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 수상작 소개
로프공이 그린 ‘로프공 만화’ 이보다 리얼할 순 없다
[제1174호] 2014.11.12 09:30
김강일 씨는 로프 일을 하며 그린 로프공 만화 <적벽에 달리다>로 제4회 일요신문 만화공모전 대상을 차지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금상 '레슬러들' 윤태준 “마지막으로 던진 낚시로 대어 잡아” “웹툰은 안 하느냐, 출판만화 망했는데 왜하느냐, 게임이 대세인데 게임을 해야지 등등. 주변의 말에 스트레스 좀 받았어요. 맞는 말인 듯싶기도 하고…. 한참을 고민하다 출판 쪽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 일요신문 만화공모전에 응모했는데 좋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비인기 종목이 돼 버린 프로레슬러들의 고군분투를 소재로 한 <레슬러들>의 주인공과 닮았다. “금상 수상 소식에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고 집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다”며 수줍게 웃는 그의 얼굴과, 미련할 정도로 순수한 마음으로 현실과 부딪히며 소중한 것을 지키려는 만화 속 캐릭터도 그렇다. “오랫동안 작가 준비를 많이 해왔지만 사실 지난해 결혼하면서 기가 꺾였어요. 하지만 일요신문 만화공모전을 통해 제가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는 걸 확인했고, 덕분에 큰 힘을 얻었습니다. 앞으로 편안히 읽을 수 있으면서도, 대중성과 주제의식 중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는 만화를 그리도록 계속 노력하면서 정진하겠습니다.” 그와 함께, <일요신문>과 함께, 출판만화의 부활을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
우수상 '벌레는 찌르찌르' 전재운 (글)·박준규 (그림) “제 처지가 벌레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전재운 작가 “제 얘기 하고 싶었습니다. 기자, 극작가, 만화 스토리 작가를 전전했지만 다 잘 안 풀렸어요. 서울에서 일산으로, 지난해 7월엔 파주 원룸까지 왔습니다. 생활은 해야 하는 데 빚은 쌓이고, 나이는 마흔이 넘어가고…. 제가 스스로 벌레 같은 놈아,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그래, 여기가 내 유배지다. 다시 한 번 해보자며 스토리를 발굴했습니다.” ‘벌레 기업’ 스토리를 완성한 그는 포털 만화 코너를 살피며 벌레를 살려줄 만화가를 물색, 동갑인 박준규 작가와 의기투합했다. 우수상 수상. 그러나 그는 아직 배가 고프다. “저는 저 자신이 젊고 어리다고 생각합니다. 웹툰 쪽으로 진출할 거예요. 현재 웹툰의 주축인 10대 후반 20대 초반 작가들의 감각을 이길 수는 없겠죠. 하지만 제가 한 실패 경험, 제 나이대가 공감할 수 있는 현실적인 얘기를 할 겁니다.” |
우수상 '서른 즈음에' 황기홍 “2%의 아쉬움은 연재로 뒤집을 것” 게다가 당시 1등인 금상 수상자 성주삼 작가(현 <칼의 땅> 연재 중)와 같은 화실에 있으며 성 작가의 만화공모전 응모 계기가 됐다. 그가 올해 다시 <서른 즈음에>로 응모, 우수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기대 못 했는데 1차 당선 네 작품에 포함돼 좋았죠. 대상 서바이벌 준비할 때는 괜찮다 했는데 해놓고 보니까 아쉬워요. 임팩트 있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제가 손이 빨라요. 누구보다 잘할 수 있는 스토리고요. 연재는 무리 없을 겁니다.” 그 아쉬움을 연재로 뒤집을 기세다. 이번 만화공모전 심사 총평에서처럼 ‘심사위원들을 보란 듯이 비웃을 만큼 기개 넘치는 원고’가 탄생할지 주목된다. |
