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제11회 해양문학상 공모(~ 7/26) | 등록일 | 2017-03-2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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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2017 [해양문학상] 참가신청서 양식 01.hwp | 조회수 | 1504 | ||||||||||||||||||||||||||||||||||||||||||
제11회 해양문학상을 아래와 같이 공모하오니 역량 있는 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바랍니다.
아 래 -
□ 공모개요 ○ 주최/주관 : (재)한국해양재단 ○ 후원 : 해양수산부, 해양환경관리공단, 한국선주협회, 한국해운조합, 한국항만물류협회, 케이엘넷, 한국해사위험물검사원 ○ 접수기간 : 2017. 3. 24(금) ~ 7. 26(수) ○ 시상내역 : 총상금 1,850만원
- 상금에 대한 제세공과금은 본인이 부담 - 중복 수상시 상위작만 수상 부여 - 심사결과에 따라 수상자가 없을 수 있음
□ 작품공모 ○ 응모자격 :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 공모내용 : 바다에 대한 희망, 기회, 도전을 심어줄 수 있는 창작 문학 ○ 공모부문/분량
응모작품은 지면 및 사이버 공간 등에 발표된 적이 없는 순수 신작이어야 함. 표절 등 기타 저작권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는 당선이 취소되며, 모든 법적 책임은 응모자에게 있음
○ 제출서류 : 참가신청서(작품설명서, 설문지 포함) 및 작품파일 - 공정한 심사를 위해 신청자의 이름을 가리고 심사를 진행하므로, 작품파일에는 작품 제목만 작성하고 신청자의 신상정보를 적지 말아야 함 - 필명으로 신청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본명을 병기하여야 함
○ 접수방법 : 이메일 접수(maritimekorea@hanmail.net) - 메일 제목 : [해양문학상]성명-공모부문 (예:[해양문학상]홍길동-수필) - 작품제출 : 메일 첨부파일(참가신청서 1부, 작품 1부)로 제출 · 참가신청서 파일 제목 : [해양문학상]성명 공모부문 참가신청서 (예:[해양문학상]홍길동 수필 참가신청서) · 작품 파일 제목 : [해양문학상]성명 공모부문 작품명 (예:[해양문학상]홍길동 수필 아버지와 바다)
□ 수상작 발표 ○ ’17년 9월 중 (재)한국해양재단 홈페이지(http://koreaoceanfoundation.or.kr)를 통해 발표하고 수상자에게는 개별 통보 예정 □ 기타사항 ○ 수상이 확정된 후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사유가 발생되었을 경우에는 수상을 취소하 거나 상장, 상금을 반환할 수 있음 - 신청 사항에 허위 사실이 발견되었을 때 - 수상한 작품의 표절, 모방, 타 기관 유사사업과의 중복 수혜 등이 발견되었을 때 - 명시된 수상대상자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을 때 - 수상자의 행위로 인하여 본 재단의 신용, 명예 또는 이미지가 손상되거나 손상될 우려가 있을 때 - 기타 부당하다고 인정되는 행위가 발견되었을 때 □ 문의처 ○ (재)한국해양재단 담당자 : 02-741-5279 해양문학상 |
2014 제8회
해양문학상
수상작품집
아디오스 아툰
환난여옥1·백파의 항로1·신지끼
태평양을 품다·바다, 함수 풀다·락피쉬
무윤도·갓돔할망·적자·바다
발 간 사
해양문학상은 2007년 제1회를 시작으로 올해까지 전 문학 장르를
아울러 9,864편의 작품이 응모되어 이 중 83편의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하며 대표적인 해양문학 공모전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해양문학상은 해양인들의 솔직한 이야기로 해양에 대한 생생한
모습을 표현하고 이를 국민들에게 꾸준히 전달해 왔습니다.
특히, 올해 최우수상을 수상한 김득진 님의 “아디오스 아툰”은
스페인이로 “안녕 참치”라는 뜻으로 적도 근처의 무풍지대에서
참치를 잡으며 벌어지는 선원들 삶의 변천사를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는 중편소설로, 거칠고 투박한 데서 오는 현실감을 높이 평가받은
작품입니다.
그 밖에 수상한 모든 작품들이 해양문학상에 걸맞는 완성도를
보이며 공모전을 빛내주었습니다. 각 작품마다 바다에서 삶을
살아가고 해양을 통해 미래로 개척하는 우리의 다양한 모습들이
투영되어 있어 이 책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에게 그 진한 감동이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21세기는 신 해양의 시대입니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전통적인
해양 강국은 물론 중국, 러시아 등 우리 주변을 둘러싼 열강들이
해양의 전략적 가치를 새삼 인식하고 해양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더욱 치열한 각축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해양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우리의 해양정신을
일깨울 수 있도록 해양문화의 한 축인 해양문학을 발전시켜
해양강국의 위상에 어울리게 가꾸어 나가도록 한국해양재단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끝으로 제8회 해양문학상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과 수상자
여러분에게 감사와 축하의 말씀을 드리며, 발간사를 갈음합니다.
감사합니다.
2014. 12
차례
최우수상 소설 아디오스 아툰 ・김득진 / 5
우수상 수필 환난여옥 1 ・김종찬 / 61
시 백파의 항로 1 ・배기환 / 113
시나리오 신지끼 ・우수진 / 121
장려상 시 태평양을 품다 ・서상규 / 225
시 바다, 함수 풀다 ・배문석 / 233
소설 락피쉬 ・기용환 / 241
소설 무윤도 ・고동현 / 267
수필 갓돔할망 ・김현숙 / 289
수필 적자 ・박금선(박금아) / 299
시나리오 바다 ・김수용 / 309
• 심사총평 / 356
• 심사위원 명단 / 358
• 재단소개 / 359
• 사업소개 / 360
최우수상
아디오스 아툰
김 득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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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최우수상 - 소설Ⅰ 아디오스 아툰 ・김득진
아디오스 아툰
김 득 진
참치의 아가미를 잘라 내던 마이클이 비명을 질렀다. 조금 전의
눈다랑어가 마이클의 몸 어딘가에 상처를 입힌 것 같았다. 그 정도
의 사고쯤이야 뱃사람들에겐 흔한 일이었다. 갑판으로 끌어올려진
눈다랑어며 날개다랑어의 숨통을 끊어놓는 일이 급했던 나는 고개
를 돌릴 틈조차 없었다. 낚시 바늘에 달린 미끼를 삼킨 죄로 주낙을
따라 물 위로 모습을 드러낸 참치는 물보라를 일으키고 있었다. 무
풍지대에다 짠물을 튕기던 참치는 선원들의 작살을 맞고 갑판으로
끌려 올라왔다. 끝이 뾰족한 망치를 들고 섰던 나는 갑판에서 펄떡
거리는 참치의 정수리를 눈을 부릅뜬 채 겨누고서 힘껏 내리쳤다.
피를 흘리던 참치는 마지막 숨을 거두느라 지느러미를 파닥거리다
가 나중에는 아가미만 달싹거렸다. 그러면서도 눈알은 움직임을 멈
춘 상태로 나를 원망스레 쳐다보는 것 같았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참치가 죽어가는 과정 하나하나를 즐기고 있었던 거였다. 뭔지 모를
희열감 때문에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든 나는 스스로에게 상을 내릴
때처럼 중얼거렸다.
8 한국해양재단
제8회 해양문학상 수상작품집
“가만 봉께, 나가 백정 기질을 타고난 게 분명혀!”
내게 맡겨진 일이 잠시 뜸해진 순간 마이클이 내질렀던 비명이 갑
자기 떠올랐다. 삼십 분만 더 버텼더라면 주낙의 끝인 야간식별 전
구부표가 보였을 텐데 조업 전 갑판에 꿇어 앉아 드린 마이클의 기
도는 아직도 알라신에게 닿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런 뒤에도 연이어 네 마리의 참치가 갑판으로 끌려 올라왔다.
참치의 정수리를 망치로 때리는 동안 갑판은 다시 피로 범벅이 되었
다. 피를 보면 나는 알지 못할 힘이 어디서인지 모르게 솟아났다.
갑판에 흥건하게 괸 피를 본 나의 시선이 번득거리는 걸 본 갑판장
은 재빨리 호스를 끌고 와서 흔적을 없앴다. 그럴 때마다 맥이 빠진
나는 고함을 질렀다.
“어이, 뭣땀시 여그서 알짱거린당가! 니 헐 일이나 잘 허더라고!”
빈 낚시 바늘을 매단 주낙이 전동 롤러의 힘에 끌려오면서 저만치
야간식별 전구부표가 보였다. 그때서야 나는 마이클이 어디를, 얼마
만큼이나 다쳤는지 궁금해졌다. 아마도 식사준비를 하던 조리장이
사고가 난 걸 알고 선실로 마이클을 부축해서 데려갔을 거였다. 마
이클은 고통을 참아가면서도 컴컴한 선실 구석에서 메카를 향해 꿇
어 앉아 기도를 했을 게 뻔했다. 미국 남자의 아이를 낳아 기르던
열여덟 살 아내가 이번에는 마이클의 아기를 뱄다고 알려왔으니 어
느 때보다 기도는 간절했을 터였다. 조업전의 기도가 끝난 뒤 내가
망치를 쥐어줬을 때 그건 알라신의 뜻이 아니라고 한사코 거절하던
마이클의 표정은 좀체 지워지지 않았다.
두 시간 넘게 흔들리는 배 위에서 참치의 숨통을 끊던 나는 팔에
힘이 점점 빠져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미국에서 보란 듯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는 여자를 떠올렸다. 터질 듯 꿈틀거리는 손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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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최우수상 - 소설Ⅰ 아디오스 아툰 ・김득진
의 시퍼런 핏줄을 신호 삼아 다시 미친 듯 망치를 휘둘렀다. 참치는
나를 버렸던 여자 대신 피를 철철 흘리며 죽어갔다. 참치를 죽인 피
로 갑판이 질척거렸으니 꿈속에서 또 다시 여자를 만나게 될 터였
다. 나는 지난 번 꿈처럼 겁에 질린 표정을 지을 여자에게 시퍼렇게
날이 선 칼을 들고 달려들어 거친 동작으로 옷을 죄다 찢어 놓겠다
고 별렀다. 마이클은 아쉽게도 작업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다쳤으니
모처럼 다가온 기회를 놓쳤을 게 뻔했다.
주낙이 거의 다 감긴 걸 본 내가 망치를 갑판에다 던졌을 때였다.
상어 한 마리가 물 위로 모습을 드러낸 채 푸드득거리는 게 보였다.
나는 네 마리 참치의 내장을 잘라낸 뒤 피의 흔적을 지우고 있는 갑
판장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고함 소리를 들은 갑판장은 손질하던
참치를 내버려둔 채 작살을 들고 선수 갑판으로 달려왔다. 갑판장은
뱃전에 몸을 기대고서 상어를 향해 능숙한 솜씨로 작살을 내리 꽂았
다. 상어는 몸뚱이에 작살이 꽂혔으면서도 퍼덕거림을 멈추지 않았
다. 곧이어 갑판장과 나는 끌려 올라온 상어의 몸뚱이에 꽂힌 작살
을 지지대 삼아 버둥거리지 못하도록 붙들었다. 나는 톰을 고함쳐
불러들인 뒤 상어의 지느러미를 자르라고 명령했다. 톰은 칼이 쥐어
진 오른팔을 높이 들어 올린 뒤 눈을 질끈 감고 지느러미를 힘껏 내
리쳤다. 한 번의 칼질에 신들린 톰은 남은 지느러미를 처음보다 수
월하게 잘라냈다. 통점이 없다고 알려진 상어이긴 했지만 지느러미
를 잘라낼 때마다 단말마의 고통이 느껴지는 듯 더욱 거칠게 퍼덕거
렸다. 지느러미를 잘린 상어는 갑판장과 나의 손에 의해 바다에 버
려졌다. 잘린 지느러미가 갑판 위에서 파닥거리는 걸 본 톰은 그때
서야 정신이 돌아온 것 같았다. 자신이 한 일이라곤 여겨지지 않는
지 얼굴을 찡그리며 손에 쥔 칼과 상어 지느러미를 번갈아 쳐다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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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해양문학상 수상작품집
다. 고등어 상자에 모아두었던 샥스핀은 1항차가 끝나고 라스팔마
스로 돌아가면 중국 선원들에게 비싼 값에 팔려 갈 터였다. 항해사
가 톰에게 칼을 쥐어주며 등을 떠민 것도 수월찮은 부수입이 생긴다
는 계산 때문이었을 거였다. 톰은 바다에 버려진 상어를 내려다본
뒤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지느러미가 없으면, 표류하다 죽는 거 아니에요?”
“미친 시키! 고것도 모른다냐? 지느러미 잘린 넘은, 파리 목숨이
란 말시!”
나의 차가운 말투에 톰은 침통한 표정으로 참치의 피를 씻어내던
자리로 되돌아갔다. 도르래를 타고 끌려 올라오던 주낙이 축 늘어졌
다가 다시 팽팽해졌다. 주낙의 마지막인 야간식별 전구부표에 앞서
날개다랑어 한 마리가 딸려 올라온 거였다. 갑판장이 바쁘다는 걸
안 나는 혼자의 힘으로 간신히 날개다랑어를 끌어 올렸다. 망치로
참치의 숨통을 끊고 난 나는 놈이 살이 통통해진 게 힘이 약한 물고
기를 수없이 잡아먹었던 결과일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여자를 떠올
리며 숨통을 끊은 날개다랑어는 가공이 되어 그녀의 입에 들어가게
될 지도 몰랐다. 나는 여자가 자신의 살점과도 같은 참치 캔 먹는
걸 상상한 뒤 속이 후련해져서 끝이 뾰족한 망치를 다시 들여다봤
다. 여자의 매끄러운 몸매를 빼 닮은 참치를 죽일 순간의 짜릿했던
감각을 통해 묘한 흥분이 다시 전해졌다. 곧이어 나는 고개를 좌우
로 흔든 뒤 생생한 현실 세계를 바라봤다. 등 뒤에서는 갑판장이며
항해사가 내 손에 의해 숨통이 끊어진 참치의 지느러미와 아가미를
잘라내고 있었다. 조타실 가까이 선 톰은 어느 새 가슴까지 덮이는
장화를 신은 채 참치의 몸통에 물을 뿌려서 피의 흔적을 지우고 있
었다. 참치를 영하 30도의 급냉실로 보내려는 선원들은 땀을 줄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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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최우수상 - 소설Ⅰ 아디오스 아툰 ・김득진
흘렸다. 급속냉동이 되고 난 참치는 사흘 뒤면 영하 20도의 어창으
로 옮겨질 터였다. 선원들의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선장이 담배
가 꽂힌 마도로스파이프를 손바닥으로 받쳐서 피워 문 채 말했다.
