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문협

http://cafe.daum.net/gjmh1962 

제28회 신라문학대상 공모 요강

신라 천년의 문화예술을 계승하고 역량 있는 작가를 발굴하여 새로운 민족문학의 진로를 개척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신라문학대상을 현상 공모하오니 많은 응모 바랍니다.

1. 응모기간 : 2016. 10. 1〜10. 31 (1개월간)

2. 부 문 : 가) 시 ( 5편 )

나) 시조( 5편 )

다) 소설( 단편 1편)

라) 수필( 3편 )

3. 상 금 : 가) 시 600만원 및 상패(당선작 1편)

나) 시조 500만원 및 상패(당선작 1편)

다) 소설 1,000만원 및 상패(당선작 1편)

라) 수필 500만원 및 상패(당선작 1편)

4. 응모자격 : 대상 응모는 등단하지 않은 사람이어야 하며, 등단한 사람은 등단 장르 이외 타 장르라도 응모할 수 없다. (단, 등단의 기준은 한국문협 규정에 따른다.)

5. 응모 요령

가) 응모 작품은 과거에 발표되었거나 현상 공모된 바 없는 순수한 창작이어야 함.

나) 응모 원고 별지에 작가의 주소, 성명(필명일 경우 본명 표기), 전화번호를 명기하고 겉봉에 「신라문학대상응모작품 00부문 0편」이라고 반드시 주서 할 것.

6. 당선자 발표 및 기타

가) 2016년 12월 초순에 당선자에게 개별 통지함.

나) 당선작은 『월간문학』1월호나 2월호에 발표하고, 한국문인협회가 인정하는 기성문인으로 대우함.

다) 당선작에 대한 저작권은 당선작 발표일로부터 5년간 신라문학대상운영위원회가 보유하고 그 이후는 작가에게 귀속됨.

(단) 신라문학대상 수상 작품집에는 수록 할 수 있다.

라) 응모작품 반환의 책임은 본회에서 지지 아니함.

7. 원고 접수 및 연락처 (당일 소인 유효)

접수처 (우) 38089 경북 경주시 알천북로 1 (경주예술의전당 B1)

한국문인협회 경주지부 사무국 ☎ (054)772-1962 / 010-2502-2740

신라문학대상운영위원회

사단법인 한국문인협회

 

<신라문학대상>은 신라문화선양 사업의 일환으로 개최되며, 문학애호가 및 문학에 뜻을 둔 문학도들의 등단 지름길입니다.

 

 제27회 신라문학대상 수상자, 시-김미순, 시조-백윤석, 소설-서형숙, 수필-박경혜 당선

선애경 기자 / violetta22@naver.com1222호입력 : 2015년 12월 24일(목) 16:10 
 
신라문학대상운영위원회가 주최하고 문협 경주시지부(회장 김명석)가 주관하는 제27회 신라문학대상작이 발표됐다. 시 부문에 김미순 당선자(부산)는 ‘감은사지에서’로 당선의 영예를 안았다. 시조부문에서는 백윤석(서울)의 ‘스팸메일’이 , 소설부문에서는 서형숙(경주시 현곡)의 ‘칠불암’이, 수필부문에서는 박경혜(대구)의 ‘씨오쟁이’가 각각 당선됐다.

이번 수상작과 관련해 시부문 심사평을 맡은 문효치, 강희근, 정민호 심사위원은 ‘전설속의 싸인 운무(雲霧)같은 시’라고 총평을 하면서 “‘감은사지에서’는 우선 시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시적인 뿌리를 역사적 사실에 두고 있었다. 역사적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시를 풀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는 것에 심사위원들이 의견을 같이했다. 너무 완벽하지 않다는 것도 장점이다. 더구나 신라문학대상은 신인을 등단시키는 관문이기에 더욱 그렇다. ‘은밀한 내간체는 설화가 되고’에서 이 시인의 능력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고 평했다.

ⓒ (주)경주신문사
김미순 당선자는 깨어 있는 현실 속에서 시로를 열겠다면서 “아직도 신라의 혼은 살아 감은사지 동, 서탑이 내 속에 박히고 만파식적이 들리듯 금당 올라가는 계단 태극문양이 오늘따라 크게 다가온다. 어깨가 더 무거워지고 있지만 힘을 빼고 물결 흐르는 대로 자연과 공유하며 시어에 전염하는 시인으로 남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시조부문 심사평을 맡은 한분순, 이정환 심사위원은 심사평에서 “스팸메일은 첨단 인터넷 시대를 급박하게 살아가며 겪고 있는 일상의 애환을 밀도높게 노래하고 있다. 구절구절이 실감실정이다. 시종 잔잔한 어조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를 명징하게 형상화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소재로 볼 때 서정성과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육화하는 과정에서 밀도높게 실존적 자아를 투영하고 있다. 3장 6구 12마디는 유기적 체계로서 다채로운 변용과 변주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시조의 전개 유형은 시인의 역량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스팸메일은 특별히 주목되는 작품이다. 네 수 한 편이면서 두 수씩 묶은 점도 효과적이었다. 이 시인은 오랫동안 절차탁마에 힘쓴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 (주)경주신문사
백윤석 당선자는 소감에서 “절필했던 5년과 칠레 생활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신춘문예에 도전했으나 최종심 탈락이라는 고배를 마시고 절치부심했다. 꼬박 1년을 신작과 초고 다듬기로 보내다가 27회 신라문학대상에 도전했다. 이번 기회를 더 열심히 쓰라는 대선배님들의 채찍으로 알고 짧은 글이라도 헛되이 놓지 않고 치열하게 우리 가락을 노래하겠다”고 밝혔다.

소설부문 심사평을 맡은 이광복, 김선주 심사위원은 심사평에서 “이번 신라문학대상 응모작들은 27회를 이어온 역사를 반영이라도 하듯이 백여 편이 넘는 열기를 보여 주었다. ‘칠불암’은 한 가족이 소박하게 살아가던 중, 남편이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고 10여 년 동안을 간호하면서 살아가는 여자의 삶을 잔잔하고 차분하게 그렸다. 문장은 간결하고 깔끔했으며 칠불암에서 제를 지내는 삶의 모습이 슬프고 애잔하하며 이야기를 끌고 가는 솜씨가 치밀하며 격조가 높았다”고 평했다.

ⓒ (주)경주신문사
서형숙 당선자는 “삶이 시지프스의 바위굴리기 같은 것이라 하더라도 그 바위도 언젠가는 닳아지리라 생각한다. 비록 자주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지만 그럴수록 더 쉽게 놓지 못하는 아득한 무엇을 향해 살아가는 우리 모습을 이야기해 보고 싶었다. 부족한 글 뽑아주셔서 계속 나아가 보라고 용기를 주시는 심사위원 여러분께 감사 드릴뿐이다”고 당선 소감을 전했다.

수필 부문 심사평을 맡은 지연희, 장호병 심사위원은 ‘참신한 비유와 형상화’라며 총평했다. “응모된 많은 작품들이 사실의 기록에 머물러 있었다. 주제를 향한 긴장감이 끝까지 유지되지 못한 작품, 제목과 거리가 먼 작품, 새로움이 결여된 작품 등을 제외하고 ‘씨오쟁이’를 최우수작으로 선정하는데 심사자들의 의견이 일치했다. 30년 만에 들른 고향집에서 보게 된 씨오쟁이와 대를 이을 아들을 얻기 위한 어머니의 지난한 삶속 핏빛 씨오쟁이. 참신한 비유, 탄탄한 긴장감, 그리고 의미화와 형상화를 높이 평가했다”고 전했다.

ⓒ (주)경주신문사
박경혜 당선자는 “ 수필이라는 곳에 발을 들여놓은 지 삼 년여가 되어간다. 곁에서 잘한다 잘한다 박수를 쳐주니 멋모르고 마구 썼다. 하지만 어느 순간 글쓰기에 자신이 없어졌다. 수필이라는 장르에 더는 다가서지 못하고 멀찍이 떨어져 머뭇거리기만 했다. 그런데 신라문학상이라는 큰 선물이 제게는 수필로 한 걸음 다가서는 디딤돌이 되리라 확신한다. 게으름 피우지 말고, 열심히 글 쓰라는 엄중한 말씀이라 마음에 새겨두겠다”며 당선소감을 전했다.

제27회 신라문학대상 시상식 및 경주문협의 밤은 오는 26일 오후 4시부터 The-k호텔(구 경주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리며 당선자에게는 시부문 600만원, 시조와 수필 500만원, 소설 1000만원의 시상금과 상패가 수여된다. 당선작은 ‘월간문학’2월호에 발표하고 한국문인협회가 인정하는 기성문인으로 대우한다.

선애경 기자  violetta22@naver.com


 

** 신라문학대상 수상작(제20회~제25회)

** 씨오쟁이(제27회 신라문학대상 수상작) - 박경혜(수필)

** 2013년 제25회 신라문학대상 수상작/메주각시(수필)

** 매생이/박모니카- 신라문학 대상 수상작(수필)


 

제28회 신라문학대상 당선자 발표(2016. 12. 2)

부문

성명

주소

당선작

심사위원

윤상호

고령

사문진 피아노

문효치,서영수,양왕용

시조

채종국

광주

신문, 그 행간을 읽다

이근배,박기섭

수필

신정애

포항

풀매

유한근, 허상문

소설

이수조

인천

다투(dhatu)

이광복,황충상,박덕규


제28회 신라문학대상 시 당선작품 및 심사평 당선소감-윤상호

사문진 피아노

주막집에 걸친 청사초롱이 
사풍(沙風)에 밀려 비틀거리고
홀로 떠있는 이방인의 불빛이
낙동강에 소슬히 아른거린다.  

삐꺼덕 삐꺼덕

물살에 젖은 
여인의 흰 소매 자락을 타고서 
사문진(沙門津)의 복사꽃이 
발갛게 점점 타들어가고,

삐꺼덕 삐꺼덕

밤이슬에 젖은 
검은 속눈썹을 타고서 
청옥(靑玉)속에 고인 먼 별찌들이
가물가물 흔들리는 돛대 등에 걸려
차마 저 산을 타고 넘지 못한다.

구름이 달을 밀치니,
()쪼개진 흑칠한 절벽그림자 틈에 
묻은 입술연지를 흰 소매 자락으로 훔치자
기이한 울음이 뱃머리를 잡고 축 늘어져 
물길을 반()걸음씩 총총 뒤따라오고,

달빛이 물결에 요동을 치니,
허공을 떠돌던 하얀 도깨비불이 
검은 속눈썹 다섯가락 언저리에 
글썽글썽 온()통 매달려서 
잽싸게 아래위를 건너 타며 널을 뛴다.   

눈물이 달을 적시니,
절벽 높은 자리에 무릎 꿇은 음()산한 기운이
구름 낀 하늘을 향해 열 손가락을 모으자
끝없이 떨어지는 빗방울이 
도도한 역사의 강에 스며들어 흘러간다.

 


시 부문 심사평

당선작 <사문진의 피아노>는 이야기가 담겨 있는 시다. 대구시 달성군의 사문진 나릇터는 낙동강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나룻터이다. 그리고 그 나룻터를 통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피아노가 반입되었다. 이러한 것을 기념하여 최근에 달성군은 사문진 나루를 복원하여 축제를 하고 있다. 당선작을 쓴 이는 이러한 축제를 지극히 서정화 하고 있다. 말하자면 서사로 떨어진 위험이 있는 제재를 서정화 혹은 감각화에 성공하고 있다.

사문진(沙門津)이라는 지명에서 연상되는 모래의 상징성도 잘 살리고 있다. 당선작을 보내온 이의 다른 작품들도 서정성과 형상화에 성공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한국시단에 기여할 시인으로 등장할 것이라는 예감을 가질 수 있었다.

끝까지 당선작과 겨룬 <나비>를 보내온 이의 역량도 무시할 수 없었으나, 감동을 주는 면에서 당선작에 비해 다소 떨어졌다. <입덧하는 봄> 역시 감각화하는 솜씨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외 <반가사유> <가을비> 역시 수준급이었다.

시의 경우 당선작으로 겨룰 작품이 많았다는 점에서 심사위원들은 보람을 느꼈다.

