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공모분야
① 정식부문 : 시, 단편소설, 수필
② 특별부문 :
독서감상문
- 지정도서 : (재미동포 아줌마 또 북한에 가다 / 신은미 / 네잎클로바)
③ 주제
: 민족화해협력, 평화통일, 남북교류, 민주주의 발전과 관련한 내용이 포함된 주제
④ 응모분량
- 정식부문 ▶ 시 : 3편
이상
▶ 단편소설 :
200자 원고지 100매 내외 분량
▶ 수필 : 200자
원고지 15매 내외 분량
-
특별부문 ▶ 독서 감상문 : 200자 원고지
15매 내외 분량
▶ 지정도서를 읽고 감상문
작성
2. 응모자격
- 고등학교 1학년 ~ 만40세 (단, 기성작가
제외)
3. 일정
- 응모기간 : 2017년 5월 16일(화) 09:00 ~ 5월
31일(수) 18:00
- 시상식 :
2017년 6월 15일(목) 18시, 63빌딩컨벤션센터
4. 제출처
- 공식
이메일(615award@gmail.com)
5. 발표
- 2017년 6월 7일(수)
12:00
- 공식
블로그(http://blog.daum.net/615award) 및 개별통보
6. 시상내역
- 6.15통일문학상(대상/1명) : 상금 100만원, 상장 및
부상
- 우수상(정식부문/2명) : 각
상금 30만원, 상장 및 부상
-
특별상(독서감상문/1명) : 상금 30만원, 상장 및 부상
※ 응모한 작품은 일절 반환되지
않으며, 당선작의 저작권은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청년학생본부에 귀속됩니다.
※ 이메일 접수 작품만 유효합니다.
※ 시, 단편소설, 수필, 독서감상문은 반드시 실행위원회가 제공하는
파일을 다운로드해서 작성하여야 합니다.(http://blog.daum.net/615award에서 내려받기)
※ 시상식에 불참할 경우 당선이
취소됩니다.
※ 시상식은
김대중평화센터가 주최하는 '6.15기념식'장에서 이희호 여사님을 모시고 진행합니다.
※ 심사위원 명단은 당선자 발표 시
공개합니다.
주최) 6.15통일문학상 실행위원회 전화)02-364-6155
http://blog.daum.net/615award (역대 수상작품)
6.15통일문학상7회 공모전 심사평
2017.06.22 14:55 6.15통일문학상
통일은 남북이 갈라지기 전의 어느 자리를 되찾는 ‘사건’이라기보다 자신의 근거지를 잃어버린 겨레가 미래의 고향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생각 속에서 응모작을 읽었다. 당연히, 이산가족의 슬픔이나 실향민의 삶과 같은 주제만이 아니라 지금 이 시각에도 분출되고 있는 분단의 실제적이고 다양한 모순과 고통을 직시하는 주제가 많기를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올해는 분단을 과거 세대의 고통으로만 아는 작품의 비중이 이전에 비해 많이 줄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었다. 심사는 장르별 평가를 통해 좋은 작품들을 먼저 한자리에 모으고, 나중에 장르 구별 없이 순서를 간추리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는데, 전체적으로는 응모작이 적으나 수상을 경쟁하는 작품들의 장점이 또렷해서 6.15 문학상이 6.15정신을 살리는 문학상으로서의 개성을 구축하는 일에 기여하는 바가 적지 않았다.
소설은 최종적으로 두 편을 검토했다. 세월호에서 살아남은 학생을 소재로 한 박재혁의 소설은 분위기 포착을 잘하고 언술능력이 뛰어나며 시대의 암울한 측면을 놓치지 않는 점이 돋보였으나 급히 쓴 작품처럼 서사적 안정감이 부족했다. 인터넷 매체에서 익숙한 띄어쓰기, 문장부호 등의 변용도 아쉬웠다. 한편, 정규철의 <두리둥실>은 문제의식이 뛰어나고 분단문제를 포착하는 시각도 참신하며 문장력도 좋은 작품이었다. 비록 전체 구성이 유기적 통일성을 얻지 못해서 서술자의 호흡이 전반부와 후반부가 달라지는 흠이 있지만 원숙하고 저력 있는 창작 태도를 높이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시는 전대산의 <통일을 꿈꾸는 남과 북>, 조현동의 <사랑과 믿음과 신념과 실천으로>, 박태연의 <만유인력의 법칙>을 최종 대상으로 삼았는데, 전대산의 작품과 조현동의 작품은 문학적 수사에 의존하기보다는 다소 직정적이고 관념적이긴 하지만, 오히려 비유나 상징 등을 동원한 다른 작품들보다 훨씬'살아있는 숨결'을 전해주었다. '문학적 방법'을 동원하는 것보다 직설적인 것이 더 울림이 있을 리는 없지만 올해의 응모작 중에서는 그래도 그쪽의 진정성이 더 돋보이는 게 사실이었다.
수필은 일반적으로 시, 소설과의 경쟁에서 매우 불리한 장르로 인식되는 게 사실이나 올해는 대상을 놓고 마지막까지 다툴 만큼 좋은 글들이 많았다. 황윤선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은 진솔하게 6.15시대의 자화상을 그려가는 솜씨가 뛰어나고, 이희준의 <초코파이 할머니>는 일상의 장면을 포착하여 이야기로 전해가는 능력이 발군이었다. 흔히 겪게 되는 수필의 함정은 후반부에서 섣불리 결론을 도출하는 습관에서 나오는데 <초코파이 할머니>도 이 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독서감상문은 안지은의 <재미동포 아줌마 또 북한에 가다>를 좋은 글로 선정했다.
마지막으로, 특별한 소감을 남기지 않을 수 없는 글이 있어서 언급해두고자 한다. 석인력의 수필 <흔들리며 피는 꽃>은 새터민의 글인데, 문장력이 탁월하고, 글자 한 자 한 자에 무거운 심정이 얹혀 있으며, 인간 삶의 새로운 측면을 질문해가는 힘도 놀랍다. 제목 아래 부제로 달린 ‘나는 이념의 경계 어딘가에 산재돼 있다’에서 풍기는 고독의 냄새를 나는 실로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글을 쓴 자의 또 다른 신념까지도 다시 성찰과 회의의 세계로 끌고 갈지 모른다. 결코 정치적으로 건강하다고 볼 수 없는 이 도저한 회의주의와 맞서는 일이야말로 인간의 본질을 향한 글쓰기의 진면목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6.15적 행위를 보장하는 주체는 남과 북의 체제이니 그 행위의 하나로서 ‘6.15문학’이라는 낱말에 부응하는 남과 북, 해외에 흩어진 탄식들을, 그것이 우리 겨레의 것이라고 해서 모두 한 자리에 모으는 일이 현재로서 가능한지 모르겠다. 나는 석인력의 수필이 분란을 야기할 것이 염려되어서 그만 선외로 분류하고 말았다.
그리고 아쉬움에, 결국 나 역시 심사위원이 아닌 민족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돌아가 의견을 남길 수밖에 없다. 이 땅에 문학상은 수백, 수천에 이를 것이나 너무나 불행하게도 모국어로 된 ‘세계를 향한 고독한 외침’들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돌아가도 고향처럼 받아줄 수 있는 문학상은 단 하나도 없다.거의 유일하게 실낱처럼 기대를 해볼 수 있는 이 문학상, 오직6.15문학상만이 그 권리를 누릴 수 있으며, 오직 6.15문학상만이 세종조의 ‘나랏말씀’ 이래에 사용된 모국어 문학에 기여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길을 갈 수 있도록 비는 마음 간절하다.
