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일보

국군장병 대상 영웅 공모전..총 상금 2000만원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국방일보·월간저널 영웅 공동 주관
2016. 04. 01   08:01 입력

영웅 공모전..총 상금 2000만원

국군 장병 대상 소설·수필·시·만화 부문 4월부터 접수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국방일보·월간저널 영웅 공동 주관
우리나라 역사 속 영웅, 자랑스러운 우리 부대 현재 및 선배 영웅
국군 장병 대상 소설·수필·시·만화 부문 4월부터 접수

 


 

[디지털 뉴스팀] "국군 장병들의 가슴 속 영웅을 찾습니다."


신세대 장병들의 국가관을 확립하기 위한 ‘영웅’ 공모전이 육·해·공군, 해병대 장병을 대상으로 개최한다.


이번 영웅 공모전은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위원장 박용호)·국방일보(발행인 권이섭)·월간저널 영웅(발행인 박창재)가 공동 주관하고, (사)안중근의사 숭모회/기념관이 후원한다.


영웅 공모전 주제는 ▲우리나라 역사 속 영웅 ▲자랑스러운 우리 부대 현재 및 선배 영웅이다.


응모 분야는 단편소설(원고지 30매 이내), 수필(원고지 20매 이내), 시, 만화(컷 수 제한 없음) 등 4개 부문으로 국군 장병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시상은 대상 1명에게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장 상과 상금 400만 원, 최우수상 4명에게는 국방일보 발행인인 국방홍보원장 상과 상금 각 150만 원, 우수상 4명에게는 안중근의사 기념관장 상과 상금 각 100만 원, 장려상 12명에게는 도서출판 꼬레아우라 대표 상과 상금 각 50만 원이 주어지는 등 21명의 입상자에게 총 2000만 원의 상금이 지급된다.


‘영웅’ 공모전 원고 접수는 4월 1일부터 5월 31일까지 2개월 동안 꼬레아우라 홈페이지(http://koreahurrah.net)와 이메일(subs@koreaura.net)을 통해서 한다.


심사 결과는 6월 13일 도서출판 꼬레아우라 홈페이지와 국방일보에 발표되며 시상식은 호국보훈의 달인 6월 24일 서울 남산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열린다.


이밖에 공모전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꼬레아우라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의는 ‘영웅’ 공모전 사무국 02-574-7300, 국방일보 디지털뉴스팀 02-2079-3831, (군 전화) 904-3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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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도자료는 yhkim@dema.mil.kr / 문의 전화는 02 2079 3831입니다.

국방일보

'영웅' 공모전 부문별 입상자 명단

2016. 06. 13   11:04 입력

'영웅' 공모전 부문별 입상자 명단

 


국방일보

[전문] ‘영웅’공모전 소설 부문 최우수상

2016. 06. 23   13:29 입력 | 2016. 06. 23   18:16 수정

[전문] ‘영웅’공모전 소설 부문 최우수상
김 건 구 상병 육군5기갑여단

김 건 구 상병 육군5기갑여단




붉은 꽃
김건구 상병 육군5기갑여단




“날씨 참 맑구려.”

마당에서 하늘을 바라보던 한 사내가 나긋하게 말했다. 옆에 아기를 업은 아내는 고개를 올려 위를 쳐다보더니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햇빛은 그늘의 언저리까지 온기를 전해주고 있었고, 산들산들 부는 바람은 이들 부부를 쓰다듬어주었다. 마당 저편에서는 두 아들이 모래로 두꺼비집을 만드는 중이었는데, 온 몸이 흙투성이다. 아이들은 그 놀이에 흠뻑 젖어 시간의 흐름을 잊은 듯 했다. 그러다 문득 큰아들은 흙장난에 질렸는지 손에서 흙을 털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아이의 시선은 잠시 한 곳에 머물러 있다가 아버지를 향했다.

“아부지, 그런데 저 꽃 이름은 뭐래요?”

미처 털지 못한 흙으로 범벅이 된 아들의 손을 따라 사내는 눈동자를 움직였다. 겨울인데도 불구하고 붉은 꽃들이 예쁘게 피어있었다. 마당에 저런 꽃이 있었는지 몰랐다. 아니, 어렴풋한 기억 속에 보았던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 본 적이 없었다. 그냥 집 앞 풍경에 익숙해 그 붉은 꽃의 아름다움을 깨닫지 못했던 것 같다. 그는 몇 발자국 다가가 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들에게 ‘동백’이라는 꽃 이름을 말해주려는 순간, 가까이서 정적을 깨는 소리가 들렸다. 자동차 엔진 소리와 군홧발 소리가 어느새 더 가깝게 들렸다. 불안감을 느끼며 문을 바라보니 벌써 몇몇 군인들이 총을 겨눈 채 집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일본군이었다. 뒤이어 차량 한 대가 마당으로 들어오더니 그의 앞에 있던 붉은 꽃을 짓이기고 멈추어 섰다. 차문이 열리고 일본인들이 내렸다. 가족들은 갑작스런 상황에 얼어붙어 있었다. 흙 위에서 멍하니 있던 아이는 자신의 아버지가 정신을 차리고 브라우닝 권총을 빼드는 것을 보았다.

“타앙”

가슴에 엄청난 충격을 느끼며 뒤로 쓰러졌다. 동시에 그는 권총을 놓쳤다. 하늘이 노란색인지 빨간색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는 멍한 상태에서 눈을 끔뻑였다. 몸을 움직이려 했으나 손이 천근만근이었다. 장교로 보이는 일본인이 일본어로 뭐라고 지껄이자 병사들은 아이들과 아내를 거칠게 붙잡았다. 아내는 쓰러져 있는 남편을 보며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발버둥 쳤다. 그러자 그녀를 잡고 있던 병사 하나가 총을 들어 올린 뒤 개머리판으로 내리찍었다. 그 광경을 본 그는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기절한 아내를 뒤로 하고, 일본 군인들은 집에 불을 지르기 시작했다. 옆에 떨어진 총을 주우려 안간힘을 썼지만 몸을 움직이지 못한 채 출혈은 더 심해졌다.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광기어린 분노가 담긴 눈으로 그들을 노려 볼 뿐이었다. 그리고 소리를 빽 질렀다. 어느새 그의 앞에 와서 총을 겨누고 있는 일본인 장교는 히죽 비웃었다. 쓰러져서 내뱉던 사내의 고함소리는 하늘을 울리는 한 발의 총소리에 묻히고 말았다.



