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부산 가톨릭 문예 작품 공모

부 문

시, 시조, 동시(3편 이상),

수필, 콩트, 신앙 체험, 동화(20매 내외),

소설(70매 내외) - 200자 원고지 기준

시 상

최우수상 1명 - 100만원

우수상 2명 - 30만원

가작 및 입선 0명 - 부상

마 감11월 6일(일)

접 수 (613-816) 부산 수영구 남천1동 70-4 천주교부산교구 홍보전산실

이 메 일mun2011@catp.kr

유의사항 이름(세례명), 본당, 전화번호, 주소, 응모부문 반드시 기입

문 의051-629-8750(홍보전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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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제18회 가톨릭문예 수필 우수상 수상작 (자신에게 강해지기 위하여 - 고창표 안셀모)
 
*  2008년 제20회 부산가톨릭문예공모전 가작:

불만을 긁다 
       최윤희
 

삶은 간단한 몇 가지를 요구한다
나는 가난조차 벅차
뭔가 다른 꿈을 꾸지만
소화 안 되는 알갱이들이 몰려나와
늘 등이 가렵다
나 하나쯤 내 것인 줄 알았으나
세상에서 가장 먼 곳이 등 뒤에 있었음을
제아무리 잊었다 해도
불만은 몹시 꿈틀대고
손쓸 수 없는 오지
닿을 수 없는 한 뼘 뒤
손톱을 세워 빡 빡 긁고 싶다
검은 피. 활화산처럼 터지도록
* 2003년 제15회 부산가톨릭문예공모전 소설 가작:(http://mylib.kll.co.kr/gen/main_0602.html?id=won510&kkk=4)

박 신부의 편지

                  김 창 원(안토니오)

1. 새벽 등산길

하루의 건강을 여는 새벽 등산 길, 흙을 밟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푸른 숲 속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여러 사람을 만나 반가운 인사를 나누는 기쁨도 있다. 그분들을 하루도 안보면 안부가 궁금해진다.

진돗개를 끌고 오는 견 박사! 개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있다하여 개 박사로 통했으나 품위를 생각해서 견 박사라고 부르고 있다. 부인은 가톨릭 신자이다. 견 박사는 직장의 퇴근 시간이 늦어서 신앙 생활을 못하고 있다는 변명을 한다.

공구박사, 공구 상을 하는 부인인데 일요일이면 남편을 따라 백두대간을 종주 하는 등산 멤버이기도 하다. 성당에 가자고 하면 발에 역마살이 끼어서 일요일이면 산신령을 만나러 가야 한다고 엄살을 떤다. 초하루 보름에는 불공을 드리러 절에 가는 알뜰 주부다.

보험박사, 보험회사 중견간부다. 지체장애아들을 둔 마음이 아픈 어머니로 성당 교리 반에 나가고 있는 예비신자다.

약 박사, 약국을 경영하는 약사인데 약국에는 각종 영양제를 비롯하여 보약, 드링크제 등 좋은 약이 많을 터인데, 새벽 등산을 거르는 날이 없다. 약사인 그가 등산만큼 좋은 보약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고 보면 도심의 야산이야말로 시멘트벽에 가로막혀 날로 심각한 공해에 시달리고 있는 도시민에게는 우리 집 뒤뜰 같은 포근함이 있고 산삼 녹용과도 같은 보약을 제공해 주는 보고라 하겠다.

하루종일 태양 에너지를 받아 뿜어 나오는 숲 속의 자양분은 요즈음 유행하고 있는 황토방에 비길 수 있겠는가? 아침 등산은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루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곳이라 하겠다.

체육공원에는 이른 새벽부터 저마다 익힌 체조로 체력단련을 하고 있으며 배드민턴 장에는 아침공기를 가르며 셔틀콕이 날고 있다. 또한 셋만 모이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로 떠들썩하다. 다들 일가견이 있는 박사들이다.

알 박사, 50대 후반이지만 젊은이 못지 않은 단단한 체구로 하루도 산을 거르는 날이 없다. 젊은 시절에는 택시기사로, 건축회사 직원으로, 지금은 규모는 작으나 알뜰하게 꾸려가고 있는 자영업체의 경영주다. 아는 것이 많다고 하여 붙은 별명인데 주식 시세에서 인생문제에 이르기까지 척척박사다. 자연과 호흡을 같이 하는 새벽등산길에도 특종뉴스를 놓칠 수 없다며 소형라디오의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다.

박 신부, 유일하게 박사가 아닌 박 신부로 통하기도 한다. 마른 체구에 희끗희끗한 머리, 단정한 용모, 박 신부는 예순 아홉의 나이로는 보이지 않는 배드민턴 멤버 중 연장자이며 독실한 천주교 신자다. 배드민턴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친절한 강사가 되어주기도 하고, 고민이 있는 사람에게는 인생상담자의 역할도 마다하지 안는다. 그래서 그는 배드민턴 멤버의 회장이며 가까운 이들은 그를 박 신부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박 신부도 알 박사를 만나기만 하면 슬그머니 자리를 피한다. 말대꾸를 했다가는 그의 해박한 지식으로 끝없는 인생 상담에 휘말리기 때문이다. 공자, 맹자, 석가, 예수 등 종교 분야에는 더욱 열성적이다. 끝없는 진리의 세계, 깨달음을 지향하는 그의 노력은 눈물겹도록 진지하다.

박 회장이 알 박사를 처음 알았을 때는 그에게 가톨릭 신앙을 심어주고 싶어서 새벽마다 운동은 제쳐두고 복음전파에 전력 투구해 보았으나 결과는 논쟁으로 끝이 나고 마는 것이었다. 알 박사를 통해 얻은 것은 ‘다양한 지식은 병이다.’라는 말로 박 회장도 손을 들고 말았다. 박 회장은 그를 대하다보면 특히 종교 문제에 있어서는 먹구름이 태양을 가리우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교회나 사찰, 성직자의 비리에서 출발하여 의심을 가지고 신앙을 난도질하니 알 박사의 논리에는 머리가 아프고 답답하여 끝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자기 주장이 강하고 독선적인 말로 멤버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기도 하지만 박 회장만은 박 신부님, 하고 따르니 박 회장도 그를 피할 수만도 없는 입장이다.

2. 하늘나라

지난 금요일이다. 배드민턴 장에서 알 박사가 박 회장에게 말을 걸었다.

“박 신부님, 교회에서 ‘그리스도 왕국을 이 땅에 건설하자.’ 카는데 그 기 무신 말인 교?” 알 박사는 박 신부님, 하고 깍듯이 존칭을 쓴다. 박 회장은 오늘아침 또 알 박사에게 시달릴 것을 생각하니 머리가 질끈 아파 왔다.

“알 박사, 그리스도왕국을 이 땅에 건설하자는 것은 즉 ‘하늘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자는 뜻입니다.”

“하늘나라는 죽어서 가는 저 세상 아입니까? 살아있는 사람들이 사는 이 세상에도 하늘나라가 있다면 매일 등산 오는 이곳 아닙니까? 숲에서 좋은 공기 마시고 산새소리도 듣는 이곳이 바로 하늘나라인데 무슨 하늘나라를 또 이 땅에 세운다는 말입니까?”

알 박사 특유의 흥분된 목소리다. 알 박사는 세상일에 대해서는 막힘이 없는 것처럼 말하는 그도 하늘나라에 대해서만은 손에 잡히는 것이 없으니 실로 답답한 것이다.

“알 박사, 사람들은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고 그 속에서 무한한 호기심과 경이로움을 느끼며 함께 호흡하고 동식물을 이용하여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자연을 하늘나라라고 하는 알 박사의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르면 이 세상의 주인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그야 이 세상을 지배하는 인간이지요.”

“알 박사, 그르면 인간의 주인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조물주라고나 할까요, 하느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였다고 하였으니 하느님을 인간의 주인이라고 해야겠지요.”

“그렇습니다. 알 박사는 자연을 하늘나라에 비유했습니다만 많은 우리 조상들은 바위나 고목과 같은 피조물을 숭배하고 신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점술과 같은 미신행위에 운명을 맡겼습니다. 무엇보다도 나쁜 것은 신이 아닌 것을 신이라 믿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도 우상숭배는 금물입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서 조물주의 손길을 느끼고는 있습니다만 성당에서 말하는 하늘나라는 어떻게 건설한다는 것입니까?”

“창조주 하느님에 대해서는 어떠한 종교도 부인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각자의 신앙과 길이 다를 뿐이라 생각되지요. 알 박사, 이 세상은 사랑으로 창조되었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 “사랑으로 창조되었다고요”

“세상의 모든 동식물을 보십시오. 자연의 순리에 적응하면서 본능에 의해 생존하고 번식되는 것을 봅니다. 나름대로 화려한 깃털을 자랑하는 저 새들이나 나비, 벌이며 자연계의 번식을 보십시오. 사람들 보다 더 짙은 사랑을 하는지 어찌 알겠습니까?”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은 사랑에 죽고 사랑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천주교회에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을 사랑 그 자체이시다. 라고 말합니다.

“하느님이 사랑이라고요.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고 하고, 사랑을 빼면 시체라 카는 말이 있지만…”

“알 박사, 사랑을 다는 저울이 있다면 사랑을 저울질해 보고 싶습니다. 연인끼리의 짙은 사랑, 부부간의 아름다운 사랑, 부모자녀간의 고귀한 사랑, 사제간의 숭고한 사랑 등, 그런데 사랑의 저울이 있다하더라도 저울로는 도저히 달 수 없는 사랑의 원천이 있습니다.”

“사랑의 원천이 어디에 있다는 말입니까?”

“성당에서는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즉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있으며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박 신부님, 짐승만도 못한 사람들이 늘어만 가는 세상인데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계시다니 그 말을 믿으라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도 우리의 몸이 바로 법당이고 마음이 곧 부처라 하지 않았습니까.”

“박 신부님, 동물들은 배가 고파야 사냥을 하고 배가 부르면 잠을 자거나 아니면 월동준비를 하는 것이 고작인데 왜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여 남을 속이기도 하고 보다 더 많이 가지려 끝없는 욕심을 부리는 겁니까? 또 많은 자연을 파괴하고 유독 물질로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습니까? 사람이 하느님의 창조사업을 이어받았다고 했는데 고것이 맞는 말입니까?”

“알 박사, 동물은 본능에 의해서 행동하지만 사람은 동물이 갖지 못한 이성이 있어서 생각하고 판단을 해서 행동하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삼라만상 중에 둘도 아닌 인간만이 누리는 특권을 가지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르나 인간성이 물질 앞에 허물어져 가고 있는 세태가 안타깝습니다.”