심사위원: 김형수, 송주성, 손홍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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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_단편소설> 정규철_두리둥실
1
‘망할 놈. 받지도 않을 전화기는 뭣하러 들고 댕겨.’
어차피 다섯 번 정도는 전화를 해야 한 번 정도 겨우 연결이 될까 말까 한 아들이었고, 지금도 딱히 어디에 먼저 전화를 해야 할지 몰라서 일단 해본 것이긴 하지만, 오늘따라 전화를 받지 않는 아들이 용구는 더 야속하게 느껴졌다. 아비가 도대체 어떤 일을 당했는지 알 턱이 없겠지. 용구는 휴대폰을 귀에서 떼고는 다 부서진 차 내부를 황망하게 바라봤다. 두 눈으로 보면서도 여전히 믿겨지지가 않았다. 물론 자신이 지독히 운이 없는 인간이라는 건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오늘 일어난 일은 도저히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용구는 재수가 없었다.
몇 천 원 짜리 복권 한 장은 고사하고, 매년 동문회 체육대회 날 하는 경품 추첨에서도 싸구려 양말 세트하나 당첨 돼 본 일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밥솥이니 스팀다리미니 한우세트니 하는 것들을 잘도 타가던 동창들은, 역시나 재수 없는 걸로는 대한민국 최고라며 용구를 놀려댔다.
그 뿐만이 아니다.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이후로는 그나마 잘 마시지도 않는 술을, 일 때문에 억지로 몇 잔 마시고는 도무지 집에 갈 방도가 없어 운전대를 잡은 날이면, 또 어디 보이지도 않는 길목에 교묘하게 숨어있던 교통경찰들이 음주단속을 하고 있었고,사람이나 차는 물론 지나가는 개미 한 마리도 없을 것 같은 시골길을 지날 때도 꼭 어딘가 숨어있던 카메라에 신호위반을 하는 모습이 버젓이 찍혀서는, 집으로 고지서가 날아온 것도 대여섯 번은 된다. 하다못해 남들이라고 아무데나 잘만 버리는 담배꽁초를 버릴 때도, 어디엔가 꽁꽁 숨어있던 공무원들은 꼭 용구 앞에만 나타나 벌금 통지서를 들이밀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재수 없는 인생이 됐을까.
용구는 자신의 꼬인 인생이 아버지로부터 시작된 것도 같기도 했다. 갓난아기였을 때 까지만 해도 용구는 서울 사대문 안에 건실하게 터를 잡고 있는 양반 가문의 증손자였다. 그렇게 좋은 환경에도 불구하고 원채 밖으로만 나돌던 아버지는, 한참 동안 소식이 없다가도 불쑥불쑥 찾아와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곤 했다.전쟁이 일어난 후 서울이 인민군들에게 넘어갔을 때도, 용구의 아버지는 팔뚝에 웬 붉은 완장을 차고 몇 달 만에 나타나서는 세상이 바뀌었다며 뜻 모를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에게 돌아온 것은 할아버지의 몽둥이 찜질뿐이었다.
결국 할아버지는 빨갱이들에게 정신이 팔려있는 놈은 더 이상 내 아들이 아니라며, 젊은 아버지와 어머니와 갓난쟁이 용구까지 다함께 거리로 내쫓았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용구가 지낼 쪽방을 겨우 하나 마련해주고는 다시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서울 수복 이후, 서대문 형무소에 잡혀갔더라는 소문을 끝으로 더 이상 아버지의 생사를 알 수 없었다. 때문에 용구와 어머니는 매년 서대문 형무소가 폭격을 맞았던 날에 아버지 제사를 지내왔다.물론 교회에 다닌 이후로는 더 이상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하나님이 그런 아비의 죗값을 아들에게 대신 내리신 것은 아닐까.
그러나 그런 이야기도 모두 어머니의 입으로 전해들은 것일 뿐이다. 기억이 명징하게 시작되는 시점을 떠올려보면 눈앞에 나타나는 것은, 다 헤진 저고리를 기워 입고는 쩍쩍 갈라지고 튼 손으로 사골 국물을 퍼 나르며 노인네들의 비위를 맞추고 있는 어머니와, 좌판에서 기다란 엿가락을 하나 훔쳐 구정물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판자촌 골목을 달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떠오를 뿐이다. 하지만 기억 할 수 있는 가장 멀리까지 거슬러 올라가본다고 한들, 그 어디에서도 용구 아버지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고 보면, 아버지든 뭐든 본 적도 없고 기억에도 없는 이에게 불현 듯 억울한 감정을 갖는다는 것도 퍽 우스운 일이었다.
아버지 때문이 아니라 얼마 전에 무슨 빨갱이 같은 국회의원 밑으로 들어갔다는 아들 놈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닐까.처음부터 그런 인간 밑에서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적극 말렸어야 했는데, 몇 년씩 일도 안하고 놀던 놈이 그래도 몇 백씩 받아가며, 별정직이라도 어쨌든 공무원으로서 일할 수 있게 됐다고 하길래, 그냥 또 그러려니 했던 게 잘못이었을 수도 있다. 고작 돈 몇 푼에, 어떻게든 믿음을 가지게 해서 구원을 해도 모자랄 피붙이를 빨갱이 소굴에 들어가게 내버려두었으니, 하나님께서 불벼락을 내리실 만도 한 것이 아닌가. 그래도 실제로 불벼락은 아니었고 종이 뭉텅이로 끝났으니 그 자비로움에 감사해야할 일일지도 몰랐다.
‘하여간 부모 복이고 자식 복이고 참 오지게도….’
물론 용구가 생각하기에도 자신이 그런 아버지나 아들보다 제대로 살아온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저 틈만 나면 술과 도박과 오입으로, 안 그래도 넉넉지 않은 살림살이를 파탄내고, 삼십년 넘게 친구로 지내온 작자들한테 사기를 당하지 않나, 만날 있는 돈 없는 돈 끌어 모아 사업이라고 잔뜩 벌여놓고는 끝까지 신통하게 이끌어 나가 본 적도 없고, 거기에 아이엠에프까지 지나오면서 종국에는 집도 재산도 그 무엇도 제대로 손에 쥐고 있는 것이 없었다. 그렇게 부인과 자식들에게 가난을 온전히 감내하도록 만들었던 죄는 어디에서도 용서 받을 수 없으리라. 그래도 최소한 빨갱이들에게 정신이 팔린 적은 없지 않은가.
그런데 왜 하필이면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는가.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용구는 집에서 간만의 휴일을 즐기고 있었을 뿐이다.
거실에 있는 낡은 소파에 최대한 편한 자세로 누워서, 북한이 동해에 미사일을 또 몇 차례 발사했다는 뉴스를 보고 있었다. 물론 딱히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다기보다는 따로 둘 곳이 마땅치 않은 시선을 그저 텔레비전에 온 종일 박아 두고 있었던 것뿐이다.
