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회 천강문학상 작품 공모
의병장 곽재우 홍의장군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계기를 마련하고 나라사랑의 충의정신 함양 및 문학의 저변확대와 우수 문인 배출은 물론 인물의 고장인 청정 의령의 가치를 전파하기 위하여 개최하는 제1회 천강문학상 작품을 다음과 같이 공모하니 역량있는 작가들의 많은 응모 바랍니다.
□ 공모부문 : 시·시조, 소설, 아동문학(동시·동화), 수필
O 소설분야 : 중편 1편(200자 원고지 200장 내외), 단편 2편(200자 원고지 80장 내외)
O 시·시조, 아동문학(동시) : 각 10편
O 아동문학(동화), 수필 : 각 3편
□ 작품내용 : 미발표 순수창작 작품
□ 시상내역 : 상패 및 시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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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분 |
대 상 (4명 3,100만원) |
금상 (4명, 1,400만원) |
은상 (8명, 1,800만원) |
동상 (12명, 1,200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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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조 |
1명/ 700만원 |
1명/ 300만원 |
2명/ 200만원 |
3명/ 100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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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설 |
1명/ 1,000만원 |
1명/ 500만원 |
2명/ 300만원 |
3명/ 100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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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문학(동시, 동화) |
1명/ 700만원 |
1명/ 300만원 |
2명/ 200만원 |
3명/ 100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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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필 |
1명/ 700만원 |
1명/ 300만원 |
2명/ 200만원 |
3명/ 100만원 |
□ 공모기간 : 2009년 7월 1일부터 9월 10일까지 ⇒ 당일 우체국 소인 유효
□ 응모자격 : 대한민국 국민(기성문인 포함)
□ 발표 및 시상 : 2009년 10월 16일(금) 11:30
O 당선작은 심사위원의 심사평과 함께 시상식장에서 발표합니다.
□ 기타사항
O 신인의 경우 대상 수상자에게는 기성문인으로 예우합니다.
O 작품의 수준이 시상권에 미치지 못할 때는 시상하지 아니할 수 있습니다.
O 표절, 모방 또는 중복 응모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입상을 취소합니다.
O 모든 부문 응모 시 PC 워드프로세서 작성 제출 가능합니다.
O 이메일로는 접수하지 않습니다.
□ 보내실 곳
O (636-805) 경남 의령군 의령읍 중동리 467-2 충익사관리사무소(의령문인협회)
※ 원고 끝 부분에 전화번호와 주소, 본명, 약력을 명기해야 합니다.
□ 기타문의 : 의령군청 충익사관리사무소 (☎ 055-570-2441)
2009년 6월 3일
천강문학상운영위원회 위원장
홍의장군 정신 기리는 제1회 천강문학상 작품 공모 마감
전국서 820명이 4천5백여편 응모…10월16일 시상식
의령군이 홍의장군 곽재우와 의병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올해 처음으로 제정한 천강문학상 작품 공모에 전국에서 4천5백여편의 작품이 접수됐다.
23일 천강문학상운영위원회(위원장 김채용 의령군수)에 따르면 지난 9월 10일자 우체국 소인까지 포함해 제1회 천강문학상 작품 공모를 마감한 결과 모두 8백여명이 4천5백여편을 접수했다.
분야별로 보면 시?시조가 300명에 2천8백여편, 소설 143명에 200여편, 아동문학 동시 70명 700여편과 동화 70명에 200여편, 수필 237명에 650여편이다.
응모자를 지역별로 살펴보면 경기도와 서울이 가장 많았고 그밖의 전국 시도별로 고른 분포를 보였다. 특히 미국을 비롯해 캐나다와 아르헨티나에서도 모두 6명이 응모를 해 이채를 띠었다.
응모된 작품은 권위있는 심사위원들로부터 예심과 본심을 거쳐 최종 수상자를 가리게 된다.
제1회 천강문학상은 시와 시조를 비롯해 소설, 아동문학, 수필 등 4개 부문으로 총 상금은 7500만원이다. 수상자는 각 분야 대상을 비롯해 금상, 은상, 동상으로 나누어 시상하며, 수상자 수는 모두 28명이다.
시상은 오는 10월 16일 곽재우 장군 탄신 457주년 다례식과 병행하여 곽재우 장군을 비롯한 휘하 17장령과 무명 의병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충익사 경내에서 열린다.
문의 570-2441
| 천강문학상 국내외 호응·수준급 작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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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군이 총 상금 7500만원을 걸고 진행한 소설과 시·시조, 아동문학, 수필 등 네 부문에 걸친 제1회 천강(天降)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소설 주경로(58·미국 거주)씨, 시·시조 백점례(50·경북 경주시)씨, 아동문학 이순영(51·의령군)씨, 수필 김희자(44·경북 경산시)씨가 대상을 받았다. 대상 상금은 소설 1000만원이고 시·시조와 아동문학, 수필 등 나머지 부문은 700만원씩이다. 응모자가 142명에 이른 소설에서 심사를 맡은 김병총·박정수·표성흠 소설가는 주씨의 작품 '여우별을 사랑하다'를 두고 "영주권을 얻기 위한 사기 결혼을 당한 두 모녀가 문제의 그를 찾아갔다가 결국 용서하고 포기한다는 흔한 소재다. 그러나 오광대놀음을 통한 날줄과 그걸 보며 회상하는 주인공 '쏠티'의 내면 심리라는 씨줄이 얽혀 들어가며 짜내는 베틀소리 같은 문장이 돋보인다"고 평했다.
이어 "연작시조로 말의 울림을 잔잔하게 저미었고 닫힌 마음을 열어주는 호소력이 눈길과 동행하고 있다. 어느 것 하나 외따로 있지 않고 갈마들어 하나가 된다. 그래서 '물풀'이란 세상은 '모두 다 웃는다.' 시조 참맛을 풀어내 마음을 후련하게 해준다"고 덧붙였다. 이와 달리 아동문학에서는 심사위원들이 아쉬운 소리를 했다. 139명이 900여 작품을 보냈으나 내용은 만족스럽지 못했다는 얘기다. 심사위원인 전문수 동시인과 이영호 동화작가는 "이씨 동화 '꽃시계'는 코믹하면서도 메시지가 감동적이다"며 "홀로 외롭게 사는 노인이 많아지는 사회에서 두 노인을 손녀 손자인 두 어린이가 컴퓨터라는 현대 소통 수단을 열심히 가르쳐 친구로 맺어준다는 착상의 기발함과 사회성이 짙은 주제의 참신성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수필에서 김열규·이유식 심사위원은 김씨의 대상작 '등피'에 대해 "바람을 가리고 불빛을 밝게 하려고 등에 씌우는 등피를 소재 삼아 남포 등불을 켜고 살던 시절 시골 풍정을 떠올리며, '등피'가 되어준 어머니 사랑과 지금 어머니가 된 '나'의 처지를 모전여전(母傳女傳)으로 밝혀주고 있다"며 "문장력도 좋고, 이야기를 푸는 솜씨가 매우 돋보인다"고 했다. 수필에는 236명이 650여 편을 응모했다. 천강문학상은 이밖에 금상 1명과 은상 2명 동상 3명을 분야별로 뽑았다. 상금은 소설 부문 금상 500만원, 은상 300만원, 동상 100만원이고 시·시조와 아동문학, 수필은 금상 300만원, 은상 200만원, 동상 100만원씩이다. △소설 부문 금상 이서진 '그리자벨라를 위하여', 은상 이채원 '연두벌레' 조수현 '믿음 혹은 신념의 문제', 동상 양호문 '호수와 노인' 윤규열 '푸른 상자', 심정목 '세상 모질게 살았노라'. △시·시조 부문 금상 이공 '성지 순례', 은상 김정아 '바람 속의 잠' 김승훈 '마블링', 동상 유현주 '감자를 묻다' 강명수 '배추벌레' 정일남 '구절리'. △아동문학 부문 금상 금해랑 '할머니와 호박꽃', 은상 서진희 '하회탈 인사' 김병옥 '글씨', 동상 김양화 '울지 못하는 새' 윤영선 '향기' 최미애 '이, 고집불통'. 문학상 이름 천강(天降)은 임진왜란 의병장 곽재우 홍의장군(紅衣將軍)의 별칭이다. 붉은 옷(紅衣)을 입고 전투를 이끈 곽재우 장군이 전필승 공필취(戰必勝 功必取)하자 이를 두고 하늘에서 내린(天降) 인물이라 했다는 것이다. 당시 의병장은 대부분 학문을 닦은 문인이었음에도 무장이라는 이미지가 세어서 이를 지우고자 의령군은 올 4월 곽재우 한시 37편을 모아 시집 <강정으로 돌아오다(歸江亭)>을 펴내기도 했다. 천강문학상 관계자는 14일 "첫 회임에도 해외는 물론 나라 안 곳곳에서 기성과 신인 작가 800여 명 5000여 편이 응모하는 성과를 이뤘다"며 "곽재우 장군의 뜻과 정신을 널리 펴는 데 크게 이바지하리라 기대한다"고 밝혔다. 시상식은 16일 오전 11시 곽재우 장군 탄생 457년 기념 다례식과 함께 치러진다. 장소는 곽재우 장군을 비롯한 17장령과 무명 의병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의령읍 충익사. | ||||||||||||
///////// 2009 제1회 천강문학상 수상작 ///////////////
http://cafe.daum.net/urmunin
제1회 천강문학상 수상작품은
각 분야별 대상을 비롯해 금상 1편, 은상 2편, 동상 3편 등
모두 7편으로
4개 분야 총 28편입니다
시·시조분야는 시가 5편이고, 시조가 2편이며,
소설 분야는 중편이 6편이고, 단편이 1편이며
아동문학 부문은 동시가 3편이고, 동화가 4편입니다
그리고
수필은 모두 7편입니다
우선
대상 수상작품만
의령문학 카페에 올렸으며,
나머지 작품은 작품집을 발간하여
각 서점에 낼 것이며
응모하신 분께 1권씩 보내드릴 예정입니다
수상작품에 대해 궁금하신 분께서는
이 점 양해하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의령과 천강문학상을 사랑해 주시고
함께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상하지 못한 분께는
새로은 기회와 아름다운 도전을 위해 박수를 보내며
수상자에게는 축하의 박수를 보냅니다
감사합니다
2009년 10월 23일
의령문인협회 회장 윤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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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회, 천강문학상 심사평
천강문학상 국내외 호응·수준급 작품
2009년 10월 15일 (목) 김훤주 기자 pole@idomin.com
의령군이 총 상금 7500만원을 걸고 진행한 소설과 시·시조,
아동문학, 수필 등 네 부문에 걸친 제1회 천강(天降)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소설 주경로(58·미국 거주)씨, 시·시조 백점례(50·경북 경주시)씨,
아동문학 이순영(51·의령군)씨, 수필 김희자(44·경북 경산시)씨가 대상을 받았다.
대상 상금은 소설 1000만원이고 시·시조와 아동문학, 수필 등 나머지 부문은 700만원씩이다.
응모자가 142명에 이른 소설에서 심사를 맡은 김병총·박정수·표성흠 소설가는
주씨의 작품 '여우별을 사랑하다'를 두고 "영주권을 얻기 위한 사기 결혼을 당한 두 모녀가
문제의 그를 찾아갔다가 결국 용서하고 포기한다는 흔한 소재다.
그러나 오광대놀음을 통한 날줄과 그걸 보며 회상하는 주인공 '쏠티'의 내면 심리라는
씨줄이 얽혀 들어가며 짜내는 베틀소리 같은 문장이 돋보인다"고 평했다.
제1회 천강문학상 수상자. 왼쪽부터 소설 주경로 씨, 시·시조 백점례 씨,
아동문학 이순영 씨, 수필 김희자 씨.
시·시조에는 2776편이 들어왔다. 최종심을 맡은 윤재근 문학평론가와 이광석 시인,
김복근 시조시인은 백씨의 시조 '물풀'에 대해 "아무 이의 없이 대상으로 정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어 "연작시조로 말의 울림을 잔잔하게 저미었고 닫힌 마음을 열어주는 호소력이 눈길과
동행하고 있다. 어느 것 하나 외따로 있지 않고 갈마들어 하나가 된다.
그래서 '물풀'이란 세상은 '모두 다 웃는다.' 시조 참맛을 풀어내 마음을
후련하게 해준다"고 덧붙였다.
이와 달리 아동문학에서는 심사위원들이 아쉬운 소리를 했다.
139명이 900여 작품을 보냈으나 내용은 만족스럽지 못했다는 얘기다.
심사위원인 전문수 동시인과 이영호 동화작가는 "이씨 동화 '꽃시계'는 코믹하면서도
메시지가 감동적이다"며 "홀로 외롭게 사는 노인이 많아지는 사회에서
두 노인을 손녀 손자인 두 어린이가 컴퓨터라는 현대 소통 수단을 열심히 가르쳐 친구로
맺어준다는 착상의 기발함과 사회성이 짙은 주제의 참신성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수필에서 김열규·이유식 심사위원은 김씨의 대상작 '등피'에 대해 "바람을 가리고
불빛을 밝게 하려고 등에 씌우는 등피를 소재 삼아 남포 등불을 켜고
살던 시절 시골 풍정을 떠올리며, '등피'가 되어준 어머니 사랑과 지금
어머니가 된 '나'의 처지를 모전여전(母傳女傳)으로 밝혀주고 있다"며
"문장력도 좋고, 이야기를 푸는 솜씨가 매우 돋보인다"고 했다.
수필에는 236명이 650여 편을 응모했다.
천강문학상은 이밖에 금상 1명과 은상 2명 동상 3명을 분야별로 뽑았다.
상금은 소설 부문 금상 500만원, 은상 300만원, 동상 100만원이고 시·시조와 아동문학,
수필은 금상 300만원, 은상 200만원, 동상 100만원씩이다.
△소설 부문 금상 이서진 '그리자벨라를 위하여', 은상 이채원 '연두벌레'
조수현 '믿음 혹은 신념의 문제', 동상 양호문 '호수와 노인'
윤규열 '푸른 상자', 심정목 '세상 모질게 살았노라'.
△시·시조 부문 금상 이공 '성지 순례', 은상 김정아 '바람 속의 잠'
김승훈 '마블링', 동상 유현주 '감자를 묻다' 강명수 '배추벌레' 정일남 '구절리'.
△아동문학 부문 금상 금해랑 '할머니와 호박꽃', 은상 서진희 '하회탈 인사'
김병옥 '글씨', 동상 김양화 '울지 못하는 새' 윤영선 '향기' 최미애 '이, 고집불통'.
문학상 이름 천강(天降)은 임진왜란 의병장 곽재우 홍의장군(紅衣將軍)의 별칭이다.
붉은 옷(紅衣)을 입고 전투를 이끈 곽재우 장군이 전필승 공필취(戰必勝 功必取)하자
이를 두고 하늘에서 내린(天降) 인물이라 했다는 것이다.
당시 의병장은 대부분 학문을 닦은 문인이었음에도 무장이라는 이미지가 세어서
이를 지우고자 의령군은 올 4월 곽재우 한시 37편을 모아
시집 <강정으로 돌아오다(歸江亭)>을 펴내기도 했다.
천강문학상 관계자는 14일 "첫 회임에도 해외는 물론 나라 안 곳곳에서
기성과 신인 작가 800여 명 5000여 편이 응모하는 성과를 이뤘다"며
"곽재우 장군의 뜻과 정신을 널리 펴는 데 크게 이바지하리라 기대한다"고 밝혔다.
시상식은 16일 오전 11시 곽재우 장군 탄생 457년 기념 다례식과 함께 치러진다.
장소는 곽재우 장군을 비롯한 17장령과 무명 의병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의령읍 충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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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천강문학상 <時調-現代詩> 審査評
우리문학 속으로 의령정신을 스며들게 하려는 의령고을의 정성
時調 383편 現代詩 2,393편이 응모되었다. 기성(旣成)-신인(新人)을 망라한
이번 응모를 보아 여전히 우리는 詩歌를 좋아하는 백성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다.
宜寧郡은 작은 지자체이다. 그러나 宜寧이란 고을은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미래를 열어가게 하는 정신을 심어주는 선각자(先覺者)들의 고향이다.
엄청나게 응모한 時調-現代詩들이 이러한 宜寧을 향한 흠모(欽慕)의 정을 담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해주었다. 물론 宜寧 고을이 베풀어준 후의(厚誼) 때문이란 생각도 든다.
천강문학상이 모양새만 갖추자는 치례가 아니라 우리문학 속으로 의령정신을
스며들게 하려는 宜寧고을의 정성(精誠)이 파격적인 상금의 규모를 보더라도 잘 드러난다.
이 또한 宜寧이 나라사랑의 보금자리라는 고을의 자긍심에서 연유한다는 확신(確信)이 사무친다.
이러한 생각을 이번에 응모한 진지한 작품들이 보여주었다.
따라서 천강문학상은 지자체마다 다투어 여는 축제의 한 모서리가 아니란 사실을
증험(證驗)해주어 심사에 임하는 자세를 여미게 했다.
예심을 거친 모든 작품들이 다 잘 만들어져 꼼꼼한 심사를 요구했다.
作詩의 기교(技巧)는 모두 저마다 수준에 닿아 <기교의 꼼수>가 없이 풋풋하고
싱싱하게 <말하는(言之) 작품>을 택하는 쪽에 무게를 두고 심사해 갔다.
그 결과 유현주 씨의 시조 [감자를 묻다], 정일남 씨의 현대시 [구절리],
강명수 씨의 현대시 [배추벌레], 김승훈 씨의 현대시 [마블링],
김정아 씨의 현대시 [바람속의 잠], 이 공 씨의 현대시 [성지순례],
백점례 씨의 시조 [물풀] 등등이 최종심에 올랐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들 중에서 시조 [물풀]을 이의 없이 대상으로 정할 수 있었다.
[물풀]은 시조 넷을 한편의 연작시조로 묶어 말의 울림을 잔잔하게 저미어간다.
그래서 [물풀]은 닫힌 마음속을 열어주는 호소력이 헷갈림 없이 눈길과 동행하고 있다.
[물풀]에서는 어느 것 하나 외따로 있는 것은 없다.
서로 새삼스레 옹기종기 갈마들어 하나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물풀]이란 세상은 <모두 다 웃는다.>. [물풀]은 조용조용 갈마들게 하여
시조의 참맛을 술술 풀어내 마음을 후련하게 해주어 고맙다.
[성지순례]는 뇌관에 불을 붙이기 직전 같다는 아슬아슬한 순간포착을 “디카”
?
?찰칵찰칵 한 쪽 씩 찍고 넘어가듯이 말해가는 솜씨가 여간 아니다.
어쩌면 그래서 이 시인은 늘 손해 보는 편이 아닐까 싶다.
딱 부러지는 말이지만 어쩐지 불안하게 하는 층계 같을 때가 있음을 알아챈다면
[성지순례]의 전반부 가파른 시상(詩象)들로 넘쳐나게
열병(閱兵)하지 않았을 터인데 싶어 아쉽다.
그러나 [성지순례]는 詩象과 詩象을 치열하게 접근시켜 마음가기(志)를 상큼하게
하는 선뜻함이 강렬하다. [성지순례]는 틀에 박힌 삶을 한번 짚고 넘어가게 하는
현대시의 장기를 보여주고 있는 창창한 詩이다.
대상과 견줄 수 있는 詩로 손색이 없다는데 이의가 없었다.
기성시인을 뿌리칠 신인이 등장하기를 바랐지만 그런 이변(異變)은 없었다.
물론 신인 작품들이 예선을 통과한 것만도 대견하고 대단하다.
아무래도 신인들은 티를 내게 마련인 모양이다.
