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군 행복도시 부자의령

제목제8회 천강문학상 작품 공모
담당부서의병문화관광과 관광문화재담당조회수142
담당자명최선근담당자 전화번호055-570-2443
등록일2017.03.09
첨부제8회천강문학상작품공모.hwp (17 kb)전용뷰어
내용

제8회 천강문학상 작품 공모
 
의병장 곽재우 천강홍의장군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계기를 마련하고 나라사랑의 충의정신 함양 및 문학의 저변확대와
우수 문인 배출은 물론 인물의 고장인 청정 의령의 가치를 전파하기 위하여 개최하는 제8회 천강문학상 작품을 다음과 같이 공모하오니
역량있는 작가들의 많은 응모 바랍니다.

 
□ 공모부문 : 시, 시조, 소설, 아동문학(동시?동화), 수필
O 시 : 7편
O 시조 : 7편
O 소 설 : 중편 1편(200자 원고지 200장 내외), 단편 2편(200자 원고지 80장 내외)
O 아동문학 : 동시 7편, 동화(단편) 3편
O 수 필 : 3편(200자 원고지 20장 내외)
 
□ 작품내용 : 미발표 순수창작 작품(주제는 자유)
 
□ 시상내역 : 붙임 참조

구 분

대 상

(5명 3,800만원)

우수상

(5명, 1,700만원)

1명/ 700만원

1명/ 300만원

시 조

1명/ 700만원

1명/ 300만원

소 설

1명/ 1,000만원

1명/ 500만원

아동문학

1명/ 700만원

1명/ 300만원

수 필

1명/ 700만원

1명/ 300만원


 
□ 공모기간 : 2017년 6월 1일부터 7월 31일까지 ⇒ 당일 우체국 소인 유효
 
□ 응모자격 : 대한민국 국민(기성문인 포함)
 
□ 발표 및 시상 : 2017년 9월말
 

- 당선작 및 심사위원은 최종 심사 후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하며, 시상식은 별도 공지합니다.

 

■ 기타사항

- 신인의 경우 수상자에게는 기성문인으로 예우합니다. 

- 의병과 의령에 관한 작품은 우대할 수 있으며,  작품의 수준이 시상권에 미치지 못할 때는 시상하지 아니할 수 있습니다. 

- 표절, 모방 또는 중복 응모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입상을 취소합니다. 

- 모든 부문 응모 시 PC 워드프로세서 작성 제출 가능합니다.

- 이메일로는 접수하지 않습니다.

- 수상작품의 판권은 천강문학상운영위원회와 본인에게 귀속됩니다.

- 응모자의 이름(본명)과 전화번호(휴대전화), 주소, 약력 등은 별지에 작성하여 제출하여야 합니다.

 

■ 보내실 곳 

- (52152) 경남 의령군 의령읍 충익로 1(중동리 467-2) 충익사관리사무소(의령문인협회)

 

■ 기타문의 : 의령군청 의병문화관광과(☎ 055-570-2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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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천강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작] 이혜경 김응숙


대상
각도를 풀다 / 이혜경   
 
 

그럴싸한 악기 하나쯤 배우고 싶다는 욕심을 기어이 행동으로 옮겼다. 야심차게 시작은 했지만 교습소 유리문을 열 때마다 손끝에 느껴지는 무게가 육중하기만 하다. 겨우 귀밑에 머리가 닿는 학생들 틈에 섞여 엉거주춤 플루트를 잡고 있노라면 괜스레 뒤통수가 가려운 기분이다.
콧대 높은 아가씨를 보는 듯 플루트의 첫 인상은 도도했다. 서늘한 은빛 광택에 주눅이 들어 얼룩이 남을까봐 악기에 손을 대는 일조차 조심스러웠다. 망설이는 마음에 긴장까지 보태어 시작도 전에 몸이 댕돌같이 굳었다. 선생님이 일러준 대로 입술을 최대한 오므리고 힘을 실어 보아도 정체 모를 바람 새는 소리만 되돌아올 뿐이었다.
첫소리가 나오기까지 여러 날 헤맸지만 한 번 소리가 만들어진 후로는 탄력을 받아 며칠 만에 저음 음역에 안착했다. 그런데 작은 언덕 하나를 넘으니 더 큰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옥타브가 높은 고음 음역을 정복하는 과정은 된비알을 오르는 일이었다. 풍선을 불 듯이 배에 숨을 몰아넣고 볼이 터지도록 입술에 단단히 힘을 주어 보았지만 번번이 고음 문턱에서 소리가 미끄러져 내렸다.
문제는 각도였다. 음의 높낮이가 달라질 때마다 입술 모양을 바꾸어 각도를 조절해야 하는데 저음을 익히면서 길들여진 입술의 모양과 각도가 몸에 배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초반에는 제대로 입술을 붙였다가도 마디가 넘어갈수록 모양이 흐트러지곤 했다. 각도를 벗어난 곳에 바람을 보내면 둥글게 모아져야 할 소리가 잘게 흩어져 깊은 울림이 없었다. 각도를 맞추느라 입술에 신경을 모으다 보면 악기를 잡은 팔의 각도까지 무너져 제대로 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살짝 각도를 틀라는 주문이 내게는 무척 난이도가 높은 숙제였다.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정해진 각도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어 더 그런가 싶었다. 여러 형제들의 틈바구니 사이에서 자란 터라 어릴 때부터 위로도, 아래로도 마음껏 팔을 뻗을 수 없었다. 격동의 사춘기 시절조차 부모님 말씀에 반기를 들어본 기억이 별로 없다.
학교라는 울타리에서도 꼬박 십이 년 개근상을 탈 정도로 정해진 각도를 벗어나지 않았다. 미성년의 봉인이 해제된 대학 시절에도 필름이 끊길 정도로 취해본 적이 없었고, 그 흔한 배낭여행 한 번 다녀오지 않은 채로 졸업을 맞았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혼자 선을 긋고 일정한 각도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정해진 틀 안에서 화석처럼 굳어버렸다.
비교적 고요하게 지나갔던 사춘기가 중년의 나이에 다시 오려는지 언제나 똑같은 지점에 축을 끼우고 서 있는 내 모습을 새삼 돌아보게 되었다. 늘 같은 장소에서 익숙한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일이 목이 늘어난 티셔츠처럼 편하기만 했는데 불현듯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끼니마다 더운밥을 짓고 흠치르르하게 집을 닦으면서도 정작 가슴 안쪽에는 허기가 지고 묵은 먼지가 쌓여갔다.
얼굴에 드러나는 잡티는 화장으로 가릴 수나 있지만 내면에 번지는 잡티는 손 쓸 도리도 없이 점점 짙어질 뿐이었다. 잠시라도 일상의 테두리를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해 보자고 스스로 처방을 내렸다. 오롯이 나만을 위해 지갑을 열고 악기를 배우는 것은 평소의 계산에서 한참 벗어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계속 같은 자리에서 하나의 각도만 고집하다가는 틀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아 용기를 냈다. 낯선 영역에서 새롭게 무언가를 배우면 예각으로만 살아온 삶의 반경이 둔각으로 넓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일상의 각도를 넓히겠다는 거창한 포부를 안고 시작했지만 정작 입술 각도를 바꾸는 사소한 일조차 만만하지 않았다. 나이를 한 살씩 먹을수록 시간의 중력이 몇 곱절 세져서 새로운 쪽으로 방향을 바꾸려면 몇 배의 노력이 필요했다. 약점을 이기는 길은 연습밖에 없었다. 악기를 놓고 있을 때도 머릿속에 입술 모양을 그리며 부지런히 입술을 풀었다. 무작정 힘을 주기만 해도 안 되고 너무 느슨하게 풀어도 곤란하다. 고정되어 있는 입술 각도를 넓게 풀어야 제대로 된 소리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음계에 맞추어 다른 각도와 모양으로 입술을 바꾸어 연습한 끝에 몇 갈래로 흩어지고 미끄러지던 소리가 네 박자의 온음표를 지탱할 수 있게 되었다.
선생님 귀에도 옳은 소리로 들렸는지 다음 수업부터 연주곡으로 넘어가자고 했다. 그 곡을 연주하려면 저음과 고음을 수시로 넘나들어야 해서 입술 각도가 변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버틸 수 있는 뱃심도 필수다. 손가락 짚는 위치도 들쭉날쭉 바뀔 테니 또 하나의 고비를 맞은 셈이다. 장조가 바뀌고 박자가 불규칙한 곡을 만나 악보 위에서 수없이 엉덩방아를 찧을 내 모습이 훤히 그려져 슬며시 웃음이 났다.
새로운 악기 하나 배운다고 해서 삶의 반경이 갑자기 넓어지는 드라마 같은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플루트를 배우기 전이나 후나 여전히 같은 장소를 오가며 비슷한 리듬으로 지내고 있다. 다만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소리를 익히고 내 것으로 만들어 가는 소소한 재미를 깨달았다는 것이다.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 복잡한 음표를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은 단지 악기에 익숙해지는 일만은 아니었다. 작은 음표 하나도 쉬이 얻어지는 것이 아니어서 겨우 곡 하나를 익히고 한 계단 올라갔다 싶으면 더 높은 다음 계단이 기다리고 있었다. 곡의 분위기에 맞추어 박자를 밀고 당기면서 유연하게 리듬을 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다가도 그 고비를 잘 넘기면 새로운 소리가 내 입술 끝에서 만들어졌다. 덤으로 성취감이라는 작은 선물도 따라왔다.
인생이라는 악보에서도 마찬가지다. 살다보면 잘 안다고 생각했던 지점에서 엉덩방아를 찧기도 하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폭풍우를 만나기도 한다. 예전에 대입 시험장에서 실수로 답안을 밀려서 쓰고 와서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밤새 울었다. 그때는 당장 내일이라도 인생이 끝날 듯이 눈앞이 캄캄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삶의 길목에는 시험 문제의 답을 제대로 쓰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었다. 크고 작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삶의 각도를 넓히다 보면 언젠가는 나만의 멋진 곡을 완성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여러 언덕을 넘는 동안 배짱이 생겼는지 이제 낯선 악보 앞에서도 두렵지 않다. 예고 없이 올림표나 내림표 기호가 불쑥 튀어나와 발목을 잡아당기더라도 쉽게 흔들리지 않을 자신감이 생겼다. 눈과 입과 손이 각도를 조금 벗어나도 더 이상 부끄럽지 않다. 그렇게 흔들리고 미끄러지는 과정을 거치며 시나브로 곡이 자리를 잡아갈 것을 알기 때문이다.
수없이 넘어지고 일어서는 사이 각도가 조금씩 풀어진다면, 그래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악보 한 마디 만큼이라도 더 넓어질 수 있다면 그깟 음 이탈쯤 무슨 대수이랴.    




