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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문학상' 창작의 날개 펼쳐보세요
작성자건설경제날짜2017/5/22 16:3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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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문학상’ 창착의 날개 펼쳐보세요

 

 <건설경제신문>이 ‘한국건설 70년’을 맞아 건설문학상 공모전을 개최합니다. 일반 국민의 건설산업에 대한 이해 증진과 관심 제고를 위해 마련한 이번 공모전은 건설과 관련된 창작문학과 웹툰 등 2개 분야로 진행됩니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영예의 대상 수상자에게는 국토교통부장관 표창과 500만원의 상금이 수여되며 분야별 최우수상과 우수상 수상자에게도 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 회장 표창과 소정의 상금이 주어집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 주최:건설경제신문

• 후원:국토교통부, 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 대한건설협회, 건설공제조합, 대한전문건설협회, 전문건설공제조합, 대한기계설비건설협회, 기계설비건설공제조합, 한국건설기술인협회, 건설근로자공제회

• 공모부문

부 문

소설

수필․동화

웹툰

편 수

1편

2편 이내

5편이내

2편





일반,중고등부

80매

15매 내외

제한없음

편당 15컷 이상

초등부

80매

10매 내외

미대상

※ 200자 원고지 기준

※ 응모작품은 최종 제출시 A4용지 출력물(파일) 제출

- 신명조 13포인트, 줄간격 160%인 경우 A4용지 1장은 200자 원고지 5매로 간주

• 공모기간:2017. 5.22(월)~2017.9.15(금)(마감일 18:00시 도착분까지)

• 응모요령

 ㆍ응모자격:대한민국 국민

  -초등부:전국 초등학생

  -중ㆍ고등부:전국 중학생 및 고등학생)

  -일반부:일반인(성인) 및 대학생

 ㆍ접수방법: 우편 또는 홈페이지 접수(택일)

  - 접수처:

  ㆍ우편:135-701 서울특별시 강남구 언주로 711 건설회관 12층.

건설경제신문사 논설위원실

  ㆍ이메일:writing@cnews.co.kr

※ 제출시 응모신청서 1부(홈페이지서 다운), 작품 1부(A4용지로 제출)

• 시상내역

구 분

인 원

상 금

대 상

전부문

1명

500만원

일반

최우수상

부문별 1편

4명

각 200만원

우 수 상

부문별 2편

8명

각 150만원

중․고등부

최우수상

부문별 1편

4명

각 100만원

우 수 상

부문별 2편

8명

각 50만원

초등부

최우수상

부문별 1편

3명

각 50만원

우 수 상

부문별 2편

6명

각 30만원



• 결과 발표 및 시상:2017년 10월 말 예정(본지․홈페이지 게재 및 개별통보)

※ 일정은 업무형편에 따라 변경될 수 있음.

• 유의사항

- 응모작품은 국내외 타 문학관련 공모나 문예지 등에 발표되지 않은 본인의 순수한 창작 작품이어야 함.

- 표절, 위작, 모작, 다른 기관 중복출품 또는 이전에 발표된 작품인 경우 심사와 시상에서 제외됨(위반시 수상 이후라도 수상이 취소되며 상금도 환수됨)

- 응모작품은 반환되지 않으며, 수상작품에 대한 저작권의 소유 및 활용에 대한 모든 권한은 주최측에 있음.

-작품의 접수와 심사, 시상일정 및 시상내역 등은 작품 접수 상황 및 완성도에 따라 변동될 수 있음

 - 문의: 건설경제신문사 논설위원실(02-3485-8437)

건설경제신문  

<2017 건설문학상 대상> 김환훈 ‘아이티(Haiti)’

기사입력 2017-11-13 08:00:13.         
‘아이티(Haiti)’

 

  

건설산업 70주년 기념사업으로 추진된 건설문학상 대상에 소설무문의 아이티(김환훈)가 선정됐다. 영예의 대상 수상자에게는 상금 500만원과 국토교통부장관 명의 상장과 상패가 수여된다. 김환훈씨는 수상소감에서 건설의 본질은 사람을 지키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는 건설에 대한 이미지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했다.

건설문학상은 지난 5월부터 9월16일까지 접수를 완료한 결과 400여건이 접수됐다.

접수된 작품에 대해 심사위원회가 1,2차에 걸쳐 심사를 한 결과 5개 부문에서 26개 작품이 입상작으로 뽑혔다.

 입상작에 대한 시상식은 오는 27일 건설회관 2층 중회의실에서 열린다.


건설경제신문  

<2017 건설문학상> 대상 김환훈 ‘아이티(Haiti)’

기사입력 2017-11-13 08:00:15.                  

김환훈 <아이티(Haïti)>

  

북아메리카 아이티(Haïti)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 나는 이제 갓 임관한 공병 소위에 지나지 않았다. 선임은 엊그제 자대에 배치된 나를 데리고 부대의 역사를 알려 주겠다며 근처에 있는 한계령에 오르자고 했다. 나는 성당에 간다는 구실로 어떻게든 빠져나가 보려 했지만, 아침부터 방문을 두들겨대는 선배를 뿌리칠 방법이 없었다. 무시무시한 경사로 기울어진 한계령에 발을 딛자마자 숨이 턱턱 차올랐다.

나는 원래 전차를 몰고 싶었다. 기갑 장교로 임관하여 전차를 타고 험지를 주파하는 게, 내가 생각하기에 군대에서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일이었다. 길이 없다면 산을 부수어서라도 나아가는 게 전차의 매력이었다.

하지만 몇몇 선배가 내게 말해 주었듯, 병과 배정이란 마치 복권을 긁는 일과 같았다. 나는 1지망에 썼던 기갑은커녕, 희망 순위에도 없던 공병 장교가 되어버린 것이다. 더군다나 그 춥고 험하다는 강원도라니. 서울 집에는 두 달에 한 번도 채 못 갈 판이었다.

“하, 여기서 2년이나 보내야 하다니.”

나는 주먹으로 허벅지 근육을 두들겨가며 저 멀리 앞서 나가고 있는 선배를 좇았다.

“힘드냐?”

“아닙니다.”

“올라가기도 힘들지?”

“괜찮습니다.”

“나도 처음에 여기 왔을 땐 죽을 뻔했다. 그때는 왜 굳이 여기를 올라 가자는지 몰랐어. 근데, 다 이유가 있더라고.”

그는 고개 중턱쯤에서 한참이나 펼쳐진 계단을 가리켰다.

“올라가자. 108개야.”

선배는 그렇게 말하고는 마지막 고비를 위해 힘을 잔뜩 숨겨놓은 사람처럼, 단숨에 계단을 올랐다. 땀을 뻘뻘 흘리며 정상에 도착하자, 거기엔 작은 비석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한계령 위령비’.