“박 신부님, 인간의 교만함이 극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치판이나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이소. 서민들만 죽을 지경이 아닙니까? 정직하고 진실 된 사람들이 잘 사는 세상이 되어야 할텐데 각종 비리가 끊이지 않으니 어찌된 일입니까. 사회 정화를 위해 앞장서야할 종교단체도 그 비리가 심심찮게 지상에 보도되고 있지 않습니까?”

“알 박사, 인간은 세상 재물의 유혹을 받으며 죄를 짓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양심의 죄책을 받기도 하고 질병으로 고통을 받으며 인간성을 회복하기도 하고 결국에는 죽음으로 삶을 청산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인간이 고통을 피하려면 조물주 하느님의 뜻에 따라 끊임없이 감사하고 또한 이웃과 더불어 사는 나눔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말하자면 액땜을 한다고나 할까요. 알 박사, 일부종교단체의 비리를 보고 전체인 양 말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천주교 개신교 불교 등 많은 종교단체에서 하고 있는 봉사활동은 왜 말하지 않습니까?”

“저도 천주교에서 운영하고 있는 오순절 평화의 마을, 꽃동네 등 장애인 복지시설은 알고 있습니다. 박 신부님도 편하게 계셔야할 연세에 성당에서 뿐 아니라 무료급식소에 나가서 봉사하시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천주교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격려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감사하는 마음이 인색합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활동을 해보면 우리자신을 뒤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무엇을 감사해야 하는지 알게 됩니다. 알 박사, 오늘은 유익한 이야기를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알 박사와 저의 대화는 언제나 논쟁으로 끝이 났는데 오늘은 진일보한 것 같습니다. 알 박사는 요즈음도 그렇게 바쁘십니까?

“퇴근 시간이 10시가 넘는 게 보통입니다. 죽을 지경이래요.” 알 박사의 말 중에 죽일 놈들, 죽을 지경이라는 말은 열에 여덟 번은 들어간다.

“알 박사, 다음 주일이 배드민턴 멤버들 단풍구경 가는 날 아닙니까 신청은 하셨소?”

“박 신부님이 가신다면 신청해야지요. 저가 만날 때마다 귀찮게 하는데 같이 가도 되겠습니까?”

“오늘 못다 한 하늘나라 이야기도 실 것하고 단풍구경도 합시다.”

박 회장은 단풍구경 겸 이번에야말로 알 박사의 눈에 박힌 가시를 뿌리째 뽑아주어야 되겠다고 다짐을 한다. 박 회장은 인생 상담을 하면서 못다 한 말은 편지를 써서 건네기도 한다. 아들 며느리에게도 연두교서를 보내듯 일년에 한 두 번은 편지를 꼭 한다. 박 회장의 끊임없는 호소력은 편지에 있다. 박 회장은 하느님을 모르고 진리에 목말라 하는 이들을 위해 항상 편지를 준비하고 있다.

3. 하늘나라에 하느님은 정말 계십니까?

이른 새벽부터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늦가을 찬 기온이 박 회장의 마른 체구를 파고든다. 관광버스에는 부부동반으로 온 멤버들이 여럿 보이고 알 박사는 미리 박 회장의 자리를 마련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박 신부님, 어서 오십시오.”

“허허, 오늘은 단풍놀이 가는 날이니 박 신부라 부르지 말고 박 회장이라고 불러주면 나도 마음 편히 놀다 올 것 같은데…”

“박 신부님, 그런데 날씨 보니까 단풍놀이는 틀렸습니다.”

차가 출발하자 어둠이 걷힌 차창 밖에는 점점 빗줄기가 굵어지고 있었다. 알 박사는 밀감을 까서 박 회장에게 건네주며 말을 꺼낸다.

“박 신부님, 우리가 다급하면 ‘아이고 하느님!’하고 너나없이 하느님을 찾습니다만 정말 하느님이란 분이 계신다는 말입니까?”

“우리가 다급할 때 하느님을 찾는 것을 보면 하느님은 분명 어딘가에 계시고 믿을 만한 분이기 때문에 찾는 것 아니겠어요. 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고향을 찾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합니다만 하늘을 쳐다보아도 하늘에는 해와 달 그리고 떠가는 구름, 밤하늘에는 반짝이는 별 뿐입니다. 하느님이 하늘 나라 어디에 계신다는 말입니까? 그리고 성당에서는 십자가를 걸어놓고 하느님이라고 모시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알 박사,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궁금하시면서 성당에 나오시는 것은 주저하십니까? 십자가는 인류구원을 위해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천주교신자들은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우리도 예수님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무거운 십자가를 외면하지 말고 잘 지고 갈 것을 다짐합니다.”

버스 안은 새벽 단잠을 설치고 온 탓인지 간간이 말소리가 들릴 뿐 다들 새벽잠에 빠진 듯 차창에 부딪치는 빗소리와 관광버스의 달리는 소리뿐 조용하다.

“알 박사, 아기가 태중에서 무엇을 먹고 자랍니까?”

“그야 탯줄을 통해 엄마의 영양분을 먹고 자라지요. 그리고 요즈음은 태중교육이라 해서 뱃속의 아이에게 교육도 시키는 모양입디다.”

“그렇습니다. 요즈음은 천재아이를 낳으려고 성급하게 태중교육을 시키고 있는데 욕심이 지나치면 머리만 큰 아이를 낳게 될까 걱정입니다. 아기는 어머니의 자애로운 사랑을 먹으며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아기는 부모의 분신이 아닙니까. 하느님 앞에 모든 사람은 어린아이와 같은 존재입니다. 아기와 어머니처럼 말입니다.”

“박 신부님, 하느님은 어머니들처럼 우리 가까이 계시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습니다. 음성을 들을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느님이란 분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단 말입니까? 세상의 어머니들이 아기를 돌보듯 하느님께서 인간을 보살피시고 돌보고 계신단 말입니까?”

“사람들은 하느님을 우리 눈으로 한 번이라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 말씀이라도 들을 수 있으면 성당에 열심히 다니겠다, 성당에 몇 년씩 다닌 신자들도 어리석은 하소연을 하는 것을 봅니다. 우리 마음에는 자신을 지탱해 주는 양심이란 추가 있지 않습니까?”

“양심의 추란 무슨 뜻입니까? 양심대로 착하게 살아라 그 말 아닙니까?”

“하느님의 존재를 인간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구체적으로 알아야만 믿겠다는 지식인들을 봅니다. 알 박사도 그렇지 않습니까?”

“박 신부님, 요즈음 세상이 어떻습니까? 눈 깜으면 코 베어 가는 세상이 아닙니까? 눈에 보이는 것도 믿을 수가 없는데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믿으라고 하십니까?”

“우리의 몸에는 사물을 분별하는 눈과 소리를 듣는 귀가 있습니다만 마음에도 눈과 귀가 있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하지만 결정을 하고 행동에 옮기는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지요.”

“그렇습니다. 하느님을 바라보는 첫 단계는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하고 마음속에 그림을 그리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박 신부님, 사바세계의 병은 마음에서 생기며 마음의 잡다한 생각을 비우고 나면 본래의 모습이 드러나서 깨달음의 경지에 들어간다는 말은 저도 듣고 또 들었습니다. 그런데 스님들도 깨달음을 얻기 위해 오랜 세월을 수도 정진하는데 우리 같은 중생이야 마음 다스리는 일이 생각처럼 쉽겠습니까?”

“그렇지도 않습니다. 종교마다 신앙의 길은 다 다르겠습니다만 제가 믿고 걸어온 천주교는 ‘계시종교’로서 그렇게 어렵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습니다.”

“계시종교라는 말은 처음 듣는 말인데요.”

“천주교는 인간이 스스로 진리를 터득해서 세운 종교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직접 당신을 드러내시고 진리를 가르쳐주심으로서 이루어진 종교라 하여 계시종교라고 합니다.

“박 신부님, 점심시간인가 봅니다.

차가 휴게소에 들어서자 점심시간을 알리는 총무의 안내방송이 있었다. 이날 점심은 준비한 음식을 들고 나가 야외에서 신선한 공기 마시며 식사를 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날씨가 궂으니 어찌하겠는가. 모두들 볼일을 보고 와서 좁은 차안에서 다리도 뻗지 못하고 점심을 들었다. 박 회장은 이웃들과 소주 두어 잔을 하고 휴게소로 커피를 마시러 나갔다. 총무인 공구박사가 알아보고 얼른 한 잔 뽑아준다. 박 회장은 차에 올라 오늘 일정도 의논할 겸 자리를 옮겨 총무 옆에 가 앉았다.

4. 생명

“신부님이 와 이라는 교? 여자 옆에 다 오시고.”

“오늘은 인생을 논하는 신부님이 아니고, 인생을 즐기는 회장인 기라. 알 박사 옆에 붙어서 왔더니 열이 나서 불 끄러 왔다 아이가.”

“남자들끼리 불은 왜 불이나요. 내가 소방서인 줄 아는가베.”

“절에 무엇 땜에 다니는데 소방수 할라고 다니는 거지.”

“신부님이 하느님 찾으시지 부처님은 말라고 찾아오는 교?”

“하느님께 가기 전에 보살임 먼저 찾아보고 가려고 왔다 아이가. 구박 좀 하지 마라.”

“왜요? 알 박사가 속을 뒤집던가요?”

“아니, 그런 게 아니고 오늘은 이바구가 진지하다 보니까 보살 님께 기 좀 받으려고…”

“아침마다 산에서 배드민턴으로 젊은 기를 넣어 주었으면 됐지, 차안에까지 와서 기를 받아야 되겠어요.”

박 회장은 공구박사가 주말이면 다녀오는 설악산, 지리산 등 명산의 정기를 매주 배드민턴을 치면서 받고 있는 셈이었다.

“보살의 마음은 강처럼 넓다 카더라. 천주교와 불교는 이웃 사촌 아이가.”

“뭐가 이웃 사촌인데요?”

“절에 가면 석가모니불을 비롯한 불상에 절하고 성당에 가면 예수님의 십자가상에 기도하니 이웃사촌이고, 불자도 제사 지내고 성당의 신자도 제사를 지내니까 이웃 사촌이다 그 말이지.”

“잘도 갖다 붙이십니다. 저 나무에 메달인 빨간 홍시나 좀 보세요. 얼마나 탐스럽습니까?”

박 회장은 어릴 때 추억이 새롭게 스쳐간다.

“농촌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옛 추억이 새롭고 마음이 평화스러울 수가 없는데 공구박사도 그런 모양이지?”