이혜경_경남 양산 출생. 동아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제4회 대구일보 전국수필대전 금상. 제12회 동서문학상 은상. 수필시계 신인상(2014). 수필세계작가회, 에세이울산, 한국에세이포럼 회원



우수상
공터 / 김응숙

 
 
공터의 어둠은 아무런 전조 없이 찾아왔다. 담벼락 아래에서 습기처럼 배어 나온 그림자가 골목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무릎께를 넘실거려도 공터의 햇살은 짱짱하기만 했다. 서쪽으로 기울던 태양이 산 능선에 턱을 괴고 공터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저녁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아이들이 하나둘 집으로 돌아가자, 무료해진 태양이 산 뒤로 모습을 감추었다. 노을의 끝자락, 숯불을 뒤적여 놓은 것 같은 빨간 잉걸불이 사그라지기를 기다려, 체로 거른 듯 고운 입자의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그제야 공터는 어떤 얼룩도 남기지 않은 채 순연하게 물들었다.
하루가 다르게 팽창하던 부산의 변두리였다. 도심에 붙박기에는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 사람들이 낮은 슬레이트 지붕을 이고 모여 살았다. 쓸모없어진 부속품들을 모아놓은 것처럼 백여 호의 집들은 지붕 한쪽이 내려앉거나 뒤틀린 채, 비스듬한 경사면을 따라 들어서 있었다.
그 허술한 동네와 신작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작은 공터가 있었다. 그 뒤로는  배수진처럼 꽤 깊은 절개지가 놓여 있었다. 이런 위치 때문인지 공터는 간이 무대처럼 보였다. 조금씩 높아지는 객석을 눈앞에 둔 무대 말이다. 동네 끝집에서도 앞집 지붕을 피해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공터가 보였다.
우리 집은 공터를 향해 조그마한 들창이 나 있는 길갓집이었다. 신작로에서 이는 흙먼지로 인해 들창은 늘 뿌옇게 흐려 있었다. 나는 들창 밖으로 팔을 뻗어 소매 끝으로 어렵사리 유리의 아랫부분을 조금 닦았다. 그러고는 그곳에 눈을 대고 공터를 바라보곤 했다.
공터에는 수시로 공연이 올랐다. 이른 새벽, 목판을 맨 두부 장수가 공터 앞에 나타났다. 잠시 동네를 둘러보던 두부장수가 절룩거리며 골목을 오르기 시작하면 짤랑거리는 종소리가 미적거리고 있던 여명을 깨웠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젖먹이를 들쳐 업고 양철동이를 머리에 인 재첩국장수가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의 등장은 이제 막 태양이 조명을 밝히고 있는 공터에서 벌어질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시그널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빛바랜 보자기에 싸인 도시락을 들고 날품팔이를 나가는 가장들이 지나가고, 피로한 낯 색의 여공들과 하얀 칼라의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총총 지나가도 공터는 조용했다. 잠깐 삼삼오오 친구를 기다리는 초등학생들이 떠드는 소리가 기포처럼 공터 위로 떠오르기는 했다. 하지만 곧 대열을 정비한 아이들이 십여 리 떨어진 학교를 향해 떠나자 공터는 다시금 비어 버렸다.
그 당시 나는 공납금을 마련하지 못해 몇 달 다니지도 않은 중학교를 그만 둔 상태였다. 식구들이 잠든 밤이면 현관 쪽마루에 촛불을 켜고 밤새도록 책을 읽었다. 해가 뜨고 집이 비면, 들창 밑에 몸을 바짝 붙이고 낮잠을 자곤 했다. 아마도 밝은 세상으로 나가기가 두려웠던 것일 게다. 단지 들창으로 공터를 내다보는 것이 유일한 세상바라기였던 시절이었다.
해가 중천으로 떠오르고 엿장수의 가위에서 나는 쇳소리가 나를 깨웠다. 엿장수는 공터에 수레를 세워 두고 철컥거리며 골목을 돌았다. 별반 쓸모도 없는 살림살이에서 더 쓸모없는 것들이 가려졌다. 공터에 오른 ‘엿장수’라는 공연에는 출연자들이 줄을 섰다. 동네 사람들은 구멍 난 솥이라든지, 먼지가 뽀얗게 앉은 공병을 들고 나와 흥정을 하곤 했는데, 그럴 때면 정말 주연배우라도 되는 양 진지한 표정들이었다.
엿장수가 무거워진 수레를 끌고 무대를 떠나면 뻥튀기 장수가 나타났다. 학교에서 돌아온 조무래기들이 흰 김이 나기 시작한 기계 앞에 귀를 막고 둘러앉았다. 이제 곧 “뻥” 소리와 함께 ‘뻥튀기’라는 공연은 클라이맥스에 오를 것이고, 어린 관중들은 환호를 질러댈 것이었다.
공터에 오른 공연의 숫자는 헤아릴 수도 없이 많았다. 공일이나 반공일에는 바리깡과 보자기를 들고 이발사가 등장하기도 하고, 털 빠진 원숭이와 슬픈 눈을 한 딸을 데리고 약장수가 전을 펼치기도 했다. 명절 직후에는 허술한 서커스단이 찾아들었다. 그리고 한 겹 장지문 안에서 겨울을 난 동네 노인들이 초봄에 부는 샛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돌아가시면, 어김없이 공터에서 노제를 지냈다. 공터에서는 상여에서 흔들리는 하얀 종이꽃과 상복으로 여민 가슴에서 끓어오르는 곡소리로 구성된 오페라의 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공터는 동네사람들의 삶과 죽음 사이의 퍼포먼스로 넘쳐나던 무대였다. 그 어떤 표지판도, 시설도 없었기에 인생 여정에서 어우러진 공연들이 아무런 각색 없이 오롯이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동네사람들이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 연출하고 출연한 단막극들이었다.
그런데 이 무대에서 정작 나의 관심을 끈 공연은 따로 있었다. 일종의 모노드라마였는데, 이 공연에서는 조명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서쪽 하늘에서 서서히 먹장구름이 몰려오고, 하늘을 힐끗거리던 할머니가 빨래를 걷으러 마당으로 내려섰다. 공터의 조도가 몇 럭스 쯤 어두워지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던 그림자들이 낌새를 느끼고 쥐구멍으로 숨는 생쥐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모두들 빗방울을 피해 지붕 아래로 뛰어들고 문을 닫았다. 왠지 모를 비장함이 공터를 맴돌았다. 그때 꼬질꼬질한 잿빛 바바리를 걸친 배우가 공터로 들어섰다.
나는 이 공연의 이름을 ‘바바리 아저씨’라고 붙였고 동네사람들은 ‘불효자식’이라고 불렀다. 기껏 공부시켜 놓았더니 정신이 돌아서 늙은 어미의 등골을 휘게 하고 심장을 파먹는다는 것이었다. 어쨌거나 이 배우가 공연에 임하는 자세는 진지하기 짝이 없었는데, 연설을 시작하기에 앞서 오른손을 번쩍 들어 올리는 제스처는 그 진중함을 더해 주었다.
희고 파리한 손을 들어 올린 채 아저씨는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그 공연이 모두가 쉬쉬하는 시대극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박정희’니 ‘이후락’이니, ‘미국’이나 ‘막스’같은 금기어들이 섞여 있었다. 근처에 어른들은 얼씬도 하지 않았고, 잔돌을 던지며 놀려대던 몇몇 아이들도 후둑거리던 빗방울이 굵어지자 집으로 돌아갔다.
비가 내리는 회색 공터에서 공연되던 모노드라마. 한 명의 관중도 없이 홀로 지루하게 이어지던 공연. 마침내 들어 올렸던 손을 내리고 바바리 깃을 타고 내리는 빗물과 함께 쓸쓸히 퇴장하던 아저씨. 아저씨가 사라지자 잿빛 바바리에서 검은 물이라도 빠졌는지 공터는 짙은 어둠에 휩싸였다. 그리고 때맞춰 바람을 탄 빗줄기가 탭댄스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나는 공터에 ‘광장’의 이미지를 덧칠하고 싶지는 않다. 공터에는 어디론가 도도하게 흘러가는 물결 같은 것은 없었다. 삶을 살고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삶 그 자체가 무대에 올랐다. 우리들은 돌아가며 주연도 하고 조연도 했지만, 엑스트라로 등장하는 날도 많았다. 그리고 어쩌다 삶의 이면, 그 짙은 어둠속에 들어섰을 때는 홀로 독백도 했다.
어느 날 저녁, 나는 집 밖으로 나와 들창 아래 블록 벽에 기대앉았다. 공터가 어둠에 물들고 있었다. 등 뒤 블록의 온기가 식자, 공터 끝 비스듬히 기운 전봇대에서 희미한 방범등이 켜졌다. 나는 바바리 아저씨가 섰음직한 자리를 찾아 어둠 속에 섰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나만의 독백을 시작했다. 맞은편 길갓집 들창에서 여전히 한 소녀가 공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김응숙_2015 『에세이문학』등단. 효원수필문학회 회원. 에세이부산 회원




제8회 천강문학상 수필 심사평 독자에게 읽히는 수필 신재기(문학평론가, 경일대학교 교수) 
 
