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cafe.daum.net/pohangliterature


http://cafe.daum.net/pohangliterature/F4C8/17

 1400만원 고료

8회 포항소재문학작품 현상공모


해맞는 고장, 포항을 아십니까?

연오랑 세오녀의 설화가 살아 숨 쉬는 포항은 우리의 역사 속에서 동해를

지켜온 국난극복의 고장이자 조국의 산업화를 이끌어 온 철강도시입니다.

미래의 첨단과학 도시, 문화예술의 도시로 성장하는

포항을 소재로 하는 문학 작품을 공모합니다.

포항과 여러분의 따뜻한 인연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공모부문 , 단편소설, 수필

응모자격  19세 이상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공모기간 2016. 8. 1 ~ 2016. 10. 31

응모편수  3편 이상, 단편소설 1편 이상, 수필 2편 이상

응모요령 우편으로만 접수합니다.


우) 37685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대이로 5번길 20-9

도서출판 아르코 포항소재 문학작품 현상공모 담당자


문 의 처  http://cafe.daum.net/pohangliterature 공모문의 게시판


상금내역 대상 1(700만원)

최우수상(소설 200만원, ·수필 100만원,  3)

우 수 상(각 부문당 2명씩 50만원,  6)


표절하거나 다른 지면에 발표된 작품일 경우 입상이 취소됩니다.

응모자는 반드시 실명으로 투고하여야 합니다.

해당작이 없는 경우에는 시상을 하지 않습니다.

저작권은 향후 5년간 포항시 소유로 합니다.

 




 

 
 
또다른 나 16.06.11. 00:41
질문입니다..
응모편수의 세가지를 모두 충족해야하는건가요
아니면
시 소설 수필 세가지중 하나를 충족하면 되는건지모...
알려주세요
 
산가람 16.06.11. 07:45
시를 쓰는 분이 수필이나 소설을 쓸수있는 분은 보았지만 일정 성취는 어렵더군요. 시인이면 시, 소설가면 소설을 수필가면 수필을 씁니다. 님은 너무 큰 재능을 가지고 계시군요. 보통 사람이라면 셋중 하나라도 감당하기 어려운 것인데...
 
jejes 16.08.18. 20:22
단편소설이라 하면 분량이나 양식이 어떻게되죠?
 
산가람 16.08.19. 12:16
인터넷 검색을 하니 다음과 같은 답변이 있네요.

단편소설과 중편소설, 장편소설의 원고 분량은 200자 원고지를 기준으로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습니다.
여기서 일반적이라 함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한다는 것이지요.
미국과 유럽에서 일컫는 단편소설은 우리나라와는 개념이 다르기 때문에
이 일반적인 원고 분량도 한국에서 통용되는 경우입니다.

단편소설은 70~150매
중편소설은 150~250매
장편소설은 700~1200매

최근에는 500~600매 정도 분량의 소설을 경장편이라고 부르기도 하더군요.

컴퓨터로 작업하시면 '문서정보'에서 200자 원고지 기준으로 매수를 알수있습니다.
대략 A4 용지에 200자 원고지는 7매 정도로 계산합니다.
이 게시물을..

<8회 포항소재 문학공모 수상작품및 수상자>

 

대상  소설 게릴라성 소나기 김득진(부산 연제구 )

 

소설 최우수 바다는 이레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소설 우수 타에코의 인사 허영숙(부산시 남구)

소설 우수 사흘간의 동행 김동혁(부산시 사하구)

 

최우수 사방기념공원을 읽다 박희정(서울특별시 마포구)

시 우수 火蛇(화사) 또는 花蛇(화사)’ 강태승(서울시 중구)

시 우수 비단위에 철꽃이 핀날 탁문갑(서울 중랑구)

 

수필 최우수 적산을 품다 권정숙(포항시 북구 새천년대로)

수필 우수 가족의 기원 김강(포항시 북구 삼호로)

수필 우수 남성재 설경자(포항시 남구 대송면

[제8회 포항소재 문학작품공모 수상자발표 보도내용]

8회 포항소재문학상 대상에 부산의 김득진 씨 소설 게릴라성 소나기당선


포항문인협회는 제8회 포항소재문학작품공모 수상자를 발표하였다.

최고상인 대상에는 부산에 거주하는 김득진 씨의 소설 게릴라성 소나기가 선정되었고, 소설 최우수는 이레(경기도 성남) 씨의 바다는시부 최우수는 박희정(서울 마포)사방기념공원을 읽다’, 수필 최우수는 권정숙(포항 북구)적산을 품다가 입상하였다.

대상 작품 게릴라성 소나기는 형산강 강변 과수원에서 강과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소재로 쓴 단편소설이다. 소설 심사를 본 박상준(문학평론가, 포스텍 교수)는 김득진의 소설은 인물들이 공유하는 아픔 곧 국토 개발과 자본의 착취에 따르는 넓은 의미의 고향 상실이라는 상처와 그것을 벗어나고자 하는 소망이 보편성의 색채를 더해줌으로써, 전체적으로 보아 호흡이 긴 울림을 갖추게 된 것이 <게릴라성 소나기>의 장점이다.”라고 하였다.

김득진 씨는 이미 2014 동양일보 신춘문예 소설 <나홋카의 안개>, 2014 8회 해양문학상 중편소설 <아디오스 아툰> , 2015 2회 경북일보문학대전 단편소설 <떠돌이 개> 등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았으며, 2015년에는 부산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를 받아 <아디오스 아툰> 소설집 출간하였다.

1030일 마감한 포항소재문학작품공모에는 전국 각양각지에서 시부에 72260, 소설에 2022, 수필에 2554편이 응모하였다. 입상작에 대한 시상은 1216() 오후 6시 포스코국제관 회의실에서 있게 된다.