“우리 어머니께서, 내게 살생을 하지 말라고 해서 말이야!”
선장의 말을 들은 뒤 괜스레 짜증이 난 나도 한숨을 내쉬며 손을
닦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담배갑을 선창에다 두드리자 한 개
비가 먼저 머리를 내밀었다. 담배를 빼 문 나는 선장의 마도로스파
이프에 꽂힌 꽁초를 낚아채서 불을 붙인 뒤 바다에 홱 던지며 말
했다.
“니미, 독헌 꽁초를 뭣땀시 고로코롬 빨고 있다요?”
“임마! 아직 레떼루도 안탔잖아!”
나에게 다가온 선장은 밑창이 단단한 신발로 정강이를 걷어차려
고 발을 쳐들었다. 나는 예상했던 일이라는 듯 몸을 살짝 비키면서
앙칼지게 대꾸했다.
“누군, 살생을 하고 싶어 한다요? 목구녕이 포도청잉께 우짤 수
업시 하는 건 중 몰라서 하는 소리당가?”
또박또박 말대꾸를 하는 내가 미웠던지 발끈한 선장은 다시 주먹
을 날렸다. 그마저도 동작이 느려 터진 탓에 무풍지대에 한 줄기 바
람만 일었다. 선장과 나는 사실, 이십 년 넘게 한 배를 타는 동안 서
로 마음에 품고 있는 게 뭔지도 훤히 아는 사이가 된 터였다. 주먹
을 휘두르거나 걸쭉한 욕을 날리는 건 둘 사이가 끈끈하다는 표시라
고 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나는 선장에게 들으라는 듯 말했다.
“나가 망치를 쥔 거시, 힘 자랑 헐라고 그란 게 아니랑께요!”
선장은 나의 가슴에 오래 된 응어리가 있다는 걸 안 뒤로 끝이 뾰
족한 망치를 쥐어줬던 거였다. 내가 한 말의 뜻을 충분히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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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해양문학상 수상작품집
는 듯 선장이 입을 뗐다.
“그걸 워쩌케 나가 모른다냐?”
내가 이십 년 넘게 들어온 선장의 사투리는 애매하기 짝이 없었
다. 어릴 때의 선장은 익산에서도 알부자라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고
했다. 집에서는 한 달이 멀다하고 소를 잡아서 잔치를 벌이고는 했
다며 자랑스레 얘기했다. 어쩌다가 노름판에 끼게 된 선장의 아버지
가 빚을 진 뒤 뒷감당을 하지 못해 자살을 했다는 건 다섯 병의 술
이 바닥을 보일 무렵 들은 얘기였다. 선장의 아버지 장례를 치른 엄
마는 아들 손을 잡고 야반도주를 한 뒤 대전의 나이트클럽 앞에서
국수장사로 생계를 이었다고 말했다. 선장은 국수장사를 하는 엄마
때문에 고아나 다름없이 자라난 거였다. 그런 엄마마저도 고등학생
무렵 교통사고로 잃고 말았다는 얘기를 고개를 푹 꺾으며 했었다.
피붙이가 사라진 처지였던 선장은 지독한 외로움과 싸워 이겨내려
고 선원의 길을 택한 거였다. 친동생처럼 정을 주곤 하던 나에게 화
를 내는 것처럼 보였던 선장이지만 입가를 쭉 찢는 걸로 봐서 참치
를 잡은 양이 썩 맘에 들었던 것 같았다.
참치를 잡느라고 진이 빠진 선원들을 태운 300톤 연승어선은 무
풍지대를 벗어나고 있었다. 남미의 브라질 북부, 수리남과 아프리카
의 가봉을 잇는 적도를 기준으로 북위 5도 아래 위의 해상은 태풍이
시작되는 지점이었다. 그 곳에는 뱃사람들에게 천적과도 같았던 바
람이 불지 않았다. 범선을 타고 무풍지대를 지나쳐야 했던 승객이며
선원들이 표류하다가 죽어간 얘기는 뱃사람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떠돌고 있었다. 옅은 해무 속에는 두려움의 정체조차 알 수 없는 무
언가가 감춰져 있을 거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런 곳에서 바다
를 하얗게 물들이는 참치떼를 만날 순간이면 두려움이 순식간에 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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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최우수상 - 소설Ⅰ 아디오스 아툰 ・김득진
히고 움츠렸던 가슴도 저절로 활짝 펴지곤 해서 더 신이 났던 거였
다. 무풍지대를 벗어나던 배의 망루에서 망원경을 들여다보던 항해
사가 고함을 지른 건 그 때였다.
“백파다!”
나는 항해사의 고함 소리를 듣고 참치 어군의 크기를 어림짐작했
다. 참치떼가 멸치 어군을 따라 수면으로 올라와서 먹이를 잡아먹느
라고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는 장면은 고흐의 그림보다 더 살아 있었
다. 백파가 보인다는 소리를 들은 뒤부터 선원들은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느슨한 허리띠를 졸라매고 물을 마시거나 선미에서 바다
를 향해 오줌을 갈겨서 속을 비우는 사람도 있었다. 갑판장이나 항
해사는 신참들에게 쌍욕을 섞어가며 어로작업 전 안전수칙을 거듭
가르쳤다. 어군탐지기며 레이더를 들여다보던 선장은 자신감에 가
득차서 오른손 엄지와 인지를 맞붙여 둥근 모양을 만들면서 마이크
에 대고 외쳤다.
“오케바리!”
선장의 지시에 따라 갑판장이 앞장선 어로작업이 시작되었다. 갑
판장은 선미 갑판에다 의자 하나를 갖다놓고 눌러 앉았다. 도르래에
서는 주낙의 낚시 바늘이 서서히 풀려 나오고 있었다. 의자에 앉은
갑판장은 고등어나 꽁치를 낚시 바늘에 재빠르게 끼운 뒤 보이지 않
을 정도의 속도로 바다에 떨어뜨렸다.
하루 다섯 차례나 주낙을 펼쳤다 거둬들이기를 되풀이해도 빈 낚
시 바늘만 맥없이 딸려오는 게 대부분이었다. 어떤 날은 전동 롤러
의 힘에 감기는 주낙을 따라 바다거북이 끌려 올라오기도 했다. 그
럴 때면 내 입에서 절로 한숨이 새 나왔지만 다음번 조업에는 대박
이 날 조짐이라고 스스로 위로를 하곤 했다. 나는 캔 맥주 딴 걸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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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해양문학상 수상작품집
지에 부어서 바다거북 앞에 놓았다. 그걸 본 선원들은 바다거북을
향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큰 절을 했다. 종지에 든 맥주를 죄다
마신 바다거북은 선원들의 조심스런 도움을 받아 무풍지대를 기우
뚱거리며 헤엄쳐 갔다.
배를 탈 각오를 했던 사람들이라면 육지에서의 삶에 진저리가 나
서일 경우가 많았을 텐데도 바다는 그들을 포근하게 보듬어 주지 않
았다. 얼굴이 둥글넓적해서 보기보다 더 소탈해 보였던 선장은 고된
일이 끝나면 언제나 술자리를 마련했다. 그런 자리에서 선원들은 제
각각 사회에서 겪었던 아픔들을 털어놓곤 했다. 시린 속을 술잔에
감춘 나는 너털웃음에다 육지에서의 아련했던 기억을 한 겹 덧씌우
듯 말했다.
“상처 아문 숭자리를 들다보드키, 지나온 것이 뭐이 그리 중요혀.
당장 바다 속 참치를 끄잡아올래 내 창지를 채우는 게 급허지.”
손가락으로 갑판 아래 어창을 가리키고 나서 들이켜는 나의 술잔
은 가늘게 떨렸다. 선장은 나를 뚫어질 듯 바라보다가 고개를 배의
흔들림과 맞춰 끄떡거렸다.
이십 년 넘게 어선을 타는 동안 가까워졌던 선장에게도 내 속 마
음을 털어놓은 적은 없었다. 나는 배를 타기 전에도 죽음의 문턱을
넘나든 적이 있었다고 했다. 어릴 적, 숨이 멎어버린 나를 들춰 업
은 엄마가 찾아간 곳은 천주교 교단에서 운영하는 병원이었다고 했
다. 휴일이었으니 병원은 당연하게도 셔터가 내려져 있었던 거였다.
엄마는 눈물 섞인 고함을 지르면서 셔터를 주먹 쥔 손으로 두드렸던
모양이었다. 한참 만에 어눌한 말씨의 수녀가 고개를 내밀고 휴일이
어서 진료가 안 된다면서 돌아가라는 차가운 말만 던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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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최우수상 - 소설Ⅰ 아디오스 아툰 ・김득진
나를 업은 엄마는 수녀의 옷자락을 잡은 채 땅바닥에 꿇어앉아 눈물
을 펑펑 쏟아내며 말했던 거였다.
“애기가 죽어뿌렀는지 우짠지 모릉께 한번 만 봐 주시쇼잉.”
죽지 말란 운명이었던지 숨이 멎었던 나는 수녀의 응급처치를 받
아 살아났다고 엄마가 얘기해 줬다. 수녀의 손에 의해 다시 태어났
으니 내게 내려진 세례명은 남달랐을 터였다. 그런 뒤에도 나는 가
난 때문에 폐병이 걸려 죽을 고비를 또 한 번 넘겼다. 선장에게는
번 돈으로 가난에 쪼들린 엄마를 배곯지 않게 하고 아직 시집도 못
간 동생을 출가시키려 한다는 얘기를 했을 뿐이었다. 나의 지나온
삶을 짐작으로나마 지켜봐 주는 선장의 존재는 아버지와도 견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 나에게 불빛도, 사람의 기척도 없이 스스로의
밝음으로 파도를 헤치고 나아가야하는 배 위에서의 삶은 고독과의
처절한 싸움판 같았다. 선장이 가끔 내게 해 대는 욕은 닥쳐오는 고
독에 절대로 지지 말라는 뜻이 담겼다고 보는 게 맞을 거였다. 선장
의 기분이 들떠 있을 때를 맞춘 내가 엔진에 연결된 발전기의 스위
치를 끈 적이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은 배의 형체를 완전히 삼켜
버렸다. 불빛이 사라진 뒤면 파도 소리만 간간이 스쳐 지나가는 절
대 고독의 세상으로 배와 내가 한 몸이 된 채 스며들었다. 몸을 스
쳐가는 무풍지대의 적막은 되돌아온 편지만큼이나 허허로웠다. 그
럴 때면 바다와 싸워서도 결코 지는 법이 없었던 선장의 고함 소리
가 기관실까지 들려왔다.
“너! 장난치는 거 맞지?”
나는 선장이 들으라는 투의 말을 무풍지대의 바다를 향해 쏟아
냈다.
“맹물가튼 인생! 어둠이 무서버 빠구리쳐 온 나헌테도 간을 맞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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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해양문학상 수상작품집
절대 고독은 필요한 벱인거 모른다요?”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한 듯 선장의 거리감 있는 말이 희미하게 들
려왔다.
“배에 근육질의 남자들만 올라타고 있어서 물속의 세이렌이 불을
끈 거라고? 소설 쓰지 말고, 좋은 말 할 때 불 켜!”
선장과 내가 무풍지대를 중매인 삼아 내뱉는 시시껄렁한 대화는
언제라도 어창을 가득 채울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 같았
다. 늘 바람과 맞서왔던 나는 바람이 없는 곳에서 맞는 어둠이 어떤
결과를 빚는지 겪어보지 못했다. 그저 배와 선원들에게 별 피해 없
이 잠깐의 소란 정도로 끝나버릴 줄 알았다. 조타실에서 좀체 벗어
나려 하지 않던 선장이 웬일인지 기관실까지 직접 내려와 내 엉덩이
를 걷어찼다. 나는 선장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고립의 서늘험에 취해 볼라는 넘을 요로코롬 걷어찰 수 있다요?”
선장은 내 뒤통수를 때리며 정신 차리라는 듯 말했다.
“잠잠해 보이는 무풍지대를 떠돌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뱃놈들이
한 둘 인 줄 알아?”
연승어선 생활에 이골이 난 선장이 볼 때 정전이 된 게 나의 장난
때문이란 걸 진작 눈치 챘던 거였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선장은,
아무리 손을 내저어도 잡을 것 하나 없는 바다에서 고립의 짜릿함을
나처럼 즐겼을 지도 몰랐다. 정전이 되었다는 걸 안 마이클은 톰의
팔을 끌고 갑판으로 나왔다. 팔에 붕대를 감은 마이클은 별빛이 눈
아리게 쏟아져 내리는 동쪽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모았다. 마이클과
톰이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가 무릎을 꿇으며 이마를 갑판에 갖다 대
는 모습은 신비롭게 보였다. 그걸 본 갑판장이 두 사람의 무슬림을
향해 너스레를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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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최우수상 - 소설Ⅰ 아디오스 아툰 ・김득진
“야 임마! 알라가 태어난 데는 북동쪽 아이가! 좆도 모르는 새끼
들이, 기도만 하믄 무슨 일이라도 해결될 줄 알제? 그라믄서 니는
라마단 기간 중인 낮에 살째기 조리실로 가 가꼬 닭도리탕 먹은 거
내 다 알고 있다 아이가!”
갑판장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알 수 없어도 정성스레 기도를 하는
마이클의 심정은 절박해 보였다. 마이클은 말레이시아로 출장 온 미
국 남자가 자신과 사귀던 여자를 가로채서 애인으로 삼았다고 했었
다. 출장 기간이 지난 미국인은 마이클이 사랑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여자를 임신시켜 놓은 뒤 곧 돌아오겠다는 말만 남긴 채 훌쩍 떠나
고서 전화 한 번 없었다는 거였다. 그런데도 마이클은 사랑하는 마
음을 거둘 수 없어서 아이를 밴 여자와 결혼을 했고 곧이어 미국 남
자의 아기를 낳았던 모양이었다. 어리기만 한 아내가 두 번 째 임신
을 했지만 마이클의 기쁨과는 달리 석 달이 채 되기 전에 유산이 되
고 말았던 거였다. 아내를 데리고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가 마이클
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자궁 후굴이 심해서 조산이나 사산의 위험이 있어요. 힘든 일을
하게 되면 위험은 더 커지겠죠?”
의사의 얘길 들은 마이클은 아내를 설득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아기를 업고서 하루 열두 시간 넘게 일을 해야 하는 포장마차를 당
장 그만두도록. 그렇지만 마이클이 외국인 회사에서 벌어오는 돈으
로는 두 사람의 생활비로도 모자랐던 것 같았다. 눈을 멀뚱히 뜨고
마이클의 입만 바라본 아내에게 전쟁터로 나가는 병사처럼 했던 얘
기를 내게 들려줬다.