예심을 거쳐 30명의 작품 90편이 본심에 올라왔다. 수필집 2권 정도의 분량을 짧은 시간 안에 꼼꼼하게 읽어야 할 형편이어서 적잖은 부담을 안고 심사를 시작했다. 중간 이상을 읽었는데도 크게 두드러지는 작품을 만날 수가 없었다. 엇비슷한 유형의 작품이 이어졌다. 이러다가 ‘천강문학상’이란 이름에 걸맞은 작품을 뽑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 얼마간 초조해지기까지 했다. 그런데 거의 막판에 이르러 가뭄에 단비 같은 몇 편의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야 긴장이 다소 풀리며 읽었던 전 작품의 위치와 층위가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마음의 힘을 빼니 작품이 각자의 고유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2000년대에 들어와 수필 창작 인구가 급증했다. 작품 발표 지면도 크게 확대되었고 개인 수필집도 쏟아져 나왔는데, 이런 양적 확대가 보여주는 화려함이 질적 수준까지 담보해주지는 못했다. 무엇보다도 독자를 끌어들이는 데에는 실패했다. 물론 독자의 축소가 수필 장르만의 문제는 아니라, 디지털 시대의 문학 전체가 직면한 일반적 현실이다. 하지만 독자의 외면을 가져온 수필 문학만의 문제점도 없지 않다. 변화하는 시대와 사회의식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점이 그것이다. 개인의 내면에 안주하면서 자폐성만  키우다 보니 문학으로서 재미나 독자의 공감대를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현재 우리 수필은 이 지점에서 새로운 창작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자아’를 말하고 표현하는 것이 수필이지만, ‘자아’에 함몰된 수필은 독자로부터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자아의 밀폐된 공간에서 벗어나 자아와 세계와의 보편적 관계를 탐구하는 글쓰기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이번 심사에서도 이런 관점을 기본 전제로 삼았다.  
최종으로 두 사람의 세 작품을 놓고 숙고와 고심을 거듭했다. 이혜경의 「각도를 풀다」와 「공룡은 살아 있다」, 김응숙의 「공터」가 수상작 후보로 마지막까지 남았다. 세 작품 어느 것도 수상작으로서 손색이 없었다. 결국, 투고한 한 작가의 세 작품 전체를 보고 그 무게를 가늠해보기로 했다. 이는 세 작품을 응모의 조건으로 삼은 의도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혜경의 「각도를 풀다」를 대상으로, 김응숙의 「공터」를 우수작으로 선정하게 되었다.  
「각도를 풀다」는 구체적 경험을 해석하여 주제를 도출하는 안목이 돋보인다. 세상과 대상을 바라보는 각도를 달리하면 새로운 세계를 만나거나 세계를 더 넓게 바라볼 수 있다는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주제인데, 작가는 이것을 자신의 실제 경험을 토대로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게 형상화했다. 주체의 고정관념, 선입견, 나르시시즘, 고집, 혹은 이데올로기로 말마이암 대상이 왜곡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상의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것에 구속되지 않는 자유롭고 탄력 있는 시선이 요구된다. 이처럼 확장성을 염두에 둘 때 이 작품의 주제는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다. 개인의 경험을 해석하여 의미를 부여하는 수필 쓰기의 모범적인 작품으로서 완성도가 매우 높다고 보았다. 한순간 같은 작가의 작품 「공룡은 살아 있다」를 수상작으로 뽑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유쾌함을 만끽했다. 언어의 무게에 짓눌려 있던 마음이 확 풀리고 웃음까지 배어나왔다. 어쩌면 우리 수필이 독자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무거운 메시지를 만드는 데만 머물지 말고 이 같은 유쾌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일이 더 필요할 수도 있다. 심사평을 쓰는 지금도 이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하지 못한 나 자신의 용기 없음이 부끄럽다. 좋은 수필은 우선 독자에게 읽히는 수필이 아니겠는가.
김응숙의 「공터」를 처음 대하는 순간 문제작이구나 하는 생각에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었다. 이 작품은 수필의 자리보다 소설에 자리에 놓이는 것이 합당하다. 주제, 구성, 어조, 분위기 등 모든 측면에서 한 편의 소설로서 손색이 없다. 더욱이 ‘나’라는 수필적 화자가 극도로 절제되어 있어 수필가의 경험적 요소가 허구로 의심될 정도다. “도심에 붙박기에는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 사람들”이 변두리 언덕 경사면의 백여 호에 살고 있다. 화자가 동네 신작로 건너에 있는 작은 공터를 언덕 위에서 관찰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 공간을 무대로 살아가는 도시 변두리 가난한 소시민의 소외된 삶과 그 애환을 잘 보여준다. 제시된 시각적 장면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공터 인근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 관한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첫 단락의 배경 묘사, 마지막 단락의 “공터 맞은편 길갓집 들창에서 여전히 한 소녀가 공터를 바라보고 있었다.”라는 결구 처리는 압권이다. 치밀하고 탄탄한 문장도 돋보인다. 당선작으로 뽑지 못해 못내 아쉽다.
양성은의 「파란 방」, 류현서의 「접쇠」, 우광미의 「자리표」도 잘 다듬어진 좋은 작품이다. 이들 작품을 읽으면서 주위에 훌륭한 수필가로 성장할 작가가 많다는 점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한두 작품으로 어떤 상을 받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창작에 꾸준하게 매진하여 성숙한 수필가로서의 무게를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수상한 두 분 작가와 더불어 이번에 응모한 모든 수필가에게 다시 한번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제8회 천강문학상소설 대상 수상작]

해무의 시간

이수조

                                                                         

회 센터와 어시장이 차례로 문을 닫자 부두의 거리는 적막해졌다. 가끔 술 취한 사람들이 텅 빈 거리를 비틀거리며 지나간다. 수연은 해무가 올라오는 시간을 계산한다. 벚꽃이 바람에 흩날리기 시작하면 밤마다 해무가 땅 위로 몰려온다. 더욱이 이런 축축한 날엔 어김없이 올라온다. 길 건너 맞은 편 건물들이 해무에 완전히 묻힐 때까지 약국 유리문에 기대어 지켜본 적도 있다. 20년 전 남편 기훈과 함께 도미약국을 개업할 때도 바다에서 안개가 무리지어 올라왔다. 기훈이 죽은 지 두 달이 지났다. 기훈의 목소리와 냄새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생생하게 살아 돌아올 줄 몰랐다. 19세기 약사 쿠에는 ‘나는 매일매일 모든 면에서 좋아지고 있다’ 는 말을 반복하는 치료법을 개발했다. 수연도 손님들에게 이 말을 즐겨 인용한다. 그러나 스스로에게는 적용될 수 없는 치료법이었다.  

밖에서 손님이 문을 밀고 들어선다. 수연은 빠져나간 넋을 급히 불러들인다. 눈을 동그랗게 뜨며 활짝 미소 짓는다.  

“어서 오세요.

손님을 보낸 후 수연은 시계를 본다. 10시가 되려면 조금 더 있어야 하지만 가운을 벗고 재킷을 걸친 후 밖으로 나선다. 약국 문 앞에 서서 주변을 둘러본다. 길 건너 노래방과 주점 몇 군데에서 불빛이 흘러나온다. 좌우로 즐비하게 늘어선 횟집들은 죄다 문을 닫았다. 경찰차가 경광등을 번쩍이며 느리게 지나간다. 수연은 움찔하면서 습관처럼 돌아선다. 금방 잠근 약국 유리문을 확인이라도 하듯 살짝 흔든다. 건들거리며 걸어오던 남자가 수연 뒤에서 침을 탁 뱉고 지나간다.

종합 어시장과 횟집과 버스 정류장 때문에 약국 앞은 종일 북적였다. 해가 있을 동안은 약국에도 손님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들었다. 수연은 밤 10시 약국 셔터를 내린 후 바닷가 벼랑위의 카페 블루문에서 위스키하이볼 한 잔으로 하루의 피로를 푼다. 그것이 그녀의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기훈이 죽고 한동안 가지 않은 카페를 수연은 며칠 전부터 다시 가기 시작했다. 축축해진 거리에 서서 수연은 도미가 그려진 약국 간판을 쳐다본다. 도미의 꼬리가 찰랑거린다. 꼬리가 흔들릴 때마다 물방울이 경쾌하게 튄다. 핑크 색 물고기 도미는 바다의 여왕, 바다의 왕자라고 불린다. 간판에 그려진 도미를 보다가 참돔 수산업자 장 사장을 생각하며 셔터를 내린다.  

 

“도미는 말이오. 몸통에 칼집을 쓱쓱 넣어서 밑간을 투루룩 하면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몰러.

비타민 음료를 받아들고 허풍처럼 떠들던 장의 말을 수연은 생각한다. 도미약국 약사 수연의 일이라면 자신의 일보다 더 열성적으로 나서주던 장이다. 남편 기훈이 미국을 드나들고 부터는 아예 수연의 보호자처럼 행동했다. 그런 장을 최근 수연은 볼 수 없었다. 약사보조 일을 하는 명숙조차 요즘 장 사장님 왜 안 오실까요? 하며 궁금해 한다. 기훈의 골프친구인 그 남자와 장을 마지막 본 것이 한 달도 더 지났다.

수연은 장의 행방을 궁금해 하면서 두 손을 재킷 주머니에 찔러 넣은 후 바다 쪽으로 몸을 돌린다. 그 남자와 함께 카페로 갈 때도 이 시간대였다. 수연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해무가 올라오는 시간에 맞춰 그곳에 간다. 누가 손짓을 하며 부르는 것처럼 발길을 옮긴다. 길 끝에서 한 무리의 희끄무레한 것이 스멀스멀 다가온다. 연기 같은 것이 눈뭉치처럼 둥글둥글하게 뭉쳐서 수레바퀴처럼 굴러온다. 도로 위를 소리 없이 점령하는 이것들은 바다안개, 해무다. 수연은 해무가 일어나기 시작한 바다 쪽을 향해 걷는다. 해안 끝자락에 카페 블루문이 있다. 그곳에서 평소처럼 하이볼 한 잔을 할 것이다. 수연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매일 보는 약국 앞 풍경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주말 밤과 달리 평일 밤 부두의 거리는 썰물 때의 갯벌처럼 황량하다. 네거리 건너 일찌감치 문을 닫은 누리약국 앞을 지난다. 누리약국은 사람들이 공무원 약국이라고 부른다. 공무원처럼 아침 9시에 문을 열고 저녁 6시에 문을 닫기 때문이다. 주말엔 아예 영업을 하지 않는다.  

오래전 어시장과 주변 상가 상인회에서 약국의 야간영업을 건의한 적이 있었다. 병원이 6시에 문을 닫으면 약국들도 누리약국처럼 똑 같이 문을 닫았다. 119를 부를 정도는 아니지만 급하게 약이 필요할 때가 있다. 특히 이곳은 음식점이 즐비한 유원지를 겸한 상가지역이다. 누리약국의 노처녀 오 약사는 턱을 치켜든 도도한 표정으로 딱 잘라 거절했다. 수연은 약국이 있는 건물 3층이 자신의 집이다. 거절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늦은 밤까지 약국 문을 열어두는 별빛약국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도미약국이 별빛약국을 하게 되자 그 당시 상인회 협회 일을 했던 장 사장이 참돔을 선물로 가져 왔다. 장의 눈과 귀가 도미약국 안으로 들어오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누리약국 앞을 지나면서 수연은 한결같은 우람한 체격의 장을 떠올린다.

그곳에 가면 해무 속에서 불쑥 장이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한다. 거칠고 무례하지만 진실하고 무거운 남자. 수연은 장에 대해 간절해지는 욕구를 천천히 누르며 뒤를 돌아본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네거리를 지난다. 노래방에서 흘러나오는 올드 팝이 안개에 젖어 길바닥으로 가라앉는다. 노래방과 주점이 끝나는 지점에 요한약국이 있다. 수연은 셔터가 내려진 요한약국을 보면서 지나간다. 늙은 남자가 운영하는 이 약국은 이윤도 별로 남지 않는 오리지널 약품만 취급한다. 제네릭 약품, 즉 복제약은 거의 취급하지 않는 약국이다. 드링크라던가 영양제 같은 것들도 별로 없다. 주로 위층에 있는 내과의원의 처방전만 취급하기 때문에 병원이 문을 닫으면 자신도 약국 문을 닫는다. 수연은 이곳을 지날 때마다 돈도 모르고 의리도 없는 인간이라고 비웃었다. 이제 수연은 두 약국을 비웃을 마음의 여유조차 없다.