“그럼요. 설과 추석명절에나 고향을 찾아 부모님을 뵙는데 항상 돌아올 때마다 죄스러움을 느낀답니다.”

“그야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불효일 것이고 둘째는 도심의 콘크리트 문화에 굳어버린 몸과 마음이 고향의 순박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대할 때 부끄러운 마음이 되는 탓이 아닐까?”

“자라나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고향에 자주 데리고 가서 정서적인 마음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자연과 친숙한 시간을 가졌으면 좋으련만 학교, 학원, 컴퓨터에 시간을 다 빼앗기고 마니 걱정입니다.”

“그래도 공구박사야 정든 고향이 있고 보고 싶은 부모님이 계시니 뿌리가 있어 축복 받은 사람인 기라.”

박 회장은 ‘고향’ 하면, 노천명 시인의 ‘언제든 가리, 마지막엔 돌아가리, 목화 꽃이 고운 내 고향으로, ---나중엔 고향 가 살다 죽으리.’ 하는 애틋한 향수에 젖는다. 나이 예순을 넘으면서 마음은 언제나 고향을 향하고 있다. 오늘처럼 정다운 이웃이 있기에 우리 영혼의 고향 하느님의 품속도 따사롭게만 느껴진다.

차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마침 비가 멈추어서 일행은 단풍구경을 할 수가 있었다. 계림 사로 오르는 길가 단풍이 곱게 물들어있다. 붉고 노란 단풍이 비바람에 떨어져 단풍융단을 밟고 가는 느낌이다. 박 회장은 불그죽죽하게 시들어 떨어지고 있는 집 뒷동산 단풍이 생각나 마음이 아프다.

계림 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에 창건된 유서 깊은 사찰로 국보급 보물과 지방 문화재 등 옛 선인들의 얼이 살아 숨쉬고 있었다. 사찰과 단풍구경은 날씨 관계로 일찍 끝이 났다.

돌아오는 차안은 한바탕 노래와 만담으로 요란하다. 박 회장과 알 박사는 일찌감치 뒷좌석으로 자리를 피해 가 앉았다.

알 박사는 몇 잔술에 얼굴이 벌겋게 물들면서 눈에 이슬이 맺힌 듯 하다.

“박 신부님, 실은 오늘 의논드릴 게 있십니더.”

“무신 일인데, 알 박사답지 않게 심각한 모습을 해 가지고…”

“저의 며느리 말입니더 임신 4개월 째 아입니까 그런데 산부인과에 갔더니 풍진이라 카는 들어보도 못한 전염병을 산모가 했다 안 캅니까.”

박 회장은 알 박사의 ‘풍진’ 소리에 긴장이 되었다. 박 회장 역시 뒤늦게 본 막내며느리가 임신 중 풍진을 하는 바람에 마음 고생을 모질게도 했다. 지금은 귀여운 손자를 품에 안아보고 재롱을 지켜보며 세상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새 생명, 단 하나 핏줄로 마음이 뿌듯하다.

“알 박사, 그래서 어떻게 하고 있어요?”

“산모가 풍진을 하면 기형아나 정신 박약아가 출생할 확률이 높다고 하니 우째야되겠습니까? 아이들은 낙태를 시키려고 합니다. 평생을 두고 마음 고생을 하느니 아이는 또 낳으면 된다는 거지요. 하지만 우리 집안은 손이 귀한 집안인데 어찌해야 될지 모르겠십니더.”

풍진은 임신 전에 풍진에 대한 항체검사를 해서 항체가 없으면 예방 접종을 필히 해야 임신 후 안전하다고 한다. 박 회장은 알 박사의 심각한 고민을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알 박사는 외아들을 두었는데 고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고는 공부하기를 싫어해서 알 박사의 회사 일을 거들고 있었다. 그런데 씀씀이가 헤프고 성실하지를 못해서 알 박사의 빈틈없는 눈에는 반 눈에도 차지 않는 애물단지였다. 결혼을 하면 좀 나을까했는데 서른이 넘어 겨우 짝을 맞춘 것이 자식 복이 없어서인지 문제가 생긴 것이다.

“알 박사, 저의 막내며느리도 결혼해서 얼마 동안은 직장관계로 피임을 하는 모양이더니 막상 아이를 가지려고 하니까 임신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다는 100일된 흑염소도 먹이고 하여 아이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3개월 째인가 산부인과에서 진료를 받았더니 알 박사가 말하는 풍진이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산부인과에서는 은근히 낙태를 권유하기도 했지요. 천주교 신자에게 낙태는 하느님을 거슬러 는 가장 큰 죄에 해당됩니다. 그러나 저의 마음도 흔들렸습니다. 장애아이를 낳을 확률이 많다고 하니 자식이지만 어떻게 하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명은 소중한 것이다. 경솔한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하고 다짐은 했지요.”

“그래서요?”

“막내아이는 대학시절 성당에서 주일학교 교사도 하여서 생명의 소중함을 아는 아이인지라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대학병원에서 정밀검사를 해본 모양입니다. 태아의 외모는 정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를 낳았습니까?”

“낳았지요. 장애아라도 낳아서 기르기로 한 것입니다. 그동안 마음 고생이야 많았지요. 지금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하느님께 기도 드린 덕분이지요.”

“박 신부님은 기도의 덕분으로 건강한 아이가 태어났다고 믿습니까?”

“꼭 그렇다고 믿지는 않습니다. 이미 화살은 떠났습니다. ‘하느님, 건강한 아이를 낳게 해 주세요.’ 하고 간절한 기도야 드렸지만 장애아가 태어나더라도 잘 키우겠다는 다짐도 있었지요.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느님은 간절한 기도를 뿌리치지 못하시는 분이십니다.”

“박 신부님, 풍진이 각막을 건드리면 실명을 하고 고막을 건드리면 귀머거리가 되며 뇌에 치명상을 입힐 수도 있다는데 그 소리는 못들었십니까?”

“그 소리야 산부인과에서 들었지. 그러나 태아의 외모가 정상인데 그 이상 의술로는 알아 볼 수 없는 하느님의 영역이 아닙니까? 순명 해야지요. 장애아이를 훌륭하게 키우는 부모들을 보면 생명은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소중함을 느끼게 합니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강 건너 불처럼 생각들 합니다. 우리사회도 선진국들처럼 장애인 복지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알 박사, 우리 이웃에도 풍진으로 신생아에게 약간의 장애가 있었지만 간단한 수술로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알 박사도 옳은 일을 위해서는 팔을 걷어 부치는 사람이 아닙니까? 임신 3개월 이후에 풍진이 온 산모는 기형아 출산율이 25%정도라고 알고 있습니다. 육안으로 태아를 관찰하는 것도 하느님을 거슬러 는 일이지만 그 이상의 섣부른 판단은 자제하여야 할 것입니다.

“오늘 박 신부님과 좋은 자리를 한 것 같습니다.”

알 박사는 박 신부님, 이라고 부르면서 박 회장의 손을 꼭 잡는다. 박 회장은 알 박사를 위해 안주머니에 곱게 간직한 편지를 꺼내어 알 박사 손에 쥐어주었다.

박 회장은 여독 때문인가 가벼운 코를 골면서 잠이 들었고 알 박사는 박 회장으로부터 받은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편지는 ‘하늘나라 하느님에 대하여’ 라는 제목으로 쓰였고 다시 작은 제목 다섯 개로 구성되어 있었다.

5.하늘나라 하느님에 대하여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합니다만 알 박사와는 만났다하면 삶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어 왔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인연이 또 있겠습니까? 세상일에 대해서는 알 박사를 따를만한 사람이 없다고 하여 알 박사라 부르고 있습니다만 하늘나라 하느님에 대해서는 저를 박 신부라 부르시니 오늘은 저의 마음을 실은 편지를 전합니다. 편지를 쓰다보니 제 신앙생활을 뒤돌아보고 채찍질하는 글이 되고 말았습니다. 두서 없는 글이나마 하느님께 대한 의심을 풀고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서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천주교(가톨릭)는 어떤 종교입니까?

하느님! 하느님! 하고 부른다고 하여 하느님께서는 누구에게나 응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은 어떠한 방법으로 인간에게 가까이 다가오시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알 박사에게 천주교는 계시종교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계시’라는 말을 한글 사전에 찾아보면 ‘사람으로서는 알 수 없는 진리를 신이 가르쳐 알게 함’ 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알 박사, 저는 여름이면 나무 위에서 요란스럽게 울어대는 매미소리를 들으며 하느님의 계시에 흠뻑 젖어듭니다. 여름장마가 지나가고 나면 나무등걸 여기저기에 매미가 벗어두고 간 허물을 볼 수 있습니다. 진흙을 뒤집어쓰고 나온 작은 애벌레 속에서 어떻게 예쁜 날개를 자랑하는 매미가 환생되었는지 신기하기만 합니다. 매미는 애벌레로 7년 간 땅속에서 지내다가 한 여름으로 생을 마감한다고 합니다. 사람의 한평생을 70년이라고 하면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매미의 짧은 일생을 생각해 보면 사람은 거듭 태어나야 함을 느끼게 합니다.

알 박사, 프랑스의 곤충학자 파브르는 말하기를 하느님은 신앙의 대상으로서만이 아니라, 눈에 잘 띄지 않는 조그만 곤충을 통해 그분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있으니까요”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인간은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의 양심을 속이지는 못한다고 합니다. 인간의 양심은 바로 선하신 하느님의 소리로서 하느님이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계신다고 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 대자연과 인간의 양심을 통해 드러내 보이시는 것을 간접계시라고 합니다.

우리 마음에 대해서는 알 박사도 잘 알고 계시는 성철스님의 말씀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인간 모두가 부처님과 똑같이 영원한 생명 무한한 능력의 소유자인데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팔만대장경도 똘똘 뭉치면 마음 심자 한자 위에 있다. 마음의 눈을 뜨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천주교에서는 하느님이 친히 인간에게 진리의 말씀을 알려주시는 직접게시가 있습니다. 보이지도 않는 하느님께서 어떻게 인간에게 진리의 말씀을 직접 알려준다는 것입니까? 하고 반문하시리라 생각됩니다만 직접 게시에 대해서는 저의 편지를 읽어나가시면 차츰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

성서를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하는데--

알 박사와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 바가 있습니다만 하느님의 사랑을 좀더 구체적으로 알기 위해서는 성서를 소개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성서는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한 번쯤 읽어보았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입니다. 성서는 하느님의 영감을 받아서 기록된 책이라 하여 거룩한 책이라고 불립니다. 성서를 처음 대하면 신구약성서의 부피에 놀라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하는 벽에 부딪칠 것입니다. 그르나 목차별로 기본적인 내용만 도움을 받으면 하느님의 말씀을 쉽게 접할 수 있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수세기가 흘러가는 동안 인간의 지식과 과학문명은 발달하여 인간이 살기 편하고 좋은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진리는 변하지 않아서 끊임없이 인간의 부도덕한 삶과 과학문명에 경고를 보내고 있습니다. 예수 탄생 2003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도 하느님의 지혜로 쓰여진 성서는 중단되지 않고 베스트 제1위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읽히고 있지 않습니까.