<경북일보>

http://www.kyongbuk.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977230


<경북매일>

http://www.kb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399865


<경북도민일보>

http://www.h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313825
====================================

http://blog.daum.net/ssnnsaram/8

  (2013년 제5회 포항소재 문학상 최우수상 수상작)

 장기농가
   
1

 

 ‘우우웅’

 며칠째 내리던 비가 잦아들었지만 바람은 여전히 호시탐탐 방문을 노렸다. 빗물을 머금은 천장에서 떨어지는 작은 물줄기는 방바닥에 놓여있는 바가지를 찾아 들어갔다. 애벌레처럼 웅크려야 겨우 잠자리 구실을 하는 아래채 골방에서 빗물받이와의 동침은 약용의 등을 더 구부정하게 만들었다. 어차피 불면의 밤인 것을 아무려면 어떤가? 오히려 ‘뚜둑뚜둑’ 낙수소리에 가슴 속에 뭉친 그 무엇을 조금이나마 희석시킬 수 있을 것 같기도 하였다. 육신이 상한 것은 달포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거동하는 데 불편이 없었다. 그러나 가슴 속의 그 무엇은 날이 갈수록 불덩이가 되어 지금은 약용을 집어 삼킬 듯 이글거렸기에 이 곳 장기에 온 이후로 밤마다 이를 달래느라 잠을 잊고 지냈다. 어느 때에는 차라리 그 시뻘건 덩어리에 그냥 몸을 던져 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직전에 이르러서는 차마 실행하지 못한 구차함에 불덩이를 더 키우는 꼴만 되었다.

 좌우로 번갈아가며 몸을 누이다 결국엔 일어나 앉았다. 문을 열고 넘칠 듯이 찰랑이는 물바가지를 마당에 뿌렸다. 잠시 문을 여닫는 사이 채 한 평이 되지 않는 골방은 바람이 차지하였다. 약용은 눅눅한 멍석 바닥에 다시 등을 대기를 포기하고 비에 젖을라 방 안 구석에 놓아둔 짚신에 발을 꾀었다. 축대에 내려 심호흡을 하니 차가운 공기가 어둠과 함께 폐부를 타고 내려와 가슴을 채웠다. 까맣던 하늘이 아주 조금은 푸른 빛을 띠는 듯 하였다. 처마 밑에 아무렇게나 누워 있는 죽장(竹杖)을 챙겨 마당에 발을 딛었다. 금새 짚신 사이로 흙탕물이 스며들더니 이내 발바닥을 더렵혔다. 사립문을 나서 방향을 동쪽으로 잡았다. 몇몇 인가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골목을 나와 왼쪽으로 길을 틀어 스무 걸음 남짓 움직이니 며칠 동안의 비에 제법 수위를 불린 장기천이 위세를 떨며 굽이치고 휘몰아치고 있었다. 저 소용돌이에 이 육신을 던지면......그러면 모든 게 그만인 것을. 정신이 아련해졌다.

 

 

 임금의 갑작스럽고 석연치 않은 죽음에 조정이 혼란스러운 사이 11살의 어린 세자가 왕의 자리에 올랐다. 호시탐탐 임금과 시파(時派)에 반격의 기회를 노리던 벽파(辟派)와 외척(外戚)은 새 왕이 어리단 이유로 대왕대비의 수렴청정을 일사천리로 진행하였다. 겉으로는 유지를 받든다고 하였으나 선왕의 그늘 아래서 실학을 구현하던 조정 관료들의 앞날은 짙은 안개 속이었다. 어린 나이에 중전이 되어 구중궁궐의 권력다툼 한가운데서 일생을 보내다 선왕에 의해 친정의 몰락을 지켜본 대비의 한(恨)은 약용이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집요하고 독하였다.

 진산사건을 빌미로 신유년에 행하여진 천주교도에 대한 박해의 칼 끝은 정확히 선왕의 최측근이었던 약용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저들에겐 천주교의 탄압과 함께 선왕의 사람들을 제거할 수 있는 일거양득의 기회였던 것이다. 숨이 턱턱 막히는 의금부의 공기 아래 이루어진 고신(拷訊)은 상상을 초월하였다. 하루에도 십 수명의 정강이가 형틀에서 부러졌다. 정강이살을 삐져나온 부러진 허연 뼈. 사방에 자욱하게 퍼진 살 타는 냄새와 여기저기에서 무시로 들리는 매 타작과 비명 소리.

 일찍이 젊은 호기로 서학과 함께 천주교를 접한 적이 있으나 이는 단지 서양의 사상과 문물에 대한 호기심일 뿐이었다. 허나, 이것이 평생 떼질 못하는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며 약용을 괴롭힐 줄은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이상과 맞지 않아 젊은 시절 이후 서양 귀신을 멀리 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던 덕분에 약전 형님과 함께 죽음은 면하였다. 죽음을 면한 것이 과연 다행인 것일까? 얼굴은 부어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고 몸뚱이 절반 이상이 인두에 지져진 채 사대문 밖으로 질질 끌려나가 망나니의 칼춤에 목이 떨어진 약전 형님과 자형 승훈은 목숨이 다하기 전 먼 하늘을 응시하며 희미하지만 평화로운 웃음을 지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사나흘 사이에 이 백이 넘는 천주교도들이 배교(背敎)를 거부한 채 도성 밖에서 숨이 끊어졌다. 그들은 생명을 내려놓고서 생전 전도할 때 항상 얘기하던 구원이라는 것을 얻었을까? 죽어서 천주 곁에 간 사람들은 정말로 이승에 살았을 때 감당해야 할 현실의 무게에서 벗어났을까?