 

수연이 주로 복제약품을 취급하는 것은 사실이다. 복제약품의 이윤은 오리지널 약품의 이윤보다 몇 배가 된다. 도미약국에 진열되어 있는 일반 약품들은 거의 복제약이다. 누군가 와서 복제약 말고 오리지널을 주세요, 라고 하면 수연은 화를 발끈 낸다. 그러곤 상대를 설득한다. 똑 같은 효능에 오리지널 외제약품보다 가격이 훨씬 저렴하다고. 오리지널 약품은 국산도 있지만 대체로 외제 약이 많다. 수연은 또 텔레비전 광고에 등장하는 약품들도 가능하면 팔지 않는다. 소비자가 전적으로 광고비를 부담한다고 말을 하면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처방전도 노브랜드 약품으로 대체한다. 유명 브랜드 약품들은 매입가격에 부가세를 부담하면서 팔아야 할 때도 있다. 한마디로 이윤이 적다는 거다. 수연은 몇 십 원 하는 작은 알약 하나의 값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개업한 지 몇 년 되지 않아 의약분업이 되기 전이지만 수연은 약국이 세 들어 있던 3층 건물을 매입할 수 있었다. 약국이 번창하자 기훈은 지방대학 시간 강사를 때려치우고 해외 원정 골프를 다니기 시작했다. 남편이 거의 미국에 있게 되자 수연 또한 딸아이를 미국에 있는 시부모에게 보냈다.

수연이 약국 경영으로 남다른 부를 쌓게 된 데는 약사 조제권 때문만은 아니었다. 의약분업이 된 다음에도 도미약국의 매출은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단순히 제네릭 약품만 취급해서도 아니었다. 수연은 영업에도 재능이 있었다. 한번은 명숙이 물었다.  

“약사님, 약사님은 왜 부자들한테 약값을 할인해주세요?

“비싼 영양제 누가 살 것 같니?

“아하, 그러네요. 약사님 립 서비스에 손님들이 반해서 헤롱헤롱…. 사실 우리 약사님 알고 보면 그런 분 아닌데.

명숙의 말에 수연의 표정이 굳어졌다. 대학 때 연애해서 결혼한 기훈도 수연을 알면 알수록 차가운 여자라고 했다. 수연의 고객관리는 남편이나 가족처럼 가까운 사람들에겐 미스터리한 일이었다. 수연은 명품 옷을 입었거나 비싼 가방을 든 여자들에겐 하나같이 예쁘다거나 매력적이라고 칭찬했다. 나이든 남자들에겐 해맑게 웃으며 성적농담도 자연스럽게 주고받았다. 고객을 위해서라면 마음에도 없는 말을 기꺼이 하는 것 같았다. 뒤 돌아서서 꽉 다문 입술에 차가워지는 눈빛을 고객들에겐 들킨 적이 없다. 약값도 다른 약국보다 저렴했다. 조제하는 동안 비타민 드링크도 하나씩 주었다. TV 광고에 나오는 ‘비타민 드링크’가 아니라 복제품 ‘e타민 드링크’였다. 여름에는 시원한 드링크로, 겨울에는 따끈따끈한 차 한 잔을 손님들에게 내 놓았다. 약국 안은 늘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수연에게 꼬리가 있다면 도미 꼬리처럼 항상 찰랑찰랑 물방울을 튕겼을 것이다. 그녀가 약국이라는 박스 안에서 모두의 연인이며 친구가 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수연은 모텔 거리로 들어선다. 건물의 윤곽은 안개 속에 뿌옇게 녹아 있다. 가끔 사람들과 마주쳐도 안개 때문에 얼굴을 구분하기 어렵다. 발자국이 뒤를 따라오는 것 같아 수연은 가다 서다 하면서 슬쩍 뒤돌아본다. 그 남자를 만났을 때와 똑 같은 풍경이다. 머리카락이 쭈뼛 선다. 손바닥으로 양쪽 뺨을 감싼다. 으스스한 느낌이 들어도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엷은 휘장처럼 앞을 가로막는 해무 속으로 발바닥에 힘을 주며 걷는다. 한 쌍의 남녀가 부둥켜안은 채 길 가운데 유령처럼 흔들리며 서 있다. 그들을 지나치면서 또 뒤를 돌아본다. 아무도 없다. 누군가 자신을 따라온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카페로 가는 해무 자욱한 밤길. 20년을 살면서 드나든 곳이다. 눈을 감고도 다닐 수 있는 거리. 수연의 거리였다. 이렇게 끝없이 쫓기는 느낌은 기훈이 죽은 후 수연을 찾아 온 그 남자 때문이다. 남자가 찾아오기 전까지 수연은 자신의 소라껍데기 안에 안전하게 들어가 있다고 생각했다.

해무는 바다가 가까워질수록 휘장처럼 사방을 휘감는다. 한 시간만 더 지나도 이것들은 팔짱을 긴 사람조차 보지 못하게 할 것이다. 뒤에서 옷자락을 잡아채는 것 같아 등골이 서늘하다. 해무를 뚫고 소리가 들린다. 수연을 부르는 것 같다. 수연은 전신이 떨려 더 이상 뒤를 돌아보지 못한다. 부르르 몸을 떤 후 머리카락에 묻은 물방울들을 털면서 결심한 듯 앞으로 걸어 나간다. 두려운 만큼 고개를 더 빳빳이 세운 채 종종걸음으로 모텔 거리를 빠져나온다.

 

기훈의 장례를 치르느라 한 동안 휴업했던 약국을 다시 연 날, 그 남자가 찾아왔다. 기훈의 유령처럼 나타난 남자는 수연의 존재를 비루하고 처참하게 만들었다. 그 남자가 다녀간 뒤였다. 해무로 가득한 바닷가 방파제 어디쯤에서 자신이 떨어져 익사하는 이미지를 보는 것이다. 데자뷰 같았다. 그러나 그 남자가 약국을 다녀 간 후 수연에게 외관상 달라진 것은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명숙은 칼같이 6시에 퇴근했고 도미약국은 밤 10시에 어김없이 셔터가 내려졌다. 수연이 카페 블루문을 가지 않는 것과 장 사장이 약국에 오지 않는 것을 제외하면 변화된 것은 없었다.  

 

수연의 몸과 마음이 죽음보다 더 피폐해져 가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밤마다 자신의 몸속에서 흰 뼈들이 서로 부딪치며 울었다. 기훈이 가슴을 움켜쥔 채 여보 하고 부르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 앉기도 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베개가 젖어 있는 날이 많았다.

“다이어트에도 좋아요. 도미의 눈에는 비타민 B1이 함유 되어 있어 피로회복에 좋구요. 도미껍질에는 비타민 B2가 많잖아요. 맛이 담백하고 기름기가 적어서 회복기 환자한텐 딱이라구요. 부인한테 도미 많이 해 드리세요.

암수술을 받은 후 약물 부작용으로 비만해지던 장의 아내를 위해 수연이 한 말이었다. 그 후 그의 아내는 세상을 떠났지만.  

“아, 그럼, 그럼요. 우리 약사님, 최고. 도미 박사님 최고!

툭하면 약국에 와서 소년처럼 엄지 척을 하던 장이다. 장은 순수하게 자신을 좋아한다. 그런 장에게 털어놓을까도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공포와 불안의 통증을 어떻게 타인과 공유할 수 있을까. 그건 죽음처럼 불가능한 일이었다.

장은 우람한 덩치에 가끔 회칼을 든 채 시장 안을 누볐다. 장의 시퍼런 분위기에 사람들은 이유 없이 주눅이 들었다. 그는 누구에게나 반말을 했는데 수연한테만은 꼭 우리 약사님이라고 존칭을 썼다. 무례한 것 같지만 정작 예의에 어긋나서 일어난 문제는 없는 듯 했다. 수연은 겉모습과 달리 순박한, 바다 냄새 물씬 풍기는 장이 싫지 않았다. 근육으로 탄탄한 장의 넓은 가슴팍도 떠올린 적이 있다. 가끔 그가 자신을 덮치는 장면도 상상했다. 장과 같은 남자와의 섹스는 어떨까. 수연은 그것도 궁금해 한 적이 있다.  

사실 수연은 거의 독수공방이나 마찬가지였다. 기훈은 주로 미국에 있었다. 국내에 들어와서도 수연과 섹스를 즐겨 하진 않았다. 밤이면 친구들을 만났고 거의 술에 취해 돌아와 옷도 벗지 않고 잠들기 일쑤였다. 가끔 수연이 먼저 기훈의 가슴을 파고들기도 했다. 기훈은 귀찮은 듯 돌아누웠다. 그렇지 않을 땐 이상한 체위나 행위를 하게 했다. 수연은 그것만 생각하면 몹시 수치스러워 몸을 떨었다.  

미국에서 기훈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날, 겨울에서 봄으로 건너가는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기훈이 그렇게 빨리 죽을 줄 몰랐다. 수연은 장례식장에서 울지 못했다. 울려고 노력을 했지만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비행기 안에서는 밀린 잠을 잤다. 집으로 오는 택시 안에서는 비오는 창밖을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았다. 방문을 닫고 커튼을 치고 완벽하게 혼자가 되었을 때 울음이 터져 나왔다. 이불을 덮어쓰고 큰소리로 울었다. 무슨 짓을 한 것인가. 딸아이가 아빠를 부둥켜안고 안 돼, 안 돼, 하며 몸부림치던 모습이 눈앞에 가득했다. 기훈과의 굽이진 시간들이 채찍처럼 수연의 등짝을 후려쳤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수연은 울음을 그쳤다. 커튼을 걷자 엷은 햇살이 방안에 들어섰다. 수연은 무릎사이에 얼굴을 묻고 또 하루를 앉아 있었다. 다음날 오후가 되어서야 물웅덩이를 벗어난 듯 수연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모든 것은 골프 때문이었다. 골프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기훈은 변해갔다. 기훈과 딸아이의 미국 생활비가 건물 임대료로도 부족해졌다. 아무리 약국에서 벌어들여도 돌아보면 남는 것이 없었다. 기훈이 건물을 담보로 대출까지 받은 것을 알고 난 후 수연은 헤어지자고 했다. 기훈은 수전노, 돈 밖에 모르는 여자, 라고 비난하면서 그렇게는 안 될 거야, 라고 했다.      

낭비와 유흥을 일삼는 남편, 도대체 무엇이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을까? 수연은 기훈의 휴대폰을 몰래 보았다. 하필 난교파티 동영상이 눈에 들어왔다. 포르노그래피를 다운 받은 줄 알았다. 그런데 남자들 얼굴이 낯이 익었다. 자세히 보니 남편 기훈의 얼굴도 있고 남편의 친구인 그 남자도 있었다. 휴대폰을 더러운 물건인양 집어던진 후 화장실에 들어가서 위장에 든 것들을 모두 토해내었다.  

난교 장면을 본 후부터 수연은 기훈의 목을 조르고 싶은 욕구에 시달렸다. 두 사람 사이에 농도 짙은 페닐에틸아민은 사라졌다. 분비되어야 할 옥시토신마저 기훈의 난교동영상이 막아버렸다. 수연은 캡슐에 쌓인 하얀 가루약들을 바라보았다. 향정신성의약품은 검열이 까다로워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 일반 약품으로 해결방법을 찾기로 했다. 길항작용이 되는 두 약품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약사인 수연의 머릿속엔 늘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다. 조제 중에 일어나는 실수는 곧 환자의 죽음을 야기했다. 예를 들면 고혈압환자와 당뇨병 환자의 약을 서로 바꾸는 실수를 하면 그들은 상태에 따라 죽거나 죽을 만큼 심한 고통을 당한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수연은 복약처방을 설명할 때 부작용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약을 재확인한다. 지금까지 한 번도 약화 사고를 일으키지 않은 수연이다. 약국 경영을 하면서 부를 쌓을 수 있었던 것도 복제약만 팔아서만은 아니었다. 영업적 재능만 가지고 되는 일도 아니었다. 수연은 사람들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얻었던 것이다.  

