 지쳐 포기하는 자가 되지 않기를 소망한다.
그녀와 포옹할 수 있는 날을 위하여
큰 손바닥 부문 가작 기민호씨
고백할 것이 있습니다. 나는 세상에서 글 쓰는 일이 가장 싫습니다. 책을 읽는 것은 두 번째로 싫습니다. 어떤 비유나 농담이 아닙니다. 정말로 싫은 겁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문학이 나에게 단 한 번도 웃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짝사랑과도 같습니다. 무모하고 제어 불가능한 바로 그것 말입니다. 그녀는 정말 아름답고, 경쟁자는 많고, 나는 가진 것이 없고, 시간은 자꾸만 흐릅니다. 안타까운 마음은 섭섭함으로 변하고 섭섭한 마음은 미움으로 바뀝니다. 나를 몰라주니까요. 그래서 소설가가 꿈이었던 한 소년은 나이 서른이 되어서 글 쓰는 일을 가장 싫어하게 된 것입니다. 당선 소식을 접하고 처음으로 문학의 표정을 보았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직도 거기 있었어?” 아직도 거기 있었습니다. 있는 듯 없는 듯, 계속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내가 문학과 대단한 사랑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좋은 친구는 될 수 있을 겁니다. 문학은 조금 앞서가고 나는 조금 뒤에 서서 따라가도 좋습니다. 언젠가 그녀의 손을 잡고 그녀와 포옹할 수 있는 날도 오겠지요. 나는 계속 그녀 주변에 있을 겁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어서 기분이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들의 입이 근질거리게 하는 글
작은 손바닥 부문 가작 윤희정씨
글을 쓴다고 하니 누군가 말했다. “우리한테 힘을 주는 이야기를 써줘.” 나이 예순에 억울해서 못 살겠다고 환경미화 노동조합을 만든 이였다. 알겠다고 대답했으나, 글이 나온 뒤 그녀를 피해다녔다. 나는 솔직히 그녀들에게 ‘힘이 되는 글’이 무엇인지 몰랐다.
덜컥 당선 전화를 받았다. 놀랐다. 감사했다. 그리고 조급해졌다. 연말 시상식에서 ‘이 상을 채찍질로 알고…’ 이렇게 시작하는 배우들의 수상 소감을 들으며 입에 발린 말을 하는구나 했는데, 이제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어떤 글을 써야 할까. 고민이 든다.
사실 답은 정해져 있다. 나는 예순의 그녀에게 당당히 보여줄 글을 쓰고 싶다. 다만 방법을 모를 뿐이다. 고심했다. 그리고 편히 생각하자는 결론이 났다. 어차피 그녀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그녀 자신이다. 뭐가 억울한지, 어떤 꿈이 있는지, 세상은 그녀를 어떻게 대했는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그녀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다. 자신의 이야기는 자신이 하는 게 좋다. 그럼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녀들이 말하고 싶어지게 하는 글을 쓰자. 읽다 보면 무언가 발바닥이 간질거리고, 내장이 꿈틀거리고, 입이 근질거려 “나도 할 얘기가 있는데”라고 소리치게 되는 글. 아, 이거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다. 누군가 말하고, 악쓰고, 때로는 함께 입을 모으고 싶어지게 만드는 글을 쓰고 싶다. 예순의 그녀에게 글을 보여줄 날이 조금 앞당겨진 것 같다. 부족한 작품에 기회를 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처음 벌레를 발견한 것은, 스탠드의 어두운 불빛 아래서 공무원 수험서에 붉은 밑줄을 긋고 있을 때였다. 책에 밑줄을 그어야만 머릿속에 들어오는 것은, 학생 시절부터의 습관이다. 하얗고 조그마한 벌레는 붉은 밑줄 위를 재빠르게 기어가고 있었다.
나는 검지 손가락으로 재빠르게 그것을 짓눌렀다. 1밀리도 되지 않을 그것은, 당연히 먼지처럼 존재를 잃고 만다. 개미보다도 작은 벌레 따위는 시험이 코앞인 내게, 신경 쓸 거리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다시 펜의 색깔을 바꿔 보라색으로 밑줄 아래 주석을 달고 있을 때, 나는 똑같은 벌레 한 마리를 또 발견했다. 의아하며 그것을 눌러 죽이는 사이, 스탠드 밑을 기어가는 또 다른 그것을 본다.
나는 그제야 의자를 빼고 엉덩이를 돌려 방의 불을 켰다. 한 평 남짓한 고시원의 좁은 방은, 일어나 걸을 잠깐의 거리조차 허용하지 않아 독방에 갇힌 무기수처럼 언제나 허리가 삐걱거린다. 어둠에 익숙한 눈이 눈부신 형광등 아래 번쩍거리는 은색 자명종을 더듬었다. 3시… 커튼을 내려놓은 밖은, 낮인지 밤인지 순간 헷갈린다.
아아, 분명 밥을 먹고 들어왔었지. 조금 전 밥을 먹었다면 낮 3시다. 밤 1시에 밥을 먹으러 나가지는 않으니까. 나는 천천히 책상을 살폈다. 스탠드 밑의 벌레는 하얗고 작은 몸뚱이를 부지런히도 움직이고 있다. 이것은 아버지의 낡은 책들 사이에서나 보았던 ‘책벌레’가 아니던가? 다시 검지 손가락을 쓰면서, 내가 너무 예민해진 것은 아닌가 자문한다.
기껏 이런 벌레를 가지고서….
다시 불을 끄려고 할 때, 나는 보았다.
침대 옆 벽면에 점점이 붙어 있는 그것들을. 그리고, 이불에도 몇 마리, 책꽂이 사이사이에도 몇 마리…. 오랫동안 버리지 않고 놔두었던 종이컵을 들추자 서너 마리가 한꺼번에 몰려나온다. 사람과 함께 사는 벌레라면 쥐, 바퀴벌레, 모기, 파리… 이런 것들 아니던가?
그런 것들도 끔찍하지만, 그것들 대신 이 낯선 벌레떼를 동거인으로 받아들일 용의는, 전혀 없었다. 나는 손에 잡히는 대로 티슈를 뽑아 그것들을 누르고 쓸어 담았다. 눈앞에서 놓치면 그대로 숨어든다는 절박함에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였다. 책상과 벽면을 닦고, 침대를 살피고, 방 안의 쓰레기들을 모두 버렸다. 너무 오랫동안 청소를 하지 않았던 탓인지도 모른다는 자책마저 들었다.