 

 

 불은 물이 옆길마저 침범하려 하는 장기천을 따라 신창리로 발길을 향했다. 장기에 도착한 후 꼬박 닷새를 곡기를 끊은 상태로 반 혼수상태로 누워 지낸 다음, 겨우 고신과 여독의 후유증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 움직임이 가능해지자 약용은 현감의 허락을 얻어 거처에서 바다 입구까지 산보하는 것을 일과로 삼고 있었다. 비는 그쳤지만 바람은 아직 세고 찼다. 눅눅해진 저고리 사이로 바람이 스며들었다. 아랫도리에서 시큼한 냄새가 올라왔다. 목욕을 한 지가 언제였던가. 습했던 피부가 오싹해지면서 소름이 돋았다. ‘푸득’ 수풀에서 개구리 한 마리가 튀어나와 발등에 앉았다가 식겁하고 반대편으로 뛰었다. 태양은 아직 보이지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영영 떠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약용은 고개를 들어 과인을 보라.”

 “망극하옵니다.”

 “미안하구나. 법도가 아닌 줄은 알겠으나 내 너의 재주가 긴히 필요하여 한양으로 올렸느니라. 정 자식의 도리를 하고자 한다면 여기 서책들이라도 가지고 내려가거라. 네 어깨에 과인 일생의 숙원이 달렸으니 비록 상중이나 성심을 다하여라.”

 “전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부친이 죽고 시묘살이 중에도 임금은 약용을 마음으로 아꼈다. 친히 궁으로 불러 화성의 설계도와 거중기의 원리를 소개한 청나라의 서책을 내려 약용이 마냥 아비 잃은 슬픔에 빠져 3년의 시간 동안 은둔해 있는 것을 막았다. 임금은 넓은 들과 바다에서부터 작은 쥐구멍까지 어느 한군데 빠지지 않고 비추는, 진정 태양이었다.

 그런 태양이 갑자기 추락하자 세상이 뒤집혔다. 주군만 바라보며 그것이 사는 유일한 이유라 여겼던 약용은 시력과 방향을 잃었다. 그동안 최고라 여겼던 많은 가치들이 하루아침에 뒤집어져 시궁창에 버려졌다. 아니 시궁창에 버려진 건 가치가 아니라 장님이 되어버린 약용 자신이었다. 학문을 하여 무엇 하는가? 개혁을 하여서는 또 무엇 하는가? 먹구름이 세상을 덮어버리면 다 부질없는 것이거늘. 태어나서 학문을 한답시고 읽어왔던 머릿속의 온갖 것들을 끄집어 내어 저기 굽이치는 물에 던져버렸으면......그리하여 이곳 사람들처럼 들짐승과 다름없는 모습으로 한 세상 살다 갔으면 좋으련만.

 

 

 유배를 온 후 하루도 걸러지지 않는 잡스런 생각들이었지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가슴이 답답해지고 숨이 가빠지면서 다리에 힘이 풀렸다. 서둘러 주위에 앉을 만한 곳을 찾았다. 다행이 작은 바위 하나가 눈에 띄었다. 얼른 죽장을 내팽겨 치고 바위 위에 털썩 몸을 얹었다. 이마에 식은땀이 촉촉하게 맺혔다. 뒤통수에 솟은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오한이 들었다. 몇 차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내뿜어도 크게 진정이 되지 않아 주먹으로 가슴을 쳐댔다. 폭발할 것만 같았다.

 약용이 한참을 바위에 앉아 잡스런 생각에 어지러워하며 이를 진정시키려 애를 쓰고 있을무렵 노파와 젊은 아낙이 길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약용의 앞을 지나가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걱정스런 눈으로 약용의 안색을 살피다 약용이 인기척을 느끼고 상체를 옆으로 틀어 좁은 길을 내어주자 연신 고개를 조아리면서 재빨리 그 앞을 지나갔다. 무척이나 남루한 차림이다. 노파는 작은 발에 비해 너무나 큰 짚신에 아무렇게나 발을 얹다시피 하였고 저고리 아래로 젖가슴이 훤히 드러나 덜렁거렸다. 다행히 가슴 간수는 겨우 하였다고 하나 며느리인 듯 보이는 젊은 아낙의 의복 또한 노파보다 낫다고 할 수는 없는 행색이었다. 이 시간에 저리 바삐 집을 나선 것을 보면 아마 간밤의 비에 며칠 전 모를 낸 논이 잠기지 않았는지 보러 가는 것이리라. 그러고 보니 늙은 아낙의 낯이 익다. 현감이 업무를 보는 동헌(東軒)마저 방 두어 칸의 작은 기와집일 정도로 벽지(僻地)인 이곳에 도착하여 묵을 곳이 여의치 않아 곤란해 하다 겨우 관아 아전인 성선봉의 집 아래채에 거처를 마련했을 때 쯤 바느질 자국이 선명한 바가지에 보리쌀을 담아 성포교의 아낙에게 전하며 얼굴을 붉히던 그 아낙이 아니던가? 자기 소유의 땅이라고는 바늘 하나 꽂을 곳 없는 살림에도 한양에서 압송된 폐족(廢族)을 위해 생명과 같은 양식 한 귀퉁이를 말없이 내어주는 넉넉한 인심의 사람들이었다. 한양에서 압송 후 열 하루 만에 도착한 이 고을의 첫인상이란 그저 염분 머금은 악독한 기운으로 병이 날 듯 하고 곳곳에 잡초가 우거진 척박한 곳일 뿐이라 생각을 했었다. 대부분 주민들의 행색 또한 대체적으로 이 여인들 보다 낫다고 할 수 없었다. 바다일과 땅을 같이 일군다고 하나 주민들은 늘 굶주렸고 쪼들렸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옛말이 여기서는 예외로 통하는 것인가? 하긴 인심 고약하기로는 온갖 부정으로 부를 축적하여 배에 기름기가 가득 낀 한양 양반들이 조선 최고 악질일 테니 사는 행색과 마음 씀씀이가 꼭 비례한다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생각은 이 고을 인심으로 흘러 자연스레 고향생각으로 이어졌다. 마을 앞 남한강 위로 미곡과 잡화를 한양으로 실어 나르는 나룻배가 하루에도 십 수척씩 떠다니고 강변 너른 들판에서 나는 쌀은 예로부터 밥맛 좋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작은 마을이었지만 집집마다 쌀독은 바닥을 드러낼 줄 몰랐고 마음 씀씀이가 여유로운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였다. 어린 시절 서당을 파하면 즐겨 찾았던 나루터 모래밭...... 지금도 여전히 강은 넉넉하게 흐르고 모래밭의 모래들은 태양빛을 황금색으로 반사하고 있겠지. 문득 고향 마재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던 형제들도 그리웠다. 약전 형님은 어떻게 되었을까? 서쪽 바다 작은 섬으로 끌려가는 여정동안 변은 당하지 않았을까? 지금까지 관군의 손에 잡히지 않은 조카사위 황사영은 어디에서 누구에게 몸을 의지하고 있을까?