그런 그녀가 비아그라부터 생각했다. 지금은 남자들이 발기부전 처방전을 들고 오는 것과 여고생이 피임약을 사 가는 것이 감기약 처방전을 가지고 오는 것만큼 자연스럽다. 비아그라 출시 초창기 때는 좀 달랐다. 부작용 없는 약은 없다. 주의사항을 지키지 않았다가 48시간 발기 상태가 되어서 응급실에 실려 가는 일들이 잦았다. 그 사람은 아마도 살아있는 동안 발기는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도미약국에선 비아그라보다 값싼 복제약들을 취급했다. 팔팔정, 헤라그라, 누리그라, 센놈,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듯이 비아그라 한국산 복제약들이다. 그 중 가장 매출을 크게 올린 약이 팔팔정. 2층 가정의학 전문의가 약국에 내려왔을 때 농담을 했다.

“팔팔정이 잘 나가죠. 구구정이 나오는데 그 다음엔 뭐가 나올까?

“팔팔, 다음이 구구니까 그 다음은 십씹정!

명숙의 이상한 발음에 모두 폭소를 터뜨렸다. 조폭 같이 생긴 남자가 팔팔정 100mg짜리를 주지 않고 50mg짜리를 주어서 효과가 없다고 손해 배상하라면서 패거리들을 데리고 온 적도 있었다.

“손님, 처방전에 50mg이라고 되어 있네요. 여기 보세요. 효과가 없었다면 항의는 병원을 상대로 하는 겁니다.

“무슨 소리, 당신이 100mg짜리로 줄 수도 있었잖아. 여자한테 망신만 당했어. 이 약국 그냥 두지 않겠어.

수연이 처방전을 찾아서 보여주어도 행패는 거두지 않았다. 패거리 서너 명 만 되어도 약국 안이 가득 찬 듯 느껴졌다. 조제실에서 명숙은 조용히 전화를 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이다. 장이 약국 문을 활짝 열고 들어섰다.

“뭐야, 뭐야, 약국에 양아치들 모임 있나?  

장을 본 그들은 수연을 향해 욕을 하면서 나가버린 후 두 번 다시 오지 않았다. 이들은 약국을 돌아다니며 돈을 뜯어내는 폭력배들이었다. 수연은 그때 기훈을 영영 발기불능을 만들어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정도로는 수연의 분노가 누그러질 것 같지 않았다. 조제실 안의 약들을 보며 어느 약을 어떻게 섞을지 갈등했던 날들. 신만이 안다고 생각한 날들이 있었다. 아무튼 골프채를 든 세련되고 지적인 외모의 기훈보다 회칼을 든 장이 날이 갈수록 더 가깝게 생각된 건 부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축축한 모텔 거리를 벗어나자 해무는 살아있는 생물처럼 수연을 따라온다. 해무에 싸여 해양 광장을 지난다. 처음 그 남자가 늦은 밤 약국 문을 열고 들어서던 모습이 해무 곳곳에서 불쑥불쑥 나타난다. 들어서자마자 출입문을 잠그고 형광등 스위치를 내리던 남자, 어리둥절해 있는 수연을 향해 주먹을 날린 남자. 수연은 그 남자를 안다. 한국에 올 때 마다 기훈이 동행한 남자다. 약국에서 늦은 밤 함께 술을 마신 적도 있다. 그리고 그는 난교파티 동영상속에도 있었다. 불 꺼진 약국 안으로 가로등 불빛이 어슴푸레 들어오는 것을 느꼈을 땐 이미 수연은 조제실 바닥에 나무토막처럼 나뒹굴어져 있었다.

  
[제8회 천강문학상소설 우수상 수상작]

천강장군 곽재우 天降將軍 郭再祐

강 선(姜 善)

 

1.

가파른 골짜기에서 흘러내려온 산그늘이 마당을 절반쯤 덮고 있었다. 마을 바깥의 외딴집, 노랗게 다져진 황토마당 한쪽으로 밀려난 저녁볕이 눈부시게 고왔다. 그늘 속에 잠긴 초가집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인 듯했다. 실눈을 뜬 채 싸리나무 울타리를 에돌던 구니아키가 멈칫하더니 홱, 몸을 틀었다. 쥐고 있던 몽둥이로 불문곡직, 뒤따르던 마고토키로의 뒷덜미를 후렸다. 지팡이라기엔 짧고 막대기라기엔 굵은, 보자기로 싸맨 나무토막이었다.

마고토키로는 비명 없이 무너져내렸다. 보자기로 싸맨 나무토막은 마고토키로의 손에도 있었다. 구니아키가 무너져내리는 몸뚱이와 그 나무토막을 가뿐하게 받아 안고 오던 길을 되짚어 올라가더니, 비탈 중턱의 솔숲에 부려놓았다. 고함을 지른다면 대화도 주고받을 수 있을만큼 가까운 곳의 초가집이 한눈에 들어왔다. 다행이 바싹 마른 묵은 억새와 파릇파릇한 새 억새가 얼크러진 덤불이 앞가림을 해주고 있어 들킬 염려는 없었다.

역시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쪽마루에 걸터앉아 마당에 늘어선 부하들을 맵차게 다그치는 사내는, 노부유키 부장이었다. 구니아키는 혼절해 있는 마고토키로를 힐끗 내려다보며 긴 숨을 내쉬었다. 겪지 않아도 좋을 상황을 자초한 것은 마고토키로와 구니아키, 자신들이었다. 지나친 방심 탓이었다. 집에 들렀다 가겠다는 마음 따위는 애당초 먹지 말았어야 했다.

― 현풍으로 가라. 비슬산 용연사를 찾아가라. 그곳에서 우리 첩보대원들이 이번 표적인 곽재우에 관한 모든 것들을 넘겨줄 것이다. 시일이 촉박하다. 곧장 가라. 너희 가족은 내가 끝까지 책임진다.

아침나절, 노부유키 부장은 마고토키로와 구니아키를 불러놓고 지령을 하달한 다음, 덧붙였다.

― 알다시피 지금 육지엔 김덕령이 없고 바다엔 이순신이 없다. 히데요시 전하께선 이 기회에 전쟁을 끝내고 싶어 하신다. 그러므로, 이번 표적 제거가 너희들의 마지막 임무다.

마지막 임무. 그 말을 흘려듣지 말았어야 했다.

특히 마지막이란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숨어있게 마련이었다. 곧 큰 전쟁이 터질 것, 대대적인 부대의 이동이 뒤따를 것, 전례 없는 잔혹한 살상이 벌어질 것.

 

가족은 내가 끝까지 책임진다. 그 말도 곱씹어 봤어야 옳았다.

특히 책임진다는 말에 내포된 의미를 헤집어봤어야 했다. 마고토키로와 구니아키에게 가족이란 걸 만들어준 사람이 노부유키 부장 자신이었다. 자기가 만들어준 가족이니 끝까지 책임을 지겠다는 뜻으로 이해했다면 잘못일까.

지난해, 마고토키로와 구니아키가 울산성에 도착하자마자 따라나섰던 첫 포로사냥길. 그것은 노부유키 부장이 대원들을 야수처럼 길들이기 위한 정기훈련 중 하나라고 했다. 성곽 바깥의 외딴집, 이미 보병부대 군사들이 그곳을 점령하고 있었다. 두 여자가 얼어붙은 듯 뜰 가운데 서있었다. 군사 하나가 여자들의 아비를 쪽마루 아래로 내동댕이쳤다. 마당에 서있던 군사의 칼이 빗금을 그었다. 목이 끊긴 아비가 빗자루처럼 쓰러졌다. 보병부대 군사 둘이 파랗게 질린 여자들에게 달려들어 옷을 벗겼다. 옷고름이 후드둑, 투둑, 떨어졌다. 지켜보던 군사들이 몸부림치는 여자들을 바라보며 키들거렸다. 반쯤이나 옷이 벗겨진 여자들은 사냥꾼에게 쫓긴 까투리처럼 목청을 찢어발기며 울부짖고 빌었다. 겁에 질린 여자들과 마고토키로의 눈이 마주쳤다. 단지 그렇게 느꼈을 뿐인지도 몰랐다. 마고토키로는 여자들을 보고 있었으나, 자매들의 시선에는 초점이 없었던 건 아닌지. 마고토키로는 구니아키의 옆구리를 찔러 신호를 보냄과 동시에 몸을 날렸다. 단번에 두 놈을 제압하고 자매들을 구하긴 했으나, 같은 편 군사들을 공격한 게 잘한 일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곳에 있던 보병부대 군사들이 일제히 칼을 빼들고 마고토키로와 구니아키를 에워쌌다. 중과부적. 마고토키로는 낭패를 직감했다. 제아무리 빠르다 한들, 열 배가 넘는 병사들과 맞붙는 것은 무리 아니겠는가. 순간, 노부유키 부장의 벽력 같은 고함이 날아들었다. 물러나라. 네놈들이 감히 첩보부대와 일전을 해보겠다는 것이냐. 노부유키 부장의 잔혹성을 소문으로 알고 있는 보병부대 군사들이 순순히 칼을 거두고 물러갔다. 이번에는 두 사람이 엄벌에 처해질 차례. 정수리로 떨어질 벼락을 기다리며 푹 꺾은 머리 위로 노부유키 부장의 상냥한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보병부대 놈들을 혼내준 건 아주 잘한 일이다. 상으로 너희 둘에게 저 여자들을 내려주겠다. 마고토키로와 구니아키는 아비의 장례를 정중히 치러주고, 슬픔을 다독여라. 얼떨결에, 전광석화처럼 맺어진 가족이었다.

곧장 가라. 그 말도 유념했어야 옳았다.

특히 곧장이라는 말 속에 웅크린 발톱을 더듬어봤어야 했다. 절대로 집에 들르지 말라는 군령이었다. 노부유키 부장은 그 말의 효과를 직접 확인하고자 대원들을 이끌고 온 것 아니겠는가.

푸하아, 꽉 붙었던 마고토키로의 입술이 툭 터지면서 헛바람을 내뿜었다. 구니아키는 그러나 마고토키로가 완전히 깨어나서 몸을 일으킬 때까지 꼼짝 않고 기다렸다. 마고토키로는 다섯 자에 못 미치는 키에 체구도 가냘팠고, 구니아키 자신은 여섯 자가 넘는 키에 힘이 넘치는 우람한 체구를 지니고 있었다. 그렇더라도 고향 사카이에서도 이곳 조선에서도 마고토키로는 형이었고, 조장이었다. 군기가 추상같은 첩보부대에서 조원이 조장을 기습하는 하극상이 용납될 수 있느냐를 따질 계제는 아니라지만, 부룩소처럼 펄펄 날뛸 수는 있었다. 구니아키로서는, 상황이 상황인 만큼 지금만은 그 어떤 변명도 설명도 입에 담을 마음이 없었다.