적막한 감옥, 갑작스런 고함 소리와 함께 한 사내가 잠에서 깼다. 날씨가 매우 추운데도 불구하고 몸을 일으킨 그의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그는 몇 번이고 주위를 둘러본 후에야 악몽을 꿨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가족들에게 벌어진 일이 모두 꿈이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내 불안해졌다. 자신 없이 집에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을 아내와 자식들이 눈앞에 어른거렸기 때문이었다. 피곤한 몸에 이끌려 다시 눈을 감았지만 이미 달아난 잠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담요를 두르고 감옥 안을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기껏해야 몇 평 안 되는 비좁은 공간. 왼쪽에는 변을 볼 수 있는 통이 나무 덮개로 덮인 채 악취를 내뿜고 있었고, 오른쪽에는 이를 피해 옮겨놓은 몇 안 되는 물건들이 방을 차지하고 있었다. 한 명 겨우 누울 수 있는 그곳에서 순식간에 아홉 바퀴를 돌았다. 그러다 문득 멈추어 서서 책상 위에 있는 벼루와 먹을 바라보았다. 저것들을 만지지 않은 지도 꽤 된 것 같다. 얼마 전부터 글이 써지지 않았다. 그는 자리에 앉아 먹을 갈기 시작했다. 부르튼 손등. 갈라진 살 사이에 드러난 붉은 빛은 손을 움직일 때마다 더 도드라져 보였다. 그래도 묵묵히 움직였다. 추워서 그런지 손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어느 정도 되었다고 생각이 들자 명주 천을 놓고 붓을 들어올렸다. 찬 공기가 그의 살갗을 에는 것처럼 먹물도 붓에 에며 잘도 스며들었다. 물기를 머금은 붓을 다듬은 뒤,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아직 동트기 전이라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았지만 획을 그을 때마다 혼신을 다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를 방해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일본인 간수 도시치였다. 손에 들고 있는 음식을 먹으라고 하는 일본어를 들어보니 벌써 아침식사 시간인가 보았다. 도시치는 아침 식사를 내려놓고 그를 빤히 바라보더니 몇 마디 말했다. 뭐라고 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마저 쓰던 글을 쓰려 했으나 이미 한 글자가 미세하게 틀어져 있었다. 한숨을 내쉬고 붓을 벼루 위에 내동댕이치다시피 내려놓았다. 고개를 다시 돌려 복도 쪽을 바라보았을 때 도시치는 이미 가고 없었다. 오늘따라 더욱 허기를 느꼈다. 그는 쇠창살 사이에 놓여 있는 감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도시치는 이 관동도독부 감옥에서 근무한 지 벌써 2년이 되어 가고 있다. 중국이라는 타지에서 생활하는 것도 이제는 적응이 다 되었다. 외출을 하더라도 이 근방에 일본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기에 의사소통으로 인한 불편함은 딱히 없었다. 게다가 일본 헌병대라는 직위 때문에 아무도 자신을 괄시하지 못했다. 제복을 입고 밖을 돌아다니면 중국인들과 조선인들이 눈도 안 마주치고 피해 다니는 것에 묘한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비록 근무지에서는 일개 간수에 지나지 않았지만 감옥에 갇힌 사람들과 밖에 있는 현지인들에게는 무게감 있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자신이 군인이라는 점이 자랑스러웠고, 어느 정도의 돈과 사회적 지위를 준 조국에 감사했다. 간수 일은 그다지 어려운 게 없었다. 감옥에 갇힌 범죄자들을 통제하고 먹을 것만 제 때에 넣어주면 되었다. 가끔 쉬는 시간에 그들과 대화를 나누기는 했지만 깊은 이야기는 나누지 않았다. 수감자들이 일본어를 잘 못할 뿐만 아니라, 간수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시치도 딱히 그들의 삶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았다. 그들이 어떤 일을 했었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지 그저 범죄자일 뿐이기에. 관동도독부 감옥에는 중국인들뿐만 아니라 조선인들도 많이 들어왔다. 독립운동이라는 명분하에 일본인들을 죽인 자도 있었고, 건물을 폭파시킨 자도 있었다. 도시치는 일반 범죄자들보다 그런 자들이 더 혐오스러웠다. 조국이 못 사는 나라에 진출하여 경제적, 군사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는데 그 나라 사람들은 왜 그러한 행위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그는 조선인들을 관리할 때마다 일부러 모질게 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조선인이 그가 맡은 감옥으로 왔다. 이 인간은 이전에 보았던 조선인들보다 죄질이 더 컸다. 중국의 한 지방에서 의병에 참가하여 일본군을 격퇴한 경력이 있는 자인데, 이번에는 일본의 추밀원 의장을 사살한 모양이었다. 도시치는 그런 그를 유난히 더 경멸했다.


의거 직후 안중근 장군의 의연한 모습.

의거 직후 안중근 장군의 의연한 모습.


“2107번!”

감옥에 갇혀 있는 조선인은 자신의 번호가 일본어로 불리는 것을 들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간수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2107번! 나는 도시치라고 한다. 앞으로 일과 시간, 식사 시간, 휴식 시간 그리고 그 외 모든 것은 통제에 따라 움직인다. 만약 내 말을 조금이라도 듣지 않는다면 형벌 장에서 처벌받게 되니 그리 알도록.”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간수는 식사를 내팽개치듯이 내려놓고 갔다. 감옥에 홀로 남은 그는 그 날 이후로 매일 간수의 경멸하는 눈빛을 마주하였다. 일과 시간에는 따로 마련된 장소에서 다른 수감자들과 함께 고된 노동을 하였다. 간혹 어떤 이들은 일을 하다가 간수들의 모독과 핍박을 견디지 못해 반항을 하였는데 그 결과는 처참했다. 간수들은 평상시 갖고 다니는 채찍을 거리낌 없이 그 자리에서 바로 사용하거나, 고문실로 데려가 기구를 이용하여 반항한 수감자를 반 불구로 만들었다. 감옥에서 그들의 말은 곧 법이었다. 2107번 수감자도 다른 수감자들과 마찬가지로 간수들의 괴롭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 봐! 조센진! 일 똑바로 안 해? 형벌 장에 가고 싶은 거야?”

그들은 이런 비하 발언과 협박을 하는데 서슴지 않았다. 그는 이런 도발에도 불구하고 평정심을 유지하며 참고 참았다. 그리고 쉬는 시간마다 독서를 통해 지친 심신을 달랬다.

며칠이 지나고 옥 생활이 적응된 그는 처음으로 간수에게 말을 걸었다.

“도시치 씨, 부탁 하나 드려도 되겠소?”