선배는 옛날 이 도로를 짓다가 사망한 선배 전우 108명의 혼을 기리는 비석이라고 했다. 한계령 길은 1970년대 한 공병부대에 의해 지어졌다. 이렇게 험하고 거친 땅을 오르내리고, 그리고 깎아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또 다치고, 또 움직이지 않는 몸을 아침마다 억지로 일으켜야만 했을까. 반면 나는 잘 닦인 길을 밟는 데만도 힘이 부쳐, 털썩 주저앉아 버리고야 말았다

선배는 이야기를 마치고 담배를 꺼내 피우기 시작했다. 공병학교에 있을 땐 흡연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나는 담배를 보자마자 선배에게 한 개비만 부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선배의 휴대폰이 울렸고, 그 바람에 나는 말을 붙이지도 못했다.

“충성! 전화 받았습니다.”

그는 담배를 피우면서도 상관의 전화를 능숙히 받았다.

“예. 같이 있습니다. 예? 잘 모르겠습니다. 한 번 확인해보겠습니다.”

선배는 전화기를 한 손으로 틀어막고는, 내게 물었다.

“너 불문과 나왔냐?”

“예. 맞습니다.”

“그럼 프랑스어 좀 하지?”

그는 내 대답을 듣지도 않고 다시 전화에다 말을 한다.

“예. 맞답니다. 조금 한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다시 물어보겠습니다.”

선배는 다시 손으로 전화기를 막는다.

“야. 회화는 좀 할 줄 아냐?”

“네 조금 가능합니다.”

“아니 진짜로?”

“전문적인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현지인과 의사소통은 가능합니다.”

“영어는?”

“영어는 좀 됩니다.”

“예. 둘 다 가능하답니다. 예. 지금 위령비 올라와 있습니다. 신임 장교 답사를…. 예,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내려가겠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휴대폰을 닫았다. 그리고 선배는 내 어깨를 툭 치며 내려가자고 했다.

“혹시 무슨 일 있는 겁니까?”

그는 손에 쥔 담배를 마저 피운 다음 손가락으로 불똥을 튀기며 말했다.

“응. 너 잘하면 파병 가겠는데.”

절차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며칠 후 국방부에서 왔다는 대령이 내게 몇 가지 서류를 내밀었고, 나는 1년 동안 월급을 세 배나 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원도를 벗어날 수 있다는 대령의 말에 그 자리에서 서명을 해버렸다. 그때 대령은, 우리나라 공병장교 중에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다고 계속해서 한탄을 해댔다.

처음으로 대대장, 그러니까 파병대장을 만났을 때에도 그는 나에게 관심을 보이기보다는, 나를 데려 간 대령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아니 선배님, 중위 없습니까 중위? 갓 임관한 소위한테 뭘 맡깁니까.”

“야. 프랑스어 할 줄 아는 사람이 없다잖아. 어차피 부사관들 빵빵하잖냐. 정 안되면 통역장교 따까리라도 시키면 되니까 그냥 데려가 봐.”

그 후 나는 신체검사며 몇 가지 검사를 받았고, 파병부대 환송식에서 맨 뒷줄에 앉아 사진을 찍었고, 며칠 뒤 군용 수송기에 몸을 실었다.

공항에 내리자 흙먼지가 코를 파고들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는데, 그걸 보고 대대장은 공병한텐 이게 보약이니까 많이 들이마셔, 하고 면박을 주었다.

두 돈 반 트럭 뒤에 앉아 두 시간이나 달렸을까. 우리가 도착한 곳은 아이티 레오간(Léogâne)이란 마을이었다. 오는 길에도 무너진 건물을 간간히 보기는 했지만, 직접 그 한가운데 서게 되자 대지진이라는 말이 무척이나 실감났다. 그곳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뉴스에서 본 것보다 몇 배는 끔찍했다. 길가, 아니 길가라고 불렸던 곳에는 양 옆에서부터 쓰러진 콘크리트 바위가 잔뜩 널브러져 있었고, 새빨갛게 녹슨 철근이 마치 덩굴처럼 곳곳을 감아댔다.

잔해들 사이에는, 진분을 잔뜩 뒤집어 쓴 채 여자와 아이들이 힘없이 앉아있었다. 그들은 콘크리트 더미를 들어내 쓰레기를 주워와 모닥불을 피웠다. 마을 한가운데에 있던 교회도 무너진 것은 마찬가지였는데, 거기서 몇몇 여자들이 과자 같은 것을 구워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저게 뭔지 아십니까?”

나는 중대장에게 물었다. 수송기에 나란히 앉아 스무 시간인가 하는 정도를 함께 보낸 덕분에, 나는 다행히도 그와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친해졌다.

“진흙이란다 임마. 먹을 게 없어서 흙을 구워먹는대.”

아이들은 주변에서 퍼다 온 흙에 살짝 소금 친 진흙 쿠키를, 오물오물거리며 맛나게 받아먹고 있었다.

아이티 정부에서 나온 관료를 따라 들어간 곳엔, 아무것도 없는 흙밭이 있었다. 말 그대로 황무지였는데, 가녀린 풀들만 듬성듬성 자라 있을 뿐 텅 빈 장소였다. 내가, 그리고 우리 파병부대가 일 년간 지낼 터였다.

대대장은 도착하자마자 중대장들에게 명령을 내렸고, 중대장들은 부대원들을 모아 반나절 만에 천막으로 된 임시 막사를 만들었다. 순식간에 200명 정도가 지낼 수 있는 그럴싸한 군용 막사가 지어졌다. 저녁을 먹기 전, 우리 중대장이 나를 불렀다

“따라 와라. 회의다.”

나는 그를 따라 지휘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지휘소 안에는 이미 근방의 지도를 그려놓은 상황판이 놓여 있었고, 부대의 모든 간부들이 들어와 앉아 있었다. 책상 끄트머리에 앉은 대대장 옆에는, 아까 우리를 안내했던 아이티 관료가 지도를 가리키며 통역장교에게 이것저것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었다.

통역장교가 그의 마지막 말까지 대대장에게 일러주자, 대대장은 우리 보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 이 지역 재건 담당자분이시니까 다들 얼굴이라도 기억하고. 지금 막 얘기를 들었는데, 우리 임무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204번 도로 재건, 둘째 공공시설 및 거주시설 재건, 셋째, 의료 지원이다. 그리고 우리도 여기서 살아야 되니까, 대충이라도 막사를 지어야겠지. 중장비, 너네는 장비 도착할 때까지 막사 담당해라. 장비 오면 바로 도로에 투입하고. 중대장, 너는 담당자랑 얘기해보고 내일 같이 마을 갔다 와서 보고해. 일단 잔해부터 치우고 가장 급한 주거지랑 우물, 그리고 필요한 공공시설부터 건설한다. 의무대는 마을 중간에 천막 쳐줄 테니까 당분간은 거기에서라도 의료 활동 개시하고, 알겠나?“

“예.”

“그리고 특이 사항으로, 근방에 있던 교도소가 무너지면서 범죄자들이 탈출한 모양이야. 아직 별 일은 없지만 수도(首都)에서는 지금 강간이나 방화, 약탈을 하는 놈들이 있다니까. 우리도 경계는 실탄 장전해서 간다. 중요한 건 두 개야. 첫째, 절대 아군 부대 손실은 금지한다. 공사를 하다가 다치건 탈옥수한테 맞아서 다치 건, 하여튼 둘 다 절대 용납 못 해. 둘째, 우리는 재건지원단이다. 우리는 여기 마을사람들을 도와주러 온 거야. 민간인들한테 반드시 호의적으로 나가고, 필요한 게 있으면 적극 지원해라. 그게 우리가 여기 온 이유니까. 일단 먹을 게 부족하다니까, 의무대가 먼저 파악해서 꼭 필요한 사람들한테는 우리 부식이라도 나눠준다. 군의관이 그거 판단해주고.”