마지막으로, 책을 하나씩 뽑아 위 아래 옆면을 샅샅이 살핀다. 뽑아드는 책마다 어김없이 벌레가 한두 마리씩 나왔다. 나는 점점 울고 싶어졌다.
이것들이 어디에 어떻게 숨어 있는 줄 알고 전부 잡는단 말인가. 언제 이렇게 벌레가 많아진 것인지, 내 몸에 기어다니는 것은 아닌지 나는 손을 살피고 팔을 살피고 미친 듯이 옷을 벗어 털었다. 벌레가 두 마리 보였던 침대 위 이불은 세탁기에 집어넣고 60도 온도의 세탁 버튼을 눌렀다. 그 정도 온도는 되어야 보이지 않는 것까지 다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침대엔 얇은 무릎덮개 하나만 깐다. 진한 갈색이라 하얀 점이 눈에 띌 것이다.
이렇게 1시간가량 벌레와 사투를 벌이고 난 뒤에, 포털 지식검색 사이트가 생각났다.
나는 그제야 의자를 빼고 엉덩이를 돌려 방의 불을 켰다. 한 평 남짓한 고시원의 좁은 방은, 일어나 걸을 잠깐의 거리조차 허용하지 않아 독방에 갇힌 무기수처럼 언제나 허리가 삐걱거린다. 어둠에 익숙한 눈이 눈부신 형광등 아래 번쩍거리는 은색 자명종을 더듬었다. 3시….
그래, 물어보자. 오천만의 국민이 지식인이 되어 대답해줄 것이다. 나는 의자에 앉는 것도 께름칙해 몇 번이나 닦고 확인한 뒤에야 컴퓨터를 켰다. 이 벌레의 정체를 빨리 밝히는 것만이 살길이다. 몇 번의 검색 끝에, 여러 사람의 답변을 거쳐 이것의 실체를 찾아냈다.
[먼지다듬이: 몸길이가 1~3mm 정도 되는 미세 곤충이다. 때문에 알의 이동이 용이하여 확산이나 번식력이 크다. 생존 적정 습도는 75~80%고, 먼지나 미세한 균, 곰팡이 등을 먹고 산다. 주요 서식처로는 습한 바닥, 배관 틈새, 벽 틈새, 화분 주위, 목재가구류, 책이나 종이 사이, 적재된 종이상자, 나무껍질 속, 해묵은 돌 표면, 낙엽 속 등지이다.]
한 마리 표본을 잡아 자세히 비교한 결과, 사진도 일치한다. 엄지손톱만 하게 확대되어 버젓이 나붙은 그것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어찌나 끔찍한지, 나는 서둘러 이것의 박멸 방법을 찾았다. 비록 한쪽 방을 얻어 쓸 뿐이지만, 이곳은 엄연히 나의 유일한 주거지이므로.
그러나 1시간을 탐색해보아도, 긍정적인 반응은 별로 없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 벌레가 여간해선 없어지지 않는다고 호소하고 있었다. 심지어 유명 해충박멸 업체마저 완전한 박멸에는 의구심을 보인다. 더구나, 지금은 장마가 시작되는 7월이다. 습한 곳을 좋아하고, 책이나 종이 사이를 좋아하고, 벽 틈새를 좋아한다니…. 내 방은 반지하에다 지난 3년간 쌓인 수험서와 헌책들로 반절은 채우고 있다. 창문 앞은, 시멘트로 일정 공간을 만든 벽, 그 자체였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 컴퓨터를 껐다.
일단은 며칠 더 지켜보기로 한다. 그래, 어쩌면 기분 탓인지도 모른다.
낙관은 언제나 사치였다. 벌레는 죽여도 죽여도 끝없이 나온다. 그것의 출처는 분명치 않았지만, 창틀에서도 넘어오고 책꽂이에서도 나오고 벽면에서도 나왔다. 내 방의 사방 벽이, 그것들의 천국이었다. 학원 수업도 받고 있지 않는 요즘, 나의 생활공간은 그 한 평의 방에 한정되어 있다. 24시간 중 잠자는 6시간을 제외하고는 18시간 내내 벌레를 생각하고, 벌레를 찾고, 벌레와 함께하는 셈이었다. 그나마 잠자는 시간에도 몸을 스멀스멀 기어다니는 느낌에 몇 번이나 잠에서 깨고, 책을 볼 때도 글씨보다 벌레의 흔적을 찾는 데 골몰함은 물론, 창틀이며 벽면이며 구석구석을 살피느라 눈이 빠질 지경이다.
나는 마침내 분연히 일어났다. 이대로는 견딜 수 없다.
“벌레요? 그냥 개미 아니에요?”
벌레와의 신경전으로 지칠 대로 지친 내게, 몇 년째 경찰시험으로 재수 중이라는 그의 신통찮은 반응은, 즉각적인 짜증을 불러왔다.
“그게 아니라, 먼지다듬이, 책벌레라고 부르는 그 벌레 말이에요!”
“아아, 이름이 뭐든 간에요. 그게 어쨌다는 말입니까?”
수험생이 무슨 머리를 다 볶았을까, 나는 한심한 눈으로 그를 훑으며 소리쳤다.
“그게 우글우글하다고요! 제 방에! 이불에도 벽에도 책에도, 치워도 치워도 우글우글!”
성의 없이 어슬렁거리는 그를 데리고 방에 들어갈 때, 나는 다소 수치심을 느꼈다.
내 사적인 공간을 누군가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불쾌함과, 책들과 정리되지 않은 채 처박힌 자질구레한 짐들에 대한 부끄러움이 복합되었다. 노량진 가장 끄트머리에 신축된 이 고시원으로 옮겨온 것은 반년 남짓 되었다. 반년 동안의 외롭고 지난했던 내 생활은, 여기저기 쑤셔보고 펼쳐보는 그에 의해 파헤쳐지고 유린된다. 이윽고, 그가 판결문을 읊조리듯 말했다.
“책이 이렇게 많으니 책벌레가 나올 수밖에 없겠네요.”
나는 항변한다.
“제 잘못으로 벌레가 생겼단 말이에요?”
“그게 아니라, 책이 그만큼 많다는 거예요. 그리고 제가 볼 땐 별로 보이지도 않는데….”