간수는 아무 말 없이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그것을 긍정의 신호로 받아들이고 말을 이어갔다.

“옥에 오기 전 서예를 종종 하곤 했는데 지금은 그러지 못해 아쉽구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서예 할 때 필요한 물품을 구해줄 수 있겠소? 만약 그게 어렵다면……. 지인을 통해 반입이 가능한지 물어보고 싶소.”

간수는 어이없다는 듯이 비웃으며 말했다.

“나는 범죄자가 서예 하려는 것은 또 처음 보는군. 당신이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는 한 건가? 자숙은 안 하고 태평하게 글이나 쓰겠다고?”

그는 얼굴하나 붉히지 않고 정중하게 대답했다.

“나는 개인적인 이유로 사람을 죽이지 않았소. 사사로운 이유로 죽였다면 단순 범죄자 취급을 받아 마땅하지만 나는 군인으로서 우리나라를 침략하려는 적을 처단한 것이오. 그 행동은 정당했으며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오. 그러니 도시치 씨, 당신은 나를 전쟁 포로로 대하는 것이 마땅하오.”

“뭐라고? 우리가 당신네 나라를 침략했다고? 참 웃기는군. 당신은 중국과 러시아가 조선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가? 우리나라는 그런 나라들로부터 조선을 보호해주고 있어. 그뿐만이 아니야. 광산도 개발하고 기찻길도 만들어 주었어. 경제적으로, 외교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는데 돌아온 것은 뭐지? 주요 정치인 살해, 건물 폭파 같은 테러였어. 정말 배은망덕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간수의 말에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우리나라는 독립국가요. 주변에 중국이 위협하건, 러시아가 넘보고 있든 우리 스스로 해결할 권리를 갖고 있소. 그런데 당신네 나라는 우리의 국력이 약해진 틈을 타 보호정치라는 정책 아래 국권을 침탈하려고 하고 있소. 말이 경제적 도움이지 우리의 자원을 강탈해 가고 있단 말이오. 도로나 기찻길도 우리를 위해 만들어준 것이 아니라 약탈한 물자를 신속하게 나르기 위한 것이오. 일본은 겉으로는 우리를 위한 척 하지만 실제로는 야금야금 물건을 빼앗아 가는 사기꾼과 다를 바가 없소. 아니지. 사기꾼보다는 날강도에 가깝소. 흉기로 협박하여 물건을 훔치는 것도 모자라 집주인 행세까지 하려는 파렴치한 날강도. 그런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인 내가 그 강도를 처단하려고 하는 것이 나쁜 행위요?”

도시치는 잠시 할 말을 잃고 있었다. 무엇인가 말하려고 입술을 씰룩거렸으나 끝내 말하지 못했다. 그러자 조선인은 이어서 말했다.

“도시치 씨도 군인이니 잘 알 것이오. 나라를 빼앗길 위험에 처하면 군인은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입장을 바꿔서 조금이라도 생각해보면 내 행위가 옳았음을 알 것이오.”

간수의 일그러졌던 얼굴이 갑자기 풀어지며 붉게 상기되었다. 그는 고개를 돌리고 저벅저벅 걸어 나갔다.

그 뒤로, 그들은 쉬는 시간을 이용하여 가끔 대화를 나누었다. 며칠 뒤에 조선인의 감옥 한 구석은 벼루와 먹, 붓 등이 자리를 차지했다. 그는 틈만 나면 독서를 하고 글을 쓰며 시간을 보냈다. 순간순간의 시간은 쌓여 갔고, 한파가 한결 수그러질 무렵 도시치가 그를 보는 눈빛과 대하는 태도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한 때 그를 혐오했다는 기억을 완전히 잊은 듯.

그러던 어느 날, 감옥을 뒤흔드는 고함 소리에 도시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잠깐 졸고 있었던 모양이다. 당직 근무 때 종종 문제를 일으키는 수감자들이 있는데 그들은 항상 간수들을 피곤하게 만들었다. 그는 미처 다 뜨지 못한 눈을 비빈 채, 의자에서 엉거주춤 일어났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순찰을 돌기 시작했다. 조금 전 소리가 난 곳을 향해 걸어갔다. 이미 소리가 멎어 있어서 문제가 일어난 방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지만 도시치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모든 수감자들은 잠에 빠져 있었지만 유독 한 사람, 그 사람만이 꼭두새벽부터 먹을 갈고 있었다. 수척한 얼굴을 보니 또 악몽을 꾼 모양이다. 몇 주 전, 그 조선인은 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자신의 행동에 당당했고, 신념 또한 굳세어서 그러한 판결에도 흔들림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런 그도 가족이 무척 걱정되는 것 같았다. 도시치를 통해 가족과 편지를 주고받는 일이 많아졌음을 보고 알 수 있었다. 또한 당직 때 종종 그가 가족의 이름을 부르며 잠에서 깨는 것도 보았다. 그 광경을 마주할 때면 마음 한 편이 불편해졌다. 그래서 언제 한 번은 그에게 항소를 권했지만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 뿐이었다. 도시치는 이제 막 글을 쓰기 시작한 그를 뒤로하고 사무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자신이 챙겨온 감자 몇 개를 들고 다시 감옥으로 갔다. 아직 아침식사 시간이 되려면 한참 멀었다. 하지만 조선인은 필시 배가 고플 것이었다.

“여기 감자 몇 개 가져왔소. 일찍 깨서 허기질 텐데 이것 좀 드시구려.”

도시치는 감자를 내려놓고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는 자신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는지 별 반응이 없었다.

“힘내시오.”

도시치는 그 말을 남기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 때 그는 조선인이 붓을 집어던지는 소리를 어렴풋이 들었다.

그 날 이후, 시간은 바람이 철창 사이로 흘러가듯 하염없이 지나갔다. 형 집행일도 어느새 한 달 남짓 남은 상태에서 그는 책을 쓰고 있었다. 책을 기간 내에 완성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자신의 생각을 모두 쏟아 부었다. 가끔 책 집필을 멈춘 시간에는 서예를 하려고 노력했지만 생각한 것처럼 잘 되지 않았다. 사형 판결 후 그의 행동에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지만 가족을 걱정하는 마음은 점점 커져갔고 자신의 마음을 동요시켰다. 국가를 위해 싸우다 맞이하는 죽음에는 여한이 없으나 남겨질 어머니, 아내, 아이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에려왔다. 그는 몇 번이나 먹을 갈고 붓을 들어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글은 계속해서 휘어지고 흔들렸다. 마음이 붓질에서 그대로 드러나는 까닭에 먹물이 스며든 명주 천을 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던 중 어머니의 전언이 담긴 편지를 받았다. 그 내용을 접한 그는 가슴 한 구석이 찡하게 아려왔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슬픔을 느낌과 동시에 흔들리던 마음을 붙잡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느끼는 편안한 고통을 붓질의 한 획, 한 획에 품어 부드럽게 표현하였다. 그를 본 많은 중국인, 일본인들이 글을 써 주기를 부탁하기도 했다. 그랬더니 어느 새 그가 쓴 글은 수십 장이 넘어 있었다.