심사위원 : 문효치, 서영수, 양왕용(글)



 당선 소감    
                                                                     윤상호


  우선 초야에 묻힐 수도 있었던 시를 세상에 드러내어 기쁨을 주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어릴 적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 라는 시를 암송하면서 혼자 텅 빈 거리를 걷곤 했었는데 이처럼 마음에 와 닿는 한 편의 시가 현재까지도 지치고 힘들 때 저의 가슴속에 천둥처럼 울리고 있다는 게 너무 설레고 행복합니다. 바쁜 생활에 어느 듯 흘러가버린 세월 앞에 멈춰, 문득 문득 가슴속에 차오르는 기운을 외면할 수 없어서 몇 해 전부터 시를 쓰고 시론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화답인지 오늘과 같은 기쁨을 주셔서 거듭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사문진 피아노라는 시는 1902년 5월 구한말에 금호강을 거쳐 낙동강에 위치한 사문진 나룻터를 통해서 최초로 서양에서 대구로 피아노가 들어오게 됩니다. 피아노를 신랑을 만나러오는 신부로 의인화하여 사문진 나룻터에 녹아있는 정서적인 배경과 신부가 느끼는 감성을 피아노의 선율로 그려나갔습니다. 즉 시 속에 담긴 한 폭의 동양화에서 울려 나오는 피아노 소리가 들리게 하려고 각고의 노력을 다하였습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내면의 순수한 소리가 서로 어우러져 이미 화석이 되어버린 우리의 정서에 작으나마 울림이 되었으면 합니다. 더하여 이 시를 통해 각 지방이나 지역에 담긴 아름다운 정서와 역사를 음미하면서 지친 삶의 고단함과 외로움을 잠시 잊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어릴 적 이곳에서 아버지를 따라 나룻배를 타고 건너던 그 시절 동심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캄캄하고 적막한 강물에 떠있는 나룻배에서 들리는 노 젓는 물소리, 심장을 조이는 들짐승들이 우는 소리에 꽉 잡은 아버지의 옷자락, 그리고 저 멀리 절벽아래 하얀 도깨비불이 춤을 추는 모습을. 이제는 그리워만 해야 하는 그분을 떠올리며 그때 함께 했던 아름다운 추억과 정서가 이러한 사문진 피아노라는 시를 쓰게 된 동력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약력:  출생지- 대구시. 현거주지- 경북 고령군.
         현재 한국방송통신대학 중어 중문과 3학년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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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회 신라문학대상 시조 당선작품 및 심사평 당선소감-채종국

 

신문, 그 행간을 읽다

 

 

채 종 국

 

 

 

태생조차 잊은 채로 두 번째 생을 산다

 

들끓는 설레발에 제 슬픔은 숨겨 놓고

 

윤전기 돌리는 소리, 배를 깔고 눕는다

 

 

잉크 냄새 채 안 가신 행간 사이 톺다보면

 

내 들보 간데 없고 남의 티끌 부풀리다

 

구겨진 종잇장 뒤로 더 구겨진 세상사

 

 

곱사등이 굽은 허리 아침마다 곧추 편다

 

단 한 번 눈요기 끝 구석 저편 나앉아도

 

부릅뜬 형형한 눈으로,

 

먹잇감을 찾는다

 

 

 

 

 

 

 

 

<신라문학대상 심사평-시조부문>

시조의 연원을 캐다 보면 신랏적 향가에 닿는다. 시조 형식은 애당초 향가에서 와서 여요를 거쳐 완성되었다. 향가는 신라의 노래인 동시에, 시조의 모태인 것이다. 신라 천년의 문화예술을 계승하는 신라문학대상에서 시조가 어엿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생각을 전제로 응모작들을 한 편 한 편 짚어갔다. 꼲고 가리는 숙고 끝에 「신문, 그 행간을 읽다」를 맨 앞자리에 올린다. 이 작품은 신선한 발상과 정제된 호흡, 게다가 농익은 결구가 돋보인다. 죽은 나무가 종이로 거듭나고, 그 “두 번째 생”이 윤전기 아래 “배를 깔고 눕는다.” 신문은 시대를 가늠하는 첨단의 감성대다. 아침마다 “형형한 눈으로” “구겨진 종잇장 뒤로 더 구겨진 세상”의 구석을 살핀다. 신문의 행간읽기는 곧 세상읽기다. “잉크 냄새 채 안 가신 행간”에서 나와 타자, 세상과 존재의 불화에 틈입하는 것이다. 전편에 걸친 활유의 상상력이 이채롭다.

'신라'를 앞세운 상의 공모취지에 매몰되다 보면 자칫 소재주의에 빠지기 쉽다. 서라벌, 석굴암, 첨성대, 토함산 같은 시어의 빈발이 그 증좌다. 섣부른 경향성은 작위의 실밥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이 경우 현실 언어의 진솔한 모습을 좇느니만 같지 못하다. 그 하나의 예증이 바로 이번 당선작이다.

「하피첩」「늙은 절집」「바탕체로 신라를 읽다」「쿠엔 씨의 하루」가 마지막까지 남아 앞뒤를 다투었다. 당선자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내며, 모든 응모자의 분발을 빈다. <심사위원 : 이근배·박기섭(글)>

 

 

당선소감

 

여느 해 보다도 업무에 바쁜 12월 기나긴 피로를 풀어주는 뜻하지 못한

환한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머릿 속에서 늘 시조를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갈팡질팡하는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3장 6구 12음보 위에

우리 가락을 넣는 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신라문학대상의 당선 통보 소식은

제게는 시조를 쓰는데 있어서 크나 큰 전환점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미처 준비되지도 못한 미흡한 작품을 뽑아

주신 두 분 심사위원 선생님께 큰 절을 올립니다

앞으로 더 시조의 길로 매진하라는 격려의 말씀으로

새겨 듣고 우리 시조의 울림을 노래 하도록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리고 자리를 마련해 주시고 노고를 마다하지 않으신

신라문학대상 운영위원회 선생님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바쁜 일상 중에 글을 쓴다고 놀아 주지도

못하고 늘 미안한 마음만 가지고 있는 여덟 살 아들

그리고 제가 일과 글 속에서 일 년 열두 달 헤매고 있을 때

묵묵히 지켜 보아주고 위로와 따뜻한 말을 건네주던

아내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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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회 신라문학대상 소설 당선작품 및 심사평 당선소감-이수조

(200자 × 83.5매)

다투(dhatu)

 

유리문 앞에 섰다. 앰뷸런스의 불빛은 보이지 않고, 유리에 반사된 내 모습이 녹색 괴물처럼 보인다. 녹색 바지와 녹색 반팔 티셔츠, 녹색 수술모자 사이의 얼굴이 밖의 어둠과 절묘하게 섞여 괴물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문을 안으로 잡아당기자 괴물 이미지는 픽셀이 부서지며 흔적도 남기지 않고 내 안으로 스며들었다. 밖으로 나서자 바다 쪽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한여름의 열기가 식어 서늘해진 바람이다. 별 몇 개가 포물선을 그리며 먼 곳으로 떨어졌다.

S시에 위치한 이곳 병원 응급실로 파견 나온 지 거의 한 달이다. 나를 보자마자 과장은 애인 없지? 하면서 야근만 시켰다. 야근만 했어도 그동안 별 일 없었고 불만도 없다. 사실 불만을 말할 그런 처지도 되지 못한다. 그런데 조금 전 구급대의 다급한 전화에 나도 모르게 긴장되어 자리에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앰뷸런스의 녹색 경광등이 번쩍거리며 병원 안으로 들어왔다. 구급대원들과 함께 환자를 스트레처카로 옮겨 응급실 안으로 옮겼다. 김주희 간호사는 모니터를 연결하고 제세동기를 준비했다. 말초정맥의 정맥로까지 동시에 확보하는 그녀의 손은 빠르고 신중하고 정확했다. 조금의 오차도 없다. 이정도의 능력이라면 내가 있던 서울의 대학병원에서도 흔치 않은 실력이다. 한적한 바닷가에 위치한 중형 종합병원에 이런 간호사가 있다는 사실에 나는 새삼 놀랐다. 연결된 모니터에서 알람소리가 시끄럽게 울린다. 심박동이 없다는 알림이지만 나는 백밸브 마스크를 움켜쥐고 기도를 확보하려고 환자의 턱을 잡았다. 온기는 있다. 그러나 살아있다는 어떤 느낌도 주지 않는다. 자정 가까운 시간에 바닷가에 주차된 승용차 안에서 발견된 52세의 남자다. 정세윤이라는 이 남자는 서울의 성형외과 개원의라고 구급대원이 말했다. 뜻밖의 환자다. 구급대원이 심장압박을 하는 사이 나는 후두경을 들고 기도 삽관을 시작한다. 혈관이 확보되었다고 김주희 간호사가 외친다. 그녀의 손가락은 혈관을 찾는 데 마법사 수준이다. 에피네프린과 아트로핀을 3분 간격으로 1mg씩 주라고 구두처방을 내리면서 성대 사이로 튜브를 밀어 넣는다. 신규 이간호사로부터 주사기를 건네받아 대퇴동맥에서 피를 약간 뽑아 넘긴다.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날 경우를 대비한 동맥혈 검사다.

앰부백을 김주희에게 주고 흉부 압박을 넘겨받는다. 반쯤 열린 눈꺼풀 사이로 완전히 풀린 눈동자가 보인다. 서울에 두고 온 내 환자의 눈동자가 겹쳐 보여 손끝이 잠깐 떨렸다. 심장을 누르는 손끝의 촉각은 점점 둔해지고,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 심폐소생술 중에 나온 모든 검사에 이상 소견은 없다. 머릿속을 아무리 뒤져 보아도 맞는 진단이 떠오르지 않는다. 건장한 체격이다. 그러나 소생술을 시행하는 동안 갈비뼈가 마른 나뭇가지처럼 부러지기 시작했다. 부러진 갈비뼈의 또닥거리는 소리가 공명을 일으킨다. 30분 지났어요, 선생님. 이간호사가 그만 하라고 애원하듯 말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남자의 가슴에서 손을 떼고 사망 선고를 내려야 할 시간이다.

DOA(도착시 사망).

몸에 삽입했던 것들을 빼고, 시신을 정리한다. 죽음의 원인을 ‘불명’으로 적고 신고를 받고 온 경찰관들에게 상황을 설명한 후, 사체를 영안실로 내려 보냈다. 가족들이 확인한 다음 사체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옮겨진다. 서울의 개업의가 S시의 한적한 바닷가에서 죽었다. 우연일까. 정말 죽음이란 의도되지 않은 우연한 불상사로 오는 것일까. 아직도 의식을 찾지 못한 서울의 내 환자는 어떻게 될까. 죽은 환자를 보다가 죽음의 문턱에 선 서울의 내 환자 생각이 밀려와 등골이 오싹해졌다. 유리문을 밀고 밖으로 나와 하늘을 쳐다본다. 별들이 잇달아 떨어진다. 서울의 사건을 깨끗하게 지울 수만 있다면, 의식불명의 내 환자에게 시간을 되돌려 줄 수만 있다면 나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불면의 밤을 보냈던 시간을 떠올리며 어둠을 응시한다. 잔별들이 무리지어 바람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성형외과 전문의 정세윤에게 사망선고를 내리고 두 달이 지났지만 국과수에선 아직도 사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일주일 뒤면 S시에 온 지 딱 석 달이다. 모교 병원에선 석 달 정도 파견 나가 있으면 모든 일이 해결될 것이라고 했다. 그 정도의 시간이면 내 환자가 살아나기에 충분한 시간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아직도 환자는 의식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상태다. 삶의 경계선에서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 휴대폰이 주머니 속에서 또는 테이블 위에서 진동으로 부르르 떨 때마다 내 몸뚱이도 함께 떨었다. 죄의식을 덤으로 얹은 기다림 때문에 나는 웃는 법을 잊었고 나의 뇌파는 종일 불안과 싸워야 했다.

새벽 세 시, 병원 전체가 무덤 속처럼 고요하다. 응급실을 나온다. 어둠속 유일한 발광생물처럼 응급실 창문만 불빛이 환하다. 어둑한 복도엔 내 발자국 소리만 공간을 울린다. 의국의 문손잡이를 잡는데 머리카락이 곤두선다. 천천히 뒤를 돌아본다. 제약실 앞 복도 끝에서 고양이처럼 누군가 잽싸게 휙 지나간 것 같다. 보이는 건 어둠뿐이지만 무언가 허공에 남아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의국 안으로 들어와 얼굴만 내밀어 다시 문밖을 살핀다. 벽에 나란히 붙여 놓은 빈 침대들만 어둠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놓여 있을 뿐이다.

유령처럼 사라진 존재에 대한 생각을 털어버리고 책상 앞에 앉는다. 시선이 닿는 위치에 A4용지 크기의 ‘다투(dhatu)’라고 쓰인 백색 종이가 붙어 있다. 다투라는 글자 옆에는 흐릿한 녹색괴물 이미지가 환영처럼 떠 있다. 다투와 괴물. ‘다투(dhatu)’는 ‘자궁 속 유골’ 이란 뜻으로 모두에게 부처의 성품이 있다는 뜻이다. 그런 심오한 뜻은 모르지만 인간의 생명은 2000만 마리 이상의 정자가 다투(싸움)는 데서 시작된다. 그 가운데서 딱 한두 마리만 살아남아 세상에 태어난다. 생명은 그렇게 다투고 다투어서 살아남은 유일체다. 살아남은 단 하나에게 조차 불법팝업창처럼 수시로 자기 안의 괴물이 튀어 나와 삶을 방해한다. 그동안 나는 삶이란 무엇인가? 따위의 갈등은 하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수련의를 거쳐 전공의 3년차가 되기까지 상위 성적을 유지하기 위해 전력질주 해왔다. 공부 밖에 할 줄 몰랐던 삼십 년의 삶이었다. 이곳의 환자를 통해 우연히 알게 된 ‘다투(dhatu)’. 벼랑 끝에 선 다음에야 살아남는 것이 무언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고 오직 살기 위해 그 단어에 매달리게 되었다.

새벽 세 시, 이 시간은 ‘다투(dhatu)’를 만나는 시간이다. 글자에 정신을 집중시키면 글자가 꿈틀거리며 뇌파에 박힌다. 글자는 파장을 따라 움직이다가 서서히 사라지고 녹색 괴물의 이미지도 유령도 다투를 따라 사라진다. 나와 인연이 된 사람들도 하나씩 사라진다. 모든 것으로부터 끈을 놓으며 나도 사라진다. 텅 빈 공간과 시간뿐, 나는 어디에도 없다. 세상에서 나를 지우는 이 시간은 대략 이삼십 분 정도다. 다투의 시간을 보내고 나야 비로소 나의 하루는 끝이 난다.

‘다투(dhatu)’를 보면서 하루를 끝내고 또 다시 밀려오는 하루를 시작한다. 컴퓨터를 켜고 서울의 모교 대학병원 사이트를 검색한다. 학술대회에 누가 어디로 갔으며, 어떤 논문이 주목 받았고, 고가의 새로운 의료기구가 도착했다는 의례적인 뉴스들을 스쳐 지나친다. 그리고 메일을 열어본다. 언제든지 휴대폰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새벽 세 시의 이 행위는 대단한 무엇이 아니다. 그러나 ‘다투’로 하루를 마감하는 것은 이제 하나의 중요한 의식처럼 되었다.