대대장의 지시를 받은 우리는, 다음날부터 임무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나는 중대장을 따라 어제 막사에서 봤던 지역 재건 담당자를 만났고, 그와 함께 시내를 둘러보았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일단 가장 급한 건 잔해를 제거하는 일입니다. 식수와 식량이야 일정 부분 UN에서 지원해주고 있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삼일치 분량밖에 오지 않습니다. 그걸 쪼개 나눠주는 데 많이 부족한 게 현실입니다.”

나는 그가 하는 말을 중대장에게 통역했다. 중대장은 고개를 끄덕였고, 길바닥에 널브러진 마을사람들을 보며 중대장이 물었다.

“주민들이 지낼 데는 있습니까?”

“그것도 문제긴 합니다. 지금은 그냥 자기가 살던 집…, 집이 있었던 곳 근처에서 다들 버티고 있습니다.”

“임시 거처라도 만드는 게 우선일 것 같군요.”

과연 중대장의 말대로, 사람들은 건물이 무너진 콘크리트 잔해 속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폐허가 되어버린 마을 사이사이로 진흙 굽는 연기가 하늘 높이 솟았다. 우리는 담당자를 따라 무너진 성당 앞에 도착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성당은 마을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던 것 같았고, 지진에 무너진 모습은 그만큼이나 더 참혹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신을 믿지요. 중대장님도 신을 믿으시나요?”

담당자가 물었다.

“아뇨, 대신 이 친구는 성당을 다닙니다.”

여기서 이 친구란, 나를 가리키는 것이다.

“처음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어찌 신이 우리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지. 신이 존재하신다면 이런 일을 버리시겠는가, 하고요. 심지어 저희 주교님도 저 성당 밑에 깔려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래도 저는 여러분이 오신 걸 신의 도움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한국이란 나라에서 여러분 같은 분들을 보내주신 게 아니겠습니까? 저희는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중대장과 나는 흠칫 놀라며 물었다.

“혹시 그럼 그 주교님은….”

“아직 저 안에 묻혀 계실 겁니다. 그날은 일요일이라, 아마 새벽부터 미사를 준비하고 계셨을 테지요. 중대장님. 여기 계시다보면, 아마 이런 일을 많이 보시게 될 겁니다. 저희가 아직 사람은커녕 돌도 치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사람이 발견되면, 마을 뒤쪽에 임시로 만든 공동묘지가 있습니다. 거기에 가져다 주시면, 사람들이 수시로 가서 가족이 있는지 확인을 하니까, 그렇게만 해주시면 됩니다.” 하며 담당자는 마을 뒤쪽을 가리켰다. 공동묘지. 그래봤자 커다란 구덩이에 한가득 시체가 쌓여 있는 곳일 것이다. 나는 ‘시체를 가져다 준다’고 통역을 했는데, 아무래도 어쩐지 실수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우리를 성당 근처에 있는 학교로 안내했다. 지진 피해에 학교도 무사하지 못했지만, 바스러진 건물 틈에서 아이들이 수업을 하고 있었다. 안을 들여다보니 한 젊은 여자가 시멘트 벽에 글씨를 써가며 아이들에게 글자를 가르치고 있었다. 담당자가 눈치를 주자, 그녀는 수업을 하다 말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B입니다.”

그녀는 유창한 프랑스어를 발음했는데, 아이티 사람들이 쓰는 이상한 발음보다 훨씬 익숙한 것이라 내가 알아듣기에 편했다.

“반갑습니다. 한국에서 온 재건지원단입니다. 여기도 잔해부터 치우는 게 우선이겠군요.”

“네, 좀 많이 끔찍하지요.”

“그래도 학생들한테는 선생님이 계셔서 다행이네요.”

“아니요, 선생님은 돌아가셨어요. 저는 프랑스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어요. 아이티에 지진이 났다고 해서, 고향으로 돌아온 거예요. 아무도 선생님을 대신하려는 사람이 없길래, 저라도 나서서 아이들을 모으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학교가 있어야, 희망이 있는 게 아니겠어요?”

그녀는 그렇게 이야기했고, 마지막으로 말을 덧붙였다.

“여기는 신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에요. 여러분이 이렇게 오셨으니, 신이 저희의 기도에 응답하신 거겠지요. 감사합니다.”.

“혹시 필요한 게 있다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될 수 있는 대로 도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그녀와 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 부대로 돌아왔다. 중대장은 담당자에게 현지인 인부를 동원할 수 있는지 물었고, 그는 한번 알아보겠다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와 중대장이 한 시간이 걸려 부대로 다시 돌아오는 동안, 우리 사이엔 기나긴 침묵이 흘렀다.

“저… 중대장님. 중대장님은 혹시 이런 거 보신 적 있으십니까?”

그러자 중대장은 입술을 꽉- 닫았다가, 그제서야 대답을 한다.

“없지. 나는 사람 시체도 본 적이 없는데 여긴 완전 지옥이네. 근데 나라고 뭐 해봐서 하는 거냐. 할 줄 아는 게 있으니까 그나마 도와주겠다고 온 거지. 너도 소위라고 벙찌면 안 돼. 내일부터 행보관이랑 애들 데리고 나가서 일해라. 알았지?”

“네.”

나는 중대장의 말에 나도 모르게 힘을 주어 대답해버리고야 말았다. 다음 날부터 나는 중대원들을 데리고 마을로 갔다. 아이티에 파견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장비랄 것도 없었지만, 삽이며 곡이며 장비를 바리바리 챙겨들고 무너진 잔해를 치우러 간 것이다. 중대장은 당분간 마을 근처에 임시 거처를 짓겠다며 중대원 절반을 데리고 가버렸고, 나는 행정보급관과 함께 나머지 절반을 데리고 마을로 갔다.

“소대장님, 이제 막 임관하셨다고요. 하필 이런 데로 끌려오시고, 원래 건축 일을 좀 하셨습니까?”

“아뇨. 불문과 나왔어요. 뭐 아는 게 있나요, 공병학교에서 배운 게 전부지. 전방 나가서 다리 놓고 지뢰나 찾으러 다닐 줄 알았는데, 그래도 써먹을만한 걸 배웠다 싶네요.”

행정보급관은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부대원들에게 잔해를 한 곳에 치우라는 아주 간단한 명령을 내렸다. 부대원들은 모두 하늘색 반팔티 차림으로 저마다 망치며 곡이며 하는 것들을 들고, 무너진 콘크리트를 치워내기 시작했다. 그 중 세 명은, 장전된 총을 들고 혹시나 모를 일에 대비해 경계를 섰다.

나는 그들과 함께 삽을 들고 먼지구덩이 속에서 일을 하다, 옆에서 큰 돌을 쩍쩍 들어 옮기는 상병에게 말을 걸었다.