1910년 3월 26일. 형 집행일이었다. 밖에는 부슬비가 구슬프게 내리고 있었다. 감옥에는 축축하고, 서늘한 기운이 동시에 맴돌았다.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났다. 결국 책은 끝까지 완성을 짓지 못했다. 대한, 중국, 일본 등이 서로 존중하며 평화롭게 살아가자는 동양 평화를 그리며 쓴 글이었다. 아쉬움이 남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구석에 고이 모셔 놓았던 보따리를 풀어 헤쳤다. 편지와 함께 어머니와 아내가 고향에서 손수 지어 보내주신 옷이었다. 조심스럽게 꺼낸 후 더럽혀진 죄수복을 벗고 그 옷을 입기 시작했다.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여 어머니가 만든 옷이 자신의 수의가 된다는 것에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 어떤 말로도 자신의 심정을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 때 복도 쪽에서 기척임이 들렸다. 도시치가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오늘이 마지막 아침식사입니다. 제가 특별히 맛있는 음식을 넣어드렸는데 입맛에 맞았으면 좋겠습니다.”

목소리가 약간 떨리는 것 같았다.

“고맙소. 맛있게 잘 먹겠소.”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 그는 아침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도시치는 평상시와는 다르게 방을 떠나지 않고 그를 지켜보았다. 식사가 끝날 즈음 도시치의 얼굴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대같이 훌륭한 사람이 일찍 목숨을 잃는다는 게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정말 미안합니다.”

갑작스러운 사과에 그는 깜짝 놀라며 도시치를 쳐다보았다.

“정말 미안합니다. 당신과 처음 대화를 나눈 뒤, 우리나라가 조선에게 얼마나 부당한 행위를 하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일본인 중 한 사람으로서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떠나기 전에…….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조선인은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몇 분간의 침묵이 흐르고 그가 입을 열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오.”

그는 벼루, 먹, 붓, 천 등을 꺼내왔다. 그리고 이제는 마지막이 될 서예를 하기 시작했다. 붓을 부드럽고 섬세하게 움직이며 명주 천에 검은 수를 놓기 시작했다. 이것은 단순한 글쓰기가 아니라 글자 하나하나에 자신의 혼과 신념을 불어넣는 행위였다. 그동안 가슴에 새겨두었던 것을 응축해서 내뿜을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홀가분한 느낌과 무엇인가를 이루었다는 성취감이 교차하는 순간 글은 완성되어 있었다.

‘爲國獻身 軍人本分(위국헌신 군인본분)’

왼손에 먹물을 충분히 적신 후 완성된 글 밑 부분에 손바닥을 찍었다. 명주 천에는 정상보다 짧은 약지 손가락이 두드러져 보이는 손 흔적이 남았다. 그가 이것을 간수에게 주며 말했다.

“군인으로서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나의 죽음을 안타까워하지 마시오. 그동안 고마웠소. 일본의 다른 정치인들이 도시치 씨처럼 생각한다면 참 좋을 텐데…….”

그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으나 도시치는 울상이었다. 그 때 다른 간수들이 도시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도시치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더니 문을 닫고 나갔다. 두 손에 글이 담긴 천을 간직한 채.

짧지도 않고 길지도 않은 두 시간이 지나갔다. 형 집행 시간인 오전 10시에 다다르자 며칠 전 어머니의 전언이 담긴 편지를 떠올렸다. 사형 선고를 받은 뒤, 지금처럼 기분이 이상했었다. 하지만 그 때와 마찬가지로 어머니의 전언을 떠올리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하도 접었다 폈다 해서 이제는 너덜너덜해진 편지를 다시 꺼내들고 읽기 시작했다.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떳떳하게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네가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의연히 목숨을 버리거라. 너의 목숨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다.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 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이제는 거의 눈감고 외울 수 있을 정도였다. 그가 편지를 집어넣으려는 찰나 문이 열렸다. 간수들이 들어왔다.

“이제 형 집행장으로 가야 합니다. 따라 오시죠.”

“알겠소.”

그는 순순히 손목에 결박을 당한 채 간수들을 따라 나갔다. 건물 밖으로 나온 그들은 형 집행장을 향해 걸어갔다. 부슬비가 멎은 아침의 공기는 무척 상쾌했다. 촉촉이 젖은 땅을 밟으며 한 발 한 발 내딛었다. 그러다 문득 그는 작은 화단에서 멈추어 섰다. 형 집행장이 있는 건물 앞 화단에 빨간 동백이 낙화해 있었다. 집에서도 꿈에서도 보았던 그 꽃은 봄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았는지 땅에 송이송이 떨어져 있었다. 그것을 본 그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결국 봄은 오는구나!”

간수는 옆에서 잠시 기다리다가 이내 그를 끌어당기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는 꽃을 뒤로 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복도는 어두침침했다. 그들은 계속 걸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복도의 길은 짧게 끝났고, 이내 형장 대기실 문이 열렸다. 그곳에 들어서자 형 집행인으로 보이는 자가 말했다.

“이제 곧 형을 집행할 것이오. 그 전에 10분의 시간을 주겠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고 생각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생각하시오.”

그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나는 이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나 나의 투쟁은 사람들의 가슴에 남기를, 우리나라가 국권을 완전히 회복해 내기를, 남겨진 가족들이 독립된 고국에서 평화롭게 살기를 기도합니다. 대한독립 만세, 대한독립 만세!”

그는 기도를 하면서 4개월 전 그 날을 잠시 떠올렸다.