작품 속에 빠지면 안 되는 줄을 잘 몰라서 제 작품 속에서 익사해버리는 신인들이 참 많았다.
이런 형편은 다른 데서도 심사할 때마다 매번 겪는 아쉬움이다.
신인은 늠름하게 흐르는 말하기(言之)의 강을 강변에 서서 유유히 구경할 줄
아는 뒷심이 왜 필요한지 작시(作詩)할 때마다 연습하기를 바란다.
그럴수록 시인이 되는 길이 넓게 열리게 됨을 알아챘으면 한다.
그렇지만 기성시인들의 틈바구니를 무릅쓰고 작품들을 응모한
시인들의 작품들은 대담했고 풋풋했다.
이분들은 분명 다음 기회엔 작품으로써 한소리 하리란 예감이 들어
의령(宜寧)고을 천강문학상(天降文學賞)은 갈수록 창창하리란 믿음이 앞섰다.
시/시조 심사위원 尹在根(한양대 명예교수)
이광석(시인)
김복근(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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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천강문학상 시/시조 부문 대상
물 풀
백점례/경북 경주시
불볕 터진 들녘 너머 풀떨기 못물 아래
따라지들 몰려들어 스크럼을 짜고 있다
물길이 빠져 나가다 멱살 잡혀 누워 있다
골풀의 부추김에 울컥 솟은 부들이며
핏줄 푸른 마름 곁에 웃자란 생이가래
한 평생 반듯한 자리 올라설 수 없었다
부푸는 소문의 늪 뻗어 오른 결기마저
시간이 지나가면 너겁이 되고 만다
숨었던 실뱀 한 마리 심란하게 지나가고
흔들리는 그 바닥도 우주임을 알았을까
수렁에 빠진 무릎 수면 위로 기어올라
한켠에 노랑어리연 발 씻으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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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소감
반짝이는 강물소리 먼 바다로 달려가고
어린 나를 유혹하던 외로운 깃발 하나
산발한 그 갈대밭에 꿈 하나가 펄럭였다
닿고 싶은 그 바다는 멀고도 단호하다
멀고 먼 문학의 강을 굽이돌아 흘러온 길
수평선 그 환한 세상 네게로 가고 싶었다
얼룩진 일상의 삭정이 같은 옷을 벗고 반짝이는 사유의 중심으로
들어가서 비바람에 젖은 어깨 따뜻하게 말려주는, 풍덩 빠진 절망 앞에
한 오라기 밧줄 되는, 허기 달랠 한 끼의 밥 지어놓고 싶었던 놀빛 심장 시의
바다로 뛰어들고 싶었다 자꾸만 넘어지고 미끄러지던 그 길도
때로는 화들짝 깃을 펴며 오늘처럼 기쁘다
제가 이토록 영광된 자리에 설 수 있도록 노고를 아끼지 않으신
여러 선생님께 또한 천강문학상 심사위원 선생님,
관계자 여러분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더욱 더 노력 하겠습니다
- 1959년 12월 25일 충남 부여 출생
- 경주문예대학 수료
- 시대문학 시 신인상
- 경북문협, 경주문협 회원, 행단문학 동인
- 제 9회 전국 가사, 시조 공모전 최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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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천강문학상 금상 수상작 : 성지순례 - 이공
(http://blog.daum.net/nanwin/18129324?srchid=BR1http%3A%2F%2Fblog.daum.net%2Fnanwin%2F18129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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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천강문학상 시부문 동상-
배추벌레
강명수
밤새 별을 따다 배추 치마폭에 장식을 했나보다
밤의 손가락이 늘어갈수록
우주의 원을 더 많이 조각해낸다
직선을 내지 않고 원을 만드는 둥근 마음
도대체 이 空판화를 만드는
조각가가 누구인지 궁금하다
얼마나 작업에 몰두하였는지
제 몸도 푸르게 물들어가는 줄도 모른다
배추 잎과 일심동체가 되어
삶의 흔적을 열심히 통찰해내는
저! 워커홀릭
밤하늘별의 숫자만큼이나
뭔가를 재개발해낸다
먹고 버리는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 지구의 둥근 몸이 안쓰러운지
이 미물은 삭아질 흔적만을 남긴다
속내를 비워내고 비워내서
저 광대무변 허공을 집삼아 살아가는
또 다른 마하보리
바람소리
빗방울소리
낙엽부벼대는 소리
새들의 발자국 소리까지도
훤히 들릴 수 있도록
스스로를 가두는 집을 짓지 아니한다
마치 마음의 눈을 활짝 열어 놓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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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천강문학상 <소설> 심사평
대상의 <여우별을 사랑하다>는 오광대놀음을 통한 베틀소리 같은 문장
소설의 총 응모자 수는 142명으로, 단편 91명 중편 51명이었다.
단편은 한 사람이 두 편씩 중편은 한 편씩 응모하기로 돼 있었으니
차라리 단편 두 편보다는 중편이 수월하다 싶었는지
중편의 응모 편수가 의외로 많았다.
단편 <쭈쭈바>, <황혼의 코스모스>, <외눈박이>,
<노란 스쿠터에 빨간 미키마우스 인형을 태우고 달리다>,
<흐르지 않는 강물>, <연두벌레>, <마지막 외출>, <얼굴 없는 남자>, <비상구>,
<네버랜드는 있다>, <쎙크 아 쎄트>, 중편 <그리자벨라를 위하여>, <푸른 상자>,
<호수와 노인>, <세상 모질게 살았노라>, <정묘년 안주성>, <믿음 혹은 신념의 문제>,
<여우별을 사랑하다>, <붉은 아열대> 등 19편이 본심에 올라왔다.
심사방법은 세 심사위원이 각기 작품을 돌려 읽어보면서 점수를 따로 매겨 합산하기로 했다.
신기하게도 심사위원 세 사람의 점수는 맞춘 듯 똑 같거나 비슷했다.
대상의 <여우별을 사랑하다>는 영주권을 얻기 위한 사기결혼에 당한 두 모녀가
문제의 그를 찾아왔다가 결국 용서하고 포기한다는 스토리. 흔한 소재인데 점수를 딴
비결은 오광대놀음을 통한 한 가닥 날줄과 그걸 보며 회상하는 주인공 쏠티의
내면 심리라는 씨줄이 얽혀 들어가며 짜내는 베틀소리 같은 문장이 아니었나 싶다.
금상의 <그리자벨라를 위하여> 역시 이 복합구조를 충분히 살린 작품이다.
아슬아슬한 1점 차로 금상이 된 이유 중 하나가 주인공 현희와 현주의 갈등표출이
약간 인위적이지 않았나 하는 점과 현희와 K의 사이가 아버지와 현주 엄마의 사이를
대비해보는 비교성찰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런 디테일한 부분에 좀 더 신경을 썼더라면 훨씬 높은 점수를 얻었을 주제다.
은상의 <연두벌레>는 완성도와 예술성이라는 점에서는 높은 점수를 받았는데
중편이라는 무게 때문에 상대적으로 밀려난 작품이다. 아파트에 구유를 갖다놓고
연두벌레를 기르며 광합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젊은 가족들에게서 희망을 본다.
<믿음 혹은 신념의 문제>는 표현보다는 그 속에 담긴 내용에서 점수를 얻은
작품이 아닌가 한다. 소설은 구조적 아름다움을 선호하는 경우도 있지만
형식이 다소 떨어진다 해도 그 진실성은 외면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가 되겠다.
동상의 <호수와 노인>에는 순우리말 풀이 사전까지 만들어 별첨할 정도로
우리 말의 아름다움을 살리는데 주력하였다. 구투의 문장인데도 읽히는 이유가 여기 있지만,
소설은 소설의 또 다른 요소들이 적절히 화합할 때 더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는 걸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세상 모질게 살았노라>는 개발바람에 인생역전이 시작되고 거기서도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현실적 문제들이 술과 함께 녹아내린다.
‘내 살아온 이야기 풀면 소설책 몇 권은 된다’는 시대 같았으면
그저 술술 읽혀 내려갈 이야기다.
<푸른 상자>는 자아에 중독 된 아파트 사람들 이야기다. 망원경을 통해
남의 집 창문 안을 훔쳐보고 어둠의 색깔을 상상하고 탐색하며 속삭이고 즐기고 ....
오갈 데 없는 현대인들의 일상을 그린 수채화다.
소설 심사위원 김병총(소설가)
박정수(소설가)
표성흠(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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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천강문학상 소설 부문 대상
여우별을 사랑하다
주 경 로
공연 시간이 가까워지자 관객들이 하나둘 둥글게 자리 잡아가기 시작한다.
무슨 공연을 보게 될지 짐작해서일까, 관객들의 표정은 호기심보다는 들떠 있는 분위기다.
그 중간 중간에 외국인들도 눈에 띈다. 민속촌 공연마당은 낙엽을 쓸어내는
대나무 빗자루 소리가 쓸쓸하게 들리면서도 엄마를 따라 미국에 가기 전까지
뛰놀던 동네 놀이터 같은 여유로움과 편안함이 느껴온다.
-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사람이다. 사람보다 더 무서운 것이 사랑이고.
엄마가 가끔 하던 말을 입버릇처럼 다시 중얼거린다.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서른 중반을 넘겼다. 뒤 늦은 깨달음이서 그런지
요즘 들어 엄마 말이 더 무겁게 느껴진다. 이 나이가 되어서야 사랑이 무섭게 느껴지고,
사랑의 결과가 기쁜 것만도 아닌 것을 알게 되다니. 적어도 내게 있어 사랑은 그런 거였다.
나는 지금도 내가 한 사랑이 뭐가 잘못됐는지 모른다. 수학문제를 풀어 놓고
정답인지 아닌지를 몰라 개운치 않은 기분처럼.
아이고 여보소. 이내 한 말 들어보소! 삼대 할아버지 삼대 조모니(님),
그 지체 쓸쓸한 울아버지(우리 아버지) 울온마(우리 어머니) 인간의 죄를 얼마나 지었건대
몹쓸 병이 자손에게 미쳐서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을까.
아부지야 온마야 괴롭구나,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으니 양반인들 뭣하며 재산인들
쓸데 있나 살아생전에 마음대로 놀다가 죽을 라네. 만사가 모두가 여망 없는 내 신세여.
문둥이 탈을 쓴 광대가 등장하더니 신세타령을 한다. 입 꼬리는 좌측으로
삐쭉 올라가 있고 짝짝이 귀에 좁은 이마, 작은 눈, 삐뚤어진 코. 얼굴은
갈색피부에 옅은 회색 종기들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다. 손에는 작은 소고를
들고 흰색 적삼속옷 바람에 한쪽 바지는 무릎까지 걷어 올린 상태로 관객을 비웃고
사회도 비웃고 자신의 신세까지도 비웃는 듯한 동작으로 춤을 추고 있다.
굿거리장단과 어우러지며 문둥이 신세를 한탄하는 춤 사이사이엔 설움이 짙게 묻어난다.
여섯 살 때 엄마를 따라 미국에 가서 삼십 년 넘게 살다가 한국을 처음 방문해
엄마가 가자는 곳을 그냥 며칠째 따라다니고 있다. 엄마는 호텔방에서만 죽치려는
나를 짧은 시간 안에 한국의 전통문화를 보고 느낄 수 있는 곳이 민속촌이라며
이 자리에 앉혀 놓았다.
나는 한국인의 모습으로 살면서 한국을 깊이 모르고 살아왔다.
그래도 늦은 나이에 한국 사람과 결혼하게 되어 남편과 같이 고국에서 결혼식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믿고 지내던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엄마 덕분에 한국말을 이해하고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 순간만큼 고마워한 적도 없었다.
무대랄 것도 없는 흙마당에 문둥이 탈을 쓰고 춤을 추는 광대를 바라보는
얼굴들이 밝고 꾸밈이 없다. 더러는 장단에 맞추어 몸을 흔들며 춤을 추는
관객들도 있다. 광대는 서럽게 춤을 추는데 바라보는 사람은 즐겁기만 한
이유가 궁금하다. 누군지 몰라서일까? 자기와 상관없는 일이어서일까?
탈을 쓴 사람은 몇 살이나 먹었을까? 광대는 무슨 생각을 하며 춤을 추는 걸까?
광대가 내 앞에서 멈칫 춤을 멈추더니 나를 바라보며 소고를 몇 번 두드리고
소고채로 삿대질을 하더니만 덩실덩실 다시 장단에 맞추어 춤을 이어간다.
나는 광대의 춤에 야릇한 동정과 연민이 일어 박수를 보냈다.
관객들도 나를 따라 갈채를 보낸다. 그 소리가 둥글게 하늘로
울려 퍼지며 사방으로 번져나간다.
남편에 대해서 아무리 밉게 말하고 싶어도 첫 만남의 인상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다. 평범한 인상이었지만 갸름한 얼굴과 오뚝한 코가 천생 미국에
살 팔자로 태어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염을 깎지 않은 지가 하루나
이틀은 지났는지 텁수룩하지도 않고 고르게 자란 털로 인해 약간 까칠해 가는
얼굴이었지만 그것마저도 매력적으로 느껴졌었다.
- 한국분이신가요. 차에 무슨 문제라도······.
남편은 고속도로 상에서 타이어가 펑크나 안절부절못하는 나에게 말꼬리도
맺지 못하면서 그렇게 다가왔다. 내 나이 34살 중반의 일이었다.
나는 그 나이까지 결혼에 대해 특별한 관심 없이 살고 있었다.
결혼생활에 실패한 엄마의 영향을 받은 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간혹 하였다.
엄마는 여자에게 결혼은 잘해야 본전이라는 말을 가끔 했다.
그래서인지 잘해야 본전인 결혼을 왜 해야 하나 하는 잠재의식을 가지고
살았던 것 같다. 엄마 친구들 역시 결혼에 실패한 사람들이 많았다.
처지가 같은 사람끼리 만나 지내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아서였을 게다.
나는 아버지에 대해 묻지 않는 것이 도리라 생각해 묻지 않았지만 엄마는
간혹 아버지 얘기를 푸념처럼 해주곤 했다. 그때마다 엄마는 애써 아버지를
미워하는 말투로 말 했으나 나는 엄마 말이나 표정에서 아버지를 미워하는 느낌을
느끼지 못했다. 엄마는 한 때 미웠던 아버지였지만 세월이 흐르며
그리워지기 시작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뿐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기도 쉽지 않지만 미워하기도 쉬운 일이 아닌 듯싶었었다.
감정 따로 말 따로 살아온 엄마, 결혼에 대해 비판적이면서 은근히
딸의 결혼을 기다리는 엄마, 그런 엄마의 마음을 평범하게 받아들이며
살다가도 나 역시 감정 따로 말 따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나는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얼굴에 탈을 쓰고 산다는 생각이 들어 싫었다.
짙은 화장을 하지 않는 이유도 화려한 옷을 입지 않는 이유도 그런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해서였다. 화장이 원래 내 모습을 감추려는 행위라는 생각은
지나치다고 늘 생각하면서도 그 생각을 떨쳐내지 못했다.
나 같은 사람을 위로하려고 플라톤은 ‘나의 내면에 지닌 것과 외면의 것이
조화되게 해 주소서’라는 기도문을 그가 열었던 아카데미 학원의 문전에
새겨 놓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내면과 외면의 조화를 이루며 살고 싶다는
감정에서 늘 벗어나지 못한 채 살고 있었다.
고속도로에서 남편을 처음 만난 날은 일에 지친 모습과 갑작스런 상황에
안절부절못하는 원래의 내 모습과 표정 그대로였다.
- 퇴근길이세요?
- 네. 새 찬데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네요?
- 펑크는 새 차도 나고 헌차도 납니다. 트럭이 지나가면 위험하니
안쪽으로 들어와 계세요. 아니면 차에 타 계시던가요.
제가 보조 타이어로 금방 바꾸어 드리겠습니다. 20분이면 충분합니다.
나는 그때 남자에 대한 듬직함을 처음 느꼈다. 엄마도 이런 상황을 당하면
아버지가 그리워질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남편의 타이어 바꾸는 솜씨가
보통은 넘었다. 군대생활을 수송부대에서 해서 자연히 익힐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타이어를 바꾸는 중에 고속도로 순찰대가 와서
바깥차선으로 오는 차량들을 안쪽차선으로 유도해 주었다.
나는 경찰의 도움에 안심하며 그가 하는 일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경찰이 같이하자 그의 행동이 어색해지고 불안해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일이 다 끝나자 서둘러 자리를 피하려 하는 눈치였다.
나는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사례하고 싶다고 연락처라도 달라고 했지만
그는 도울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며 먼저 그 자리를 떠났다.
주말이 적적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한 번 받은 도움이 고마워서라기보다
다시 그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남자에 대한 이성적인 감정이 그를 통해 싹트기 시작했다.
영화를 봐도 남자 주인공과 그가 겹치기 시작했고 그를 생각할 때마다
타이어 펑크가 무슨 운명적인 일로 연결될 것 같은 착각이 들기 시작했다.
엄마는 나의 변화를 즉각 알아 차렸다. 남자가 생겼느냐고 묻기도 했고
나이가 나이인 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말도 했다. 나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엄마는 믿으려 하지 않았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결혼에 적령기가 있다는 사실이 현실감 있게 받아들여져서다.
그 사람도 나이는 들어 보였었다. 결혼은 한 사람일까? 왜 경찰을 보자
불안한 행동을 보였을까?
엄마나 주위 사람들의 일상은 변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화장도 진해지기 시작했고 예전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반지나
귀걸이에 신경이 갔다. 플라톤의 기도문은 철학적인 이야기 일뿐이라고
합리화 시켰다. 사람의 감정은 묘한 것이었다. 화장을 진하게 하는
사람을 비웃었던 순간이 없었던 것처럼 잊혀져갔다.
결혼을 하게 되면 해야겠다는 생각이 서서히 들면서 음식에 대한 관심도
가지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내 입맛대로 먹었지만 결혼하게 되면
남편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해야 된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 생각이
전처럼 싫지 않은 것이 이상했다. 결혼생활이란 상대방이 만족하는
모습을 보며 행복해 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막연하게나마
자리 잡아갔다.
나는 스스로 생각해도 묘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무엇엔가 한 번
빠져들면 벗어나지를 못하여 끝내는 그 일로 후회를 하는 경우가 있다.
액세서리를 하나 사게 되면 계속 그 액세서리만 하고 다녀 주위
사람들로부터 액세서리가 하나뿐이냐는 말을 듣기도 한다.
한 번 입은 잠옷도 엄마가 버려야만 새 잠옷을 입을 정도다.
이상한 집착 같은 것이 있는 것이다. 쓰지 않는 물건, 아니,
쓰지도 못하는 물건인데도 눈에 익숙했던 물건을 버리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집안이나 내 방은 무질서하고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부도 말끔한 환경에서보다 책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상태에서
하는 것이 더 편안하게 느껴지고 집중력이 생기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엄마는 제발 정리 좀 하며 지내라고 성화지만 그 기 싸움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친구를 만나도 먼저 일어나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
혹, 그런 피치 못할 사정이 생기면 필요 이상으로 미안한 감정에 시달리곤 한다.
내가 생각해도 고치고 싶은 이런 성격, 의미 없는 일에 집착하는 고집이
이번에도 꿈틀댔다. 타이어를 바꾸어 준 남자를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싹트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이 문제였다. 이틀정도는
고개를 저으며 아니라고 수없이 부정을 하다가 마음먹은 것과는 달리
행동하기 시작했다. 혼자 한국식당에 가서 밥을 먹기도 했고
한국 서점에 들러 책을 사며 잡지를 뒤적이기도 하다가 한인 타운
가까이 있는 도서관에 가 책을 보기도 했다. 왠지 그 사람을 그런 곳에서
다시 만날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어서였다. 꼭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까지 직장생활 외에는
특별하게 하는 일이 없던 일상의 변화가 싫지 않았고 그 자체를 즐기게 되었다.