 

 무릎에 손을 짚고 일어서서 바닥에 떨어진 죽장을 주웠다. 주위는 집을 나설 때보다 어둠이 많이 옅어져 고을의 형세가 눈에 들어왔고 산마루와 하늘의 경계가 점점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장기천을 차지한 누런 흙탕물은 바다를 향해 여전히 성난 기세로 흘러가고 있었다. 사방의 소리를 다 잡아먹은 채 시끄럽게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 다시 걷기 시작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장기천과 바다가 만나는 물골 한 가운데에 두 개의 키 큰 바위가 나란히 서 있는 게 보였다. 여기 사람들은 이 두 바위를 일컬어 날물치(生水岩)라 불렀다. 바위에서 마실 수 있는 샘물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목을 축이려 날물치에 다가가려 하였지만 장기천의 누렇고 거센 물살 때문에 불가능 하였다. 아뿔싸, 며칠 동안의 비를 헤아리지 못한 자신의 어리석음을 탄식하였다. 물을 마실 수 없게 되자 목을 더 마르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걸어온 거리가 제법 되었다. 할 수 없이 백사장을 좀 더 걸어 마을에 다다르기로 생각했다. 제일 가까운 집에 들어가서 물 한바가지 얻어 마실 요량이었다. 마을을 향해 걷던 약용의 눈에 작지만 가파른 바위절벽을 품고 있는 산 하나가 들어왔다. 뇌록이 많이 난다는 뇌성산이었다. 뇌록은 궁전이나 사찰의 단청을 칠할 때 녹색을 내는 염료인데 예로부터 이곳 뇌록의 질이 좋아 궐의 진상품으로 정해져 있었다. 뇌록 채취의 노동력은 당연히 고을 백성의 몫이었다. 어딜 가나 백성들에게 짊어 씌운 세금과 공역의 무게는 고달프고 혹독했다.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백성들에게서 쥐어짜진 고통 위에 칠해진 알록달록한 단청은 이 나라 백성의 핏빛처럼 처절한 색깔이었다.

 생각이 젊었던 임금은 이 폐해를 바로잡으려 애썼지만 조직적이고 뿌리 깊은 기득권의 저항은 단단하고 무서웠다. 그에 반해 임금의 힘은 미약했고 외로웠다. 하지만 임금은 기다릴 줄 아는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 아비를 죽인 무리들과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저들의 노골적인 무시와 핍박, 심지어 세 번의 암살기도까지도 견뎌냈다. 어쩌면 할아버지의 보살핌과 어미인 세자빈의 보호가 없었더라면 일찍이 임금 자신도 세자의 운명과 다르지 않을지도 몰랐다.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즉위와 동시에 세상을 향해 일갈한 첫마디는 저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그러나 임금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기다리고 기다렸다. 마치 호랑이가 덩치가 큰 먹이를 사냥할 때처럼 신중하고도 무거웠다. 마침내 때가 되자 임금은 그들을 사방에서 옭죄어 들어갔다. 그러나 저들의 저항도 만만찮은 것이었다. 하긴 수백 년 조선왕조가 이어오는 동안 저들의 뜻에 의해 왕좌의 주인이 바뀐 적이 여러 번이니...... 저들에게 왕의 자리란 그들 기득권을 유지하기 하기 위한 수단이자 허수아비일 뿐이었다. 겉으로 임금은 저들과 싸우려들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그들을 더 불안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왕은 시간을 느긋하게 가지면서 아무도 반박할 수 없는 이유를 만들어 외척과 벽파 무리들의 세(勢)를 약화시켰다. 동시에 자신과 함께할 인재들을 발탁하여 키우고 군을 장악하여 갔다. 임금과 함께 일을 도모하던 때, 이 어둡고 답답한 나라에도 조금씩 빛이 스며든다는 희망으로 피곤한 줄 모르고 임금을 따랐는데 갑자기 하늘이 닫혀버린 것이다.

 

 

 모래해안을 따라 몇몇 사람들이 대나무 장대를 들고 파도치는 바다에서 무언가를 끌어내고 있었다. 미역이었다. 사람들은 파도가 제법 셌지만 상관하지 않고 하나라도 더 건지기 위해 바다 가까이에 다가갔다. 허연 거품을 물고 몰려오는 파도에 몸을 가누지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자기 일에 열중인 사람들 곁을 지나서 해안선을 조금 더 걸어가니 모래언덕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은 노인과 어린 아이가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머리가 다 빠져 남은 터럭 몇 올로 겨우 상투 흉내만 낸 노인의 피부는 갈라진 논바닥처럼 거칠었고 얼굴엔 그물만큼 촘촘한 주름이 패여 있었다. 등이 굽은 노인은 저래서 일을 제대로 할까 싶을 정도로 기침을 해댔다. 아이는 예닐곱 살이나 되었을까 옷을 껴입지 않은 등엔 앙상한 갈비뼈가 그대로 드러났고 얼굴엔 땟국물이 흘렀다. 아이는 졸린 지 눈곱 낀 눈을 연신 비비며 축 쳐져 있었지만 할아버지가 무서워 억지로 앉아 눈치를 보고 있었다. 밤새 비바람에 그물이 많이 흐트러져버려 이를 바로 펴 너는 데만 한참의 시간이 걸릴 듯 보였다. 노인의 허리춤에 호리병이 매달려 있는 게 보였다. 안에 든 것이 물인지 술인지는 모를 일이다. 약용이 다가갔지만 노인은 인기척을 모른 건지 모른 척 하는 건지 잠자코 그물과 씨름을 하고만 있었다.