1909년 10월 26일, 그 날도 그는 이렇게 기도를 하고 있었다. 추밀원 의장인 이토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며칠 전 신문에서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의 재무 대신인 코코프체프와 회담을 위해, 하얼빈으로 온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는 일본이 조선을 침략한 부당성을 세계에 알릴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 치의 실수도 없도록 치밀한 암살 계획을 세우고 그 곳, 하얼빈 역 내에 있는 찻집에서 초조하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 대한 독립을 염원하는 기도를 마친 뒤 눈을 뜨고, 주머니에서 사진을 꺼내 들었다. 이토의 사진이었다. 혹시라도 목표 대상을 착각해서 다른 사람을 처단하는 일이 없도록 외우고 또 외운 얼굴이었다. 몇 번이고 그 탐욕스러운 얼굴을 노려보았다. 그 때 기차역으로 일본 헌병대가 들어왔다. 그는 사진을 접어 왼쪽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아직 이토가 도착하기 이른 시간이었지만, 일본 군인들은 벌써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한적했던 이 기차역도 언제 그랬냐는 듯 수많은 인파로 붐비기 시작했다. 오전 9시가 다 되어가자 그는 찻집에서 플랫폼을 주시했다. 그리고 오른쪽 주머니 속에 있는 브라우닝 권총을 만지작거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심장이 떨리기 시작했다. 시계를 꺼내 몇 시인지 확인했다. 이토를 태운 기차가 하얼빈 역에 도착하기 전, 채가구 역에서 잠시 멈출 것이라 생각했기에 그와 뜻을 함께한 우덕순과 조도선을 그곳에 남겨 두고 자신은 하얼빈으로 돌아온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일본군과 러시아군이 별다른 동요 없이 사열 연습하는 것으로 보아, 그들이 이토 암살에 실패했음을 직감했다. 이제 남은 것은 그가 갖고 있는 여덟 발의 총알에 달려있었다.

저 멀리서 기차의 경적 소리가 들렸다.

“올 것이 왔구나.”

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인파 속으로 들어갔다. 특별 귀빈 열차임을 나타내는 초록색 기차는 서서히 속도를 줄이다가 드디어 정차를 하였다. 일장기를 흔들며 환호하는 일본인 환영단의 만세 소리에 파묻혀 러시아 의장대의 받들어 총 경례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이어서 장중한 군악이 연주되고, 코코프체프가 이토를 맞이하러 열차로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30분 정도가 지났을까, 기차에서 중요 인물들이 내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러시아 군을 사열하는 인물들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이토로 짐작되는 사람을 보고 있었으나 아직 섣불리 움직일 단계는 아니었다. 오른쪽 주머니에서 권총을 잡고 있는 손에서는 땀이 흘렀다. 이토가 각국 사절들과 인사를 나누고, 러시아 의장대를 사열하기 시작할 즈음 그는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했다. 찻집을 뛰쳐나온 후, 플랫폼의 인파 속에 섞여 들어갔다.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다가 러시아 의장대 뒤로 바싹 붙어 섰다. 그러자 자신 쪽으로 점점 다가오는 이토가 한눈에 보였다. 충분히 가깝다고 느낀 순간, 그는 러시아 군 사이에서 장전된 총을 꺼내들었다. 그와 눈이 마주친 이토는 순간 아무것도 못하고 몸이 굳어 버렸다.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주변에 있던 군인들이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 깨닫기도 전에 다시 세 발의 총성이 들렸다.

“타앙, 타앙, 타앙!”

그 순간 이토는 몸에 엄청난 충격을 느끼며 쓰러졌다. 주변의 군인들은 그때서야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 총을 들고 있는 자를 쳐다보았다. 그는 이토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총을 쏘았다. 혹시라도 자신의 총에 맞은 사람이 이토가 아니라면 이 거사는 실패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지는 동안 러시아 병사들은 거칠게 그를 제압했다. 어느 새 그는 무릎이 꿇려 있었고, 양 팔은 군인들에게 꺾여 있었다. 그는 러시아로 외쳤다.

“코레아 우라! 코레아 우라! 코레아 우라!”

이토가 쓰러지며 마지막으로 들은 소리는 자신에게 총을 쏜 자의 외침이었다. 분노와 기쁨이 뒤섞인 듯한 한 조선인의 만세 소리.



10분이 지났다. 그는 눈을 떴다. 사형 집행인이 형을 집행하기에 앞서 그의 죄목을 말해주었다. 하지만 그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하얼빈에서 자신의 외침만이 들릴 뿐이었다. 밧줄에 매달려 낙화하는 순간까지도.

도시치는 그가 머물렀던 감옥을 청소했다. 마음 한 편이 뚫린 것 같은 공허감이 들었다. 그가 사용했던 물품들, 글들을 정리하다가 편지를 보았다. 그 조선인의 어머니가 남긴 전언을 접한 순간, 도시치의 꽉 물었던 입술이 부르르 떨렸다. 소금기 있는 물방울이 편지로 떨어지며 먹물로 쓰인 글은 한없이 번져 갔다.

그로부터 5년 후, 일본의 한 작은 마을. 그날도 어김없이 가끔 뒷산을 오르는 한 남자가 있었다. 눈이 소복소복 쌓인 뒤라서 길 다니기가 어려웠지만 그들은 사뿐사뿐 잘 나아갔다. 고불고불한 길을 지나던 중 마주한 양 갈래 길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윽고 그들의 눈앞에 작은 사당이 보였다. 아들을 마당에 남겨 둔 채, 사내는 다리에 묻은 눈을 털어내고 사당 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爲國獻身 軍人本分(위국헌신 군인본분”’이라는 글자가 위엄 있게 방을 차지하고 있었다. 향을 피우고, 절을 한 사내는 다름 아닌 지바 도시치였다. 그는 자신에게 이 글을 써 주었던 조선인과 마지막 인사를 한 뒤, 채 일 년도 안 되어 간수를 그만 두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 사당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추모를 하러 왔던 것이다. 도시치가 절을 하고 밖으로 나오자 아들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아버지, 저 꽃들은 왜 겨울에 피나요?”

그는 예전에 사당 주변에 동백을 심어 놓았던 것이 기억났다. 그래서 그 꽃들을 한 번 천천히 둘러본 뒤 대답했다.

“저것들의 이름은 동백이라고 해. 한 겨울 눈 속에서도 빨간 꽃을 치열하게 피워낸단다. 나중에 떨어져 죽을 때까지도 꽃 모양새를 온전히 간직하기 때문에 무척 아름답지.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부르기도 한단다. ‘땅 위에서 다시 피는 꽃’. 저 꽃은 계속 피어 있을 거야. 봄이 올 때까지…….”