“좋아! 가족을 살리기 위해 내가 희생할 게. 육지에서도 여태 흔
들리며 살았는데 그까짓 뱃일, 왜 못 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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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해양문학상 수상작품집
선원 모집 광고를 본 마이클은 본사와 연락이 닿은 지 며칠 만에
참치잡이 어선을 타기 위해 라스팔마스로 떠나왔다. 마이클의 따스
한 마음을 읽고 난 열여덟 살 아내가 손목을 붙들었지만 한 번 마음
먹은 게 흔들릴까봐 돌아보지 않았다고 했다. 이제껏 정성을 다해
믿어온 알라신이 뒷일을 보살펴 줄 거라는 든든함이 마이클의 등을
떠밀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아내가 미국 남자와 팔짱
을 끼고 다니던 모습이 떠오른 순간에는 주먹이 불끈거리기도 한다
고 했다. 마이클이 첫 애 이야기를 꺼낼 때면 미국 남자를 향한 분
노 때문에 눈에서 장작불이 타오르는 것처럼 이글거렸다. 주낙에 끌
려 올라온 참치의 아가미를 칼로 도려낼 순간에 보였던 살기도 그
때문인 것 같았다. 아내를 가로챘던 미국 남자가 떠올랐는지 미국을
향해 눈을 부릅떴다가도 참치의 피를 보고난 마이클은 입가에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흘리면서 눅눅한 침대에 바삐 몸을 숨겼다. 꿈속
에서 만났을 미국 남자와 마이클이 어떤 식으로 화해를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침이면 풀어진 눈빛으로 입고 있던 바지를 털어 밤꽃
냄새를 날리는 모습은 씁쓸해 보였다. 마이클이 울적할 때마다 마시
곤 하는 종이컵 속의 믹스 커피는 이미 식어 풀어졌던 프리마가 응
어리지고 있었다. 그걸 지켜보던 나는 다물고 있던 입을 뗐다.
“근디, 샹놈의 시키! 고로코롬 돈 벌 목적이 뚜렷헌 놈이 참치 목
숨 하나 끊지 못헌단 말여? 참치 모가지를 따지 못하믄 니가 죽는단
말여. 게다가 니가 맡은 일을 못헌다고 발을 빼믄 하늘같은 고참들
헌테 그 일이 넘어갈 수밖에 없자녀. 니가 다른 사람들 고생을 알기
나 혀?”
나는 아직 한국말의 말귀를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는 마이클에
게 욕을 퍼붓다가 이내 머쓱해졌다. 생선 비린내로 채워진 선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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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최우수상 - 소설Ⅰ 아디오스 아툰 ・김득진
소주 몇 잔에 지친 하루를 맡기는 나의 삶은 흔들리는 감방에 갇힌
신세와도 같았다. 나는 갑자기 갑갑한 생각이 들어서 갑판장을 힐끔
거리며 말했다.
“살아내는 일이 절박헐수록 디디고 설 자리가 간당간당허는 거이
인지상정이랑께. 암만!”
그나마 톰은 나에게 욕을 듣고 있던 마이클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무릎을 세운 톰은 할랄 표시가 찍힌 봉지에서
꺼낸 감자칩을 바스락거리며 씹고 있었다. 무슨 생각에 잠겼던지 톰
의 손에 들린 과자봉지에 물방울 하나가 떨어져서 비닐의 매끈한 표
면을 따라 번져갔다. 아마도 톰 자신의 처지도 마이클 못지않다고
생각해서 그랬을 터였다. 연승어선에는 마이클이나 톰 보다 훨씬 더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거쳐 갔다는 걸 그들만 모르는 것 같았다.
참치는 곧은길을 향한 삶의 여정에 끼지 못한 선원들을 다독거리려
고 낚시의 미끼를 물었던 게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했다. 끝이 뾰족
한 망치로 참치의 정수리를 정확하게 겨누어서 때린 뒤의 쾌감이 미
안한 마음이 채 가시지 않은 손목에 전해졌다. 지그시 감은 내 눈에
는 매끄럽고 늘씬한 몸으로 파르르 떨며 갑판에 마지막 목숨을 내려
놓는 참치가 미국으로 훌쩍 떠나버렸던 여자처럼 보였다. 나른해진
나는 얼른 술자리를 끝내고 잠자리에 들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오랜 선상 생활에서 간절한 것은 젓갈 냄새가 나는 여자라도 품고
난 뒤 코를 골며 자고 싶은 거였다. 오늘 봤던 피의 질척거림 정도
라면 여느 때와는 다른 황홀한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소
주 몇 잔이 가져다 준 취기를 핑계 삼아 미처 끝나지 않은 술자리에
서 일어났다. 열차 침대칸과 흡사한 선실의 난간을 잡은 채 단숨에
이층 침대로 몸을 끌어 올렸다. 내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고 있던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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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해양문학상 수상작품집
장이 고개를 들어 던지는 말이 울컥 가슴에 와 맺혔다.
“캬, 술맛 죽이네! 나도 한 때는 너처럼 놓치기 아까운 꿈을 꾼 시
절이 있었어. 지나고 보니 안개처럼 산산이 흩어졌지만 말야. 지금
이 순간은 어느 때보다 중요한 법이지, 아무렴!”
나는 선장이 떠드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땀내와 비린내가 뒤섞
인 베개를 귀에 대고 취기와 피로를 자장가 삼아 잠을 불러들였다.
참치와 사투를 벌이느라 굳어버린 근육이 딱딱한 침상과 맞닿은 자
리는 배겨서 쉬 잠이 오진 않았다. 나는 갑판에 흥건하게 고였던
참치의 피가 장화에 밟혀 질척거리는 모습을 연거푸 떠올렸다. 황
홀한 상상 속으로 접어든 나는 곧이어 꿈나라로 성큼 발을 들일 수
있었다. 꿈속에서는 스물일곱 살의 내가 스물다섯 살의 윤기 흐르
는 여자를 만났다. 그럴 무렵에는 참치의 정수리를 망치로 때릴 때
의 광기어린 눈빛은 드러나지 않았을 거였다. 여자 앞에만 서면 이
상스럽게도 한없이 작아지던 젊은 날의 나란 존재가 바보스럽기만
했다.
내 젊은 날의 아버지는 여자 집안 일가뻘의 친일 행각을 마을 사
람들에게 떠벌렸고, 여자의 아버지는 우리더러 빨치산 집안이라며
절대로 결혼만은 안 된다고 핏대를 세웠다. 담 하나를 사이에 둔
양가의 아버지는 오래 전부터라도 나쁜 감정이 있었던지 눈만 뜨면
서로 싸우곤 했다. 여자의 아버지가 우리 집안에서 열촌도 넘는 조
카의 행적을 생트집 잡아 약을 올리는 걸 참아내기 힘들었던 내 젊
은 날의 아버지는 홧김에 농약을 병째 마시고 뒹굴다 숨을 거뒀다.
그런 뒤, 여자의 아버지 꿈에 내 젊은 날의 아버지가 날마다 나타
나 친일파는 씨를 말려야한다며 고함을 친 바람에 눈을 붙이기조차
두렵다고 술에 취해 하소연을 하곤 했다. 여자의 아버지는 내 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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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최우수상 - 소설Ⅰ 아디오스 아툰 ・김득진
날의 아버지 49제도 끝나지 않아 화장실에서 목을 매단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그랬지만 이미 여자와 나의 결혼에 대한 소문은 이웃
마을에까지 쫙 깔렸던 시기였다. 우린 부모들 몰래 약혼반지까지
주고받았었다. 그런 사이였는데도 여자는 내가 그렇게나 매달렸던
사실조차 까마득하게 잊은 듯 하루아침에 훌쩍 미국으로 떠나 버렸
던 거였다. 처음 단추를 잘못 끼운 나는 죽을 때까지 마지막 단추
구멍을 찾아내지 못할 것만 같았던 탓에 여자를 향한 원망이 더
컸다.
해묵은 원망을 배게 삼아 꿈을 꾼 나는 시퍼렇게 날이 선 칼을 들
고 여자에게 다가갔다. 코가 듬성듬성한 그물을 여자의 몸에 감아
마스트의 체인블럭에다 건 나는 쇠사슬을 서너 차례 당겼다. 차라락
거리는 소리가 이어진 뒤 그물에 갇힌 여자는 못에 걸린 양파자루처
럼 축 늘어졌다. 몸을 옥죄는 그물이 갑갑했던 여자가 버둥거렸지만
갇힌 테두리를 벗어날 방법은 없었다. 꼼지락거린 여자의 손가락과
발가락이 낚시의 미늘 역할을 한 탓에 아무리 버둥거려 봐야 헛일이
었다. 한 동안 악을 쓰던 여자는 날이 번쩍거리는 칼을 들이대는 걸
본 뒤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물에 갇힌 여자의 몸매는 방금 잡아
올린 참치처럼 매끈했다. 나는 그물 사이로 삐어져 나온 여자의 옷
자락을 참치 뱃살을 도려낼 때처럼 칼로 조심스럽게 찢었다. 여자의
옷을 칼로 찢어나가는 동안 희고 봉긋한 가슴이며 배꼽에 이어 풍성
한 음모가 그물코 사이로 차례차례 드러났다. 부끄러웠던 여자가 팔
과 다리를 꼬아보려고 애를 썼지만 그물의 힘은 보기보다 훨씬 강했
다. 나는 여자가 그물코를 통해 침을 뱉기라도 할까봐 체인블럭에
매달린 도롱이집 모양을 손가락으로 돌렸다. 그런 뒤 칼질에 패인
허리께의 옷자락이며 속옷을 억센 나의 손으로 뜯어냈다. 곧이어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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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해양문학상 수상작품집
자의 윤기 나는 둔부가 눈앞에 드러났다. 허리를 숙인 나는 그물코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볼기짝을 벌렸다. 오래도록 그려왔던 풍경이
참치의 벌어진 아가미처럼 붉고도 촉촉하게 내비쳤다. 나는 마른 침
을 꿀꺽 삼킨 뒤 거친 숨을 내뱉으며 바지를 내리고 여자의 싸늘한
허리를 힘줘서 당겼다. 오랜만에 주물러보는 여자 몸의 미끈거림을
나는 도저히 참아내기 힘들었다. 고비에 이른 순간 한 곳에 몰려 있
던 나의 집착과 원망이 뜨겁게 뿜어져 나오며 차가운 궁륭을 데울
듯 흩뿌려졌다. 나는 참치의 침보다 끈적거리고 바닷물에 젖은 바지
보다 뻣뻣한 아랫도리의 감촉을 아릿하게 느꼈다. 그런 뒤에는 어느
때보다 더 깊은 잠 속으로 까무룩 빠져들었다.
조업을 마친 참치잡이 연승어선은 6개월 만에 라스팔마스 기지로
돌아와 냉동된 참치를 부려놓은 뒤 도크에 올려졌다. 샥스핀은 중국
선원들에게 비싼 값에 팔아 돈을 나눴으니 모두들 주머니가 두둑했
다. 이틀간의 휴가를 받은 선원들은 당직자 한 명을 배에 남겨두고
3개조로 나눠서 유럽 최대의 휴양지인 라스 깐테라스로 갔다. 라스
팔마스는 카나리아 제도에 속한 섬이었다. 그 곳은 일 년 내내 맑다
시피 해서 선탠에 목을 달아매는 유럽인들이 가장 즐겨 찾는 관광
명소였다. 게다가 해수욕장까지 끼고 있어 개떡 같은 날씨 속에 지
내던 유럽인들이 기를 쓰고 찾아들 조건을 고루 갖추고 있었다. 라
스 깐테라스 해변은 3.7킬로미터 길이였는데 썰물 때 바라보면 바
다 속에 일렬로 늘어선 암초가 밀려오는 파도를 막아주어서 물결이
호수처럼 잔잔했다. 자연 암초가 방파제 역할을 했으니 콘크리트 구
조물의 삭막한 모습을 보지 않고도 밀려드는 파도를 막아낼 수 있었
던 거였다. 잔잔한 물살을 온 몸으로 느끼며 물놀이를 하던 유럽인
들은 눈부신 햇살의 축복을 받으려는 듯 토프리스 차림으로 해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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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최우수상 - 소설Ⅰ 아디오스 아툰 ・김득진
누볐다. 누드 비치를 따로 설치해 두었지만 워낙 넓기도 하고 개방
된 유럽인들이 몰려들다 보니 어느 누구도 통제를 하려들지 않았다.
선원들은 그런 모습을 보자마자 거의 동시에 선글라스를 꺼내서 야
릇한 미소가 번지는 시선을 가리곤 했다. 일광욕을 하느라 백사장에
드러누워 있는 유럽 사람들을 자세히 본 갑판장은 깜짝 놀랐다.
동양인처럼 피부가 새까맣게 변한 사람들을 봤던 거였다. 갑판장의
물음에 라스팔마스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을 갖고 있었던 내가 말
했다.
“몰개에 섞인 용암 가루 땜시 그려, 그거시.”
카나리아 제도는 콜럼부스가 스페인 왕으로부터 미국을 탐험하도
록 허락을 받은 뒤 험한 바닷길에 시달리다가 잠시 쉬었다 간 곳이
었는데 1960년대에야 유럽인들의 휴양지로 개발된 곳이라고 했다.
그 중 라스팔마스는 한국인이 많이 살고 있어서 우리 대사관이며 한
국어를 가르치는 학교도 진출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온 원양어선
선원들이 죽어 가장 많이 묻힌 곳도 라스팔마스였다. 그건 아마도
오래 전부터 한국의 어업 전진 기지가 있었기 때문일 거였다.
라스 깐테라스를 벗어난 우리는 택시를 나눠 타기로 하고 편을 갈
라서 요금 흥정을 시작했다. 길 건너편으로 간 선장 조에서 나를 손
짓해서 불렀다. 선장은 나란히 선 두 대의 택시 기사와 유흥가인 무
에 그란디까지 싼 값에 태워주기로 흥정을 마친 거였다. 약속했던
것보다 미터기의 요금이 더 많이 찍힌 순간에도 택시는 멈출 줄 모
르고 내달리다가 앞차가 멈춰선 걸 보고서 정차를 했다. 선장에게서
들었던 요금을 택시 기사에게 건넨 순간 10달러 지폐 한 장을 되돌
려줬다. 내가 팁이라며 다시 내밀어도 한사코 사양을 하는 택시 기
사의 표정에는 씁쓸한 웃음이 번졌다. 앞차에서 내려 나를 기다리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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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해양문학상 수상작품집
선장에게 방금 일어난 일을 설명한 순간 무거운 대답이 흘러나왔다.