 “여보게.”

 노인이 고개를 들어 약용을 보았다.

 “혹 물이 있으면 한 모금 얻어 마실 수 있겠는가? ”

 고개를 다시 그물로 향한 노인은 아무 대답 없이 병을 약용에게 건냈다. 약용은 호리병을 받아 입술에 대고 한 모금 들이켰다. 술이었다. 한양에 있을 때 술을 아예 안 마신 것은 아니나 즐기지 않는 약용이었다. 유배를 와서는 처음 맛보는 쓴 맛에 뜨뜻한 기운이 목구멍을 타고 흘렀다. 물을 청하니 말도 없이 술을 주는 노인에게 은근히 부아가 났다. 그렇다고 노인을 나무라기에도 속 좁은 일이었다. 더구나 죄인의 신분으로 이 고을 사람들에게 빌붙어 먹고 사는 신세 아니던가.

 “술이구먼. 여튼 잘 마셨네.”

 “화를 누르는데 도움이 될끼시더.”

 순간 속으로 뜨끔 놀랐다. 이 자가 내 속을 어떻게 안단 말인가? 바다에 의지해 겨우 생명을 이어가는 이가 여기에 온 이래 밤마다 가슴을 치며 불면을 밤을 보내고 있는 내 복잡한 속을 헤아린단 말인가? 더구나 일면식도 없는 자가......

 “여는 동네가 좁아가 소문이 금방 도니더. 저기 읍내 성포교집 아래채 나리 맞제요?”

 죄인 주제에 나리 호칭이 부담스러웠다. 부질없는 신분의 굴레였다.

 “인상을 보아하이 나쁜 일을 할 양반은 아인 것 같은데......먼 일을 그래 크게 잘몬해가 한양서 이까지 내려왔는지......하기사 사람이 나빠가 죄를 짓나? 세상이 나빠가 죄인이 되는기지.”

 모든 걸 다 안다는 듯 내뱉는 말에 놀람과 동시에 네가 뭘 아냐는 반항심이 생겼다.

 “노인장은 세상 이치에 밝은가 보이.”

 “바닷가 촌구석에서 고기 창자나 따는 노인네가 세상 이치에 뭐가 밝겠는교. 다만 이제껏 오래 살아보이 이래 사는기나 저래 사는기나 매 한가지 같아서 주제넘게 한마디 해 봤니더. 너무 언짢게 생각지 마소.”

 문득 이 노인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아주 무지할 것 같진 않을 듯한 말투며, 일을 놓고 뒷방에서 손주 재롱이나 보며 늙어갈 나이에 어린것을 데리고 새벽부터 그물을 손질하는 이유에 대해 흥미가 일었던 것이다. 약용은 저도 모르게 노인의 옆에 자리를 잡고 엉덩이를 바닥에 붙였다.

 “노인은 왜 이 시간에 여기에서 그물을 손질하는가? 보아하니 일할 나이는 한참이나 지난 듯 한데......?”

 “배 타는데 나이가 따로 있겠냐마는......당연히 이제 기력이 다 돼가 배는 몬타지요. 탈 배도 없고요.”

 “그럼 이 그물은 누구겐가? 탈 배도 없다면서.”

 “그냥 일손 귀한 동네 사람들 그물을 대신 손질해주고 손자놈이랑 입에 풀칠이나 하고 있니더.”

 대답을 마친 노인은 약용을 한참 쳐다보더니 손질하던 그물을 내려놓고 허리 뒷춤에 꽂혀있던 곰방대를 뽑아 부싯돌로 불을 붙였다. 깊게 빨아들인 노인의 입과 코에서 한숨 섞인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 사이 아이는 어느새 그물을 벗어나서 작대기로 모래밭에 그림을 그리다 파도가 오면 도망가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노인은 깊은 눈으로 바다를 응시하였다.

 “저 아 아바이는 작년에 배 끌고 나갔다가 배만 부서져가 발견됐지요. 시신은 찾도 몬하고......아마 고기밥 안됐겠는교?”

노인의 대답에서 서글픔과 회한이 묻어났다. 노인은 술병을 열고 크게 한 모금 들이킨 후 ‘크’ 소리를 내며 약용에게 건냈다. 자연스레 병을 받아든 약용도 목구멍에 또다시 한 모금을 흘렸다. 간만에 마신 술이라 약간의 양에도 얼굴이 달아오르는 기분이었다.

 “그라고 아 어마이는 지 서방 그래 되고 며칠을 미쳐갖고 허재비 같이 바닷가를 돌아 댕기다 어느 날 아침에 물에 떠 있는 거를 건져 냈니더. 아들 며느리 잃어뿐 내도 내지만......며칠 상간에 애비애미 없는 고아자슥 되뿐 손자 놈 불쌍해가 이 술에 기대서 내라도 억지로 정신줄 붙들고 있는 겁니더. 그라고 나도 이제 살 날이 안 남았는데 죽기 전에 어린 것한테 하나라도 더 갈쳐나야 이 세상 하직해도 저 눔아 어디 가서 밥이라도 얻어먹고 살 거 아인교. 그래서 새벽 댓바람부터 자는 아 어깨에 들쳐 메고 이래 나와 앉아 있니더.”