 국방일보

[전문]영웅 공모전 수필부문 최우수상

2016. 06. 23   13:29 입력 | 2016. 06. 23   18:15 수정

[전문]영웅 공모전 수필부문 최우수상

강명숙 준위 육군특수전교육단

고공강하의 살아있는 영웅! 그 깃발 휘날리며!
강명숙 준위 육군특수전교육단




지천이던 봄꽃들이 바람에 흩날려 떨어진다. 열매를 맺을 준비를 끝낸 꽃잎들의 노래는 저 깊은 뿌리 속에서 자양분을 머금으며 또 다른 성장을 위한 시간으로 옮겨갈 것이다. 뿌리! 민족의 역사는 물론이거니와 개인의 역사 또한 뿌리 없이 시작되지 않았고, 뿌리 없이 살아오지 않았다. 대한민국 군인으로 살아가는 지금! 내 안에 흐르는 유전적 DNA는 역사 속 혈육의 조상들과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한 선열들의 정신이 녹아든 가장 아름답게 배열된 DNA로 살아가고 있어 군인 된 자신과 軍에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간다.



뿌리의 힘에서 열매가 맺히듯 군인의 뿌리는 사명감에서 시작된다. 그 중 노란 다이아몬드는 도전과 열정의 상징이자 노력의 결실이다. 군대에서의 준위 계급은 특수성과 전문성을 가지고 있으며, 계급은 강하고 빛나는 다이아몬드로 표현되고 있다.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루었다는 것에 머물지 않고 그 분야에서 창조적 정신을 갖고 지금보다 더 나은 직무와 삶을 위해 무한히 노력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내가 이 글을 쓰는 목적과 이유는 목숨을 건 사명감을 갖고 살아온 존경하고 사랑하는 선배의 헌신과 희생, 그리고 삶의 가치를 쓰고자 하며, 여성으로서, 군인으로서의 선배와 그 삶이 부여하는 의미를 찾아보고자 한다. 군복을 입은 군인의 가슴속에 있는 충성은 남·여의 이름이 따로 있지 않은 것처럼 어떤 한 분야 또는 위기에서 목숨을 건져내는 사람 또한 남·여가 따로 있을 수 없는 것이다. 함께 할 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 이 자리에 없으니 내가 부르고 싶은 이름,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가 되었으며 나는 이 모든 것을 선배라는 이름보다 더 큰 이름 영웅이라 부르고 싶다.



고공강하의 영웅은 古 이원등 상사이다. 이원등 상사는 1966년 2월 4일 공수 특전단 고공침투 낙하조장으로 고공강하 훈련 중 동료의 낙하산이 기능 고장을 일으키자 전우의 낙하산을 개방시켜주고 자신은 한강에 추락하여 순직하였다. 이원등 상사의 거룩한 전우애와 희생정신을 길이 본받기 위하여 우리의 정신 속에는 전우를 위한 무언의 헌신과 희생정신이 녹아 들어있다. 이렇게 선배 전우들의 가장 중요한 목숨 건 희생이야말로 우리의 정신적 힘이요, 가치이며, 특전사의 영원한 정신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살아있는 사람에서 영웅을 찾는 다는 것이 쉬운 게 아닌 것 같다. 그럼 살아있는 영웅은 없는 것일까? 자신을 절제하고 훈련하여 진정한 용기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내 주변의 영웅은 누구일까? 그 사람은 가장 가까이 있는 내 선배들의 모습에서 영웅임을 느끼게 되었다.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력으로 상황을 부딪쳐가며, 헤쳐나온 선배가 진정 영웅이 아닐까 싶다. 용기 있는 사람이란 이름으로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지만 진정한 용기란 “두려움 느끼지 않는 게 아니라 두려워도 계속 하는 것이 용기”라고 했다. 처음부터 이 길을 걸어가는 것이 두렵지 않은 것이 아니라 군인이란 이름으로 두려워도 넘어서려는 마음과 옆에 있는 전우들이 함께 하기에,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소중한 가치가 존재하기에 할 수 있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파랑새’라는 아동극에서 파랑새를 찾아 수없이 많은 곳을 찾아 헤매지만 결국 집안의 새장에서 파랑새를 찾게 되는 모습을 통해 우리의 행복은 먼 곳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 있다는 이야기처럼 우리는 찬란한 역사속의 영웅을 알고 있으며, 살아있는 영웅은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새로운 교육과정인 고공낙하산 포장정비 교육 관련하여 보고를 하던 중 그때 지휘관은 이런 질문을 했다. “우리는 오랜 군 생활을 통해 자기 스스로 질문을 해야 한다. 근무하는 동안 ‘이거야!’ 하는 깃발하나 가지고 근무했는지? 아니면 장기근속자로 살아왔는지?”무서운 질문이었지만 나만의 그리고 우리들만의 깃발이 있다는 답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군 생활 시작부터 롤 모델이자 멋있는 모습의 열정은 지금도 가슴 뛰게 하는 힘이 전해진다. 도전과 열정만이 전부인 것처럼 고공강하를 시작했고, 보람과 자부심의 무게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었을 때 더 커지고 단단해졌으며, 양성평등을 외치기전 체험과 희생을 통해 여군 인권 회복을 위해 앞서주신 분이다. 또한 준위라는 계급으로 장비 물자관리 및 운영을 책임지고 있었으며, 그 중 고공강하 분야의 큰 획을 그은 그녀를 고공강하의 살아있는 영웅이라 부르고 싶다.

내가 찾은 선배는 84년 준위로 임관하여 고공강하를 위해 한 길을 걸어왔다. 부대에서의 임무가 고공강하 전문가 양성을 위한 교관 그리고 고공강하 심판관, 장비 물자 정비 및 수리부속 관련 업무 등 그야말로 한 분야에서 Professional 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었다. 또한 스카이다이빙 전 종목을 평가하는 심판관 교육을 통해 국내 스카이다이빙 심판관 양성과 대회를 체계적으로 발전 정착시켰으며, 88올림픽 시범과 국내 주요 시범, 전술 강하훈련 등을 통해 특전사 위상확립과 여군의 발전을 가져왔다. 그리고 세계 군인체육대회 심판, 후배들을 위한 책 집필 등 하늘에의 삶 35년을 오직 안전한 고공침투 강하를 위해 바치신 분이다.



비행기에서 뛰어내려 자신의 날개로 날 때도 위험한 일이 많지만 교육생을 가르치는 교관으로서는 더 많은 관심과 긴장 그리고 매서운 추적이 필요하다. 때로는 교육생들의 불균형한 자세에 부딪쳐 위험한 순간도 있었지만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고 참으며 살아왔고, 낙하산을 펴고 나서 기능고장으로 제 기능을 발휘 못해 추락할 때 그 위치까지 낙하산으로 날아가 응급조치를 하는 등 수없이 많은 사연들을 창공에 새겼다. 그 열정과 사랑 그리고 아픔은 바람으로 새겨져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우리들만의 역사이자 각자에게 주어진 소명이기에 더 묻지 않아도 이 길을 걷는 이들은 그 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누가 창공에서의 간절함과 절실함을 알아줄까? 두발 튼튼히 걸어 다니는 것만으로 모든 게 묻혀 지고, 살아있음의 증거니 묻지 않아도 묻어나는 이야기는 전설처럼 고공강하자들의 정신 속으로 흐르고 있다.