 

― 어엇, 어찌 된 일이지.

마침내 마고토키로가 눈을 비비며 윗몸을 일으켰다.

― 쉿.

구니아키는 검지를 곧추세워 마고토키로의 입부터 막았다. 그러고는 눈갈코리를 바짝 세워 마고토키로의 눈길을 얽어맨 다음, 비탈 아래로 끌어내렸다. 그것으로 설명도 변명도 필요 없게 되었다. 그사이 산그늘이 두껍게 깔린 마당에서는, 사내 둘이 치고박는 몸싸움이 한창이었다. 사생결단이라도 낼 듯 필사적인 두 사내나 빙 둘러앉아 이빨을 꽉 사려물고 지켜보는 대원들이나, 주먹 쥐고 숨 죽인 모습은 똑같았다. 언제나 노부유키 부장이 내리는 상은 후했고, 벌은 가혹했다. 훈련이라 하더라도, 대원들이 목숨을 걸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 어, 저것들 훈도시만 차고 있잖아.

마고토키로가 기가 막힌다는 듯 투덜댔다.

노부유키식 육박전 훈련. 그랬다. 잠시의 자투리 시간도 허투루 흘려보내는 법이 없는 노부유키 부장이었다. 부대 바깥의 민가라고는 해도, 그가 벌이는 육박전 훈련을 색다른 짓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알몸에 훈도시 차림이라는 것도, 육박전 훈련 때마다 늘 그래왔던 일. 그러니까, 마고토키로는 딱히 훈도시 차림이라는 것만을 지적할 셈은 아니었으리라. 요점은 쪽마루에 앉아있는 구경꾼이 왜 마고토키로와 구니아키, 자신들의 아내냐는 것.

― 그보다도, . 어찌된 일이지. 노부유키 부장이 자기 입으로 거듭 당부했잖아. 저곳이 우리들의 살림집이라는 걸 절대로 대원들에게 노출시키지 말라. 자기가 그래놓고 자기가 대원들을 데려온건 왜일까.

구니아키가 땅바닥에 끌릴 정도로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거기에는 기습적인 몽둥이질로 기절시킨 데 대한 미안한 감정도 조금쯤은 실려 있었다. 그것을 알아챘는지 어쨌는지, 마고토키로는 말이 없었다. 점점 촘촘해지는 불안 위에, 점점 두꺼워지는 산그늘이 먹물을 들이붓고 있었다. 그렇더라도, 지금으로선 마고토키도 구니아키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단 한 가지만은, 최악만은 비켜가기를 비는 수밖에. 육박전 훈련 최후 승자에게 내리는 상품이, 두 사람의 두려움만은 아니기를.

 

 

일본 땅의 모든 다이묘(大名)들을 무릎 꿇리고 통일을 이룩했으나, 천민 출신인 히데요시는 쇼군(將軍)은 될 수는 없었다. 대신 간파쿠(關白)란 어정쩡한 칭호를 얻었다. 스스로 천하인을 자처했으나, 의심이 많은 탓에 이래저래 좌불안석일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 끝나버린 섬나라에서 막강한 군사력을 지닌 범 같고 이리 같은 다이묘들이 할 일이란 무엇이겠는다. 어느 한순간, 창을 돌려잡지 말라는 법이 없잖은가. 당연히 다이묘들의 세력을 약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히데요시는 간파쿠 벼슬을 조카 히데쓰구에게 양도한 다음, 자신은 다이코(太閤)가 되어 해외정벌의 기치를 쳐들었다. 조선과 명나라를 정벌하고 천하를 통일하겠다. 그랬으므로, 조선 침략에 동원된 군사가 천황의 군사 아닌 히데요시의 가병이었으므로, 조선이나 명나라에서는 조일전쟁이라 부르지 않고 임진왜란이라 칭한다지 않던가.

히데요시의 가신 가운데서도 기요마사는 말과 행동이 가장 거칠었다. 검은 속내를 함부로 드러내기를 예사로 했다. 외교문서 따위를 보내서 강화회담 따위를 하느니, 첩자를 보내 적정을 살핀 다음 단숨에 쳐들어가겠다. 그 기요마사가 침략전쟁의 선봉으로 나서면서, 노부유키를 발탁해 첩보부대를 맡겼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첩자들의 활약으로 함경도에서 조선 왕자를 둘씩이나 사로잡았던 것. 그러나 번번이 평화주의자 유키나가의 술책에 걸려들었다. 유키나가 주도로 명나라와 강화회담이 시작되자, 생포했던 조선 왕자 2명을 풀어줘야 했다. 분통이 터진 기요마사는 강화회담 진행중임을 무릅쓰고 진주성을 공격했다. 강화회담을 깨려는 의도였다. 유키나가는 다른 다이묘들과 연합해서 기요마사의 방해를 참소했다. 히데요시로서는 여러 다이묘들의 원성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기요마사를 본국으로 소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요마사와 유키나가가 서로 으르렁댄다는 사실은 히데요시도 잘 알았다. 평소에도 유키나가는 기요마사를 무식한 칼잡이라 얕잡아 불렀고, 기요마사는 유키나가를 미천한 장사꾼 아들이라 깎아내렸다. 히데요시로서는 나쁠게 없었다. 가신들끼리 열심히 충성경쟁을 하다보면 충성심은 더욱 높아질 것 아니겠는가.

기요마사를 다시 조선으로 불러들인 것은 강화회담의 결렬이었다. 기요마사는 조선으로 돌아오면서, 노부유키 첩보부대에 암살조를 추가했다. 표적은 관군의 장수인 권율과 이순신, 의병장인 김덕령과 곽재우, 그리고 부하들을 데리고 조선에 투항한 반역자 사야가였다.

 

첩보부대원 대부분은 대마도 출신이었다. 조선 침략전쟁이 터지면서 대마도는 전쟁의 전초기지가 돼버렸고, 주민들의 삶은 피폐해졌다. 무역도 노략질도 길이 막히고 보니, 찬밥 더운 밥 가릴 처지가 못되었다. 약삭바른 자들은 첩자노릇에 기꺼이 목숨을 걸었다.

암살조원은 마고토키로나 구니아키처럼 오사카 인근 사카이 지방에서 갑자기 징발된 사무라이들이었다. 사카이 지방은 부유한 상인들의 무역 거점이기도 했고, 질 좋은 철광석 생산지이기도 했다. 상인들은 무역으로 벌어들인 막대한 재산을 지키기 위해 사무라이들을 고용하는 한편, 철광석을 제련해서 조총을 대량으로 제조하는 일에도 힘썼다.

사무라이들이 칼 대신 철포를 쥐게 되자, 조총 다루는 기술도 발달했다. 무이(無二 : 둘도 없는 최고다), 발중(發中 : 쏘면 반드시 맞힌다), 하침(下針 : 실에 달린 바늘도 맞힌다), 학수(鶴首 : 가느다란 학의 목도 뚫는다), 반딧불이(: 밤하늘을 날아다니는 반딧불이도 맞힌다), 부엉이(: 부엉이처럼 밤눈이 밝다) 같은 별명으로 불리는 저격수들이 속속 출현했다. 사카이에서는, 조총을 잘 쏘지 못하는 사내는 쭉정이였다.

노부유키 부장의 별명이 쏘면 반드시 맞힌다는, 발중이었다. 예부터 사카이 사무라이는 권력에 빌붙지 않는 것을 명예로 여겼다. 어디까지나 상인들과 계약을 맺은 용병이었으므로, 전국시대처럼 할복조차 마다않고 주군에게 충성을 바치는 영혼팔이 칼잡이가 될 필요는 없었다. 그러므로, 사카이 사무라이의 행동지침은 간명했다. 백성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만 싸운다. 사카이 지방은 그때문에 충성맹세를 좋아하는 노부나가에게도, 히데요시에게도 토벌의 대상이었다. 노부유키 부장만이 유독 사카이 사무라이의 자존심을 헌 짚신짝처럼 내던지고 기요사마의 가신이 되었던 것. 일본 최고의 사무라이, 무이란 별명으로 불렸던 스승 사야가에 대한 질투심의 발로였다.

다이코 히데요시는 조선 정벌에 나서면서 사카이의 사야가에게 징발령을 내렸다. 철포부대 3천 명을 이끌고 참전하라. 항거할 수 없었다. 이미 천하통일을 달성한 히데요시가 작심하고 내린 명령이었다. 눈물을 머금고 제자들과 함께 기요마사 휘하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속셈만은 따로 챙겨야 했다. 불과 두 해 전, 사카이 정벌전쟁에서 히데요시가 저지른 살상극을 똑똑히 지켜봤던 탓이었다. 히데요시는 인간으로서도, 사무라이로서도 실격이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음에도, 이미 항복한 사카이 사무라이 수백 명을 꿇어앉혀 놓고 명을 내렸던 것이다. 너희들은 내게 끝까지 저항했으니 용서할 수 없다. 모두 할복하라. 사카이 백성들은 이를 갈았다. 저리도 흉포하고 인간의 존엄을 지킬 줄 모르는 자가, 어찌 천황폐하를 대신하여 백성을 다스릴 수 있다는 말이냐.

 

마고토키로와 구니아키가 뒤늦게 용병으로 뛰어든 것도 예사롭지 않았다. 구니아키가 어머니의 고질병 때문에 큰 빚을 짊어지지만 않았더라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이었다. 사야가 사범이 제자 3천 명을 이끌고 바다를 건너갔을 때도 참전을 거부했던 마고토키로와 구니아키였다. 그뿐 아니라, 마고토키로는 사야가 사범을 따라나서는 아우 노부토키로와도 헤어져야 했다. 구니아키와의 우정을 지키자는 것이기도 했지만, 사카이 사무라이의 명예를 지키자는 뜻이기도 했다. 백성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만 싸운다. 그것이, 스승의 간곡한 권유를 물리칠 만한 값어치를 지녔다고 굳게 믿었던 젊은 혈기였다.

단번에 집어삼키고 끝날 듯싶던 조선 침략전쟁이 지지부진 3년을 끌고 있을 무렵. 구니아키가 걸머진 빚더미에 마고토키로까지 깔려 신음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불쑥 사카이에 나타난 노부유키 부장이 미끼를 던졌다. 내 휘하로 들어와라. 너희들의 솜씨에 걸맞은 일본 최고의 대우를 해주겠다. 다이코 히데요시님도 다이묘 기요마사님도, 첩자에게 내리는 상급을 아끼시지 않는다. 승전하고 고향에 돌아올 때면, 사카이 최고의 부자가 돼 있을 것이다. 그뿐 아니다. 빚을 갚을 수 있게 가불도 해주겠다. 조선에서 제일 예쁜 여자도 안겨주겠다.