“여기도 경기가 별로 좋지 않은 모양이야. 그러니까 택시가 서로
경쟁을 하는 건 가봐.”
라스팔마스 어디라도 길을 꿰뚫고 있는 선장을 따라 언젠가 가 본
적이 있는 무에 그란디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어디서 누구에게 들었
는지 몰라도 선장은 골목의 끝머리에 있는 나이트클럽에 가면 얼마
전 한국에서 온 젊고 예쁜 여자가 있다는 말을 느끼하게 내뱉었다.
남자라면 누구나 솔깃할 말에 선장과의 거리를 좁힌 선원들 모두가
매캐한 냄새가 배어나는 골목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쳤다. 골목의 어
둠 속에는 무풍지대와 같은 두려움이 감춰져 있을 것만 같아서였다.
이런 곳이라면 마약에 취한 남자들이 행인들을 대상으로 약탈을 일
삼기도 한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죽음조차 무릅
쓰고 참치와 싸워왔으니 어떤 일이 닥쳐도 두렵지 않을 것 같았다.
혹시나 했던 선장은 품속에 재크나이프 한 자루를 감추고 다녔다.
선장은 빛바랜 간판을 매단 건물의 지하로 난 계단을 향해 성큼 발
을 들였다. 아직 이른 저녁인데도 지하로 난 계단은 어두워서 어디
가 어딘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앞사람이 디딘 자국을 뒤쫓아 내려
딛는 발자국소리가 아래쪽에서 들려오는 탱고음악에 뒤섞였다.
선장의 익숙한 안내에 따라 나는 테이블 두 개를 이어 붙여 자리
를 만들었다. 선장은 어두운 불빛 속에서도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
어 유럽인들의 술시중을 들고 있던 웨이터를 불렀다. 반갑게 다가와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배불뚝이 웨이터에게 선장은 뭔가 귓속말을
전했다. 곧이어 테이블 가득 술이며 안주가 차려졌다. 때맞춰 악단
의 드럼이며 기타가 익숙한 멜로디를 연주하기 시작했고 비즈 장식
이 번쩍거리는 옷을 입은 여자 가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이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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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최우수상 - 소설Ⅰ 아디오스 아툰 ・김득진
잡고 허리를 숙이는 여자 가수의 풍만한 가슴은 곧 떨어질 듯 출렁
거려서 아슬아슬하게 보였다. 잠깐 동안의 무대 위 정적 사이로 목
을 길게 뺀 선원들의 침 삼키는 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갈증이 난
선원들은 앞에 놓인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면서도 무대를 향한 눈길
은 잠시라도 떼지 않았다. 여자 가수가 부를 노래의 앞부분이 기타
의 선율로 연주되자 객석에서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조용필의 ‘외
로워 마세요’ 노래가 비음이 섞인 여자 가수의 목소리로 울려 퍼진
순간, 거친 바다와의 싸움에서 이겨 돌아온 뱃사람들의 눈시울이 젖
어드는 게 흐린 불빛에 드러났다. 철 지난 노래이긴 했지만 울컥하
는 감정을 이기지 못한 선장은 주머니에서 한 뭉치의 달러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리고 좀 전의 웨이터를 손짓으로 불렀다.
출렁거리는 배를 내밀며 다가온 웨이터는 테이블 위에 놓인 달러
뭉치를 보고 입이 찢어졌다. 선장의 억센 손으로 잡아당긴 귀에다
흘려 넣은 얘기를 들은 웨이터는 표정이 환해진 채 뒤뚱거리며 매니
저의 자리로 달려갔다. 무대에서 부른 노래의 마지막 부분, ‘외로워
마세요’ 가사가 남긴 여운의 끝머리에 여자 가수는 다시 허리를 숙
였다. 무대 아래서 기다리고 있던 매니저는 노래가 끝나자마자 여자
가수를 불러 요란한 손짓을 섞은 대화를 주고받았다. 매니저의 손이
내가 앉은 테이블을 두어 번 가리킨 뒤를 이어 웃음을 띤 여자 가수
가 고개를 들어 우리 쪽을 쳐다봤다. 너나없이 손뼉을 치거나 고함
을 지르던 선원들은 유럽인들이 있거나 말거나 손가락으로 입술을
오므려 휘파람을 불기도 했다. 이윽고 사뿐한 걸음으로 무대에서 내
려온 여자 가수가 고개를 빳빳하게 세운 채 담배를 꼬나물고 매니저
의 안내에 따라 우리가 앉은 테이블로 다가왔다. 기타는 저 혼자서
여전히 철 지난 노래인 노사연의 ‘만남’을 낮고 느리게 연주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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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해양문학상 수상작품집
었다.
여자 가수를 데려온 매니저는 허리를 굽힌 채 선장의 옆에다 의자
하나를 끌고 와서 앉혔다. 도끼눈을 뜨고 여자 가수를 바라본 선장
은 손에 쥐어졌던 담배를 빼앗아 바닥에 내팽개치며 어깨에 손을 얹
은 뒤 물었다.
“넌, 고향이 어디지?”
어깨에 닿은 손의 묵직함을 느낀 여자 가수였지만 빳빳한 고개를
조금도 숙이지 않은 채 선장에게 대답했다.
“충청도예요.”
어깨에 얹힌 선장의 손아귀에 힘이 주어졌는지 여자 가수는 갑자
기 얼굴을 찡그렸다. 선장은 톤을 높인 목소리로 여자 가수에게 다
시 물었다.
“충청도가! 전부 네 고향이야?”
“워따매, 우짠다고 따지신다요, 시방!”
여자 가수는 따지고 드는 선장에게 지지 않겠다는 듯 목청을 돋우
었다. 여자 가수의 어깨에 얹었던 손을 빼서 재킷 안주머니를 뒤진
선장은 재크나이프를 꺼내 테이블에다 힘껏 꽂았다. 나는 선장의 고
함이 터져 나올 걸 예상하고 여자 가수를 향해 먼저 소리를 질렀다.
“가이내가 어느 안전에 대고 공갈을 쳐 쌌는다냐! 염라대왕을 속
이제, 나는 못 속인당게!”
입맛을 쩝쩝 다신 선장은 여자 가수를 내게로 밀쳤다. 나는 여자
가수에게서 어깨를 떼며 말했다.
“암만 궁해도 그라지, 고향 가이내를 어찌 품겠능가.”
여자 가수는 반가운 기색을 한 뒤 내 팔에 자신의 손을 끼워 넣으
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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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최우수상 - 소설Ⅰ 아디오스 아툰 ・김득진
“옴마! 오빠 고향도 전라도랑가?”
선장과 내가 여자 가수를 두고 밀고 밀치는 걸 본 뱃사람들의 표
정은 묘하게 변해갔다. 나는 테이블 위에 올려둔 달러 뭉치를 집어
들어 몇 장의 지폐를 여자 가수의 브래지어 속에 끼워 넣은 다음 나
머지를 선장의 주머니에 도로 쑤셔 넣었다. 그걸 본 선원들은 입가
에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머금은 채 여자 가수에게로 몰려들었다.
선원들의 거친 손길이 스쳐갈 때마다 여자 가수의 브래지어 속에 달
러가 쌓여갔다. 그걸 보고 유난히 떨떠름하게 쳐다보던 내가 갑판장
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몇 년 전에 말여. 한국에서 온 뱃넘 하나가 여그 비스므레한 곳
에 갔다가 말여. 괴한들 총에 맞아 뒈진 소문이 나부렀지라. 비상이
걸린 중에도 어떤 넘은 코쟁이 스트립 걸이 진짠 중 알고 앵개붙었
다가 호모들헌테 납치되부러서 떼씹을 당했나벼. 몸 하나가꼬 묵고
사는 넘들은 늘 조심하지 안코서는 변을 당헐 수밖에 없는 데가 바
로 여그여. 그 땜시 선장이 재크나이프를 갖고 다니는 거여.”
그 말을 들은 선장은 테이블에 꽂힌 재크나이프를 빼서 주머니에
도로 넣었다. 여자 가수는 한국에서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선원들 사
이에 인기를 독차지해서 잠자리를 허락하지 않고도 브래지어 속에
다 달러를 그득 채웠다. 여자 가수 곁으로 다가와 느끼한 웃음을 흘
리던 웨이터에게도 선장은 백 달러 지폐를 선뜻 건넸다. 점심과 곁
들인 반주에 이미 취기가 올랐던 선원들은 여자 가수를 징검다리 삼
아 신선한 고향의 향기를 더듬어 가며 마신 술로 긴장을 풀어 헤쳤
다. 술기운을 빌어서나마 가닿고 싶은 곳이 바로 어릴 때부터 자란
고향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을 거였다. 고향에 있는 엄마와 누이를 몇
년째 못 본 내가 돈을 꼬박꼬박 보내주긴 했지만 아직도 가난의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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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해양문학상 수상작품집
레를 벗어나진 못했을 것만 같았다. 그 때문에 뱃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먼 길 마다않고 달려가 사냥으로 배를 채운 뒤 집으로 돌아
와 먹은 걸 가족들 앞에 죄다 게워내곤 하는 수놈 늑대의 삶과 흡사
하다고 생각했다. 무풍지대에서 참치를 낚아 올린 다음 손질을 해서
어창에 넣은 뒤 항구로 돌아와 부려 놓는 일을 되풀이 하곤 하던 나
는 가난 때문에 늘 다투기만 했던 엄마와 누이의 얼굴을 지워버렸
다. 정든 고향 땅을 밟고 싶은 간절함을 피붙이가 벌려놓는 것 같아
서였다.
휴가를 마친 뱃사람들은 홀가분해 진 마음으로 라스팔마스 항구
로 돌아와서 각자에게 맡겨진 일에 매달렸다. 내가 작성해서 본사로
보낸 수리 계획서에 따라 공무팀에서 정해 준 파트별 수리업체 명단
이 팩스로 도착해 있었다. 나는 수리업체 인원들에다 기관실에 소속
된 선원들 힘을 보태서 엔진 오일을 교환하고 고무 패킹이며 개스킷
과 베어링을 갈아 끼웠다. 엔진의 피스톤이며 크랭크축을 분해해 보
니 마찰이 잦은 곳의 링이나 핀만 바꾸면 다음 항차까지는 족히 견
딜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스페어로 준비되어 있는 소모품을 가져
와 닳은 부품을 빼 내고 새것을 끼웠다. 미처 준비해 두지 못했던
부품은 항구의 뒷골목에 즐비한 부속품 상점에서 사다 날랐다. 갑판
장도 전문 수리업체의 도움을 받아서 어로 작업 중에 손상된 전동
롤러며 도르래의 핀 등을 하나하나 빼서 갈아 끼웠다. 녹이 슬어 들
뜬 철판은 그라인더로 갈아서 떼 낸 뒤 새 철판을 대서 용접하기도
했다. 보름의 수리 기간이 지난 연승어선은 시운전을 위해 외항으로
나갔다. 무풍지대에 다다랐을 때 주낙을 푸는 일과 되감는 작업에
지장은 없을지 실제 상황과 맞먹는 시운전을 몇 차례나 한 배는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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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최우수상 - 소설Ⅰ 아디오스 아툰 ・김득진
장의 오케이 사인에 따라 라스팔마스로 되돌아왔다. 배가 시운전을
하기 위해 항구를 떠난 동안 남겨진 선원들은 다음 항차에 필요한
주식과 부식이며 담배나 술과 같은 기호식품을 산 뒤 바닷바람에 눅
눅해진 이불과 배게며 매트와 의류들을 업자들로부터 납품 받아 항
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6개월 동안 먹고 쓸 생필품은 언제 저걸,
누가 다 먹겠나 싶었는데 기지로 돌아갈 무렵 창고가 텅 빈 걸 본
내가 입맛을 쩝쩝 다시며 말하곤 했다.
“니미, 상어 입보다 저그덜 입이 더 무섭당게.”
처음 배를 탈 때는 낡은 엔진에서 흘러나온 기름이 신발에 묻어
미끈거리는 찜찜함이 너무 싫었다. 게다가 머리가 어질할 정도로 기
름 냄새가 많이 날 때는 멀미에 익숙해진 나였는데도 뱃전에 목을
내밀고 구토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낡은 배의 기관실에서 일을
하려면 기름과는 뗄 레야 뗄 수가 없는 형편이었는데도 불같은 성격
인 나는 도무지 기름과는 친해질 수 없었다. 바닷물로 적셔진 몸에
기름이 덧씌워지는 건 최악의 상황이었다. 비누칠을 하고 이태리타
월로 문질러도 미끈거리는 느낌은 여전했다. 그런 느낌이 든 뒤부터
는 언제나 여자 생각이 뒤따라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나는 자
꾸만 떠오르는 여자 생각을 지우려고 장갑을 껴서 미끈거리는 감촉
을 감췄다. 바삐 일하다보면 잊힐 만한 데도 내 머릿속에 8분 간격
으로 여자 생각이 떠오르도록 메모리가 되어 있다는 사실 때문에 한
숨이 새 나왔다. 장갑을 낀 채 오일컵을 점검하던 내 귀에 갑판장의
악에 받친 고함 소리가 날아들었다.
“저새끼들은 맨날 장비가 바뀌노! 이래갖고 우리 잡을 참치, 씨
마르는 거 아이가?”
고함 소리를 듣고 난 나는 날이 샌 뒤 처음으로 고개를 들어 네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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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해양문학상 수상작품집
난 하늘을 올려다봤다. 푸른 하늘을 절반이나 가린 갑판장의 얼굴은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팔에 붕대를 감은 채 엔진의 연통에 몸을
기대고 있는 마이클에게 기관실을 잘 지켜보라고 윽박지른 나는 수
직 사다리를 타고 갑판으로 향했다. 내친 김에 브리지까지 올라간
나는 저만치 보이는 어선의 마스트를 쳐다봤다. 펄럭이는 국기로 봐
서 프랑스 어선인 게 틀림없었다. 두 척의 어선은 빠른 속도로 서로
반대쪽을 향해 달려 나가면서 폐곡선을 만들고 있었다. 잠시 후 두
척의 어선이 펼쳤던 그물이 어선 선미를 따라 감겨들고 있었다. 방
금 전까지 선외기의 엔진 소리와 함께 참치를 후리느라 원을 그리던
스피드 보트 몇 대가 본선 가까이에서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듯 부르
릉거리고 있었다. 어디선가 스피커의 왕왕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바다에 잠겼던 그물의 윗부분이 수면에 드러났다. 그물 속에 갇혔던
참치가 물 위로 뛰어오르면서 물보라를 일으키다가 몇 마리는 그물
을 넘어 도망을 가기도 했다. 본선의 난간에 기대서서 그물이 좁혀
지길 기다리던 선원들은 손에 든 장총으로 뛰어오르는 참치를 향해
조준 사격을 했다. 그물 속에서 일어나던 물보라는 잠깐 만에 잠잠
해졌다. 시퍼렇던 바다는 금세 참치의 피로 벌겋게 물들어갔다. 나
는 그때서야 움켜쥐고 있던 주먹의 힘을 뺐다. 그런 다음에는 왠지
모르게 속이 후련해지는 걸 느꼈다.