하늘에서 제자들의 자세에 균형 잡힌 날개를 펼쳐주고, 지상에서 두발 딛고 서게 하는 사명이야말로 자신의 희생과 용기 없이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정성된 마음 아니면 안 되는 그런 일이기에 그동안 일궈내고 어려움을 헤쳐 나온 군인정신이야 말로 고공 강하자 뿐만 아니라 군인의 소명을 수행하는 자들의 표상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하늘에서 그들의 목숨을 지키고 살리기 위해 헌신하는 가운데 지금까지 세상을 떠난 32명의 전우들이 그렇게 살고 싶어 하던 간절한 바램이 있었지만 세상을 떠났다. 고공낙하산은 본인이 직접 포장하기에 안전사고가 발생해도 자신이 책임을 지는 것이고, 떠난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고 가는 경우를 두 눈으로 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나도 살고 모든 고공 강하자들을 살리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그것은 초심으로 돌아가 낙하산 포장 교육을 잘 시키는 것이었고, 일정한 고도가 되어 스스로 낙하산을 펴지 못해도 자동적으로 펼쳐질 수 있는 자동 산개기를 부착하고 검사하여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시대가 지날수록 낙하산과 장비는 좋은 것을 사용하지만 그것을 교육시키고 점검하는 것을 소홀히 한다면 같은 일을 반복하는 비극을 초래하기에 그동안 배우고 체험했던 경험을 나눠줘야 한다는 소원을 가지고 있을 때 고공낙하산정비사 교관 양성의 기회가 있었다. 그때 교관으로 선발되어 후배 양성을 위한 기회를 갖고 함께 한 김춘호 준위와 4명의 교관이 양성되었으며, 그 후 3년간 그들의 열정은 사람을 살리기 위한 소명으로 이어졌고, 134명의 자격 보유자들을 양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4년 특수전교육단에서 고공낙하산정비사 양성과정에 교관으로 파견되어 예비낙하산 포장과 장비장착 및 검사를 위해 혼신의 교육을 하였으며, 그 결과 이제는 정규과정으로 자리매김하여 후배 교관들이 확실하고 정확한 포장방법을 교육하고 있다.



예비낙하산은 주 낙하산이 펴지지 않았을 시 개방하는 것으로 0.1초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으며, 어떠한 상황이 되더라도 즉시 개방되어야 생명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자동 산개기를 검사하고 부착하여 예비낙하산을 전문적으로 포장해주는 전문가를 양성하게 되었다. 그 후 위험한 상황 발생 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낙하산이 펴지고 스스로 펴지 못했을 경우에는 자동적으로 펴지는 안전을 보장받는 결과로 이어졌다.



때로는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하면 되는데 왜 다른 사람에게 예비낙하산 포장 부담을 주는지 알 수 없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사람을 살리기 위해 그리고 이 일을 체계적으로 유지해서 앞으로 인명사고가 안 일어나도록 하는 게 이 길을 걷는 이들의 소명이니 행동으로 실천하려면 그 어떤 비난의 목소리를 들어도 목적을 향해 묵묵히 갈 수 밖에 없었다. 그 길은 사람을 살리고, 안전사고를 사전에 예방하는 최선의 길이기에 주어진 소명을 수행하는 자로서의 역할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고통의 시간을 통과해 이제는 예비낙하산은 전문적인 자격이 있는 자에 한하여 포장하고 장비 검사가 되어 장착되어야 하며, 실명제로 포장되어 어느 누가 사용하더라도 신뢰와 안전이 보장되는 상태에서 사용할 수 있게 체계적으로 정착되었다.

공중에서 시속 200km의 속도로 하강하다가 낙하산을 개방하였을 시 낙하산이 정확히 펴지지 않아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 반복 숙달하던 동작이 무의식적으로 행해지기도 하지만, 순간 공황이 발생되거나 뇌에서의 기억적 거짓이 발생되기도 한다. 일반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지만 직접 경험해본 경험자로서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경험해 보았고, 살아있기 때문에 당당하게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고공강하를 하는 동안 위급한 상황을 겪게 되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될 정도로 힘든 정신적 고통을 겪는다. 그러한 고통을 겪고 그에 긍정적 의미를 부여하고 일어섰을 때 외상 후 성장이 다가온다. 그래서 또 비행기를 타고 낙하산을 펼칠 용기가 생기고, 날아가 자세를 잡아주며, 낙하산을 펴주는 등 일련의 과정을 반복하며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였다. 그렇지만 외상 후 스트레스에 대한 정신적 건강을 보완하거나 심리적 무거움을 완화시켜주는 제도는 없는 실정이다. 혼자서 또는 조직 내에서 함께 겪은 사람들끼리 공감해주는 것 외에는 다르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진주를 품은 조개처럼 살면서 그동안의 경험과 노하우는 고공강하 분야에 큰 획을 그을 수 있는 일을 한 것이다. 외국의 민간단체나 군 관련 기관에서는 전문 자격이 있는 자에 한하여 예비낙하산이 포장되어지며, 실명제로 정착되어 있다. 이렇게 제도적으로 정착되어 어떠한 상황이 되더라도 고공 강하자들은 살아날 수 있는 것이며, 포장자들은 자신과 동료의 목숨을 지킬 수 있도록 헌신할 수 있는 일이 되었다. 이런 전문적 제도와 전문지식은 생명을 지키고 세계를 향해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지금까지 일어난 사고 중 공중 충돌로 팔을 다쳐서 낙하산을 못 편 사람은 최저 고도에서 자동장치에 의해 예비낙하산이 펴진 사람, 개방 손잡이가 잡히지 않아 자동장치에 의해 예비낙하산이 펴진 사람,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한 단계만 실시하고 공황상태에서 잊어버려 자동장치가 작동되어서 예비낙하산이 펼쳐진 사람등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위급한 상황을 맞이했지만 예비낙하산 포장이 잘되었고 자동 산개장치 검사 및 관리가 잘 되어있었기 때문에 안전사고 없이 살아 숨 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스스로든 자동 산개기에 의해서든 살아있고 그 일을 지금도 하고 있다. 이 모든 노력의 밑바닥에 그 선배의 노력과 열정, 그리고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렇게 위험한 일을 하면서도 자긍심과 자신감을 갖고 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은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하는 전우들의 사랑이 함께 하기에 이겨낼 수 있는 거라 생각한다.