화면에는, 비록 위용이 넘쳐 보이긴 하지만 어쩐지 너무 구식처럼 보이기도 하는 포탑과 미사일들이 보였다. 종편 방송에서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있던 다음이면 한동안은 무슨 굉장히 큰일이라도 터진 듯이 하루 종일 그런 화면들을 내보냈지만, 북한이 제멋대로 바다에 미사일을 쏘아대는 것쯤은, 사실 보통의 남한 사람들에게는 이제 그렇게 큰 뉴스거리도 아니었다. 그건 이 나라에서 벌써 육십년 가까이 버텨 온 용구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용구는 정말로 쇳덩어리가 깨지는 것만 같은 굉음을 들었고, 그건 분명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었다. 용구도 몸을 크게 한번 움찔하며 놀랐지만 아무리 그래도, 미국이 있는데 북한이 설마 진짜로 그러기야 하겠는가 생각하며 제법 여유 있는 동작으로 일어나, 창문 밖으로 머리를 슬쩍 내밀었다.
하지만 실제로 폭격을 맞은 듯, 박살이 나있는 자신의 자동차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는 그도 평정심을 잃고 허겁지겁 밖으로 뛰쳐나와 볼 수밖에 없었다.
가까이 다가와 살펴보니, 역시나 박살이 난 것은 자신의 차가 확실했다. 구형의 회색 스포티지, 물론 구형이긴 해도 지금처럼 박살이 나기 전까지는, 나름대로 별 문제없이 잘만 굴러다니던 차였다. 103동의 박씨가 새 차를 사준 첫째 자랑을 실컷 하면서 타던 차를 급히 처분해야 한다기에 냉큼 업어온 차였다. 깨진 보닛과 앞 유리 위로는 비닐자루 같은 것이 깊숙이 박혀있었고, 차의 내부와 아스팔트 위에는 유리 파편과 함께, 어린 시절에나 보던 삐라 몇 백 장이 우수수 흩어져 있었다. 아마도 하늘 꼭대기에서 펑 터져야 했던 것이 터지지 않고 그대로 떨어져버린 듯 했다. 그것이 하필 용구의 차 위에 떨어진 것이다.
용구는 지금 본인의 눈앞에 펼쳐진 난장판을 최대한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애썼다. 자신이 지금 맨 몸에 다 헤진 속옷만 걸치고 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물론 길을 지나던 사람들이나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있던 사람들도, 웬 중늙은이가 속옷 바람으로 얼빠진 표정을 하고 서 있는 추레한 모습 따위에는 별로 관심이 가지 않았다. 다만 멀쩡히 서있던 자동차를 박살 낸 채 온 길바닥 위에 우수수 쏟아져있는, 늦가을의 낙엽들처럼 알록달록한 색깔의 삐라들에만 잔뜩 정신이 팔려있을 뿐이었다.
용구는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서 삐라를 몇 장 집어 들었다.
‘우리의 존엄을 건드린 자들에게 차례질 것은 무자비한 보복 뿐!’
‘함부로 짖어대면 무자비하게 죽탕쳐 버릴 것이다!’
‘백두산 총대는 빈말을 하지 않는다!’
굵고 박력이 넘치는 글씨들이 작은 종이를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를 이상한 표현들이 난무해서인지,아니면 아까부터 망치로 뒤통수라도 맞은 듯 머리가 멍해져있기 때문인지, 용구는 두 눈으로 글자를 읽으면서도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다. 분명 한글이긴 한데.
존엄, 차례지다, 죽탕치다, 총대...
도대체 누가 그 존엄이라는 것을 건드렸나, 그런데 당최 존엄이란 게 무엇이길래, 아니 도대체 누구이길래, 그 김정은이가 존엄인건가, 그 돼지 같은 놈이? 그런데 왜 꼭 하고 많은 사람 중에 나에게 보복을 해야만 했던 건가, 내가 뭘 잘못했다고, 누가 누구한테 뭘 함부로 짖어댔나, 총대가 빈말을 하지 않는다니, 그럼 총대가 원래는 무슨 말을 하기라도 한다는 건가, 빈말을 하지 않으면 그럼 그냥 쏴 죽여 버리겠다는 건가,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용구는 삐라 몇 장을 손에 든 채 잘 열리지도 않는 차 뒷문을 억지로 열고 들어가 앉았다. 차 안에도 삐라가 가득했다.
한동안 휴대폰을 들고 멍하니 앉아있던 용구는 결국 아들에게 먼저 전화를 했다. 그리 믿음직스럽지는 않아도, 어쨌거나 공무원이니, 이럴 때 뭐라도 도움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지 않을까하는 생각이었다. 사실 딱히 이런 상황에 어디에 전화를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도 않았다. 경찰에 전화를 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보험회사에 전화를 하는 게 순서인지 혼란스러웠다. 누가 이런 일을 당해보기나 했을까. 경찰이나 보험회사 직원은 이런 걸 본적이나 있을까. 나 말고 이런 일을 겪은 사람이 또 있을까.
휴대폰에서 흘러나오는 익숙한 통화 연결음을 들으며, 용구는 이런 일이 일어날 확률이 과연 얼마나 될 지 어렴풋이 계산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확률이란 게 그렇게 높을 것 같지는 않았다. 우선, 전 인류 중에 자가용을 몰고 다니는 사람들의 숫자를 계산해봐야 할 것이고, 그 중에서도 하나였던 나라가 불알처럼 두 쪽으로 쩍 갈라져 전쟁을 했던, 그런 나라에 사는 사람들로 압축이 되어야겠지. 또 그런 나라들 중에서도 서로가 무슨 종이 쪼가리에 그렇게 이상하고 촌스러운 글씨체로 자기들의 체제를 선전하며 서로를 비방하는, 말 같지 않은 말들을 종이 쪼가리에 잔뜩 찍어내서는 하늘로 둥둥 띄워 보내고, 그런 우스운 짓거리를 몇 십 년이 지나도록 계속 해온 탓에, 또 이제는 그게 별로 아무렇지도 않은 건지, 그러든 말든 또 아무도 신경도 안 쓰는 그런 나라의 국민들로 압축이 되어야 하겠지. 그리고 그 중에서도 나처럼 접경지역과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추려내야 할 것이고 또 풍향이나 기압 같은 것도 계산을 해야겠지. 아니, 애초에 이 나라에서 태어난 내가 잘못이다. 염병할. 다른 것보다 보험이 걱정이다. 만약에 보험이 안 된다고 하면, 그럼 어디에서 보상을 받을 수나 있을까. 나라에서 보상을 해주나, 아니면 김정은한테 수리비를 받을 건가. 아니, 당장 월요일부터 출근할 일이 걱정이다. 늘 차를 타고 출퇴근을 해왔다. 여기서 몇 번 버스를 타야 아파트 관리사무소까지 갈 수 있는 걸까. 염병할. 도대체 북한 놈들은 이런 삐라를 띄워 보내는 이유가 뭘까.여기 적혀있는 걸 보고 누가 무서워서 벌벌 떨기라도 할 줄 아는 걸까. 이딴 것 때문에 혹해서 월북이라도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도대체 이런 짓을 하는 이유가 뭘까.