어선이 맞닿을 듯 가까워져 양쪽에 설치된 크레인이 그물을 당겨
올렸다. 참치의 무게가 고스란히 실린 두 척의 배는 곧추선 마스트
가 맞닿을 정도로 선체가 기우뚱거렸다. 그물의 아래쪽은 두 척의
배가 어군을 에워싸는 중에 그물추 가까이 달린 줄을 당겨 참치의
퇴로를 막아두었다. 도망 갈 곳을 찾지 못한 참치는 그물 속에 갇힌
채 뒤엉켜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다시 손이 부르르 떨렸다. 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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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최우수상 - 소설Ⅰ 아디오스 아툰 ・김득진
발이 섰을 법한 눈으로는 끝이 뾰족한 망치를 찾고 있었다. 내 맘을
알지도 못하는 갑판장은 프랑스 국기를 단 선망어선을 향해 손가락
질을 하면서 고함을 질러댔다.
“너거는 양심도 없나? 그물로 참치를 싹쓰리 해삐리믄 우린 너거
좆이나 빨라 이말이가?”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은 듯 갑판장은 왼쪽 다리를 프랑스 선적의
배를 향해 들어 올리고 두 손을 무릎에서부터 허벅지까지 재빨리 훑
어 올리는 시늉을 몇 번이나 했다. 프랑스 국기를 단 배의 선원들은
조업에 신경을 쓰느라 갑판장을 쳐다볼 틈조차 없었을 터였다. 게다
가 그런 행동이 무얼 뜻하는지도 몰랐을 것 같았다. 그 때 식사 준
비가 끝났다는 조리장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레이더에 나타났다 순
식간에 사라지곤 하는 참치떼 때문에 어느 순간 조업 명령이 떨어질
지 몰랐던 선원들은 부리나케 식당으로 내려갔다. 칠판에 적혔던 오
늘 점심 메뉴가 짜장면이었던 게 기억나서였다. 부산의 이름난 중화
요리집에서 주방장을 했다는 조리장은 육지에서 무슨 일을 저질렀
던지 음식 솜씨 하나만 믿고 참치잡이 배를 탄 거였다. 조리장이 찰
지게 주무른 밀가루 반죽을 허공에 휘휘 던졌다가 도마에 두드려가
며 늘려서 만든 수타면은 별미였다. 식당으로 몰려가는 선원들 모두
는 입맛부터 쩝쩝 다셨다. 조타실을 지키던 선장과 임시 기관사가
된 마이클을 제외하고는 모두 식당에 모여야 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톰이 보이지 않았다. 조리장의 손을 거쳐 가장 먼저 양푼이 가득 담
겨 나오는 짜장면을 단무지와 함께 쟁반에 올린 나는 톰이 말리는
손길을 뿌리치고 조타실로 향했다. 선장은 마도로스파이프를 입에
문 채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선장의 손놀림에 따라 연승어선
이 무풍지대로 접어드는 듯 바람이 일시에 잠잠해졌다. 나는 사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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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해양문학상 수상작품집
탕에 발을 들였을 때처럼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조타실 출입문을
열고 알루미늄 쟁반을 받아드는 선장의 손은 어쩐 일인지 차갑게
느껴졌다. 나는 멍한 눈길로 바다를 바라보는 선장에게 뜬금없이 물
었다.
“성님은, 이번 참에 철망 통보가 오믄 워떠케 살라 그라요?”
“아직, 아무런 계획도 없어.”
“아즉 살아갈 날이 새파란데 그런 맴으로 나믄 생을 어찌 살아내
뿌린단 말여?”
별로 진정성 없이 건너간 말이라고 생각했던지 건성으로 대답을
한 선장은 머쓱해 했다. 선장의 일이 마치 나에게 닥친 일이라도 되
는 듯 속에서 불길이 솟아올랐다. 나는 선장의 숙연한 표정을 본 뒤
마음을 가라앉히고 턱으로 알루미늄 쟁반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아따, 금강산도 식후경잉께, 언능 드시고 생각해 보쇼잉.”
나는 충청도도 전라도도 아닌 말투로, 더 퍼지기 전에 맛난 수타
면을 먹는 게 좋겠다고 권했다. 자신의 앞날이 염려스러웠는지 먼
바다를 바라보는 선장의 젓가락은 짜장과 면을 제대로 섞지도 못한
채 자꾸 엉뚱한 곳만 찔러댔다. 정부에서 낡은 어선을 없애고 보조
금을 받아 신조선을 주문하라고 압력을 넣고 있었으니 언제 감척 명
령이 떨어질지 모른다는 말을 며칠 전에 들은 기억이 났다. 아직 젊
은 나도 하선을 하고나면 별다른 기술이 없는 게 문제였다. 낡은 배
에 익숙해진 선장이 새로 만든 어선을 몰게 된다면 최신식 장비에
적응을 쉽게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나는 선장을 쳐다보며 걱정스
럽다는 듯 말했다.
“한국에서 사람 힘을 이용혀서 돈 벌 때는 지나부렀어.”
부산항에 정박을 할 때마다 본사의 선원과장은 젊은 선원을 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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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최우수상 - 소설Ⅰ 아디오스 아툰 ・김득진
지 못해 쩔쩔매곤 했다. 출항을 앞두고서야 중국이나 동남아 출신
선원으로 간신히 정원을 채운 선원과장은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나는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톰의 행방을 선장에게 물었다.
“선장님! 근디, 톰 못 봤어라?”
나의 투박한 사투리에 기가 찬다는 듯 픽, 웃어젖힌 선장이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선장이 할 말을 대신해서 뇌까렸다.
“고거를 나가 워찌 안다냐! 마이클헌테 거머리매키로 붙어 다니던
놈이 왜? 지 짝지가 워디 간 지 모른다고라?”
평소 아무런 불평이나 불만이 없이 잘 지내던 사람이 잠시나마 보
이지 않을 때 선장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등에 요란한 문
신이 그려진 인물들이야 늘 유심히 지켜보곤 했지만 방심하고 있던
사람이 실종되면 더럭 겁을 내곤 했다. 선장은 입가가 시커멓게 된
것도 모르고 젓가락질을 멈춘 채 멍하니 먼 바다를 쳐다보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여 가서, 배를 이 잡듯이 뒤져 봐! 그렇잖아도 손이 모자라서
난리잖아.”
선장의 지시를 듣고 난 나는 브리지를 지나 식당으로 내려갔다.
식사를 마친 선원들은 죄다 입가에 짜장을 묻힌 채 이빨을 쑤시며
식당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어깨를 툭툭 치고
난 나는 톰이 간 곳을 빨리 찾아내라고 선장의 지시를 전했다. 아홉
번째로 식당을 빠져 나오던 갑판장이 짜증스럽다는 듯 퉁명스런 말
을 던졌다.
“아따! 쥐불알 만한 새끼가 오데 처박혀서 밥 처 묵을 생각도 안
하고, 머하는 기고!”
배 안을 샅샅이 뒤졌지만 마이클은 눈에 띄지 않았다. 나는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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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해양문학상 수상작품집
나 하는 마음으로 바다 속 스크루가 만든 꽈배기 모양의 소용돌이
근처를 살피다가 퍼뜩 생각이 났다는 듯 기관실로 내려갔다. 마이클
의 커다란 눈이 평소와 다르게 껌벅거리는 게 눈에 띄었다. 나는 오
른손 엄지와 인지를 써서 마이클 목의 울대를 움켜쥐었다.
“켁, 켁. 살려줘.”
“살려줄 텡께, 톰 어딨나 말혀! 싸게!”
마이클은 입을 꾹 다문 채 눈짓만으로 여러 가닥의 배관이 지나가
는 구석 자리를 가리켰다. 거기에는 짙은 갈색으로 칠한 파이프 몇
가닥이 일정한 간격을 둔 채 지지대 위를 지나가고 있었다. 배관 다
발 아래쪽 두어 뼘의 공간에는 눈에 익은 카키색 군복 자락이 삐어
져 나와 있었다. 나는 마이클의 목울대를 쥐고 있던 손을 놓고 배관
이 지나가는 아래쪽으로 살금살금 걸어가서 카키색 군복 자락을 발
로 세게 걷어찼다. 밀폐된 기관실을 울리는 비명에 이어 엎드린 자
세로 고개를 삐죽 내민 톰은 뭔가에 잔뜩 주눅 들린 눈빛으로 부들
부들 떨고 있었다. 그걸 본 내가 구석을 향해 더 깊이 몸을 숨기려
고 파고드는 톰의 허리춤을 잡아당기면서 말했다.
“우째 그란다냐?”
승선 경력 2년째라는 톰은 마이클과는 달리 맡긴 일을 말없이 해
내는 편이었다. 나는 톰이 부들부들 떨거나 겁에 질린 눈빛을 한 번
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몸을 일으킨 뒤에도 웅크린 채 떨고 있는
톰의 아래 위를 자세하게 살폈다. 방금 내 손에서 풀려난 목울대를
손으로 쓰다듬던 마이클이 뒤쪽에서 다가오며 말했다.
“기관장님! 트로피컬, 트라우마! 아프다, 톰!”
나는 마이클이 습관처럼 써 먹는 수법이라고 무시했던 일들을 곰
곰이 되새겨보았다. 구명보트를 타고 무풍지대를 일주일 동안 떠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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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 연승어선을 발견한 뒤 무의식중에 비상신호용 거울을 비춘 게
톰이었다는 사실이 퍼뜩 기억났다. 마음이 여린 톰이 하마터면 무풍
지대에 갇혀 죽을 뻔한 일을 두고 나는 일 년 전에 일어났던 일을
다시 떠올렸다.
저녁 식사를 마친 나는 작살을 든 채 전동 롤러의 힘에 끌려 올라
오는 주낙을 노려보고 있었다. 미국으로 이민 간 재벌 2세와 결혼을
해서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던 여자에게 복수를 해야
한다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던 거였다. 아무리 기다려도 퍼덕거리
는 소리는 들리지 않고 낯익은 생선 대가리와 뼈만 주낙에 걸린 채
달랑거리며 가볍게 끌려오고 있었다. 이번 조업에서도 낚시에 걸려
든 참치를 노린 돌고래떼의 습격을 받은 것 같았다. 주낙의 끝부분
인 야간식별 전구부표를 본 나는 손에 쥔 작살을 힘없이 갑판에 떨
어뜨리며 투덜거렸다.
“허기사, 주낙을 펼칠 적마다 괘기가 걸린다믄 부자 안 될 놈이
워디 있겄어!”
그때였다. 주낙의 마지막 부분인 야간식별 전구부표를 뒤따라 끌
려 올라오는 잿빛 물체 하나에 시선이 꽂혔다. 나는 본능적으로 방
금 던진 작살을 찾으려고 두리번거렸다. 퍼덕거림이 전혀 없다는 게
이상스러웠던 나는 두리번거리던 걸 멈추고 갑판의 난간 가까이 다
가온 물체를 500와트짜리 집어등 불빛의 도움을 받아 자세히 살폈
다. 꼼지락거림이 간간이 느껴지던 물체를 가만히 들여다보던 나는
입을 쩍 벌리고 물체를 잡으려고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낚시에
걸린 물체는 분명 사람의 형체를 띠고 있어서였다. 나는 낚시 바늘
에 걸린 잿빛 옷차림의 사람을 두 손으로 끌어 올려 눕힌 뒤 세차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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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해양문학상 수상작품집
흔들었다. 허연 머리카락이며 자글자글한 얼굴의 주름으로 봐서 조
난자는 환갑은 족히 지난 것처럼 보였다. 잿빛 옷차림의 노인은 간
신히 실눈을 뜨고 물, 이라며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를 힘없이 내뱉
었다. 항해사에게 물을 갖다 달라고 얘기한 뒤 노인의 몸을 더듬어
본 나는 소스라쳤다. 오래도록 바닷물에 잠겨 있었던 노인의 몸은
아버지의 시신을 만졌을 때와 같은 느낌이어서였다. 몸 여기저기에
는 돌고래의 습격을 받았던지 물어뜯긴 상처가 보였다. 낡은 오리털
파카를 급히 가져와서 노인의 몸을 감싸고 난 나는 머큐로크롬으로
상처가 덧나지 않게 처치를 한 뒤 항해사가 가져온 물을 입에다 부
어 넣었다. 그런 뒤 노인이 더듬거리며 내뱉는 단어를 상상력을 동
원해서 꿰어 맞춘 다음 표류를 하게 된 까닭을 대충이나마 알게 되
었다.
나흘 전, 노인이 탄 어선은 어디에 구멍이 났는지도 모르는 채 밀
려들어온 바닷물 때문에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다급해진 선원들
이 물통으로 바닷물을 퍼냈지만 가라앉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선
원들은 물을 퍼내는 걸 포기한 채 잠기고 있는 배의 브리지로 모여
들었다. 그 때 노인은 각자 뜰 수 있는 도구들을 챙겨서 하늘에 목
숨을 맡기자며 선원들을 향해 주먹을 쥐어 보였다. 가장 젊은 선원
들에게는 부력 한계 24시간인 구명조끼를 입히고, 나머지 선원들에
겐 드럼통이며 엔진오일을 비워낸 플라스틱 통에 몸을 의지하라고
지시했다. 구명보트를 탄 선원들은 그들 중 가장 젊은 축에 속했다
고 했다. 선원들은 무풍지대의 칠흑 같은 바다에 제각각 흩어졌다.
차츰 가라앉긴 했지만 혹시라도 구조의 손길이 미칠까 했던 노인은
마지막까지 배에 남아 있었다. 물에 잠겨드는 마스트에 간신히 매달
렸던 노인은 더 이상 어쩔 수 없어서 떠다니는 나무토막을 잡고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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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최우수상 - 소설Ⅰ 아디오스 아툰 ・김득진
흘 밤낮을 버텼다고 말했다. 노인의 말을 어렵게 꿰맞추던 나는 급
히 조타실로 달려갔다. 내가 선장에게 주변 해역을 곧바로 수색해야
한다는 뜻을 전한 순간 벼락같은 고함소리가 날아들었다.
“이런 잡것들이, 남 사정 다 봐 주면 내 배는 언제 채울 거야? 어
물쩍거리지 말고 어로구역으로 전속 항진 해!”