“몇 살이야?”

“상병 P, 스물 둘입니다.”

그가 그렇게 대답하고 휙 돌아서는 바람에, 나는 잠시 어색하게 서 있어야만 했다. 그러더니 그는 다시 내 쪽을 바라보았는데, 그 사이 커다란 바위를 들고, 저리로 단숨에 가버렸다. 그가 손바닥을 훌훌 털어대며 다시 돌아왔을 때, 나는

“그냥 총 들고 경계 서는 게 차라리 낫나? 힘들지 않니?”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P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이렇게 말했다.

“저는 여기 사람들 도와주러 왔습니다. 소대장님은 아니십니까?”

나는 P 상병이 하는 말에, 그저 옳다고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는데, 그 사이 반대 쪽에서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행보관님! 여기… 여기 좀 와보십쇼!”

다급한 목소리를 좇은 곳에는, 잔해에 깔려 있던 사람의 시체가 있었다. 아이를 끌어안고 있는 어머니. 어머니는 떨어지는 돌무더기로부터, 아이를 온몸으로 보호하고 있었다. 그러나 모정(母情)이 무색할 만큼 딱딱한 콘크리트는 아이의 목숨마저 앗아간 것이다.

“첫날부터 재수가 없고만. 야, 최선임병 누구야. P지? 일로 와라.”

그러면서 행보관은 그 시체를 꺼내 구석으로 옮겼고, 부대에서 가져온 파란 비닐로 둘둘 감싸버렸다. 그리곤 나에게 물었다.

“중대장님이 시체 쌓아 놓는데 따로 있다고 했는데 어딘지 아십니까?”

나는 어제 재건 담당자에게 들었던 대로, 마을 외곽에 있는 공동묘지를 일러주었고, 행보관은 P와 비닐 양 끝을 들고 그 쪽으로 걸어갔다. 그들은 돌아와서도 그저 아무 말 없이 다시 일을 시작했고, 함께 한참이나 땀을 흘리다 보니 어느덧 부대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다음 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우리는 잔해를 치웠다. 사람들을 짓누른 바위틈 사이에서, 시체는 간간이 발견되었다. 어느덧 부대막사는 완공이 되었고, 한국에서 중장비가 도착했다. 그러나 환호도 잠시, 대대장은 고속도로 공사가 시급하다며 우리에겐 소형 굴삭기 하나만을 배정해주었고, 그것마저도 중대장이 임시 거처를 짓는다며 가져가는 바람에 우리는 여전히 맨손으로 땅을 파내야만 했다.

다행히 재건 담당자는 우리에게 현지 인부들을 붙여주었고, 그들은 그나마 일을 할 수 있는 상태의 청년들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하루 일을 하고나면 담당자로부터 세 명이 먹을 수 있는 만큼의 밀가루를 받았다. 비록 그것마저도 대여섯 명이 넘는 가족과 나누어 먹어야만 했지만, 그들은 가족과 함께 살 새 터전 만들 생각에 열정을 다해 우리를 도왔다.

어느 날 우리는 마침 성당 위에 무너진 잔해를 치우고 있었다. 그날도 인부들과 성당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그들이 북쪽, 그리고 우리가 남쪽의 바위들을 솎아내던 중이었다.

“아아… 주교님!”

그때 인부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들은 무릎을 꿇고,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발견한 곳에는 성당의 주교가 누워 있었다. 주교는 한 손엔 십자가를 들고, 한 손으로는 옆에 있는 노인의 어깨를 감싸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렇게 돌무더기가 떨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하느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한 주교의 용기에, 경탄과 울음으로 보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스무 명이나 되는 사람이 그렇게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자, 이쪽에서 삽질을 하고 있던 우리마저도 무언가 경외심 같은 것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때 한 인부가 노인의 얼굴을 보더니, 성당 근처에 있는 학교로 달려갔다. 그는 지난번 학교에서 만났던 B 선생을 데려왔는데, 그녀는 주교와 함께 누워있는 노인을 보자마자 주검을 끌어안았고, 마찬가지로 울음을 터뜨렸다.

“저건 B씨의 아버지입니다. 이 마을에서 30년이 넘도록 아이들을 가르치셨지요. 우리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저 선생님께 글을 배웠습니다.”

그녀가 서 있던 학교는 사실, 그녀의 아버지가 평생 동안이나 아이들을 가르쳤던 장소였다. 그녀는 아마 지진 소식을 듣자마자 아버지를 찾아 귀국을 했을 테고, 아버지의 주검조차 찾지 못한 상황에서 방황하는 아이들을 위해 다시 교실을 열었던 모양이다. 정작 자신에게 가장 중요할 아버지조차 만나지 못한 채, 그녀는 얼마나 슬픔을 참아내며 벽에 글자를 써내려 갔던 것일까. 그녀는, 드디어 만난 아버지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거기에 앉아 한참이나 흐느꼈다.

주교의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퍼지자, 곧 마을 주민들이 몰려 왔다. 그때가 이미 늦은 오후였기 때문에, 우리는 그날 거기까지만 일을 하고 부대로 복귀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우리가 무너진 민가의 잔해를 치우는 사이, 열대여섯 밖에 돼 보이지 않은 여자아이가 다가왔다.

“아저씨. 혹시 먹을 거 좀 있어요?”

소녀는 나에게 물었고 나는 부식으로 나온, 먹다 남은 건빵 한 봉지를 그녀에게 건넸다.

“미안, 이거 밖에 없는데.”

그러나 그녀는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봉지를 휙 채가더니 저 멀리 서 있는 아이들 틈으로 달려갔다. 거기엔 열 살쯤으로 보이는 아이 두 명이 서 있었고, 그중 한 명은 아기를 업고 있었다. 소녀는 그들에게 건빵 봉지를 건넸고, 아이들이 허겁지겁 부스러기를 털어먹는 사이, 손에 쥔 건빵 몇 개를 아기에게 먹였다. 막상 그녀는 건빵을 한두 개나 제대로 삼켰을까. 키가 그들보다 유난히 컸던 탓에, 가녀린 그녀의 팔목이 훨씬 더 비루해보였다.

그러더니 소녀는 다시 내게로 걸어왔고, 내 앞에 서서 두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흙먼지가 뒤덮은 그 도시에서조차, 아이들의 눈은 여전히 투명하고도 깨끗했다.

“아저씨. 혹시 아저씨랑 잘 테니까 먹을 거 좀 더 주시면 안 돼요?”

그 소녀의 말에, 나는 물론 작업을 하던 모두가 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잘 할 수 있어요. 먹을 거만 더 주시면 돼요.”

“어머니는 어디 계시니? 집은 어디야?”

“여기가 우리 집이에요. 지금은 저 옆에 살아요. 아저씨. 동생들이 배고파서 그래요. 저랑 자 주시면 안 돼요?”

