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픽션 이렇게 쓴다]
[1] 조 카터의 '엄마, 엄마, 엄마'
겨울 오후 일흔다섯 살 친정엄마가 애 둘 한꺼번에 목욕시키느라 정신없는 막내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음 달 첫 주말에 다녀갈 수 있니? 그때쯤이 '마무리'하기에 적당할 것 같아." '마무리'할 일은 이불 빨래나 인테리어 공사가 아니었다. 논픽션 신간 '엄마 엄마 엄마'(뜰)는 20년간 파킨슨병을 앓은 어머니가 중년의 딸에게 "자살할 테니 곁에 있어달라"고 부탁하는 대목에서 시작된다. 구구한 서론 없이 생사가 갈리는 '중대 결심'의 순간으로 곧장 치고 들어가는 것이다. 저자 조 피츠제럴드 카터(Carter·50)는 엄마의 자살 얘기를 글로 썼다.
엄마의 삶… 부잣집 딸로 태어나 남편 외도·파킨슨병 고통
- ▲ 파킨슨병을 앓는 75세의 엄마는 병이 깊어질수록 육체적 우아함을 지키고 싶어했다. 늙은 엄마가 책상 위에 올려놓은, 젊은 시절 파리에서 찍은 흑백사진이 딸을 울렸다. /조 피츠제럴드 카터 제공
카터의 어머니 마거릿(1924~2001)은 미국 동부의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다. 재클린 케네디를 닮은 미인에 심지어 공부도 잘해 명문 컬럼비아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같은 학교 로스쿨에 다니는 두 살 연하 남자와 결혼해 파리에서 살다 워싱턴에 정착했다. 남편은 국무부 공무원·로펌 경영진을 거쳐 대기업 임원이 됐다.
그러나 환한 숲에도 남 모르는 서늘한 그늘이 있는 법. 양친이 이혼해 조부모 손에 큰 마거릿은 결혼 후에도 외로웠다. 남편은 요리와 재즈에 일가견이 있는 멋쟁이였다. 그는 다른 미인들과 줄곧 연애를 했고, 집에 오면 불 같은 성미로 딸들을 질리게 했다. 큰딸은 부지깽이를 들고 아버지에게 덤벼들 만큼 반항적이었다. 둘째딸은 부모 성에 차지 않는 결혼을 했다.
마거릿은 50대 중반에 파킨슨병을 앓기 시작했다. 그녀는 종종 딸에게 "간병인이 아니라 '부모'가 필요하다"고 투정했다. 마거릿은 수십년에 걸쳐 자전소설을 썼지만 그리 대단한 작품이 아니었다. 마거릿이 자살을 결심한 것은 남편과 사별하고 7년간 혼자 살다가 파킨슨병으로 운동장애와 실어증에 이어 초기 치매까지 나타났을 때였다.
마거릿은 치사량의 진통제를 처방받는 현장에 딸을 데리고 갔다. 안락사 옹호 단체에서 헬륨가스를 이용한 자살 요령도 배웠다. 2001년 여름밤 마거릿은 숨을 거뒀다. 약물과 헬륨가스 대신 스스로 곡기를 끊은 지 12일 만이었다. 아이처럼 조그맣게 쪼그라든 엄마가 혼곤히 잠든 모습을 보며 딸 카터는 마거릿의 해묵은 일기를 꺼내 읽었다. 그렇게 모녀는 헤어졌다.
딸의 삶… 자살 꿈꾸는 엄마 지켜보며 '타인에 대한 동정' 배워
- ▲ 조 카터는“내 책은 한줄 한 줄 모두‘팩트(fact)’”라면서“꾸며낸 얘기가 아닌 솔직한 이야기가 독자를 움직인 다”고 했다. /뜰 제공
지은이 카터는 컬럼비아대학원을 졸업하고 뉴욕에서 기자로 뛰다가 변호사와 결혼했다. 부모에게 인정받는 딸이었지만 말 못할 고민이 많았다. 어린 시절 카터는 개성 강한 식구들이 날카롭게 부딪치는 식탁에서 숨죽이고 밥을 먹었다. 10대에는 거식증, 20대엔 황폐한 연애, 30대에는 문학적 좌절과 육아 부담에 신음했다. 엄마는 툭하면 전화를 걸어 병마와 자살을 시시콜콜 상의했다. 정신적 고문이었다.
샌프란시스코 자택에서 전화를 받은 그녀는 "나는 독자에게 묻고 싶은 게 있어 이 책을 썼다"고 했다.
어머니의 '자살 결심'을 두고 자매들끼리도 의견이 달랐다. 카터는 죽어가는 어머니에게 울컥해서 대들었다. "엄마는 왜 엄마 생각만 해? 엄마가 죽겠다고 할 때 듣는 사람 마음이 어떤지 왜 안 물어봐?" 어머니가 한 수 위였다. "나는 좋아서 죽는 줄 아니?"
카터는 "사람들은 자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연사하는 것이 올바로 죽는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친정엄마의 마지막을 지켜보면서 죽음의 방식보다 '어떻게 그런 방식에 이르렀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엄마를 계속 말렸지만 마지막엔 이해하고 존중했다"고 했다.
작별이 그녀에게 무엇을 가르쳤을까. 카터는 침묵하다 간결하게 답했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동정, 그리고 우리 또한 사라질 존재라는 점."
카터는 어머니 사후 3년 후인 2004년 책을 쓰기 시작했다. 카터는 "첫 줄부터 철저하게 정직해지기로 나 자신과 약속했다"고 했다. 그녀는 생의 가장 어렵고 어두운 순간을 가차 없이 정밀묘사한 책으로 지난해 뉴욕타임스지의 갈채를 받았다. 원제는 '완벽하지 않은 결말(Imperfect Endings)'.
카터는 언젠가 마거릿에게 농반진반 이렇게 말했다. "엄마, 약속 하나만 해줘. 영원히 내 곁을 떠나기 전에 어딘가 깃털 하나만 떨어뜨리고 가줘. 그럼 내가 오래오래 손을 흔들어줄게." 장례를 치른 카터가 친정집 근처를 산책할 때 하얀 왜가리가 날개를 쭉 펴고 날아올랐다. 1만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