화가 난 나는 참치의 숨통을 끊을 때처럼 조타실에 있던 파이프렌
치를 쥐고 선장에게 달려들며 말했다.
“고향 떠나 배를 타기는 혔지만서도 모다 살기 위혀서 이 짓 허는
겨 아니랑가? 우리 손길을 기다림시로 생사의 갈림길에서 빈 도라
무에 몸을 기대가꼬 바다에 떠 댕기 샀는 목심이 있다면 워쩐당
가요?”
묵직한 공구를 치켜들고 사납게 대드는 내 모습을 처음 본 선장이
었지만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을 태세로 핏대를 세웠다.
“내 말 안 들려? 빨리 기관실로 내려가란 말야!”
이제껏 선장의 말을 거역한 적이 없었지만 사람 목숨을 구하는 일
에는 조금도 물러설 뜻이 없었던 나는 좀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헌테 무신 영혼이야 남었겠냐마는 값싼 동정은 절대로 아니
랑께요! 무풍지대에서는 인간의 무한헌 욕망만을 건질 수 있을 뿐,
영혼은 이미 힘쎈 넘들에게 죄다 빼앗겨 버렸잖으요! 그게 바로 파
우스트의 계약이지라!”
내 말에 선장은 무슨 소린가를 내질렀지만 더 이상 들으려는 생각
은 없었다. 나는 기관실에 고개를 들이밀고 고함을 질렀다.
“엔진 정지! 스크류 역회전!”
배가 나아가는 속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는 걸 확인한 나는 파
이프렌치를 던지고 갑판을 둘러보았다. 주변 해역을 수색하라고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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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넘게 질러대는 내 고함소리를 들은 선원들은 우왕좌왕했다. 낚시
에 걸려 올라온 노인의 축 늘어진 모습을 봤기 때문이었다. 그걸 지
켜보던 갑판장이 내게 말했다.
“선장님 허락은 받았능교?”
“그렇당께!”
나는 일이 잘못되면 뒷감당을 죄다 떠안을 작정으로 선장에게 위
임을 받은 것처럼 선원들을 재촉했다. 곧이어 깜깜하던 주변의 바다
가 연승어선에서 밝힌 집어등 불빛으로 환해졌다. 갑판장이 언제
조타실에 다녀왔는지 나의 작업 지시를 거둬야한다고 고함을 질
러댔다.
“선장님이 그런 지시 내린 적 없다 카던데!”
“나가 요런 꼴을 당혔다 생각혀 봐! 모다 꽁무니를 빼 부렀다믄
나가 물구신이 되뿔고 말겠제잉?”
“그라는 거 보다, 먼저 구조 신호를 보내는 기 빠르단 말 아인교!‘
갑판장의 말을 듣고 난 나는 아차 하는 심정으로 통신장을 찾았
다. 노인에게 들은 대로 사고 난 위치와 조난자 숫자를 얘기해 주고
긴급 구조를 요청한다는 무전을 치라고 부탁했다. 어려운 일이 생겼
을 때 혼자보다는 여럿이 힘을 모으면 짧은 시간에 조난자를 한 명
이라도 더 구할 수 있다는 판단을 허둥거린 탓에 제 때 할 수 없었
던 거였다. 통신장의 긴급 무전을 받은 주변 수역의 배들과 라스팔
마스 기지로부터 빠른 시간 내에 구조대를 보내겠다는 연락을 받았
다고 했다. 근처 미국의 해상경비대에서 정찰기를 띄우겠다는 소식
을 먼저 전해왔다. 그때서야 조타실에서 나온 선장은 고성능망원경
을 꺼내 들고 캄캄한 바다를 훑기 시작했다. 선원들은 난간에 기대
서서 배의 집어등 불빛에 부유물이 떠다니는 게 보이는지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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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최우수상 - 소설Ⅰ 아디오스 아툰 ・김득진
간간이 떠다니는 옷이며 기름통을 발견한 선원들은 어딘가에 표류
하고 있을 조난자들을 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탄성과 탄식을 번
갈아 내뱉었다.
밤샌 수색작업에도 바다에 떠다니는 나무토막이며 물통, 그리고
천 조각들을 건진 게 전부였다. 바다가 환해졌을 무렵 선원들에게는
참치를 잡을 때와는 다른 피로가 몰려든 것 같았다. 개기름이 번들
거리는 선원들은 핏발이 선 눈을 껌벅거리고 있었다. 멀리서 비행기
의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한 게 그 무렵이었다. 점차 가까이 다가온
비행기를 살폈더니 미국 국기가 그려진 게 또렷하게 보여 본능적으
로 눈을 치켜떴다. 고개를 내밀어 하늘을 올려다 본 내 눈빛은 잠시
분노 때문에 화끈거렸다. 곧이어 바다에 닿을 듯 고도를 낮춘 비행
기에서 커다란 상자 하나를 배의 갑판 가운데 정확하게 떨어뜨렸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부리나케 달려가서 상자를 열어 보았다.
오랜 구조 경험에 따른 결과인지 상자 속에는 삼각건, 부목, 반창
고, 붕대, 화상약, 머큐로크롬, 핀셋, 가위 등의 구급약품이 들어 있
었다. 표류를 하느라 빠져 나간 기력을 밤새 보충한 노인이 정신을
차린 건 비행기가 상자를 떨어뜨리고 난 뒤였다. 힘을 되찾은 노인
은 주황색 구명보트에 탄 여섯 명의 젊은 선원은 분명 살아 있을 거
라며 밤새 건져 올린 부유물들을 끌어안고 울먹였다. 나는 통신장에
게 노인으로부터 들은 자세한 얘기를 전하면서 주변 선박에 다시 무
전을 치라고 부탁했다.
나흘 동안이나 수색작업에 매달렸던 연승어선의 머리 위로는 새
벽부터 해양 정찰기가 고도를 낮춰 날고 있었다. 사고 해역을 오가
던 선박들끼리도 수없이 무전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좌초 선박에서
보내는 자동탐색신호는 잡히지 않고 해류를 따라 흘러가는 기름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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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해양문학상 수상작품집
만 집어등 불빛에 희번덕거렸다. 무전을 통해서는 구조 작업을 포기
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오가고 있었다. 라스팔마스 기지에서
보내오는 무전도 빨리 조업 구역으로 움직이도록 하는 게 좋겠다는
무언의 압력이었다. 처음엔 미적거리던 선장이 오기가 생겼는지 저
녁때 까지만 수색을 해보자고 때늦은 고집을 부렸다. 쉬는 시간이
주어지지도 않는 수색작업에 지쳐버린 선원들은 하나 둘 갑판에 널
브러졌다. 선원들의 무덤덤한 눈에 발갛게 먼동이 트는 풍경이 비쳤
다. 그 때 망루에 올라가 먼 바다를 살피던 2등 항해사가 고함을 질
렀다.
“불빛이! 반짝거려요!”
잠을 제대로 못 자 가물거리는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무언가 고민
에 빠져 있던 선장이 눈을 퍼뜩 떴다. 반짝거리는 불빛을 오른손으
로 가리킨 선장이 갑판을 서성이는 나에게 급히 지시했다.
“본선 우현 3마일 전방을 향해 항진!”
선장의 지시를 받은 나도 기관실에다 고함을 질렀다.
“쩌짝으로 싸게, 전속 항진 혀!”
연승어선은 엔진 회전수를 최고로 높였다. 조용하던 배가 굉음과
진동을 일으키며 달려 나가는 게 이상스러웠던 선원들은 졸린 눈을
비비며 선수 갑판 쪽으로 모여들었다. 십여 분 동안 반짝거리는 불
빛을 향해 달려간 나의 눈에 주황색 구명보트가 보이기 시작했다.
구명보트에 탄 여섯 명의 조난자들은 바닥에 쓰러진 채 파도의 일렁
임에 따라 흔들리고 있었다. 머리를 짧게 깎은 조난자 한 명만 술에
취한 듯 상체를 비스듬히 세우고서 떠오르는 햇살을 거울에 반사시
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걸 본 나는 인간 밑바닥에 감춰진 생존
본능은 의식이 몽롱한 가운데서도 꺼지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다.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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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최우수상 - 소설Ⅰ 아디오스 아툰 ・김득진
난자들은 다행스럽게도 모두 숨을 쉬고 있었다. 실눈을 떴다가 도로
감은 조난자들은 울음을 도저히 참지 못하고 꺽꺽거리며 토해내던
끝에 차례로 갑판에 쓰러졌다. 구조작업을 끝낸 선원들은 조난자들
에게 달려들어 어설프나마 인공호흡을 시키기도 하고 두툼한 이불
을 덮은 뒤 차가와진 몸을 주무르기도 했다. 조난자들을 살려내려는
선원들의 움직임은 참치의 숨통을 끊을 때와는 정 반대여서 갑판 위
는 더 혼란스러웠다.
선원들이 힘을 모아 응급 처치를 했던 덕분에 차례로 정신을 차린
조난자들은 하나같이 간절한 목소리로 물부터 찾았다. 물을 마시고
난 조난자들은 눈을 뜬 뒤 주위를 살피다가 ‘선장님은요?’ 라고 물
었다. 그 때 뒤에서 허우적거리는 걸음으로 나타난 노인이 조난자들
이 드러누운 갑판에 무릎을 꿇었다. 여섯 조난자의 축 늘어진 손을
모아서 잡은 노인의 주름진 얼굴에는 물기가 흥건했다. 젊은 선원들
을 제쳐두고 자신이 구조되었다는 게 죄스럽다는 표정을 지은 노인
이 말했다.
“정신이 가물거릴 무렵 나타난 돌고래가 내 몸을 물어뜯은 탓에
버텨낸 거야.”
노인이 살아 있었다는 게 실감나지 않는 듯 한참 눈을 껌벅거리던
조난자들도 꿈을 꾼 듯 서로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간신히 몸을 일으
켜 어깨를 껴안고 꺽꺽 울음을 토해냈다. 일곱 명의 조난자들 중에
서도 머리를 짧게 깎은 톰의 모습은 두드러졌다. 톰의 초점 잃은
눈동자에는 무풍지대의 바다에 가라앉아 버린 동료 선원들이 어른
거리는 것 같았다. 무풍지대의 바다 밑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도사리고 있을 거라는 믿음이 톰의 눈동자를 통해 더욱 굳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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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해양문학상 수상작품집
좌초된 배의 선원들을 구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선장과 나는 매스
컴을 탔다. 그걸 본보기로 삼으려는 방송국이나 해양 관련 부서에서
는 홍보용 자료 수집을 위해 라스팔마스 기지를 찾아왔다. 그들은
생각지도 않았던 공로상과 상금을 안겨주기도 했다. 나는 해양 관련
단체에서 준 트로피나 상금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불굴의 투지로
조난자를 살려낸 톰을 심복으로 삼기만 한다면 어떤 어려움이 닥쳐
도 너끈히 헤쳐 나갈 거라 믿었다. 우리들의 손에 구조가 된 톰은
말레이시아로 귀국을 했다. 석 달을 쉬고 난 톰은 나의 주선으로 라
스팔마스로 와서 연승어선에 오른 거였다. 초보인 친구 마이클을 데
리고 온 톰은 통신장 자격으로 둘이 함께 승선을 했었다. 그랬지만
톰은 초보인 마이클 없이는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마이클은 톰으
로부터 해난 사고의 이야기를 틈만 나면 들었던 것 같았다. 마이클
은 톰이 일주일 동안 물 한 모금 먹지 못한 채 메카의 방향조차 모
르면서 기도를 했던 심정을 잘 아는 것처럼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
면서 시도 때도 없이 친구의 트라우마를 핑계 삼아 톰을 보살펴야한
다며 힘든 일에서 빠져 나간 탓에 선원들에게 자주 머리를 쥐어 박
혔다.
프랑스 국적의 선망어선을 지나쳐 온 연승어선은 점점 무풍지대
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 때 요란한 헬기 소리와 더불어 잔잔한 바다
에 파랑이 일어 참치떼가 나타난 듯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걸 본
갑판장이 내게 물었다.
“성님! 저놈들은 또 머한다꼬 저라능교?”
자존심 때문인지 묻는 법이라곤 좀체 없는 갑판장의 말에 나는 뜸
을 들이다가 느릿느릿 대답을 건넸다.
“조거이 요새 시작된 참치잡이 방법이랑께. 헬기로 항공어탐을 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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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최우수상 - 소설Ⅰ 아디오스 아툰 ・김득진
니 망루에서 바다를 보는 거시랑 워째 비교가 되겄능가?”
FRP 재질의 배로 일본 수출용 참치를 잡는 빙장선은 크기가 50
톤 밖에 되지 않았다. 그들의 어로 방법은 컬러 어군탐지기와 최첨
단 레이더로 참치의 움직임을 살핀 뒤 낚시로 잡는 거였다. 낚아 올
린 참치는 얼음과 섞어 냉장 시킨 다음 곧바로 항구로 싣고 가서 비
행기로 일본에 보낸다고 했다. 냉동 참치에 비할 수 없을 만치 수익
이 크다는 얘기를 해 준 선장은 도저히 다가갈 수 없는 세상일인 듯
먼 바다만 쳐다봤었다. 선장으로부터의 얘기를 전해들은 갑판장은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빙장선이 참치를 잡는 모습을 넋을 잃고 지켜
봤다. 조타실에서 키를 잡고 있던 선장은 불콰해진 얼굴로 마도로스
파이프에 꽂힌 담배를 뻑뻑 빨아 당겼다가 길게 내뱉고 나서 녹슨
철계단을 툭툭 두드리며 본사로부터의 소식을 담담하게 전했다.
“어이! 기관장! 본사에서 감척 명령이 떨어졌어!”
선장의 얘길 들은 나도 푸념처럼 신세 한탄을 내뱉었다.
“니미, 손때 묻은 이 배도 이번 항차로 마지막이 돼 불겄네. 감척
을 시키기로 결정을 해 부렀다니께 말여. 나가 설 자리도 배와 함께
없어지는 겨. 나맹키로 뱃놈 노릇 오래하다보믄 시상 물정을 도통
모릉께 철망은 곧 무덤으로 가는 지름길인데 말여.”
나도 뒷짐을 진 채 먼 바다를 바라보며 담배 연기를 연거푸 뿜어
냈다. 갑판장이 내게 다가와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선 할 땐 하더라도 고따구로 말 하지는 마소. 고런 말 미리 시
부맀다가 사고 난 거 종종 봤다 아잉교. 하선, 그거 끼나 고동이나
하는 기 아이란 거를 잘 알면서 와 그라능교!”