2
“이것은 우리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같은 민족인 북한인민들을 해방하고 그들을 구원해야할 책임이 있습니다. 여러분, 지난 달 김정은은 ‘인민공화국창립절’을 맞아 5차 핵실험이라는 반인륜적 만행을 또 다시 감행하였습니다! 인민들의 불행에는 눈감은 채 오직 자신의 절대왕조체제의 강화와 허세, 힘의 과시와 광기의 쾌락을 위해 또 핵실험을 감행하고 끝도 없는 미사일 도발을 연이어 벌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민족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 탈북자들은 분노를 넘어 모멸감에 이 자리에 왔습니다. 북한 인민 해방이라는 사명을 이루기 위해 오늘 이곳에 모였습니다. 진실을 알려야합니다. 반인륜범죄자 김정은을 속히 체포, 처단하십시오!”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
과연 누구에게, 어떻게 그를 체포하고 처단하라는 말일까.
국도 변의 폐업한 휴게소, 넓은 주차장 한 구석에서는 북한자유해방협회의 대표라는 자가 카메라에 둘러싸여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성명서를 읽어나갔다. 기자들 사이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우현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잊을 만 하면 한 번씩 나타나 광화문이나 여의도 등지에서 야당 국회의원 혹은 민주사회 인사들을 규탄하는 집회를 주최하는 사람이다. 우현이 모시고 있는 김중환 의원도 저들의 도마 위에 올라 한동안 골머리를 앓았던 적이 있다. 민주 정부 시절에 사면을 받긴 했지만,김 의원도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이 있었다.
대표의 뒤에는 선글라스를 낀 여성들이 일렬로 서 있었고, 또 그 뒤로는 수천 장의 전단지가 들어있는 비닐 봉투와 기다란 풍선들이 사열되어 있었다. 한참 동안 사진을 찍던 우현은, 멀찍이 세워둔 자동차로 돌아와 그 모습을 지켜봤다.
인터뷰가 끝난 후, 작업이 다시 시작됐다.
힘이 드는 일은 등산복을 입은 중년의 사내 둘이서 도맡아 했다.트럭에서 가스통을 내려서는 능숙하게 호스를 연결하고, 풍선에 가스를 집어넣었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초로의 아주머니들은 전단지를 포장하거나 현수막을 풍선에 연결하는 등의 보조 작업을 맡았다. 굉장히 효율적인 작업이었고 모두가 자신의 역할을 완벽히 숙지하고 있었다. 서로 대화도 많지 않았고 작업의 진행상황을 감독한다거나 지휘를 하는 듯이 보이는 사람도 없었다.그럼에도 매우 조직적이며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대표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어떤 결의나 자신감 보다는 일종의 과제를 수행하는 듯한, 직업적인 피로감이 느껴질 뿐이었다.
풍선들은 끝도 없이 부풀어 올랐고 그 크기는 굉장했다.
“넌 저 사람들이 평범한 탈북자들로 보이냐. 아니라고 봐 나는.”
보조석에 앉아있던 형완은 혼잣말처럼 궁시렁거리며,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대쉬보드 위에 톡톡 털었다. 우현도 특별히 대꾸하지는 않았지만 형완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했다. 그가 보기에도,그들은 사회운동에 나선 활동가들이나 자발적으로 참여한 시민들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물론 탈북자라는 특별한 지위의 사람들인 것은 맞지만, 저렇게 무리한 행위를 하면서도 시종일관 직업적인 피로감만이 느껴지는 그런 척박한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은 조금 어색해보였다. 무언가를 강하게 주장하거나 또는 자신들의 입장을 어떻게 해서든 설득시키고 싶은 사람들, 사람들의 관심이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들의 표정과 목소리는 우현도 잘 알고 있었다.
두려움과 단단한 결기가 동시에 느껴지는 얼굴.
그건 자신들의 목소리가 조금이라도 널리 알려지고, 보다 높은 곳으로 전달될 수 있게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탈법적인 행위를 해야만 하는, 두려움과 절실함이 느껴지는 얼굴들이었다. 물론 탈북자들의 얼굴도 시종일관 굳어있긴 했지만 거기엔 어떤 흥분도 결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잠시 후 제 모양을 갖춘 풍선들에는 저마다 커다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자유 대한민국 만세’
‘공갈 협박 중단하라’
‘북조선 인간 생지옥’
‘김정은 세습 독재 타도’
하지만 어차피 터져버릴 풍선인데.
그렇지 않더라도 북한 상공에 넘어갈 쯤이면 너무 높이 올라가 현수막이나 풍선에 붙어있는 글자는 보이지도 않을 것 아닌가.하지만 우현이 보기에 그런 건 저들에게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닌 듯 했다. 아마도 북한 사람들이 아니라 남한 사람들이 봐주길 바라는 건지도 몰랐다. 기자들은 열심히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렸다.
중년의 여성들은 대표의 신호에 맞추어 잡고 있던 손을 한 번에 놓았다. 그러자 거대한 풍선들이 천천히 떠올랐다. 전단지 수 천 장이 담긴 비닐 봉투가 풍선 밑에서 대롱대롱 흔들리고 있었고,어떤 풍선 밑에는 우스꽝스러운 김정은의 캐리커처와 그를 비방하는 노골적인 단어들이 인쇄된 현수막이 나부끼고 있었다.
바람은 적당했다.
우현은 카메라 액정 화면을 열어 지금까지 찍은 사진들을 확인했다. 주차장으로 들어서는 트럭과 사람들, 전단지를 포장하고 있는 여성들, 제복을 입고 멀찍이 서서 별다른 제지도 없이 구경만 하는 경찰들, 구호를 외치는 탈북자들, 카메라에 둘러 쌓여있는 탈북자들.
“생각해봐.”
함께 카메라 액정을 보고 있던 형완이 담배에 불을 붙이며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형완의 생각에는, 저들은 탈북 과정에서나 혹은 입국 이후 적응 교육을 받는 하나원 등에서 따로 교육을 받고 지시를 받아 행동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반정부적으로 흐르는 여론을 조금이라도 환기시키고, 지속적으로 북한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상기시켜 줄 수만 있어도 정부 입장에서는 이득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들이 저런 일을 나서서 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북한에서 평생 살아온 사람들이 저런 게 북한 주민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는 걸 모를 리가 없다. 또한 경찰들이 저렇게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는다는 것 역시 형완은 매우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해 온 사람들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나설 수도 없는 일이잖아요.”
“그렇지. 그러니까 지역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이런 불법적인 행위를 왜 경찰이 제대로 막지 않느냐, 그 정도 얘기나 하자는 거지. 너무 답답한 일 아니냐. 몸 사리는 것도 좋지만.”
사실 우현의 생각에는, 그 정도 입장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욕을 먹기엔 충분했다. 만약 그런 이야기를 하는 주체가, 국가보안법 위반 경력이 있는 우리 의원 같은 사람이라면 말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강성 운동권의 이미지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전대협 의장까지 지냈던 우리 의원의 학생운동 이력은 특히나 다른 누구보다도 화려했다. 그런 그가 여당 의원들과 함께 천안함 희생 장병 추모행사에 참석하거나, 어린이날에 굳이 탈북어린이대안학교 같은 곳에 격려 방문을 하기로 결정한 것도, 그런 이미지를 조금이라도 희석시켜서 지금보다는 정치적인 외연을 확장시켜보자는 취지다.
하지만 우현은 그것도 사람들이 곱게 봐주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 대안학교 방문과 관련된 보도자료가 나가고 나면,오히려 의원실로 걸려오는 항의전화만 더 늘어날지도 모른다.그리고 그런 전화를 받는 것은 의원도 아니고 4급 보좌관인 형완도 아니고 7급 비서인 우현의 몫이었다. 할아버지뻘 되는 노인네들의 되도 않는 욕지거리를 들어주는 것처럼 괴로운 일도 없었다. 우현은 그런 전화가 지긋지긋 했다.