그가 말꼬리를 내리면서도 별거 아니라는 듯 넘어가려는 술수를 보였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물어보면 될 거 아니에요? 모르긴 몰라도, 이 건물 어딘가에 이것들 서식지가 있는 거라고요! 새 건물이라 믿고 들어왔더니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이 이런다니!”
앙칼진 내 외침에 그가 머쓱한 듯 머리를 긁는다. 지난 3년 동안 다른 데 드는 돈은 철저하게 아꼈지만, 고시원 방만은 깨끗한 곳에 있자는 것이 내 원칙이었다. 멋모르고 처음 들어갔던 23만원짜리 방은 지저분한데다(가끔 바퀴벌레도 나왔다) 식당도 엉망이어서 당장에 나와버렸다. 그다음 방은 28만원짜리였는데, 방도 깨끗하고 위생 상태도 좋았지만 건물 증축을 이유로 정전이 되거나 소음이 심해 나왔다. 그다음도, 그다음도 마찬가지였다. 노량진 어디서나 밀려드는 수험생을 수용하기 위해 공사가 끝없이 이어진다. 돈을 버는 것은, 건축업자나 고시원장들뿐이다. 마지막으로 택한 이곳은, 반지하인데다 그 전보다 몇 뼘 정도 작은데도 32만원이나 주고 들어왔다. 꼭대기에 있어 근처가 조용하다는 것과 신축 건물이라는 그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그런, 비싼 방이, 벌레 소굴이라니! 나는 그를 끌고 내 옆방의 문을 두드렸다.
“아아, 그 하얀 벌레요? 그거 뭐예요? 팔에 기어다는 거 보고 깜짝 놀라서 에프킬라 사다가 뿌렸는데….”
내 옆방에 사는 그녀는, 임용고시 준비생이다. 임용고시 준비생은 공무원이나 경찰시험 준비생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1차적으로 대상자가 걸러지는 교원자격증의 보유 덕분인지 시험에 대한 나름의 여유와 세련된 옷차림, 스터디 등을 통한 사람들과의 적절한 유대관계까지…. 내 일방적이고도 주관적인 편견에 의하면, 그들은 노량진에서 가장 일반인다운 그룹이었다. 그녀의 방에서도 임용준비생답게 향긋한 레몬향이 퍼진다. 그녀의 트레이닝복은 핑크색 유명 메이커 세트였다. 아기 같은 뽀얀 뺨과 갈빛 머리를 뒤로 묶은 모습이 내 보기에도 어여뻐 총무라는 작자가 헤벌쭉 웃으며 인사하는 것을 이해하고 만다.
“왜요? 그게 뭔데요? 종종 보이던데….”
엄마에게 묻는 호기심 어린 아이처럼, 그녀의 눈이 빛났다.
“아닙니다. 이 분이 좀 예민하신가봐요..”
총무는 그녀에게 신사다운 말투를 쓰며 일을 수습한다. 나만 바보가 될 순 없었다.
“그 벌레 말이에요! 책벌레 그거, 많죠? 여기저기서 많이 나오죠? 벽에도 나오고 창 쪽에서도 넘어오지 않나요?”
그녀가 도전적인 나의 태도에 놀랐는지, 머뭇거렸다.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
총무가 씨익 웃으며 나를 돌아봤다. 거 보라고요, 란 말을 얼굴에 쓴 채. 돌아본 다른 방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게 있어요? 찾아보면 있을라나요? 제가 눈이 나빠서 등등…, 잠시 뒤 나만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낙관은 언제나 사치였다. 벌레는 죽여도 죽여도 끝없이 나온다. 그것의 출처는 분명치 않았지만, 창틀에서도 넘어오고 책꽂이에서도 나오고 벽면에서도 나왔다. 내 방의 사방 벽이, 그것들의 천국이었다.
힘없이 방으로 돌아온 나는, 수없이 밀고 닦았던 방 안을 다시 꼼꼼히 살핀다. 며칠 새 그것은 습관이 되어버렸다. 아아, 아니나 다를까, 또 여기저기 그것이 붙어 있다. 미쳐버릴 것 같다. 차라리 내가 그 사람들 방을 살펴볼걸…. 나는 중얼거리면서 에어컨을 강하게 켰다. 따뜻하고 습한 것을 좋아한다니, 에어컨으로 얼려 죽여보자 생각한 것이다.
책상 위에는 며칠 전부터 보던 수험서가 비슷한 페이지로 놓여 있었다. 이런 식이라면, 이번에도 낙방이다. 이번에도 낙방하면, 귀향은 영영 글렀다.
지난달, 석 달 만에 집에 내려갔다. 매달 30만원의 고시원비를 포함해 60만원을 공수받고, 일주일에 한 번가량 안부 전화를 나누는 부모님은, 퇴직한 공무원이다.
두 분은 연금이 보장된 여유로운 생활 속에서도 단 하나의 짐, 곧 눈엣가시인 나로 인해 고통받고 있었다. 위로 오빠와 언니, 동생은 모두 진작부터 각각 다른 직종의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으니 걱정이 없었고, 스물일곱이 되도록 대학원을 간다, 만화를 그린다, 뜬구름만 잡던 내가 공무원시험 준비를 하겠노라 선포했을 때, 두 분은 참으로 기뻐했었다.
그래, 너라면 올해 안에 될 거다. 우리가 어떻게든 뒷바라지를 하마.
그러나 나는 해를 넘기고 또 넘기도록 합격하지 못했고, 올해로 3년을 꼬박 채우고 있었다. 두 분의 얼굴은 만날 때마다 더 어둡고 늙어져간다. 결혼한 오빠는 조카를 데리고 와 고모에게 재롱을 부려보라 재촉하고, 언니는 결혼 준비를 한다고 패물 수를 헤아렸다. 동생은 남자친구가 내년쯤 결혼을 조른다고 은근히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렇게, 나만 무리에서 떨어진 낙오자 같았다. 서울역에서 달려온 버스가 노량진 앞 육교에 나를 토해놓고 돌아가면, 나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줄지어 선 포장마차에 빽빽이 선 수험생들 속에서 1천원짜리 토스트로 허기를 달래노라면, 모두가 나처럼 낙오자란 생각에 기운이 솟기까지 했다. 이젠, 3년의 시간이 아까워 되돌릴 수도 없다. 올해 죽기 살기로 해보고, 아니 되면 영영 연기처럼 사라지는 수밖에 없다. 가족에겐 면목이 없어 도저히 돌아갈 수 없고, 나는 ‘실패자’란 단어와 함께 세상이란 게 점점 더 두려워졌으므로.
