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처음부터 코끼리세탁소는 아니었다. 아버지는 코끼리를 발음할 때마다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곤 곧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물크러진 음성을 내뱉곤 했다. 나는 말이다, 그때 꿈이라도 한바탕 꾸고 있는 줄 알았다니까. 협소한 세탁소 안에서 아버지는 목에 건 수건으로 연방 땀을 닦으며 다림질을 했다. 옷 위에 땀이 툭 떨어지면 다시 빨아야 했기 때문에 늘 조심해야 했다. 한여름에 다림질 열기를 고스란히 받아냈던 그날은 어떤 말로도 수식할 필요가 없는 날이었다. 그저 장마가 지나간 뒤 후텁지근했던 날들 중 하나 정도의 의미만 있을 뿐이었다. 아버지의 다림질은 점점 느슨해졌다.
오래된 카세트테이프처럼 축 늘어지기 시작할 때쯤이었다. 멀리 퉁탕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대낮에 불꽃놀이라도 하는 줄 알았다고 회상했다. 구붓했던 등을 곧게 펴고 번들거리는 얼굴을 들었을 때 아득하게 무언가 다가오고 있었다. 주변이 일순 수선스러워지고 있었지만 아버지의 몸은 움직여지질 않았었다. 쿵쾅거리며 세탁소를 향해 매섭게 달려드는 것은 코끼리였다. 아버지는 그 순간 예전에 실제로 코끼리를 봤던 기억을 떠올렸다.
코끼리가 다가오는 동안에도 기억은 어렸을 적 소풍을 가서 기린 우리 옆에서 잿빛 코끼리를 봤던 것까지 더듬어갔었다고 했다. 코끼리는 비대한 몸을 세탁소 안에 거의 던지다시피 했다. 아버지는 그제야 날렵하게 몸을 피해 웅크렸다. 세탁소의 통유리가 부수어지고 와이셔츠와 블라우스와 한복들이 뒤엉켰다. 다림질 판이 반으로 갈라지고 식지 않은 다리미가 코끼리 등에 닿았다. 코끼리는 코로 천장에 걸린 옷들을 하나씩 헤집었다. 마치 먹이를 찾으려고 숲을 헤집는 것처럼. 아버지는 탁자 밑에 웅크린 채로 코끼리가 하는 짓을 바라봤다.
코끼리는 굵고 뭉툭한 발로 도장을 찍듯이 움직였다. 그럴 때 한꺼번에 많은 것들이 생각났단다. 그리고 문득 코끼리가 죽은 네 엄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탁소 안으로 네 엄마가 왔구나. 아버지는 그런 생각이 들자 코끼리를 한 번 쓰다듬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웅크리던 몸을 밖으로 내밀어 코끼리의 다리를 쓰다듬었다. 쿵쿵거리던 발자국을 멈추고 코끼리는 가만히 있었다. 생각보다 단단하고 꽤 거칠더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