토요일 오후 여느 때처럼 채광이 좋은 도서관 창가 작은 의자에 앉아
서점에서 사온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읽기 시작했다. 대상 수상작이
<몽고반점>이라는 작품이었다. 서점에서 이 제목을 보는 순간 숨겨진
것이 드러나는 느낌을 받았다. 누군가 내 몸에 있는 몽고반점을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다. 몽고반점은 통상 7~8세가 되면 사라진다고 하는데
소설의 인물처럼 나한테도 몽고반점이 그대로 남아 있다.
내 몸에는 이런 숨겨진 것들이 더 있다.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부분에
있는 점과 흉터다. 젖가슴 사이에 있는 까만 점, 배꼽을 중심으로 팬티라인
좌우측에 대칭을 이룬 두 개의 점, 좌측 장딴지와 사타구니 사이의 점,
맹장 수술을 한 흉터, 치질 돌기······. 부끄러울 것은 없지만
아무에게나 드러내지 못하고 감추고 싶은 것들을 몸에 지니고 산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형부 앞에서 알몸이 된 처제의 모습을 묘사한 내용을 읽어 내려가는 순간은
몸이 움츠러들기도 하고 유두가 빳빳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숨을 죽인 채 그녀의 엉덩이를 보았다. 토실토실한 두 개의
둔덕 위로 흔히 천사의 미소라고 불리는, 옴폭하게 찍힌 두 개의
보조개가 있었다. 반점은 과연 엄지손가락만한 크기로 왼쪽 엉덩이
윗부분에 찍혀 있었다. 어떻게 저런 것이 저곳에 남아 있는 것일까.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약간 멍이 든 듯한, 연한 초록빛의, 분명한
몽고반점이었다. 그것이 태고의 것, 진화 전의 것, 혹은 광합성의
흔적 같은 것을 연상시킨다는 것을, 뜻밖에도 성적인 느낌과는 무관하며
오히려 식물적인 무엇으로 느껴진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내 몸에 지닌 몽고반점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는 착각이 일어 반복해서
이 부분을 읽었다. 그래도 성적인 느낌과 무관하다는 말은 싫었다.
나는 샤워를 할 때마다 내 몸에 숨겨진 것들이 어느 날 누군가에게
노출될 때 치질 돌기를 제외하고는 매력으로 비춰질 것이라 생각했다.
결혼을 막연히 생각할 때는 적어도 그것들을 매력으로 봐줄 수 있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감추어진
것에 더 매력을 느껴야 사랑이 오래 지속될 것 같아서다.
알아가며 실망하는 것보다 알수록 사랑스러운 존재를 꿈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겉치레에 대해 거부반응을 지녔는지도 모른다.
처음 내 겉모습에 매력을 못 느끼다가도 자꾸 만나면서 빠져 들어가는
자신을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면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은연중 나를 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혹시 그런 사람이 타이어 맨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언제부턴가 그를 타이어 맨이라 부르고 있었다.
문둥이 탈을 쓴 광대에게서 드러난 부분은 절반쯤 접혀진 소매 아래로
드러난 팔목과 무릎까지 걷어 올려 진 한쪽 다리가 전부였다.
춤추는 내내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관중들의 한을 끌어내어
자기 몸에 담고 춤을 추는 듯했다. 드러난 다리의 퍼런 핏줄이 예사로운 삶을
산 것 같지 않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 다리에 검은 점이 보이고 그 점에서
눈을 쉽게 떼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은 왜 점들을 지니고 사는지 궁금해 졌다. 갑자기 점들이란 사람마다
감추어 둔 사연들이 튀어나와 맺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스며들었다.
나에게 점들도 그런 것이라면 무슨 사연이 내 몸에서 튀어나와 있는 것일까?
아버지에 대한 점도 있을 것 같았고, 사춘기 때 좋아했던 친구 오빠에 대한
점도 희미하지만 어딘가 있을 것 같았다. 오래 전부터 있는 가슴의 점은
무슨 사연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궁금할 뿐이다. 타이어 맨에서 남편이 된
그 사람의 사연이 오래 전부터 내 몸에 자라고 있었는지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공연장에 앉아 공연에 빠져들지 못하고 겉도는 자신이 광대들에게 미안했다.
정신을 차리고 공연에 집중해 보려했다.
음악이 갑자기 빨라지며 춤도 빨라지더니 문둥탈이 조금 열려진 관중 사이를
빠져 나간다. 잠시 후 양반 갓에 탈을 쓴 광대들이 나와 춤을 추어 댄다.
한 양반 광대가 거드름을 피우며 앞으로 나오더니 ‘쉬이--, 여러분!’ 하자
다른 양반 광대들이 ‘왜 그러시오?’ 하고 응수를 한다.
오늘은 심심하니 말뚝이나 불러다가 농담이나 하자고 하자 다른 양반들이
그러자고 동조한다. 그 양반들 탈이 눈에 익다.
엄마는 미국에 올 때 가져온 세 개의 장식용 탈을 거실 한쪽 벽에 항상
걸어 놓았다. 그 중 하나는 양반탈이고 두 개는 여자 탈이다.
양반탈은 입을 찢어질 정도로 벌려 이빨을 다 드러내며 웃고 있다.
뻥 뚫린 동그란 눈언저리는 흰색 테를 하고 있고 오뚝한 코에는
흰 점 두 개, 빨간 점, 녹색 점 하나에 윗입술과 코 사이에는
여러 색의 점이 다섯 개나 있다. 나는 엄마에게 왜 이 탈을 벽에 걸어 놓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엄마는 ‘재미있어서’라고 하면서
탈에 대한 감상을 늘어놓았다.
- 이 탈을 자세히 봐라. 이 양반이 왜 이렇게 좋아하는 줄 아니?
오늘이 첩을 들이는 날이기 때문이다. 얼굴이 둥글고 양 볼에 연지를 찍고
비쭉 웃으며 두 개의 이를 드러낸 이 탈이 첩년이다. 눈도 귀 쪽으로 약간
처지며 웃음 짓는 것이 사내 몇 잡게 생겼지. 그런데 연지 안 바른 이 아줌마
표정 좀 봐라, 8자를 눕혀 논 듯 한 입이며 쪽 빨린 턱, 거친 피부,
덩그런 눈이 모든 것을 순식간에 잃어버린 여편네 표정 같지 않니?
이 탈이 우리나라 가족제도를 비아냥거리고 있는 모습이야. 남자들의 세상,
양반들의 세상을 비웃는 거지. 누가 만들었는지 한 번 만나면 밥이라도 사고 싶구나.
나는 엄마가 탈에 대해 그토록 깊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몰랐던 터라
처음에는 감동했다. 탈이 그림이나 조각처럼 예술의 중심에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나이가 들면서는 그 탈속에 엄마의 한 같은 것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아 싫어졌다. 엄마는 탈을 보며 자기 이야기를 남의 말 하듯 하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가 탈 중에 본부인 탈을 쓰고 있는 건지 첩의 탈을 쓰고 있는 건지
한동안 짐작하지도 못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엄마가 본부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옛날 같으면 첩을 동생처럼 대하며 같이 지낼 수도 있었겠지만
세월이 흐르며 첩이 본부인을 쫓아낼 수도 있는 사회가 된 것이다.
그 후로 나는 더더욱 엄마에게 아버지에 대해 묻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엄마는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지도 않느냐며
때로 핀잔하였지만 나는 그 말을 애써 외면했다.
통영오광대를 소개한 작은 책자를 뒤적여 보았다. 지금 공연은 제2과장 풍자 탈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원양반과 말뚝이 사이에 입씨름이 오가며 다른 양반들은
분위기를 맞추는 역할을 하고 있다. 대화의 중간 중간에 굿거리장단이 이어지고
그 장단에 맞추어 모두가 덩실덩실 춤을 추다가 음악이 멎으면 다시 대화가 이어진다.
양반의 의도는 상놈인 말뚝이를 불러다가 놀려대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려는 것이었는데,
상놈인 말뚝이 반응이 영 고깝기만 하다. 고분고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양반을 모욕하고 우습게 여기기까지 한다.
관중들은 금기된 것이 무너지며 통하는 장면에 빠져들어 같이 어우러져 그들의
대사와 춤 속으로 자신들을 몰입시키고 있다. 토해내고 싶은 것을 맨 얼굴로
토할 수 없는 사회에서 탈을 쓰고 자신의 신분과 얼굴을 숨기고 내뱉는
것들이야말로 순수한 양심의 소리 그 자체이리라. 누구나 사회가 지닌 전통적인
규범들에 저항하고 싶은 충동은 지니고 살게다. 단지 그것을 누르며
사는 사람과 표현하고 행동하며 사는 사람이 있을 뿐.
“느그 죄를 논지(論之)컨대 능지처참(陵遲處斬)할 것이지마는 인간의 도리로서
차마 죽이지 못하고 특히 용서할 터이니 이 길로 돌아가서 평민을 사랑하고
농민들을 도우렸다.”
용서하라고 말뚝이가 양반들에게 호통을 치자, 중중모리 창을 부르며
화해의 마당이 이루어진다.
‘얼씨구나 절씨구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얼씨구나 절씨구
죽을 목숨이 살았으니. 어찌 아니 좋을소냐 얼씨구나 절씨구.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얼씨구나 절씨구 얼씨구나 좋네--?
2과장 공연을 마치고 춤꾼들이 빠져나간 텅 빈 마당을 보는데 집에 있는
양반탈 얼굴의 점들이 떠오른다. 그 점의 수가 첩을 둔 숫자이거나
그동안 양반이 놀린 종들의 아내나 딸들의 숫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친다.
그래 그 양반탈처럼 외도를 하는 남편에게서나 거짓말을 하는 남자들에게는
얼굴에 점이 불거지면 좋으련만.
소설을 읽다가 여러 상념에 창밖을 무심히 바라보기도 하고
책들이 질서 있게 정렬되어 읽을 사람을 기다리는 책장 진열대를 바라보다가
한 남자에게 시선이 멈췄다. 분명 타이어맨 이었다.
만나고 싶은 마음으로 교포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들을 몇 달째 헤맸지만
막상 눈앞에 그가 보이자 숨어 버리고 싶은 생각이 앞섰다.
그에게 다가가기도 망설여졌고 만나면 그를 만나고 싶어 했다는 마음이
들통 날 것 같았다.
나는 먼저 소설을 덮었다. 혹시라도 그가 무슨 책을 읽고 있느냐고
물어 오면 <몽고반점>을 읽고 있었다고 말하고 싶지 않아서다.
형부와 처제의 정사장면의 묘사도 그렇고, 그가 내게 몽고반점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채 버릴 것 같기만 했다.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그가 다가왔다.
- 혹시, 하이웨이에서 만난 분 아니세요?
- 네. 다시 뵙게 되네요.
- 그때는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경황이 없이 그 자리를 떠나 죄송했습니다.
- 아니에요. 제가 오히려 제대로 감사하다는 말도 못했는걸요.
- 제 신분이 불법체류 신분이라 괜히 경찰 기피증 비슷한 것이 있어서요. 이해하세요.
그의 말을 듣는 순간 하이웨이에서 경찰이 왔을 때 그가 보였던 민감한 행동이 이해되었다.
한편으로 불법체류 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사적인 신분 상태를 겨우 두 번째 만나는 사람에게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 순간 그의 신분에 대한 묘한 동정이 일었다.
면도까지 깨끗하게 한 그의 얼굴은 처음 만날 때보다 더 호감이 갔다.
얼굴에는 점 하나도 없었다. 점이 없는 그의 얼굴에서 괜한 위로와 친근감이 느껴졌다.
나는 이미 점이란 숨겨둔 과거가 불거진 것이라는 착각에 사로잡혀 있었고 은연중에 믿고 있었다.
- 지난번 신세도 있고, 시간 있으시면 차라도 한 잔 대접하고 싶은데요.
나는 그가 바쁘다거나 하이웨이에서처럼 괜찮다고 말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조바심을 숨기며 말했다. 만약 그가 이번에도 사양한다면 다시 용기를 내어
연락처를 달라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내 마음은 한참 앞서가고 있었다.
몇 개월간 그를 생각하며 지낸 탓인지 그가 오래 사귄 연인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
나는 이렇게 앞서가는 마음을 어쩌지 못한 채 들키지 않기만을 바랐다.
- 미국에 오래 사셨어요?
그의 대답은 엉뚱하기만 했다. 시간이 있다 없다는 말 대신 내가 미국에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더 궁금하다는 것이 대답이었다.
- 왜 그런 질문을 하세요?
- 아, 죄송합니다. 제가 미국 온지 얼마 안 되어 혹시 오래 사셨으면 앞으로 조언을
좀 받고 싶은 마음에 실례를 했습니다. 도서관에는 자주 오세요?
- 예. 자주는 아니지만 집이 멀지 않아 가끔 들릅니다.
나는 답변을 하고서도 개운치가 않았다. 그는 이야기를 이어가게 질문하는 것이 아니었다.
대답인가 하면 질문이었고 질문하는 내용도 앞의 대화와 연결되지 않았다. 차분함이 없었다.
한꺼번에 모든 것을 알려 하고 빠른 시간에 뭔가를 해결하고 싶어 한다는 인상이 짙게 풍겼다.
불법체류 신분이 그런 인상을 풍기는 사람으로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찡했다.
나는 그를 도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기꺼이 돕고 싶어졌다. 도서관에서 더 이상 이야기하기
곤란하니 다른 곳에 가 얘기를 계속하자고 낮은 목소리로 그를 설득했다.
그를 가끔 가는 미국 스포츠 바로 안내했다.
한국 사람이 비교적 드나들지 않는 장소를 택한 것이다. 운동경기 중계가 없는 시간이어서
스포츠 바는 비교적 한산했다. 대형 스크린 텔레비전과 구석구석에 작은 텔레비전이
설치되어 어느 좌석에서든 쉽게 화면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시끄러운 분위기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떠들썩한 분위기에 나의 존재를
숨길 수 있어 가끔 이곳을 찾곤 했다. 그는 이런 곳은 처음이라며 분위기를 즐기는 듯했다.
웨이터가 아무 자리나 앉고 싶은 자리에 앉으면 바로 물을 가지고 가겠다고 했다.
옆자리에 손님이 없는 구석자리를 택해 서로 마주보며 앉았다.
- 다시 지난번 도움에 감사드려요. 저는 박 송금이라고 합니다.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며 나를 소개했다.
- 뭐 별거라고 자꾸 그러십니까. 저는 강현수입니다. 혹시 명함 있으시면
한 장 주십시오. 저는 명함이 없습니다만.
그의 답변 뒤에는 또 다른 질문이 따라 붙었다. 그러나 명함이 있느냐는
질문은 싫지 않았다. 핸드백 지갑에 있는 명함 두 장을 꺼내 그에게 주면서
한 장 뒷면에 그의 연락처를 적어 달라고 했다. 명함을 받아 바라보던
그에게서 다시 질문이 터졌다.
- 영어 명함이네요. 미국 직장에 다니시나 보죠? 이름이 솔티(Salty) 박이라고
되어 있는데 영어 이름인가요?
그는 명함을 통해 나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 보려 했다. 영어 이름에 의아한 표정을
짓는 것은 명함을 건넬 때마다 누구에게서나 보이는 반응이어서 먼저 대답하는 데
습관 들어 있었다.
- 어머니가 영어 이름을 솔트라고 지어 주셨어요. 한국 이름에서 ‘ㅇ'자 하나만 빼면
소금이 되는데 소금의 뜻인 솔트를 영어 이름으로 하자고 하셨어요. 소금은
맛을 내기도 하고 부패를 방지하는 역할을 하니 이 세상을 소금처럼 살면
좋겠다고 하시면서······. 나는 그렇다면 솔트보다 솔티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솔티가 영어 이름이 된 거예요.
습관처럼 하는 내 이름에 대한 설명을 할 때마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이름처럼 살고 있지 않아서다. 나에게는 부담스럽고 버거운 영어 이름이라는
생각이 짓눌려 오기 때문이다. 미국 사람들은 내 이름을 소개받을 때마다
재미있다는 표정과 기억하기도 쉽고 좋은 의미의 이름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그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영어 이름을 몇 살 때부터 가지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미국 친구들이 한국 이름 부르는 것이
서툴러 솔티라고 부르게 했고, 시민권을 받을 때 솔티라는 이름을 신청해
법적인 이름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 시민권자세요? 어릴 때부터 이곳에 사셨으면 영어도 잘하시겠네요?
그의 반응이 거북하고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가 미국 생활에 초보자라는 것도
쉽게 짐작이 갔다. 그는 내가 시민권자라는 사실을 안 뒤부터는 나에 대해
구체적인 질문을 서슴없이 해댔다. 나이며, 학교 공부 등을 물어왔다.
어릴 때부터 미국에 살았는데 한국말을 잘한다고 칭찬도 했고
이중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자기는 가장 부럽다고 추켜세웠다.
그는 나를 수수한 미모에, 미국 직장에, 이중 언어에,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을 다 갖추고 있다고 부러워했다. 나는 수수한 미모를 지녔다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묘한 흥분을 느꼈다. 그의 투박하고 느린 목소리가
정직하게 느껴졌고 미국 사회에서 뭔가 부족한 상태로 적응해 가는
어설픈 질문과 불안정한 행동들도 마음에 들었다. 그는 자신에 대해서
말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36살의 미혼이라고 했다. 서울에 있는 K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고
같은 대학에서 대학원을 마친 후에 행정고시를 1차 합격했지만 2차에서
두 번이나 떨어져 포기했다고 했다. 군대를 마치고 행정고시를 준비하다가
결혼시기를 놓치고 말았다고 말할 때는 말투에 힘이 있어 애써 강조하고
있음을 느끼게 했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표정에서 타이어를 바꾸어 줄 때
느꼈던 듬직함을 또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커피를 더 달라고 이미 두 번이나 부탁했기 때문에 웨이터의 눈치를 살피며
메뉴를 부탁했다. 나는 그에게 신세진 것도 있으니 이르지만
간단한 저녁을 하자고 권했다. 그는 튀긴 닭이 있으면 닭고기에다
간단하게 맥주를 한 잔 하고 싶다고 했고 나도 동의했다.
술이 좀 들어가자 나의 입에서도 질문이 나오기 시작했다.
- 미국에는 언제 오셨어요? 왜 불법체류 자가 되셨는데요?
그는 친구가 뉴욕 주재 한국 기업체 주재원으로 있는데 친구도 만나볼 겸,
미국에서 공부를 더 해볼까 하여 여러 도시와 대학 등을 방문하며 여행을
즐기다가 귀국시기를 놓쳐 그냥 주저앉게 되었다고 했다.
한국에 돌아가도 특별히 직장이 있는 상태도 아니어서 부모님의 도움으로
당분간 지내면서 진로를 결정하기로 했다는 거였다.
현재 계획은 다음 학기부터 죠지메이슨 대학에서 영어를 배우며
F-1 학생비자를 받아 불법체류신분도 회복하고 싶다고 했다.
- 결혼은 하셨어요?
그가 자기 얘기를 한참 하더니 뜬금없이 물었다.
- 아니요. 아직······.
- 초면이나 다름없는데 너무 실례되는 질문을 했나 봅니다.
-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 사실, 너무 오랜만에 한국 분과 마주 대하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처럼 자꾸 느껴져서 그렇습니다.
너무 시간을 많이 뺏고 제 이야기만 한 것 같은데 다음에
연락드려도 되겠습니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 무슨 말씀이세요. 배울 것이라니요. 연락주시면 이 지역 안내는
제가 해 드리죠.