 약용은 노인의 말이 의아했다. 아들과 며느리를 앗아간 바다에 어린 손자를 가르쳐 또 내보내려 하다니. 노인은 목숨과 같은 자식을 집어삼킨 바다가 원망스럽지도 않은가? 약용이 만약 노인의 입장이라면 당장 여기를 떠나고 말텐데 말이다.

 “노인장은 이 바다가 원망스럽지 않은가 보이. 어찌 손자에게 까지 물일을 가르친다 말인가? 여기를 떠날 생각은 해보지 않았는가?”

 곰방대를 빨며 희끄무레한 바다를 보던 노인이 곁눈질로 약용을 보고는 이내 다시 바다로 시선을 주며 콧방귀를 뀌며 격앙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참 나! 나리, 배부른 말씀하시니더. 저희 같은 상것들이 어디 나리님들처럼 마음대로 살 곳을 옮길 수 있다고 생각니껴? 저희들은 여기를 뜨는 순간부터 죄인이시더. 하기사 요새는 관아에서 하도 사람들 쥐어 짜내는 게 무서워 차라리 산 속으로 숨어 버릴라카는 사람들도 많더구만.”

 순간 양반의 입장에서만 생각했던 게 민망하여 안 그래도 달아오른 얼굴이 더 달아올랐다. 백성들에게 지워진 노역과 세금의 무서움이야 약용도 익히 잘 알고 있는 바였다. 하나가 도망가면 이웃에게 부담을 지우는 인징, 일가에게 지우는 족징, 황구첨정, 백골징포...... 한 때는 뜻 맞는 이들과 이 폐단을 성토하며 해결책을 찾기 위해 밤을 새우길 마다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결국에는 신분의 틀에 메어 있음이었다. 그 허울만 좋은 양반의 테두리 안에......

벌겋게 얼굴이 더 달아오르는 약용을 보며 양반 앞에서 말을 함부로 했나 싶었는지 아까보다는 한층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나리, 제가 여기서 태어나서 기억나는 모든 거에는 항상 바다가 있었니더. 그거는 우리 아버지도, 아들놈도 마찬가지였을 거라요. 왜 여기를 안 떠나느냐고 물었지요? 바다에 기대서 밥 먹고 사는 집치고 바다에 피붙이 안묻은 집이 있겠는교? 시신이라도 찾으면 ‘아이고 고맙니데이’ 하지요. 그래도 사람들은 초상 치르기가 무섭게 악착같이 바다로 나가니더. 바다에는 죽음도 있지만 삶도 있는기라요. 바다를 밭으로 알고, 무덤으로 알고 사는 거는 물가 사람들 숙명 아인교.”

 숙명. 숙명이라고 했다. 평생 글만 읽은 선비는 책을 밭 삼아, 무덤삼아 사는 게 숙명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치지만 바닷가 노인의 입에서 듣는 말은 더욱 가슴에 와 닿는 것이었다. 결국 지혜라는 것은 책을 파고드는 선비의 것이든, 물질을 하던 무지렁이의 것이든 하나로 귀결되는 것이던가? 바른 길이란 책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다에도 있었다. 다만 어리석은 이는 보지 못할 뿐.

 “그래도 나는 희망이이라는 것이 있니더. 아들 내외 허망하게 갔어도 다행히 저 아는 남겨 놓고 갔으니까요. 내가 이제 살아 봐야 몇 년을 더 살겠는교? 하지만 내 핏줄 이어받은 손자놈이 장성해서 한 일가를 이루고 대를 잇고 산다면, 그기 자 아바이, 어마이가 살고 내가 사는 거나 한 가지라 여기니더. 그러고 보이 우리 손자도 바다가 아니었으면 태어날 수 있었겠는교? 보소! 바다는 이래 여기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뿌리인거라요. 원망하면 죄 받지요.”

 

 

 이 나라의 근원은 백성이다. 백성이 뿌리이자 바다이다. 임금은 태양이요, 외척과 세도가들은 태양을 가리고 있는 구름일 뿐이다. 바다는 여전히 서로 부대끼며 삶을 이어가고 생명을 잉태한다. 태양은 항상 그 자리에 있으며 구름은 언젠가 걷히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나는 무엇을 그리 힘들어 하였는가? 누구를 원망하며 괴로워하였던가? 오히려 여기는 이 나라 생명의 근원이자 바다인 민초들의 삶 속이 아니던가? 절대 마르지 않는 생명의 바다 속에서 지금껏 괴로워하였던 것이다.

 여기에서 다시 시작하리라. 백성들 속에서 그들과 같이 숨 쉬고 땀 흘리며 온 정신을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 채우리라. 이제부터 진정 이들을 위한 학문, 이들을 노래하는 시를 지으리라. 그리하여 언젠가 구름이 걷히고 태양이 이 바다를 비출 때 백성들의 염원을 가득 싣고 태양을 향해 돛을 올리리라. 노를 저으리라.

약용은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노인을 향하여 넙죽 절을 하였다. 당황은 노인이 황급히 맞절을 하며 어찌할 바를 몰라 하였다.

 “아이고 나리! 제가 너무 주제넘게 주둥이를 놀려서 이리 저를 욕보이시는교?”

 “아닐세, 아니야! 노인장이 진정 내 스승일세. 내 절을 백 번, 천 번해도 아깝지 않으이!”

 허리를 편 약용은 노인의 술병을 잡아채어 크게 한 모금 들이키고는 덩실덩실 춤을 추며 소리 내어 웃었다. 노인과 아이는 물론 미역을 채취하던 이들까지 이런 약용을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봤으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참을 그러던 약용은 지팡이를 주워 거처가 있는 마을로 향했다. 그 사이 해는 수면 위로 벌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약용의 발걸음에 괜시리 조급함이 묻어나 자꾸만 돌부리가 차였다. 일출이 주는 싱싱한 그림자가 그런 약용을 앞장서며 같이 갔다.