성서를 간략하게 안내하면, 성서는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로 크게 구분합니다. 이것은 성서의 주인공이 되는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전의 이야기를 구약, 탄생 후 즉 서기가 시작되는 첫해부터의 이야기를 신약이라고 합니다.

구약성서는 천지가 창조되고 인간이 원시생활을 시작하면서 구전으로 전해오고 양피지나 그밖에 어떤 것을 이용해서 그림으로 어떤 상형문자의 형태로 기록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져 왔습니다.

신약성서는 예수 탄생부터의 이야기가 낱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보고들은 사람들의 증언에 의해 복음사가들이 사실 그대로의 이야기를 적은 것입니다.

성서란 역사책과는 다르다는 것을 먼저 이해하고 읽어야만 합니다. 성서는 소설처럼 읽어나갈 수도 있겠습니다만 소설처럼 읽어나가서는 별 의미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재미가 없어서가 아니라 무궁무진한 하느님의 지혜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성서가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도 아무리 퍼마셔도 마르지 않는 샘처럼 끝없는 인생의 갈증을 풀어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이신가?

. 신약성서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에 대해 궁금증을 풀어나가야겠습니다. 성서에 나오는 방대한 드라마를 소개한다는 것은 나와 같은 좁은 소견으로는 바닷가의 모래알갱이들을 세는 일 만큼이나 어렵습니다. 그러나 예수 탄생부터 기록된 신약성서의 주요부분은 “성탄 밤”을 통해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내용들입니다.

신약성서는 4사람의 복음사가가 예수님의 행적에 대해 각각 다른 측면에서 사실을 수집해서 기록한 내용들입니다.

서기 2003년 전, 이스라엘의 유다 산골에 죄 많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한 성자가 태어났으니 그가 바로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느님께서 죄악에 물던 세상을 보시다 못하여 하느님이 몸소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신 것입니다.

‘예수가 하느님의 외아들임을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그는 유다 산골 목수인 요셉과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아들이 아닙니까?’ 성서의 기록에 보면 요셉과 마리아는 동정으로 사셨고 아기 예수는 하느님의 성령의 은총으로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신 하느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님은 공적으로 활동하신 3년 동안 하느님의 아들만이 하실 수 있는 인류구원의 큰 발자취를 이 세상에 남겨 놓았습니다. 예수님은 아무 죄도 없이 당시의 지도자급 사람들의 현세적인 안 락과 시기심에 의해 십자가형을 당하셨습니다. 그르나 돌아 가신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시고 부활 승천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라는 불사 불멸의 행적을 몸소 남기신 분입니다. 그래서 그를 믿는 사람은 죽지 않고 영원한 새 생명을 얻게된 것입니다.

기도는 만병 통치약, 기적을 낳는 황금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믿는 이들에게 기도는 만병통치약입니다. 아픈 사람이 있어도 기도, 사업 잘 되라고 기도, 입시 철이면 교회 성당 사찰 암자 바닷가 학교 교문 앞에서까지 기도의 행렬이 줄을 잇습니다. 성서에 보면 예수님은 나환자, 중풍환자와 같은 많은 불치의 환자들을 고쳐주었습니다.

마더 데레사, 가난하고 병든 많은 사람들을 위해 일생동안 밤잠을 설치며 손발이 닳도록 봉사의 삶을 살다 가신 수도자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성녀가 이와 같은 희생적인 봉사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오직 하느님께 의지한 기도의 능력이었습니다.

하느님은 이렇게 인간의 정성을 보시고 기적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겨자씨와도 같다고 하였습니다. 겨자씨는 세상의 어느 씨앗보다도 더 작은 것이지만 땅에 심어놓으면 어떤 푸성귀보다도 크게 자라고 큰 가지가 뻗어서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믿는 이들에게 있어서 기적을 낳는 황금알이라고 소개를 했습니다만, 결코 요술방망이로 착각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기도는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몇 년씩 신앙생활을 한 사람도 진정한 기도의 맛을 들이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방황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알 박사는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가 몇이나 됩니까?”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은 고향의 촌부인 친구를 가끔 초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기도는 마음을 비우고 믿고 의지할 수 있는 하느님께 다가서는 것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잃어버린 자신을 발견하고 바른 길을 찾아 나서는 첫 단계가 됩니다. 즉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 앞에 잘못을 뉘우치고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함으로서 자신을 정화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것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성직자나 수도자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겠지요.

큰스님들의 화두를 보면 자신의 본성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의 깊은 뜻은 잘 모르겠으나 자신의 재능과 분수를 알고 한 번뿐인 인생을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뜻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느님께 드린 기도의 응답은 성급하게 기다려서는 안됩니다. 아기의 이빨이 자라듯, 꽃봉오리가 서서히 피듯 기다려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흘러보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성급하게 결과에 집착합니다. 인간의 잣대로 재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되면 기도의 노력은 무산되고 맙니다.

기도할 때에 수험생을 둔 부모라면 수험생의 어려운 마음과 함께 하여야만 합니다. 아픈 자식이라면 그 아픔을 같이 해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자식으로 인해 부모가 은총을 받게 됩니다. 진실한 기도는 고통보다 더 큰 위로를 받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심어주셨다는 “영혼”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영혼에 대한 이야기라면, 물레밖에 가진 것이 없었다는 인도의 위대한 영혼 간디를 생각나게 합니다. 또한 수많은 불자들의 심금을 울리고 가신 성철스님의 누더기 가사장삼 한 벌이 생각납니다. 얼마 전 돌아가신 천주교 안동 교구장 박석희 주교 님의 나눔과 봉사, 무소유의 삶이 우리의 가슴을 울립니다.

천주교에는 많은 성인 성녀가 있습니다만 그 중에도 지극히 작고 평범한 일, 그리고 눈에 띄지 않는 일들을 가지고 가장 좋은 천상의 비단을 짜신 분이 계십니다. 소화 데레사 성녀, 24세의 젊은 나이로 돌아가셨지만 위대한 영혼을 지니셨던 분입니다. 알 박사도 집 앞 청소는 물론 동네의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하시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영혼이라 하면 우리는 죽어서 가는 저 세상을 연상하게 됩니다마는 위대한 영혼은 이 세상에서부터 빛을 밝히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천주교의 교리 문답 첫머리에는

“사람이 이 세상에 무엇을 위하여 낳느뇨?”

“사람이 천주를 알아 공경하고 자기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세상에 낳느니라.” 하였습니다. 알 박사, 대리석을 망치로 두들기기만 하면 길거리에 버려진 못난 돌이 되겠지만 갈고 닦으면 아름다운 무늬 결이 살아나는 아름다운 돌이 되지 않습니까. 우리의 영혼을 아름답게 가꾸는 길만이 이 세상에서는 보람 있는 참 삶의 길이 될 것이요, 저 세상에서는 하느님 곁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아멘

2002. 11. 7 박 회장 드림

알 박사는 편지를 다 읽고 나서 옆자리에 자고 있는 박 신부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예수님이 이런 얼굴일까? 평안하게 잠든 박 신부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그의 손목을 슬그머니 잡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제23회 부산가톨릭 문예 작품 공모전 시상식

지난 11월 25일(금) 19:00 교구청 5층 강당에서 전산홍보국(국장 : 석판홍 신부) 주관으로 ‘제23회 부산가톨릭 문예 작품 공모전 시상식’이 있었다. 먼저, 부산가톨릭문인협회장 정경수 대건안드레아 씨의 수상작 심사평 발표가 있었고, 수상자(우수-양지영 수산나 씨 외 1명, 가작-김지현 마리아 외 4명, 입선-김태향 아가다 외 8명)들에 대한 시상이 있었다. 이날 교구 총대리 손삼석 주교는 수상자들을 축하하고 격려하며 강복으로 시상식을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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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3회 부산가톨릭문예작품공모전 심사평 홍보실 2011/11/18 61
16 [우수] 시 '나는 오늘도 빨래를 한다' 홍보실 2011/11/18 103
15 [우수] 동화 '아름다운 가게의 크리스마스' 홍보실 2011/11/18 56
14 [가작] 동화 '내 친구 다니엘' 홍보실 2011/11/18 33
13 [가작] 소설 '어른 연습' 홍보실 2011/11/18 33
12 [가작] 수필 '팥죽 행로' 홍보실 2011/11/18 47
11 [가작] 시 '장롱이 놓였던 자리' 홍보실 2011/11/18 35
10 [가작] 시조 '소담재' 홍보실 2011/11/18 25
9 [입선] 콩트 '은수저' 홍보실 2011/11/18 23
8 [입선] 수필 '물과 인생' 홍보실 2011/11/18 35
7 [입선] 시 '성당가는 길' 홍보실 2011/11/18 39
6 [입선] 신앙체험 '사랑하는 언니에게' 홍보실 2011/11/18 40
5 [입선] 시 '탄생' 홍보실 2011/11/18 34
4 [입선] 동화 '내 친구 도돌이' 홍보실 2011/11/18 26
3 [입선] 시 '이태석 신부님' 홍보실 2011/11/18 49
2 [입선] 수필 '복손' 홍보실 2011/11/18 33
1 [입선] 수필 '무당벌레의 추억' 홍보실 2011/11/18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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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회 부산가톨릭문예작품공모전 가작] 소설 '어른 연습'