일단, 한 주간은 버렸다 생각하자 스스로를 달랬다. 자괴감은 곧 자멸이다. 그리고 해볼 수 있는 것은 다 해보자고 결심했다. 먼지 속에 수북이 쌓인 헌 수험서와 책들을 하나씩 살피며 분류한 것은, 그것들을 퇴치하기 위한 첫 번째 방책이었다.
-먼지와 책과 종이 사이를 좋아함
메모지에 동그라미를 치며, 서너 차례에 걸쳐 책과 묵은 종이상자들을 내버렸다. 남은 수험서들은 걸레로 잘 닦아 새로 사온 상자 속에 차곡차곡 넣었다. 시험을 앞두고 이런 청소질을 한다는 것이 한심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다.
-따뜻하고 습한 것을 좋아함
또 동그라미를 쳤다. 에어컨을 틀어놓은 지 한참이나 되어 코딱지만 한 방은, 이미 냉장고가 되었다. 한여름이라지만, 한없이 온도가 내려가는 작은 방에서 쪼그리고 앉아 책들을 정리하고 묶자니, 생리가 올 것처럼 허리가 묵직하다. 어딘가 상자 속에 처박혀 있던 긴 잠바를 찾아 입었다. 내가 힘든 것보다는 그것들이 더 힘들 것이라 생각하며 참아야 한다. 실제로, 구석구석 보이던 그것들의 움직임이 얼마쯤 둔화된 것 같다. 나는 쾌재를 부른다. 좋다, 좋아. 박멸까진 아니어도 쫓아낼 순 있다. 희망이 샘솟았다. 이런 쓸데없는 일에 절망하고 희망한다는 것이 우습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이보다 더 간절하고 긴박한 일이 또 있을까.
-나프탈렌을 싫어함?
동그라미를 치려다 말고, 물음표를 찍었다. 나프탈렌? 그건 좀약이 아니던가.
하지만 이내 의구심을 버린다. 포털 사이트의 지식인을 나는 믿는다. 좀약이 아니라 무좀약이라도 바르라면 바를 수 있다. 지갑을 들고 10분 거리의 마트로 달려간 나는, 나프탈렌, X락스, 돋보기, 플라스틱 상자 여러 개를 골랐다. 이달의 생활비가 거의 떨어져가고 있었지만, 1천원짜리 김밥 한 줄로 끼니를 때우더라도 여기에 돈을 아낄 수는 없다. 약국에 들러 그것들에게 효과적이라는 살충제도 하나 샀다. 한 보따리 짊어지고 이고 돌아오는 길이, 그렇게 든든할 수 있다니. 나는 무거운지도 모르고 신나게 고시원으로 올라간다.
그는 ‘104호님’이란 내 호칭을 또박또박 발음해 말했다. 이곳에서 나는 이름이 없다. 누구도 나를 불러주지 않는다. 불러주길 바라지도 않는다. 통성명을 하며 관계를 만드는 동시에 낙방의 길이다.
“104호님!”
고시원 현관문을 들어서는데, 총무가 자기 얼굴만 한 창문에 대고 짜증 어린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참으로 주객전도가 아닐 수 없다. 이 망할 놈의 고시원 건물에 대고 짜증을 낼 사람은 나란 말이다.
“왜요?”
나도 신경질적으로 되물었다.
“저거, 저거 보세요.”
그가 고개를 외로 꼬며 가리킨 곳엔 내가 버린 쓰레기들이 수북했다.
“저거, 분리수거 제대로도 안 하고 저렇게 버리시면 어떻게 합니까?”
책과 종이상자 외에도 그간 쌓인 잡동사니를 한꺼번에 버린 게 화근이다. 나는 다소 무안해졌다.
“저거 하려면 얼마나 걸리는지 알아요? 104호님만 수험생 아니잖아요. 저도 일하면서 공부하는 게 쉬운 줄 아십니까? 뭔 가당치도 않은 벌레 가지고 트집을 잡으시더만, 이젠 저런 걸로 스트레스를 주시냐고요.”
그는 ‘104호님’이란 내 호칭을 또박또박 발음해 말했다. 이곳에서 나는 이름이 없다. 누구도 나를 불러주지 않는다. 불러주길 바라지도 않는다. 통성명을 하며 관계를 만드는 동시에 낙방의 길이다. 나는 일단 한 걸음 물러서기로 한다. 벌레 퇴치 작전이 모두 통하지 않는다면, 나는 화려한 화장과 미스코리아대회용 사자 머리를 하고 가끔씩 들르는 그 고시원장에게 따져 물을 테니까.
“미안해요…. 이거라도 드시고 화 푸세요. 이제 다신 안 그럴게요.”
생활비가 오는 다음주 금요일까지 맞추어서 산, 350원짜리(이곳에선 어디서 유통되는지 유명 메이커와 똑같은 저가 제품이 어디에나 있다) 캔커피 중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내 유일한 사치생활 품목을 그에게 양보하는데도, 그는 그 영광을 깨닫지 못하고 찌푸린 얼굴로 마지못해 받아 든다.
“앞으로 주의해주세요.”
나는 방으로 들어서며 씩씩대고 있었다. 벌레가 나오는 방을 임대해준 주제에 참으로 아니꼽다. 하지만, 총무와 관계가 나빠져봤자 좋을 것도 없으니 참기로 한다. 엄마가 송금을 잊어버려 방값이 며칠 밀릴 때부터 꼭대기 층에 있는 자그마한 독서실 자리를 전날 맡아놓는 것까지 어디에나 그의 보이지 않는 권력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분을 풀지 못하고 침대에 걸터앉는데, 침대 머리 벽에 기어가는 그것이 보인다.
휴, 나는 한숨을 내쉬며 사온 것들을 풀어놓았다. 일단, 나프탈렌을 책꽂이 사이사이, 서랍 칸칸이, 침대와 책상 밑, 옷장 속과 바닥, 심지어 벽에도 붙인다. 곧 그것의 지독하면서도 묘하게 자극적인 냄새가 피어올랐다. 콧속에서 물이 흐를 듯하더니 이내 목구멍으로 꿀꺽하고 침이 넘어간다. 약의 화학작용 때문일까? 어쨌든, 나는 만족한다. 그 냄새가 지독해질수록 그것들도 이곳을 벗어나려고 할 테니까. 그다음은, ×락스 차례다.