치프의 이름으로 새 메일이 와 있었다. 다음 주에 서울로 복귀하라는 내용이다. 기대했던 대로 복귀는 확정 되었다. 내 환자가 희망적이란 뜻이기도 해서 오랜만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제 정말 서울로 돌아가는 걸까? 아니 나는 정말 서울로 돌아 갈 수 있는 걸까? 설렘만큼 알 수 없는 불안이 바닥에서 꿈틀거리며 일어나 발목을 잡는다. 거미처럼 기어오르는 불안을 털어버리듯 로그아웃을 하고 의자에서 일어선다. 정확하게 3시 30분. 문을 열고 복도를 걷는다. 제약실 앞을 거쳐 로비 뒷문 쪽을 향한다. 두터운 고무로 덧댄 구두라 소리가 나지 않는데도 고양이 걸음으로 발소리를 죽인다. 간호사실 앞까지 눈에 띄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인기척이 나서 뒤 돌아보면 어둠뿐이다. 며칠 전 과장의 말이 떠오른다. 한 선생, 새벽마다 의국 사무실에서 뭐해? 딱 30분간 인터넷 합니다. 낮 시간 숙소에선 뭐하고? 숙소에선 인터넷이 안 되거든요. 병원에서 정해준 숙소는 인터넷은 물론 엘리베이터도 없는 낡고 허름한 5층짜리 모텔의 5층 객실이다. 모텔에는 엘리베이터 대신 침대 밑에 완강기로 여자 손목 굵기의 밧줄이 비치되어 있다. 객실의 한쪽 창은 열리지도 않았다. 창을 가린 블라인드도 고장이 나 먼지투성이 붙박이가 되어 있다. 나머지 한쪽 창만 삐걱거리며 열렸다. 창문 아래엔 녹슨 의자와 판자조각들이 쌓여 그늘을 만들었다. 그늘은 잡풀로 덮인 정원의 한 부분을 먹었다. 놀라운 풍경은 눈앞에 있었다. 탁 트인 바다가 환히 내다보였던 것이다. 바닷가에 세워진 모텔은 한 때 이 지역이 나름 인기 관광지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징 같은 건물이었다.

“그래? 그 시간에 병원 복도나, 제약실 앞에서 누구 만나지 않았나?”

“……과장님, 혹시 유령 소문 말씀 하시는 겁니까?”

과장은 힐끗 쳐다보다 실소를 터뜨렸다. 나는 얼른 뒤돌아 간호사들을 보았다. 언제부턴가 간호사들이 내 등 뒤에서 수군거렸다. 내가 다가서면 그들은 서로 등을 돌려 모르는 척 했지만 내가 유령일 거라는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나갔다. 유령이란 무언가를 찾아 떠도는, 이 세계를 떠날 수 없는 절실함 때문에 저 세상으로 가지 못하는 존재다. 나도 그들이 말하는 유령이 궁금했다. 정작 유령과 마주칠까봐 두려워하면서도 의국에 갈 때마다 유령이 나타난다는 제약실 문손잡이를 돌려 보곤 했다.

간호사실 문틈으로 불빛이 새어나온다. 부목과 붕대들이 켜켜이 쌓인 테이블 너머 이간호사의 뒷모습이 보인다. 응급실 문을 열자 차트를 보던 주희가 나를 보며 소리 없이 웃는다. 그늘 없는 미소다. 나도 저렇게 웃을 날이 있을까. 스테이션에 의자를 끌어다 엉덩이를 붙인다. 어둠조차 지친 새벽. 해맑게 깨어 있는 사람은 단언컨대 주희뿐일 것이다. 그녀는 동안의 얼굴에 뽀얗게 빛이 나는 피부를 가졌다. 누구도 그녀가 나와 같은 서른 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구나 나는 의료사고 이후 십 년은 더 산 것처럼 파삭 늙어 버렸다. 나의 파트너인 그녀를 환자들은 천사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쉴 틈 없이 일하는 천사 같은 그녀를 볼 수 있는 것도 며칠 남지 않았다. 그녀가 차트를 넘기며 고개를 움직일 때마다 약간 층이 진 길지 않은 머리카락들이 하얀 목덜미를 스친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복어 꼬리처럼 흔들린다. 나도 모르게 쩝, 하고 입맛을 다신다. 허기가 밀려온다. 고개를 숙여 그녀의 눈길을 피했다.

아침 9시, 신경외과 김 선생과 당직 교대를 하고 병원을 나선다. 납작한 돌들이 가지런히 깔린 산책로로 들어선다. 낮은 담벼락 위로 내 보이는 지붕들. 그 위로 부서지는 초겨울 햇살이 정겹다. 잔돌이 도톨도톨 박혀 있는 돌담이 끝나면 넓지 않은 모래밭이 나온다. 응급실 과장을 따라 가끔 가는 복어요리집이 있다. 과장은 복어요리를 끔찍하게 좋아한다. 그는 복어요리를 먹을 때마다 ‘독이냐 약이냐는 복용량의 차이에 있다’는 말을 강조했다. 독과 약은 본질적으로 같은 존재. 천평칭에 올려놓고 바늘이 움직이는 미세한 차이에 따라 독이 되고 약이 된다. 술도, 담배도, 심지어 물도 과량 복용하면 죽는다. 그렇게 강조하는 그는 독이 있는 복어요리를 즐기는 복어요리 광팬이다. 과장은 몇 차례 복어독에 중독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럴 땐 스스로 응급실에 와서 처방을 내렸다는 이야기가 내겐 전설처럼 들렸다.

과장과 함께 갔던 복어요리집 앞을 지난다. 지난 회식 때 이곳에서 복어요리를 먹었다. 독이 없는 양식 복어회와 복어구이와 복어지리와 복어껍질 튀김 등 독을 제외한 복어의 모든 것을 먹었다. 복어 요리에 허접한 철학까지 얹어 정신없이 술을 마셨다. 이간호사가 내 옆에 찰싹 붙어서 종알거렸다. 갑자기 손으로 입을 가리고 눈동자를 좌우로 굴리면서 목소리를 팍 낮췄다. 한 선생님, 김주희 샘 좋아하시죠? 왜요? 사귀는 남자 있다던데.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이간호사는 한결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였다. 무서운 간호사란 소문도 있어요. 저도 얼마 전에 들었거든요. 이간호사는 이 지방 사람이다. 게다가 병원장의 먼 친척이다. 귀엽고 예쁘지만 말이 많고 실수가 잦다. 이간호사의 실수를 질책할 수 있는 사람은 매뉴얼대로 실천하는 주희뿐이다. 무섭다고? 그래 너에겐 무섭겠지. 속으로 중얼거렸다. 주희는 나로부터 거의 반대편 끝 지점에 앉았다. 복어회를 입안에 밀어 넣으면서 동료들과 잡담을 나누는 모습을 훔쳐보았다. 이간호사와 말을 주고받으면서도 나는 주희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주희의 하얀 얼굴과 핏빛 같은 입술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 우리들은 모두 독이 없는 복어회를 먹는데, 그녀만 독이 든 복어회를 상큼하게 한입 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죽음을 부르는 독처럼 치명적인 매력이 그녀에게 있었다. 핏빛이 배인 도톰한 그녀의 입술이 확대되어 눈앞으로 다가왔다. 입술에 빨간 초고추장이 핏물처럼 묻어 있었다. 참을 수 없는 욕망에 휩싸여 사람들을 밀어젖히고 그녀 옆으로 성큼성큼 건너가서 입술에 묻은 핏물 같은 초고추장을 혀로 핥았다. 옆자리의 이간호사 입술을 보면서 그런 상상을 했다.

아직 오전이라 바닷가를 거니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파도만 소리 내며 밀려왔다 밀려간다. 모래밭 가운데 놓인 나무의자에 앉는다. 의자는 돌처럼 단단하고 차갑다. 나무가 아니라 나무처럼 채색된 돌 의자다. 초겨울의 쓸쓸한 모래사장에 조개껍질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이 병원에서 일어났던 작은 일상들이 반짝이는 조개껍질 같다. 복어독 요리를 즐기는 과장님, 독을 입에 문 것 같은 매혹적인 간호사 김주희, 실수투성이지만 귀여운 수다쟁이 이간호사 그리고 응급실 사람들. 떠나기도 전에 모두가 그리워지는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성형외과 전문의 정세윤의 심장 박동이 멈춘 곳도 바로 이 바닷가다. 신문과 방송에선 성공한 성형외과의가 의료사고 이후 정처 없이 떠돌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것이라는 추측성 보도를 했다. 정세윤, 그가 앉아서 마지막 바다를 바라보았을 그 자리에 지금 내가 앉았다. 겨울 빛에 물든 차가운 바다. 세상의 끝자락에 선 것 같다. 몇 마리의 새들이 물 위의 하얀 배 위를 빙빙 돌고 있다. 끼룩거리는 새들의 울음소리가 배 위로 뚝뚝 떨어진다. 붉은 꽃 한 송이 바다에 던지고 싶다. 정세윤, 그를 위해. 또 나 자신을 위해.

 

서울에서의 사건은 지금도 바로 눈앞에서 일어난 것처럼 뼈에 사무친다. S시 병원으로 파견 나오기 전날. 외상환자와 중독환자들로 응급실엔 입원환자가 넘쳐났다. 오랜만에 비번 허락이 났다. 잿빛으로 변한 가운을 벗어던지고 숙소로 가려는 찰나. 등 뒤에서 외상담당교수가 불렀다. 옆으로 찢어진 교수의 눈에서 흰자위가 번득이면 나는 오금이 저리듯 멈칫하는 습관이 있다. 그날도 교수의 날선 눈빛에 나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저 환자 폐에 찬 물부터 빼. 칠십 대 환자를 나에게 들이밀었다. 교수님, 영상의학과부터 하는 것이 순서일 텐데요, 라거나 저 지금 오프 나가거든요, 라고 절대 대답하지 못하는 소심한 사람이 바로 나란 인간이다. 사흘 동안 숙소에 가보지도 못했다. 바닥에 등을 대어본 기억도 가물가물했다. 오래만의 비번이라 정신은 이미 숙소의 침대에 가 있었다. 풍성한 꼬리로 머리를 감싸며 몸을 말고 잠이 든 여우를 꿈꾸었다. 그런데 교수의 명령이라면 죽은 사람도 살려내야 하는 게 전공의들의 몫이다. 잠에 취해 비틀거리며 환자 앞에 섰다. 평소처럼 흉관을 환자의 가슴에 겨누는데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누군가가 눈에 모래를 뿌리고 눈알을 파 간 것 같았다. 그 사이 가슴으로 들어가야 할 흉관이 손에서 미끄러져 복부를 뚫고 말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전문의들과 간호사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환자를 에워싸고 있었다. 뒤늦게 달려온 교수는 나를 보자마자 주먹으로 턱을 가격했고 발길질을 했다.

턱을 어루만진다. 아직도 그 생각만 하면 턱이 아프다. 교수에게 얻어맞은 후 병실 바깥 컴컴한 곳에 오랫동안 혼자 서 있었다. 외상파트를 맡아 있는 동안 목 디스크가 올 정도로 그 많은 환자들의 찢어진 부위를 꿰맸다. 피도 한 드럼은 덮어썼을 것이다. 피 묻지 않은 가운은 내게 없었다. 병원으로 온 여자 친구가 피 묻은 가운을 보고 무섭다고 했다. 옷에 묻은 피가 무섭다고? 그 후 나는 여자를 만나지 않았다. 교수로부터 극한 상황으로 몰릴 때 동료들은 거의 한 번씩 도망갔지만 전공의 3년차가 될 때까지 나는 한 번도 피하지 않았다. 정말 알 수 없는 오기로 버텨왔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잠 때문에 한 사람의 목숨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혼수상태인 환자를 두고 나는 그날로 협력병원인 이곳으로 유배되었다. 걱정 마 살아날 거야. 동료친구는 그렇게 나를 위로했지만 나는 헤어날 수 없는 깊은 우울에 빠져들었다. 나는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을 내 의식에서 지우고 싶었고, 내 자신으로부터도 달아나고 싶었다. 날마다 이 바닷가를 헤매고 다녔다. 언젠가 바다로 걸어 들어가리라 다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뜻하지 않게 다투를 만났던 것이다. 이곳 병실에서였다. 입원 환자 한 사람이 진리는 ‘다투’라고 주장했고 다른 한 사람은 진리는 예수라고 주장했다. 그 두 사람은 병세가 회복될수록 심하게 다투었다. 그러자 세 번째 사람이 말했다. 진리가 무엇이든 다툴 것 없다. 바람은 제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사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 ‘다투’는 그 순간 나의 영혼에 파고 들어왔다. ‘다투’가 나에게 자비를 베푼 것이었다.

축축한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모든 것이 서럽고 그립다. 손등 위에 눈물이 뚜르르 떨어졌다. 숙소로 돌아가자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의로 있는 준수로부터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 준수는 사망원인이 검출되지 않은 정세윤의 최초 검안의의 말을 듣고 싶다는 이유로 나를 서울로 불렀다. 한강 다리를 건너자 눈에 익은 풍경들이 촘촘하게 다가왔다. 나의 환자와 나의 불확실한 미래가 회색 하늘 저기 어딘가에 있다는 생각이 들자 불안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서울로 복귀 된다 해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생활할 수 있을까. 회색 도시에 회색 인간이 되어 유령처럼 스며들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준수는 S시로 유배된 후 처음 만나는 친구다. 반가움에 손을 잡는데, 기밀을 지킨다는 각서에 사인부터 하게 했다. 해부병리학을 선택한 준수의 성격은 작은 일에도 치밀했다. 너, 냄새 지우려고 이거 사다놓았지? 통닭냄새가 고소하다. 소주도 한 병 그 옆에 있다. 뭐 그렇지. 그래도 여긴 지상이잖아. 포르말린 냄새와 시체 부패냄새는 지하에 가득 넘치고 있지. 검사결과지를 놓고 머리를 맞대어 사인을 찾는데 열중했다. 무엇이 중년의 건장한 남자에게 호흡부전을 유발했을까? 통닭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결국 중독으로 돌아가야겠는데.”

“왜?”

왜라니, 내가 응급의학과 의사니까 그렇지. 길 가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사람을 발견했을 때 내과 의사는 저혈당을, 신경외과 의사는 급성 지주막하 출혈을, 신경과 의사는 급성 뇌경색을 의심한다. 응급의학과 의사는 중독을 의심해서 주변에 약봉지나 병이 없는지 살핀다. 맞다, 그때 차량에서 발견된 드링크 병이 있었지. 검사지를 뒤적거린다. 드링크 병에도 특별히 검출된 것은 없다.

“이 약물 분석은 선별검사니? 어떤 게 나오지?”

“정성검사니까 100%는 아니고, 그래도 주요 약물에 대한 건 다 있어. 요즈음 프로포폴 오남용 사고가 자주 일어나서 프로포폴이나 케타민까지도 검출 가능해.”