이야기가 한참은 더 이어질 것 같다가 그의 일방적인 질문과 대답으로
그 날은 헤어졌다. 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은 것이고 그가 다시 연락하겠다고 한 것이었다.
그가 미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기뻤다. 가장 궁금한 건 그거였다.
그를 만난 뒤부터 내 생각과 마음은 통제구역도 없이 어느 곳이든 휘젓고
다녔고 그에 대한 감정이 더 깊어만 갔다. 도서관에서 그를 만나는
바람에 읽지 못했던 ‘몽고반점’을 다시 읽는데도 부끄러운 감정이
용솟음쳤다. 내 벗은 모습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정사장면에 대한 부분에서는 빨리 읽히지가 않고 책을 덮어버리고
싶은 충동도 일었다. 몽고반점이 있다는 공통점 하나로 소설의 내용을
자신의 이야기처럼 생각한다는 것이 어처구니없기도 했지만
그런 사랑에 한 번 빠져 버리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사람이 바람난다고들 하던데 바람나는 일이 별것도 아닌 것 같이 느껴졌다.
계획적으로 바람나는 사람보다 어느 한 순간의 유혹이나 환경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 일수도 있다고 여겨졌다. 사랑해서는 안 되는 사이의
이야기이니까 소설이겠지. 나는 소설 속에 주인공처럼 그와의 깊어진 사랑을
꿈꾸며 도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독거렸다.
비가 바람에 날려 창문에 부딪쳐 부서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나른한
오후에 그로부터 전화가 왔다. 목요일이었다. 금요일 오후에 같이 갔던
스포츠 바에서 만날 수 있겠느냐고 했다. 그를 만난 지가 열흘쯤 지난 후였다.
반가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내 행동에 엄마는 남자에게서 아무 부족함이
없다고 느껴지고 좋은 감정만 자꾸 생길 때 조심해야 한다는 충고를 하며
세상에는 부족하지 않은 남자가 없고 사귀다 보면 나쁜 점이 보여야
정상이라고 했다. 처음에 맛이 없는 포도주가 세월이 흐르며 맛이
들어가는 진리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사랑은 포도주가
맛 들어 가듯이 시간이 흐를수록 맛이 들어야 한다는 엄마 말이 여운으로 남았다.
쉽게 잠들지 못하고 뒤척였다. 거친 빗소리와 천둥소리, 번갯불의 번뜩임이
마치 죄지은 사람을 찾아다니는 심판의 칼날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다모레스크의 칼날처럼.
소낙비는 소낙비였다. 다음날은 맑고 청명한 날씨로 변했다.
유난히 새들의 지저귐 소리가 신선하게 들렸다. 딱히 그를 유혹하고 싶다는
마음에서라기보다 여자인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은 마음으로 평상시보다
노출이 있는 가벼운 복장으로 약속장소에 나갔다. 내면과 외면을
가능한 일치하며 살아가려던 생각이 그를 통해 서서히 변하고 있었고
몸치장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 후로 당연한 것처럼 행동하게 되었다.
그는 벌써 그곳에 와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반쯤 벌린 그런 멍청한 얼굴을 하고 천진난만한 표정과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먼저 오셨네요. 잘 지냈어요?
- 솔티 씨 맞아요. 다른 사람 같아요. 영화나 텔레비전에서 본 여자 말고
내가 만난 여자 중에서 최고로 멋있고 아름다운 사람이 내 앞에 있습니다.
옷을 좀 과감하게 입어도 되겠어요.
듣기 좋은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그의 말이
싫지 않았다. 아니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비참했을까?
나는 이런 이중적인 마음이 어느 여자에게나 있는 감정이라고
애써 생각하려 했다. 단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두 번째 만남도 그 스포츠 바에서 두서없는 잡담과 생맥주를 마시며 보냈다.
그는 평범한 이야기인데도 흥미 있게 말하는 재주가 있었다.
영어가 한국말보다 편하다고 느끼며 살다가 그와 오랜 한국말 대화는
엄마와 같이 연속극을 보며 듣던 대사를 다시 듣는 것처럼 느껴졌고 빠져들었다.
세 번째 만남부터는 그가 모든 이야기의 화젯거리나 분위기를 주도해 나갔다.
나는 엄마 말대로 그에게서 나쁜 점과 싫은 점을 찾아보려 애썼지만 좀처럼
발견할 수 없었다. 나는 그의 말과 행동에 더 깊이 빠져들어 갔고
그런 나를 그는 마음대로 흔들어댔다. 거부할 기회를 주지도 않고
손을 잡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안아 주기도 했다.
두 달이 못 되어 내 입술은 그의 입술이 되어 버렸다. 가슴에 그의 손이
파고들어도 거절하지 못했다. 거절하는 듯 몸을 틀어 보기도 했지만 싫어서
하는 몸짓이 아니었다. 임신주기에 나를 원하면 어떡하나 걱정되어
일부러 피임약을 복용하고 만나기도 했지만 그는 마지막 순간만은 피했다.
- 솔티, 미안해요. 저질적인 행동에 실망이 크죠? 그래도 책임지지
못할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 고마워요.
나는 이미 그와의 결혼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어느 날 문득 무릎을 꿇고 반지를 주면서 청혼해 줄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몇 달이 지나도 청혼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먼저 결혼하자고
말할 용기도 없었다. 매주 만나 데이트를 하는 것을 알아챈 엄마가
그를 만나고 싶어 했고, 나도 은근히 엄마를 소개하여 좀 더 진전된 관계를
유도해 보고 싶어졌다. 그에게 엄마가 보고 싶어 한다고 말해 보았다.
그는 의외로 쉽게 만나서 인사드리겠다고 했다.
마치 그 말을 기다리기라도 했던 사람처럼.
그를 만나고 난 엄마의 표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는 맘에 드는 사람을 만나면 그 감정을 숨기는 분이 아니었다.
엄마의 그런 성격을 조금도 닮지 않은 나는 아버지 성품을 닮아 그런 거라 여겼다.
- 엄마, 그 사람 어때 보였어?
- ······.
- 엄마. 왜?
- 너무 나무랄 것이 없어 왠지 불안하다. 그런 조건과 환경을 가진 사람이
그 나이 되도록 결혼하지 않은 것도 믿기지 않고. 어떻게 집안과 그 사람에
대해 알아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너 기회 되면 그 사람 서울 집 주소나
여권 한 번 확인해 봐라. 이름이나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있으면 확인할 수 있을 텐데······.
나는 엄마가 그의 집안 사정을 알고 싶어 하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그에게
그런 것을 물어 보고 싶지 않았다. 그를 믿지 못한다는 인상을 줄 것 같아서였다.
엄마를 만난 후부터 그가 나를 대하는 태도도 약간은 달라지고 있었다.
육체적인 접촉의 빈도도 뜸해졌고 훨씬 신사적인 태도를 취했다.
자존심을 누르며 왜 그러느냐 묻는 내게 실수하고 싶지 않아서라고 했다.
그런 그가 더욱 믿음직스럽게 느껴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뒷맛이 꺼림칙했다.
우리의 만남이 지속될수록 엄마는 더 불안해하며 걱정스런 말을 자주했다.
남자가 가까워질수록 더 신사적일 때는 숨기는 것이 있는 것이라고도 했고,
그 나이에 남자가 육적인 정욕을 그렇게 절제하기가 쉽지 않으니 몸가짐을
조심하라고도 했다. 나는 그가 육체적 행동을 자제 할수록 반대로
성적 욕망이 일어 부끄러웠다. 그에 비해 훨씬 속물처럼 느껴져서다.
나는 예전처럼 적당한 거리를 두고 결혼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불법체류 신분을 해결해 주고 싶은 마음도 일었고 한 번 빠져들면
집착하고 결론을 내고 싶어 하는 성격도 작용했다.
그가 불법체류 신분에서 벗어나게 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시민권자와
결혼하는 것이었다. 나는 결혼이라는 감정이 사랑으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나이가 든 탓인지 적당한 나이차이
하나만도 맘에 들었고 외모와 성격도 좋게만 받아들여졌다.
그런 조건들이 맘에 들자 그가 싫지 않았고 서서히 좋아진 것이며
지금은 사랑하고 있다고 믿으려 하고 있었다. 그와 결혼하게 되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기만 했다.
다른 사람은 사랑한다는 감정을 어떻게 확신하며 고백하는지 궁금해졌다.
보고 싶다는 것은 그리운 감정일 것이고, 그에게 안기고 싶은 감정은
본능적인 감정일 것이다. 보호받을 수 있을 것 같은 듬직하다고 느끼는
감정이 사랑일 수는 없지 않는가? 그가 은연중에 계속 말하는 불법체류
신분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싶어 하는 감정도 동정이나 연민일 뿐
사랑일 수 없는 감정임이 분명했다.
그에게 느끼는 감정 중에 어떤 감정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정리되지 않아 다른 일까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럴 때 마음 놓고
말할 상대 하나 없는 자신이 한심했다. 가까웠던 친구 중에는 이미 시집가서
아이를 낳고 학부모가 된 친구도 있었지만 사랑의 초보적인 질문을
그들에게 물어보기가 창피스럽다는 생각이 앞섰다.
엄마와 나는 거실에 있는 작은 식탁에서 커피를 마시며 밖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끔 즐겼다. 우리는 커피를 같이 마시면서도 말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그저 서로의 상념에 충실했고 그런 시간을 존중하며 같이 했다.
나는 커피 잔의 온기를 두 손으로 느끼며 밖을 보고 있었다.
미국 집들은 대부분 한국 집과 달리 뒤뜰을 잘 가꾸어 놓는데,
우리 집 역시 뒤뜰이 넓고 나무들만 울창한 생태보호구역에 위치해 있었다.
거실 미닫이창문으로 보이는 나무는 벌써 푸른 기운을 잃어가고 있었다.
저 나무들이 움을 내고 잎이 연둣빛으로 변하는 것을 보고 있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초가을이라니.
성질 급한 사람들은 벌써 노란 호박에 귀신 얼굴을 새기고 그 안에
촛불이나 등을 켜놓기도 하고 모형 해골이나 시체들의 모형을 나무나
집 입구에 장식해 놓고 10월 말일 할로윈(Halloween)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린 시절은 무슨 일을 했어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어 좋았다.
할로윈 날이 되면 마녀복장이나 귀신복장을 하고 초저녁이 되면
이웃집들을 돌아다니며 문을 두드리고
‘트릭 오어 트리트(Trick or Treat)'라고 외쳤다.
‘과자를 주지 않으면 장난을 칠 테야’라고 으름장을 놓는 것이다.
그러면 출입문이 열리고 역시 할로윈 복장을 한 주인들이 나와
초콜릿이나 과자를 플라스틱 귀신호박 바구니에 넣어 주었다.
일 년 내내 먹을 수 있는 과자를 하룻밤에 받아 온 적도 있었다.
대학 시절에 할로윈 파티에 간 적이 있다. 누구인지 모르게
마녀 탈을 쓰거나 얼굴에 색을 칠해 귀신처럼 변장하고
그날 외에는 입을 수 없는 복장들을 하고 모여 술을 마시며
전혀 모르는 사람들처럼 떠들고 놀기도 하다가 누구인지 뒤늦게
알아차리고 정말이지 감쪽같이 속았다고 기뻐했다.
할로윈 날은 귀신의 이름을 빌려 서로를 속이고 감출 수 있는
날이라고 생각하며 즐겼다.
- 솔티, 너 그 남자와 결혼할 거니? 그 사람 사랑해?
할로윈이 지나면 바로 크리스마스 캐럴이 들리겠구나.
그러면 또 한 살 더 먹는 건가. 나이는 생일 때 먹으면
좋으련만 왜 한국 사람은 새해부터 나이를 먹는 것으로 해
꼭 일 년에 나이를 두 번 먹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엄마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던진 질문이다. 나는 그때야 엄마가 줄곧
나의 결혼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 아직 잘 모르겠어. 마음은 가는데 사랑하고 있는 건지 확신이 안서.
엄마, 아빠 사랑했지. 그래서 결혼한 것 맞지?
- 사랑했지. 사랑하지도 않았는데 결혼하고 너를 낳았을까봐?
- 엄마는 아빠를 사랑한다는 것을 어떻게 확인했어?
엄마의 안색이 별 싱거운 질문을 다 한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나로서는 심각한 질문이었다. 지금 꼭 알고 싶고 알아야 할 질문이었다.
- 그리스 사람들은 사랑에 대한 말을 하나로 쓰지 않는다고 한다.
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따로 있고 우리가 말하는 우정을 말하는 말도
따로 있고 남녀 간 육체적인 관계의 사랑을 표현하는 말도 따로 있다고 해.
그런데 우리는 그런 모든 사랑을 한 단어로만 표현하고 있지.
엄마는 사랑은 그렇게 철학적이고 논리적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두루뭉술하게 말하는 우리 표현이 맞는 것 같다.
부부간에 사랑은 존경심도 있어야 하고, 친구 같은 친근함도 있어야 하고,
성적인 매력도 느껴야 하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에
우선순위가 있다는 사실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는 거다.
엄마는 사랑의 우선순위를 잘 지키면 실패하지 않는 사랑을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싱겁게 느껴지던 엄마 표정과는 달리 설명은 장황하면서도 정제된 맛이
느껴졌다. 사랑에 성공한 엄마라면 그렇게 말하지 못했을 것 같았다.
사랑에 실패하고 아파보고 상처를 간직하고 살아온 엄마만이 딸에게
할 수 있는 답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사랑하는 마음에 우선순위가 있다니, 무슨 뜻이야?
- 너도 이제 어른이니 말해 주마. 엄마는 외모를 먼저 생각했고,
육체적 접근에 속수무책이었다. 아빠를 존경한다든가 믿음직스럽고
나를 마음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감정을 느끼기도 전에
우리는 육체적 사랑에 빠져 버린 거야. 문제는 육체적인 관계가
다른 사랑의 영역을 다 포함하고 있다는 착각과 집착을 혼자
하기 시작한 거였어.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다.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남자나 여자나 육체적인 관계는 사랑이 없이도
얼마든지 가질 수 있어. 그래서 진정한 사랑은 존경심과 신뢰와
상대방에 대해 배려할 수 있는 마음이 먼저 있어야만 해.
그런 확실한 마음이 드는 사람과 육체적인 관계가 이루어지면
완전에 가까운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지. 너 그 사람 존경할 수 있어?
거창한 말이 아냐. 믿을 수 있느냐는 말이야. 그 남자의 말과 모든 것에
거짓이 없느냐는 거야. 거짓이 없어야 존경할 수 있거든.
- 엄마, 진실인지 거짓인지 어떻게 확인해?
- 그 사람이 말할 때 눈을 봐. 나이가 들고 보니 눈을 보니 알겠더라.
성격과 어울리는 행동을 하는지도 살펴봐. 젊은 애들 말대로
오버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
나는 모처럼 엄마와 어른 대 어른으로 대화하는 것 같아 흐뭇했다.
그에 대한 내 감정도 어느 정도 점검해 볼 수 있어 좋았다.
그래도 엄마 말을 완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는 나이에 비해
경험이 부족했다. 경험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생각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았다.
양반들과 말뚝이가 중중모리 창과 함께 빠져나가고 다른 양반이 등장했다.
‘비비’하는 이상한 소리와 함께 푸른색 용머리에 새의 부리 같은 입을
하고 푸른 바탕색에 홍, 백, 청 무늬를 한, 용의 몸을 지닌 사람도 아니고
용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떤 특정한 동물을 닮지도 않은
영노탈이 등장하더니 양반이 말하는 대로 따라한다.
- 양반 ; 구령에 사는 영노사면 구령에 있지! 뭣 하러 여기 왔노?
- 영노 ; 나가 여기 온 것은 다름 아니고, 양반 놈들의 행사가 나빠서
양반 잡아 묵(먹)으러 왔다. 양반 아흔아홉을 잡아 묵고 네 하나를 잡아
묵으면 백을 채운다. 백을 채우면 하늘로 득천(得天)한다.
양반은 자기는 양반이 아니라고 부정하면서 맛있는 것이라고
올챙이, 개구리, 뱀, 구렁이를 대신 먹여 보지만 헛수고다.
결국 양반은 영노탈에게 비명을 지르며 잡아먹힌다.
그래, 세상이 불공평하게 보이지만 거짓 탈을 쓴 사람들이
영노에게 잡혀 먹히듯 결국 심판을 받게 되어 있어.
그것을 말하고 싶은 거야. 관객들이 영노에게 잡혀먹는 양반을 보며
웃음과 함께 박수를 보낸다. 잠시 텅 빈 마당에 바람 한 줄기가
스치며 잔잔한 먼지를 일으켜 공연 중에 떨어진 낙엽을 쓸어내려 한다.
사랑에 대한 엄마의 충고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며 생활의 패턴을
흩어 놓았다. 나는 그를 믿고 내 남은 삶을 같이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 엄마 말대로 사랑의
우선순위가 있다면 나는 그를 먼저 신뢰할 수 있어야 했고
어떤 경우에도 그를 위해 희생할 각오가 서야 했는데
그런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가 육체적 접촉을 시도할 때마다 뿌리치지도 못했다.
다행인 것은 그가 가벼운 신체접촉 외에는 서두르거나 강압적인
행동을 계속하지 않는 거였다. 그런 절제된 행동이 고맙게 느껴지기
시작하더니 꺼림칙하던 마음도 서서히 누그러들면서 그를 신뢰해도
되겠다는 하나의 믿음으로 변해 가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허전한 감정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대화할 때마다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싶어졌다.
눈을 보며 그의 진심을 짐작해 보려했다. 그러나 아무리
바라보아도 그의 눈빛에서 내가 기대하는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사랑한다는 말은 다정하게 거침없이 했지만 눈빛에서 같은 느낌을
받지 못했다. 삼십대 중반이 넘은 그의 눈빛에서는 삶에 대한
열정 같은 것도 느껴지지 않았고 앞으로 미국에 살게 되면 무엇을
해 보겠다는 의지도 없이 어디엔가 평안하게 안주하려 하는
눈빛으로만 느껴져 부담스럽기까지 했다.
대서양에서 몰려온 허리케인으로 인해 이틀째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며칠 동안 연락이 없던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날도 궂고 낙엽이 바람에 강제로 떨어지는 모습이 사람을
싱숭생숭하게 만든다고 하며 조용한 외각에 나가 술이나
한 잔 하고 싶다고 했다. 계절의 변화나 날씨로 인해
사람의 감정은 흔들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가을은 남자를 센티멘털하게 만든다고 하던데 그가
그런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66번 하이웨이를 타고 서쪽으로 한 시간 반을 단풍든
나무들과 비구름을 감상하며 달렸다. 특정한 목적지가 있는 것이
아니어서 큰길을 따라 계속 운전을 했다. 그는 현대 소나타를 타고
다녔는데 가까운 곳에서 데이트할 때는 통상 그의 차를 타고 다녔다.
오늘은 장거리여서 그런지 그가 내 차 BMW를 타고 가자고 했다.
내 차가 새 차였고 이런 날씨에는 더 안전할 것 같아 쉽게
동의했고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남북으로 이어지는 81번 하이웨이가 나왔다. 남쪽으로 갈까 북쪽으로
갈까를 물었다. 그는 아무 방향이든 상관이 없다고 하더니 다시 남쪽으로
가자고 했다. 그는 북쪽으로 가다 보면 군대생활 하던 전방이
나올 것 같고 휴전선이 나올 것 같은 착각을 가끔 하게 된다고 하며
남쪽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 81번 남쪽을 타고 조금 내려가는데
우드스탁(Woodstock)이 곧 나올 거라는 이정표와 함께 황갈색 바탕에
포도가 그려진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 솔티, 운전하다 보면 저런 간판이 가끔 보이던데,
저곳에서는 포도를 판다는 말이야, 포도주를 만들어 판다는 거야?