어른 연습


김지현 마리아 / 대연성당

드디어 날이 밝았다. 여느 때처럼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킨다.
3월의 햇살이 이토록 따사롭다니...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새로운 날과 인사를 한다.
아주 깨끗하게 씻고 아침을 먹으러 식당으로 갔다. 오늘따라 음식냄새가 더 좋은 것 같다.
“운이 마지막 밥이네...!”
한 달 전 이곳으로 들어온 지원언니가 밥을 뜨다말고 한숨을 길게 쉬며 내게 말했다.
“언니! 자주 놀러오기로 약속했는데 왜 또 그래!”
마지막 만찬을 마치고 양손에 짐 가방을 들고 1층으로 내려갔다.
‘고 운! 안녕! 이것은 슬프지만 행복한 안 녕!’
살레센터 식구들이 눈물을 글썽이며 안또 의식을 치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안또의식’은 기간을 마치고 나가는 식구들을 보낼 때 하는 배웅을 말한다. ‘안녕! 그리고 또 다른 안녕!’ 의 줄임말이다. 떠나가는 의미의 ‘안녕’ 그리고 정말 멋진 모습으로 다시 돌아와서의 ‘안녕’ 을 말한다. 한 달에도 몇 번 씩 치르는 안또의식 이지만 그 때 마다 1층 입구는 눈물로 붐빈다. 다들 앞의 안녕의 슬픔보다 뒤에 안녕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려 눈물을 참으려 애쓴다.
수녀님들과 포옹을 하고 언니,동생들과도 뜨거운 작별의 포옹을 한다.
갈비뼈가 으스러지도록 끌어안고 수많은 편지들과 작은 선물이 담긴 상자를 마지막 선물로 받고 센터를 나왔다. 한참동안 눈물 글썽이며 뒤돌아 센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등 뒤로 발자국 소리가 들리며 누군가 나의 등을 콕콕 찔렀다. 연이였다 연이가 여기까지 왔을 줄 꿈에도 몰랐다. 비행기까지 타고 여기까지 날아오다니...
“연아...!”
유일한 내 핏줄 하나뿐인 내 동생 연이다. 목이 메어오지만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런데 녀석은 왜 저렇게 나를 빤히 쳐다보기만 하는 것일까?...어색함이 감돈다. 벽을 넘어서 연이를 안아 보는 건 딱 1년만이다. 그동안 안아 주고 싶어도 못 안아주었던 그 서러움을 담아 있는 힘껏 꽉 안아주었다. 연이의 몸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연이는 말없이 떨리는 손으로 까만 봉지를 내민다.
“두부냐? 야! 감옥 간 것도 아닌데 왠 두부야!” 애써 태연한 척 말했다.
“따뜻할 때 빨리 먹어 부러..” 여전히 차가운 연이의 말투.
하긴 연이가 날 평생 원망하고 미워한다 해도 난 왜 그러냐고 물을 수조차 없다.
그저 아이 같았던 내 동생 운이도 벌써 고등학생이 되었다. 이 따뜻한 5월의 땅을 운이와 함께 밟아 본 것 도 얼마만인지 모른다.
어느 봄 이였다. 여느 때처럼 제주도는 봄의 향연이었다. 벚꽃잔치, 유채꽃 잔치로 제주도 전체가 떠들 썩 하고 화려 했다. 난 언제나처럼 아지랑이들의 아우성을 뒤로한 채 나는 가슴 속에 아주 큰 수갑을 차게 되었다.