마침 주머니속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휴대폰을 꺼내던 우현은 화면에 ‘아버지’라는 글자를 슬쩍 보고는 다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어어? 야, 저거 떨어진다!”
형완이 가리키는 쪽을 보니, 북서쪽 방향으로 날아가던 풍선 하나가 고작 뒷산 하나도 넘지 못하고 주차장 출입구 근처에서 추락하고 있었다. 구멍이 나서 바람이 빠진 것인지, 풍선들 중 하나가 마치 사정 후의 음경처럼 힘을 잃고 고꾸라져서는 추락하는 중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 정도의 위치에서 띄워 보내 봤자 아마 삼팔선 근처도 못 가고 죄다 터져버릴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고작 이십 미터도 못 가서는 터져 버리다니. 우현은 어쩐지 쓴웃음이 나왔다.
둘은 차에서 내려 풍선이 떨어진 곳으로 향했다. 사진도 찍고 전단지도 몇 장 가져가 국정감사장에서 질의를 하는 의원의 손에 들려주면 기자들한테 사진 좀 찍히겠다며 형완은 싱글벙글했다.주차장을 가로질러 덜렁덜렁 걸어가고 있는 그는 어쩐지 이 상황이 재밌는 듯 보였지만, 배가 툭 튀어나온 형완의 우스꽝스러운 걸음걸이 때문인지, 우현은 문득 이 상황이 징그럽고 한심하게 느껴졌다. 저런 짓을 하고 있는 탈북자들이나, 그걸 또 가만히 보고만 있는 경찰이나, 어쩐지 혼자서 신나 보이는 형완이나, 그와 같이 있는 자신이나, 다 같이 뭐하는 짓인지.
이렇게들 할 일이 없을까.
3
참 쓸데없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 애들 공부할 시간도 없는데. 풀이 묻어 끈적끈적한 손으로 현수막을 붙이고 있던 은정은 왠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수막 한쪽은 아이들 중에서 가장 키가 큰 명주가 제법 야무지게 붙였다. 그렇게 교실 앞 칠판 위에는 아담한 현수막이 걸렸다.
‘어린이날을 축하합니다’
좁은 교실 구석구석에는 아이들이 달라붙어 색종이와 꽃술과 지난 백일장에서 그린 그림들을 조곤조곤 붙여나갔다. 은정은 교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아이들에게 적당한 일거리를 주고 장식을 도왔다. 국회의원들이 오기 전까지 교실 장식을 다 마치고 정리까지 하려면 시간이 빠듯했다.
사실 원장 부부도 그들의 방문을 썩 내켜하지는 않는 눈치였다.하지만 굳이 온다는 것을 말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이 기회에 예산이나 물품이라도 조금 더 지원받을 수 있으면, 하루 정도는 조금 귀찮아도 보상은 충분하다는 생각이었다. 기껏해야 일 년에 천만 원 정도 밖에 안 되는 정부 지원금으로는 건물 임대료와 관리비를 내기에도 벅찼다. 그러니까 좋게 생각해보면, 어쨌든 높으신 분들이 이런 날에라도 한번쯤 방문해주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또 조금은 격려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렇다고 너무 특별하게 대하지는 말아주세요.”
평범하게 대해줘라. 자신들이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고 느끼게 하지 마라. 그저 똑같이, 보통의 어른들이 다른 남한 아이들에게 주는 만큼의 배려와 관심이면 된다.
며칠 전에 사전답사를 왔던 국회의원 보좌관들에게도, 봉사활동 첫날 학교를 찾은 은정에게도 원장 부부는 그렇게 말했다. 은정은 그런 원장의 말을 되새기며 언제나 아이들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대해줬다. 늘 웃으며 친절하게 대해주고, 말 한마디도 조심해서 했다. 한국에서 사니까 좋냐는 질문이나, 북한이 어떤 곳이냐는 그런 한심한 질문도 함부로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을 대하면서 가끔씩 울컥하고 올라오는 짜증은 은정도 어쩔 수가 없었다. 은정도 어차피 대학 졸업 때문에 하는 것일 뿐 딱히 좋아서 하는 봉사활동도 아니었고, 조카와 가끔 놀아준 것 말고는 어린 아이들을 상대해 본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이곳의 아이들은 언제나 조금 어두워보였고, 특히나 낯선 사람들에게 유독 방어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 중에서도 경수는, 냉랭함을 넘어서 은정을 어딘가 무시하는 투로 말했다. 경수와 처음 사이가 틀어진 것은 어쩌다가 아버지 이야기가 나왔던 날이었다. 은정은 경수 아버지가 지금 무슨 일을 하시는지, 그저 아무런 악의도 없이 물었을 뿐이다.
“그냥 가끔 텔레비전에 나옵니다.”
“와 정말? 그럼 배우세요? 단역 배우신가?”
“그건 아니고….”
“그럼?”
“그냥 그런 게 있습니다.”
“뭔데? 얘기해주면 안돼요?”
“아, 좀 고만 하시지요…. 그냥 그런 것이 있단 말입니다.”
경수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보고는 은정도 더 이상 캐묻지 않았지만 교실 분위기는 이미 차갑게 얼어붙었다. 그 날 이후로 경수는 은정과는 딱히 대화를 섞기조차 싫은 것 같았다. 아무리 웃으며 좋게 이야기를 하고 이것저것 친절하게 알려주려고 해도 대화의 대부분은 ‘일 없습니다’라는 경수의 짧고 무성의한 대답으로 끝나버렸다. 어디서 듣기로 북한은 남존여비 사상이 심하다던데, 이 조그만 녀석도 벌써부터 은정이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하대를 하는 것인지, 왠지 다른 남자 선생님들한테 보다도 유독 자신에게만 차갑게 구는 경수가 괘씸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아침부터 교실을 여기저기 꾸미느라 귀찮고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경수는 보일 때마다 눈엣가시처럼 굴었다.
“표경수. 아까 선생님이 풍선 그만 가지고 놀라고 한 것 같은데?”
얼마나 신나게 발로 차고 또 던지며 놀았는지, 벌써 바람이 조금 빠져버린 풍선을 안고 있는 경수는 말이 없었다. 은정은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는 경수의 얼굴 대신, 풍선에 그려진 뽀로로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안 붙일 거면 선생님 줘.”
“일 없습니다.”
경수는 잠시 고개를 떨구더니 등을 돌렸다.
그리고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옆에 있던 의자 하나를 질질 끌고 가 교실 앞쪽에 걸린 현수막 옆에 세웠다. 경수는 풍선을 붙일 벽을 한번 올려다보고는 자신만만한 몸짓으로 의자 위에 올랐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경수는 사실, 하루 종일 정신없던 은정이 이제야 자신에게 관심을 둔다는 생각에 어쩐지 즐거웠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은정은 눈에 힘을 풀고는 피곤하다는 듯 물었다.
“어떻게 붙일 건데?”
경수는 교실 책상 위를 돌아봤다. 은정 쪽으로는 애써 시선을 옮기지 않았지만 경수도 은정의 손에 스카치테이프가 들려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정신없이 어질러져있는 교실 어디에도 다른 스카치테이프는 보이지 않았다. 은정이 경수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필요한 게 있으면 얘기를 해야지?”