 

 

2

 

 

 가을밤이 꽤 깊어 달은 벌써 모습을 감추고 구름 사이로 별만 몇 개 반짝이고 있지만 약용의 처소에는 불이 꺼질 줄 몰랐다. 약용이 장기에 온 지도 이 백여 일이 지났다. 그 날 신창 바다에서 노인을 만난 이후 최대한 이 곳 주민들과 밀착하려 했다. 약용은 가장 먼저 병이 났을 때 주변의 식물을 이용한 간단한 치료법을 정리 하였다. 이전의 이곳 풍속엔 약제나 의서라는 것이 없었다. 병이 들면 무당에게 의탁하거나 그냥 죽어갈 뿐이었다. 약용이 알려준 치료법은 비록 특별할 것 없는 것들이었지만 장기 사람들에게는 새 생명을 불어 넣어 주는 기적이었다. 이후 주민들은 약용을 진심으로 존경하였고 덕분에 약용도 이들과 허물없이 지낼 수가 있었다.

 내일 오전에는 어부들을 모아놓고 소나무 삶은 물을 이용하여 그물의 부식을 방지하는 법을 알려주기로 약조하였다. 몇 날 며칠 동안 온갖 시도를 해보아서 시행착오 끝에 최근에야 겨우 방법을 알아내었다. 이제 어부들이 잊지 않아야 할 몇 가지 사항들을 기록하고 빠진 게 없는 지 검토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마무리를 앞두고 이유 모를 심란함이 자꾸만 약용을 괴롭혔다. 종이 위에 옮겨 적는 글씨가 자꾸만 궤도를 벗어나고 까닭 없이 가슴이 두근거렸다. 결국 약용은 새벽에 마무리할 요량으로 탁자를 물리고 자리에 누웠다.

 

 

 한참이 뒤척이다 얼핏 선잠이 들었을까? 본말 연결이 도무지 안 되는 꿈으로 머릿속이 어지럽혀진 채 눈을 떴다. 닭이 우는 소리에 덩달아 놀란 개가 짖는 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주민들과 여러 가지 일들을 해온 이후로 이렇게 잠자리가 불편한 적이 없었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자리에 앉아 그 까닭을 궁리하고 있는데,

 “저......나리, 일어나셨는교?”

 밖에서 성선봉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젯밤 관아에서 번을 서고 이제 퇴청하는 모양이었다. 약용은 이불을 한구석으로 밀고 옷매무새를 점검한 후 방문을 열었다. 아무리 이들과 가까워졌다 하여도 흐트러진 모습은 왠지 보이기가 싫었다.

 “이제 퇴청하신 겐가?”

 “예......저 나리, 한양에서 누가 오셨습니다요......”

 그의 뒤를 보니 옅은 어둠 속에 세 사람이 서 있었다. 복색(服色)을 보아하니 의금부 군관들이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 이것 때문에 어젯밤 그리 정신이 사나웠었던가? 한동안 이 곳 사람들과 어울려 지낸다고 잊고 있었을 뿐, 나라를 어지럽히고 귀양살이 온 죄인 신분은 변하지 않은 것이었다.

 “죄인 정약용은 어명을 받들라.”

 북쪽을 향해 절을 한 후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온 몸의 신경이 군관의 입술에 집중 되었다. 사약이 내려질 것인가?

 

 

 천주교인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가 시작된 후 행방을 감췄던 조카사위 황사영이 잡혔다. 충청도 제천의 산중에서 토기 굽는 가마에 은거하며, 핍박받는 이 나라 교인들의 상황을 청나라에 머물고 있는 신부에게 적어 보내려다 발각되었다고 한다. 두 자 남짓한 흰 비단 천에 깨알같이 적은 글자 수가 만 삼천 자를 넘겼다고 하니 사영에겐 이 방법이 그가 믿는 하느님을 향해 돛을 올리는 길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다행히 사약은 면하였다. 하지만 어명의 내용은 추가적인 조사를 위해 의금부로 압송하라는 것이었다. 목숨줄을 연장할 수 있음에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의금부 압송이라는 말에 약용은 살이 타는 냄새와 처절한 비명소리가 느껴졌다. 열흘 남짓을 걸어 의금부에 다다르면 기다리고 있을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 그리고 생사를 알 수 없는 결말......일련의 과정을 짚어보자니 아련한 현기증이 일어 다리가 휘청거렸다. 아니 그보다도 오늘 어부들과 한 약조를 지키지 못함에 안타까움을 넘어 서글픔이 일었다. 이 일만, 이것만 마무리 지을 수 있다면......

 

 오랏줄에 몸이 결박된 채 북쪽으로 향했다. 행색은 여기에 왔을 때와 별반 달라진 게 없었다. 짐이라고 해봐야 어깨에 맨 괴나리봇짐 하나에 성선봉이 달아준 짚신 두 켤레가 다였다. 봄의 가운데 어느 날 이곳에 도착하여 겨울의 초입에 떠나니 네 계절을 모두 겪고 떠남에 위안을 삼아야 할 것인가? 자꾸만 고개를 돌려 멀러지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람에 상투가 풀려 머리카락이 눈을 찔렀다. 따가웠다. 눈물이 났다. 작별인사라도 제대로 하고 떠났으면 좋았을 것을. 어디선가 아련히 노랫가락 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보릿고개 험한 고개 태산같이 험한 고개

단오명절 지나야만 가을이 시작되지

풋보리죽 한 사발을 그 누가 들고 가서

주사의 대감도 좀 맛보라고 나눠줄까

 

 

 노래의 가사가 왠지 익숙하다 싶었는데 이건 약용이 지은 장기농가의 한 부분이 아니던가. 이게 어찌하여 노래로 불려진단 말인가? 그리고 이것을 부르고 있는 이들은 누구란 말인가? 당황하여 어지러이 사방을 살피던 차에 언덕 너머 수십 명의 사람들이 보였다. 그 무리의 맨 앞에는 노인이 어린 손자 손을 잡고 있었다. 그 뒤로는 성선봉네 내외, 늙은 아낙과 며느리도 보였다. 노래는 예전 약용이 해안에서 종종 노인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혼잣말로 지은 시를 읊었을 때 노인도 가르쳐 달라 해서 몇 수 알려준 것이었다. 아무리 그렇지만 이것을 기억해서 가락을 붙여 여럿이 돌려가며 부를 줄이야. 노래는 계속되고 있었다.