“연아~ 운아! 빨리 일어 낭(일어나서) 밥 먹으라~”
아침마다 할머니는 부지런하게도 우리 자매를 깨운다.
하루 종일 폐지를 줍고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면 작은 채소들을 파신다.
고단함도 잊으시고 우리를 챙기는 일은 항상 최선으로 하셨다. 천상 부지런 하고 당찬 제주도 여인이다. 오일장에서도 제주도 전설 속 거인 할망 ‘설문대 할망’ 으로 통한다.
우리 자매는 할머니의 섬세한 손길로 자라났다. 할머니는 우리에게 엄마다. 그리고 아빠다.
아빠는 야속하게 우리를 떠나 하늘로 가셨다. 엄마는 아빠의 잇다른 사업실패로 빚더미에 앉자 어느 날 밤 떠나버렸다. 아빠가 떠나던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운이는 고작 1학년 이였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였다. 집 앞이 소란스러웠다. 응급차와 경찰차. 그리고 온 동네 사람들이 요란하게 우리 집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누가 아픈 걸까? 무슨 일이지?”
성큼성큼 더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걸어가는데 동네 아줌마들이 내 팔을 잡았다.
“아이고 연아 연아...”
우리집 바로 옆 우성빌라 아줌마가 울먹이며 나를 아줌마 집으로 데려갔다.
“연아~ 아줌마가 올 때 까지 절대 집 밖으로 나오지 말라이 알겠지이?”
영문도 모른 채 집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창 밖을 내다보는데 하얀 천으로 덮힌 사람이 들것에 실려 나오고 사람들은 무슨 일이냐며 소리를 질렀다. 가끔 뉴스에서만 보던 장면이었는데 그 때까지만 해도 어찌된 영문인지 몰랐다. 궁금했지만 아줌마 말씀대로 난 그저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구급차가 떠났다. 거실로 돌아와 책꽂이를 살펴보았다. 온갖 어른들이 읽는 책들이 가득했다. 겨우 내가 읽을 만한 책 하나를 찾아 꺼냈다. 노란 표지의 아주 예쁜 나비가 그려진 ‘꽃들에게 희망을’ 이였다. 어느 날 줄무늬애벌레는 하늘로 향해 높이 치솟아있는 애벌레 기둥을 발견한다. 수십만의 애벌레들이 서로를 밟고 올라가서 하늘로 다다르는 것 이였다. 그들은 아무도 하늘에 그 무엇이 있는지 몰랐다. 단지 다른 벌레 그렇게 행동 하길래 자신도 이끌려 그 무리가 된 것 이였다. 줄무늬애벌레도 궁금하여 그 무리에 낀다. 수없이 짓밟히고, 누군가를 딛고 올라가고 또 짓밟히고, 수십 차례를 반복하면서 애벌레는 조금씩 위로 올라간다. 애벌레는 중간에 노란 애벌레를 만난다. 그 애벌레는 방금 줄무늬 애벌레가 밞고 올라섰던 노란 애벌레 였다. 그렇게 줄무늬 애벌레가 노란 애벌레를 만날 무렵 할머니와 아줌마가 나를 데리러 왔다. 결국 책을 다 읽지 못한 채 덮었다. 아줌마와 할머니 모두 상심한 표정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우리 동네에 큰 문제가 생긴 것 이라고 생각했다. 할머니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연아~어서 할머니 손잡앙(손잡고) 나가라”
할머니 손을 잡고 한참을 걸어 한 공원에 도착했다. 오는 길에 할머니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할머니가 무슨 일이 있나보다 하고 나도 조용히 할머니가 이끄는 대로 길을 갔다.
공원벤치에 앉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할머니...왜 그래?”
“...........”
“할머니......”
“..........”
“할머니!!!!!!!”
나는 참다 참다 소리쳤다. 할머니는 눈물을 쏟으며 말했다.
“아이고! 연아! 연아....연아 이거 어떵(어떻게)할거니! 못난 새끼 이 아이덜(아이들) 놔뒁으넹(놔두고) 어떵 겅(그렇게) 할 수가 이샤....아이고 우리연이”
나는 멍해졌다. 도대체 할머니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난생 처음 보는 할머니의 우는 모습은 충격 이였다. 할머니는 항상 굳센 돌하르방 같았고 커다란 설문대 할망의 모습 이였다. 자글자글한 주름을 가득 덮은 할머니의 눈물들...그저 멀뚱멀뚱 할머니 품에 안겨 할머니의 눈물을 어깨로 받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할머니는 몇 번의 한숨 끝에 운을 띄우셨다.
“연아 잘 들으라이? 느네(너희) 아방이(아빠가) 하늘나라로 가쪄(갔다)~ 하늘나라 알지이? 할아버지 계시는 곳?”
“응...?”
나는 온몸이 굳었다. 할머니는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걸까?
“느네 아방이 오늘 저 멀리로 떠났다고 이것아!”
할머니는 또 나를 꽉 안고 흐느꼈다. 얼마 후 고모들이 도착했고 우리는 고모차에 타서 어디론 가 갔다. 눈치를 슬슬 살피다 고모에게 살짝 물어보니 아빠가 계신 곳으로 간다했다.
병원이었다. 가자마자 할머니는 나와 운이를 어떤 방으로 데려갔다. 학원에 갔다 나중에야 병원으로 온 운이는 아무 것도 몰랐다. 큰 두 눈만 꿈뻑거리고 있었다. 온통 검은색인 한복 비슷한 것을 입히고 머리에 하얀 핀을 꽂아주셨다. 하얀 핀은 마치 반창고 같았다.
그리고 할머니를 따라가니 아빠의 사진이 있고 그 앞에는 향이 피워지고 있었다.
아빠가 돌아가셨구나...TV에서 보던 장례식장 장면이었다. 사진 속 아빠는 날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제서야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아빠 영정사진 앞에서 엉엉 울었다. 계속 멍하니 있다가 아빠의 영정사진을 보고서야 뭔가 느낀 것이다. 주저앉아 펑펑 우는데 운이는 뭘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옆에서 따라서 운다. 할머니가 와서 우리 둘을 꽉 안아주고 고모들도 머리를 쓰다듬으며 함께 우셨다.
할머니가 가르쳐주신 대로 나와 운이는 ‘어린상주’로 몇 되지 않는 상객들을 맞이했다.
상객들이 뜸해지고 자리한 상객들이 음식을 먹는 사이 나도 모르는 사이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조금씩 뜨는 데 내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말들이 들렸다.
“동진이 개새끼 저 나쁜 새끼! 어린 딸년들 어떵(어떻게) 살랜(살라고) 목을 매달아 죽어!? 악착같이 죽을병에 걸려도 죽으면 안 되는 판에 어떵 지가 지 목숨을 끊을 수가 이샤(있어)?”
아빠친구 택호 삼촌의 목소리였다. 동진이는 우리아빠다. 그럼 아빠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다는 말인가?... 삼촌들이 있는 곳과는 등을 지고 잤다. 등을 돌려 무슨 말이냐고 물을 수 없었다. 몸이 움직여 지지 않았다. 택호 삼촌이 술에 취하셨는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아빠를 욕했다. 그 와중에 잠자던 연이가 깨서 울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그만하라며 말렸다.
그 후 한참이 지나도록 나는 등을 지고 잠을 자던 그 자세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일어나야하나? 일어나서 뭐라도 해야 하는 걸까...?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 운이는 더 크게 울어댔고 나는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벽을 보고 얼마나 있었는지 고모가 나를 깨웠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고모에게 물어볼까? 아니면 할머니께? 정말 미칠 것 같았다. 고모는 내 앞으로 성게미역국과 밥을 내밀었다. 성게미역국은 평소 내가 정말 좋아하던 음식이다. 하지만 내 앞에는 아빠의 영정사진이 있다. 성게미역국은 상갓집의 음식이다. 먹을 수 없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멍하니 앉아있었다. 아빠친구들이 와서 소리 없이 안아주었다. 그렇게 몇 명의 품에 안겼는지 모른다. 품에 안겼을 때도 그저 멍했다.
“삼춘 번호 알지이? 무슨 일 있으면 삼촌한테 전화 하라이? 힘내고 운이!”
아빠는 유서를 남겼다. 할머니가 쥐고 계셨는데 나에게 일부분을 보여주셨다.
“어머니 그리고 사랑하는 내 두 딸에게 미안하다. 그리고 사랑한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어떻게 끝난 줄도 모르겠다. 아빠는 바람대로 바다에 뿌려졌다. 여름이면 온가족이 함께 가서 물놀이를 하던 함덕 해수욕장. 이제는 더 이상 아빠와 물놀이를 할 수 없다. 아빠를 뿌리며 할머니는 울음을 힘들게 참고 계셨다. 연신 가슴을 치셨다. 연이는 이 상황을 이해를 하긴 할까? 슬픈 표정으로 아빠를 보내드리고 있었다.
아빠를 보내드리고 우리가족은 모든 것이 달라졌다. 여름이면 일을 마치고 사오던 아이스크림은 할머니가 대신 사오셨다. 눈 내리는 겨울 친구들과 소주한잔 걸치시고 품에서 꺼내시던 붕어빵도 할머니가 대신 사오셨다. 할머니는 있는 힘껏 아빠를 대신하셨다. 손금이 닳도록 열심히 일하셨다. 연이는 그런 할머니를 잘 따르고 공부도 곧 잘했다. 반장을 도맡아하며 할머니의 기쁨조가 되었다. 반면 나는 갈수록 빗나가기 시작했다. 어김없이 나에게도 사춘기가 찾아왔다. 교실에서 아이들은 산지 1년도 되지 않은 MP3를 버리고 신형을 샀다며 자랑을 해댔다. 마음 같아선 나에게 구형 MP3를 버리라고 하고 싶었다. 아직까지 공중전화박스에 들어가 연락을 하는 사람은 아마 나 뿐 이였을 것이다. 아이들의 자랑을 들으며 내 처지를 비교하며 지쳐버린 나는 집에 돌아온 뒤 방에서 소리를 질렀다.
“매일 나만 없어. 부모도 없고,MP3도 없고, 핸드폰도 없고 가진 건 저 고물 컴퓨터 뿐이야! 왜 나만 이런 집에 사는 거야!!???”
물론 할머니에게 다 들렸다. 들리라고 더 소리쳤다.
“지긋지긋 하다고!!왜 나야? 나올 때 부모 선택권이 있으면 좋겠다고!!”
더 크게 소리 지르며 책들을 바닥으로 집어 던지며 울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운아~ 무사?(왜?) 학교에서 뭔 일 이서시냐?”
“나가!! 할머니 나가라고 짜증나게 하지 말고!!”
“엠피 뭐..? 귀구녕에(귀에) 꽂앙(꽂아) 댕기는거(다니는것) 그거 사주카(사줄까)?”
“사줄 수는 있어? 그게 얼만 줄 알고?? 어림도 없는 소리 말고 제발 나가!!”
할머니를 방문까지 밀어내다 시피하고 다시 책상에 엎드려 울었다. 울다 지쳐 잠들었다가 연이소리에 깨어났다.
“언니!~ 밥 먹어~ 일어나 빨리”
밥상에 두루치기가 올라와 있었다. 평소 반찬은 해봤자 계란말이와 할머니가 팔다 남은 나물, 김이 전부였는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두루치기가 올라와 있었다.
“운아~ 두루치기 많이 먹으라이? 할머니가 특별히 너 먹으랜 한거난!”
대답을 하지 않고 밥만 먹었다. 죄송했다. 당신 자식들의 사춘기를 다 받아내고 편히 쉬실 나이에 내 사춘기를 받아내고 생활전선에까지 뛰어들고 계시니...할머니의 고단함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마음과 몸은 따로 놀았다. 공부는 뒷전이고 매일 놀러 다녔다. 학교책상은 침대로 쓰였다. 당연히 연합고사에서 떨어지고 나는 실업계로 진학했다. 공부를 하는 아이들은 매우 드물었다. 고등학교 때는 공부를 열심히 하리라 결심 했는데 그 결심은 얼마 가지 못했다. 소위 ‘노는 무리’ 에 끼게 되었다. 그 희열은 대단했다. 친구들과 걸어가면 아무도 우리 앞에서 고개를 빳빳하게 드는 아이들이 없다. 선배들은 우리를 든든하게 지켜줬다. 선생님들에게도 우리는 철저하게 버려진 아이들 이었다. 다른 학교아이들과 교류도 아주 재미있다. ‘우리 친구들’ 이라고 부르며 우리는 똘똘 뭉쳐 다녔다. 쉬는 시간마다 매점 옆 뜰에서 담배를 피는데 숨어서 피는 재미는 엄청나다. 점점 나는 그들에게 동화 되었다. 아니, 완전히 그들이 되었다. 그들은 나였고 나도 그들 이였다. 동생을 챙길 여유도, 할머니를 도울 겨를도 없었다. 집안은 점점 더 어려워 졌다. 할머니는 티내지 않으셨다. 하지만 할머니가 더욱 고단 한 삶을 살고 계신 것은 알았다. 이것만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모른다. 알면서 모른다. 할머니도 날 신경 쓸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아직 어린 연이를 뒷바라지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는지 모르는 지 할머니는 점점 나와 멀어져가는 느낌 이였다. 밖으로만 다니는 나를 잡기 힘들어서 라고 생각했다. 내가 나를 잡을 수도 없는데 70을 훨씬 넘긴 할머니가 잡기는 무리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집과 멀어졌고 집에 들어가는 횟수도 줄어갔다. 그래도 할머니는 집에는 꼭 들어오라고 말했다. 매일 아침마다 항상 부탁했다. 나에게 지쳐 가는지 ‘당부’가 ‘부탁’ 으로 바뀌어 ‘부탁’ 을 하는 것이다. 아닌 밤마다 나를 찾으러 다니고 친구네 집에 전화도 하셨다. 항상 할머니는 나를 찾아 동분서주 했다. 오토바이 절도, 자잘한 싸움들, 공원에서의 음주 등 경찰서도 많이 들락날락 거렸다. 나는 쉽게 들락날락 거렸지만 할머니는 매일 경찰들에게 자양강장제 등을 사오며 연신 죄송하다고 말했다. 난 왜 죄송하다고 하냐고 소리를 버럭버럭 질러댔다. 사실 내가 직접적으로 연관 된 사건은 거의 없었다. 단지 그 무리 속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죄였던 것이다. 그렇게 경찰서에서 나와 집까지 가는 동안 할머니는 단 한번도 나를 질책하지 않았다. “운아~ 너 나이 때는 밥을 잘 먹어 산다! 빨리 집에강(가서) 밥먹자!” 할머니는 대체 왜 혼내지 않는 걸까? 가끔은 궁금하기까지 했었다. 완전히 그들과 동화되어 1년을 지내고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위로는 든든하게 지켜주는 선배들, 아래로는 깍듯하게 우리를 받드는 후배들. 무서울 것 하나 없었다. 나와 친구들은 세상을 다 가졌다. 후배들을 시켜 돈을 걷어오게 했다. 우리가 1학년 때 그랬든 정말 거짓말처럼 돈이 걷혔다. 우리는 그 돈으로 무엇이든 한다. 담뱃값, 술값 정말 할머니가 쥐어주는 손 때 묻은 용돈은 필요가 없다. 수업시간은 취침시간 이였다. 선생님들은 우리가 조용히 교실에서 책상에 엎드려 자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띵띠리리~띵띠리리리리리”
마지막 교시 종이다. 다들 얼굴에 와이셔츠 자국이 가득한 채로 부스스 일어난다. 점심시간 종, 그리고 마지막 교시 종. 제 정신으로 깨어나는 두 번의 시간이 아닐까?
사실 5시 이후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청소시간이면 우리는 화장실로 몰려간다. ‘화장’ 을 하기 위해서. 완전히 변신한 모습으로 우린 나갈 준비를 한다. 청소시간은 화장시간이고 화장시간은 마치 전쟁 같기도 하다. 다들 분투하며 얼굴에 칠을 한다. 옛날 신라 화랑들이 죽을 각오로 어떤 일을 할 때 얼굴에 화장을 했다고 하던데 바로 우리도 엇비슷한 모습일 것이라 생각한다.
“야야야! 아이라인!”
“잠시만 잠시만! 1분만!”
“파우더 파우더! ”
다 같이 버스를 탔다. 맨 뒷자리에 자리 잡았다. 맨 뒷자리에 앉지 않으면 일이라도 날 것 처럼 잽싸게 뛰어가서 차지한다. 다른 아이들이 우리의 지정석인 줄 알고서 앉지 않는 것도 있다. 우리 세상이다. 기사아저씨는 혹시 우리가 버스 내 기물 파손이라도 하지 않을 까 하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개이치 않고 떠들어 댄다. 창밖은 벚꽃나라 였다. 창문을 열고 손을 내밀며 서로 떨어지는 벚꽃을 잡겠다고 난리를 쳐댔다. 기사아저씨가 소리친다.
“머리 들여놔!! 사고 난다!! 이놈들이 정말!”
“아이고~ 예예예예” 비아냥 거리며 양진이가 말했다.
분명 우리의 잘못이지만 항상 그 잘못을 인정하는 법이 없다.
오늘은 별다른 일 없이 다같이 PC방으로 가기로 했다. 역시나 아르바이트생은 우르르 몰려온 우리들은 경계한다. 눈치를 슬슬 보다가 PC방비를 내지 않고 도망가는 경우가 허다 하기 때문이다. 우리뿐만 아니라 비슷한 친구들이 그런 수법을 잘 쓴다. 우리는 일제히 빈자리를 찾아간다. 같은 게임을 깔고 소리를 제일 크게 높인다. 키보드가 부서져라 게임을 하고 있는데 한 사람이 내 귀에 대고 소리쳤다.
“야! 소리 좀 줄여라! PC방 전세 냈어?”
이 사람이 정말 미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내가 많은 친구들과 함께 왔다는 것을 모르는 걸까? 그렇게 한마디를 던지고는 내 옆 자리 수미에게도, 채나 에게도 손가락질을 한다.
“너도! 너도! 여기가 너희들만 사용하는 곳이냐?”
역시나 가장 배짱 두둑한 채나가 눈에 불을 켜고 먼저 나섰다.
“야 너 뭐냐? 어른이면 배려를 해야지 학생들이 학교에서 받은 스트레스 좀 풀겠다는데 지금 뭐라고 지껄이냐?”
우리는 채나 옆,뒤로 몰려들었고 PC방에 모든 눈은 우리를 향해 쏠렸다.
“하~ 이것들이 머리에 피도 안마른 것들이 얼굴에 떡칠만 하면 다 어른인 줄 아냐? 겁도 없이 교복입고 지금 뭐하는 짓이야 어른한테!!”
“교복 입으면 화장하면 안 된다는 법 있냐? 어른은 개뿔 뭣도 안되는 게 가르치려 들지 마 라 ” 수미가 채나를 거들었다.
“이 새끼들이 지금 해보자는 거냐 뭐냐 너네 어디 학교야? 보나마나 꼴통 년 들이지? 부모가 버린 새끼들 같으니”
이 말을 끝으로 상황은 종료 되었다. 수미가 그 사람의 얼굴을 쳤고 그 사람도 수미의 멱살을 잡았다. 친구들이 모두 그 사람에게 달려들었다. 그 사람은 그야말로 ‘포위’ 되었다. 바닥 한 가운데 나뒹굴고 있었다. 수미가 그 사람 가슴을 발로 밟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쳐다봤다. “운이! 고운! 와바 빨리!” 영문을 모른 채 나는 가까이 갔다. 수미가 우리 중 리더 역할 이였기 때문에 조용히 갈 수 밖에 없었다.
“니가 대신 좀 밟고 있어~! 지쳐죽겠다”
수미의 발이 치워지고 내 발이 그 사람 가슴 위에 내려앉았다. 나를 제외한 친구들은 중학생 때부터 사건사고가 많았다. 하지만 난 이렇게 누군가를 발로 밟는 건 처음이다. 도저히 세게 밞을 수 없어 살포시 덮듯 발을 올렸다.
“야! 고운! 뭐하냐 지금? 장난해? 세게 밟으라고!”
멈칫 멈칫하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친구들의 아우성이 들려왔다. 거칠고 서슴없이 욕을 뱉는 친구들과 지내왔지만 난 그 사이에서 ‘어색’ 으로 통했다. 친구들은 항상 내게 어설프고 어색하다고 했다. 좀 잘해보라며 화를 내기도 했다.
“아 고운 뭐하냐 진짜?” “병신이냐 진짜?”
자동적으로 발에 힘이 들어갔다. 왠지 내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바로 그 순간에 말이다. 나도 너희의 친구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한번..두번..세번..네번...” 발은 박자에 맞추어 그 사람의 가슴을 압박했다. 그 사람은 신음소리를 내며 엄청나게 고통스러워했다. 하지만 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친구들의 응원소리만이 들렸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에 있어 항상 소심한 모습을 보였던 나였다. 그래서 놀림을 받은 부분이 있었는데 그런 것들이 완벽히 씻겨 나가는 느낌이랄까? 내 발의 힘이 들어 갈 수 록 친구들의 응원은 더 커졌다. 마치 떡방아를 찧는 것처럼 나는 그 사람을 찧고 있었다.
“오~ 고운 잘하는데? 왠일이야? 고운이? 한수미 자리 넘 보는 거 아니야? ”
그런데 응원소리가 절정에 달했을 때 그 사람의 입에서 피가 넘쳐흘렀다. 그리고 실신한 듯 몸을 가누지 못했다. 나는 당황해서 얼른 발을 치웠다. 그렇게 멍하니 있는데 경찰이 왔다. 누군가가 신고했던 모양 이였다. 그 사람은 병원으로 옮겨졌다. 나는 pc방에서 수갑이 채워진 채 경찰차를 탔다.
“어느 학교 몇 학년 몇 반이야?”
“...”
“야! 안 들려? 이년이 귀가 먹었나?”
“...”
내가 왜 지금 수갑을 차고 있는 것 일까? 내가 사람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일까? 그 사람은 괜찮은걸까? 수 백 가지 생각들로 내 머리는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경찰들이 나에게 욕을 하는 것 같긴 한데 들리지 않았다. 어떻게 경찰서 까지 갔다.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몇 번 친구들의 싸움광경을 목격했지만 난 그저 멀리서 지켜볼 뿐 망보는 그런 아이였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단번에 대범해지게 만들어 버렸는지 나는 몇 분 전 그 곳에 멈춰있었다. 경찰서에 도착하니 비로소 수갑을 풀어주었다. 친구들이 와있었다. 위풍당당하던 모습은 어디로 간 것 인지 다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겁에 질려 있는 듯 했다.
진술서를 쓰란다.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떨리는 손으로 한자 한자 적어 내려갔다. 그런데 수미가 다가왔다.
“경찰 아저씨! 저 때문 인데요 다 저 때문이거든요? 고운이 이년 아무 잘못 없어요”
“넌 또 왜 그러냐? 조용히 가서 앉아있어!”
피해자가 먼저 시비를 걸어왔다는 건 아무런 변명거리도 되지 않았다. 중요한건 피해자의 상태가 좋지만은 않다는 것 이였다.
친구들 한명 한명을 대면해서 조사가 끝나고 나도 힘들게 진술서를 다 써갈 무렵 경찰서 문이 열렸다.
“고운이 할머닌디 우리 고운이 어디 있수과(있습니까)?”
할머니는 진술서를 쓰는 내 옆으로 천천히 걸어오셨다. 할머니가 몇 번 학교로 불려오셨었 을 때와는 다른 느낌 이였다. 할머니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운아! 무슨 일이냐게”
폐지 가득한 작은 수레가 옆으로 쓰려졌다. 할머니는 내 손을 잡았다. 나는 그 손을 뿌리쳤다. 나오려는 울음을 꾹꾹 눌러 담았다. 그리고 눈에 힘을 주고 말했다.
“나가 할머니 나가라고! 가서 연이나 잘 챙겨줘 내가 알아서 하니까”
할머니는 내말을 듣지도 않고 앞에 있는 형사에게 울먹거리며 호소했다.
“형사님! 무슨 일입니까 운이는 절대 그런 일을 할 아이가 아닌데 다시한번만 봐 줍써!”
“할머님 일단 진정하시고 옆에 앉으세요~”
“나가라고!!!”
나는 경찰서가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친구들이 놀라서 내 주변으로 다가왔다.
“야 고운 너 왜 그래? 우리 미성년자야... 우리혼자 아무것도 못한다고...”
정적이 흐르고 할머니가 무엇을 작성하고 경찰들과 오랫동안 말을 했다. 연신 굽신거리며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미칠 것만 같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피해자 가족들이 왔다. 눈에 불을 키고 자기 자식을 때린 ‘년’ 이 어디있냐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그 순간 할머니는 몸이 떨리고 있었다. 그들이 직감적으로 느낀 것인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니 년 들이지? 때련 년 누구야!!!”
수미가 갑자기 일어나서 “나다!” 라고 외쳤다.
그러자 그들이 수미의 머리를 휘어 감았고 몸싸움이 시작 되었다.바로 경찰들이 제지했다.
그리고 할머니가 갑자기 그들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때린 아이는 제 손녀입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선처를 구합니다... ”
경찰서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놀라서 숨을 죽였다. 그리고 나는 당장 일어나서 할머니의 팔을 잡고 끌었다.
“일어나 할머니!!!!뭐하는 거야!! ”
“놔라! 네 잘못도 아니고 다 내 잘못이야~! ”
할머니는 끝내 눈물을 흘렸다. 난생처음 보는 할머니의 눈물 이였다.
그 상황을 지켜보던 피해자 가족 한명이 나와서 할머니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할머니! 할머니가 이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닌 것 같네요! 할머니가 손주 키우시나본데 이왕 이렇게 된 거 국가에게 좀 키워 달라 하세요! 할머니가 제대로만 키웠다면 이런 일이 있었겠어요? 저런 애들은 콩밥을 먹어봐야 정신을 차려요! 가만히 놔두면 사회의 암적인 존재가 된다고!!”