프로포폴은 마이클 잭슨이 약물중독으로 사망하면서 대중적으로 알려졌다. 성형수술과 지방흡입술과 수면내시경에 마취제로 사용된 약물인데 연예인들에게 꿈의 피로회복제로 알려져 잠자는 약으로 오용되기도 한다. 일반인들에게 까지 오남용으로 사고가 일어나자 마약으로 분류되었는데 정세윤은 그건 아니었다.

“네 말은 결국 극미량의 강력한 독이 있었단 말이지. 검출 할 수 있는 독은 몽땅 해야겠다. 그래도 안 나오면 원인불명이지 뭐.”

“사체는 진실을 말 한다는데, 부검을 하고도 사인을 밝히지 못하면 비난 받잖아?”

“살아 있는 사람말도 못 알아듣는데 사체의 말까지? 부검의가 하느님이냐? 50대 여자의 지방흡입술을 하다가 복부의 동맥을 터뜨려서 사망하게 했지만 자살할 사람은 아니라고 부인이 말했어. 그런데 말야. 피로회복제를 자주 마셨다는데, 피로회복제 성분이 전혀 나오지 않아. 아 미치겠네.”

정세윤이 수술한 50대 여자의 얼굴과 몸매는 20대 미모의 아가씨로 보였다고 한다.

“요즘은 사체 얼굴만 보고는 나이를 몰라. 약간의 지방이나 주름도 용서가 안 되는 거야. 의사나 환자나 욕심이 지나쳤지.”

준수가 술병을 들면서 말하자 내가 물었다.

“부검의, 할 만하냐?”

“응, 사체는 이미 스위치 오프니까. 피도 안 나고 말썽도 안 일으키고, 너처럼 늘 스위치 온 할 필요도 없고.”

준수는 그제야 내 몰골을 아래위로 훑는다.

“너, 아직도 잠을 못 자? 전에 그 환자, 지금까지 살아 있으니 이젠 네 책임만은 아니지.”

준수의 위로에 닭다리를 찢어 질겅질겅 씹으며 떠오르는 교수의 얼굴을 애써 지웠다.

 

서울 복귀를 이틀 앞두고 응급실 병상을 체크하는데 갑자기 간호사들이 문 쪽으로 몰려갔다. 비상사태가 일어난 것 같아 나도 출입구로 달려갔다. 유리문 밖에서 쓰러질 듯 비틀거리는 사람은 응급실 과장이다. 간호사들이 부축하자 과장은 그대로 축 늘어졌다. 과장을 들어 올려 침대에 눕히자 눈도 뜨지 못하면서 스스로 처방을 내린다. 마취과 이 과장 불러. 프로포폴하고 펜타닐 준비해라. 이미 발음이 불분명하다. 복어 독, 테트로도톡신 중독이다. 과장님 또 복어 드셨나 봐. 직원들이 수군거린다. 벤틸레이터는 갈릴레오 모델 ICU에서 내려 달라고 하고……. 수액은 5%포도당 생리식염수 하나 달아 놔라. NG 튜브나 폴리 필요 없다……. 겨우 말을 마치자 반쯤 벌어진 입은 벌어진 채 굳었다. 눈꺼풀도 굳게 닫혔다. 응급처치를 하고 기도삽관을 한 후 집중치료실로 옮기는데 주희가 과장을 뒤따랐다.

왜 주희가 집중치료실로 따라 가는 걸까? 집중치료실 간호사는 다른 사람이다. 의아했다. 주희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비상계단을 딛고 병원 옥상으로 올라갔다. 숨을 크게 내쉰다. 뿌연 입김이 찬 공기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전설처럼 들었던 과장의 중독을 직접 보았다. 무표정한 척 했지만 실제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국과수에서 발표한 정세윤의 사인도 테트로도톡신, 복어독 중독이었다. 그는 복어독에서 추출한 테트로도톡신 성분으로 자신만의 피로회복제를 만들어 복용했다고 밝혀졌다. 복어독성분인 테트로도톡신은 청산가리의 1000배로 해독제도 없다.

24시간 깨어 있어야 하는 응급실 의료진이야말로 독에 노출된 사람들이다. 이간호사로부터 주희의 과거에 대한 소문을 구체적으로 들은 것이 며칠 전이다. 주희가 신규 간호사로 서울의 대형병원에 있을 때였다. 졸음을 이기지 못해 잠깐 잠이 든 주희는 소아환자의 투약시간을 놓쳤고 아이는 죽었다. 죽음을 앞둔 아이였지만 주희의 투약실수는 상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그 후 주희는 지방으로 떠돌아다니는 떠돌이 간호사가 되었고 죽음의 천사, 무서운 간호사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김주희, 나의 어둠과 그녀의 어둠이 닮았기 때문일까. 나는 처음부터 그녀가 좋았다. 그녀를 향한 광기의 사랑이 나에게 휘몰아치기를 바랐다. 어디서도 위로 받을 수 없었던 그때 내 안 깊숙이 처절하게 여자를 갈구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유예된 인간이었고, 서울의 환자가 살아나기 전에는 내가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그녀에게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어둠 속에 잠든 담장 낮은 집들을 내려다본다. 피곤에 젖은 밤의 한숨소리가 들린다. 어깨를 치고 제가 가고 싶은 대로 가는 바람. 바람이 떠난 후 키 큰 삼나무 가지 끝에 별들이 와글와글 모여 들었다. 시간은 잔별들의 소리를 들으며 바람을 따라 흘러갔다.

새벽 세 시, 이곳에서의 마지막 ‘다투(dhatu)’의 시간이다. 이 시간은 죄책감과 불안에 옥죄어 죽음까지 생각했던 나에게 삶의 동아줄이 되어준 시간이었고 서울에 두고 온 나의 환자에 대한 최소한의 속죄의 뜻을 담은 의식이기도 했다. 내일 모레, 서울로 돌아가면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것이다. 내 삶의 매뉴얼을 다시 쓰리라. 이제 새벽 세 시의 스위치는 오프로 돌린다. 리턴 불가, 용도 폐기된 스위치다. 의국의 책상 앞 마지막 의식을 끝내고 ‘다투(dhatu)’가 적힌 빛바랜 종이를 조심스럽게 떼 낸다.

의국을 나선다. 응급실 약품 창고가 있는 복도 끝을 지난다. 검사실과 병실로 이어지는 왼쪽 복도의 어둠속을 고양이 발걸음으로 지난다. 어둠만 냉기와 함께 가라앉은 복도 끝이다. 나는 다시 제약실로 되돌아온다. 약품창고 문손잡이를 잡고 슬쩍 돌린다. 손끝에 얼굴에 소름이 돋는다. 유령과의 숨바꼭질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내가 이곳을 떠나면 내 동선을 따라 움직이던 유령도 제 갈 길을 가야한다. 유령을 만나고 싶은 것도 아니고, 유령을 잡고 싶은 것도 아니다. 무얼 확인하고 싶어서도 아니다. 그런데도 유령에 집착하는 나 자신을 스스로도 이해 못한다. 잠겨 있어야 할 제약실 문이 저항 없이 열린다. 손잡이를 잡은 채 고개만 빼어 안을 들여다본다. 약품을 담은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가 신음 소리처럼 들린다. 어떤 눈동자가 어둠 속에 찍혀 있을 것만 같다. 병원 직원들 생각처럼 유령은 나인가. 명계를 건너지 못해 이승과 저승의 틈바구니에서 헤매는 가련한 영혼. 어떤 사람은 아름다운 얼굴과 날씬한 몸을 찾아서. 어떤 사람은 최고의 맛을 찾아서, 어떤 사람은 돈과 또 다른 안락을 찾아 유령처럼 떠돈다. 우리들은 모두 삶과 죽음의 경계에 한발씩 걸치고 있는 유령들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조금 전 어둠 속으로 사라진 형체는 나의 그림자인가. 수면마취제인 프로포폴이 제약실에서 조금씩 사라진다는 과장의 말을 떠올리며 약품 창고의 문을 닫는다. 방사선과를 지나 휠체어들이 즐비한 비상구를 지난다. 불빛이 환한 응급실을 보면서 나는 또 누군가를 생각한다. 새벽에 복도를 다니는 내 동선을 따라 제약실에서 프로포폴을 훔쳐가는 유령이 있다. 내가 떠난 다음 유령은 어떤 방법으로 살아남을까.

 

숙소에서 짐을 정리하는데 머릿속은 주희 생각뿐이다. 해맑은 얼굴로 항상 스위치 온이던 그녀, 하얗게 빛나던 파트너 김주희. 파견 나온 다음날 그녀와의 첫 만남은 특별했다. 만성췌장염을 앓는 젊은 남자가 만취상태로 들어왔다. 마약주사를 달라고 소리를 지르며 난동을 피웠다. 정상적인 진통주사를 주려고 하자 자신이 토해낸 피와 토사물을 받은 양동이를 내 얼굴에 던졌다. 그러지 않아도 나 자신이 극도로 혐오스러울 때였다. 나는 오물을 덮어쓴 채 췌장염과 마약과 술에 절어 왜소해진 남자를 향해 주먹을 불끈 쥐고 다가섰다. 그의 멱살을 잡아 집어던진 후 의사 가운도 함께 팽개치려 했다. 주희가 재빨리 끌고 나오지 않았다면 그렇게 했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녀는 샤워장으로 등을 떠밀어 넣었다. 빨리 씻고 나오세요. 쉴 수 있는 곳을 안내할게요. 피비린내와 오물 냄새는 씻어도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눈이 벌겋게 충혈 된 채 나는 그녀의 손에 이끌려 간호사들의 비밀휴식처로 안내되었다. 선생님은 지금 주무셔야 해요. 주희의 말대로 침대에 몸을 던지고 눈을 감았다.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주희가 나의 손을 잡았는데 몽환적인 느낌은 찰나였고 바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잠에서 깨어났을 땐 몸이 가뿐했고 오물 냄새도 잊었다. 30분이 흘렀을 뿐인데 짧은 시간 죽음과 같은 깊은 잠을 잤다. 그런 잠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경험하지 못했다.

정세윤은 복어독을 피로회복제로 사용했고, 이 병원 응급실 과장은 복어독을 맛의 쾌락으로 이용했다. 나는 복어독 같은 주희의 매력에 빠졌다. 트렁크를 들어 침대 옆에 세운다. 내일 아침 이곳을 떠난다. 떠난다는 사실만은 변함없는 실제 상황이 될 것이다.

늦은 저녁 시간 작별 인사를 겸한 회식 때문에 병원에 들렀다. 로비에 서 있던 그녀가 나를 보고 다가온다. 턱밑으로 다가와서 내 눈을 빤히 들여다본다. 선생님, 아직도 불면에 시달리세요? 눈이 빨개요. 주희는 녹색 간호 복 위에 검정색 바바리코트를 걸치고 하얀 털이 보플보플한 머플러를 목에 둘렀다. 주희가 서 있는 뒤 벽면에 부착된 포스터가 시선을 끌었다. 매일 보던 것인데 특별히 눈에 들어온다. ‘편안한 수면, 행복한 삶’, ‘숙면을 책임집니다.’라고 커다란 글자가 박힌 포스터다. 침대 머리맡에서 끝까지 펼쳐진 순백색 시트와 푹신한 베개에 머리를 눕힌 남자와 긴 머리를 옆으로 쓸어 넘긴 채 남자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여자. 그들 위로 핑크빛 이불이 달콤하고 따스한 물결처럼 덮였다. 포스터를 보는 순간 주희와 함께 잠들고 싶은 욕구가 불길처럼 일어났다. 얼마 만에 느끼는 욕구인지 스스로 깜짝 놀라 주희의 얼굴을 외면하고 얼른 자리를 떴다. 문득 뒤돌아보자 수면 포스터 앞에 선 그녀가 내 쪽으로 몸을 돌려 정물처럼 서 있었다.

 

두개골에 뚫린 구멍으로 뇌수가 빨려나간다. 또 그 물고기다. 한 뼘도 안 되는 길이의 물고기가 날카로운 이빨로 구멍을 뚫고 아주 맛있게 뇌수를 파먹는다. 지독한 통증에 진저리친다. 머리카락 사이로 황갈색 비늘이 반짝인다. 뇌가 텅 비기 전에 놈을 잡아야 한다. 엄지와 검지로 집게를 만들어 머리카락을 헤집어 안으로 집어넣는다. 차고 매끄러운 감촉에 털이 곤두선다. 손가락을 빠져나간 녀석은 다시 두피에 달라붙어 얼음송곳 같은 이빨을 구멍 속으로 박는다. 끈적끈적한 액체가 이마를 타고 내려와 입술에서 뚝 떨어진다. 핏방울이다. 핏방울은 자꾸 떨어지고 가슴은 얼음처럼 차갑다.

어. 하고 놀라 눈을 떠보니 꿈이다. 목이 마르고 머리가 깨지듯 아프다. 그것보다 몹시 춥다. 이불을 끌어당기려는데 팬티도 입지 않았다. 발가벗었다. 게다가 옆구리에 부드러운 뭔가가 있다. 소스라치게 놀라 벌떡 일어나 앉는다. 침대 위에 나 외에 알몸의 여자가 잠들어 있다. 창문으로 들어온 희미한 달빛이 여자의 맨살 위를 비춘다. 머리카락을 걷어 올리며 여자의 잠든 얼굴을 본다. 주희다.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하다가 깜짝 놀라 스프링처럼 튀어 오른다. 자는 모습이 부자연스러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숨소리가 없다. 주희를 바로 눕히고 가슴에 귀를 갖다 댄다. 심장은 규칙적으로 뛰고 있지만 아주 약하다. 침대에 내려서자 발바닥 밑에서 부서지는 소리가 난다. 비틀거리며 형광등의 스위치를 찾아 누른다. 손끝이 떨린다. 불이 들어오자 발에 밟혀 부서진 주사기와 프로포폴 빈병이 눈에 들어온다. 프로포폴의 부작용인 무호흡증이다. 축 늘어지던 서울의 환자가 뇌리를 스친다.

“안 돼, 안 돼!”