경수는 어쩐지 분한 표정으로 은정의 오른손에 있는 스카치테이프를 바라봤다. 하지만 은정의 손에 자신의 손이 닿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 경수는 좀처럼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얼른.”
또 미간을 살짝 찌푸리는 은정의 재촉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손을 가져가니 역시나, 경수의 손가락 끝에는 은정의 손바닥이 스쳤다. 같은 여자였지만, 나무 껍데기처럼 거칠기만 한 엄마의 손과는 달랐다. 아주 잠시 스쳤을 뿐이지만 은정의 손은 남한에 와서 처음 먹어본 생크림 케이크보다도 훨씬 더 부드럽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번 꼭 잡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전에 있던 다른 선생님들처럼, 은정도 봉사활동 기간이 끝나면 아마도 다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엇, 야, 야!”
은정이 왜 갑자기 눈이 동그래져서는 창문 쪽을 바라보는 건지 경수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경수는 그저 얼이 빠진 채 방금 자신의 손끝에 닿았던 은정의 손바닥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경수의 손에 들려있던 풍선은 창밖으로 날아가고 없었다.
4
바람에 실려 날아다니던 풍선은 도로 한가운데 떨어졌다. 마트 앞에 나와 있던 꼬마 아이가 풍선을 보고는 무작정 차도 위로 달려들었다. 아이를 본 택배기사는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트럭의 제동거리는 너무나도 길게 느껴졌다. 아스팔트에 타이어가 찢어지는 소리를 들은 아기 엄마는 손에 들고 있던 지갑과 찬거리를 모두 떨구고는 마트를 뛰쳐나왔다. 동전 몇 개와 양파가 아스팔트 위로 뒹굴었다. 택배기사는 차에서 뛰쳐나와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아이를 찾았다. 아이는 놀란 채 침을 한 방울 떨구며 차 바로 앞에 서있을 뿐이었다. 숨을 헐떡거리며 뛰어 온 아이 엄마는 아이를 감싸 안으며 소리를 질러댔다.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아이는 잠시 상황을 파악하더니 이때다 싶은 듯, 갑자기 온 동네가 떠나가라 울어대기 시작했다. 도통 무슨 난리인지 알 길이 없는 운전자들도 트럭 뒤에서 경적을 울려대기 시작했다. 조용하던 골목이 소란해지고, 동네 사람들도 웅성거리며 모여들었다. 스테플러에 가격 스티커를 새로 붙이고 있던 문방구 아저씨도 거리로 나왔다. 아저씨는 엄마에게 안겨있는 아이가 들고 있는 풍선을 보고는, 가게 앞에 진열해놓은 풍선들을 돌아봤다. 아무래도 본인의 문방구에서 날아간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마트에서 카운터를 보던 아주머니도 뛰쳐나와 문방구 아저씨에게 물었다. 뭔 일이래요. 애가 차도로 뛰어 들었나 보네. 어머머! 근데 차가 제때 멈춰 섰나 봐. 애는 괜찮혀. 세상에 큰일 날 뻔 했네. 저 뽀로로 때문에…. 네? 애들이 저놈의 뽀로로만 보면 환장을 하니까. 길에 애기 장난감이 있었나보네. 아니,풍선이야. 아이고. 그래 우리 손주도 저 뽀로로만 틀어놓으면 울지를 안 해. 근데 저 뽀로로가 북한이랑 합작으로 만든 거라던데…. 그래요? 마트 아줌마는 뭔 갑자기 쓸데없는 얘기냐는 표정을 툭 던지고는 다시 마트로 들어갔다. 카운터 앞에는 김밥천국에서 일하는 경애 엄마가 기다리고 있었다. 종량제봉투 주세요. 10리터. 잠시만. 아이고 다리야. 손님도 별로 없는데 좀 앉아서 쉬셔. 여기 의자가 없어. 하나 좀 갖다 놓으면 안 되냐고 매번 얘기를 해도, 그나저나 점심은. 김밥이라도 한 줄 들고 혀. 아이고,일 없습니다. 그놈의 김밥 지겨워서. 아줌마가 그렇게 말도 없이 쏙 들어가 버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문방구 아저씨는 여전히 서서 아기와 아기 엄마를 바라봤다. 아기 엄마는 애가 들고 있는 풍선을 만지작 하더니 새것을 사준다며 그냥 길에 던져버리고는 아이를 안고 걸어갔다. 택배기사는 그 뒷모습을 지켜보고는 다시 차로 들어가 시동을 걸었다. 벌써 여기서 몇 분을 허비했나.몇 천원은 날렸을 것이다. 아직 밥도 못 먹었는데. 그렇게 트럭이 떠나가는 걸 보던 문방구 아저씨도 다시 가게로 들어갔다. 초등학생 아이 하나가 책상 위에 있던 스테플러를 집어 들고는 이천 원을 내밀었다. 그거 삼천 원이야. 여기 이천 원이라고 붙어 있는데요? 이제 삼천 원이야. 올랐어. 언제요? 방금. 에이 그런 게 어딨어요. 뭘 어딨어 임마, 요새 물가가 얼마나 빨리 오르는지 아냐. 에이…. 트럭이 빠져나가자 멈춰있던 차들은 다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네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조용하고 한적해졌다. 한편, 길바닥에 굴러다니던 풍선은 지나가던 자동차가 일으키는 바람에 밀려 다시 하늘 위로 떠올랐다. 이번에는 상승기류를 제대로 탔는지, 가로수 위로, 전봇대 위에 이리저리 엉켜있는 전선들 위로, 동네 상가 건물 위로, 아파트 단지 사이로 계속해서 올라갔다.
이번에는 어디에 떨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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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_시_장유정(일반)>
강박증
할아버지는 강박증이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마른 걸레로 바닥을 훔치셔야한다
점심을 먹고 나가기 전
다시 한 번 마른 걸레로 바닥을 훔치셔야한다
밤에 잠들기 전
또 다시 한 번 더 마른 걸레로 바닥을 훔치셔야한다
비가 오는 날이면 창틀을 신문지로 막으셔야한다
곰팡이가 끼고 할머니가 언성을 높여도 그러셔야한다
박스가 놓여있으면
발로 한 번 툭 차고 지나가셔야 하고
자신의 물건엔
검은색 테이프를 반드시 붙이셔야한다
할아버지는 강박증이 있다
매년 봄이 돌아올 때 쯤
이산가족 찾기에 대해 물으셔야한다
작년까지 원숭이띠라고 말하셨으면서
올해는 개띠라고 말하시는 할아버지
85년 묵은 낡은 기억 속에서 가족만큼은 놓치지 않으신다
18살에 홀로 헤엄쳐 이 땅으로 오신 할아버지
명절날마다 이 이야기 하는 것은 절대 놓치지 않으신다
자기 나이도 잊으신 판에
그 지긋지긋한 해묵은 현실은 왜 잊지 못하시는가
우리 사회도 강박증이 있다
더럽고 처절해질수록
아름다운 것 아름다운 것 하며 외쳐야한다
치사하고 이기적이 될수록
모두를 위한 것 모두를 위한 것 하며 외쳐야한다
할아버지는 강박증이 있다
매일 텔레비전 앞에 앉아
다 잘 될 거야 라고 말하셔야하고
좋은 일이 생기면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라고 말하셔야한다
할아버지는 반드시 그러셔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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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_수필> 황윤선_우리의 소원이 통일?