이렇듯 준위라는 계급은 자기분야의 전문성을 갖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 환골탈퇴(換骨脫退)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계급이기도 하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연구하고 업무 발전에 접목하여야 하며, 그들이 겪은 공중에서의 위험에 대한 안전한 대처와 정신적 자산은 후배들에게 그대로 전달되고, 그 것을 밑바탕으로 후배들은 더 크게 성장하여 내가 걸어가는 길을 만들어준 선배에 대한 존중과 사랑을 가슴에서 가슴으로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사고의 원인은 나사 하나에서 시작한다는 말이 있다. 아폴로 13호 우주선 폭발, 타이타닉호 침몰도 나사 하나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공중에서 낙하산이 펼쳐질 때 정품이 아니면 사고로 연결되는 것을 우리는 과거의 사건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수리부속 하나라도 정품이 아니면 안 되는 것이고, 정확히 알지 못하면 교체는 커녕 어디에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 것인지 근본적인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선배의 경험을 통한 전문성과 노력이 만들어낸 열정은 이런 과오를 일으키지 않도록 사전에 차단하는 역할을 하였으며, 우리는 그 덕분에 마음 놓고 하늘에서 땅으로 안전사고 없이 잘 날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나사 하나의 교훈은 안전을 강조하는 현장에서는 소홀히 할 수 없는 것 중의 하나일뿐더러 세심한 관심과 관찰은 그 무엇으로도 환산 할 수 없는 것이다. 자기 삶에서도 작은 것 하나로 인해 삶의 방향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작은 정성, 작은 관심으로 꾸준히 이어져 온 것이 훗날 큰일을 만들어내고 큰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듯이, 작은 것 하나라도 정성껏 다해야 함은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군인으로 갖추어야 하는 최고의 가치가 무엇인가? 그것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는 것으로서 오직 한마음으로 충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군인의 명예는 희생과 봉사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군인으로서 직무를 수행하면서 전우의 생명을 보장하기 위한 무조건적인 헌신과 행동적 노력은 다이아몬드보다도 더 강한 충정의 마음으로만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창공에서 날개를 펴는 모든 이의 안전을 위해 땀과 눈물 그리고 노력으로 만들어온 고공강하의 안전탑은 오직 전우와 부대의 영광 이외에 그 무엇도 취하지 않은 결과이다.

푸른 제복을 벗은 자와 입고 있는 자 우리의 마음은 하나이고 빛나는 두 눈에 하늘 가득 담아도 저 하늘을 비행(飛行)하고 있을 후배들을 위한 염원도 “그대 오직 살아서 임무 수행하기를...” 이 한마디라 여긴다.

“고공강하의 살아있는 영웅”이란 이름으로 지금도 변함없지만 국가와 군을 사랑하는 서포터즈로서 영원히 응원할 거라 믿으며,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정신을 그대로 실천한 선배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바람 속에 휘날리는 큰 깃발에 담아 힘차게 펄럭일 것이다.



예비역 준위 전명순, 그리고 함께 걸어온 선·후배님들.

고공강하의 안전을 위해 걸어온 당신들을 존경하며, 그 정신 이어 받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안전한 훈련되도록 성심을 다하겠습니다.

 국방일보
 

[전문]영웅 공모전 시부문 최우수상

 

시들지 않는 꽃

 

기사사진과 설명
김 태 하 중위 육군25사단

김 태 하 중위 육군25사단


 

 


하늘이 열린 다음 날
떨어지는 석류를 감싸버린 십오만 촉광은
한 송이 무궁화로 하늘에서 피어난다


찰나에 산화된 빛은
훈련병의 눈동자에 각인되어
무거운 침묵만을 부른다


자책 마라 어린 실수야
살아남은 너는 죽은 자의 명예이다


잊지 마라 전투화야
망설임 없던 그의 용기를


슬퍼 마라 나의 조국아
그의 무궁화는 시들지 않는다


월남에 뿌리 뻗지 못한 무궁화는
오늘날 작은 금강석 속에 피어난다

'영웅' 공모전을 마치며

젊음 패기로 똘똘 뭉친 장병이 '진정한 보배'

 

 

기사사진과 설명
박 창 재 월간저널 ‘영웅’ 발행인

박 창 재 월간저널 ‘영웅’ 발행인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 국방일보, 도서출판 꼬레아우라가 주관하고, 사단법인 안중근의사숭모회/안중근의사기념관이 후원한 “국군 장병 대상 애국심 고취, 국가관 확립을 위한 ‘영웅을 찾습니다’” 공모전에 참여해 입선한 수상자 여러분 모두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또한 입상은 하지 않았지만 뜨거운 애국심으로 열정과 정성을 다해 작품을 보내 주신 국군 장병들에게도 깊은 경의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번 공모전은 “우리 젊은이들이 군 생활을 하는 동안 애국심을 고취하고 투철한 국가관을 정립해 가정과 사회로 복귀한다면, 우리나라의 안보는 물론이고 국가 경쟁력이 크게 강화될 것”이라는 취지에서 개최하게 됐습니다. 이는 곧 정신세계가 올바른 사람은 학업, 일상생활, 직장 근무 등 모든 면에서 집중력과 효율성 제고, 생산성 증대를 가져오고, 그 결과 또한 엄청나게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일부에서는 “요즘 젊은이들이 걱정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반대의 견해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 젊은이들 아주 멋있고 훌륭하며, 자랑스럽습니다.”

이번 공모전에는 예상보다 훨씬 많은 1553편의 작품이 접수됐는데, 작품 하나하나를 꼼꼼히 읽어 보면서 정말 대한민국 장래가 밝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작품마다 장병들의 열정과 패기가 고스란히 느껴져 나도 모르게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응모한 모든 국군 장병에게 상을 주고 싶었습니다. 정말 우리 국군 장병들, 능력 있고 훌륭합니다.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살려 다양한 분야, 다양한 위치에서 훌륭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젊음, 어디에든 도전할 수 있습니다. 패기, 무엇이든 극복하고 이루어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젊음과 패기로 똘똘 뭉친 신세대 장병들이야말로 우리나라의 진정한 보배입니다. 대한민국을 세계 정상에 우뚝 세울 지금의 젊은이들을 저는 굳게 믿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창조적이고 유연한 사고에 무한한 박수를 보냅니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군 장병 여러분! 오늘도 건강하고 보람찬 군 복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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