양손으로 주희의 뺨을 잡고 마구 흔든다. 반응이 없다. 인공호흡을 하면서 틈틈이 머릿속으로 어젯밤의 기억을 찾는데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알몸끼리 겹쳐 있지만 아무런 느낌이 없다. 어떻게 해서 이 여자를 안고 자게 되었을까. 어째서 기억이 지워진 걸까. 회식이 끝났을 때 나는 이미 통제력을 잃었다. 인공호흡과 심장마사지를 반복하면서 다시 처음부터 기억을 하나하나 끌어낸다. 그녀에게 이끌려 2차를 갔고 그곳에서 키스를 했고, 함께 숙소로 들어왔다. 졸음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 그래서 늘 깨어 있고 싶었다, 라는 주희의 말도 떠오른다. 깨어있기 위해 유령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고백을 바람소리처럼 들으면서 그녀의 입술을 빨고 젖가슴을 핥고 따뜻한 질 속으로 성기를 깊게 집어넣는데 집중했다. 그리고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었던 것이다.

바닥에 벗어 던져놓은 옷을 대충 입는다. 코트로 주희의 몸을 감싼다. 휴대폰의 시간이 새벽 세 시다. 병원과 모텔의 거리상 119를 부르는 것보다 내가 업고 뛰는 것이 빠르다. 그녀의 몸을 이불로 감싸 등에 업는다. 축 늘어진 그녀를 등에 업은 채 완강기로 이 방을 벗어나긴 어렵다. 발끝에 걸리는 밧줄을 걷어찬 후 5층 계단을 엎어질 듯 내려와 모텔을 벗어난다.

겨울나무들이 어두운 하늘을 향해 온몸을 흔든다. 윙윙 밤이 소리 내어 운다. 응급실로 가는 길은 텅 비었다. 입술이 떨리고 입김이 연기처럼 흩어진다. 만성췌장염 환자에게 수모를 당했을 때 나를 잠재웠던 일이 고마운 한편, 나도 모르게 잠들었다는 것이 또 다른 의식 저 편에 남아 있었다. 새벽 3시 ‘다투(dhatu)’를 통해 불면을 택한 이유 중엔 그녀가 던진 재갈을 물지 않으려는 무의식적인 행위가 깔려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지금 마지막 하루에 긴장이 풀려 죽음을 동반한 함정에 빠진 것 같다. 내 인생이 다른 어떤 심각한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나는 아프게 인식해야 했다. 복어독 같던 이 여자를 내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서울로 돌아간다 해도 기억상실증 환자처럼 이 시간을 잊고,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처럼 얼굴을 돌릴 수 있을까. 세찬 바람이 가슴팍을 친다. 그녀는 점점 무거워진다. 걸어도 걸어도 제자리. 물속으로 끌려들어가는 것 같다.

길바닥이 수족관이 된다. 한 방향 밖에 모르는 복어들이 자맥질한다. 꼬리에 붉은 꽃잎 같은 피를 똑똑 흘리며 눈앞을 빙빙 돈다. 꼬리가 뜯겨 나가는 중이다. 뒤의 놈은 앞에 선 놈의 꼬리를 물어뜯기 위해 작은 지느러미를 파닥거린다. 서로의 꼬리를 물어뜯기 위해 뱅글뱅글 도는 복어들. 내가 그녀의 꼬리를 물었던가. 그녀가 나의 꼬리를 문 것인가. 등짝에 짊어진 것의 실체는 무엇인가.

개 짖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맹도견 리트리버처럼 사슬 같은 어둠을 목에 감고 한발 한발 걸음을 옮긴다. 휘몰아치는 겨울바람 사이로 응급실 불빛이 보인다.♣

(200자×83.5매)

 


 

제28회 신라문학대상 심사평(소설부문)

 

 

총 75편의 응모작을 읽었다. 다문화가정 체험, SF 장르, 동화 패턴, 전문 직업 영역 등 소재와 형식이 다양했다. 그 반면, 서술이나 문체 면에서는 그리 첨단적인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었다. 일차로 9편을 추렸고, 거기에서 5편으로 압축하여 최종심에 임했다.

「다투(dhatu)」「산세베리아」「초막 셋」「벚꽃 아재비를 위한 노래」「오해의 기하학」 등 5편은 단편소설의 골격을 제대로 갖춘 작품이었다.

이 가운데 「오해의 기하학」과 「벚꽃 아재비를 위한 노래」는 서술의 안정성에 비해 플롯의 안이함이 느껴져 아쉬웠다. 「초막 셋」과 「산세베리아」는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에 비해 문장이 거칠었다.

이에 비해 「다투(dhatu)」는 압축성과 상징성 등에서 단편소설의 미학을 잘 보여준다. 병원에서 겪는 전문의들의 체험이 풍부하고 깊이 있는 전문성을 발휘한 점이 무엇보다 높이 평가된다. 전공의 3년차의 수면 부족과 과로에서 빚어지는 부조리한 삶의 조건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공감을 불러온다. 인물의 내면 묘사, 서사구조 면에서도 일정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 단, 스토리 전개에서 필연성보다 의외성이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논의가 이어졌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당선을 축하드린다.

 

심사위원 이광복 황충상 박덕규

 

 

당선소감

 

이수조

 

이무기는 용이 되기 위해 차가운 물속에서 천년동안 살아야 합니다. 여우는 천년을 죽지 않고 살아서 구미호가 되어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야 인간이 됩니다. 길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지만 이유를 대지 않아도 이무기나 여우는 행복하다는 것을 압니다.

스스로 깊고 수준 높은 독자로 자부하면서 살았지만 심한 갈증과 끝없는 방황은 삶을 벼랑 끝으로 몰았습니다. 소설을 쓰지 않고서는 용이나 구미호를 꿈 꿀 수조차 없다는 것을 왜 이렇게 늦은 시간에 깨닫게 되었을까요.

너무 늦은 나이는 없다, 면서 용기를 북돋워주신 이순원 선생님 감사합니다. 또 바로 옆에서 계속 소설을 쓰도록 독려해주신 양진채 선생님과 인천 새얼문학회 문우들 감사합니다.

엄마에게 병원 이야기를 자주해주는, 응급실에서 밤을 새는 아들 예완이와 저희 가족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특히 뽑아주신 세분 심사위원님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키보드를 두드릴 힘만 있다면 손가락 열 개가 내 머릿속보다 더 빠르게 키보드를 쳐 나갈 때까지 소설을 쓸 것입니다. 저 자신을 위해서, 늦은 나이에 시작한 작가 지망생들을 위해서.

 

▶약력

1950년 대구 출생, 2014년 인천시민문예대상, 인천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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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회 신라문학대상 수필 당선작품 및 심사평 당선소감-신정애

풀매

 

 

두 개의 행성이 맞물려 돌아간다. 드르륵 드르륵! 어처구니를 잡은 손등 위로 더운 김이 솟아오른다. 밖엔 눈이라도 내리는지 소란하던 사위가 고요하다. 미열로 시작된 감기에 잣죽이 좋다며 엄마가 풀매를 돌린다. 따뜻한 방 안에는 어린 내가 누워 있고 대청마루에 그린 듯 앉아있는 엄마의 치마폭에서 솔향기 같은 잣 냄새가 난다.

유년 시절에는 감기를 달고 살았다.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흐르던 콧물로 코밑은 성할 날이 없었다. 환절기가 되면 편도부터 부어올라 밥보다 죽을 먹은 기억이 더 많다. 뽀얗게 불린 찹쌀과 잣을 풀매에 곱게 갈아 주걱으로 저어가며 끓이면 온 집안에 잣 향기가 아늑하게 퍼졌다. 엄마는 남은 찹쌀가루로 작고 동글납작한 녹두전이나 찹쌀전병을 만들었다. 그 위에 꿀을 듬뿍 뿌려 먹는 것은 아플 때만 누리는 호사였다. 봄이면 창포꽃잎이 하얀 전병위에 피어나기도 하고 겨울이면 대추가 솔잎위에서 붉은 수를 놓았다.

풀쌀을 가는 작은 맷돌이 풀매다. 고운 돌로 만들어 맷돌보다는 작고 아담하다. 아랫돌과 윗돌이 만나 돌아가는 부분에는 서로 다른 무늬의 홈이 파여 있다. 맞물려 물샐 틈 없이 돌아가도 홈이 있어 마찰로 생기는 열을 적게 해준다. 불린 쌀을 아가리 속으로 물과 함께 조금씩 넣어가며 어처구니를 잡고 빙글빙글 돌려주면 곱게 갈린 곡물이 내려온다. 큰 맷돌보다 부드럽게 갈려 죽을 쑤거나 모시, 명주 같은 옷에 고운 풀을 먹일 때 주로 쓰였다.

여름 날 빳빳하게 푸새가 된 아버지의 정갈한 모시옷도 풀매가 한 몫을 했다. 추수가 끝난 늦가을 때쯤이면 아이들 등살에 너덜너덜해진 창호지문에도 겨울채비를 서둘렀다. 곱게 간 풀물을 창호지에 듬뿍 적셔 창살에 발라 두면 늦가을 볕에도 한나절동안 팽팽하게 당겨졌다. 살을 에는 동장군 추위에도 바람을 거뜬하게 막아주었다. 풀물이 고와야 얼룩이 지지 않는다며 풀매를 돌릴 때 엄마는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었다. 악기를 연주하듯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리듬을 타며 박자를 맞추었다. 아랫돌 윗돌이 추임새를 넣으며 일심동체로 돌아가면 엄마의 가녀린 어깨도 함께 어우러졌다.

장단을 맞추며 한 몸이 되어 돌아가는 동안은 엄마 혼자만의 고유영역이 된다. 실타래처럼 엉킨 삶을 추스르는 의식 같은 모습이었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던 육남매를 키울 때는 새우잠을 자고 일어나도 엄마의 하루는 부족했다. 일상이 전쟁 같은 날들에도 늘 아랫돌처럼 그 자리를 지켰다. 주름살 하나 없이 정성들여 손질하는 모시옷처럼 구겨졌던 일상들이 하나 둘 펴졌다. 그건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풀매의 힘이었다.

곡물이 잘 갈려서 나오는 것은 원심력과 구심력이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자꾸만 밖으로 뛰쳐나가려는 윗돌을 아랫돌은 지긋이 당겨준다. 아버지의 늦바람으로 가슴앓이를 하면서도 자식들이 알세라 엄마는 내색 한번 하지 못했다. 육 남매 중 누구도 아버지의 일탈이나 엄마의 아픈 속내를 알지 못했다. 돌 틈사이로 비집고 나오던 하얀 한숨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들이었다. 궤도를 이탈할 듯 보이는 자전(自轉)도 가정이라는 울타리에 묶여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온다. 언젠가 잎 떨어진 나목이 되어 돌아 올 아버지의 빈자리를 아랫돌이 되어 묵묵히 지켜내었다.

풀매를 돌리면서 가끔 엄마는 낮은 소리로 흥얼거렸다. 곡조도 없는 넋두리 같은 노래를 드르륵거리며 돌아가는 소리에 반주삼아 불렀다. 때로는 우물 속 같은 깊은 한숨소리가 대신할 때도 있었다. 어처구니를 잡은 손등에는 고무줄처럼 파란 힘줄이 솟아올라 마치 작은 풀매에 온 몸이 매달린 듯 했다. 돌들이 부딪치면서 내는 마찰음이 신음처럼 돌아 나오면 넋두리 같은 노래도 풀물에 젖어 들었다. 흥건하게 젖은 넋두리나 깊은 한숨이 마를 때쯤이면 어느 듯 지친 마음도 팽팽하게 당겨 놓았다. 누구나 삶의 버팀목 하나쯤은 가졌다면 엄마에게는 아마도 풀매였으리라.

육남매가 모두 떠나고 빈 둥지가 되자 풀매 잡을 일도 없어졌다. 빳빳하게 푸새된 모시옷을 입어줄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자 쓸모없는 돌덩이가 되었다. 언제부터인지 엄마가 다시 풀매를 잡았다.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 손사래 쳐보아도 이미 풀매 앞에 앉은 엄마를 말릴 수 없었다. 믹서기로하면 빠르고 쉬우련만 애써 풀매를 고집했다. 힘들게 만든 전병도 옛날처럼 맛이 나지 않아 냉장고 안에서 굳은 채로 버려지기 일쑤였다. 귀할 것도 없는 음식을 만드느라 한나절을 붙잡아 두는 엄마를 이해 할 수 없었다.

얼마 전 유학간 아들이 방학동안 잠시 다니러 나왔다. 생활패턴이 바뀐 탓에 적응하기 힘들다며 떠나는 날은 정성들인 아침상도 마다하고 주스 한 잔만 마시겠다고 했다. 믹서로 간편하게 갈면 될 것을 쓰지 않던 강판을 꺼내 토마토를 갈았다. 다시 볼 날이 아득해진 속내를 강판으로 감추었다. 식탁 앞에 앉은 아들을 바라보며 강판위의 손도 자꾸만 느려졌다. 내 자식을 떠나보내고 나서야 풀매를 잡던 엄마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그때의 엄마도 나처럼 잡고 싶었던 속내를 대신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짜증을 부렸던 한나절의 시간들이 죄송함으로 아릿하게 가슴을 저민다.

엄마 치마폭에 배여 있던 솔향기 함께 풀매 돌아가는 소리 들린다. 입 안에 번지는 잣의 향기로 온몸이 알싸해진다. 이 모든 것들은 아랫돌처럼 가끔 궤도를 벗어나려던 나를 제자리에 당겨 놓는다.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준다. 삶이란 소소한 기억의 편린들로 잘 맞추어 나가는 퍼즐 같은 것인가 보다. 미열에 들 뜬 어린아이의 숨소리며, 푸새된 모시옷이며, 장구처럼 팽팽하게 당겨졌던 창호지문이며, 찹쌀전병위의 진달래가 평면을 채운다. 둥글거나 모난 기억의 조각들이 함께 어우러져 빈틈을 메워 놓는다.

가만히 나만의 풀매를 돌려본다. 아직 못다 채운 여백이 고운 풀물에 젖어든다.

 

심사평(수필)

예심을 거쳐 온 <풀매>(신정애), 솟대(안희옥), 모지랑붓(김장배), 잠망(김옥한), 푸른 수의(최상근)가 심사위원들의 집중적인 논의 대상이 되었다.