나는 당장 부대원들이 가져온 건빵을 모조리 걷어다 그녀의 손에 쥐어주었다. 부대원 중 아무도 선뜻 자기 걸 내놓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어서 일을 마쳐야겠다. 저 아이들에게 집이라도 있었더라면.’ 나는 다시 삽을 들었고, 바닥에 깊숙이 꽂아 바위를 들어 올리려는 찰나, P가 나를 툭툭 건드렸다. 나는 그 사이 P와 나름대로 정이 들었는데 그건 주말마다 함께 성당엘 나갔기 때문이다.

“왜?”

“소대장님. 저기 좀….”

P가 가리킨 곳에선, 아까의 그 소녀와 아이들이 건빵을 마구잡이로 입에 우겨넣고 있었다. 저렇게 배가 고팠구나. 목이 많이 막힐 텐데.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아이들은 건빵을 한 봉지고, 두 봉지고, 세 봉지고 뜯어 모조리 삼켰다. 그러면서도 네 봉지, 다섯 봉지를 뜯어 억지로 밀어 넣었다. 그들이 여섯 번째 봉지를 뜯었을 때, 나는 그 소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왜 여기서 다 먹으려고 하니? 가져가질 않고.”

“누가 보면 다 뺏어가거든요.”

소녀는 그렇게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내게 대답했다. 그러더니 또 다른 건빵 조각을 입에 넣고, 어금니로 아그작아그작 씹어댔다.

작업을 마치고 부대 막사로 복귀한 어느 날,

“오늘도 별일 없었냐?”

중대장이 내게 말했다. 그러나 그렇게 묻는 중대장의 표정은 상당히 긴장돼 보였는데 무슨 일 있으십니까, 하고 물어보았더니,

“오늘 여기 습격이 있었다.” 하고 대답했다.

중대장은 내가 마을에서 잔해를 치우는 동안 주민들이 지낼 임시 거처를 짓고 있었는데, 재건 담당자가 점차 요구 수용인원 수를 마구 늘리더니, 급기야 몇 백 명이 머무를 수 있는 거처를 지어 달라하는 바람에 완공 일정이 자꾸만 늦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도 어쨌거나 이제는 단 이틀만을 남겨두고 있었는데, 하필 UN 구호물품을 이곳으로 옮겨 놓자는 담당자의 말을 들었다가, 그걸 노린 괴한들의 공격을 받은 것이다. 담당자 입장에서야 그들에게 식량이며 물을 뺏기지 않으려는 생각에서였겠지만, 중대장으로서는 미처 준비도 없이 그들과 맞서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럼….”

“그래. 전투가 있었다.”

오십 명쯤이나 되는 사내들은 다행히 무기라곤 돌팔매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는데, 접근하는 그들에게 경고사격을 실시하자 물러가 버리긴 했지만, 중대원 중 한 명이 돌에 맞아 어깨가 부러졌다고 했다. 그리고 보고를 받은 대대장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새끼들, 지들끼리 돕지는 못할망정 서로 뺏겠다고 지랄이야.”

다음날 대대장은 중대장에게 임시 거처 경계를 강화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덕분에 나와 행보관은 전보다 다섯 명이나 적은 인원을 데리고 작업을 나서야만 했다. 물론 속도는 전보다 더뎌지게 되었다.

일요일이면 나는 P를 비롯해 성당에 다녔다는 부대원들을 데리고, 마을 한가운데 무너져버린 성당엘 갔다. 물론 아직 건물이 들어서진 않았지만 우리와 현지 인부들이 잔해를 깨끗이 치워낸 덕에, 마치 잘라낸 나무둥치들 마냥 성당 벽이 십자가 모양으로 쪼르르 남아 있었다. 바닥은 그래도 꽤나 깨끗한 편이었다.

미사는 프랑스에서 파견되었다는 신부가 진행을 하였고, 우리는 벽도, 천장도, 제단도 없는 성당에서 그곳 주민들과 함께 기도를 올렸다.

그날 미사를 마치고 돌아갔을 때, 부대는 다시 한 번 난리가 나 있었다. 중대장을 습격했던 그 놈들이, 우리 의무대를 공격했다는 것이다. 의무대는 부대 막사 근처가 아니라 마을 중간에 위치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경계병이 적은 편이었는데, 그들이 임시 거처 습격에 실패하자 보복성 공격을 한 것으로 추측되었다. 부상자는 없었지만, 그들이 의무대에 불을 지르는 바람에 상당한 양의 의약품이 소실되었다.

“그 새끼들 도대체 어디 숨은 거야?”

“대대장님. 그냥 아이티 군에다 소탕 요청하면 안 됩니까?”

“아이티 군이라고 별 수 있겠냐. 지금 군인들이 나서서 총 들고 약탈하고 다닌다는데. 경계 강화하는 수밖에는 없다. 중대장, 너네 몇 명 더 경계로 돌릴 수 있어?”

“지금 임시 거처 경계하는 인원만 해도 10명이 넘는데, 전체적으로 경계병 다 돌리면 중대 절반 이상이 경계임무에 투입됩니다. 그럼 지금 마을재건 사업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도 중장비라도 주시면….”

“중장비 안 된다고 했잖아. 고속도로 뚫어야지. 지금 얘네 정부가 뭐라는 지 알아? 무조건 고속도로가 우선이래. 그래야 수도에 보급품이 간다는 거야. 하여간 이 새끼들은, 나라에선 길이나 깔라 그러고 범죄자 새끼들은 기어 들어와서 지들 지어준 집이나 부수고.”

“그럼 어떡하면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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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경제신문  

<2017건설문학상> 시 부문 최우수작

기사입력 2017-11-13 08:00:14.


<최우수작>

제비꽃 인력소

한주영

톱밥을 집어 던지는 목장갑에

잠시 온기가 돋았다가 달아나기를 반복한다

제비꽃 인력사무소

수많은 이름들 중에 왜 하필 제비꽃일까

물에 잘 섞이지 않는 기한 지난 시멘트 반죽처럼

고개를 갸웃거리는 인부들이 불 앞에 모여 있다

이곳에서 金 차장이라 통하는 金이

불쏘시개로 드럼통을 쑤시자

부서진 삭정이들 사이에 박혀 있는 못들이

불을 더 세게 쥐며 휜다

쑤시는 곳이 많아도 파스 한 장으로 봉합한 어깨에

화끈거리는 새소리가 조잘조잘 앉았다가 가고

金은 코에 묻은 검댕을 제 검지로 연신 문지르며

인부수첩을 넘긴다

동이 틀 듯 긴장한 가건물 사이의 허공이

쓴 구름에 휩싸여 흐리게 빛을 풀고

때마침 수첩 페이지를 넘기자 바스락거리던 이름들

종이 끝이 나무였을 적을 기억하려

습기를 그러모아 문드러진다

그늘이 깊던 인부들의 낯빛 위로는 새벽달이 먼저 기우는 것

틈이 되는 낮은 곳마다 제 발을 들여놓는 제비꽃이

결국에는 비상하는 모습으로 꽃을 틔우는 것처럼

金이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맞춰

머쓱한 얼굴로 수첩 속으로 휘갈겨 쓰인 인부들의 하루는

꾹꾹 눌러 씨앗처럼 눌러 적힌다

그간 이 수첩의 두께가 빌딩을 세우고 집을 지었다

나눠 피운 담배 연기 속에도

오늘과 같은 여러 날의 새벽과 함께

먹줄을 튕기던 벽이 있어

비를 머금고 있던 구름이 천천히 물러나

곧 동이 튼다

그제야 간판 불을 내려오는 제비꽃 인력사무소

자줏빛 꽃자리가 굽은 등처럼 휘는 모습이

金의 동공 위로 차오르고 있다

 