창밖에 연결된 창고 같은 공간은, 원래는 반지하 방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것이지만, 비가 계속 오는 사이 습기의 원천이 되어 가끔 곰팡내가 퍼져오고 있었다. 그곳에서 벌레가 넘어온다는 것은, 며칠간 창틀을 관찰한 결과 알았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도 창틀엔 개미떼처럼 그것들이 종종 모여 있다. 나는 독성이 강한 락스를 원액 그대로 창틀에 붓는다. 코끝을 싸하게 만드는 락스 냄새가 치켜 올라와 고개를 돌렸다. 그나마 향락스로 고르기를 잘했다 싶다. 창틀을 강으로 만든 락스 위로 그것들의 시체가 둥둥 떠올랐다. 하하하, 나는 크게 웃다가 깜짝 놀란다.
언제 마지막으로 웃어보았던가. K가 내게 마지막으로 돈을 빌린 날이었던가?
거리에 나서면, K는 늘 한 걸음 앞서 종종걸음을 했다.
“같이 가면 안 돼?”
“소문나면 안 돼. 이 바닥 몰라?”
그는 노량진 골목의 수많은 학원 중 한 곳의 젊은(나와 두 살 차이뿐이었다) 영어 강사였다. 유명하지도 인정받지도 못한, 세트수업 강의 중 하나를 간신히 맡은, 생업용 강사.
어느 겨울날, 거리에 삼겹살 집이 하나 생겼다. 거리를 가득 메운 고기 굽는 냄새에 눈이 뒤집힐 정도로 삼겹살이 먹고 싶었지만, 노량진에 한 명의 친구도 만들지 않은 나는 혼자 식당에 들어갈 용기가 없었다. 그때 그를 만났다. 그는 취했는지 비틀거리며 걸어오다 그 집 앞에 멈춰서 담배를 하나 빼어 물었다. 나는 그의 수업을 세 번 이상 들었으므로(그를 선택한 것은 아니고, 세트수업이었기 때문이다), 그를 금방 알아봤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꾸벅하자, 그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어… 학생이네. 삼겹살 좀 먹을래요?”
나는 그가 나를 알아본 것에 감격했다. 선생님에게 인정받은 어린 제자처럼. 그러고는, 삼겹살을 먹자는 말에 두 번 감격한다. 아아, 나는 정말 그것이 먹고 싶었다. 오랫동안 고기 기름이라곤 식판에 얹어진 붉은 돼지 불고기 양념뿐이었다.
그를 만난 석 달 동안,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삼겹살을 먹을 수 있었지만, 통장에 있는 잔고 350만원은 모두 사라져버렸다. 분명히 말하건대, 그가 달라고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느 때나 그에게는 돈이 급했고, 나는 노량진에 오기 전 소소한 알바로 모았던 돈을 내주기를 주저할 수 없었다. 월급을 꼬박꼬박 타고 있는 그가 왜 나보다 그리 쪼들리는지 의심도 하지 못했다. 적어도 그땐, 그를 사랑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와의 사랑이 내 모든 영혼을 구원하고 있다고 믿을 정도였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노량진의 첫 살이에 지쳐 그만큼 배가 고프고, 외로웠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50만원을 건네던 날, 그는 말했다.
“넌 정말 천사야. 네가 없었다면, 난 이곳을 견딜 수 없었을 거야. 내가 나중에 열 배, 스무 배로 갚을게.”
그의 눈은 진심 어린 감회로 촉촉하게 젖어 있었고, 두 손은 내 손을 꽉 쥐고 있었다. 나는 크게 웃었다. 그에게 구원이 되었다는 것이 그렇게 기쁠 수 없었다. 이 세상에서 내가 쓸모 있어진 첫 번째 순간인 것처럼. 하지만 그 뒤로 그를 보지 못했다. 그가 주말마다 카지노에 살다시피 했고, 사채업자들이 학원까지 쫓아왔다는 것은, 학원에 떠도는 소문에서 알았다. 나는 이곳을 벗어날 때까지, 이곳의 누구와도 통성명을 하지 않겠다고 다시 다짐했다. 더 이상 배도 고프지 않고, 외롭지도 않았다. 삶이란 원래 무채색인 것처럼, 늘 반복되는 수업과 밤샘, 홀로 먹는 식사가 그 뒤 생활의 전부다.
나프탈렌과 락스 냄새가 뒤섞인 방은 옷장이나 화장실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나는 오히려 그 냄새가 나를 지켜주는 듯 적이 안심이 되었다. 책상에 앉자, 공부도 제법 된다. 이제 벌레만 없어지면, 다시 원래의 패턴대로 시험 준비에 돌입하는 거다. 앞으로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벌레 때문에 허비한 시간을 생각하면, 잠잘 시간도 모자라다.
그렇게 허망한 희망으로 한 주간을 더 버텼다.
그러나 벌레는 내 주거 공간에서 떠나갈 의향이 전혀 없었다. 나는 날로 말라갔고, 콧물도 멈추질 않았다. 지독한 나프탈렌과 락스 냄새 때문이었지만, 그것들을 치울 엄두는 내지 못했다. 큰 효과는 없었지만, 이것마저 없다면 벌레들은 더욱 몰려올지 모른다. 절망적인 기분으로 책상에 앉아 그것들의 움직임을 바라보고 있는데, 미선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녀는 노량진에 있는 유일한 고향 친구다. 벌써 두 달 가까이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 늘 내 쪽에서 공부를 핑계로 만남을 거절한 탓이었다. 하지만, 오늘만은, 나도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녀는 내 얘기를 다 듣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벌레? 그런 벌레가 다 있나? 어릴 때 보고 못 본 거 같은데….”
“너네 고시원엔 없나 보지. 우리 고시원은 정말 벌레 소굴인데, 아무도 그걸 몰라줘.”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안쓰러운 얼굴을 했다. 아아, 역시 친구뿐이다.
“네가 요즘 힘든가 보다. 그런 거에 신경을 다 쓰고….”
그녀의 말에 나는 적잖이 실망했다.