본심에 오른 작품들은 수필작법의 기본을 비교적 충실히 갖추고 있었으나 신인다운 가능성과 패기라는 잣대만으로 보자면 아쉬운 점이 없지 않았다. 신인다운 패기와 새로움이란 언어와 형식의 새로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사물과 세계가 드러내거나 감추고 있는 현상을 감지하여 그것을 이해하고 자기만의 언어로 재구성하기 위한 깊은 인식과 사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풀매>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솜씨, ‘풀매’라는 소재를 통한 형상화의 능력, 더 나아가 주제에 대한 나름대로의 인식과 사유는 작가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세상을 있는 대로 그냥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고자 하는 노력은 자기만의 삶의 세계를 추구하려는 성숙한 태도로 보이기까지 한다.

당선작으로 뽑힌 <풀매> 이외의 작품들도 비교적 고른 문학적 개성과 성취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더 높은 문학적 성취를 위해서는 수필을 통해 지나치게 개인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인생과 세상에 대한 보다 깊은 구체성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사실이 간과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심사위원: 유한근, 허상문 


 

당선소감(수필)

 

신 정 애

언젠가부터 가슴에 작은 씨앗 하나 묻어 두었습니다. 물을 주고 정성을 쏟았지만 단단한 흙을 뚫고 싹을 틔우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어설픈 열정과 실패와 불면들이 수없이 교차하는 동안 씨앗은 쉽게 제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인고의 대지위에 고개 내민 잎 하나를 바라봅니다. 아직은 성글고 부족하지만 처음 씨앗을 묻었던 그 순간처럼 설렘과 두려움으로 걸어가겠습니다. 푸르른 잎이 무성한 한 그루의 나무가 될 때까지. 그리고 아득한 공중을 꿈꾸겠습니다.

 

신라문학대상이라는 큰 상을 안겨주신 심사위원선생님과 경주문협에 감사드립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좋은 작품으로 보답 드리겠습니다.

 

같이 공부하고 있는 시거리문학회, 그리고 동리목월문학관 곽흥열교수님, 박양근교수님과 연구반문우들 함께 이 기쁨 누리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거친 문장을 풀매처럼 곱게 갈수 있도록 지도해준 김영식 선생님에게 감사드립니다.

 

 

 

 

 

 

 

프로필

 

성 명 : 신정애

생년월일 : 1955년

학 력 : 한동대학교 영문과 졸업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문학과 재학

동리목월문예 창작대 연구반

시거리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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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회 신라문학대상 소설 당선작품 및 심사평 당선소감 - 서형숙]

<당선 소감>

    

칠불암

 

 

오다 오다 오다.

오다 서럽더라.

서럽다 우리네여

공덕 닦으러 오다.

- 신라 노래 <풍요>

 

화구(火口) 앞에서 관이 잠깐 멈추었다. 꼿꼿하게 버텨보려는 이성적 고집에 반발하듯 현수의 몸이 관을 향해 푹 꺾인다. 가슴에 묻어두었던 원망이 울음에 지친 가슴 속에서 방언(放言)처럼 터져 나와 유족 대기실 천정에 방향 모르고 날아다니는 날벌레들처럼 날아다닌다.

‘당신이 내 발목에 채인 차꼬가 되어 영원히 날 옴쭉달싹못하게 할 거라고 원망하고 또 원망했는데, 겨우 십 년도 채 못 채우고 가는 거야? 그럼 순교자나 된 듯 생색 내던 나는 민망해서 어쩌라는 거지?’

‘아니, 아니, 아니, 아니야. 당신도 고생은 많았지. 가장이라는 그 끔찍한 책임감이 당신을 그 몸으로 지금껏 버티게 했던가 봐, 그래. 그렇지만 꿈 속에서라도 그 대답은 듣고 싶었어. 왜 그랬었는지. 수도 없이 반복하던 내 물음에 당신은 아직 답을 주지 않았어. 지금이라도 내게 답을 주고 가야 하지 않아? 이렇게 갈 수는 없어, 안 돼!’

검은 양복 입은 문상객 하나가 관을 매달린 현수의 허리를 끌어내듯 떼어내자 관은 빠르게 화구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안에서 불길이 확 솟아나더니 화로 문틈으로 맹렬하게 퍼져 나와 현수의 검은 상복 앞섶에 옮겨 붙었다. 불길은 현수의 상복을 다 태우고, 오래 신어 뒤축이 낡아 실밥이 터져 나온 헝겊 편상화까지 남기지 않고 태웠다. 현수를 옥죄고 있던 보이지 않는 포승줄 같은 것도, 실체는 보이지 않고 거대한 무게감만으로 숨통을 누르고 있던 큰 바윗덩이 같은 것도 불길에 휩싸여 타 버렸는지 재로 변한 옷을 벗어버린 현수는 알몸인 채로 부끄러움도 없이 제 자리에서 펄쩍펄쩍 뛰었다. 이어서 불길은 수십 개의 작은 불덩이들로 쪼개지더니 캄캄한 어둠 속에서 수십 개의 손이 횃불을 들고 춤을 추듯 현수 주위를 빙빙 돌기 시작했다. 현란한 불덩이의 움직임을 눈으로 따라가는데, 갑자기 그것들이 하나로 합쳐지며 하늘로 휙 솟아올랐다. 이것이 현실이 아니라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으면서도 현수는 그것들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두 손을 쳐들고 허우적거리다가 눈이 번쩍 떠졌다. 진득하니 이마에 진땀이 배어나오고, 몸이 물에 빠졌다 건져진 듯 무겁다. 또 비슷하게 반복되는 그 꿈이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현수는 산에 오를 채비를 차린다. 집을 나선다. 통일전 주차장에서 버스를 내리니 살갗에 와 닿는 유월의 공기가 습기를 머금어 무겁다. 분무기로 허공에 물을 뿌리듯 는개가 내리고 있지만 아직 우산을 받칠 정도는 아니라고 현수는 생각한다. 서출지(書出池)에서 바라본 산 윗부분은 비안개에 가려져 있는데 옅은 잿빛 공기 속 풀과 나무와 농작물이 꾸며 놓은 들판은 연하고 짙으며 약간씩 색조가 다른 녹색천으로 만들어 놓은 조각보처럼 따뜻하고 평화롭다. 현수는 비가 더 내리면 비옷을 입어야지 생각하며 서출지 주위를 돈다. 못가의 배롱나무는 포도송이처럼 알알이 맺힌 꽃봉오리들 사이로 바알간 꽃잎들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손끝에 닿는 봉오리들은 의외로 단단하게 껍질을 닫고 있지만 이 단단한 껍질을 깨고 수레바큇살처럼 펴진 붉은 꽃들이 한여름 동안 못 주위를 아름다운 붉은 구름으로 물들일 것이다. 수면 위로 퍼져나가는 연잎에 개구리 한 마리가 펄쩍 뛰어 올라오니 흔들리는 연잎에 수정구슬이 도르르 생겨난다. 서출지 못 이름의 유래를 어릴 때 학교에서 들었다. 연못에서 나타난 노인이 전해 준 서찰이 왕을 살렸다는 이야기의 신령스러움에 고개를 끄덕이던 어린 시절에는 나라의 왕은 그런 보호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 생각했고, 그런 이야기가 있는 지방에 살고 있다는 것이 웬지 어깨를 으쓱이게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요즈음 암자를 오르내리며 서출지를 지날 때 그 이야기를 떠올리면 현수는 불륜의 댓가로 죽음을 당한 스님과 왕비를 위한 변명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오랜 시간을 부정한 여인으로만 알려져 온 그녀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스님을 가까이할 만큼 왕비는 외로웠던 거겠지요.’ 하고 말해 주고 싶어졌다. 그래놓고는 또 ‘외로워서’라는 변명이 현수 자신을 위한 변명 같아서 자신이 한 말에 불쑥 화가 나기도 했다.

십 년 가까이 식물처럼 움직이지 못하고 자리에 누워만 있던 남편 곁에서 자신 또한 세상의 흐름과는 동떨어져 집안에만 있다가 남편이 떠나고 나 뒤에 돌아보니 현수는 자신이 세상 속에 설 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남편과 함께 유폐되었던 시간 동안 세상은 저만치 흘러가 있고 자신은 그 흐름에서 비껴나 있었던 것 같았다. 마치 자신이 큰물 진 후 급류에 휩쓸려 내려오던 쓰레기였다가 강기슭으로 비쭉 내민 나무의 밑둥에 걸린 채 검은 빛이 바래어가는 찢어진 낡은 비닐봉지 같다고 느꼈다. 그래서 남편의 장례를 치르고 49일의 천도재(遷度齋)까지 지낸 후, 현수는 다음 해 봄이 올 때까지 거의 잠만 잤던 것 같다. 깨어 있으면 홀로인 자신에게 남은 날들이 마냥 아득하였고, 막연한 그 아득함을 잊기 위해서라도 잠을 잤다. 간혹 아들 아이에게서 잘 지내는지 전화라도 오면 걱정말라고, 운동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고 하며 씩씩하게 잘 지낸다고 하였지만 먹는 것도 걸러 가며 잠만 잤다. 자도 자도 잠이 왔지만 깨고 나면 늘 피곤하기만 했다. 뚜렷한 의미도 없는 단편적인 장면이 오래된 무성영화처럼 흐릿하게 꿈을 채우거나, 잘 알지도 못하는 얼굴들이 꿈속에서 끊임없이 현수를 닦달했다. 그들이 현수에게 요구하는 것의 실체도 분명하지 않은 채 다만 무언가를 요구당하고 닦달당하고 있다는 부담감이 꿈속에서도 생생했다. 봄이 오고 나른한 봄기운 속에 죽은 채 잠만 자는 자신의 모습이 견딜 수 없어서 현수는 병원을 찾았다. 병원의 젊은 의사는 현수의 잠이 가면(假面)의 죽음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수에게 낮 동안은 집을 나와서 어디든 걸어다니라고 했다. 약을 처방해 주면서도 이것만 먹으면 안 된다고, 매일 몸이 지칠 때까지 걸으라고, 그것이 진짜 처방전이라고 몇 번이나 당부했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두 달 가량을 이틀에 한 번 꼴로 전화를 걸어서 현수에게 집 밖으로 나가라고 명령했다. 현수는 의사의 정성을 무시할 수 없어서 집을 나서려고 애를 썼다.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깨어나듯이. 집 밖에 나가기를 두려워하는 자기 자신을 또 다른 자신이 어르고 달래가면서, 집을 나와도 딱히 갈만한 곳이 없던 현수는 남편의 천도재를 지냈던 칠불암에 오르는 것을 할 일로 삼았다.

 

- 우리가 살던 이 도시를 잠시 떠났지만 결국 돌아오고야 말았군요. 이곳을 떠나 우리가 서울 근교의 허름한 그 동네에 처음 자리를 잡았을 때는 사실 참 막막하더군요. 온 나라가 처해 있던 경제적 파산의 위기보다 사람들에게 전염병처럼 퍼져 가던 심리적 공황이 더 두려웠던 그 시기에 당신이 다니던 회사도 결국 문을 닫았고, 당신도 예외 없이 실업 상태로 내몰렸지요. 그래도 수도권으로 들어가면 살 궁리가 생길 거라고 막연히 기대하면서, 우리도 남은 것을 정리하여 성남의 허름한 동네에 자리를 잡았지요. 세상살이에 능숙하지 않던 우리를 듣기 좋은 말로 그곳에 불러들여 자신이 운영하던 작은 인쇄소를 넘기던 당신의 옛 직장 동료를 너무 믿었던 걸, 누구 탓으로 돌리겠어요? 집집마다 한 대씩은 다 있던 개인용 컴퓨터에 밀려 사양길이었던 명함과 광고지 따위를 인쇄하던 일은 시작한 지 한 해를 겨우 넘기고는 다시 접어야 했지요. 가게를 접던 날, 새로운 각오로 무리하여 장만했지만 거의 쓸 일이 없었던 맥킨토시 컴퓨터나 명함용 고급 인쇄기를 다른 비품과 함께 모개로 처분하여 매일 전화로 빚 독촉을 하던 은행에 대출금을 갚고 나니, 그래도 우리 세 식구 저녁 한 끼 먹을 돈은 남았었지요. 가까운 식당에 가서 돼지 갈비 4인분을 주문하여 구워 먹으며 우리 셋 중 누구도 말 한 마디 없었던 그날 저녁, 그런 지경에도 고기 맛에 끌려 자꾸 집어 먹는 내 손목을 잘라 버리고 싶을 만큼 나의 배고픔이 부끄러웠답니다.

인쇄소를 접은 이후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궁핍으로 우리는 천천히 떨어져 가고 있었지요.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 가며 허리띠를 졸라매어도, 눈덩이처럼 커져가는 사채를 감당하기는 너무 버거웠지요. 냉방을 하지 않아 온기라고는 없던 그 방의 겨울 냉기를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사춘기에 접어든 지운이도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방황하고, 얼마 되지도 못하는 벌이에 매달려 밤이 늦어야만 얼굴을 볼 수 있던 우리 두 사람....... 한 줌 꽉 쥔 주먹 안에서 모래알갱이가 손가락 사이로 슬슬 빠져나가듯 우리 세 사람도 그렇게 서로에게서 빠져나가며 멀어졌던가 봐요.