 

< 심사평>

 

고단한 노동의 현장을 묘사하는 생생한 감각

건설과 詩의 공통된 지향점은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초와 설계가 부실하면 건물이나 시도 흔들리고 쉬이 무너져 내리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건설문학상’ 시 부문의 심사위원들은 작품의 시적 내면화가 얼마나 섬세하고 건실하게 이뤄졌는가에 주목했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들은 각각의 개성적 미학과 탁월한 장점들을 지녔다. 그럼에도 <허공에 집짓기>는 매혹적이고 명징한 수사의 장점이 그 한계로 작용했고, <근육의 이동건축학 개론>은 선 굵은 남성적 사유와 시적 긴장에도 불구하고 묘사를 앞선 자의식 과잉이 아쉬웠다. 결국 <수평맞추기>와 <제비꽃 인력소>가 최우수의 자리를 겨루게 되었다. 두 심사위원은 장고 끝에 <제비꽃 인력소>의 손을 들어주었다. <수평맞추기>는 벽돌의 수평에 대한 사유가 탄탄했지만 초반부 흡인력을 끝까지 유지시키지 못한 점이 걸렸다. 최우수작인 <제비꽃 인력소>는 인력소 金씨의 ‘수첩’에서 ‘제비꽃’으로 옮아가는 관조와 감성이 시 본연의 서정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 돋보였다. 모든 수상자들에게 깊은 축하의 마음을 전하며, 아쉽게 선정되지 못한 응모자들에게도 응원과 격려의 마음을 전한다.

- 심사위원 김병호, 윤성택

건설경제신문  

<2017건설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작

기사입력 2017-11-13 15:07:48.

‘알로에와 탁상시계’ 

 

장미화

집에 특별한 물건이 두 개 있다. 두 개 다 선물로 받았다. 새 것이 아니다. 주인들과 함께한 세월만큼이나 따뜻한 마음도 한가득 품고 우리에게 왔다.

하나는 낡은 탁상시계이고 다른 하나는 알로에 화분이다. 탁상시계는 중요한 기능인 알람도 안 되는 20-30년이나 됨직한 오래된 모델이다. 이 시계의 원래 주인은 단칸방에 홀로 사시는 연세 많으신 동네 할머니다. 보일러가 고장 나거나 집에 문제가 생기면 가게에 찾아오시는 단골손님이다. 할머니 집일은 어지간한 건 무료로 해준다. 기껏해야 재료비가 전부다. 남편과 내가 외출을 하고 아들이 가게를 보고 있던 어느 날, 할머니가 오셔서 이사를 가신다고 하셨단다. 당신이 평소 아끼던 시계인데 건전지를 새로 갈아 끼우면 꽤 쓸 만할 거라며 주고 가셨다고 한다. 가슴 먹먹해지는 선물이다.

다른 하나인 알로에 화분 주인은 동네 모텔 사장님이시다. 모텔 건물에 하자가 생기거나 냉난방이 안 될 때 연락이 종종 왔다. 손님 묵는 방에 탈이 나면 오밤중이나 새벽도 없이 전화가 온다. 남편은 자다가도 기꺼이 출장 가서 해결주고 온다. 한 번은 하수구를 뚫은 후 남편이 피부병으로 고생한 적이 있다. 남편의 팔에 붉은 발진을 본 사장님이 피부병에 알로에를 바르면 좋다고 직접 키우시던 화분을 통째로 주신 것이다. 이렇게 여운 깊은 선물들을 받을 수 있는 건 남편이 건축설비업과 인연을 맺은 덕이라.

남편은 IMF 후 다니는 회사를 그만두고 관광회사를 차렸다. 하지만 경기가 워낙 안 좋았던 시기라 얼마 가지 않아 빚만 잔뜩 진 채 문을 닫아야 했다.

새로운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남편이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일이 보일러 건축설비이다. 난생 처음 하는 육체일이라 파김치가 되어 들어오는 날이 잦았다. 여기저기 붙여진 흰 파스로 옷을 만들었다. 일을 몇 달 해본 남편은 기술자가 되면 전망이 괜찮을 것 같다고 했다. 본격적으로 기술도 배우고 자격증도 3개나 땄다. 기술 배우는 동안은 수입이 적어 생활이 힘들었다. 그래도 희망이 있었기에 견딜 만했다.

일을 시작한 지 5년째 되던 여름. 그날은 둘째 아들 생일이었다. 남편은 일을 빨리 마치고 오겠다며 집을 나섰다. 모처럼 온 가족이 외식할 계획에 아이들은 한껏 들떠 저녁시간만 기다렸다. 한데 퇴근 시간 무렵 낯선 전화가 왔다. 남편이 구급차에 실려 가고 있다고 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대고 맥이 풀렸다. 고객 집 2층 난간에서 집수리를 하던 중 말벌들에게 습격을 당해 땅바닥으로 떨어졌다고 했다. 남편은 두 발의 뼈들이 다 으스러지는 큰 사고를 당했다. 눈앞이 캄캄했다. 4개월 동안 병원에 장기 입원해 있어야 했다. 퇴원 후에도 2년 정도는 정상 생활을 할 수 없다고 했다. 다시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안개 속에 갇혔다. 아직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남편의 대소변을 가리며 병간호를 했다. 금방이라도 앞으로 고꾸라질 듯 버거운 시간들이었다. 건축설비 길로 들어선 남편을 말리지 못한 게 후회로 밀려왔다.

남편이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대학 친구 영향이 컸다. 그 친구는 외국계 항공사에 다니다 IMF 때 회사가 철수하는 바람에 일자리를 잃고, 보일러 설비업에 먼저 발을 담그고 있었다. 한데 친구는 몇 년 하지도 않고 이 일을 접었다. 공무원인 아내가 작업이 너무 험하다며 급구 말려 다른 일자리를 찾았다고 했다.

남편이 어느 정도 회복되어 다시 일을 시작했다. 나았다 해도 아직 두 발에 철심이 각 3개씩이나 박힌 채다. 쪼그려 앉거나 무거운 것을 들어도 안 된다. 마음 같아선 다른 일을 찾아보라고 적극적으로 말리고 싶었다. 그러지 못했다. 이미 설비가게도 차린 후였고 공구들 마련하는 데 꽤나 많은 돈이 투자 되어 정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 역시 남편이 퇴원 한 후 몇 달 지나지 않아 이름도 생소한 난치병인 메니에르병을 얻었다. 수시로 심한 어지럼증이 찾아와 일상생활조차 힘들었다. 직장을 다니는 건 언감생심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었다. 다른 일을 찾아보라는 말은 늘 입 안에서만 아우성치고 있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 온 남편은 매일 아픈 발에 약을 바르고 마사지를 해야 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노라면 무력감과 초조함이 극에 달해 하루하루가 바늘방석이다.