그게 궁금하면서도 누구에게 물어볼 기회가 없었네.
- 포도를 직접 재배하여 포도주를 만들어 파는 곳이에요.
먹는 포도는 없어요. 미국 사람들은 은퇴하면 대부분 시골에서 말을
키우며 살거나 저런 포도원을 가지고 노후를 보내고 싶어 한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어요. 특별히 갈 곳도 없는데 저 포도밭이나 한번 가볼까요?
그는 좋은 생각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우리는 다음 출구에서 빠져나와
꾸불꾸불한 시골 길을 따라 포도원 안내판을 따라갔다.
짧은 비포장도로를 지나면서 포도밭이 보였다. 포도나무는 잎을
다 털어버리고 봄을 기다리며 쉬고 있었다.
‘북산포도원(North Mountain Vineyard)'이라고 번역하면 될 것 같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뾰족한 교회 십자가 탑을 연상시키는
황금색 지붕이 햇빛이 없는 날인데도 검은 구름과 대비되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휴일인데도 날씨 탓인지 포도주를 파는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백인 여자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손님이 없어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지 우리를 밝은 미소와 함께 반갑게 맞아 주었다.
카운터에는 여러 종류의 적포도주와 백포도주가 진열되어 있었고
사기 전에 시음할 수 있다고 하며 작은 플라스틱 와인 잔을 하나씩 주었다.
나는 가장 인기 있는 백포도주와 적포도주가 어떤 것인지 물었고
그녀는 네 종류를 보여주며 설명하고 시음해보라고 권했다.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릴 뿐 대화에 끼어들지 않았다.
어떤 포도주를 살 것이냐고 묻자 켈리포니아 와인 축제에서
은상과 동상을 받았다는 적포도주와 백포도주를 한 번 마셔 보자고 했다.
그가 원하는 와인을 사서 큰 저택 넓은 거실처럼 꾸며진 홀로 갔다.
삼면이 큰 창문으로 되어 있어 실외에 앉아 있는 느낌을 주었다.
가구와 소파들이 오래된 골동품들이어서인지 짝이 맞는 것이 없어
무질서하다는 느낌이 처음에는 들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그 무질서함
속에 가구들의 색감이나 테이블에 깔린 천들, 벽에 걸린 그림과
사진들이 안락한 느낌을 주는 질서를 품어내기도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부터 그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하나로서의 아름다움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것이 섞여서 보여주는
평화로운 조화와 느낌 속에 우리 둘은 앉아 있었다.
역시 나이가 제법 들어 보이는 피아노가 구석에서
누군가 건반을 쳐 소리 내 주기를 기다리는 듯 열려 있었고,
피아노 위에는 결혼사진이 놓여 있었다.
- 이곳에서 결혼식도 하나 보지?
내가 결혼사진을 보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그가 물어보았다.
- 이 포도원을 소개한 안내장을 보니 결혼도 할 수 있다고 되어 있네요.
- 이런 곳에서 하는 결혼도 참 낭만적이고 좋겠다. 한국의 결혼문화가
좋은 점도 있지만 너무 외향적이고 화려해지는 것 같아 거부감이 생겨.
축하보다는 부조금 품앗이 하는 곳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아.
- 현수 씨는 결혼하면 이런 곳에서 하고 싶어요?
- 만약 미국에서 결혼할 수 있다면 여기서 하고 싶은데.
우리 결혼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데도 어색한 마음이 들어 잔에
있는 와인을 마시자 그도 자기 잔을 비웠다. 그는 오늘은 자기가
운전을 하지 않으니 편하게 술을 좀 마셔도 되겠느냐고 내 허락을
받으려 했다. 나는 알아서 마실 테니 그러라고 했다.
와인은 생각보다 달콤해서 좋았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차분히 즐겼다. 보이는 것은
그와 나무, 구름, 그리고 가끔씩 창밖에서 날아다니는 새뿐이었다.
나는 특히 나무를 좋아했다. 태어난 곳에서 떠나지 않고 뿌리내려
사는 것이 부러웠다.
어릴 때 미국에 왔기 때문에 미국이 고향이면서도 한국이 고향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미국은 왠지 유럽 사람들의 고향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사는 유색 인종들이 많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백인들이 먼저 대륙을 발견한 탓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 시민권을
가지고 살면서도 한국이 고향인 것처럼 생각하는 때가 많은 것이다.
나무는 항상 같은 곳에 있어서 좋고, 자라고 늙어가는 것 외에는
변하지 않아서 좋다. 자라고 늙어가는 변화는 모든 생명체가 지닌 가장
아름답고 숭고한 변화 일게다. 그런 변화는 누구나 받아들인다.
문제는 사람들은 변하는 것이 아니라 변질하는 데 있다.
외모의 변화는 문제되지 않는다. 내부의 변질이 문제다.
-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 태어난 곳에서 떠나지 않고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사는
저 나무들을 생각했어요. 사람의 마음은 왜 쉽게 변할까요?
-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없어. 하나님만 신이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데. 그래서 사람이 변하지 않으면 신이 되는 거야.
이 세상에 죄인 아닌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하는데 다 변하기
때문이야. 변하는 것이 곧 죄라는 이야기가 되는 거지.
- 사랑도 변할까요?
- 그렇겠지.
- 그렇다고 변함을 전제로 사람이 사랑할 수는 없잖아요?
- 맞는 말이지만 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거짓으로
사랑을 시작하는 거야.
- 거짓으로 사랑을 시작할 수도 있어요?
- 아니, 예를 들면 그렇다는 거지.
그는 말꼬리를 얼버무렸다. 술기운 탓인지 말수가 많고 길어졌다.
거짓으로 출발한 사랑이 진실 된 사랑으로 변할 수도 있지만
그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고도 했고, 진실로 출발한 사랑도
서로 노력하지 않으면 쉽게 변할 수 있다고도 했다.
그의 말은 진지했고 진솔하게 들렸다. 이미 깊은 사랑을
경험한 것 같기도 했고 시작부터가 거짓이 없는 사랑을
하고 싶다는 감정을 말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를 믿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나이에 맞는 품위와 지식도 있어 보였다.
그와 같이 한국에 산다면 그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포도원을 나오면서 가까운 곳에 조용하고 시골스런 분위기를
풍기는 레스토랑이 있느냐고 점원에게 물었다.
그녀는 금발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며 허리를 굽혀 테이블
아래에서 안내장 하나를 꺼내 주었다.
포도밭에서 20분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레스토랑을 소개한 거였다.
포장된 도로와 비포장 시골 도로를 우리는 별 말없이 달렸다.
작은 개울을 지나기도 하고 제법 큰 개울을 지나야 했다.
비가 많이 오면 아예 잠겨서 통행을 할 수 없는 그런
개울을 지났다. 어제부터 내린 비로 물이 제법 흐른다고
생각하며 개울을 건넜다. 레스토랑은 소나무와 잡목이
빽빽한 숲속에 있었다. 뒤로는 쉐난도아 강이 흐르고 있고
제법 높은 산이 강줄기를 끌어안고 있었다.
레스토랑 바닥은 진홍색 카펫이 깔려 있고 고풍스런 색을
드러낸 테이블과 의자가 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벽에도 옛날 농기구며 마차 바퀴들이 여기저기 걸려 있고
그 사이에 남북전쟁을 묘사한 그림들을 걸어 놓았다.
빈 공간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으로 채워진 실내였다.
포도원과는 달리 정장을 한 커플들이 곳곳에 앉아 주고받는
밝은 대화와 웃음이 홀 안에 가득하여 괜히 같이 즐거워지는
들뜬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웨이터 안내를 따라 우리는 테이블에 앉았다.
향내 나는 촛불이 작은 크리스털 병에서 타고 있고
들에서 꺾어온 듯한 이름 모를 야생화가 파란 꽃병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 분위가 참 좋은 곳이네. 이제야 미국에 살고 있는 기분이 나네.
- 그래요. 다행이네요. 사전 정보 없이 와서 걱정했는데.
- 나는 너무 철저하게 준비된 여행보다 그냥 다니며
마음 가는 대로 결정하고 지내는 여행이 더 좋던데.
솔티는 그런 여행 싫어해?
- 아니요. 모르는 곳을 갈 때는 약간 불안하기도 하고·····?
? 혼자 다닐 때는 걱정 없지만 동행이 있으면 상대방이
자연 신경 쓰여서요.
그 말이 지금 당신 때문에 신경이 쓰인다는 말로 들릴 것
같았지만 사실 전혀 그렇지 않은 것도 아니어서
덧붙이는 설명을 하려다가 그만 두었다.
- 솔티, 그냥 나를 편하게 대해요. 나는 솔티에게 편안한
존재이고 싶어.
편안한 존재. 믿음이 가기 시작하는 초기단계에서 느껴야
할 감정인 것 같았다. 사실 나는 그가 점점 편해지고 있었다.
그의 무릎을 베고 별을 본다든가 팔짱을 끼고 어리광을
부려 보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처음 그를 만나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그의 말이나 행동이
금방 그런 단계로 접어들 것처럼 보였는데 한동안 신체적인
접촉을 하다가 갑자기 내가 그런 그의 행동을 부끄러움 없이
받아들이기 시작하자 그는 스스로 행동을 자제하며 거리를 두기
시작하면서 나의 마음이 그를 더욱 신뢰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으로
변하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둘만의 시간이 무르익으면서,
아니면 술기운 탓인지 신체접촉이 있을 때 감정이 순간순간 느껴졌다.
와인을 겸한 티본스테이크는 분위기에 맞는 음식이었다.
현수는 스테이크를 직접 잘라 내 접시에 주기도 하고 천천히 가자고
하며 와인을 권하기도 했다. 분위기에 젖은 나 역시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즐기고 있었다. 그는 여러 질문들을
하기도 했는데 주로 영어에 얽힌 이야기나 문화적인 차이에 대한 질문을 했다.
- 마을 이름이 참 재미있지 않아? 우드스탁(Woodstock)이 뭐야.
나무더미라는 말인가? 나무가 많기는 한 동네이긴 하지만.
그런데 뉴욕에도 우드스탁이 있던데. 맞아?
- 원래 뉴욕의 우드스탁이 유명한 곳이에요. 매년 록페스티벌이 열리니까요.
현수가 말하는 우드스탁은 60년대 후반부터 히피족들이 모여
록페스티벌을 하며 마약과 술 담배로 몽롱하게 몇 날이고 보내는 것으로
유명한 곳이다. 같은 시골이지만 버지니아 주 우드스탁에서는
그런 분위기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 사람들은 풍요로우면 더 안정되게 살아갈 것 같아도 그렇지 않나 봐요.
미국이 잘 살면서도 가난한 나라에 없는 범죄가 더 많은 것을 보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되요. 이런 시골에도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문제가 많겠죠. 미국에서 알코올 중독자가 가장 많은 주가
경치 좋고 외지기로 유명한 사우스, 노스 다코다 주라고 하는 것을 보면 은요.
- 이 세상은 잘 살아도 문제고 못 살아도 문제야. 사람 자체가
완전하지 못하니 그럴 수밖에. 그래도 가지지 못한 사람이 가진
사람보다 더 정직하고 순박한 것은 맞는 것 같아. 가지지 못한 사람은
그 환경을 쉽게 받아들이고 적응해 살지만 가진 사람은 더 가지려는
마음과 더 가진 사람에 대한 비교의식이 강해 만족하지 못한다고 그러더군.
얼마 전에 신문에서 읽었는데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선수들의 행복감을
측정했는데 동메달을 딴 선수보다 은메달을 딴 선수가 더 만족해하지
못한다는 거야. 동메달을 딴 선수는 딸 수 없는 메달을 땄다고 생각하는 반면
은메달을 딴 선수는 금메달을 따지 못한 것에 애석해서 괴로워한다는 거지.
우습지 않아? 그래서 행복해지려면 상대적 가치기준보다 절대적 가치기준을
가지고 살아야 되는 거야.
그는 나와 두 살 차이도 안 되는데 해박한 철학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같았다.
주위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일어나 다른 방으로 가 당구를 치기도 하고
피아노 연주가 끝나면 격려의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몇 시간을 그렇게 현수와
이야기를 하며 지냈는지 몰랐다. 홀에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에 그 분위기에 젖어 시간이 흘러가는 것에 관심을 두지 못했다.
우리는 서로 술잔을 주고받았기 때문에 서둘러 일어나려는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
그런 시간 속에서 지금까지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지금 어떤 생각으로 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렇게 서로를 알아가는 동안 밖에서는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우리는 늦게야 개울이 범람해서 나갈 수 없음을 알았고,
거기에 온 손님들은 주말을 그곳에서 보내려고 온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레스토랑은 고급 민박집 같은 곳이었다.
‘베드 앤드 블렉퍼스트(Bed and Breakfast)’라고 통상 불리는 시골 민박집이었다.
나는 할 수 없이 빈방이 있는지 확인해야 했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빈방이 있었다.
그는 자기를 믿어도 된다는 말을 방문 앞에서 망설이는 나의 귀에 대고 했다.
나는 그의 말을 믿어서가 아니라 결국 올 것이 오고 말았다는
생각을 하며 방문을 열었다.
그와 같이 밤을 보낼 준비가 된 여행이 아니어서 불안했다.
막연히 그가 내 몸을 요구하면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이
현실이 되어 버린 순간을 맞은 것이다.
일회용 칫솔과 치약이 있어 양치질을 했다.
- 솔티, 씻지 않을 거야? 나는 좀 씻어야겠는데.
- 그러세요.
그는 욕실에 들어가 한참 동안 샤워를 했다. 나는 만약 몸을 씻으면 그를
받아들이려는 마음으로 그러는 것이라는 오해가 있을 것 같아 샤워를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것은 순간적인 내 생각이었다.
그가 욕실 문을 열고 나오는데 알몸에 수건만을 아래에 걸치고 나온 것이다.
수건이 볼록 튀어나온 것을 보는 순간 나는 창 쪽으로 고개를 돌려 버렸다.
- 씻어.
우두커니 서서 흐르는 강물을 보는데 나직하고 무거운 목소리가 들렸다.
명령기가 있는 강압적인 억양이었다. 그래도 아무 반응이 없자 내게 다가와
내 겉옷을 벗겼다. 나는 움찔하면서도 그의 행동을 제지하지 못했다.
그동안 성에 대한 호기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내 집착하는 성격에 비해
큰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순결을 지킬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때가 되면 나에게도 그런 날이 올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 날이 오면 나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무 부끄러움 없이
모든 것을 허락하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정작 그 순간이 왔지만 불안하고
지금은 아닌데 하는 생각이 밀려왔다. 거부하고 싶은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나는 지난 34년의 모든 생각과 자부심이 갑작스런 추위에 제대로 물들지
못해 퇴색해 가며 겨우 매달려 초라하고 힘없이 땅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나뭇잎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내 의지만으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몸을 구석구석 씻었다.
샤워를 마치고 내 몸에 물기를 닦으며 거울을 보았다. 아직은 탄력이 있고
누구에게도 보일 수 있는 몸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이제 내 몸도 매력을
서서히 잃어가기 시작하고 있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숨겨진 점들을
바라보았다. 가슴 사이에 점이 더 커보였다. 뒤로 돌아 거울에 비치는
몽고반점을 확인해 보았다. 이제는 그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을 것 같은
마음으로 욕실을 나왔다.
그는 내 생각을 알아차렸는지 욕실에서 나오는 나를 그대로 안아 침대에 눕혔다.
그에게서는 더 이상 평상시에 느꼈던 차분함이라든가 절제된 행동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적어도 내 벗겨진 몸을 그가 좀 바라보아 주기를 바랐지만 그는 그저
내 몸을 끌어안고 자기 몸에 밀착시키려는 데만 모든 힘을 쏟았다.
거친 숨소리와 함께 술 냄새가 내 몸에 파고들었다. 통증이 아랫도리를 휘젓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몸무게에 눌리는 중압감을 거부하지 못하고 받아들이고 말았다.
그의 행동이 너무나 일방적이고 강압적이어서인지 내 감정은 엉뚱한 곳에
매달려 흔들리고 있었다. 서로 사랑한다는 신뢰를 느끼지 못하고 가지는
육체적 관계를 조심해야 한다는 엄마 말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를
따라 워싱턴 광장에 가서 약속했던 ‘순결서약식(Promise Keeper)’ 때의
내 모습도 보였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길 때까지는 순결을 지키겠노라고
나는 하나님 앞에서 친구들과 같이 약속했었다. 그 약속을 지금까지
잘 지켰다는 생각보다 약속을 나 혼자 일방적으로 깨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술에 취한 탓인지 아니면 처음 경험하는 일이어서인지 쉽게 힘이 풀어지고
잠에 빠져들었다. 그를 받아들였지만 아무 느낌이 들지 않고 허탈한 감정만이 나를 괴롭혔다.
내 몸 구석구석에서 탈에서 보았던 점들이 솟아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나도 이제 탈을 쓰고 살아가야 하는 처지라는 감정이 드는 것이 싫었다.
이제 그에 대한 감정이 순수할 수 없을 것이고 또 술에 취해 아무런 감정도 없는
동물처럼 격렬하게 내 몸을 다시 요구한다 해도 순응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내 몸을 한 번 소유한 뒤부터 그의 태도는 전과 같지 않았다. 그는 오랫동안
준비하며 기다렸던 시험을 끝낸 사람처럼, 그 시험 친 결과에 만족한 사람처럼 행동했다.
외각으로 드라이브를 하자는 제안도 늘었고 그 제안은 곧 내 몸을 가지고 싶다는
의미가 되었다. 우리가 처음으로 같이한 민박집은 교포들에게 알려진 곳이 아니어서
다른 사람의 이목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는 점도 우리의 육체적 만남에 불을
더 붙이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분명 우리는 서로가 떳떳한 만남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으면서도 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지냈다.
그런 데이트가 지속될수록 나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몸을 허락한 뒤로
나는 모든 면에서 약자가 되어 갔고 그는 무언중 강자로 군림하기 시작했다.
그의 입에서 결혼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다렸지만 섹스 전에 사랑한다는 말은
꼭 하면서도 결혼하자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점점 이상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행동이 어떤 의도를 품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기도 했다.
그는 내가 자기에게 빠져들어 헤어나지 못하게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고
그의 의도대로 순응하는 나의 모습을 통해 그 점을 확인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나에게는 육체적인 관계가 있기 전에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 새로 생기고
그에게서는 전에 보지 못했던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더 이상 우리의 관계를
이런 상태로 지속할 수 없었다. 나는 막 거친 섹스를 마치고 축 처져 있는
그에게 엄마 핑계를 대며 결혼 얘기를 먼저 꺼냈다.
- 현수 씨, 엄마가 나이도 있는데 서로 맘에 들면 결혼하라고 하시네요.
요즘 우리 사이를 무척 걱정하시면서······.
그는 한동안 내 말에 대답하지 않고 천장을 바라보며 여러 생각을 하는 것 같더니
일어나 앉으며 말문을 열었다.
- 조금만 기다리면 내가 멋진 프러포즈를 하려 했는데 미안해요.
사실 그동안 여러 번 말하려고 했지만, 지금 내 처지가 솔티를 욕심내기에는
신분이나 경제적 여건이 부족하고 신분문제 때문에 한국에 같이 나가 결혼하자고
할 수도 없고 그래서 그냥 이러고 있었는데······.
그날 저녁 술만 안 취했어도 솔티한테 이렇게 미안하지는 않았을 텐데.