갑판장이 내게 하는 말은 협박에 가까웠다. 지난 번, 같은 선단
소속의 항해사가 선상 생활에 염증을 느껴 하선을 결정한 뒤 출항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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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해양문학상 수상작품집
다가 주낙에 딸려 바다에 빠진 걸 두고 한 소리였다. 본선의 스크루
에 딸려 들어간 항해사는 토막 난 시신만을 간신히 건져 올릴 수 있
었다. 그것만 보더라도 함부로 입 밖에 낼 수 없는 말이 하선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였다. 옆에서 갑판장의 말을 듣고 있던
선장도 나를 나무랐다.
“나만 하선하면 되는데 왜 기관장까지 그러는 거야?”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려는 듯 삿대질을 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워매! 굼벵이맹키로 느려빠진 배 한나 앵기고 말여, 선쟁이나 기
관장이 늘그니 판단력이 떨어져가꼬 어획량도 팍팍 떨어저븐 거라
꼬 시부렁거려 쌋는 거를 보믄 열불이 나지 않고 배긴당가! 배를 떠
나 무덤으로 드러가는 헌이 있더라도 말시!”
나는 좀 전에 봤던 빙장선과, 만든 지 30년이 넘은 연승어선의 스
피드를 머릿속으로 견주어봤다. 상상만으로도 그건 우샤인 볼트와
초등학생이 달리기 시합을 하는 거랑 다르지 않다는 걸 느낀 내가
힘없이 내뱉는 말이 무풍지대에 흩어졌다.
“그랑께, 진작 돈 벌어가꼬 선주가 되뿌러야 혔지라. 나 거튼 뱃
넘을 하선허라 마러라 맴 먹은 대로 주무를 수 있는 사람 말이여
라!”
내 얘길 들은 선장은 맥이 빠졌는지 참치 어군을 찾는 일은 뒤로
미룬 채 선원들을 선실로 불러들였다. 당번을 뺀 나머지 선원들도
눈치를 채고서 구석에 감춰뒀던 귀한 술을 아낌없이 꺼내 놓았다.
어느 틈에 주방에까지 소식이 전해졌는지 손이 빠른 조리장이 급히
만든 닭도리탕을 선실로 가져왔다. 돗자리를 깔아 임시로 마련한 술
상은 낮아서 편안했다. 둘러앉은 선원들의 모습도 분위기에 어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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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최우수상 - 소설Ⅰ 아디오스 아툰 ・김득진
지 않게 정겨웠다. 나는 술상에 둘러앉은 선원들을 죽 둘러봤다. 대
충 보더라도 새로 건조한 배를 타게 된다면 누가 보이지 않게 될
지 그림이 그려졌다. 그 중에서도 톰의 얼굴에 내 시선이 가장 오래
머물렀다. 눈길이 마주친 톰은 내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또다시
겁에 질린 듯 어깨마저 움츠러드는 게 느껴졌다. 무거운 대화가 술
잔과 함께 오고가는 선실에서 내뱉는 선원들의 한숨 소리는 묵직했
다. 내 얘기가 뱃사람들을 헤어날 수 없는 구렁텅이로 몰아간 것 같
다고 생각했던 선장이 말을 막았다. 나는 이왕 꺼낸 이야기를 매듭
짓겠다는 듯 단호한 말을 내뱉었다.
“갈 사람은 언능 가야제. 남은 사람은 또 떠난 사람 빈자리를 메
워야 허고. 전쟁터에 나간다고 다 뒈지는 건 아닌 벱이여. 나가 잘
못했응께 그만, 한숨을 그치더라고잉.”
연승어선의 선원들은 평소보다 적은 양의 술을 마셨다. 어쩐지 술
맛이 쓴 탓에 목구멍에 걸린다는 얘길 저마다 하곤 했다. 항해사는
평소와 다른 취기를 느꼈던지 배도 왠지 비틀거리는 것 같지 않느냐
고 내게 말하며 갑판으로 올라갔다. 연승어선은 무풍지대의 참치를
찾느라고 떠돌다가 스쿨피쉬 조업을 하는 배의 곁을 지나치며 괜스
레 물결만 일으켰다. 늘 선장과 다투기만 하던 갑판장이 어쩐 일인
지 내게 다가와 조타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 양반이 하선하믄 갈 데라도 있능교? 성님은 저 양반과 친하이
까네 집안 사정을 잘 알고 있을 꺼 아이가.”
나는 남편을 배 태워 보낸 선장의 아내가 제비족의 꾐에 빠져 재
산을 날렸다는 얘기를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젊은 날의 외로움을 이
기지 못한 선장의 아내는 남자들과 술자리에서 어울리면서 제비족
의 꾐에 빠져든 것 같았다. 보내준 돈을 제비족에게 죄다 갖다 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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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해양문학상 수상작품집
고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아이들을 홀시어머니에게 맡겨두고 야반
도주를 했다고 선장이 술자리에서 얘길 했었다. 그러기에 선장에게
있어서만은 하선이 곧 무덤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
각이었다. 개중에는 튼튼한 줄을 잡아 예인선 선장 자리를 꿰찬 사
람도 있었다. 하지만 처음 잘못 채워진 단추를 고쳐 끼우는 건 나의
경우만 보더라도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배가 무풍지대에 접어들었다. 선장이 연승어선의 낡은 레이더며
구식 어군탐지기에 잡힌 참치떼를 발견하고 주낙을 풀라고 명령했
다. 하지만 참치는 걸려 올라오지 않고 미끼만 날름 낚아채서 도망
을 가곤 했다. 나는 또 다시 선장의 심중을 헤아린 뒤 한숨을 섞은
말을 내뱉었다.
“쫓고 쬣기는 쌈박질을 끝낼 때가 된 거를 지넘들도 아는겨. 물러
서는 넘 하나 쯤은 겁나덜 않는다는 말이거등. 핵교 댕길 때 허란
공부는 허덜안코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독재자의 마지막 순간을 볼
라꼬 데모에 몸을 던져부렀던 내 맹키로. 세상 어디서나 역사는 되
풀이 되는 갑서, 암만!”
참치잡이가 뜻대로 되지 않아 어창을 절반 밖에 채우지 못한 배로
라스팔마스를 향하는 선원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정들었던 조타실
문을 주먹으로 쿵쿵 때리며 내뱉는 선장의 말은 내 가슴에 와서 예
리하게 꽂혔다. 이미 감척 결정이 내려진 배는 어쩔 수 없다지만 동
고동락했던 뱃사람들을 한 명이라도 더 살려서 원양어업의 불씨만
은 꺼트리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 나는 다급해졌다. 나는 며칠
전 남자 아기를 낳았다고 무전 연락을 받은 마이클을 설득해야겠다
고 별렀다. 마이클이 본국으로 돌아가 봐야 배운 걸 써 먹지도 못할
처지였고 남보다 돈을 더 벌어야 가족의 생계를 꾸려 나가는데도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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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최우수상 - 소설Ⅰ 아디오스 아툰 ・김득진
려움이 없을 터였다. 마이클의 아내가 자신을 버린 미국 남자를 떠
올린다면 우울증에 시달릴 지도 모른다는 계산도 했다. 나는 라스팔
마스로 마이클의 아내와 아이를 함께 데려와서 가족이 오붓하게 살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행스럽게도 얼마 전 대한민국 국
적법 제5조의 부칙이 새로 생겼다. 한국 어선을 탄 경력이 있는 마
이클과 톰이 귀화를 하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나는 말레이시
아에서 대학까지 마친 마이클과 톰이 한국어 능력시험을 통과하도
록 가르치리라고 마음먹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도 국내에서의 원
양어선 선원을 구하는 게 어려웠던 탓에 외국인이 쉽게 귀화하도록
정책을 변경한 터였다. 나는 마이클 가족이 한국인이 되는 게 국익
에도 도움이 되리라고 믿어 그를 붙들고 설득했다.
“야 임마. 한국 사람이 되야불면 땡 잡는 거시여!”
“기관장님, 땡이 뭐야?”
내가 소주를 병 째 들고 마시는 걸 이해하지 못하고 언제나 생수
라고 우기는 마이클은 종이컵에다 믹스커피를 타서 들고 앞에 앉은
뒤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나는 마이클에게 한국어 필기시험에
나오는 문제 하나를 골라 넌지시 물어봤다.
“괄호 안에 무신 말을 넣어 불믄 맞을 거인지 골라 보랑께.”
“기관장님, 괄호는 뭐지?”
나는 울컥 솟아오르는 화를 다독거리며 그림을 그려서 설명해 주
고 나서 지문을 또박또박 읽어 나갔다. 저녁이 되니 추워지네. 그러
게 날씨가 제법 (**) 하지? 그렇게 읽어준 뒤 고를 답으로 ‘꿀꿀, 똘
똘, 뚱뚱, 쌀쌀, 찜찜’ 그 다섯 가지 단어를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들려줬다. 마이클은 별로 깊이 생각하지도 않고 손가락으로 쓸데없
는 셈을 한 다음 ‘찜찜’이라고 말했다. 더 이상 화를 참을 수 없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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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해양문학상 수상작품집
나는 마이클의 뒤통수를 힘껏 때리며 고함을 질렀다.
“요런 씹시키! 나허고 고로코롬 오래 지내 쌌는디 요런 문제 한나
도 못 푼당가?”
“기관장님, 나 한국사람 안 할래!”
“빌어먹을 넘! 요럴 땐 또박또박 대꾸도 잘 함시롱 말시!”
나와 마이클이 티격태격 하는 소리를 들은 갑판장이 둘 사이에 끼
어들면서 부아를 돋우는 말을 툭, 던지고 갔다.
“거참, 와 그래쌌소. 라스팔마스 한국인 학교에 가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갈카 주는 선생이 있는데 말다. 그래 갈치야 귀에 쏙쏙 들
어오는 법 아잉교.”
갑판장이 나의 한국어 가르치는 요령이 부족하다는 걸 얕보고 어
깨 너머로 던지는 소리가 속을 뒤집었다. 나는 여태 참고 있던 화를
갑판장을 향해 쏟아 부었다.
“니미 시펄, 넌 언 넘 편이다냐? 글자 한나라도 더 갈키서 싸게
귀화 시킬라는 내 맴을 알기나 혀?”
“암만 그래봤자 소 귀에 경 읽기니 하는 말 아이요. 유치원도 안
댕기는 아 붙잡고 점 두 개 찍은 자리를 연필로 이으라 캐 보소. 한
방에 잇는강. 절차를 무시하는 기 버릇이 되믄 나중에는 꼭 큰 사고
가 나기 마련인기라.”
씩씩거리던 나는 스스로의 부족함을 느낀 뒤 갑판장을 힐끗 째려
보다가 어깨를 늘어뜨렸다. 마이클은 나와 갑판장이 싸우는 까닭을
알지 못하고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며 눈만 멀뚱거렸다. 잠시 후
주머니를 뒤져 수첩을 꺼낸 마이클은 열여덟 살 아내가 부쳐준 사진
을 자신의 먼 미래인 양 들여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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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최우수상 - 소설Ⅰ 아디오스 아툰 ・김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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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척 명령이 내려진 낡은 연승어선이 필리핀으로 헐값에 팔려 가
는 순간이었다. 항구에는 오래도록 정들었던 선원들이 모두 모여 침
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게 내려다보였다. 선장은 삼십 년 넘게 무풍
지대를 함께 누볐던 배를 넘겨주지 않을 작정인 듯했다. 페인트가
벗겨진 마스트를 붙잡은 선장의 손에는 힘줄이 불거져 있었다. 굳게
다문 입에 물렸던 마도로스파이프의 담배는 저 혼자 타 들어 가느라
독한 연기를 눈가로 피워 올리고 있었다. 담배 연기 때문에 눈이 따
가운 것을 빌미로 얼굴을 문지르던 선장의 왼손 손등에는 뺨을 닦은
물기가 흥건하게 묻어 나왔다. 한국에서 온 선주가 기다리다 못해
선장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어이, 선장! 빨리 내려와야 배를 인도 할 것 아냐!”
나는 바삐 갱웨이를 내려간 뒤 선주에게 다가갔다. 선주의 팔을
붙든 나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나를 쳐다보고 난 선주는 에이
참! 하는 소리를 내뱉은 뒤 돌아섰다. 재킷을 펄럭거리며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꺼내 문 선주는 지포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곧이어 담
배 연기를 내뿜는 선주의 어깨도 가늘게 떨리는 게 눈에 띄었다. 그
순간 내 귀에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소리가 난 곳으로 급히
고개를 돌려 보았다. 선장이 조타실을 떠받치는 나무 바닥에다 무언
가를 힘주어 꽂은 소리였다. 조타실의 바닥 부분에서는 낡은 어선이
내는 마지막 광채인 듯 눈부신 반사광이 튕겨 나왔다. 반사광을 등
지고 느릿느릿, 갱웨이를 따라 연승어선에서 내려온 선장은 온다간
다 말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날씨가 맑기로 유럽에 소문이 나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들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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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해양문학상 수상작품집
는 라스팔마스 항구에 어찌된 일인지 짙은 안개가 드리웠다. 드리웠
던 안개는 잠시 만에 걷혔지만 낡은 배는 안개가 친 장막을 가리개
삼아 어디론가 떠나고 보이지 않았다. 낡은 배가 있던 정박지에는
어느 순간 새로 만든 배 한 척이 번쩍거리며 입항해 있었다. 곧이어
하얗게 칠이 된 갱웨이를 따라 눈부신 제복과 모자를 갖춰 쓴 남자
와 여자가 몸을 꼿꼿이 세운 채 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숙여
서 입고 있던 낡은 작업복에 묻은 기름을 쳐다보고 옷자락에서 풍겨
나는 비린내를 맡아봤다. 나는 까닭 모르게 설 자리를 곧 빼앗길 것
같은 위기감을 느꼈다. 무풍지대의 바다 밑에는 물에 빠진 사람들로
꾸려진 위험스런 세상이 분명히 있을 것 같았다. 그 때문에 적도를
지나치는 배들마다 제물을 정성껏 차려놓고 제사를 지낼 거라는 생
각이 문득 들었다.
선주는 눈부신 제복을 갖춰 입은 남자와 여자를 우리들 앞에 세워
소개했다.
“여기 계신 선장과 항해사는 참치잡이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할 여
러분의 생명을 지켜줄 분입니다. 해양대학을 졸업한 사관으로서 새
로 건조한 배와 함께 바다에 목숨을 바칠 각오로 승선한 것입니다.
박수로 두 분을 맞이합시다.”