겨울과 봄이 서로 머뭇거리며 세력을 견주느라, 이월 말이었지만 아직 매섭게 추운 날이 더 많았다. 그 즈음 현수는 학습지 교사로 이집 저집을 다니며 아이들 가정학습을 돌보는 일을 했다. 현수가 대학을 나왔다고 하자 학습지 지부장은 몇 가지 질문 후에 교사로 일할 수 있도록 어렵지 않게 채용해 주었다. 형편이 그다지 넉넉하지 않은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초등학생을 둔 부모들은 개인과외를 대신할 학습지 한 가지 정도는 시키려고 하였고, 그래서 현수가 찾아다니며 지도해야할 집도 적은 숫자는 아니었다. 다만 학습지를 다달이 판매하고 판매 부수에 따른 수당을 보수조로 받게 되는 형식이어서, 받아 둔 학습지 대금을 급한 대로 써 버리는 바람에 월말이 되면 현수는 한꺼번에 그 돈을 납부해 넣느라고 여기저기 아쉬운 소리를 하며 돈을 꾸느라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현수의 일이 아이들의 방과 후 가정학습이었기에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시간은 밤이 늦은 10시나, 심지어 11시가 가까워지기도 했다. 가족이 함께 저녁을 먹은 것이 오래 된 기억 속 일 같았다. 몸이 초절임을 한 것처럼 처지거나 몸살 기운이 있어도 쉬겠다는 소리를 하면 학부형은 싫은 기색을 하고, 또 어떤 이는 쉰다는 소리를 하면 다짜고짜 지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불평하는 걸 겪어 본 터이라, 현수는 몸이 아파도 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날은 심한 감기몸살인지 목이 잠겨서 말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는 데다 견딜 수 없는 한기에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해, 학부모에게 구걸하다시피 시간을 얻어 약국에서 한방 감기약 하나를 사 들고 들어오는 길이었다. 찬 방에 들어 와서 난방을 대신해오던 전기장판의 전원을 꽂으려는데 서가 한 칸에 얹힌 수첩 하나가 눈에 띄었다. 이곳으로 이사해 올 때 아깝지만 책을 많이 정리하여 없앴지만, 그래도 차마 버리지 못하고 간직해 둔 책들이 꽂힌 서가 칸막이 위에 그것이 얹혀 있었다. 사륙판 정도의 크기에 올리브빛이 감도는 초록빛으로 인쇄된 겉표지의 감각적인 색상이 눈길을 끄는 수첩이었다. 형편이 어려워지기 전에는 별다른 취미가 없던 남편은 서점에 서서 몇 시간이고 책을 읽다가 읽던 책을 사 가지고 돌아오기를 즐겼다. 그러나 남편이 무엇을 열심히 쓴 것 같지는 않았다. 가끔 작은 수첩에 문단 수준의 짧은 글을 써 놓은 걸 본 적은 있었지만 그것이 완성된 형태로 이어지는 것을 본 기억은 없었다. 전기장판의 전원을 올려놓고 데워지기를 기다리며 현수는 별 생각 없이 수첩을 펼쳤다. 남편이 작업 일정을 적어 두는 수첩이었다. 여학생의 것처럼 동그랗게 모양을 낸 낯익은 남편의 글씨였다. 남자답지 못하고 색시처럼 수줍음 타는 글씨라고 현수가 남편을 가끔 놀리는 빌미가 되어 주던 글씨였다. 하던 일마다 자리를 잡지 못하던 남편이었지만 그때쯤 무선 인터넷 선을 설치하는 자그마한 통신업체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두서너 달 정도마다 일자리를 바꾸곤 하던 그가 두 해 넘게 고정적인 일자리를 가지게 되면서 현수도 희미하나마 그 암울한 구덩이를 벗어날 기대를 가져보기도 했다.

수첩에는 언제, 어느 지역의 어떤 집에서 작업을 할 것인지 하는 일정이 적혀 있었는데, 작업 일정이 빈 날의 칸에 그것이 적혀 있었다. ‘오다오다오다오다서럽더라서럽다우리네여공덕닦으러오다.’ 띄어쓰기도 문장부호도 다 무시한 문장이 수첩의 곳곳에 깨알 같은 글씨로 꼼꼼하게 쓰여 있었다. 처음에는 무슨 주문인 줄 알았다. 그렇게 쓰인 글씨들은 특정한 의미를 담은 문자라기보다는 ‘아브라카다브라’나 ‘수리수리마하수리’ 정도의 무의미한 음성을 문자라는 기호로 옮겨놓은 것으로 보였다. 뒤쪽을 더 뒤적여 보니 같은 내용으로 채워진 칸이 최근까지 더러 있었다. 더듬더듬 반복적으로 읽노라니 뭉텅이져 있던 글자들이 ‘오다 오다 오다 오다 서럽더라 서럽다 우리네여 공덕 닦으러 오다’로 분절(分節)되어 읽혔다. 그런데 그 문자들이 조합해 내는 의미가 궁금할 사이도 없이 ‘서럽더라’가 눈에 들어와 읽히는 순간, 현수의 눈에서 거짓말처럼 갑작스럽게 눈물이 고여서 후두둑 떨어졌다. 자신의 눈물 떨어지는 소리가 어린 시절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누워 듣던 해질 녘의 빗소리처럼 을씨년스러웠고, 그 눈물 한 방울이 신호가 되어 현수의 속 갚은 곳에서부터 걷잡을 수 없는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남편이 하는 일은 외부의 통신 단자에서 선을 연결하여 집안의 인터넷을 설치하는 일이었기에 무질서하게 얽혀 있는 선을 찾으려면 건물 꼭대기에 매달려야 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러다 보니 그전 해 여름에는 건물 지붕에서 떨어져서 허리를 다쳐 열흘 정도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부도가 나기 전 회사 총무부서의 부장으로 있던 남편은 그 일을 계기로 병문안온 그 업체의 사장을 설득하여 산업재해보험을 들게 하였다. 규모가 영세한 그 업체는 보험 따위의 안전장치가 없었지만 남편이 사고가 나기 얼마 전에 비슷한 사고로 직원이 다쳐 병원비를 물어야 했던 사장은 할 수 없이 산재보험에 가입하였다. 남루하고 누추한 일을 불평 없이 견딘 결과로 비교적 수입이 끊이지 않았지만 목줄을 쥐고 당기듯 독촉당하는 그달치 사채 이자를 메우고 나면 그뿐, 살림살이는 별로 더 나아지지 않았다. 남편은 저녁 늦게 지친 몸으로 들어와서 소주 한 병을 겸해 반찬이 부실한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현수네 가족 세 사람은 저마다 각자의 고치 속에 웅크리고 사는 애벌레들 같았다. 그렇지만 악착한 노동에 따르는 열매가 영 없지만은 않았다. 받을 돈 대신에 전세계약서를 압류해 갔던 빚쟁이에게 원금을 갚고 계약서를 되찾아오던 날, 남편은 옥상에 놓아 둔 의자에 앉아서 깊은 가을밤 이슬을 한 시간이나 맞으며 앉아 있었다. 싸늘한 밤기운을 온몸에 묻히고 잘 시간을 한참 넘기고 들어오더니 말없이 이불 속으로 들어가 남편답지 않게 코를 골며 잤다. 그렇지만 현수는 그가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걸 알고 있었다.

시월에서 십일월로 넘어가는 냉기 속에서도 현수네 가족은 난방을 하지 않고 방에서도 두터운 겉옷을 입으며 버텼다. 저녁상을 앞에 두고 남편은 수저를 뜨지 않고 소주만 마시다가 ‘이렇게 악착같이 살아야 할까? 이 세상에 나는 왜 온 걸까?’ 하고 뜬금없는 말을 던지기도 했다. 남편도 대답을 바라지 않았겠지만, 현수 또한 그 말에 살가운 위로를 해 줄 여유도 없을 만치 매일 지쳐있었다. 유난히 추위가 혹독했던 그 겨울, 남편은 아침에 도시락 하나를 싸 가지고 나가 높은 데에 매달려 통신선을 설치하는 일을 하루도 빠짐없이 해 냈다. 산을 깎아 만든 고지대에 자리한 동네는 집을 찾아 올라가는 길이 언덕진 가파른 비탈인 데다 그 해는 눈조차 자주 내려 꽁꽁 언 빙판 길에서 현수는 여러 번 미끄러졌다. 넘어져서 일어날 때마다 현수는 넘어져 아픈 몸보다 누가 볼까 얼른 일어나려고 서두는, 아직도 마음 밑바닥에 남아 있는 자신의 오기가 더 아팠다.

반팔원피스를 입은 기상캐스터가 예쁜 미소를 잃지 않은 얼굴로 그 겨울에 가장 추운 날씨라고 호들갑을 떨면서 안내하던 날, 그 일이 일어났다. 추위 때문에 모든 것이 돌처럼 얼어붙었다. 공기 속의 수분이나 물 따위의 액체만이 아니라, 이미 고체인 땅과 담과 건물과 가게의 간판들, 아이들 놀이터의 놀이 기구조차 무기처럼 얼어붙었다. 아침 일찍 다른 날과 다르지 않은 얼굴로 일터로 나간 남편의 전화로 낯선 목소리가 현수에게 남편이 병원 응급실에 있다고, 지금 곧 달려와야 하겠다고 알려왔다. 같은 문장 패턴을 반복해 가르쳐도 전혀 그 영어 문장에는 아무 관심이 없는 학습지 고객인 아이에게 현수가 짜증이 나려던 때였다. 전화를 끊고 ‘좀 일찍 마쳐도 되겠니?’ 하는 현수의 말에 아이는 갑자기 환한 얼굴이 되어서 ‘괜찮아요, 좋아요.’라고 외쳤다.

노선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가는 짧은 시간 동안 현수의 머릿속에는 많은 생각들이 일어났다 사라졌다 했다. 며칠 전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아들과 남편이 이마를 맞대고 무언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둘이 그렇게 사이가 좋은 모습을 오랜만에 보여서 현수도 덩달아 두 사람의 어깨 너머로 넘겨 보니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은 사진첩이었다. 현수와 남편이 대학시절 만난 때 이후부터 함께 살며 아이를 낳고 기르고 여행하고 했던 그들 가족의 기록들이 색이 약간 바랜 채 정리되어 있는 앨범이었다. 바뀐 환경에 사춘기를 겪으며 속을 무척 썩이던 아들도 어느 새 고등학교를 졸업할 나이가 되었다. 이제 조금씩 부모를 이해하는지 부모를 대하는 태도가 이즈음에는 좀 고분고분해졌고, 남편의 말에도 입술을 깨물지 않고도, 못마땅한 듯 고개를 돌리지 않고도 말을 주고받았다. 설거지를 하며 두 사람이 사진을 들여다보며 주고받는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현수도 간간이 대화 사이에 끼어들기도 했다. 오랫만에 가족이라는 따뜻함을 느끼며 감상적인 기분이 되었다. 그리고 다음 날인가, 남편은 돈을 제법 주었음직한 겨울 점퍼를 아들의 졸업 선물이라고 사 왔다. 오리인지 거위인지의 털이 두툼하게 충전재로 들어 있는 그 점퍼를 받고 어린애처럼 좋아하는 아들과는 달리 현수는 왠지 모를 찜찜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저녁상에서 숟가락을 떠서 입에 넣던 남편이,

“내가 없으면......”

하고 입안에서 밥을 씹는 것처럼 웅얼거렸다. 현수가 잘 못 알아듣고 남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자 뒷말을 잇지 않고 그냥 한 번 웃어 주고는 숟가락으로 김치찌개 국물을 떠서 입에 넣었다. 그러나 현수는 남편의 웃는 얼굴이 도무지 낯설어서, 같이 웃어지지 않았다.

응급실에서 수술실로, 수술실에서 다시 중환자실로 옮기는 동안에도 남편의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고, 창백한 얼굴에는 죽음이 드리워져 있었다. 추운 날씨 탓에 밖으로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인지 그가 딛고 있던 고가 사다리가 어떻게 넘어져서 땅으로 곤두박질을 쳤는지를 본 사람이 종내 나타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근처에서 조그만 잡화가게를 하던 가게 주인이 머뭇거리며, 사고가 날 무렵 그 좁은 길에 택시가 한 대 지나가기는 했다고 말해서 경찰도 사고 경위를 조사하는 데 애를 먹었다. 타고난 성격이 그래서인지 경찰관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원, 이렇게 매서운 날 뭐하려고 그 높은 데 매달려 있었노? 날씨가 좀 풀리거든 하라고 사장이 말했다는데, 자기 목숨을 걸고 이 추위에 거길 올라갔으니, 죽으려고 작정한 사람도 아니고. 쯧쯧. 얼어 있는 시멘트 땅바닥은 단단기가 강철인데, 거기 떨어지는 것은 쇠몽둥이로 머리를 맞는 것하고 다름없다니까요, 아주머니. 그러니까 떨어지며 땅에 부딪혔던 머리 한 쪽이 저렇게 온전히 다 날아간 거 아뇨.”

남편을 중환자실에 눕혀 놓고 하루에 두 번 면회하기 위해서 현수는 중환자 보호자 대기실에서 스물네 시간을 기다리며 보냈다. 가끔씩 갈아입을 옷가지 따위를 가지고 아들이 다녀가고, 문병이라고 더러 왔다가는 사람도 있었지만, 현수에게는 누가 왔는지 누가 제 손을 잡았다가 놓았는지 그들이 다녀가고 난 뒤면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루에 두 번, 소독된 옷으로 갈아입고 중환자실로 들어가 눈 뜨지 않는 남편의 손을 잡고는 ‘눈 좀 떠 봐, 눈 좀 떠 봐, 눈 좀 떠 봐’ 하고 주문 같은 말만 반복했다. 그 시간 외에라도 현수는 병원 울타리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자신이 병원을 비우면 남편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은 불안감에 병원을 벗어나서 다른 일을 할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병원은 인심이 후한지 보호자 대기실은 바닥이 절절 끓도록 난방이 잘 되어 있었다. 그 뜨거운 방바닥에 누워서 다음 면회 시간을 기다리며 누우면 방바닥 저 아래, 아니 저 땅 속 깊은 곳 어딘가에서 누가 있어 현수 자신의 몸을 땅 밑으로 강하게 잡아당겨 끌고 가려는 것 같았다. 보호자 대기실에서는 며칠에 한 번씩 사람들이 바뀌었다. 현수처럼 오래 머물러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며칠 전에는 간암으로 거의 죽게 된 환자 보호자의 푸념을 들어주어야 했다. 둘만 있던 대기실에서 마흔 좀 넘어 보이는 그 여자는 땅바닥을 치면서 울면서 주절거렸다.

“글쎄, 집이라도 팔아서 이식 수술이라도 해 달라네요. 세 아이 눈이 새까맣게 나만 바라보고 있는데, 아이들 가르치고 입히고는 어떻게 하라고 저렇게 자기 생각만 하고 있다우. 병원에서는 이제 마음에 준비를 하라는데, 중환자실에서 정신만 돌아오면 나를 붙잡고 저렇게 난리를 치니,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지. 아이구, 나도 힘들어 못 살겠어요.”