“운이 구나~ 이름이 정말 예쁘네? 난 살레센터 이로사 수녀님이야~ ”
“...”

평생을 버스정류소의 이름정도로만 알았던 법원이라는 곳에서 재판을 받았다. 온 몸을 짓누르는 수갑을 차고 나는 판사님의 ‘7호 처분’ 이라는 것을 받았다. 재판을 받고 1년 동안 센터에 머물러야 한다. 소년원이 아닌 것이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는 것일까? 법정에 서고 TV에서만 보던 판사의 “땅땅땅” 소리를 들었다. 그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봉고차에서 내린 수녀님. 웃으면서 나를 보며 인사한다. 지금 내가 웃으면서 통성명을 할 때인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바로 차에 올라탔다.
제주도를 떠나 서울까지 가서 1년을 생활해야 한다는 것이 정말 싫었다. 게다가 같이 사는 아이들이 모두 죄를 지은 아이들. 난 정말 순간 이였고 그런 아이들과 함께 있고 싶지 않았다. 억울했고 또 무서웠다. 공항에는 할머니와 연이, 친구들이 함께 갔다.
친구들은 미안하단 말을 계속했다. 싫었다. 그냥 내가 이 상황까지 와버린 것이 다 그들 때문인 것 같았다. 함께 있을 때 무서운 것이 없다는 것도 다 부질없었다. 특히 수미의 얼굴을 보는 것이 힘들었다. 수미는 어두운 얼굴로 나한테 단 한마디 하지 못한 채 그저 서있었다.