그 말을 듣고 난 선원들이었지만 심드렁한 얼굴로 마지못해 두 손
을 배꼽 근처로 올려 두드리는 손뼉소리는 선주에게까지도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신임 선장과 여자 항해사는 그런 일쯤은 각오를 했
다는 표정으로 삐뚤빼뚤 줄지어선 선원들에게 다가가 일일이 손을
맞잡고 낮은 목소리로 무언가 얘기를 주고받았다. 여자 항해사의 작
고 앙증맞은 손을 만져본 선원들의 눈에는 호기심에 이은 연민이 가
득 담겨져 있었다. 선원들과의 인사를 마친 신임 선장이 새로 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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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묶어둔 계선항에 아슬아슬하게 올라서서 말을 꺼냈다.
“저는 이 배의 선장으로 발령받은 무풍남입니다. 사실, 참치잡이
배를 탄다는 걸 많이 망설였습니다만 마침 러닝메이트가 될 유능한
항해사를 만난 인연도 있고 게다가 기관장님과 전화를 한 게 결정적
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기관장님의 부탁처럼 하선하게 된 선원들 모
두가 취업 걱정이 없도록 라스팔마스 기지에 참치 가공 공장을 짓자
고 본사에 적극 건의할 예정입니다. 여러분이 부족한 저를 많이 도
와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연설이 시작된 순간에는 허공을 바라보거나 옆 사람과 얘기를 나
누던 선원들이 점차 삐뚤빼뚤한 줄을 바로 잡았다. 선원들은 옆에
선 동료들의 귓가에 손을 갖다 대고 속삭이며 눈을 반짝거리기도 했
다. 신임 선장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여자 항해사는 꼿꼿하게 선 채
로 미소를 잃지 않으며 가끔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자신의 소
견을 모두 밝힌 신임 선장은 고개를 돌려 여자 항해사를 쳐다본 뒤
선원들을 향해 말을 이었다.
“여기 계신 항해사는 해양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유능한 바다의
일꾼입니다. 앞으로의 한국 어업은 항해사의 손끝에 달렸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겁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수산 행정을 여기 계
신 항해사가 펼쳐 나갈 겁니다. 남자들이 설 자리가 점차 줄어든다
고 투덜거릴 분들도 계시겠지만 알뜰하게 살림을 꾸려나가는 일 만
큼은 남자가 감히 여자를 따라 잡을 수 없을 겁니다. 이제껏 비어
있었던 절반의 자리를 항해사가 채워서 예전보다 알찬 참치잡이 선
단이 되도록 하려는 게 이 분의 원대한 꿈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제 얘기에 동의 하신다면 박수로 항해사를 맞아 주시면 고맙겠습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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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해양문학상 수상작품집
여자 항해사 소개가 끝나기 바쁘게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여자 항해사는 간단한 인사말을 선원들에게 남겼다.
“비어있던 절반의 자리를 기꺼이 내 준 여러분을 위해 선상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폭력이나 비위생적인 요소들을 깨끗하게 씻어
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여자 항해사의 말에 말단 선원들의 박수 소리는 더 컸다. 나는 고
개를 돌려 그들을 째려봤다. 삼십 년 넘게 이어오던 원양어선 선단
의 관습을 신임 선장이며 여자 항해사가 깡그리 뭉개려 들 게 뻔해
서였다. 특히나 여자 항해사가 배에 함께 타게 되었으니 참치가 제
대로 잡힐 것 같지도 않았고 옷도 맘대로 벗지도 못할 것이며 답답
하던 속을 풀어 헤칠 요량으로 버릇처럼 내뱉던 욕도 못할 거란 생
각에 화가 불끈 치솟았다. 본사에 전화를 했던 내가 우연히 해양대
학 출신 선장과 통화를 하면서 낙후되어 가는 원양어업을 함께 살리
자는 얘길 괜히 했단 후회가 들었다.
새로 인수한 배의 현지 시운전을 위해 어로작업에 필요한 선원들
을 모두 태우고 라스팔마스 항구를 벗어났다. 나는 마이클이 기관사
가 되기 위한 트레이닝을 시킬 참이어서 잠시라도 기관실에서 떠나
지 못하게 겁을 줬다. 시간이 날 때마다 매뉴얼을 펼치고 책의 그림
을 보여줬다. 손가락으로 엔진에 조립된 부품을 견줘가면서 하나하
나의 부속들이 하는 일을 머리를 쥐어박아 가며 가르치기도 했다.
배의 엔진이란 게 성능이 좋아졌다고는 해도 각 부분의 이름이나 구
조는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달라졌다고 해 봐야 손으로 조작하던
걸 전기 부품 하나 더 갖다 붙여 자동으로 조절하는 것뿐이었다. 그
런데도 마이클은 서너 번 가르쳤던 걸 이해하지 못하는 게 많아 나
도 모르게 욕이 튀어 나오곤 했다.
KOREA MARITIME FOUNDATION 53
Ⅰ최우수상 - 소설Ⅰ 아디오스 아툰 ・김득진
“씹시키! 어찌케 갈켜야 알아 듣겄어?”
“기관장님, 너는 처음부터 잘 했어? 항해사가 욕 하지 말랬잖아!”
방금 내가 한 욕을 귓가로 흘려들었는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시계
를 들여다 본 마이클은 ‘마깐’ 이란 말을 던지고 기관실 구석에 마련
된 기도실로 향했다. 어린 아내가 다행스럽게 순산을 해서 아들을
낳았다고 연락을 해 왔으니 메카를 향해 올리는 기도는 더욱 진지할
것만 같았다. 나는 마이클의 등 뒤에 대고 악의 없는 욕을 섞어 놀
리듯 말했다.
“또라이 시키, 배에서는 메카의 위치까정 흔들린단 말씨!”
배의 톤수나 엔진이 낼 수 있는 힘은 저번 것보다 나아지지 않은
걸로 매뉴얼에 적혀 있는데도 속도에는 엄청난 차이가 났다. 연돌을
통해서 시커멓게 내뿜던 연기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엔진에서 일으
킨 힘이 소음이나 연기도 없이 움직인 탓에 연소 효율이 높아져서
기름도 적게 드는 것 같았다. 허비되는 에너지가 없으니 엔진의 힘
이 스크루에 고스란히 전해져서 성능이 좋아진 것처럼 보이는 것이
라 생각했다. 나와 마이클이 기관실에서 적응 훈련을 하는 동안 갑
판에서도 주낙을 드리우거나 끌어올리는 훈련을 하는 소리가 엔진
소음에 뒤섞여 들렸다. 그렇지만 뭔가 빠진 듯한 느낌만은 지울 수
없었다. 그 무렵 신임 선장의 또박또박한 음성이 기관실 스피커에서
낭랑하게 울려 퍼졌다.
“유능한 기관장님 덕분에 완벽한 시운전이 되었습니다. 감사합
니다.”
나는 신임 선장으로부터 칭찬을 들으면서도 밀려드는 허전함의
정체를 떠올리려고 애를 썼다. 그 순간 기관실에서 갑판으로 나가는
유일한 통로인 네모난 구멍에서 들어오던 햇살이 갑자기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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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해양문학상 수상작품집
나는 고개를 들어 머리 위의 구멍을 바라봤다. 그 곳으로는 두 개의
종이컵을 쟁반에 받쳐 들고 빙그레 미소를 짓는 항해사가 나의 허전
함을 읽은 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항해사의 손에 들린 익숙한 커피
향기는 곧바로 코에 스며들었다. 나는 얼굴에 드러냈던 허전함을 서
둘러 지우고 손에 묻었던 기름을 겨드랑이에다 닦은 뒤 항해사가 건
네는 두 잔의 커피를 받아들고 눈을 찡긋했다. 여자의 몸으로 배에
서의 고된 생활을 어떻게 이겨낼지 걱정스러웠던 나는 이래저래 속
이 답답하기만 했다.
새로 만든 배가 성능이 훨씬 좋아진 컬러 어군탐지기를 써서 일본
수출용 횟감인 눈다랑어를 골라 낚았다. 라스팔마스 기지로 돌아오
는 동안 눈다랑어의 내장을 빼고 얼음을 채워 냉장 상태를 유지시켰
다. 라스팔마스 항구에서는 하선 명령을 받은 옛 선장과 톰이 배가
입항할 때만 기다리고 있었다. 통신장의 무전 연락을 받고 달려 온
톰은 참치를 화물차에 실어 작업장으로 가져갔다. 화물차에 실려 온
참치를 본 옛 선장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어릴 때 소 잡는 걸 자주 봤지. 사바끼를 전문으로 하던 남자는
한 시간도 못 돼서 소 한 마리의 뼈를 죄다 발라내더라니까!”
옛 선장이 어깨 너머로만 봤다는 칼 다루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
다. 선장의 엄마는 남편이 소를 자주 잡은 바람에 액운을 불러들인
거라며 살생을 하지 말라고 당부를 했던 거였다.
프랑스 선적의 배들은 얼음을 채운 참치 몸통 전체를 비행기로 실
어 일본으로 수출했다는 얘길 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제 값을 받기
위해서라도 참치의 각 부위를 표준화 된 크기로 잘라 투명 플라스틱
도시락에 담았다. 그런 뒤 태극기 문양이 찍힌 라벨을 붙여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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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최우수상 - 소설Ⅰ 아디오스 아툰 ・김득진
스박스에 채워진 얼음과 함께 비행기에 실어 일본으로 보냈다. 작업
장의 컨베이어 곁에는 옛 선장과 톰이 아기를 업은 마이클의 어린
아내와 함께 서 있었다. 밝아진 얼굴로 계란 크기의 참치 눈알을 빼
서 주무르던 옛 선장은 뭔가 허전한 듯 입맛을 쩝쩝 다시며 중얼거
렸다.
“시부럴, 배를 탈 때는 이딴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말야!
욕을 하지 말라고 하니 입은 더 근지럽네 그려.”
옛 선장의 푸념을 듣고 난 여자 항해사가 다가가서 참치 눈알을
든 손을 잡으며 말했다.
“선장님께 늘 욕을 듣던 게 습관이 된 선원들도 양념 한 가지를
빠뜨린 음식을 먹는 것처럼 허전한가 봐요.”
뒤에서 옛 선장과 여자 항해사의 대화를 듣고 있던 내가 불쑥 끼
어들었다,
“그런 말 말더라고잉! 입이 근지러운 건 지깟놈들보다 선장님이
훨씬 더할텡께!”
최신식 작업장은 젊고 패기 넘치는 신임 선장과 여자 항해사가
본사에 떼를 써서 받아낸 투자 자금으로 지어진 거였다. 작업장 옆
에는 경량칸막이로 지은 몇 채의 살림집이 보였다. 문짝이 달리지
않은 기도실에는 메카의 방향 표시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가
운데 집 앞의 빨랫줄에는 마이클의 아내가 빨아 넌 히잡이며 하얀
기저귀들이 햇살을 받아 배의 마스트에 걸린 태극기인 양 산들바람
에 펄럭이고 있었다. 마이클 아내의 노랑머리 아들은 엄마에게 배
운 말레이시아 말과 선원들이 가르쳐 준 한국말을 섞어가며 고만고
만한 라스팔마스의 아이들과 아무런 어려움 없이 어울려 뛰놀고 있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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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해양문학상 수상작품집
며칠 있으면 나도 본사와의 계약 기간이 끝날 터였다. 마지막 항
차가 끝나갈 즈음, 어창을 마저 채우려고 주낙을 풀어내던 내 몸은
까닭 모르게 휘청거렸다. 배의 난간에 기대서 육지를 바라본 순간,
한 무리의 안개가 눈앞을 가로막았다. 더듬거리며 기관실로 내려간
나는 곧 기관사가 될 마이클을 밀쳐냈다. 매뉴얼에 적힌 대로 엔진
에서 감속기를 거쳐 스크루에 이르기까지의 동력이 전달되는 부분
들을 차례차례 점검해 나갔다. 조용하기만 한 엔진이 전해준 열기는
바닷바람에 눅눅해진 몸을 뽀송뽀송하게 말려줬다. 감속기 안에서
는 맞물려 돌아가는 기어의 규칙적인 진동과 오일이 뒤섞이는 소리
가 끊임없이 들렸다. 엄마가 어린 나를 어르며 허밍으로 자장가를
불러주는 느낌이 든 나는 가슴이 서늘해졌다. 새로 만든 배는 무풍
지대의 보이지 않는 위험조차 거뜬히 헤쳐 나갈 것 같았다. 감속기
에서 빠져 나온 동력축이 스크루를 힘차게 돌리는 데도 소음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큰 힘을 내려면 시끄러운 소리가 나지 않는 게 더
낫다는 걸 그때서야 깨달았다. 나는 나지막이 한숨을 내쉰 뒤 마이
클의 어깨를 쓰다듬고 나서 갑판으로 올라갔다. 배는 주낙을 풀었던
자리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무풍지대에 점점이 떠 있는 부표 주변은
무리를 이룬 새떼 때문에 짙은 구름이 낀 것 같았다. 신임 선장이
컬러 어군탐지기로 확인한 결과 낚시 바늘마다 참치가 걸렸을 거라
며 찢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젊은 선원들과 여자 항해사가 앞장
선 어로작업은 순조로웠다. 전동 롤러의 힘에 의해 감기는 주낙을
따라 미국의 참치 통조림용으로 쓴다는 날개다랑어가 촘촘하게 걸
려 올라왔다. 나는 그 중에서 가장 크고 몸매가 늘씬한 놈을 골랐
다. 언제나처럼 끝이 뾰족한 망치로 참치의 정수리를 힘껏 내려친
뒤 서서히 갑판이 질척거리는 피로 물들어 가는 걸 지켜봤다. 곧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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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최우수상 - 소설Ⅰ 아디오스 아툰 ・김득진
어 나는 검붉은 갑판 위에다 미국으로 떠나버린 여자를 잊으려는 듯
손가락으로 굵직한 글씨를 썼다.
“아디오스 아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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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
약력
김 득 진
주)엘지화학 근무
2009년 부산예술제 전국 백일장 장원, 수필 <성묘> 부산광역시장상
2011년 제8회 농촌문학상 우수상 단편소설 <미꾸라지>
2012년 자연사랑 생명사랑 시 공모전 대상 <하늘 채마밭> 환경부장관상
2012년 계간 시에 신인상 단편소설 <어떤 각본>
2012년 휴 메트로 단편소설 공모전 우수상 <나의 일과>
2012년 시집 <커피를 훔친 시> 발간
커피를 주제로 한 시 119편: 한국 기네스 인증 받음 -한국기록원
2013년 울산 정명 600주년 문예작품 공모전 가작 단편소설 <오래된 집>
2014년 동양일보 신춘문예 신인문학상 소설 당선 <나홋카의 안개>
한국문인협회 회원 <소설분과>
daum cafe <신춘문예공모나라> 편집장, 부산지역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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