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출판사 제1회 독후감 공모전 수상작(장려상)

 

<나의 멘토 나의 성인>을 읽고

최 스텔라님

 

7년 전---

'이번 역은 OO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황급히 튀어나온 나는 대학병원 출입구 쪽으로 향해 계단을 엉성엉성 짚어 오르다 그만 계단 난간에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러자 분홍색 보자기에 싸여 있던 죽통이 '퍽'소리와 함께 열리면서 하얀 쌀죽이 허연 김을 내뿜으며 뭉근히 흘러내렸다.

 

아 ------, 신은 없다.

 

하느님이 계시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무릎 정강이는 피멍이 들었고 가슴속은 꺼멓게 구멍이 뚫려 버렸다.

4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던 친정어머니는 9개월 후 돌아가셨고 깨져버린 죽그릇처럼 나 '스텔라'의 신앙심도 산산이, 아니 그날 허옇게 피어오르던 연기처럼 허공으로 증발해 버렸다.

 

7일마다 꼬박꼬박 돌아오는 일요일은 돈 떨어진 빚쟁이에게 빚 받으러 오는 고리대금업자처럼 두렵기까지 했다. 저금되어 있지 않은 신앙심 때문에 나는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성당 생활에 편안하게 다가서지 못했다. 그러다가 신앙생활에 집중하지 못하는 결정적 이유가 신앙 공부를 하지 않아서라고, 아니 아는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단정짓고 무작정 성성백주간 프로그램에 등록하였다. 성경을 읽어 나가는 것으로 신앙의 문을 두드린 나는, 알 수 없는 신앙의 길을 잃지 않도록 저 어디에 있을 나의 하느님에게 다가가는 길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그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녹록치 않았다. 그렇게 3년이 지났다. 나는 성경을 끝까지 읽어 냈다.

 

그러나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어떻게 다가서야 하는지 3년의 공을 들인 후에도 내 손에는 쥐어지는 것 없이 그냥 빈손뿐이었다.

 

찾아야 할 무언가를 성경 안에서 찾지 못한 나에게 제임스 마틴 신부의 <<나의 멘토 나의 성인>>은 목적지를 몰라 허둥대는 운전자 앞에 놓인 네비게이션 같은 존재가 되었다. 어렵게만 느껴져 풀리지 않던 문제를 풀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안내자가 되어 준 것이다.

 

양말 서랍 속에 넣어둔 유다 성인상 이야기는 어린 시절 땟국물나는 곰인형에게 부벼대며 안정을 느꼈던 편안함을 가져다주었다.

'성인'의 존재를 친구처럼 대하게 된 것이다. 유다 성인을 읽기 전에는 '성인'은 아주 먼 곳에 있어 한 차원 높은 분, 감히 근접할 수 없는 위대한 분이라 여겼었다. 하지만 번쩍이는 금궤도 아니고 누구의 손에도 닿지 않는 높은 곳도 아닌 양말 서랍 속에 있는 유다 성인상이 아무 때나 만지며 주문을 외웠던 마니또 같은 친근하고 사랑스러운 친구 '성인'이라니 ------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거구나-----.

 

책을 읽으면서 전쟁의 영웅이었던 오를레앙의 소녀 잔 다르크가 헌신과 믿음과 불가능을 가능으로 이루었고, 확신을 심어 주고, 온갖 억압과 박해에서도 변함없는 사랑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순교한 분이었음을, 성스러운 믿음을 가지고 있던 '성인'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아마 이 책을 접하지 못했다면 '성인' 잔 다르크는 나에게 영원히 프랑스 국기를 한 손으로 번쩍 들어 올린 위인으로만 남아 있었을 것이다.

 

이름처럼 작은 꽃으로 살다 떠난 소화 데레사 '성인'은 16살에 수도원에 입회하여 9년간 평범하게 수도생활을 하고 25년의 짧은 생애를 마감하였다. 자신이 하느님의 정원에 핀 '작은 꽃'일 뿐이라고 단언하는 소화 데레사의 겸손함에 마음이 아련해진다. 예수님께서 장미나 백합 같은 큰 성인을 창조하신 한편, 오랑캐나 들국화 같은 작은 성인들도 창조하셨으니 모두 자신의 역할에 만족해야 할 것이라고 소화데레사는 조용히 말하고 있다. 나도 하느님에게 아주 작아서 보이지도 않는 들꽃이라도 되고 싶어졌다.