나는 누워서 그의 말을 듣다가 진지한 말에 몸을 일으켜 세우고 앉아 그에게
몸을 밀착하며 바라보았다. 괜히 결혼 이야기를 먼저 꺼내 낭만적인 프러포즈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술에 취해서 첫날밤을 같이 하게 된 거라는
변명에는 기분이 언짢았다. 다행이라면 그도 나와 결혼할 의사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 결혼하기 전까지는 이런 관계를 계속하고 싶지 않아요.
우리 이러지 말고 엄마와 상의해서 결혼해요. 결혼하면 현수 씨 신분문제도
해결되는 것이고, 경제적인 여건은 신분문제가 해결되면 무엇인들 못하겠어요.
- 솔티, 고마워. 나를 그렇게까지 깊이 배려하고 있는지 몰랐어. 내가 잘할게.
그는 나의 말을 오랫동안 생각하고 기다렸다는 반응을 보이며 기뻐했다.
결혼 이야기가 시작되자 그는 결혼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가능한 한 빨리 결혼식을 올리고 같이 살고 싶다고 했다. 누구에게서 들었는지
시민권자 배우자의 영주권은 1년이면 나온다는데 결혼식 전에 혼인신고를 먼저 하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나는 특별히 반대할 이유가 없어 동의했고 혼인신고부터 했다.
법적인 부부가 된 우리의 결혼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는 자기 쪽에서
하객이 거의 없으니 결혼식을 북산포도원(우리 둘은 처음 같이 간 포도원을 그렇게
불렀다)에서 하면 좋겠다고 했고 나도 동의했다. 엄마도 그를 자주 만나면서
성실한 행동에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적극 도와주었다.
11월 넷째 주 토요일 오후, 그날따라 늦가을의 햇살이 따사롭게 느껴지는
청명한 날씨에 포도원 잔디밭에서 야외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의 모든 준비는
포도원에 일임했고 음식만은 한국식당에 주문하여 직접 서빙 하도록 했다.
그동안 직장생활하며 모아둔 돈으로 결혼식을 준비했다.
그는 한국에서 부모님이 보내 준 돈이라며 3만 불을 주면서 결혼 준비하는데
보태라고 했다. 돈을 받으며 어색해진 나는 조촐하게 하는 결혼이라
경비가 많이 들지 않는다고 했지만 결혼도 하고 영주권도 받게 되는데
이 정도는 변호사 비용도 안 되겠다고 말하며 돈을 내 손에 쥐어 주었다.
그가 결혼을 통해 신분문제가 해결되는 것에 큰 위로를 받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파오면서도 혹, 신분문제를 해결하려고 결혼하는 것은 아니겠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을 애써 눌러 버렸다.
막연했지만 35년 가까이 꿈꾸며 기다렸던 결혼식은 화려하지 않았어도
낭만적인 결혼식이었다. 주위에 산들은 남아 있는 단풍과 상록수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축하해 주는 하객은 30명을 넘지 않았지만 포도나무가
새로운 결실을 준비하며 휴식을 취하는 가운데 증인이 되어 주었고 이름 모를
나무와 새들이 같이해 주었다.
엄마가 소개한 한국 목사의 주례로 진행된 결혼식은 30분 만에 끝났고
이어진 행사라고 해야 같이 식사를 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는 부모님이 다음에
영주권이 나오면 한국에서 결혼식을 성대하게 다시 하자고 했다며 형님
한 분만을 소개했다. 미국에는 친구도 없는지 아무도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신혼여행도 비행기를 탈 수 없는 그의 여건 때문에 나이야가라 폭포와 뉴욕을
일주일 동안 차량여행으로 여행하며 보내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이미 한 몸이 되어버린 후여서인지 신혼여행이 결혼 뒤에 거쳐야 하는
통관의례처럼 느껴질 뿐 초조함이나 감격이 없는 것이 서글펐다.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음 음 음 아라리가 났네.
문경새재는 웬 고갠가 구부야 구부 구부야 눈물이로구나.
우리 댁 서방님은 남평장 가고 저 달이 떴다 지도록 놀다가소.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음 음 음 아라리가 났네.
탈춤이 다음마당으로 이어져 흥을 돋우고 있다.
내용은 흥겹지가 않은데 분위기는 흥겹다. 비극적 교훈을 웃음을 통해
전달하려는 듯. 나이 많은 본부인과 젊은 첩, 나이든 영감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본부인과 첩과의 갈등 속에서도 결국 젊은 첩이 더 부각되는
그런 대사와 춤들이 이어지고 있다. 영감은 젊은 첩을 두고도 바람기가
여전하고, 첩은 태어난 자기 아이를 본부인에게 뺏기지 않으려 본부인을
살해하는 가정의 비극이 묘사되고 있다.
모든 불행의 출발은 할미양반의 바람기 탓이다. 저 할미양반이 쓴 탈은
진지함이나 진실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삼각모양의 짙은 눈썹에 실눈을
하고 입은 반쯤 헤벌쭉 벌리고 음탕한 생각을 하는 그런 얼굴이다.
수염은 길게 자랐지만 탐스럽게 난 것도 아니고 비열하고 졸렬하다는
생각이 앞선다. 더욱이 내 눈이 자꾸 머무는 곳은 이마인데
많은 작은 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우리는 일상에 적응해야만 했다.
나는 직장에 다시 출근하여 밀린 일에 여념이 없었고 남편은
영어를 배우기 위해 커뮤니티 칼리지에 다녔다. 같이 살아 보니
남편은 게으른 편이었다. 영주권을 받을 때까지는 무슨 면죄부를
받은 사람처럼 영어 공부나 하며 집안 청소를 하고 밥을 해놓고
나를 기다리는 정도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다. 나는 영주권을 받은
후에도 남편이 무슨 일을 해서 돈을 벌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결혼에 대한 환상을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무기력한 남자와
같이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하이웨이에서 처음
만났을 때의 그 듬직한 느낌도 사라졌고 그가 하려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도 없었다. 직장에서 피곤한 몸으로 돌아온 나에게 남편은 섹스만을
집요하게 요구했고 피곤하다고 어쩌다 조심스럽게 거절해도
내 속마음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여기는 표정과 행동으로 달려들었다.
나는 남편이 된 그에게 섹스 파트너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경제적으로도 미국에서 부부가 맞벌이 하지 않고는 생활 하가기가
쉽지 않은 여건이라 파트타임이라도 일을 해주었으면 싶었는데
남편은 별 반응이 없었다. 마침 남편의 영주권 신청에 진전이 있었다.
일을 할 수 있다는 노동허가가 떨어진 것이다.
- 현수 씨, 노동허가도 나왔으니 파트타임 일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면 어떨까요?
- 그렇잖아도 상의하고 싶었어. 같이 영어를 배우는 분이 소개해서
알게 됐는데 일주일에 두 번 정도 트럭을 운전하여 워싱턴에서 뉴욕까지
물건을 싣고 배달해 주고 이 지역에 필요한 물건을 구입해 와서
소매상들에게 파는 일을 하는 일을 도와 달라고 해서 해볼까 해.
당신 생각은 어떤지 모르겠어?
이번에도 괜히 먼저 말을 꺼냈다는 기분이 들었다. 남편이 그동안
놀고먹는 것 같아 바늘방석이었는데 아무 일이라도 닥치는 대로 해서
경험을 쌓고 싶다는 말에 더욱 그런 기분이 들고 미안한 생각마저 들었다.
- 그런 줄도 모르고 미안해요. 힘 안 들겠어요?
- 문제는 뉴욕을 가게 되면 하루 만에 올 수도 있고 하루 이틀 자고
올 수도 있다고 해서 망설여져······.
남편은 그 말을 하면서 내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내 허락 없이는 그런 일을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쉽게 그러라고 할 수도 없었고 그런 일이라면 다른 일을 찾아보면
좋겠다고 선뜻 말하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쪽의 대답도 남편에게 섭섭하게 들릴 것 같아서였다.
- 외박하는 것이 맘에 걸리면 다른 일을 찾아보고······.
- 아니, 그보다도 당신이 힘들까 봐서······.
- 그런 문제라면 걱정 마. 이민 초기에 고생 않고 막일을 안 해보면
두고두고 고생한다고 하던데. 한 번 해볼게.
남편의 얼굴에는 굳은 각오가 서려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말을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의 동의를 보냈다. 그렇게 게으른 모습을 보이던
사람에게서 저렇게 강인한 모습을 본다는 것이 이상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남편은 열심히 일했다. 시간이 맞지 않아 하던 영어공부도 접고 일에만
열중했다. 처음으로 남편이 뉴욕에서 자고 올 수밖에 없다고 하는 날,
나는 그리움보다도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남편도 같은 기분일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항상 퇴근해서 남편에게 모든 신경을 쓰며 산 몇 개월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30대 중반까지 혼자 느끼고 살던 기분들이 하루아침에
무너진 것에 아쉬움 같은 감정이 남아 있었던 모양이었다.
엄마는 늦었는데 빨리 아기를 가지라고 만날 때마다 말했고 남편이
뉴욕에 가서 외박하는 것을 무척 꺼리며 신경을 썼다. 나는 피임하는 것도
아니니 생기는 대로 아이를 가질 것이니 염려하지 말고 기다려 달라고
엄마를 안심시켰다. 남편은 일하지 않을 때는 퇴근만 하면
시도 때도 없이 덤벼들더니 일을 하면서부터는 특히 뉴욕에서 자고
온 뒤로는 일찍 혼자 잠들곤 했다. 나는 단지 그가 피곤해서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시간이 지나면서 뉴욕에서 자고 오는 횟수가 늘었다.
남편이 뉴욕에서 자고 오는 날 나는 혼자 저녁을 먹고 컴퓨터를 켜 회사에서
다 하지 못한 일을 하고 있었다. 초인종이 울렸다. 이 시간에 약속 없이
누가 찾아오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었다. 현관문으로 가서 누구냐고 물었다.
이민국에서 나왔다고 하며 문을 열어 달라고 했다. 나는 이민국에서
이 시간에 왜 우리 집을 방문했는지 궁금하게 여기며 문을 열어 주었다.
남녀 두 사람이 현관으로 들어서며 거실을 살폈다.
- 혼자 계신가요?
- 네.
- 남편은 어디 가셨나요?
- 뉴욕에 출장 갔는데요. 왜 그러시죠? 저희 남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요?
- 아닙니다. 잠깐 들어가서 얘기해도 될까요?
내가 여자여서인지 여자 직원이 계속 질문했고 남자 직원은 집안을 살폈다.
우선은 남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니라는 말에 안심하며 그들을
거실로 안내했다. 차를 마시겠느냐고 물어보았지만 마시지 않겠다고 했다.
내가 다시 무슨 일로 남편을 찾느냐고 물었다.
- 최근에 위장결혼으로 영주권을 취득하려는 사람이 많아서 영주권을 심사하기
전에 같이 살고 있는지 확인하러 나온 것입니다. 지금 남편이 안계시니
집안을 좀 둘러보고 남편 직장이며 연락처를 알아가야겠습니다.
나는 언짢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들의 말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안방과 화장실 옷장 등을 다 조사하며 남편과 같이 살고 있다는
증거를 확인했다. 그런 사이에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이민국에서
위장결혼이 아님을 확인하러 나왔다고 말해 주었다. 남편은 크게 놀라며
당황하는 목소리였다. 나는 영주권 심사 전에 누구나 하는 법적인 절차라고
이민국 직원의 말을 그대로 설명했지만 남편은 여전히 불안해하고 있었다.
이민국 직원이 당신과 통화하고 싶다고 하니 차분하게 답변하고 만약
통역이 필요하면 바꾸어 달라고 하며 직원에게 남편과 통화할 수 있도록 했다.
직원과 남편과의 통화는 길지 않게 끝났다. 지금 어디냐고 묻고 언제
돌아오느냐고 묻는 정도였다. 내가 이미 그들에게 말한 내용을 확인하는
수준이었다. 그들은 집안을 다 둘러보고 나서 다시 거실로 왔다.
- 번거롭게 해서 미안합니다. 직장도 확실하고 특히 솔티 씨 신원이
분명해서 문제될 것 같지 않습니다. 오늘 남편과 같이 사는 것을 직접
확인하지 못했지만 의심할 이유를 찾을 수 없으니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들을 현관에서 배웅하고 문을 닫는데 남편이 전화를 했다.
남편은 이민국 직원이 갔느냐, 혹시 영주권 받는 데 문제는 없겠느냐며
답변할 시간도 주지 않고 질문을 해댔다. 나는 남편을 겨우 안심시키고
집에 와서 얘기하자고 했다.
다음날 뉴욕에서 돌아온 남편은 당장 직장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언제 다시 이민국에서 확인하러 나올지 모르는데 영주권 받을 때까지
저녁에는 꼭 집에 있어야겠다고 했다. 뉴욕 거래처 사람들이 그러는데
위장결혼으로 잘못 보고되면 사실을 증명하는 데 골치 아프니
영주권 받을 때까지는 조심하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민국 직원들이 안심해도 좋다고 했다고 이해 시키려했으나 남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남편은 불안함을 떨치지 못하며 생활했다.
다행하게도 이민국에서 다시 집을 방문하지 않은 채 두 달 후 영주권이
우편으로 우송되어 왔다. 결혼한 지 1년 1개월쯤 지난 뒤였다.
영주권을 받은 다음날 우리는 엄마와 함께 외식을 했다. 불법체류
신분에서 벗어난 남편은 엄마와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여러 번 했고
그런 그의 표정이나 행동은 천진난만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남편의 기뻐하는 모습에 나도 즐거웠고 모든 것을 새롭고 자신 있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은연중에 한국에 같이 나가 시부모님을 뵙고 결혼식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했다. 남편이 영주권을 받으면 한국에
나가 다시 성대한 결혼식을 하자고 약속한 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피임을 한 것은 아니지만 혹 그 전에 아기가 생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한 것도 사실이었다. 이미 부부가 되었지만 시댁의 축복을
받지 못한 결혼 같아서 기회가 주어지면 다시 결혼식을 올리고 싶었다.
결혼 후에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시간에도 남편 생각을 자주 했다.
특히 일이 잘 풀리면 그 일 때문에 정신없이 일에 몰두하다가도 일이
진전되지 않거나 막히는 경우에는 더욱 그랬다. 주위의 눈치를 살피며
남편과 통화하며 잠시나마 일에서 해방되는 기분을 맛보기도 했다.
아무 때나 전화를 해 무슨 이야기든 할 수 있는 남편의 존재는 나의
모든 기쁨과 슬픔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 되고 말았다.
그런 시기에, 그러니까 남편과 두 번째 가을을 보내는 어느 소슬바람이
부는 가을 날, 거의 모든 낙엽이 다 떨어지고 처량하게 몸부림치며
남아 있는 나뭇잎마저 안쓰럽게 보이는 싸늘한 오후에 나는 남편에게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전화를 했다. 아무 응답이 없더니 자동으로
메시지를 남기라는 안내가 흘러나왔다.
- Hi, This is Hyun Soo Kang. I am not available right now.
Please, leave a message. I will call back soon. Thank you.
(강현수입니다.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으니 메시지를 남겨 주시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부분 전화 할 때마다 직접 받았기 때문에 오랜만에
남편의 음성 함에 저장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남편이 미국
사람으로부터 오는 전화도 거의 없으면서 왜 서툰 발음의 영어로 먼저
메시지를 남기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다시 했다.
- 현수 씨, 저예요. 그냥 전화했어요. 퇴근하면 바로 갈게요.
현수 씨 좋아하는 튀긴 닭 날개 사 갈 테니 찬밥 있으면 밥하지 말아요.
이따 봐요. 사랑해요.
평상시에 자주 하지 않던 사랑한다는 말을 왜 갑자기 했는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직접 전화를 받을 때는 용기가 없어 하지
못했던 말을 음성 메시지로 남기다 보니 하게 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 뿐이다.
퇴근길에 튀긴 닭 날개와 맥주를 사서 집으로 향했다. 남편은 맥주를 마실
때마다 튀긴 닭과 맥주가 궁합이 맞는다는 말을 가끔 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집에 없었다. 다시 전화를 했지만 바로 음성 함으로 넘어갔다.
전화를 아예 꺼놓은 것 같았다. 무슨 사고가 생긴 것은 아닌가 걱정하며
초조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이럴 때 남편의 행방을 물어볼 만한 친구
전화번호 하나가 나에게 없었다. 기다리는 일 외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날 밤 남편은 집에 오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거의 뜬눈으로 꼬박 밤을 샌 나는 남편의 소지품을
확인해 보았다. 그와 같이한 집안 구석구석을 다 더듬어 갔다. 카펫에는
그의 머리카락과 내 머리카락들이 의외로 많이 널려 있었다. 누구 것인지
알 수 없는 체모도 보였다. 짧고 꾸불꾸불한 것이 남편 것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칫솔, 치약, 면도기는 제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남편이 마시던
커피 잔도 잠옷도 벗어던진 양발까지도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서재의 책상위에는 내가 읽었던 ‘몽고반점’이 실린 <이상문학상작품집>도
있었다. 남편이 읽은 모양이었다. 옷장 미닫이문을 열고서야 여행용
작은 가방이 없음을 알았다. 책상 서랍을 열었다. 영주권이 없었다.
영주권이 있었던 곳에 작은 메모지 하나 남겨져 있었다.
미안합니다. 영주권을 받으려고 당신을 이용했습니다. 저같이 거짓 사랑의
탈을 쓴 비겁하고 무능한 사람을 잊고 좋은 사람 만나 행복하세요.
죽은 할미 장례행렬이 화려하면서도 서글프다.
상여꾼들의 상여 소리가 공연 마당에 울려 퍼져나간다.
어화넘 어화넘차 에나리넘차 어화넘 명정공포(銘?功布)
운아(雲亞)상은 요령소리가 처량하네. 어화넘 어화넘차 에나리넘차 어화넘
명사십리(明沙十里) 해당화(海堂花)야 꽃이 진다고 설워마라.
명년삼월(明年三月) 돌아오면 그 꽃이 다시 피느니라.
북망산(북망산)이 머(멀)다더니 저건네(너) 저산이 북망산이라.
어화넘차 에나리넘차 어화넘 어화넘차. 에나리넘차.
영감이 상여 뒤를 따르며 통곡한다. 영감이 죽은 마누라에게 진정으로
미안한 마음을 가지는 건지 사람들 앞에서 본처가 죽은 것을 슬퍼하는
척하는 건지 가면을 써서 영감의 표정을 볼 수가 없다.
남편과의 이별이 차라리 사별이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 이별이라면 오래 간직해도 좋을 것이고 시간이 지나 잊혀 진다
해도 괜찮을 것 같다. 내가 남편이 싫어져 먼저 떠났다면 차라리
나를 욕하며 살면 될 일이다. 이건 뭔가? 나는 진실로 남편을 사랑했는데
남편의 탈을 쓴 거짓 사랑 앞에서 내 사랑은 이렇게도 무기력했다는
말인가? 남편에게 버려진 내 사랑은 엄마 말대로 사랑의 우선순위를
지키지 못한 형벌인가?
남편이 그동안 나에게 한 모든 말들이 다 거짓이라니.
모든 일이 믿기지도 않았고 정리되지 않아 나는 직장에 휴가를 내고
집에 처박혔다. 엄마는 한국에 같이 나가서라도 남편을 찾아보자고 성화였고
나는 거절하지 못하고 서울에 따라 온 것이다.
상여의 행렬과 영감이 빠져나가자 호랑이 모양의 탈(담보탈)과
사자탈이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등장하여 춤을 추며 서로 싸운다.
탈들이 방울을 달고 있어서 움직일 때마다 방울소리가 난다.