다행히 시간이 갈수록 약 바르는 횟수가 줄었다. 건축설비 일도 차츰 자리를 잡아 갔다. 남편은 일할 때 심하다 싶을 정도로 꼼꼼하고 정확하다. 그래서인지 단골손님도 꽤나 많다. 아침마다 일 나가는 남편의 등을 보며 간절히 기도 한다. “오늘 하루도 무탈하게 해 주십시오” 라고.

염려와 기도가 깃든 건축설비 일은 우리 가족의 밥이 되고 옷이 되고 보금자리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학비가 되었다. 아이들이 커 가면서 아빠는 4년제 대학까지 나와서 왜 이런 일을 하시냐고 가끔 묻는다. 그럴 때면 너희 아버지는 집을 고치는 의사이시다. 비록 사람들이 기피하는 3D 직업에 속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미국이나 호주 같은 선진국에서는 배관공이나 주택 수리공의 임금이 높은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요즘은 이른 나이에 명예 퇴직하거나, 평균 수명이 길어 은퇴 후에 제2의 직업을 찾아야 하는 사람이 많다. 아빠는 그 일을 일찍 찾아 은퇴 걱정이 없다고 말해준다.

한때는 선택의 여지 없이 계속해야만 했던 건축설비지만, 요즘은 평생 직업으로 이만큼 괜찮은 일도 드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안전사고에 대한 마음의 짐과는 동거가 필수다. 산 좋고 물 좋고 정자 좋은 데 없듯이 마땅히 감내해야 하는 면이다.

새 건전지를 갈아 끼운 탁상시계는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집 안방에서 ‘재깍 재깍’ 맡은 소임을 완수하느라 여념이 없다. 알로에는 얼마나 번식력이 좋고 잘 자라는지 지인들에게 분양 해주고도 화분이 세 개로 늘어났다. 가끔 남편의 피부병 치료제로, 나의 미용 팩으로도 아주 유용하게 쓰인다.

탁상시계와 알로에의 숨결은 훈훈한 온기가 되어 일의 보람으로 다가온다. 우리 가족에게 건축설비는 삶의 의미와 희망을 지닌 옹이 하나 박힌 버팀목이다.

 

< 심사평>

 

꾸며진 세련된 언어보다

순박한 문체가 주는 울림

‘건설문학상’ 응모작들은 특색이 있었다. 소재들이 구체적이어서 그 결과가 궁금해서라도 끝까지 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작품들은 나름의 가슴 뭉클한 감동을 주었다. 이것은 구체성의 승리다. 물론 수필이란 수기가 아니다. 수기가 사실의 충격으로 족하다면 수필은 사실을 넘어서는 문학화가 필수다. 문학화란 형상화를 통한 사실의 새로운 해석이다. 새로운 시선의 열림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불굴의 의지로 난관을 극복해 나가는 해외 건설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는 그 자체로 인간 승리의 서사시다, 절제된 필체의 ‘그리고 인샬라!’를 뽑았다.

김현숙의 ‘발령’과 장미화의 ‘알로에와 탁상시계’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어떤 때는 세련된 문체보다 꾸밈 없는 순박한 문체가 더 큰 감동을 줄 때도 있다. 이것이 ‘알로에 …’의 손을 들어준 이유다. 김영수의 ‘직영반장의 첫 집’을 뽑지 못한 것은 너무나 아쉬웠다. 학생 작품을 뽑으면서 그들의 시대에 변할 수필의 미래를 미리 보는 것 같아 여간 흐뭇한 것이 아니었다. 모두의 건투를 빈다.

-심사위원 최순희, 김종완

건설경제신문  

<2017건설문학상> 동화 부문 당선작

기사입력 2017-11-13 15:08:16.

‘땅굴 박사’

 

김재은

 

“할아버지, 왜 쓸데없이 굴을 자꾸 파죠?”

“우리 집에 흙이 떨어져서 귀찮아 죽겠어요. 빨리 와서 치워 줘요.”

너구리와 오소리가 입에 거품을 물고 따졌어요. 할아버지 두더지는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어요. 요즘 들어 이웃에 사는 동물들이 두더지만 보면 얼굴을 찌푸리고 피해 갔어요. 너구리와 오소리처럼 깐깐한 동물들은 마구 호통을 쳤구요.

‘이제는 나도 아무 쓸모가 없어졌구나!’ 할아버지 두더지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어요.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거든요. 두더지가 땅굴을 파고 있으면 여러 동물들이 힘껏 응원해주었어요.

“감사합니다. 덕분에 땅속을 다니기가 편해졌어요.”

“어쩌면 굴을 그렇게 잘 파죠? 나도 배우고 싶어요.”

그런 말을 들으면 어깨가 으쓱해졌어요. 조금 쑥스럽긴 해도 기분은 정말 좋았어요. 땅굴 파는 일이 힘들었지만 칭찬 몇 마디를 들으면 기운이 불끈 솟아났어요. 몸은 고단하더라도 이웃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생쥐나 들쥐처럼 작은 동물들이 집을 짓고 싶어도 굴을 못 파서 쩔쩔 매면 두더지가 얼른 나섰어요.

“저리 비켜요. 내가 파 줄 테니.”

두더지는 앞발에서 피가 나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땅을 팠어요. 생쥐는 두더지 앞발에 붕대를 감아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어요.

“땅파기 달인이네요. 최고예요, 최고!”

두더지가 비지땀을 흘리며 일한 끝에 굴을 다 팠어요. 들쥐가 들어가서 둘러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어요.

“너무 좋아요. 이렇게 멋진 굴은 처음 봐요!”

그랬는데 이제는 아니에요. 햇빛이 안 드는 땅굴 속으로도 세월은 어김없이 흘러갔어요. 기운 팔팔하던 두더지가 어느새 할아버지가 되고 말았어요. 힘이 달리고 아픈 곳이 늘어났어요. 땅굴 파는 실력도 예전 같지 않았구요.

그 정답던 동물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없고, 지금은 까칠한 동물들만 남았어요. 자기가 조금만 불편해도 큰소리로 따졌어요. 이웃을 위해 손톱만큼도 양보하지 않았어요.

할아버지 두더지 눈앞에 지나간 날들이 영화처럼 펼쳐졌어요. 혼자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하고 빙그레 웃기도 하면서 옛날 생각에 잠겨 있었어요.

“아니 여기서 뭐해요? 우리 굴 앞에서 어정거리지 말고 썩 꺼져요.”

느닷없이 누가 소리를 질러서 돌아보니 아줌마 산토끼였어요. 아줌마 산토끼 뒤에서 아기 산토끼들이 혀를 쏙 내밀고 ‘메롱’하며 놀렸어요.

할아버지 두더지는 고개를 숙이고 자기 굴 쪽으로 느릿느릿 걸어 갔어요. 늘 힘이 되어주던 할머니 두더지가 작년에 세상을 떠나서 할아버지 두더지는 너무나 외로웠어요.