“기분 탓이 아니야. 정말로 그것들이 엄청나게 많다고….”
나는 종이컵에 든 커피를 벌컥, 모두 마셔버렸다.
“그래… 그러면, 원장한테 말을 해봐. 요즘은 방역업체도 좋은 데가 많잖아. 불러서 소독도 하면 효과가 좀 있을 텐데. 아니면, 방을 바꿔달라고 하든가. 그래도 벌레가 나오면 다음달에 다른 곳으로 옮기면 되잖아.”
그녀는 내가 심상치 않아 보였던지, 조곤조곤 달래는 투로 말했다. 나는 원장이 오는 날이 언제인지를 생각해본다. 예전에 듣기로, 그녀는 수요일과 금요일만 들러서 6층에 있는 자신의 방에 잠깐 머물다 간다고 했다.
“시험은 어때? 난 이번 지방시험은 포기해야 할까봐.”
그녀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녀도 반년 전부터 나와 같은 공무원시험에 뛰어들었다. 그녀마저 이 끝없는 터널에 빠져드는 게 무서워 만류했지만, 그녀도 선택할 여지가 없다 했다.
“나도 그렇지…. 벌레 때문에 지난주에도 책 한 자도 못 보고….”
“그런데 넌 왜 그 시험만 고집해? 다른 시험도 좀 보지.”
그녀는 내가 매년 7·8월에 있는 7급 시험만을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준비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9급 시험이든 소방직이든 닥치는 대로 보고 있었다는 것은 모른다. 그럼에도 언제나 낙방이었다는 것이, 그녀에게도 거짓말을 하게 하는 이유였다.
“한 우물만 파려고….”
나는 미소를 짓고 싶었지만, 입술이 올라가질 않았다. 그러면서, 내가 정말로 이것저것 찔러대고 있어서 아무것에도 합격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핑계를 찾는다.
“아, 다음주엔 강식이랑 롯데월드에 다녀오기로 했는데. 히…. 수험생이 이 모양이다.”
그녀의 남자친구는 잠실에 살고 있는 직장인이었다. 그래서일까, 언제나 그녀는 ‘사람다운’ 생활을 여전히 유지한다. 낙방을 해도 별로 실망하지 않는다. 그런 그녀가, 나는 부러웠다. 그녀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 나는 원장을 독대하겠다고 결심한다. 어떻게든 이번 일을 마무리지어야지만 이 지옥의 터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원장님요? 왜요?”
총무는 의심에 찬 눈으로 나를 훑었다.
“드릴 말씀이 있으니, 만나게나 해주세요.”
나도 강하게 나가기로 했다. 지금 당장 내 방에 가보면 벌레를 죽인 화장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을 테니까. 그가 떨떠름한 얼굴로 전화를 들었고, 한참 뒤에 ‘띵’ 하고 엘리베이터 소리가 났다. 그녀는 오늘도 스칠 때마다 보았던 화려한 화장을 하고, 진한 향수 냄새를 풍긴다. 끈으로 연결된 호피무늬 민소매를 입고 나타난 것도 역시 그녀스럽다.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얘길 들어보면, 그녀가 야쿠자의 애인이란 소문도 있었다.
“무슨 일이죠?”
나는 주먹을 꼭 쥐고 용기를 내려 했지만, 주책없는 심장이 쾅쾅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요즘 들어 점점 더 사회성이 떨어져가고 있었다.
“벌레가요. 하얀 벌레가, 엄청나게 많아요. 방에요. 화장실에서도 몇 마리 발견했어요. 책에서도 나오고, 벽에서도 나오고, 창틀에도 많고요.”
그녀의 눈이 날카로워졌고, 뒤에선 총무의 짜증스러운 한숨이 느껴졌다.
“제가 어떻게 참아보려고 했는데, 이건 정도 이상이에요. 방역업체를 불러서 소독을 해주시든지, 방을 옮겨주세요. 안 그러면 다른 곳으로 가게 환불을 해주시든지요.”
그녀의 눈초리에 짓눌려 마지막엔 숨이 차올라 침을 몇 번이나 삼켜야 했다.
“그러니까.”
얼음을 갈아넣은 듯 차가운 목소리였다.
“우리 건물에 벌레가 많고, 아가씨 방에도 그 벌레가 나온단 말이지요?”
나는 주눅 든 아이처럼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벌레라면, 나도 싫어하니까.”
그녀가 고개를 돌려 총무를 바라본다.
“저번에도 이분이 한번 말씀하셔서 살펴봤는데요, 별로…. 다른 사람들도 말이 없고요.”
총무는 땀을 흘리며 변명했다.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봐 걱정스러운 모양이었다.
“제가 한번 가보죠. 몇 호인가요?”
그녀가 나와 총무를 따라 걸어왔다. 굽이 뾰족하고 매끄러운 그녀의 암갈색 실내화가 똑똑 소리를 내며 복도에 울린다. 방문을 열자, 옷장이나 화장실에서 나는 비슷한 냄새가 확 밀려나왔다. 얼굴이 붉어졌다.
“그 벌레 퇴치에 좋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저런 것들을 좀….”
둘은 정말로 놀란 듯했다. 원장은 차마 들어서지도 못하고 고개만 들이밀고 나프탈렌이 여기저기 붙고 플라스틱 상자에 정리된 책들과 벽과 거리를 두어 떨어뜨려놓은 침대 등을 살폈고, 총무는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들어와 락스에 변색돼가는 창틀을 본다.
“104호님! 이런 식으로 하시면, 저희 건물을 오히려 손상시키시는….”
“총무, 알았으니까 나와.”
내게 항의하려는 총무를 원장이 끌어냈다. 나도 주인의 눈으로 바라보면 어쩐지 미안하긴 했지만, 다 그놈의 벌레 때문이지, 내 탓이 아니란 말이다.
“방역업체에 의뢰해서 철저히 조사하고 처리해달라고 해.”
총무실 앞까지 함께 걸어온 원장이 총무에게 말했다. 나는 그녀의 뾰족한 굽에 키스라도 할 수 있을 만큼 기뻤다.
“감사합니다.”
내 인사에 그녀는 고개를 까딱해 보이고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탄다. 총무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다. 나는 발걸음도 가볍게 복도를 사뿐사뿐 걸어 벌레의 방으로 되돌아온다. 업체의 전문가들이라면, 분명 이 문제를 해결해주리라. 시험에 붙은 것보다도 더 마음이 가벼웠다.