 

 

상추쌈에 보리밥을 둘둘 싸서 삼키고는

고추장에 파뿌리를 곁들여서 먹는다

금년에는 넙치마저 구하기가 어려운데

잡는 족족 말려서 관가에다 바친다네

 

 

 노래를 듣는 이나, 부르는 이들의 얼굴에는 아쉬움의 눈물이 흘렀다. 이보다 더 극적인 작별인사를 할 수 있을까? 그래도 저들의 가슴 한켠에 조그맣게 자리를 잡고 떠나는 듯 하여 다행이었다. 약용은 저들 생활에 작은 편리를 주었지만, 저들은 약용의 삶에 전환점을 주었다. ‘내 비록 지금 한양으로 가서 생을 마감한다 하여도 후회하지 않는다. 선왕이 살아계실 적엔 충성을 다하여 임금을 모셨고, 유배 와서는 성심을 다하여 백성들과 함께 하였으니 후회 없는 삶이었다. 하지만 만약, 하늘이 내가 아직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음을 헤아려 덤으로 생을 더 준다면 내 진정 민초가 되어 저들과 같이 밟히고 뜯겨지며 다시 일어서는 삶을 살리라.’

 

 

호박 심어 토실토실 떡잎이 나더니만

밤 사이에 덩굴 뻗어 사립문에 얽혀 있다

평생토록 수박을 심지 않은 까닭은

아전놈들 트집잡고 시비 걸까 무서워서라네


 

 문득 한양으로 가는 압송길이 그리 고달프지만은 않을 듯 여겨졌다. 푸른 하늘에 걸린 태양이 그런 약용의 등 뒤를 비추고 있었다. 모포리 보리밭을 지나 처음 유배올 때, 신창리 모래밭에서 울분을 토해낼 때, 읍내리 주민들과 모내기를 할 때 약용을 변함없이 지켜보던 동해의 태양이었다.

 하루카의 전설(제6회 포항소재 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수 추천수 날짜
428 2024년 제4회 열 줄 소설 공모전 (2024. 06. 10(월) ~ 07. 21(일)) & 수상작 발표 (08. 22.목)* image
상상마당아카데미
1163   2024-07-08
427 원미닛고 제4회 1분소설공모전 (2025.6.2~6.30)* image
원미닛고
4   2025-06-08
426 2025년 제 25회 산림문화작품공모전 (2025.6.3~7.23 접수) * image
산림조합중앙회
13   2025-06-04
425 제29회 근로자문학제 수상자 명단 발표(2008/8/5) 2
근로복지공단
4953   2008-08-05
424 2024년 제 10회 철도문학상 공모전 안내 (2024. 4. 22.(월) ~ 6. 2.(일)) & 수상작 발표 image
한국철도문화재단
1107   2024-07-07
423 2025년 고용보험 수기 공모전 (2025.4.7~2025.5.9.까지 접수) image
한국고용정보원
57   2025-04-22
422 "실업극복 수기 당선작" image
매일신문
4420   2009-01-30
421 2010 제 17회 대한항공 여행사진공모전(2010.9.3 마감) 2 image
대한항공
2714   2010-07-23
420 2025년 제11회 철도문학상 공모전 안내 (2025. 4. 21.(월) ~ 6. 1.(일) 마감)* image
한국철도문화재단
46   2025-04-23
419 2022년 오뚜기 제2회 푸드 에세이 공모전 ( 2022년 2월 15일(화) ~ 4월 5일(화) ) & 수상작 발표 (2022.05.06) image
오뚜기
2385   2022-03-20
418 【부산광역시】 제1회 계단문학상 공모전 : 2025. 3. 24.(월) ~ 2025. 5. 12.(월)까지 접수 * 1 image
소통24
108   2025-04-17
417 2018년 문화예술제제39회 근로자문화예술제개최 안내 (문학분야 : 2018년 7월 16일(월) ~ 8월 31일(금)접수) image
근로복지공단
2247   2018-03-15
416 2024년 국민내일배움카드 우수사례 수기·콘텐츠 공모전 (2024. 6. 10.(월) ~ 2024. 7. 14.(일)) & 수상작 발표* image
고용노동부
1208   2024-07-09
415 영축총림 통도사 화엄산림법회 신행수기 공모(2020.12.30. 마감 & 당선작 발표 image
불교신문
2086   2020-12-16
414 2021년 제21회 산림문화작품공모전 (2021.6.1.화~7.28.수 17시 마감) & 수상작 발표 image
산림조합중앙회
2313   2021-07-18
413 2017년 제5회 등대문학상공모전 (2017.9.30. 마감) ?& 수상작 발표 image
울산항만공사
2619   2017-09-02
412 2019년 제11회 손바닥문학상 공모 (2019년 11월10일 밤 12시 접수 마감) image
한겨레21
2223   2019-10-17
411 2024년 대한민국 편지쓰기 공모전 (2024.5. 14.(화) ~ 9. 10.(화) ) & 당선작 발표* image
우정사업본부
1208   2024-07-09
410 2024년 제 24회 산림문화작품공모전 (2024.6.3~7.31 접수) & 당선작 발표 image
산림조합중앙회
1212   2024-06-08
409 2024년 제1회 “어르신의 재치와 유머” 짧은 시 공모전( 2월 15일~3월 15일까지) & 당선작 발표 image
대한노인회
1326   2024-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