굴은 언제나 텅 비어 있어요. 그 안은 할아버지 한숨으로 가득 채워졌어요.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심심하면 누워 보기도 하고, 일어나서 뱅뱅 맴돌기도 하지만, 가슴 속에 숨어든 외로움이 빠져 나갈 줄을 몰랐어요.

두더지는 바람이라도 쐬려고 굴 밖으로 나갔어요. 한밤중이라 아무도 얼씬거리지 않았어요. 두더지는 자신이 파 놓은 굴을 따라 땅 위로 올라갔어요. 그믐날 밤이라 그런지 땅 위도 어두컴컴했어요. 늦가을답게 차가운 바람이 휙 불어왔지만 두더지는 추운 줄도 몰랐어요. 마른 나뭇잎과 썩은 도토리 냄새가 코끝에 와 닿았어요. 두더지는 코를 킁킁거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어요. 그때 어디선가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어요.

“으아악- 살려줘요!”

두더지는 그 소리를 듣자 온몸의 털이 곤두섰어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어요. 요란한 발자국 소리가 가까이 다가왔어요. 두더지는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발자국 소리로 누구인지 대충 짐작했어요.

“이제 보니 아기 다람쥐구나. 누가 널 쫓아오는 게냐?”

“살려주세요! 살쾡이가 잡아먹으려고 쫓아와요.”

할아버지 두더지는 냉큼 아기 다람쥐 손을 잡고 땅속으로 들어갔어요. 땅 속은 엄마 품처럼 한결 포근했어요. 싸늘했던 아기 다람쥐 콧등이 금세 누그러졌어요. 두더지는 앞발로 흙을 파서 굴 문을 빈틈없이 막았어요. 발을 얼마나 빨리 놀리는지 번개 같았어요. 두더지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솟았어요. 아기 다람쥐는 비로소 떨리는 가슴을 가라앉히고 한숨을 내쉬었어요.

“할아버지 덕분에 살았어요. 감사합니다!”

“이 깊은 밤에 어딜 갔다 오는 게냐?”

“엄마 몰래 도토리와 알밤을 주워 먹으려고 나갔어요.”

“허어, 그러다가 살쾡이한테 잡아먹히면 어쩌려고 그랬느냐?”

“달리기는 자신 있었는데 살쾡이가 그렇게 빠른 줄은 몰랐어요.”

아기 다람쥐는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씩 웃었어요.

“할아버지! 땅을 정말 잘 파시네요. 깜짝 놀랐어요.”

아기 다람쥐가 칭찬하자 굽었던 할아버지 두더지 허리가 약간은 펴졌어요.

“허허, 나도 젊었을 때는 일류 기술자였지. 집 짓고 땅굴 파는 실력은 누구한테도 지지 않았어. 그런데 나이를 먹고 나니 왠지 자신감이 없어지는구나.”

두더지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을 겨를도 없이 아기 다람쥐 손을 잡고 굴 속을 걸어갔어요. 저만큼 걸어가서 땅 밖으로 내보낼 참이었어요. 거기서 살쾡이 몰래 나무 위로 올려 보내면 안심할 수 있었어요. 두더지와 아기 다람쥐가 정답게 손을 잡고 걸어가는데 저 앞에 큰 동물이 나타났어요.

스윽- 스윽- 기운차게 땅을 미는 소리를 들으니 왕뱀이 분명했어요. 두더지는 얼른 아기 다람쥐 손을 잡고 다른 굴로 달아났어요. 다다다다∼

왕뱀은 발자국 소리를 듣고 눈치를 챘어요.

“젠장, 굴이 워낙 넓으니까 딱 마주치기도 전에 달아나 버리네. 누가 이렇게 굴을 크게 만들었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구먼. 에이 재수 없어! 퇘퇘!”

왕뱀이 침 뱉는 소리를 듣고 아기 다람쥐가 킥킥거리며 웃었어요.

“할아버지, 신경 쓰지 마세요. 지금도 1등이에요. 굴 파는 솜씨 말이에요.”

왕뱀이 아기 다람쥐 웃음소리를 듣더니 입맛을 다셨어요.

“흐음, 저기에 숨어 있구나. 한 입에 집어 삼켜야지.”

왕뱀은 두 가닥 혀를 날름거리며 이쪽으로 부리나케 기어왔어요. 두더지가 낌새를 알아차리고 허둥지둥 뛰었어요. 아기 다람쥐도 헐레벌떡 뛰었어요. 굴이 사방으로 뚫려 있어서 달아나기는 쉬웠어요. 홍수가 나거나 급한 일이 있을 때를 대비해서 두더지가 미리 굴을 많이 파 놓았던 거예요. 오늘 같은 경우에는 정말 안성맞춤이었어요.

쉬지 않고 뛰느라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멈출 수가 없었어요. 콩콩 뛰는 아기 다람쥐 심장 소리가 손목에서 어렴풋이 느껴졌거든요.

얼마나 뛰었을까요?  왕뱀 소리가 잠잠해졌어요. 두더지는 털썩 주저앉아서 가뿐 숨결을 달랬어요. 가래를 ‘카악’하고 뱉어내기도 했구요. 두더지 할아버지가 힘들어 하는데도 아기 다람쥐는 장난스럽게 생글생글 웃었어요.

“꼭 술래잡기 한 거 같아요. 또 하고 싶어요. 헤헤.”

“예끼, 누구 숨 넘어 가는 거 보려고 그러냐? 나는 힘들어 죽겠구먼.”

그제야 아기 다람쥐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할아버지 두더지 등을 톡톡 두드려 주었어요.

“땅굴 박사님, 짱이에요!”

두더지가 아기 다람쥐 말을 듣고 환하게 웃었어요. 아기 다람쥐는 땅 위로 나가면서도 할아버지 두더지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어요. 쪼글쪼글 주름진 두더지 얼굴에 웃음이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어요. 

 

 

< 심사평>

 

땅꿀파는 두더지에 빗대

‘건설 의미’ 새롭게 조명

후보작 중 ‘땅굴 박사’를 당선작으로 선정하는 데는 그다지 큰 고민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 작품은 여러 가지로 장점이 많다. 주인공 두더지와 그가 목숨을 구해주는 아기다람쥐, 다람쥐를 노리는 살쾡이와 왕뱀 등 캐릭터들이 다양하다. 그 다양한 캐릭터들이 자기 역할을 깔끔하게 수행하면서 사건은 짜임새 있게 진행되고, 깔끔하면서 부드러운 문장력도 좋다.

무엇보다도 독특한 점은 건설의 의미를 두더지와 연결시킴으로써 역설적으로 강조한다는 것이다. 땅 위로 올리는 것이 아니라 땅 속으로 파고드는 건설은, 건설이라는 일의 뒷면을 새롭게 조명한다. ‘쓸데없고’ ‘귀찮고’ ‘불편한’ 두더지의 건설을 주변 거주민들은 못마땅해 하지만 연약한 다람쥐의 생명을 구하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건설을 둘러싼 여건들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볼 것을 권하는 듯하다.

초등부와 중ㆍ고등부에서는 소재와 모티프, 이야기 전개 방식에 신선한 시각이 보이지 않아 안타깝게 당선작을 가릴 수 없었음을 덧붙인다.

 

-심사위원 김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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