사자가 결국 담보를 잡아먹자 포수가 등장하더니 사자를 총을
쏘아 죽인다. 사자를 잡은 포수는 기뻐서 춤을 추며 길이를 재어 본다.
잡았다. 크다. 한번 발마(재어)보자.
열, 수물(스물), 서른.
삼천 칠백 일흔 다섯 발이로구나.
포수가 기쁨으로 춤을 추며 돌아간다.
통영오광대놀이가 다 끝난 마당이 썰렁하다. 광대놀이에서처럼 세상은
그렇게 해학적이지 않다. 강한 자에 의해 약한 자만이 항상 피해를 입는 것
같지도 않다. 거짓 앞에서 진실이 힘을 발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기만 하다.
나는 진정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을 다 했는데도 그의 거짓 사랑 앞에
아무런 힘이 없었다. 내가 한 사랑이 나를 농락한 것이고, 그의 거짓 사랑이
나를 농락한 것이다.
나는 엄마와 함께 혼인신고 시에 썼던 한국주소 하나를 들고 서울에 왔다.
엄마는 서울에 오자마자 혼자서 남편의 주소를 확인하고 백방으로 그의
소식을 알아보았다. 나는 호텔방에서 나오지 않고 매일 풀이 죽어 들어오는
엄마를 맞았다. 며칠이 지난 후 엄마는 나에게 그만 남편을 단념하는 것이
좋겠다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 나쁜 자식, 네 남편 미국 어딘가에 사는 것 같다. 진작 서울에서 결혼해
아이가 둘이나 있다더라. 직장에서 기밀문서 유출문제로 해고된 뒤 온 가족이
미국으로 도망가다시피 서울을 떠났다고 하더라. 뉴욕 근방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더라. 처음부터 너를 만나 작정하고 속인 거야.
영주권을 따려고. 그 작자 마누라도 한통속이었을 게다.
옆에서 광대놀이를 같이 관람하던 엄마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미국에 돌아가면 이민국에 고발해서라도 그가 미국 땅에 사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나는 그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더 이상 그에 대해
아는 것이 두려웠다. 한 번 울고 다 잊어버리고 싶었다.
남편이 떠난 뒤 나는 운 적이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불행해진 것 같지도 않고 나보다는 그와 같이 평생을 살아야 하는
가족들이 더 불행하다는 생각이 앞서기만 했다.
나에게서 남편은 흐린 날에 잠깐 나왔다가 숨어 버리는
여우별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머니 손을 잡고 일어서며
하늘을 향해 말했다.
- 엄마, 광대놀이는 끝났어. 이제 그만 집으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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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추석날 떠오른 달이 유난히 크고 맑게 보였습니다. 고향을 그리며 심은
단감나무 잎이 흔들리며 달빛에도 감은 익어가고 있습니다. 같은 달,
같은 단감을 보면서도 고향에서 보던 것과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무슨 연유인지요.
이중 언어로 살아야 하는 이민자의 생활이 모국어에 대한 갈증으로 이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낙서를 해보기도 하고, 글을 써보려 했습니다.
군사학에 몰입했던 이십 대, 무기공학에 빠졌던 삼십 대, 신학을 공부한
사십 대에도 글에 대한 연민은 계속되었습니다. 그 짝사랑을
경희사이버대학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하여 오십 대에 꿈을 이뤘습니다.
해외에 사는 한민족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한국문학의 영역이 재외동포문학까지도 포함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제1회 천강문학상 수상이 개인적인 영광이면서
재외동포문학과 한국문학의 연결고리가 되어 결국 통일에도 영향을
미쳤으면 하는 또 다른 기대를 떨쳐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족한 글을 뽑아 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립니다. 늦었지만 94세
어머니께 추석인사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사이 땅 맛을
알아간다고 일어나자마자 텃밭에 나가보는 아내와 두 아들,
큰 며느리와 기쁨을 나누겠습니다.
오늘에 나를 있게 하신 하나님께 항상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 1951년 전주 출생, 육군3사관학교, 동아대학교, 미 해군대학원,
미 트리니티복음주의 신학교 졸업
- 경희사이버대학 문예창작학과 졸업
- 미주한국일보 문예공모전 단편소설 당선
- 미주동포문학상 대상, 제10회 재외 동포문학상 우수상
- 한국문인협회, 워싱톤문인협회 회원
- 장편소설 <우리들의 교향곡>
- 신앙서적 <거룩한 전쟁>, <일년일독매일묵상>
- 미국 버지니아주 헤리슨버그에서 교회를 개척
대학생과 교포를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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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천강문학상 수필 부문 대상
등 피
김희자/경북 경산시
산마루에 걸린 마지막 햇살을 거두고 해는 저물었다.
산장 밖 밤하늘에 손톱달이 떠 있다. 세월의 더께가 앉은 등에서 불빛이 새어나온다.
유리관에 둘러싸인 심지는 산장으로 드는 바람에도 꺼지지 않고 활활 탄다.
투명한 등피의 보호를 받으며 타오르는 불빛을 보니 아득한 시절 고향집
처마에 걸어둔 호야등이 아슴푸레 떠오른다.
유년 시절, 저녁 무렵이면 마루 끝에 걸터앉아 푸른빛으로 물드는 저녁 풍경에
빠지곤 했다. 바닷가 비탈진 마을을 쬐던 해가 저물고 어둠이 마을을 삼키기
시작하면 남포에 석유를 채우고 등피를 닦아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전날 밤에 타고 남은 그을음을 나직한 입김으로 닦아내면 등피는
허공처럼 맑아졌다. 투명해진 등피를 조심스레 남포에 씌우고 불씨를 당기면
어스레한 시골집이 환해졌다. 환하게 타오르는 등을 처마 아래 걸어두면
횟가루의 속살이 하얗게 드러나고 그 아래 옹기종기 모인 가족들의 이야기는
등피를 씌운 호야등처럼 훈훈했다.
흙 마당에 쑥으로 모깃불을 피우던 여름밤, 등피를 씌운 호야등은 처마 아래에
매달려 가족들의 마음을 이어주는 불빛이었다. 등피의 보호를 받는 불빛 아래에서
해어진 옷을 깁던 어머니의 손길은 자식들의 해어진 마음까지 기웠다.
쑥이 타는 냄새를 맡으며 살붙이들과 평상에 누운 나는 북두칠성이 거꾸로 선
하늘의 별을 좇으며 꿈을 키웠다. 분꽃 향기가 나던 언니는 입술을 모아 노래를 불렀고,
장난기 많은 남동생은 피어오르는 모깃불을 해작거렸다. 언니의 해맑은 노래가
끝이 나면 밤하늘에는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 모여 별로 가득했다.
등피속에서 타오르는 심지는 고된 삶속에서도 맑은 소망을 염원하는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부엉이 울음소리가 깊도록 어머니의 바느질은 이어졌고 호야등
불길이 가물가물해져 밤이 이슥해지면 밤이슬에 젖는다고 자식들을 방
안으로 들게 하였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이 없다는 말이 있듯이 자식 아홉을 낳았던
어머니의 근심은 끊이질 않았다. 장손으로 태어난 아들을 핏덩어리 째 잃었고
어린 두 딸은 홍역으로 가슴에 묻었으니 남아 있는 자식들을 보호하기 위한
어머니의 희생은 끝이 없었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어머니는 애써 강한
척하셨지만 뒤란 장독대에서 멍든 가슴을 달래며 속울음을 삼켰을 것이다.
자식을 셋이나 먼저 잃은 어머니는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또 한 번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만 했다. 뜨거운 볕이 쏟아지던 여름날 바닷가에서
멱을 감던 둘째언니가 물에 빠졌다. 밭에서 급한 기별을 받은 어머니는
김을 매던 호미를 내던지고 바닷가로 달려갔다. 물에서 허우적대던 언니가
물속으로 사라지자 동네 오빠가 바다 속으로 뛰어 들어가 구했다.
겨우 목숨을 구한 언니는 바위에 축 늘어져 있었다. 언니의 숨결은 약했고
체온까지 떨어지고 있었다. 어머니는 두르고 있던 치마를 벗어 언니를
감싸고 몸을 비비기 시작했다. 생명이 꺼져가는 딸을 감싸 안고 어머니는
울부짖었다.
어머니의 울음소리는 파도소리에 섞여 바닷가 언덕을 한참 동안 타고 올랐다.
애달픈 모습을 내려다 본 하늘이 돕기라도 한 것인지 언니의 식어가던 몸은
다시 따스해지기 시작했다. 언니가 깨어나자 어머니는 하늘을 향해 절을
몇 번이나 올렸다. 그 일이 있은 후 언니는 바다에 가는 것을 싫어했고
피붙이들에게도 바닷가에 가는 일은 한동안 허락되지 않았다. 그 때 언니를
감싸주었던 어머니의 치마는 바람에 꺼질 듯 흔들리는 불을 감싸는
등피와도 같았다.
이제 나도 그때 어머니의 나이가 되어 세월을 뒤따르고 있다.
어머니의 등피 같은 희생에는 따를 수 없지만 두 아이의 바람막이가
되는 노력은 아끼지 않는다. 녹록하지 않은 생활 때문에 두 딸은 학원에
다니지 않고 공부를 한다. 작은 아이의 중간고사가 하루 남은 휴일 오후였다.
책을 읽던 나는 평소 즐기지 않는 낮잠에 설핏 들었다. 모든 것을 알아서
척척 하는 찬찬한 맏딸과는 달리 철부지 작은딸은 늘 바람 앞에 선 등잔불
같이 덤벙댄다. 사춘기를 겪고 있는 작은 아이는 호기심이 많고 사회에
나도는 부정한 일들을 지나치게 비판하며 목소리를 높인다. 아직 사회나
어른들 일에 참견할 나이가 아니라고 여기는 나는 늘 걱정이다.
그런 마음이 내 안에 잠재하고 있었던 것일까. 작은 아이의 꿈을 꾸었다.
작은아이가 혼자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다. 어설프게 노를 저으며
바다로 나아가는 아이를 보며 나는 가슴을 졸인다. 일렁이는 파도와
싸우는 아이를 보던 나는 아무리 고함을 쳐도 말문이 터지지 않는다.
아이가 탄 배가 금방이라도 뒤집어질 것 같아 발을 동동 거리지만 아이를
구할 방도가 없다. 나는 아이를 애타게 부르지만 아이는 파도와 싸우며
자꾸만 바다로 나아간다. 그때, 내 신음소리를 들은 큰아이가 나를 흔들어
깨운다. 잠에서 깨어난 나는 꿈인 줄 알면서도 작은 아이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이름을 크게 불렸다. 제 방에서 공부를 하던 아이가 대답을 한다.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꿈에서 얼른 벗어나고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모든 어머니의 마음은 한결같은가 보다. 치열하고 험난한 사회에 섞여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을 걱정하는 내 마음이나 지금도 고향집에 전화를
하면 어찌 사냐며 걱정 섞인 목소리로 울먹이는 어머니의 마음은 매한가지이다.
아직도 나를 걱정하는 노모를 보며 나는 내 아이들에게 얼마만큼의
바람막이가 되어주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이제는 두 딸의 키가 나의 키를
앞질러 미래를 위해 한창 심지를 태워야 할 때이다. 커 가는
내 아이들에게 폭풍우 같은 바람은 없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의 능력에
큰 보탬이 되어주지 못하는 마음이야 두고두고 아프지만 어미로서
그 부족함을 대신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마음을 모아 등피가
되어주는 일이 아닐까.
밤이 이슥하여 밤바람 소리는 깊고 등불은 은은하다. 사위가 밝은
형광등이나 백열등 불빛은 생활을 편하게는 하지만 등피를 씌운
호야등의 은은한 불빛은 허물이나 티끌을 살며시 가려주는 인정이 있다.
그래서 가끔은 호야등이 그립다. 이런 밤에는 향수병마저 도진다. 은은한
등불 아래서 밤이 깊도록 자식들의 해진 옷을 깁 던 어머니와 마당 가득
머물던 쑥 냄새와 피붙이들도 그립다. 지금은 등피를 씌운 등이 사라진지
오래지만 늘 바람막이가 되어주던 어머니의 마음은 그대로 남아 등불을
감싼 등피처럼 나를 안아 주고 있다.
수상소감
옴짝도 못하는 아버지의 병간호를 밤새워 하고 초췌한 모습으로 귀가를 하는
열차 안에서 천강문학상 대상 수상 소식을 들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가슴처럼
차창 밖 저무는 들에 비가 내렸다.
누렇게 익어가는 가을 들판처럼 내 마음은 풍성해지고 가슴은 방망이질을 하였다.
고향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의령은 어쩐지 연(聯)이 닿을 것만 같아 설레었다.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은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려는 희망이 있다는 말이다.
사람마다 꿈이 있기에 살아갈 힘을 얻고 그 꿈을 이루는 성취감에 사는 맛을
느끼기도 한다. 목포문학상 당선과 천강문학상 대상으로 오랫동안 꾸어 오던
나의 꿈이 이루어졌다.
수 년 전, 나는 세상의 단절을 맛보아야 했다. 아프고 쓰라릴 때
나를 달래주던 것이 문학이었다. 깊은 고뇌와 시련에서 허덕일 때
나는 문학을 등에 업고 깨달음의 세계로 다가갔다. 문학의 숲으로 홀로
가는 길은 멀었다. 불혹의 나이에 직장생활을 하며 국문학 공부를 하였고
졸업 후에는 수필에 입문하였다. 감정에만 치우치던 나의 글은 스승님의
정제된 가르침으로 한 걸음씩 나아졌고 나를 깨우는 죽비소리는 새벽마다
이어져 문학의 세계로 이끌었다.
나는 자연과 오래된 풍경 속으로 여행하기를 좋아한다. 자연 속에는
오래된 풍경이 있고 오래된 풍경 옆에는 늘 자연이 함께했다. 여행길에서
돌아오면 풍경을 그려내고 감정을 다듬어 글을 쓴다. 한 때는 나도 삶에
치여 감정의 소리를 내고 살았다. 하지만 이제는 부딪쳐 소리를 내기보다는
글 쓰는 일에도 담담해지고 싶다. 나 아닌 다른 이의 삶을 바라보는 감정으로
겸허히 글을 대하고 싶다.
다시 꿈을 꾼다. 생이 아름다운 것은 꿈을 이루었기 때문이 아니라 꿈을 꾸기 때문이다.
- 경남 남해 다랭이마을 출생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 대구수필창작대학 수료
- 수필사랑문학회 회원, 에세이포럼 2기
- 2008년 동서커피문학상, 시흥문학상 입상
- 2009년 근로자문학상 입상
- 2009년 제1회 목포문학상 수필부문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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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천강문학상 아동문학 부문 대상
꽃시계
이순영/경남 의령군
“딩동댕! 딩동댕!”
수업 마치는 벨 소리가 교정의 나무그늘 사이를 휘돌아 마른
운동장 가득 울려 퍼집니다.
“며칠 전에 내준 가정 통신문, 부모님이나 할아버지 할머니께
다 보여 드렸나요?”
“네~”
아이들은 큰 목소리로 합창합니다.
“오늘부터 우리 학교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위한 방과 후
컴퓨터교실을 열고 있어요. 오늘 참석하지 못한 분들은 내일부터라도
나오실 수 있도록 주위에 계시는 할아버지 할머니께 말씀드리세요.”
선생님 말씀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들은 교실 밖으로 뛰어갑니다.
찬현이는 나가려다 말고 청소당번인 보람이를 도와줍니다.
그때였습니다.
평소에 말을 더듬는 민규가 교실로 뛰어 옵니다.
“헉, 헉, 보오, 보, 보람아! 크, 크, 큰일 났어!
“왜, 무슨 일 생겼니? 아이고, 답답해. 좀 차근차근 말해 봐. 무슨 일인데?
보람이가 다급하게 묻습니다.
“니, 니네, 할머니하고, 저기, 저어기 찬현이 할아버지하고,
지금 컴퓨터실 앞에서 싸우고 계셔.”
“뭐, 뭐라고?”
민규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보람이는 컴퓨터실을 향해 뛰기 시작합니다.
찬현이도 민규도 뛰어갑니다.
“아니, 이 영감탱이가, 말이면 다야? 어디서 돌대가리야 돌대가리가!
모르니께 배우지. 잘하면 뭣 하러 컴퓨터를 배우러 올 끼고. 집에서 잠이나 자지.”
컴퓨터실 앞에서 보람이 할머니와 찬현이 할아버지가 삿대질을 하며 싸웁니다.
다른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싸움을 말리느라 컴퓨터실 앞 복도가 왁자지껄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제발 참으세요.”
컴퓨터 담당선생님도 진땀을 빼고 있습니다.
“선상님요. 이 영감탱이가 말하는 거 좀 보소. 내가 몰라서 선생님께
질문 좀 했다꼬 내보고 돌대가리라 안 카요.”
보람이 할머니가 흘러내린 치마 허리춤을 추켜올리며 분을 삭입니다.
“할머니! 제발, 좀.”
겨우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 보람이가 할머니를 말립니다.
“응. 보람이가? 공부 다 했나?”
“할머니 왜 그러세요. 학교에서 창피하게.”
“그래, 보람아. 내가 니 한테는 참말로 미안테이! 근데 저, 영감탱이가
내 보고 돌대가리라 안 카나. 내가 살면서 저런 고약한 소리는 처음인 기라.”
찬현이 할아버지도 찬현이를 보고 슬그머니 복도 밖으로 나갑니다.
보람이는 오늘따라 집이 멀게 느껴집니다. 걸음걸이도 스펀지 위를 걷듯 힘이 없습니다.
“보람아!”
“네, 할머니.”
할머니 목소리가 비 맞은 가랑잎같이 젖어 있습니다.
“너거 아부지하고 엄마가 그렇게만 안 갔어도 내가 이런 꼴은 안 당할 낀 데
자슥 없이 혼자 산다꼬 무시를 한다 아이가. 휴!”
할머니 한숨은 제주도 해녀들의 날숨같이 길게 감깁니다.
보람이 부모님은 보람이가 여섯 살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때부터 보람이는 할머니 손에서 자랐습니다.
“할머니, 찬현이 할아버지도 화가 나서 그랬을 거예요. 제가 놀러 가면
얼마나 잘 대해 주시는데요.”
“그래? 그런 영감이 나한테는 왜 그리 고약하게 군단 말이고. 어쩌다
경로당에 가도 내가 하는 일엔 늘 잔소리 하거든.”
다음 날, 수업이 끝난 보람이와 찬현이는 등나무 밑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습니다. 민규는 그 옆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서 있습니다.
보람이는 두 다리를 모아 그네처럼 흔들고 있습니다. 후텁지근한 바람이 건듯 붑니다.
“보람아!”
“찬현아!”
“아, 아무것도 아냐. 네가 먼저 말해.”
“아냐, 너부터 말해.”
동시에 말문을 연 두 사람은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고 애를 씁니다.
“미안해. 어제는 우리 할아버지 때문에…….”
“아냐, 두 분이 무슨 오해가 있었나 봐. 미안해”
평소에 사이좋기로 소문난 보람이와 찬현이지만 오늘은 꼭 처음 만난 것 같습니다.
그때 또래들 보다 어른스러운 보람이가 두 눈을 반짝이며 찬현이를 돌아봅니다.
“찬현아. 내게 좋은 생각이 있어.”
“무 무슨 생각?”
민규도‘이때다’싶었는지 말을 더듬으며 끼어듭니다.
“우리가 할머니 할아버지께 컴퓨터를 가르쳐 드리자. 집에서 예습하고
학교에 오시면 훨씬 쉬울 것 같아.”
“와우! 그것 참 좋은 생각이다. 그럼 나도 우리 할아버지께 컴퓨터를
가르쳐 드릴게. 그 대신 우리는 할아버지께 서예를 배우자. 우리 할아버지는
붓글씨 엄청 잘 쓰시거든. 민규야, 너도 같이 배우자.”