 

참된 자아을 발견하하고 속삭이는 토마스 머튼 신부의 모순적인 삶이 오히려 '성인'에게 한층 내 곁은 내어 주는 매력으로 다가온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알지 못하는 한 우리 자신이 되지 못한다고 그는 저서 <<인간은 어느 누구도 외딴섬이 아니다>>에서 우리를 격려하고 있다.

 

만물에 무심(indifference)할 수 있어야 한다고, 즉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사물이나 사람, 생활양상에 매달리지 않아야 한다고 하면서 '영신 수련'의 필요성을 외쳤던 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인에게서 무심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가난한 이들, 소외받는 이들 또는 가망 없는 이들을 사목하는 데 필요한 길잡이를 구할 때 기도드리는 상대가 되어 주는 페드로 아루페 신부는 '나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전부'라고 하는 생명의 원천이 되어 주는 '성인'이었다. 그리고 마사비엘 동굴에서 성모님의 발현을 18번이나 목격한 베르나데트 수비루는 놀림과 심문, 조사, 의혹 속에서도 충절을 버리지 않고 자신의 체험을 믿는 일이 소중함을 일깨워 줌으로써 증거자로서의 '성인'이 되어 주었다.

 

'내가 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그대는 할 수 있다. 그대가 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나는 할 수 있다. 우리 함께 하느님을 위해 아름다운 무엇인가를 해내자.'고 부추겨 주는 '성인' 마더 데레서 수녀는 사랑을 몸으로 실천하는 수행이라고 소매를 말아 올리게 한다.

 

엄격하고 권위적인 교황의 자리에서도 '그리스도의 대리자일 뿐'이라고 자신을 낮추고 유머감각을 잃지 않는 안젤라 주세페 론칼리, 요한 23세 교황에게서 아주 시시한 이야깃거리로 오히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필요한 자세를 배울 수 있었다.

 

평생을 검소하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일하면서, 침묵하는 대신 정치, 경제 체제를 비판하며 사회 활동을 통해 소외받는 이들에게 친구가 되어 준 도로시 데이는 신앙은 조용한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정했던 베드로 사도, 흠이 있는 주님의 사랑을 보면서는 내가 내 아이들의 결점 때문에 더욱더 내 아이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고, 또한 하느님도 흠많은 나를, 결점투성이인 나를 더욱 더 사랑해 주신다는 말씀에는 나도 눈물을 흘렸다. 예수님이 베드로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를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그 약점들 때문에 선택하신 것이라는 제임스 마틴 신부의 이야기는 '그래, 나도 예수님에게 필요한 사람이겠지.'하고 나에게 힘과 용기를 주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연민가 사랑을 느끼며 그를 더 알고 싶다는 애정을 갖게 되었다.

 

여고 시절 세계사 시간에 <<신학 대전>>이라는 철학서를 저술한 철학자로만 알고 있던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천둥치는 폭우로 위험에 처한 이들과 갑작스러운 죽음에 직면한 사람들의 수호성인이 되었다는 사실에서 위엄있는 철학자로 평가되었던 그에게 인간적이고 편안함을 느끼게 되었다. 한평생을 하느님 탐구에 바치면서 박식함과 겸손함, 기도 생활로 삶을 살아간 활동가로서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나의 철학에 대한 태도를 바꾸어 주었다.

 

부자인 아버지에 대한 아들로서의 의무를 벗어 버리고 알몸으로 교회에 돌아와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의 섭리에 맡긴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 그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철저히 가난한 삶을 실천으로 옮긴 성인이다. 나는 내 신앙을 위해서 알몸으로 하느님에게 다가갈 수 있었을까라는 물음을 갖게 되었다.

 

예수님의 지혜와 키가 자라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가 있었던 18년 동안 같이 보낸 요셉 성인, 요셉은 다른 아버지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아들에게 교사 노릇과 신앙을 키워 주는 밑거름이 되어 준 분이다. 하지만 예수님의 공생활을 시작으로 요셉 성인의 자취가 감추어지는데 이때부터 요셉의 삶은 숨겨진 삶이 된다. '숨음'의 가치를 알게 해 준 요셉 성인의 모습에서 검소한 삶으로 모범을 보일 수 있다는 가르침을 받게 되었다.