내가 처음으로 한국이라는 나라가 남과 북으로 분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다. 방과 후 글짓기 수업에서 한국사를 배우던 중이었는데, 대한민국의 건립 과정을 설명하면서 선생님이 한반도의 반 토막만을 뚝 잘라 화이트보드에 그렸던 것이다. 한반도의 형상은 무릇‘대륙으로 나아가려는 호랑이’와 같아서 앞으로 우리나라는 날로 번창할거라던 누군가의 가르침을 똑똑히 기억했던 나로서는 곧바로 그 잘못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는 덤덤히 말씀하셨다.
‘그곳은 이제 북한이 되었으니까 그리지 않았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북한은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나라 중의 하나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당시의 나에게 ‘불쌍한 어린이들이 많이 있는 곳’은 언제나 그 곳 언저리였기 때문이다.물론 어려운 나라 중에서도 우리가 왜 특히나 북한을 도와줘야 하는 건지, 아프리카의 나라에 어째서 나와 비슷하게 생긴 동양인들이 사는 것인지에 대해 가끔은 궁금하긴 했었다. 하지만 그뿐, 나는 한 번도 그 이유를 누군가에게 물어보지 않았던 것이다. 너는 여태껏 그것도 몰랐니?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놀리던 친구들의 말에 처음에는 고개가 먼저 수그러들었다.그러나 이내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그 동안 아무도 나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은 거지? 내가 있는 ‘이’ 한반도가 더 이상 ‘그’ 한반도가 아닌데 모두들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은 나의 믿음에 대한 일종의 배신이었다.
그 다음으로 내가 비슷한 경험을 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당시 나는 입학시험을 치르고 들어가야 하는, 나름 명문이었던 자립형 사립고에 입학하여 하루하루 엄청난 양의 수업을 소화해내면서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다 입상을 위해 공모전 정보를 찾고 있던 중 ‘통일독서대회’라는 게시글을 보게 되었다. 자연스런 호기심이 들어 나는 독후감 지정 도서 중 한 권이었던 북한 작가의 소설을 읽기 시작했고,그 이야기의 끝에서 또 다른 충격을 받고 말았던 것이다. 이미 역사 수업 때 배우긴 했으나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아직 남과 북이 하나였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그 후 북한에 대해 더 알고 싶어진 나는 이북의 역사를 다루는 책을 구입해 읽기 시작했다. 나는 남한의 현대사 곳곳에 시기적절한 북한사를 끼워 넣어 그 전체를 ‘한반도의 역사’로서 이해했다. 익숙한 사실과 새로운 사실이 서로 부대끼며 엮어내는 이야기는 생각보다 조화로웠고, 학교 현대사 수업 시간에 달랑 몇 줄로 요약되고 말 뿐인 그들의 삶이 우리들의 삶만큼이나 다사다난하고 필사적이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 나는 내 친구의 할아버지께서 휴전선 이북 땅인 강원도 어느 산골짜기 출신이시며, 몇 해 전 돌아가시기 바로 직전까지만 해도 자식들에게 다음과 같은 신신당부를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남에서 땅 사지 마라. 통일되면 그곳에 내 땅이 있다.’
그래서 나는 육 년 전 그랬던 것처럼, 또 다시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어째서 아무도 나에게 가르쳐주지 않는 걸까? 이렇게 바로 옆에서 일어나고 있던 분단의 아픔에 대해서 모두가 무심한 것 같았고, 하루 열 네 시간이라는 어마어마한 학습의 시간 속에서 막상 우리가 마땅히 배워야 할 것들에게는 충분한 자리가 없음을 나는 다시 한 번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단순히 교육과정의 빈틈이라고만 생각해 너그럽게 이해하고 말았다.
내가 그 동안 목격한 무관심들의 본모습이 사실은 몰이해였음을 알게 된 것은 대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당시 언론정보가 이중전공이었던 나는 대안 커뮤니티에 대한 수업을 들으면서 서울시 한 구역에 있던 특정 커뮤니티에 대해서 알게 되었는데, 그곳에서는 옛 ‘마을 공동체’를 지향한 구성원들끼리의 공동육아와 교육이 진행되고 있었다. 아파트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윗집과는 애완견 소음 문제로 몇 번이나 얼굴을 붉혔던 나로서는 그들이 지향하고자 하는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가 감명 깊었다. 공동 자본으로 개업한 마을 카페의 수익은 커뮤니티 운영에 쓴다는 그들이 바라는 것은 옛 사람들의 ‘정情’이었음이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그들의 그 ‘집단성’이 전혀 다르게도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 한 달 후, 오랜만에 참석한 동아리 모임에서였다. 누군가와의 대화에서 어쩌다 그 마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그 ‘단어’를 듣고 국가정부기관에서 일을 하던 한 선배가 다짜고짜 나에게 훈계를 했던 것이다.
‘너, 거기에 국보법 위반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있니?’
부드러운 목소리에 숨어 있던 국보법이라는 그 미끼는 곧 간첩이라는 단어를 엮어 내왔고, 당연 북한과 공산주의, 빨갱이라는 단어들이 순식간에 줄줄이 튀어나왔다. 함께 살자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결국 원색적인 의도로 결론 나는 대화 속에서 나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곧바로 화제를 돌려버렸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그 동안 내가 느껴왔던 의문들이 모두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었음을, 그것은 바로 서로를 이해하지 않거나 기꺼이 알려하지 않는 우리들의 무관심이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자기혐오로 끝나기 위해 시작된 것은 아니다.
나는 어디까지나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역설하고자 예시를 들었을 뿐이다. 우리네들 삶 속에 우리들도 몰래 숨어있던 슬픔의 씨앗. 조금만 신경을 써서 주위를 둘러보면 분단의 흔적은 한반도 곳곳에 그 씨를 뿌려 각기 다른 형태의 아픔들을 피워내고 있는 중이다.하지만 나는 현실 그 자체를 탓하기 이전에 그 현실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과연 우리는 지금 ‘기꺼이’ 주위를 둘러보기 위해 충분한 시간과 정성을 쏟고 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일는지는 모를 일이나 적어도 나는 그럴 수 없었으므로, 이렇게나마 이야기를 풀어놓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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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상_안지은> 독서감상문_'재미동포 아줌마, 또 북한에 가다'를 읽고
『재미동포 아줌마, 또 북한에 가다 –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도 행복한 여행』은 올해 읽은 책, 특히 자기 경험을 담은 책 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책이었다. 그리고 나는 책을 다 읽고 난 후 부제목인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도 행복한 여행”에서 다시 한 번 충격을 받았다. “재미동포 아줌마”라고 스스로 명명하는 저자 신은미 씨의 생각들이 내겐 크고 거대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얼핏 기사에서 빨갱이로 몰려 귀국이 힘들어졌다는 저자의 사연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런 일들을 실제로 겪었음에도 북한에 대한 여행 경험을 “생애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다”고 말한다는 것에 대해 나는 평소 통일에 대한 생각을 고쳤다. ‘통일’, 이 두 음절을 생각하고 소리 내어 발음할 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쌀 지원, 경제, 돈, 외교 … 등의 단어들이었다. 통일이라는 단어는 이렇게 내게 너무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단어로 굳어져있었다. 그러나 ‘통일은 절대적으로 인본주의적인 관점에서 생각되어야한다.’ 그것이 이 책을 읽고 난 뒤 확고해진 내 생각이다.