“우와! 그럼 나도 끼워 주는 거야?”
“그럼, 우린 삼총사잖아.”
보람이와 찬현이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바닥을 짝! 마주칩니다.
집으로 돌아온 보람이는 할머니와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할머니! 우선 마우스에 손을 올려 보세요.”
“마우스? 마우스가 뭐꼬? 입 말이가?”
노인 교실에서 영어를 조금 배웠던 할머니가 손을 입에 갖다 댑니다.
“아뇨 할머니. 여기 이거요. 이걸 마우스라고 하는 거예요.”
“아, 그거, 그게 마우스가? 거기에 무슨 입이 있다꼬 그걸 마우스라 카노?”
“아이참, 할머니도. 그냥 컴퓨터 부속품 이름이에요. 잘 보세요.
이건 컴퓨터에 글을 칠 때 위치를 지정해주는 역할을 하는 거예요.”
보람이가 가르쳐 주는 대로 할머니는 마우스에 손을 올려놓고 이리저리
돌려보기도 합니다. 마우스를 굴리는 할머니의 손등에 굵은 핏줄이 드러납니다.
할머니가 마우스를 돌리자 컴퓨터 화면엔 작은 화살표가 방향을 잃고 빙빙 돕니다.
“할머니, 자판에 손을 먼저 올리시구요. ‘ㄱ’을 쳐보세요.
꼬마 선생님인 보람이가 가르쳐 주는 대로 할머니는 자판에서
겨우‘ㄱ’을 찾아냅니다. 컴퓨터 화면에는 할머니가 친 ‘ㄱ’만 동동 떠 있습니다.
할머니가 집에서 컴퓨터를 배운지도 한 달 이 다 돼 갑니다. 보람이는 이제 할머니께
인터넷을 가르칩니다.
“할머니, 오늘은 할머니 아이디 하나 만들어 드릴게요.”
“아이? 시방 아이를 만든다 캤나? 니가 얼라를 우째 만든단 말이고?”
“아이 참! 할머니, 그게 아니고, 할머니가 인터넷에 접속하려면 할머니만
아는 비밀번호와 이름이 있어야 된단 말이에요.”
보람이의 긴 설명에 할머니는 알 듯 모를 듯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 납니다.
“함복순, 이 이름 갖고도 여태 아무 지장 없었다. 또 무신 이름을 짓는다 말이고.
고마 치아 뿌라! 컴퓨터 고만 배울란다.”
답답해진 보람이가 한참을 설명하고서야 할머니는 컴퓨터 의자에 다시 앉습니다.
“할머니, 창을 먼저 하나 열어보세요.”
“갑자기 창은 와 열어라 카노? 이 할미가 몬하니까 열이 나서 덥나?”
할머니는 일어나 창문을 활짝 열어젖힙니다.
“할머니, 그게 아니구요. 할머니가 컴퓨터에서 작업을 할 때 새
공책처럼 만드는 거예요.”
“아, 화면을 다르게 바꾸는 거 말이제. 그거는 어제 학교에서 배웠다.”
“네, 할머니, 이제 제법 잘하시는데요?”
보람이는‘장미꽃’이라는 예쁜 아이디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할머니는 처음으로 만나는 인터넷 세상이 신기한지 이것저것 눌러보느라 바쁩니다.
보람이는 할머니가 인터넷에 빠져 있는 틈을 타 슬며시 안방으로 들어옵니다.
“찬현이니? 됐어. 지금 빨리 들어와. 알았지? 끊어”
보람이는 거실에 계신 할머니가 들을까 봐 얼른 전화를 끊습니다.
보람이가 거실로 나온 후, 컴퓨터 화면이 자동으로 바뀌더니 작은 창이 하나 뜹니다.
‘신사님께서 장미꽃님께 쪽지를 보내셨습니다.’라는 문구가 쓰인 창이었습니다.
“아이쿠야! 이기 뭐꼬? 내는 아무것도 안 만졌데이. 이게 지 혼자
깜빡거리더니 팍 뜨더라.”
할머니는 보람이에게 화면에 뜬 창을 가리킵니다.
“어? 할머니, 어떤 분이 할머니께 쪽지를 보냈네요?”
보람이는 시치미를 떼고 말합니다.
“내 한테? 누가?컴퓨터 안에서 내를 아는 사람이 누가 있다꼬 이런 걸 보내노?”
“글쎄요? 누굴까요. 할머니?”
보람이와 할머니는 얼른 쪽지를 엽니다.
‘함복순 여사. 나요. 찬현이 할애비요. 그날은 정말 미안했소. 내 진심으로 사과하리다.’
할머니는 더듬더듬 거리며 한글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합니다.할머니의 구릿빛 볼이 살짝
붉어집니다.
‘아입니더. 지가 오히려 미안습니더.’
돋보기를 끼고 자판을 두들기는 할머니의 손가락 마디가 가늘게 떨리고 있습니다.
“이 야호! 이젠 됐다.”
보람이는 목소리를 죽이며 즐거운 비명을 질렀습니다.
할머니는 요즘 컴퓨터 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습니다. 보람이가 학교에 가고 나면
짬짬이 컴퓨터 앞에 앉아 일기도 쓰고, 아바타 꾸미기를 합니다.
어느 날 할머니가 빨래를 하고 나오자 컴퓨터 화면이 깜박입니다.
‘신사님께서 장미꽃님께 쪽지를 보내셨습니다.’
할머니는 얼른 쪽지를 열었습니다.
‘함 여사! 그동안 학교에서 같이 컴퓨터를 배우게 돼서 참 좋았다오. 이제 졸업을
하게 되면 자주 뵙지도 못할 텐데 오늘 저녁 식사나 한 번 합시다.
내가 저녁 한 끼 사리다. 여섯 시에 공원에 있는 꽃시계 앞으로 나와 주면 고맙겠소.’
할아버지 데이트 신청을 받은 할머니는 달아오르는 두 볼을 양손으로 감싸봅니다.
“딩동!”
“어이쿠 놀래라! 누군교?”
“할머니 저 보람이에요.”
할머니는 미적거리다 문을 열어줍니다.
“벌써 마쳤나? 오늘은 찬현이 집에 서예 배우러 안 갔나?”
“네, 찬현이 할아버지께서 약속이 있다고 내일로 미루셨어요.
근데 할머니 왜 그러세요? 어디 아프신 것 같아요.”
“아, 아이다 아프긴. 괜찮다!”
가방을 내려놓던 보람이는 할머니께서미처 닫지 못한, 찬현이 할아버지의 쪽지를
곁눈으로 봅니다.
할머니는 얼른 컴퓨터를 끄려고 허둥댑니다.
눈치빠른 보람이가 할머니를 당깁니다.
“할머니! 제가 머리 만져 드릴게요. 이리 와 보세요.”
“아이구! 해도 다 져 가는데 머리는 말라꼬. 고마 괘안타.”
보람이는 손사래 치는 할머니의 머리도 손질하고 립스틱도
예쁘게 발라 드립니다.
“우와! 우리 할머니 이렇게 꾸미니까 새색시 같네. 할머니, 이왕 화장도 했는데
이모할머니 댁에서 천천히 놀다 오세요.
할머니는 보람이 성화에 못이긴 척 곱게 차려입고 해거름에 집을 나섭니다.
“따르릉! 따르릉!”
할머니가 나가시자 기다렸다는 듯 찬현이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나가셨어? 우리 할아버지도 방금 나가셨어. 할아버지 때문에 엄마가
얼마나 바빴는지 몰라.”
“왜?”
“할아버지가 외출하실 땐 하얀 양복을 입으시거든. 그리고 흰 구두에 중절모까지 쓰셔.”
“할아버지가 무척 멋쟁이구나.”
“응, 평소엔 점퍼 차림인데 특히 중요한 약속엔 꼭 그렇게 입으셔.
얘! 아가 내 양복 다려 뒀냐? 내 구두 닦아 뒀냐? 내 모자는? 어휴! 말도 마.
엄마가 안방으로 거실로, 엄청 바쁘셨어.”
“그래? 근데 우리 할머니는 그리로 가실지 이모할머니 댁으로 가실지 아직 잘 몰라.
잘 됐으면 좋겠다. 그지?”
“그러게 말이야. 두 분이 저녁 식사도 하고 재미있는 시간 보냈으면 좋겠다.”
“그래, 잘 되길 빌자.”
“응.”
전화를 끊은 보람이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거실을 서성거립니다.
‘우리 할머니, 이제라도 좀 행복하게 사셔야 할 텐데. 여태껏 고생만 하시고…….’
보람이는 할머니를 생각하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할머니~”
보람이는 빈 거실에서 나지막이 할머니를 불러 봅니다.
그때 슬픔에 잠긴 보람이를 달래듯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립니다. 찬현이였습니다.
“뭐 해? 목소리가 왜 그래? 울었어?”
“아냐, 아무것도…….”
“보람아! 우리도 거기 가보자! 궁금해서 못 견디겠어. 민규 한 테도 같이
가자고 했어. 가보자 응?”
“안 돼! 들키면 어쩌려고. 그냥 조금만 기다려 보자.”
그러나 보람이도 어쩔 수 없이 찬현이와 약속을 합니다.
“알았어. 그럼 꽃시계까지는 가지 말고 그 근처에서 만나자!”
여섯 시가 가까워 오자 할아버지는 꽃시계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습니다.
보람이와 찬현이는 꽃시계 맞은 편, 사철나무 울타리에 납작 웅크렸습니다.
“민규야, 앉아!”
보람이는 눈치 없이 멀뚱하게 선 민규의 옷자락을 끌어 당겨 앉힙니다.
할아버지는 하얀 양복에 나비넥타이를 매고 하얀 구두를 신고 있습니다.
멀리서 봐도 양복 호주머니에 꽂힌 빨간 포켓 칩이 선명합니다.
할아버지는 다리가 아픈지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시간을 보냅니다.
풀을 헤집으며 시간을 보내던 할아버지가 손수건을 꺼내 뭔가를 싸 둡니다.
뒤에는 큰 꽃시계가 있어도, 할아버지는 자꾸 손목시계만 들여다봅니다.
키 낮은 팬지꽃이 꽃시계를 예쁘게 꾸미고 있습니다. 꽃시계 테두리엔
붉은 깨꽃이 팬지꽃을 감싸고 있습니다.
꽃시계 긴 분침은 이미 여섯 시를 지나갑니다.할머니 모습은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할아버지가 손목시계 보는 횟수도 점점 잦아집니다.
그때였습니다.
공원의 왼쪽 계단 위로 단아한 할머니 모습이 보입니다.
“오, 오셨어! 오셨어!”
찬현이와 보람이는 민규가 가리키는 곳으로 눈길을 좇습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 곁으로 겅중겅중 다가갑니다. 그리고 마지막계단을
올라오는 할머니의 손을 살짝 잡아 줍니다.
할아버지는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냅니다. 손수건 속에는
네잎클로버와 함께 하얀 토끼풀 반지가 들어 있습니다.
여섯 시를 이미 지난 꽃시계의 시침은 느릿느릿 다가오는 분침을 기다려 줍니다.
긴긴 여름 해는 아직 질 생각도 없는 듯합니다.
뒤늦게 도착한 꽃시계의 긴 분침이 살포시 포개지며 여섯 시 삼십 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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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소감
오래전,
기차표 한 장을 샀습니다.
그 기차는 동화의 나라로 들어가는 기차였습니다.
비바람이 쳤고, 세월도 훌쩍 흘렀습니다. 손에 꼭 거머쥐고 있었던 마지막
기차표마저 잃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나는 걷기 시작했습니다. 기차가 떠나버린 철길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내 딛었습니다.
나는 지금 길가의 풀꽃 향기를 맡으며 동화의 나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기차는 종착역이 있겠지만 내 동화의 나라에는 종착역이 없습니다.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동화의 나라를 여행할 것입니다.
이렇게 동화의 나라로 여행을 할 수 있게 삶을 가꾸는 글쓰기의 밭을 한 뙈기
떼어 내 주신 민들레 백영현 선생님, 그리고 그 밭에 동화의 나무가 무럭무럭
자랄 수 있도록 듬뿍 거름을 주셨던 글나라 김재원 선생님,
두 분 스승님께 먼저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이제 그 밭에 작은 원두막 한 칸을 지으려 합니다.
‘상 받는 글쓰기에 연연하지 말라’시던 스승님의 가르침을 새기며<참꽃>친구들과
그 원두막에서 실컷 놀고 싶습니다. 맑은 영혼으로 동화의 세상에서 만나는<글나라>회원님들,
<재간동이>회원님들과도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리고 묵묵히 다독이며 기다려 준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들, 소중한 가족들과 함께
이 영광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부족한 글에 눈길 머물러 뽑아 주신 심사위원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동화를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동아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고전문학 전공 문학 석사
- 2004. 제 5회 부산 해양문학상 <바다가 피운 꽃>동화 우수상
- 2005. 국악동요 노랫말 공모<웃음꽃>동시 당선
- 2008. 대통령 표창
- 현 삶을 가꾸는 글쓰기 모임<참꽃>동인
- 현 아동문학연구소<글나라>회원
- 현 동화작가들의 모임 <재간동이>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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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천강문학상 수필부문 금상 수상작]
추임새
/ 안미자
판소리와 마당놀이에서 고수가 얼-쑤, 좋다. 그렇지,만 추임새 인 줄 알았다.
그런데 무대에서 소리꾼의 흥에 박수를 보내고 끝날 무렵에 관객이 휘파람을 불며 앵콜 박수를 보내는 것도 추임새로 본다.
엄마의 뱃속에서 자라는 아기에게 태교를 하는 것도 추임새이지 싶다. 엄마와 아빠의 목소리로 동화를 읽어주고 동요로 된 태교음악을 들려주면 태동을 한다고 한다. 그것은 흥겨움의 소통이 아닐까 어느 의학박사가 방송에서 말을 했다. 뱃속에서 태교를 받지 못한 아이는 출산 후에도 엄마가 아기에게 주는 사랑이 충분하지 못할 때 자폐아가 된다고 했다.
추임새란 심장과 심장이 부딪치게 하는 소통의 끈인가 싶다.
아기에게 까꿍까꿍을 하면 아기는 방그레 웃는다. 알고 웃는지 모르고도 웃는지 모르겠지만 아기가 먼저 알아듣는 것이 까꿍까꿍 이다. 사랑의 추임새로 아기에게 까꿍까꿍을 하면 아기는 깔깔거리면서 웃는다. 그리고 어린아이가 재주를 부릴 때에도 참 잘했어요라고 박수를 쳐주고 엄지손가락을 딱 맞춰주면 아이는 더욱더 흥겨워 한다. 추임새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흥겨움으로 소통을 한다는 뜻이다.
독서를 할 때도 어느 한 대목에 글이 아름답거나 가슴이 찡하면 나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면서 바로 이것이다 하고 무릎을 탁 칠 때가 있다. 저자는 내가 무릎을 탁치는 추임새를 모른다. 그렇지만 내가 저자에게 보내는 추임새는 박수치기 아닌 무릎치기다. 이것이 나의 추임새 기법이다. 수필을 쓸 때에도 추임새를 넣는다. 글을 쓰다가 글이 싱거우면 짭조롭한 비유법으로 추임새를 넣는다. 그것은 글에 리듬을 맞추어 톡 쏘는 맛을 내기 위해서다.
며칠 전에 유치원생인 6살짜리와 4살짜리 손녀 둘이서 “독도는 우리땅”의 가사를 하나도 빠트림 없이 불렀다. 4살짜리는 제 언니의 어깨 너머로 배운 실력이다. 티이브에서 “독도는 우리땅”의 노래를 가수가 열창을 해도 나는 우리땅 우리땅의 추임새를 넣지 않았다. 그런데 손녀들이 독도는 우리땅 노래를 부르면 우리땅 우리땅 바로 이것이로구나 하고 손뼉을 탁탁 치면서 우리땅 우리땅 추임새를 넣는다. 손녀들은 “하와이는 미국땅 대마도는 몰라도 독도는 우리땅 “을 무 반주로 리듬으로 부른다. 나도 무 반주 리듬으로 우리땅 우리땅을 목청을 한층 더 높이면서 추임새를 넣는다. 추임새란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서 넣는 것도 있겠지만 독도는 우리 땅처럼 심장이 뜨거워지게 넣는 추임새도 반듯이 필요하겠다.
나는 깜짝 놀라면서 바로 이것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을 유치원에서부터 “독도는 우리땅” 노래를 가르쳐 부르게 하고 가족들이 우리땅 우리땅으로 추임새를 넣는다면 독도는 오징어와 문어, 꼴뚜기, 물새알 그리고 재주를 잘 부리는 돌고래와 거친 파도, 갈매기를 데리고 안도의 숨을 크게 내쉬고 편안하게 제자리를 지킬 것이고. 일본 사람들의 억지와 망언은 우리 땅 우리 땅의 추임새에 자연스레 밀려 나고 말 것이다. 추임새. 즉 흥겨울 때만 넣는 것이 아니고 사랑과 애정에도 넣는다.
나는 아침에 앞산에 오른다. 초입에서 10분 정도 지나면 조릿대 군락지가 있다. 아침이라 새들도 잠에서 깨어 기지개를 쭉 펴는지 시끄럽다. 봄바람은 잎새를 키워 올릴 만큼 시끄럽고, 여름바람은 연녹색을 초록으로 물들일 만큼 시끄럽다. 가을바람도 낙엽이 떨어질 만큼시끄럽다. 그러다가 겨울바람이 휘몰아치면 조릿대는 제법 세게 일렁이면서 잎새들끼리 부딪쳐 서걱서걱 시끄러운 소리를 낸다. 이때의 시끄러운 소리가 추임새다. 왜냐하면 흔들린 잎이 향기를 뿜어 내기 때문이다. 조릿대 숲을 지나면서 잘 잤니? 인기척을 내는 내가 조릿대도 반갑지 싶다.
아침이면 조릿대 향기와 동행을 한다.

제1회 천강문학상 수상자 현황
O 수상자 현황 : 총 28명(분야별 7명)
구 분
대 상
금 상
은상1
은상2
동상1
동상2
동상3
소 설
주경로/
여우별을 사랑하다
이서진/
그리자벨라를 위하여
이채원/
연두벌레
조수현/
믿음 혹은 신념의 문제
양호문/
호수와 노인
윤규열/
푸른 상자
심정목/
세상 모질게 살았노라
시·시조
백점례/
물풀
이 공/
성지순례
김정아/
바람속의 잠
김승훈/
마블링
유현주/
감자를 묻다
강명수/
배추벌레
정일남/
구절리
아동문학
이순영/
꽃시계
금해랑/
할머니와 호박꽃
서진희/
하회탈 인사
김병옥/
글씨
김양화/
울지 못하는 새
윤영선/
향기
최미애/
이, 고집불통
수 필
김희자/
등피
안미자/
추임새
정기상/
매미
박산하/
만평농장가꾸기
최계순/
고가(古家)
장미숙/
부추
김나현/
느티나무처럼
O 심사위원 현황(심사위원장 : 윤재근)
장 르
본 심
예 심
시·시조
윤재근(평론가) 이광석(시 인) 김복근(시 인)
김경복(평론가) 이달균(시 인)
소 설
김병총(소설가) 표성흠(소설가) 박정수(소설가)
명형대(평론가) 김홍섭(소설가)
아동문학
전문수(시 인) 이영호(동화작가)
이 림(동화작가) 류경일(시 인)
수 필
김열규(평론가) 이유식(평론가)
장성진(평론가) 한후남(수필가)
2009년 10월 9일
천강문학상운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