기쁨이 더 큰 실망이 된 것은, 불과 이틀 후였다.
이틀 동안, 나는 참말로 그것들과 기쁜 동거를 할 수 있었다. 이내 사라져버릴 것들이었으므로. 하지만 이틀 후, 총무가 나를 불러 업체의 소독 방식이 고시원 사정에 적합하지 않아 도저히 방역을 할 수 없다는 말을 했을 때는, 천국에 매달린 내 동아줄을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트리는 것처럼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신, 원장님이 다른 방으로 옮겨주라고 하시네요. 마침 403호가 났는데, 4층이면 햇빛도 잘 들고, 송풍도 잘 되니 벌레 얘기는 없으시겠지요. 옮기시기 전에 방부터 확인시켜드릴 테니까, 뒷말 없으셨으면 하고요. 퇴원 하실 생각이면 미리 말씀해주세요. 물론 중간에 환불은 안 되니까 다음달부터요.”
그는 내 방을 다녀간 뒤로, 나를 약간 정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한다. 눈도 마주치지 않고, 내가 지나가면 사람들과 키득거릴 때도 있었다. 아아, 그것도 나의 기분 탓일까. 우리는 함께 4층으로 올라가 방문을 열었다. 바로 짐을 뺀 듯 사람의 체취가 아직 남아 있는 깨끗한 방이다. 오후 4시의 오렌지빛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고, 더위가 한풀 꺾인 따듯한 바람이 젤리처럼 말랑말랑하게 밀려드는 것이 나는 도리어 낯설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반지하의 내 방은 비가 내리는 듯 어둡고 축축했으므로. 이곳이라면, 그래, 이곳이라면, 벌레도 없을 거야. 나는 조심스럽게 방을 둘러본다. 제발, 그것들이 보이지 않기를 소망하며.
“여기 쓰던 분이 합격하셔서 나갔으니, 좋은 방이에요.”
총무가 무슨 생각에선지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바심치는 내 모습이 가엾었던 걸까? 여긴 좋은 방이다. 단지 내가 방 운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되뇌던 순간, 나는 보았다. 책꽂이 옆을 지나 천장으로 기어 올라가는 그것을. 내가 미동도 없이 서 있자, 그가 재촉한다.
“없죠? 그럼 내일 중으로 방 옮기세요. 행여 이 방에도 이상한 거 하지는 마시고요.”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방으로 돌아왔다. 좌절감이 머리를 짓눌러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4층으로 가거나, 다른 고시원으로 옮긴다 해도, 그것들이 나를 따라올 것이란 불길한 예감마저 들었다. 어쩌면 내 평생의 숙명이 될지도 모른다.
나는 영영 그것들에게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고시원 옷봉에 목을 매단 수험생의 이야기가 남의 일이 아니다. 어쩌면, 나의 오늘이거나 내일이다. 침대에 몸을 웅크리고, 이불을 덮은 채 마른 눈물을 삼키다 잠이 들었다. 혹시 벌레가 보이지 않을까봐 불도 끄지 못해 환한 형광등 불빛이
눈꺼풀을 파고들었다. 여기가 바로, 지옥이다.
2주째 공부를 하지 못했다. 책들은 지난 3년간 보고 또 보고 해온 것들이지만, 2주간 손을 떼고 있었다는 것은 시험에 대한 감을 잃는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그리고 그 ‘감’이란 것은 시험의 ‘운’과 같은 뜻이었다. 나는 분명 이번에도 낙방할 것이다. 부모님은 한숨을 내쉴 것이고, 올케는 가끔 남편이 용돈을 보내주곤 하는 시누의 존재를 마땅찮아 할 것이다. 동생은, 예비 시부모님께 나의 직업을 무어라 말해야 할까. 친구들 중 누구는 떳떳하게 돈을 벌고, 누구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때론 집을 산다 차를 산다 고민하며 평범하게 살아가는데, 나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눈으로는 벌레를 찾고, 손으로는 그것을 집어 던지고 있었다.
내가 미쳐가는 것은 아닐까? 고시원 옷봉에 목을 매단 수험생의 이야기가 남의 일이 아니다. 어쩌면, 나의 오늘이거나 내일이다. 침대에 몸을 웅크리고, 이불을 덮은 채 마른 눈물을 삼키다 잠이 들었다. 혹시 벌레가 보이지 않을까봐 불도 끄지 못해 환한 형광등 불빛이 눈꺼풀을 파고들었다. 여기가 바로, 지옥이다.
따라라라랑∼ 따라라라랑∼ 따라라라랑∼.
엄청난 굉음에 눈을 떴다. 처음엔 꿈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내 정신이 들었고, 그 소리가 화재경보음이란 것을 깨달았다. 복도에서 울려퍼지는 그것의 파워는 상상 이상으로 컸고,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복도를 퉁탕거리며 뛰어가는 소리가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고 있었다. 쿵, 쿵, 심장이 뛰었다. 고시원에 불이 나다니. 어디에서 났을까. 얼마나 났을까. 불이 나면 질식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데, 빨리 나가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나는 침대에서 천천히 일어난다. 어쩌면,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좋은 방법이 아닐까? 나는 귀를 때리는 굉음 속에서도 차분하게 벽과 책상 등을 살폈다. 여전히 벌레들이 스멀스멀 기어다닌다. 나프탈렌과 락스 냄새는 안개처럼 방 안을 감싸고 있었고, 나는 원피스형 잠옷을 하나 입은 채 유령처럼 서 있다.
나는 다시 침대로 기어들어갔다. 옷감에는 잘 붙지 않는 그것들의 특성상 그곳만이 나의 천국이다. 그곳에 영영 머무를 생각이었다. 화재경보음은 계속 괴성을 질러대고,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갔는지 복도는 조용해진 대신, 창밖의 사람들의 웅성임은 점점 더 커진다.
곧 이 지옥이 끝난다는 생각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이제 모두 끝이다. 벌레도, 나도, 절망도, 실패도.
얼마쯤 지났을까. 밖의 웅성임은 그대로인데, 화재경보음도 잠잠해지고, 기다리던 사이렌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불길은커녕 연기 냄새조차 나지 않는 것도 의심스러웠다.