『재미동포 아줌마, 또 북한에 가다 –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도 행복한 여행』은 신은미 씨의 두 번째 책이다. 앞서 다녀온 북한 여행 이후 2013년 두 번째 북한 여행에 대한 책인 것이다. 어떻게 저자는 두 번씩이나 북한에 갈 생각을 했을까.내게 북한은 인접한 외국보다 더 먼 나라다. 내 머릿속 북한은, 아니 정확히는 북한이라는 단어는 최근 매체에서 접한 부정적인 단어들의 조합에 불과하다. 그 단어들은 주로 좋지 않은 맥락으로 사용된다. 북한에 대한 기사들은 주적, 핵, 군대… 등과 같은 단어와 함께 북한을 말하고 최근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전 대통령을 지지하던 세력이 내세운 논리 속에도 역시 북한, 빨갱이가 등장한다. 그리고 19대 대선에서도 등장했던 종북, 빨갱이, 우파, 좌파 … 등의 단어들은 내가 알고 있는 북한의 전부였다. 그러나 저자도 첫 북한 여행을 다룬 책에서 북한에 대해 “관심조차 없”고 심지어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고 밝힌 것과 같이, 북에 대한 인식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두 번째 여행을 선택한 것과 그 여행 기록을 책으로 남길 만큼 저자는 북한에 애정을 갖게 되었다. 저자는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북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어떤 이유였을까. 사실 그 이유라는 것이 뭔가 대단히 큰 사건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진정한 소통과 공감이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저자는 두 번째 책의 첫머리에서 “수양가족”인 “설경이와 현수”를 만나러 간다. 저자는 자신이 북한에 가는 것에 대해 “이념적 변화가 생겼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고 단정한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가족을 보러가는 것이 어찌 이념의 변화로 설명될 수 있을까. 수양가족이지만 저자에게는 진정으로 마음을 나누는 가족인 것을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다 알 수 있다. 여기서부터 책 속 저자의 목소리와 최근 언론의 목소리들이 겹쳐지기 시작한다. 책을 읽기 전, 그리고 책을 읽기 시작한 시점에서 드는 북한에 대한 호기심과 통일에 대한 의문들이 서서히 풀리게 된다. 어느 순간부터 책 속 저자의 목소리는 북한에 관한 언론과 기사들이 전부가 아니라고 호소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제야 북한에 대한 나의 눈이, “동포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의 눈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책 중반에 들어서면, 저자가 “관광객”으로 북한을 방문한 것이 아니듯 독자들도 더 이상 관광객의 시선으로 이 책을 읽지 않는다. 이 책은 저자가 “그저 북한 동포들에게 남녘 동포 노동자들의 손길이 묻어 있는 물건을 전해주고 싶어”서 “평양에 갈 때마다 북한 동포들에게 남한 제품들을 전해”주려 한 것처럼, 독자들은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수양형제들을 떠올리며 읽게 된다. 책 전반에서 저자의 시선은 “저만치에서 어린 여자아이들이 테이블에 무언가를 올려놓고 노는 모습”, “잡은 매미를 가지고 놀고 있”는 아이들, “수줍음을 많이 타 말을 하지 않는” 모습 등 북한의 작고 사소한 것들에 머문다. 그리고 저자는 “몇 번이고 되풀이해 이름을 물어보”거나 “겨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아이에게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저자는 그와 같은 모습들을 쉽게 ‘북한의 순수’로 명명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또 다른 편견이기 때문이다. 대신 저자는“여성들이 공공장소에서 술을 마시는 일”에 대해 자본주의,공산주의를 떠나 “여성해방운동”과 연관하여 어떻게 “여성해방운동에 일찍이 눈을 떴다는 북한에 어떻게 오늘날까지 남존여비의 유교 전통이 이토록 뿌리 깊게 박혀있는가”와 같은 지점을 고민한다. 독자의 위치에서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할 것들이 바로 이런 지점일 것이다.
통일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면, 쉽게 ‘북한은 우리의 동포이고, 우리는 같은 핏줄이고, 우리는 한 나라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말들은 그저 한 세대의 구호와 같은 말들로, 현시대 세대를 아울러 개인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는 힘들다. 좀 더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생각에서 탈피해야한다. 동포, 핏줄, 나라와 같은 크고 실체가 없는 개념들에서부터 벗어나야한다. 그리고 우리 바로 옆에서 볼 수 있는 좁고 작고 더 사소한 것에서부터 통일을 생각해야한다.
이런 의미에서 통일은 사소한 편견에 사로잡혀있다. 물론 국가에서 최종적으로 제도적 차원에서 진행해야 할 것이라는 점에서는 아주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통일은 근본적으로 분단을 직접 겪은 세대에게는 화해의 작업이고, 분단을 직접 겪지 않은 세대들에게는 서로가 서로를 선입견 없이 환대하는 작업이다. 이 작업에서는 분단 이후 대립적 구도를 형성하고자했던 외부 세력의 잣대로 서로를 보아서도 안 되고, 국내 세력들 중에서도 어느 누군가의 이득을 위한 목소리에도 흔들리면 안 된다. 통일은 국외, 국내 그 어떤 기회주의자에게도 오염됨 없이 “남쪽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공산당이라면 무조건 증오하고 살”았던 저자가 “내게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말한 그 행위 그 자체, “‘혁명의 수도’라는 평양의 한복판에”서 “수양딸”과 “부둥켜안은 채 눈물을 흘리”는 그 순간의 행위 하나로만 이해되어야한다.
책에서 가장 잔인하게 뇌리에 박혔던 저자의 말은 “어쩌면 나의 둘째 수양딸 설향이의 동생 국천이와 나의 아들은 비무장지대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눌지도 모른다.” 라는 말이다. 현실적으로 이런 상황에서 평화통일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불가능이 상정된 통일, 그것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통일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군가는 아직도 이 상황 속에서 당시 살던 곳 사진만 봐도 “거리가 옛 모습 그대로다.”라고 말하고, ‘고향의 봄’ 노래를 “목이 메어 끝까지 불러본 적이 없”다. 그리고 참던 울음은 터지고 그 울음은 옆 사람들에게로 번진다. 이 때에도 과연 우리는 ‘통일의 불가능성’에 대해 논할 수 있을까.
책에서는 “미국에도 순대집이 있다는 말에 함경도 북한 동포들과 ‘순대’라는 말 한마디가 서로의 마음을 순식간에 연결”하는 마음들이 있다. 그리고 “부산을 출발한 기차가 서울과 평양을 거쳐 신의주를 통과해 중국 대륙으로”,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모스크바로, 베를린으로, 로마로, 파리로, 마드리드로”나아가는 저자의 희망이 있다. 이런 작은 마음과 꿈들이 이어지는 것, 그리고 그것들이 작은 별들의 모임, 별자리들의 구성,은하와 우주의 존재로 이어져 어둠을 밝히는 것과 같아지는 것. 그것이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불가능’을 넘어서는 ‘가능’의 지점일 것이다. 거기에서 우리는 비로소 공감과 소통이 이어지고 개인의 행복과 미래를 위한 화해를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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