그 여자도 전날부터는 대기실에 보이지 않았다.

현수의 남편은 중환자실에서 두 달도 넘게 있다가 눈을 떴다. 그러나 눈만 떴을 뿐이었다. 수술로 뇌의 으깨어진 반쪽을 덜어내 버린 머리는 물웅덩이처럼 푹 꺼져 있었다. 식물처럼 누워만 있는 동안에도 머리카락은 자라 수술할 때 말끔하게 밀었던 남편의 머리에도 까실까실하게 머리카락이 제법 자라 있었다. 눈을 뜨고 난 뒤에도 여전히 그는 발가락조차도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매일 회진해 오는 담당의사도 자세한 설명 없이 고개만 갸웃거리다가, ‘지켜 봅시다.’ 하고 가면 그만이었다. 다음날, 그 다음날도 같은 날이었다. 그렇게 한 달 가량이 속절 없이 흘러갔다. 기대한다는 것이 욕심일까하고 생각할 때쯤, 남편이 발가락을 눈에 띌 듯 말 듯 움직였다. 의사가 ‘자주 자극을 주면 더 나을 것 같기는 한데...... .’ 하고 지나가는 말처럼 흘린 것에 매달려서 현수는 면회 시간 내내 남편의 몸을 여기 저기 주무르고 찌르며 움직임이 있기를 바랐다. 석 달 정도를 중환자실에서 보낸 뒤에 남편은 어린아이처럼 눈을 뜨고 머리를 움직이고 발바닥을 찌르는 자극을 주면 발가락을 움직여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중환자실에서 나와서 일반 병실로 옮겼지만, 더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간혹 격렬한 발작이 오면 온 몸이 뻣뻣한 나무둥치처럼 경직되고 그럴 때는 남편의 표정에 희미한 고통의 표정이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누어 있는지 일 년쯤 되면서 의사의 회진도 형식적이기만 할 뿐 별다른 처리나 치료가 없었다. 남편의 사고는 작업 중의 사고로 처리되어 산업재해보험공단이 몇 번의 심사를 한 뒤에 산재 확정 판결이 났다. 일시금으로 받은 보상금으로 현수는 지긋지긋한 나머지 빚을 갚았고 일정한 금액이 남편의 재해요양 연금으로 나오게 되었다. 남편의 목을 뚫어서 식도로 연결한 관으로 매일 처방해 주는 한 웅큼의 가루약을 주입하고 정해진 시간에 주사를 놓는 것 이상으로 의사가 더 이상 해 줄 게 없다고 했을 때, 현수는 조용한 외곽의 요양병원을 물색하고 남편을 그곳으로 옮겼다.

 

남산마을을 지나는데 빗방울이 듣기 시작한다. 흐린 하늘이 만든 옅은 보랏빛 공기 속에 돌탑 두 기가 마주 서 있다. 현수는 돌탑 주변의 잔디가 파란 크레파스를 짙게 칠한 도화지 같다고 생각한다. 도화지에 그림을 그린 뒤 잘라서 세워 놓은 입체 그림 같은 배롱나무 네 그루가 비안개 속에 서 있다. 현수는 이 모든 정경이 사진 프레임에 갇힌 한 장의 흑백 사진 같다고 생각했다. 지난 몇 년 간의 현수의 기억들은 안개 속의 이 정경처럼 먼지 낀 유리창 너머로 보이듯 뿌옇고 희미하였다. 언제던가, 현수가 진료 상담 중에 의사에게 물었다. 그때까지 현수는 먼저 의사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 보이지 않고 의사가 묻는 말에 대답만 하는 쪽이었다. ‘그래, 좀 어때요, 어떻게 지냈어요, 요즘 잠은 잘 자나요, 요새는 무슨 생각을 하나요, 약은 괜찮습니까?’ 이런 물음에 ‘예, 괜찮아요. 잠은.......,좀 나아지긴 했는데 꿈은 여전해요.’ 현수의 대답은 늘 그 정도였다. 그런데 그날은 현수가 자신의 속으로만 수없이 되뇌어 보던 말을 밖으로 끌어내고 싶었다.

“선생님, 저는 왜 살까요?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살까요........? 제 남편은 왜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상태로 십 년 가까이 버텨왔을까요?”

젊은 의사는 늙은이같은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글쎄요. 그건 환자분만 아니라 저도 가끔 제 자신에게 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누구나 그런 생각 한 번씩은 하고 살지 않나요? 더구나 지금 소중한 것이나 소중한 사람을 잃고 나면 현실로부터 고개를 돌려버리고 싶은 마음은 더 강하겠지요. 하지만 외부의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했겠지만 그런 코마 상태에서도 환자의 남편분은 자신이 버티어야만 가족이 유지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힘겨운 싸움에서 그렇게 오래 버틴 것인지도 모르죠. 누가 알겠어요, 자신이 이 세상을 아름답게 꾸미는 데 어떤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지. 우리들 자신은 모르잖아요. 하지만 저 위에 있는 어떤 분이 이 아래를 내려다보면, 이 세상 하나하나가 모두 제가 있어야 할 자리에 적절히 배치되어 있을 겁니다. 나 하나는 아무 의미가 없이 느껴지겠지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라는 거대한 그림을 생각하면 나도 아주 작은 한 조각으로 전체의 조화로움을 채워나가고 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하는데요....... . 작은 조각으로 된 퍼즐그림 맞추기 게임처럼요.”

돌탑을 앞세우고 배경처럼 지키고 있는 저 마을이 없어도, 절도 없이 돌탑만 두 기 덩그러니 서 있는 이 경치가 이렇게 따뜻하게 느껴질까 하고 현수는 생각한다.

마을 끝, 산길이 시작되는 소나무 숲쯤에 왔는데 빗방울이 굵어졌다. 산길 초입에 잡목을 쳐내고 넓은 개활지를 만든 과수원 집 추녀 밑에 서서 잠시 비를 피하려 하는데 그 동안 지나다니며 얼굴을 익혀 놓았다고 생각했던 그 집의 개가 줄에 묶인 채 짖어댄다. ‘쉬잇, 쯧쯧.’ 하고 현수가 어르는 소리에 개는 더 날뛰며 짖는다. 할 수 없이 가방에서 비닐 비옷을 꺼내 입고 현수는 산길로 들어선다. 날씨 탓인지 산을 오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처음 암자에 오르기 시작할 때 분홍색 구름같은 꽃을 피우고 있던 진달래 군락도 꽃은 이미 이울고 잎만 무성해서 한 철 화려했던 흔적은 지나가고 없다. 공기가 통하지 않는 비닐 비옷 안으로 끈끈하게 땀이 배어나온다. 비 때문에 흙길이 미끄러워서 걷기에 불편하다. 암자에 올라가는 길에 가장 숨이 차고 힘든 곳이어서 사람들이 깔딱고개라고 이름 붙인 가파른 고갯길을 현수는 숨을 헐떡이며 올라간다. 비는 점점 더 심해지고 빗물에 흠뻑 젖은 흙덩이들이 신발에 달라붙어 걷기가 더 불편하다. 하늘의 비구름이 빠르게 서쪽으로 움직여 가는 것으로 보아 비는 곧 그칠 것 같기도 하다. 현수는 큰 참나무 아래 너럭바위 위에 서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려보기로 한다. 근처에 절로 자란 밤나무가 많은지 비에 젖은 공기에 밤꽃 냄새가 묻어온다. 밤꽃 냄새.........

 

- 이제서야 당신에게 고백하지만 밤꽃 냄새 때문에 흔들렸던 때가 있었답니다. 당신도 알고 있지 않았을까요, 내 흔들림을. 우리가 그 요양병원에서 보낸 시간이 세 해에서 반 년 쯤 더 되었을 무렵이었지요, 아마. 특별하게 위험한 징후 없이 매일매일 비슷한 상태가 지속되는 당신 머리맡에 붙여 둔 나의 하루 일정은 기계처럼 반복되는 행동으로 채워져 있었지요. 목을 통해 위장에 삽입된 관으로 하루 세 번 액체 영양식을 주입하고, 그리고 30분 후에 항생제며 항경련제 따위를 또 주입하고, 그보다 더 자주 기도(氣道)에 고이는 가래를 석션해서 제거해야 했지요. 아침에 얼굴이며 손을 깨끗하게 닦으며 당신의 누운 자세를 바꾸었고, 오후에는 몸을 닦아내며 또 자세를 바꾸어 눕혀야 했지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욕창이 생길 테니까요. 다행히 당신은 욕창 때문에 고생한 적은 없었지요. 의식이 없는 당신을 나의 작은 체구로 돌아눕히고,들고, 자세를 바꾸고 하는 것은 굉장한 노동이었지요. 가끔씩 방문하는 방문객들은 당신이 오래 누워 있는 사람답지 않게 상처 하나없이 깨끗하고 말끔하다고 내게 칭찬을 하곤 했지만, 그들에게 내 손목과 어깨의 심한 통증을 말해줄 필요가 뭐 있었겠어요.

하루하루가 큰 변화 없이 지나가고 당신은 주입되는 음식물을 받아들이고, 눈을 껌벅거리며 깨어 있거나, 자고 있거나, 어린아이처럼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을 하거나, 기저귀를 통해 배설하고 또 주입되는 액체 음식을 받아들이고 하며 그 긴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머리맡 창가에 놓아둔 선인장 화분도 당신처럼 그다지 자라지도 않고 그렇다고 쉽게 시들거나 하지도 않으면서 늘 거기서 거기인 채로 당신과 쌍둥이인 양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가끔은 정말 궁금했었습니다. 당신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당신이 머물고 있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어디에 속한 곳인지, 당신과 나는 지금 같은 세상에 머물고 있기나 한 건지. 한때 나와 당신이 한 자리에 들어 서로를 쓰다듬고 한 몸이 되었던 적이 있었다는 것이 터무니없는 거짓처럼으로도 여겨졌습니다. 무수한 별들로 가득한 우주가 우리 안에서 빛으로 가득 차 팽창하다가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고 다시 캄캄한 태초의 어둠이 되곤 했던 그 아름답던 순간을 우리가 공유했던 밤도 내 기억에서만 존재하는 상상이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다만 당신은 생존하기 위해서 양육자의 손길이 꼭 필요한 신생아처럼 내게 맡겨졌고, 나는 당신을 보호하고 양육하는 보육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대답 없는 당신을 향한 나 혼자의 주절거림도 그 무렵에는 거의 줄어들어서 나나 돈을 받고 옆 병상 환자를 보살피는 요양보호사나 환자를 대하는 태도의 건조함에는 별 다를 바가 없어 보였지요.

어느 날 해바라기를 하러 1층 화단가에 앉아 있는데, 줄지어 지나가는 검은 개미떼를 보았지요. 사람들이 흘렸을 과자 부스러기인지를 하나씩 물고 줄 지어 개미 구멍으로 들어가는 개미들의 보잘것없는 삶에 갑자기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해 발로 그 개미들의 대오를 짓이겨버리고 싶었습니다. 어느 시간 이후로 우리가 죽 겪어 오고 있는 삶의 신산함이 지겹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이 세상이 우리, 즉 나와 당신이 여기 이렇게 살고 있음을 눈여겨 봐 주기나 하는지 와락 의구심도 들더군요.

그 남자는 다른 병상의 보호자였지요. 한 병실에 네 개의 침상이 있었지만 당신 바로 곁의 환자는 상태가 갑자기 나빠져서 일반 병원의 응급실로 옮겨가고 한 침상 건너에 그 남자의 아내가 누워 있었지요. 처음 그와 그의 아내가 이 병실로 들어오던 날, 의식이 없는 아내를 아기처럼 안고 와서 침상에 누이는 남자 옆에서 어머니인 듯 나이 지긋한 부인 한 사람이 거들기는 커녕 이마 한 가운데 내 천(川)자를 그린 채 그저 혀만 쯧쯧 차면서 남자가 하는 양을 구경꾼처럼 지켜 보며 서 있더군요. 남자의 아내는 제왕절개로 분만하는 과정의 마취에서 아직 깨나지 못하고 있다 하더군요. 태어난 사내아기는 어머니에게 맡기고, 자력 호흡 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아내 를 남자가 살뜰하게 보살피더군요. 남자보다 열 살이나 어리다는 아내는 무심한 의사가 사전에 테스트하지 않은 마취제에 거부반응을 일으켜 수술 중에 이미 뇌 기능이 마비되었고 자신이 낳은 아이를 한 번 안아주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서른 후반쯤으로 보이는 남자는 아내를 수발하려고 직장까지 쉬고 있다 하더군요.

 

 

어느 날 탕비실에 숟가락이며 컵 따위를 들고 씻으러 갔는데 그 남자도 거기서 무언가를 씻고 있더군요. 두 개의 나란한 개수대에서 말없이 자신의 물건들을 씻다가 개수대 위 선반에 얹힌 세제를 집으려는데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물건 씻는 일에 열중하고 있는 남자의 유난히 긴 속눈썹이 내 눈에 들어왔지요. 그 속눈썹 끝에 물기 같은 것이 묻어 있다는 것이 내 착각이었는지......... 아직 행복해야 할 젊은 남자의 긴 속눈썹 끄트머리의 물기가 와락 가슴 아프게 애잔하고, 내 속에 잠들어 있던 연민을 불러오더군요. 내가 그 남자에게 한 마디씩이나마 말을 붙여보게 된 게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오늘은 습기가 좀 많은 날씨네요. 이런 날에는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더 신경 써야 해요. 환자의 자세 바꾸기를 한 번씩 더 해 주세요. 주입하는 액체 음식을 이 회사 제품으로 바꿨는데, 맛을 보니까 저번에 먹던 것보다 조금 더 담백한 맛이 나서 이걸로 바꿀까 해요, 아내 분도 이걸로 바꿔 보실래요? 물수건이 없으면 여기 이 일회용 물수건 쓰셔도 돼요.’ 이런 따위의 말들도 겨우 하루에 한 두 번이지만 그때마다 그 남자는 '예,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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