노부유키 부장 역시 사야가 사범의 제자였건만, 스스로를 스승의 경쟁자로 자임했다. 언젠가는 사야가를 누르고 일본 최고의 사무라이가 되겠다, 그런 말을 함부로 지껄이고 다녔다. 아닌 게 아니라, 노부유키 부장은 체구도 크고 힘도 장사인데다가 완력이나 검술에서도 맞설 자가 없었다. 사야가 사범이 3천 명의 제자들과 함께 조선에 투항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쾌재를 불렀다. 이제야말로 내가 일본 최고 사무라이에 등극한 것 아니겠는가.

노부유키 부장은 표독스럽고 잔혹했다. 조선인 포로가 잡혀오는 날이면, 그날이 바로 사격 솜씨를 한껏 뽐내는 날이었다. 포로 중에서 젊고 날쌘 자를 골라내어 삼십 보 앞에 세워놓고 외쳤다. 네가 조총의 사거리를 벗어날 때까지 쓰러지지 않고 달린다면, 살려주겠다. 약속한다. 그럴 때의 노부유키 부장 얼굴에는 부처님의 자비로움이 넘실거렸다. 삼십 보는 조총사격을 피해서 도망칠 수 있으리라, 착각하기에 딱 알맞은 거리였다. 포로는 죽을 힘을 다해 내달렸고, 노부유키 부장은 입가에 웃음을 빼물고 천천히 조총을 들어 올렸다.

 

사카이의 사무라이들이 익힌 조총 사격술은 열네 단계로 되어있었다. 꽂을대로 총열을 쑤셔서 청소한다. 총구를 통해 발사용 화약을 넣는다. 꽂을대로 화약을 안으로 밀어 넣는다. 총구를 통해 납탄환을 넣는다. 꽂을대로 납탄환을 안으로 밀어 넣는다. 총구를 통해 종이를 넣는다. 꽂을대로 종이를 안으로 밀어 넣는다. 화약접시 덮개를 연다. 화약접시에 점화용 화약을 넣는다. 총을 흔들어 점화용 화약과 발사용 화약이 섞이게 한다. 화약접시 덮개를 닫는다. 용두에 화승을 붙인다. 화문을 연다. 목표물을 겨누고 사격한다.

노부유키 부장은 그 열네 단계 연속동작을 흐트러짐 없이 시행하여, 포로가 사거리를 벗어나기 전에 적어도 세 발을 쏘았다. 세 발 모두를 피한 포로는 지금까지 단 하나도 없었다. 실탄을 맞은 포로들은 비틀거리면서도 달리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포로들은 등이나 머리에 실탄을 맞은 채 버둥거렸다. 살고 싶었으리라. 노부유키 부장은 비틀거리는 포로에게 새로 먹인 실탄을 거듭 쏘았다. 포로는 풀썩 먼지를 일으키며 엎어졌다. 포로가 엎어질 때마다 노부유키 부장은 커다랗게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을 그친 다음에는 너그러운 목소리로 포로를 잡아온 부하들을 격려했다. 수고했다. 너희들의 수고를 주군님께 보고해서 상을 내리도록 하겠다.

주군 기요마사는 언제나 노부유키 부장을 칭찬했다. 고립무원의 조선 땅을 누비면서 우리가 공을 세울 수 있었던 것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노부유키의 치밀한 정보수집과 과감한 작전 덕분이다. 기요마사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노부유키 부장의 충성심은 한 뼘씩 웃자랐고, 부하들은 뼈가 으스러졌다.

― 아무래도 아내들 얼굴 보기는 틀린 것 같지 않아. 약조 시각에 대려면, 아쉽지만 그냥 떠날 수밖에.

역시 마고토키로가 조장노릇을 하고 나섰다. 그랬다. 기요마사 부대의 주둔지인 울산성에서 현풍까지는 3백 리, 빠른 걸음으로도 이틀 거리였다.

꽃 피고 새 우는 봄이라고는 해도 밤기운은 차가웠던 것일까. 마당 가운데에서는 어느새 모닥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활활 춤을 추는 불빛 속에서 훈도시 차림의 사내들이 맞잡이로 벌이는 몸싸움은, 도깨비놀음인 양 기괴하고 요망스러웠다. 그렇건만, 노부유키 부장의 육박전 훈련은 언제까지라도 계속될 모양이었다. 구니아키로서도 마고토키로의 말에 토를 달 생각은 없었다. 혹시라도 마주치게 되면 노부유키 부장은 결코 용서치 않을 것, 군률에 따라 목을 베겠다고 날뛸 것이다.

― 떠납시다, 형님.

 

 

2.

노을이 서녘 하늘에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참나무에 피어난 연초록 잎사귀가 주홍으로 물들어 센베이(煎餠)처럼 익어가고 있었다. 사야가는 야시로 부장을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작업을 끝내자는 신호였다. 야시로 부장이 목에 걸고 다니던 뿔피리를 힘차게 불었다.

― 내려가 보셔야지요.

한 발짝 가까이 다가온 야시로 부장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 알았네, 앞장서게나.

며칠 뒤 침략군 첩자들과 접선하게 될 정보조원들을 만나볼 시각이었다. 비밀리에 움직이는 자들이고 보니, 자신이 다소의 불편을 겪을지언정 병영으로 불러들일 수는 없었다.

어지러운 전장에서 살아남자면, 정보수집은 긴요했다. 다행히 사야가 부대는 침략군 부대에 연고가 얽혀 있었다. 조선에 투항했다해서 달라진 건 없었다. 일반 병사들 사이에서는, 피아의 구분보다는 이런저런 인연에 얽힌 인지상정이 더 잘 통했다. 좋은 현상이었다. 사야가는 야시로 부장에게 정보조 운용을 맡겼다.

― 장군님, 이쪽입니다.

휘어지고 뒤틀리며 용틀임을 하는 적송 아래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야가는 길을 틔우는 야시로 부장을 앞질러서 그리로 다가갔다. 노부토키로와 평구로가 나란히 예를 올렸다.

적지를 오가며 복무하는 정보조들은, 어쩔 수 없는 이중첩자였다. 이쪽의 정보를 내주는 꼭 그만큼만 저쪽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게 첩자세계의 정설이고 보면, 노부토키로와 평구로도 예외일 수 없었다. 부하이기 이전에 제자였으므로 뼛속까지 믿음이 꽉 들어차 있었건만, 순간순간 천변만화하는 곳이 전장이었다. 제자들의 목숨을 보호하자면, 그럴듯해 보이면서도 아군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만만한 정보를 추려서 쥐어줘야 했다.

― 이번엔 어떤 임무라던가.

사야가가 나지막히 물었다. 대답은 한동안 뜸을 들인 다음, 노부토키로의 입에서 나왔다.

― 암살조, 인 듯합니다.

바늘끝 같은 솔잎바람이 쌔애, 귓바퀴를 관통했다. 거기까지는 미처 짐작하지 못했던 사야가였다. 저절로 혀끝이 빳빳해졌다.

― 이, 사야가가 목표라던가.

이번에도 대답은 늦었다. 그나마도 반토막이었다.

 
[제8회 천강문학상 아동문학 대상]
 
 
살구나무 할아버지
안선희
 
 
 “자, 보세요. 이렇게 멋지게 바뀔 겁니다. 허물을 벗은 나비처럼 낙후된 산골이 살기 편안한 동네로 탈바꿈하는 거죠.”
 건설사 직원은 영상자료를 가리키며 힘차고 빠른 말로 설명을 했다. 텔레비전의 화면에는 눈에 익은 허름한 집, 구불구불한 좁은 길과 밭들이 나왔다. 곧이어 즐비하게 서 있는 높은 아파트, 넓고 곧게 뻗은 아스팔트길, 쇼핑센터 앞을 활기차게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드디어 여기도 재개발을 하게 되는구먼.”
 “우리도 번듯한 아파트에 살게 되었어.”
 마을회관에 모인 사람들은 희망에 찬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었다.
 삼년 전, 앞산에 터널이 뚫리고 고속도로가 지나가게 되었다. 예전에는 이곳에서 서울로 가려면 산을 돌고 강을 건너서 한나절이나 걸렸는데, 지금엔 자동차로 불과 한 시간이면 갈 수 있게 되었다. 그 때부터 이 동네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재개발한다는 말들이 무성했다.
 “우리 살구나무는 어떻게 되나유? 그 나무는 솔찬히 크단 말이여.”
 골목 어귀에 있는 구멍가게 할머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이 마을에는 살구나무가 많아서 거의 한두 집 건너 있었다. 살구꽃이 구름처럼 피어나면 꿈속처럼 아늑하고 정겨워 보였다. 할머니는 살구나무 아래에 평상을 놓았다. 그 곳에서 주전부리를 먹거나 막걸리를 마시기도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쉬어가기도 했다.
 “살구나무가 별 건가요? 여기 집이며 나무들은 싹 다 밀어버리고 완전히 새로 만든다니까요? 새 아파트에는 비싼 조경수를 심게 됩니다. 아이들이 뛰노는 놀이터가 생기고, 곳곳에 벤치가 있고, 멋들어진 정자도 만들 겁니다. 또한 경로당을 지어서, 어르신들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쉬실 수 있습니다. 더욱 중요한 건 아파트가 들어서면 여러분의 재산 가치는 지금보다 몇 배로 뛰어오를 것입니다.”
 직원의 대답을 듣자 사람들은 싱글벙글 입꼬리가 올라가고 분위기가 들썩들썩 했다. 하지만 눈썹이 굵고 수염이 허연 할아버지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다. 그 할아버지는 회의가 끝나기도 전에 벌떡 일어났다.
 “뭐라고? 나무들을 싹 다 밀어버린다고? 끄응! 새 것이고 비싸면 다 좋은감?”
 