나는 일어나 문을 연다. 복도는 깨끗하게 일자로 뻗어나간 채 고요했다. 뜨거운 느낌이나 라이터 불빛조차 보이지 않는다.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방마다 열린 문들이 대피가 얼마나 다급했는지를 보여주었다. 왜 나는, 그 방들에서 벌레를 확인해볼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을까. 벌레는 내 생의 중심에 있었다.
나는 방 하나를 골라 샅샅이 뒤진다. 벽도, 옷장도, 책꽂이도, 침대 밑과 이불도 살폈다.
놀랍게도, 그 방에선 벌레가 보이지 않는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다시 한번 벽을 꼼꼼히 살폈다. 창틀도 보았다. 없다. 없다, 아무것도 없다. 그것이 더 미칠 것 같았다. 이 방만 없는 것일까? 혼자 자문하는 사이에, 방주인이 돌아오고 말았다. 까딱하다가는 도둑으로 몰릴 판이었다.
“벌레…. 벌레가 있는지 보고 있었어요.”
여자의 눈에 천천히 조롱의 빛이 떠올랐다. 뒤에 서 있던 그녀의 동무인 듯한 여자도 그녀의 귀에 대고 무어라 속삭였다. 그녀들은 총무와 친한 그룹이었다. 나는 또 얼굴이 붉어졌다. 붉어지는 얼굴이 원망스러웠지만, 그들이 원망스러울수록 점점 더 뜨거워진 얼굴이 타버릴 것 같았다. 가보세요, 그녀가 인심 쓰듯 말한다. 도망치듯 복도로 나오니, 사람들이 여기저기 모여 원장의 애인이 찾아와 난동을 부리다가 경보 벨을 눌렀다는 얘기를 소곤거렸다. 원장의 민소매 사이로 드러났던 탄력 있는 몸매가 떠올랐다. 그 매끄러운 피부 위로 그것 한 마리가 기어간다면 어떨까, 나는 미친 사람처럼 키득거리며 방으로 돌아왔다.
지옥은 계속된다.
오전에 403호로 이사를 했다. 벌레 퇴치 작전 중에 짐을 많이 내버렸으므로, 중간 사이즈의 플라스틱 상자만 7개쯤 옮기면 되었다. 미선이 와서 거들었다.
“야, 이 방 정말 좋다.”
그녀는 남자친구에게서 받은 커플링 반지를 반짝이며 생긋 웃었다. 어쩌면 곧 그와 결혼할지 모른다. 시험의 합격과 불합격이란 판정을 받지 않고서라도.
“이제 너도 다 잊어버리고 공부에만 전념해. 괜히 이상한 생각만 하지 말고.”
나는 말없이 350원짜리 캔커피를 내밀었다.
“난 이거 찜찜해서 먹기 싫던데. 그래도 어쩜 이렇게 맛은 똑같은지.”
그녀가 먹는 것이 마지막 커피라는 것은 말하지 않는다. 어제부터 아껴두고 있었던 것이다. 벌레 소동에 생활비가 달랑 3천원 남았다. 엄마에게 미리 송금을 부탁하는 것은 내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녀에게 얼마라도 빌릴까 하다가 그만두기로 한다. 식권이 몇 장 남아 있으니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녀를 바래다준다는 핑계로, 거리로 나왔다. 대낮에 아무런 목적도 없이 거리로 나온 게 얼마 만인지 까마득하다. 어디를 갈까, 하다가 사육신공원을 가보기로 한다. 사육신공원에 가면 낙방한다는 유언비어 때문에 한 번도 가질 못했다. 공원은 조용했고, 오래된 나무가 내뿜는 그윽한 향과 멀리 내려다보이는 한강이 시원했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서로 부채질을 해주는 연인 옆에 자리하고 앉았다.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지만, 상관없다. 어쩌면 그 햇살이 내 온몸과 마음에 가득한 벌레를 살균해줄는지 모른단 생각에 일견 시원하기까지 했다. 여기를 벗어나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지, 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뿌연 시야 속에 붉은 꽃이 들어온 것은 한참이 지나서였다. 수십 년은 됐을 법한 커다란 나무에 점점이 매달린 붉은 꽃들. 공원 안쪽이었다. 나는 천천히 그 나무 아래에 섰다. 이름표가 없어 나무 종은 알 수 없었지만, 나무가 머리 가득 짊어지고 있는 붉은 꽃들만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어젯밤 불이 났더라면 저런 빛이었겠지, 생각하니 갑자기 웃음이 났다. 불이 난 줄 알고 죽겠다고 숨어 있었는데, 결국은 한낱 소동에 불과하다니. 나는 웃었다. 크게 웃었다. 사람들이 내 쪽을 힐끗거렸지만 아무렇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 미선에게 전화해 5만원을 빌렸다. 그리고 마트 옆 지업사에 들어가 붉은 꽃이 가득 그려진 화려한 포인트 벽지를 반롤 구입했다. 붓과 풀은 각각 1천원에 샀다.
그러고 나니, 딱 4천원이 남았다. 생일에나 가던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에 들른다.
화이트 초코 모카 라테. 생크림과 초코가루가 듬뿍 들어간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고시원으로 돌아왔다. 달콤하고 들척지근한 맛이 이제까지 중 최고다. 들어오자마자, 나는 벌레 몇 마리를 종이로 살며시 잡아 작은 비닐 병에 담았다. 그것을 들고 나는 엘리베이터의 6층 버튼을 누른다. 6층 복도 끝엔, 큼직한 원장의 전용 룸이 있다. 그 방에 앉아 수금한 방값을 세곤 하겠지. 나는 병을 열어 벌레를 그 문에 기어오르도록 했다. 벌레들이 빠르게 움직이며 문 안쪽으로 숨어 들어갔다. 나는 또 웃는다.
방으로 돌아왔다. 북북, 침대 옆과 맞은편의 벽지를 뜯어내기 시작한다. 그 양 벽에 붉은 꽃이 가득해지는 데는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어느새 해가 기울어, 붉어진 하늘에서 감빛 햇살이 달려 들어왔다. 붉은 꽃이 화려하게 피어나 방 안을 가득 채운다. 나는 그 속에 들어앉은 작은 벌레였다. 웅크린 몸을 쭉 편다. 두 팔을 벌리고, 붉은 꽃 속에 기대어 누웠다. 온몸이 따뜻해지면서 졸음이 밀려왔다. 몇 해 만의,
낮잠이다.
김소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