최종심 총평 '적벽에 달리다' 이야기 구성력 탁월 지난 10월 31일, 제4회 일요신문 만화공모전의 본선 2차 심사를 진행했습니다. 이번 2차에서는 9월 17일에 진행한 1차 심사 통과작 네 편이 추가 원고를 통해 최종 순위를 결정지었는데요, 네 분 모두 짧은 시간 안에 적잖은 분량을 작업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만화작가 김수용, 이충호, 이현세 씨와 만화칼럼니스트 서찬휘 씨(왼쪽부터)가 10월 31일 오전 일요신문 편집국에서 만화공모전 심사를 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어느 심사가 그렇지 않겠습니까만 남의 창작물에 순위를 반드시 매겨야 한다는 일과 그 결과를 발표한다는 일은 특히나 고역스럽습니다. 올 일요신문 만화 공모전에서 1차 심사는 수상권에 오를 네 작품을 뽑는 일이었기에 그나마 부담이 덜했는데, 2차 심사는 그 가운데에서 순위가 갈립니다. 심사위원 네 사람은 이에 무거운 책임감을 안고 심사에 임했습니다. 그리하여 저희가 선정한 최종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대상 <적벽에 달리다>, 금상 <레슬러들>, 우수상 <벌레는 찌르찌르>, <서른 즈음에>. 대상으로 뽑힌 <적벽에 달리다>는 고층 건물 유리창을 닦는 ‘로프공’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1차 심사에서도 그래픽의 밀도 면에서 월등한 평가를 받은 작품입니다. 추가 원고는 “다음을 기대하게 하는 긴장감과 이야기 구성력을 보여주었다”라는 평가와 함께 <일요신문>이라는 매체의 성격에 어울리는 극화를 보여줄 수 있으리란 기대를 받았습니다. 다만 심사위원들은 좀 더 자기만의 스타일을 갖출 것을 주문했습니다. 프로레슬링의 대중적 인지도가 사라져 가는 우리나라에서 레슬러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고군분투를 다룬 <레슬러들>은 “일단 재미있다”, “무난하고 안정적”이라는 반응을 얻으며 <적벽에 달리다>와 끝까지 경합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극적이고 강렬하게 전달하는 힘이 다소 아쉽다는 평가를 받으며 금상으로 뽑혔습니다. 우수상에 오른 <벌레는 찌르찌르>와 <서른 즈음에>는 앞서 두 작품에 비해 독자들을 안정적으로 몰입시킬 수 있는 부분에서 다소 밀렸습니다. 어머니를 죽이고 태어났다는 이유로 ‘벌레(곤)’란 이름을 받았던 주인공이 아버지의 모든 것이었고 지금은 빼앗긴 회사를 되찾겠다고 나서는 <벌레는 찌르찌르>가 기업 드라마로 풀어나갈 수 있을 법한 규모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면, <서른 즈음에>는 2000년대에 서른 즈음을 지나던 청춘들의 궁상맞으면서도 치열한 일상을 담아 1차에서 지면과 어울릴 듯하다는 평가를 받았는데요, 2차에서는 심사위원들 대부분 “눈여겨 볼 만한 작품들이었다”라고 말하면서도 이들 두 작품에 몰입과 공감을 끌어내는 부분이 다소 부족함을 지적했습니다. 이 한 달여는 누가 더 지면 연재에 좀 더 잘 어울리는지를 가리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려운 시간 감내하며 작업에 임해주신 네 분께 고생하셨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이제는 일요신문사와 협의에 따라 공모전이 아니라 신문지면 연재라는 ‘실전’이 다가올 텐데요, 공모전이라는 형태를 통했을 뿐, 네 분은 연재를 하는 시점에서 동일한 출발선에 선 것과 다름없습니다. 최종 심사결과 상위인 분들은 그 순위만큼의 질 좋은 원고를, 하위인 분들은 저희 심사위원들을 보란 듯이 비웃을 만큼 기개 넘치는 원고를 한 사람씩의 작가로서 만들어 주시길 기대해 마지않습니다. 감사합니다. 심사위원장 만화가 이현세 심사위원 만화가 이충호·김수용·만화 칼럼니스트 서찬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