 건설사 직원의 설명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할아버지는 밖으로 나왔다.
 아무것도 모르는 살구꽃들은 화사하게 피어올라 온 동네가 환했다. 저만치 동네의 끝에 있는 살구나무는 다른 나무보다 훨씬 더 키가 크고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가만히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살구꽃이 스며들었는지 할아버지의 얼굴이 점차 밝아졌다. 할아버지는 무언가 결심한 듯 심호흡을 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산들바람이 향긋한 꽃향기를 실어와 할아버지의 코를 간질였다.
 다음날부터 사람들이 모이면 재개발이야기로 떠들썩했다.
 “나는 지금 재개발동의서에 도장 찍고 오는 길이네. 자네도 했는가?”
 “당연하지. 나는 설명회 끝난 후 곧바로 했다네.”
 “언제부터 공사가 시작되는지 아는 겨?”
 “재개발 조합장이 그러는데 전 주민의 동의서만 받으면 곧 시작한다더군.”
 사람들의 얼굴은 들떠 있었다. 그들은 눈만 마주쳐도 괜스레 웃음을 실실 흘렸다. 저 쪽에서 수염이 허연 할아버지가 걸어오자 그들이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영감님, 재개발에 동의하셨나요?”
 “재개발인지 뭔지 나는 안 혀. 당신들이나 혀.”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기가 싹 가셨다.
 “할아버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한 집이라도 동의를 안 하면 재개발을 못 한다고 하던데요.”
 “아, 글쎄, 나는 안 한다니까. 끙!”
 할아버지는 찬바람을 일으키며 지나갔다.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멍하니 서서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후부터 사람들은 만나기만 하면 수군거렸다.
 “그 할아버지는 무슨 고집을 그리 부릴까? 다 같이 잘 살자는데 독불장군 마냥 왜 혼자만 반대를 하는 거야?”
 “그거야 뻔하지 않아? 보상금을 더 받으려는 속셈인 게지.”
 며칠 후 건설사 직원이 할아버지 집으로 찾아 왔다.
 “다른 세대들은 모두 재개발에 동의를 했습니다. 할아버지만 하시면 됩니다. 보상금이 적어서 그런가요? 할 수 없죠. 할아버지에게만 특별히 보상금을 더 드리겠습니다. 그 대신 다른 사람에게 말하시면 절대로 안 됩니다.”
 “돈을 더 준다고? 내가 돈을 더 달라고 이러는 줄 아나?”
 할아버지는 불같이 역정을 내었다.
 “그럼, 왜 그러세요? 도대체 왜 재개발을 하지 말라는 건가요?”
 

 건설사 직원도 큰 소리로 맞받아쳤다.
 “재개발을 하면 저 살구나무는 어떻게 되는 겨?”
 할아버지가 살구나무를 가리키자, 건설사 직원은 살구나무가 있는 뒷마당으로 걸어가면서 대답했다.
 “아, 예. 지난번 설명회 때 말씀 드렸지요? 여기 나무들은 없애고 요즘 잘 잘나가는 조경수를 심을 겁니다. 아주 고급 진 나무로요. 이 살구나무 말인가요? 얼마나 받으시려고요? 한 십년 동안 딸 수 있는 살구값을 쳐 드리겠습니다.”
 “뭐라고? 살구값을 준다고? 아, 됐네. 어서 돌아가게. 난 못 해.”
 할아버지는 화를 내면서 가라고 손을 휘저었다. 건설사 직원은 왜 그러지? 하는 표정으로 할아버지를 보았다. 잠시 싸늘한 기운이 흘렀다.
 건설사 직원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살구나무를 위에서 아래로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나무를 쓰다듬으며 한 바퀴 돌아보고 난 후, 말을 꺼냈다.
 “나무가 잘 생겼는데요. 제법 오래된 나무 같네요.”
 건설사 직원의 말에 할아버지의 표정이 누그러지고 있었다.
 “그럼, 나무가 아주 늠름하지 않은가. 이제 말이 좀 통할 것 같구먼.”
 “네? 아, 네에. 무슨 말씀이라도 하시죠.”
 건설사 직원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우리 할아버지가 혼인하고 삼 년 만에 아들을 얻고 심은 나무라네. 우리 집안이 자손이 귀해. 내가 삼대독자거든. 할아버지도 우리 아버지도 저 살구나무를 애지중지 하셨다네.”
 살구나무 그늘이 감싸고 있는 뒷청마루에 할아버지가 걸터앉자, 건설사 직원이 따라 앉았다.
 “살구가 실하게 열렸네요. 잎들도 아주 싱싱하구요. 조상 대대로 물려온 나무라서 없애기 싫은가 보군요.”
 초록색 살구가 주렁주렁 매달린 나무를 보면서 직원이 말했다.
 “그렇고말고. 그뿐만이 아니라네. 이 나무는 사람을 살린 나무야.”
 “네에? 살구나무가 사람을 살렸다고요?”
 건설사 직원은 할아버지 곁으로 바싹 다가앉았다.
 할아버지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뜨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일제 강점기로부터 해방이 되어 누리던 기쁨도 잠시였다네. 알다시피 6·25 동란이 일어났잖은가.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눈 전쟁이었지.”
 할아버지는 아득한 눈길로 저 멀리 하늘을 바라보았다.
 “큰 산으로 둘러싸인 우리 마을은 6·25동란 중에…….”
 

 
…… 별 탈 없이 지나가는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전쟁의 막바지에 쫓기던 북한군이 산을 타고 이 동네에 들어왔다. 인민군은 계속되는 패전으로 악에 받쳐 있었다.
 어둑어둑할 무렵이었다. 붉은 완장을 찬 그들은 총칼을 겨누고 집집마다 방문을 열어젖히고, 커다란 장독을 깨부수고, 볏짚들을 찔러대면서 다짜고짜 남자들을 잡아갔다.
 고함을 치고 여기저기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그들이 가까이 오고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은 방이며 헛간, 변소를 오가며 숨을 곳을 찾았지만 마땅한 곳이 없었다. 그러다가 살구나무가 있는 뒤꼍까지 오게 되었다. 살구나무는 푸른 잎을 활짝 펼치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나무에 올리려고 엉덩이를 밀어 올렸지만 아들이 자꾸만 미끄러졌다. 사다리는 헛간에 있는데, 가져올 시간이 없었다.
 “강석아, 어서!”
 갑자기 아버지가 앉더니 목을 내밀었다. 엉겹결에 아들은 아버지의 목에 올라탔다. 그 당시 열세 살이었던 아들은 아버지보다 키가 컸다.
 “으이쌰!”
 힘을 주면서 일어나던 아버지가 비틀거렸다. 넘어지려고 할 때 아버지는 살구나무를 붙잡고 섰다. 아버지의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왔을까. 마침내 살구나무 위로 올라간 아들은 다급하게 손을 내밀었다.
 “올라오세요. 아버지. 어서요! 제 손 잡으세요.”
 아버지가 나무에 기어오르면서 팔을 뻗었지만, 잠깐 손이 스쳤을 뿐, 아들은 아버지의 손을 잡을 수 없었다.
 쿵쾅쿵쾅 그들이 대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는 손을 거두고 간절하고 그윽한 눈으로 아들을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숨으라는 손신호를 보내고, 키 작은 장독 뒤로 가 숨은 척 했다. 단번에 아버지를 찾은 북한군은 아버지의 머리에 총구를 들이대면서 끌고 갔다.
 “아버지!”
 끌려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면서 아들은 입을 틀어막고 숨죽여 울었다.
 그 날 잡혀갔던 마을 남자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도망치던 인민군들이 계곡에서 사살했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유해도 찾을 수 없었다.
 
 “그 아들이 바로 할아버지였군요.”
 건설사 직원의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할아버지는 아득한 눈길을 거두며 한숨을 내쉬었다.
 “살구나무 아래에서 나를 올려다보던 아버지의 눈빛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네.”
 할아버지의 주름진 눈가가 벌겋게 젖어 있었다.
 “그러신 줄도 모르고……. 또 뵙겠습니다.”
 직원은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떠났다.
 살구가 노랗게 익어가던 날, 한참동안 소식이 없던 건설사 직원이 벙실거리면서 할아버지를 찾아왔다.
 “할아버지, 살구나무를 살릴 수 있게 되었어요. 이 나무는 건드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정말인가? 그것 참 반가운 소식이구먼.”
 “정말이고말고요. 좋은 소식을 전해드리려고 저도 많이 노력했습니다.”
 건설사 직원의 두 손을 꼭 잡은 할아버지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고맙소. 이 살구 좀 드시게.”
 어느 새 할아버지는 살구를 한 바가지 가져왔다.
 “오! 살구가 아주 크군요. 이렇게 단 살구는 처음 먹어봅니다.”
 건설사 직원은 맛있다면서 단숨에 살구를 몇 개나 먹었다.
 “저어기 살구나무들 중에 사연 없는 나무가 어디 있겠소. 한평생을 함께 한 나무들인데……. 재개발한다니 다 같이 하는 일이라 말하지 않았을 뿐이겠지.”
 마을 살구나무들을 보는 할아버지의 눈길에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직원도 울긋불긋 물이 든 살구나무들을 눈에 담듯이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돌아가는 직원의 손에는 달큰한 향이 나는 살구가 한 자루 들려있었다.
 
 “큰사랑아파트로 가 주세요.”
 택시를 탄 아주머니가 기사에게 말했다.
 “큰사랑아파트요? 아, 살구나무 아파트? 그 아파트에 처음 방문하시나 봅니다. 그곳은 이름보다 살구나무 아파트라고 해야 더 잘 알아들어요. 하! 아파트 공원에 있는 살구나무들이 얼마나 탐스럽게 피는지 꽃잔치도 그런 잔치가 없어요. 한 살구나무와 할아버지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마을 살구나무들을 공원으로 옮겨 심었다는데 볼수록 잘 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할아버지 사연이라구요?”
 “아, 네. 그건…….”
 살구꽃 같이 환한 기사아저씨의 이야기는 도착할 때까지 끝날 줄 몰랐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안선희 사진.tif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378pixel, 세로 474pixel
 
►안선희
 
서울한성대학교 행정대학원 졸업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평생교육원 동화창작스토리텔링 수료
현재 서울영서초등학교 교사 재직
E-mail :
sunyan10@hanmail.net
 
[제8회 천강문학상 아동문학 우수상]
 
 
 
흔들의자
임창아
 
 
 
흔들리고 있는 의자가 있다
 
누군가를 흔들어 주기 위해
 
체력을 기르는 중,
 
누군가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심심하지 않게
 
흔들리고 있다
 
누군가 앉았다 간 후에도
 
잘 가라고
 
삐거덕삐거덕 저를 흔들고 있다
 
뒷짐 지고
 
아빠 흉내 내는 동생같이,
 
중심 잡기 위해
 
낮잠을 자면서도
 
흔들리는 의자가 있다
 
자꾸만 흔들려서 앉아보고 싶은 의자가 있다
 

방과 후
 
 
몽당연필이 놀이터 가자고 썼습니다
 
지우개가 학원가야 한다고 지웠습니다
 
 
 
 
 
 
 
 
 

할머니 빨리 집에 가요
 
 
누렁이 밥도 줘야하고
고추 모종도 심어야 하고
마늘밭 풀도 매야 한다면서
누워만 계시네
 
맨날맨날 밭에만 엎드려 계시더니
지금은 요양원 침대에만 누워계시네
 
할 일이 태산이라면서,
 
생선살 내 밥숟가락 위에 올려 주시더니
이제는 내가 먹여 주는 밥도 다 흘리고
 
그동안 할머니가 내게 밥 먹여 줬으니
이제는 내가 할머니 밥 먹여 줄게
 
내가 울 때 눈물 닦아줬으니
이제는 내가 할머니 눈물 닦아 드릴게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임창아.pn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411pixel, 세로 563pixel
 
 
►임창아(임창숙)
 
경남 남해 출생
2004년《아동문예》문학상
2009년《시인세계》신인상
시집『즐거운 거짓말』, 계명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수료
현 계명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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