 

아프리카의 우간다 순교자들에게서 조선 후기 유교사상과 대립하여 천주교인을 배척한 수많은 사건들이 떠올랐고 피비린내 나는 혁명이 떠올랐다. 새로운 변화는 그냥 찾아오지 않고 왜 수많은 희생과 눈물을 흘려야만 찾아오는 것일가. 분명 그만한 값어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 고통이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성화에서 많이 보았던 알로이시오 곤자가 성인은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아주 어린 나이부터 혹독한 종교적 수행을 실천하며 전염병자를 돌보다가 23세에 숨을 거두었으며, 자신이 가진 가장 귀한 것을 하느님께 바치면서 청소년들과 학생의 수호성인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가진 가장 귀한 것을 순순히 내놓을 자신이 나에게도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쉽지 않은 일이다.

 

부활절이나 성탄절이면 매년 중요하게 봉독되는 마리아와 가브리엘 천사이 복음 내용은 같은 여자로서 동정과 연민을 느끼게 한다. 처녀로서 아이를 갖게 되리라는 메시지를 순종으로 받아들이는 마리아의 대담함은 인내와 믿음이 없이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마리아 성인이 나에게 보여 준 표상은 신비로움이라는 단어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주간 프로그램 이후 하느님을 좀 더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던 나에게 제임스 마틴 신부의 이 책은 신앙생할에서 풀리지 않는 매듭을 부드럽게 풀어내 주는 윤활유 같으 역할을 했다. 세례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친정어머니의 죽음을 맞게 된 나에게 하느님의 존재는 모든 것을 부정하고 의심하는 백지상태로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위엄있고 권위있어 보이기만 했던 수많은 성인들을 들여다보면서, 그들이 지극히 평범하고 인간적이며 오히려 위로를 해 주어야 할 보통의 사람이었다는 사실에 나는 들뜨게 되었다.

나도 마음을 열고 노력하면서 하느님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믿음이 조금씩 자라났다. 그러면서 신앙생활에서 성인이 하느님에게 다가가는 사다리 역할을 해 주었고, 하느님의 옆자리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성인'의 위치가 내 주변, 내 책상, 침대 옆, 핸드백 안, 핸드폰 안에 자리잡게 되었다.

 

제임스 마틴 신부의 생활에서 늘 함께 있던 성인들이 나에게도 격려를 보내 준다. 하느님의 사랑은 머릿곳에서 고고하게 있는 것이 아니라고, 혼자만의 소유물이 아니라고, 믿음은 실천하면서 몸으로 부딪히면서 하나씩 깨우쳐 나가는 것이라고 나에게 일러 주고 있다. 아주 작은 몸짓 하나만이라도 내가 주체가 되어 행동해 나가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성인들이 위대해 보이는 것은 끊임없이 행동하고 절대로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친정어머니의 죽음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의심하면서 뒤로 물러서려 했던 것과 달리 성인들은 조금의 의심도 없이 믿고 따르면서 앞으로 나아간 분들이었다.

 

이 책을 하루에 한 분의 성인씩 읽어 나가면서 웃을 때도 눈물지을 때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할 때도 있었고 너무나 인간적이서 놀라움을 금치 못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경건함과 고고함에 표상이었던 '성인'이 어느덧 나의 소중한 친구가 되어 내 얘기를 들어주고 나를 격려해 주고,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죽마고우가 되어 준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책이다. 또 한 가지, 제임스 마틴 같은 훌륭한 사제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게 신앙생활에서 갈등하고 고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사제들에게도 신앙생활이 절대 쉽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수많은 성인을 통해 나는 자꾸만 손을 놓아 버리고 싶던 하느님과의 만남을 향해 다시 한 번 크게 발버둥쳐 놓쳤던 끈을 잡게 되었다. 아주 오래된 옛날 이야기 속에 박제가 되어 생명이 없다고만 느꼈던 수많은 성인들이 이제는 나 '스텔라' 옆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리고 나 '스텔라'는 잔 다르크를, 소화 데레사를, 마더 데레사를, 도로시 데이를, 토마스 아퀴나스를, 베드로를, 요셉과 마리아를 마음 깊숙히 사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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