“갔다 올게요~나 간다 얘들아”
“운아...미안해 고운 이년아 진짜....흑흑”
나와 가장 마음이 통했던 양진이의 울음이 터졌다. 바늘로 찔러도 피한방울 안나올 것 같았던 친구들은 하나 둘씩 울고 있었다. 빨리 그 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유학 때문에 비행기를 타는 것도 아닌데 눈물의 이별이 무슨 사치인가 싶었다. 친구들끼리 선물을 준비했다고 종이가방을 건냈다.
할머니는 나를 한번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수녀님에게로 가셨다.
“수녀님! 그저 우리 운이를 운이 자체로 봐주세요. 운이는 착한아이에요...정말...정말 ”
할머니가 울음을 참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먼저 게이트로 들어갔다. 연이는 끝까지 나에게 한마디도 던지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고 싶었다. 자꾸 뒤에서 누군가가 한번만 돌아보라고 외치는 듯 했다. 하지만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앞만 보고 갔다. 뒤를 돌아보면 내가 울음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울면 안된다. 나는 고씨 집안 장녀다. 장녀역할을 하지 못한다 해도 말이다. 여기서 내가 울어버리면 할머니는 더 힘들어질 것 이고 친구들도 힘들어진다. 특히 저 굳게 다문 야무진 내 동생 고연. 고연 앞에서는 절대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된다. 연이는 내가 못했던 일들을 해주어야 한다. 절대 샛길로 새서는 안 된다.
“안녕 제주도...안녕 할머니...안녕 연아...안녕 얘들아”
주문처럼 되 내이며 비행기를 타고 서울 땅을 밟았다.
“우리 살레센터는 영등포구에 있어~ 가면 언니도 있고 동생들도 있고 나 같은 수녀님 일곱 분이랑 선생님 다섯 분이 있어~ 1년 전에 새로 지었거든? 맘에 들 거야~ 집이 아주 예쁘단다~주말에 가끔 다들 한강으로 가서 중국음식도 불러먹는다? ”
“.....”
“우리 운이가 아직 서울이 어색한가 보네 그치?”
“...”
“수녀님들이랑 선생님들이 빨리 적응 할 수 있게 있는 힘껏 도울게! 겁먹지 말구~”
“언제 봤다고 우리 운이냐? 우리 운이 같은 소리 하네”
“이제 우리 운이라고 해야지~ 살레센터 가족 우리 운이~!”
“가족?.... 웃기고 있다 나 피곤하니까 말 걸지 말아줄래?”
“그래! 거기 누워서 도착할 때 까지 좀 쉬어라 운아~”
그 작은 눈을 도대체 뜰 생각을 하지 않는다. 계속 반달모양, 통통한 볼 살이 실룩실룩 거리며 뭐가 그렇게 신났는지 수녀님은 계속 웃고 있다. 나보다 15살 정도는 많아 보이는데 내 도발에도 기분도 안 나쁜지 참. 수녀님이라서 참고 있는 것일까. 어이가 없었다. 나 같으면 단 한 살이 어려도 까불면 가차 없을 텐데 말이다.
내가 1년을 살아야 한다는 살레센터에 도착했다. 수녀님들과 선생님들이 입구에 마중 나와 내 짐을 들어주었다. 언제 봤다고 또 생글생글 웃고 있는 한 수녀님이 덜컥 내손을 잡았다.
“자! 제주도 소녀여~ 내가 이제부터 센터를 소개시켜줄게~!”
얼떨결에 손에 이끌려 센터소개를 받았다. 곳곳에 있던 그 곳에 아이들은 나를 흥미롭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텃새’ 가 만만치 않을 것임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새로미 에요? 새로미?”
“응! 새로미야 저녁에 소개시간에 정식소개 할 테니까 들어 가있어~”
“새로미가 뭐에요?”
“우리센터에 새로 들어오는 친구들을 ‘새로미’라고 부르거든~ 운이는 새로미야~ ”
바로 나는 코웃음을 쳤다. 웃기지도 않는다. ‘새로미’ 라니 유치원생들에게나 어울릴 법했다.
“여기가 이제부터 운이가 지낼 방이야~ 얘들아 인사해!”
“안녕안녕안녕안녕안녕안녕? 몇 살이야?”
“열여덟...”
“오오오~~ 효주언니! 언니랑 동갑이야!”
“얘들아 새로미랑 얘기하고 이것저것 소개도 시켜줘~ 알지? 저녁시간 때 보자 운아~! 구경하고 얘기들 하고 있어~”
“제주도에서 왔다고? 그럼 너희엄마 해녀야? 아빠는 어부고?”
나랑 동갑이라는 효주라는 애가 말을 걸어왔다. 안 그래도 불편한 내 심기를 건드리는 말 이 였다.
“야 너 제주도 와봤어?”
“아니...”
“와보고서 그딴 헛소리 지껄여라 ?”
“와하하하하하 야 얘 진짜 쎈데? 장난 아냐”
“웃어? 웃겨?”
“왜? 한 대 치려고? 몇 대 쳐서 여기 온 거 아냐? 너 여기서 또 치면 소년원 간다 이번엔?”
“야 그만해 뭐하는 짓이야? 새로미 오자마자”
“언니....”
“네가 운이야? 너보다 한 살 많은 이윤지! 존댓말은 안 써도 된다”
언니라는 그 사람은 얼핏 봐도 키가 170은 넘어 보였다. 엄청난 카리스마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센터의 규칙과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해주고 아이들을 소개시켜주었다.
적응 할 수 없었다. 7시 30분에 일어나 아침밥을 먹고, 아침운동을 하고, 검정고시를 치르기 위한 공부, 그리고 또 다시 밥. 지겹고 짜증났다. 눈앞에 PC방, 노래방, 우리 세상이던 공원들이 아른 거렸다. 센터 지하에 쉬는 공간에 영화감상실, 컴퓨터실, 노래방에 체육실 까지 갖추어져 있다. 하지만 느낌이 살지 않는다. 제대로 된 바깥공기를 맡고 싶었다. 그리고 교복 입고 밤거리를 다니며 밤공기를 마시고 싶었다. ‘적응’ 이라는 것을 할 수는 있나 싶었다.
센터에 오고 1주일이 지났다. 하루가 일 년 인지, 내가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 내가 내가 아닌 채로 그렇게 지냈다. 그날 오후 원장수녀님이란 사람이 나를 원장실로 불렀다.
“운아~ 어때? 우리 집 어때? ”
“나 내보내 줘요. 원장님”
“운아...! 원장님이 뭐야~! 산나 수녀님이라 불러~”
“산나 인지 뭔지 그건 내가 알바가 아니고요 나 제주도로 쫌 보내줘요”
“운이야! 지금 너를 제주도로 보 내줄 수 없다는 걸 너도 잘 알고 있지? 그리고 네가 제 발로 나가버리면 더 큰 일이 벌어진 다는 것도? ”
“그건 내가 알아서 해요 제주도 가서 산속에 숨든 바다에 숨든 그건 내 일 이라고!”
원장수녀님은 내 손을 갑자기 덥썩 잡았다. 그리고 나를 한참동안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운이가 아직 손이 차갑구나! 손을 잡았을 때 따듯해 질 때 까지 우리가 도와줄게”
“이거 놔요! 도와줄 필요 없어 누가 도와달래? 날 내보내 주는 것이 도와주는 거라고!”
손을 뿌리치고 소리쳤다. 그런데 수녀님은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다시 내 손을 잡았다.
“이렇게 손잡고 24시간 내 옆에 붙들어 놓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 그래서 이제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어 두려고~ 우리 센터 딸들 들어올 때 마다 수녀님하고 꼭 이렇게 묶어 두거든? 절대 못 풀어 아무도~”
“새로미 부터 시작해서 보이지 않는 끈까지 아주 가지가지 하네~”
“고운아~ 이름도 정말 예술이야! 이름처럼 우리가 이제 이곳에서 얼마나 곱게 살아갈지 수녀님이랑 얘기 해보자!”
“아 뭐를 얘기하라는 건데요?” 짜증 섞인 말투로 내가 물었다.
“우리 집에서 검정고시 준비랑 함께하는 것이 직업훈련인거 알고 있지? 운이는 뭘 하고 싶어? 미용기술, 컴퓨터 기술, 제빵 기술 말고도 여기 책자에 나온 것들 중에 선택해서 배울 수 있거든? 운이가 한번 생각해보고 다음 주까지 수녀님한테 말해줄래? ”
“아무 것도 하고 싶은 거 없어요”
수녀님은 책자를 내 손에 쥐어주었다. 그리고는 나를 보고 고개를 두 번 끄덕이고 원장실을 나갔다. 나는 원장실을 나와 생활실로 가서 방에 누워 있었다.
효주가 화장을 과하게 해서 밀가루 같은 얼굴을 드밀며 조용히 말을 걸어왔다.
“야! 너도 나갈래?”
“어디를 나가?”
“쉬~잇! 조용히 말해! 어디긴? 밖이지 한번 빨아줘야지! 나도 여기 사실 너보다 딱 한 달 선배야!”
“나가면 안되는 거 아니야?”
“한 시간 자유시간이야! 앞에 잠깐 산책하는 척 하면서 빠져나가자 친구들이랑은 다 약속 했어 어짜피 다 우리 동갑들이고 괜찮지? ”
이곳에 오고 처음으로 귀가 솔깃해지며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얼마 만에 이런 느낌인지...
몇 분 만에 나는 효주와 친구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손을 잡고 눈치를 보다 유유히 살레센터를 빠져나갔다. 나오자마자 소리라도 한번 크게 지르고 싶었다.
효주를 따라 골목 깊숙한 곳 까지 들어갔다.
“야!!!!!!!!!!!!!!!김효주! 이년 와 얘들아 김효주 왔다.”
효주의 친구들이였다. 10명이 조금 넘는 친구들을 보니 제주도에 있는 내 친구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얘는 누구야?”“인사해! 센터친구 고운! 이름이 외자야 운이 이름이고 제주도 애야”
“뭐? 제주도? 야 그러면 말 타고... ”
효주가 재빨리 그 친구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는 내 눈치를 살폈다.
“모르는 소리 하지마! 서울이랑 다를 거 없대~ TV에서 관광지들 있는 시외모습만 보여주는 거란다~ 서울에 있는 거 제주도에도 똑같이 다 있어!”
“그럼 사투리라도 한번 써주면 안되냐?”
“야! 사투리 안써 말투 보니깐 표준어 쓰더라고~ 시끄러운 소리 그만하고 가자”“음..그래? 그래그래 빨리 가서 신나게 먹자고!”
“그래! 황금으로 가는 거지?”
“당연하지! 너 오기 전에 다 준비해뒀어 이 멋진 친구님들께서”
행선지를 묻지도 않고 나는 그저 그들과 함께 어디론가 걸어갔다. 도착한 곳은 허름한 여관 이었다. 먼저 세 명이 들어갔다. 그리고 나중에 나와 효주가 카운터에서 몸을 최대한으로 숙이고 들어갔다. 딱 세 명 분의 요금만 냈기 때문이다. 미성년자 였지만 화장으로 얼굴을 가리니 주인할머니는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은 것이다. 또 왠 만한 대학생들 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이는 느낌의 친구들 이였다. 제주도에 있을 때도 몇 번 이런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익숙하게 행동할 수 있었다.
“빠빰~ 웰컴 웰컴 웰컴이다 얘들아~! 진탕 스트레스 풀어보자고!”
좁은 방에 다섯 명이 옹기종이 모여 앉았다. 그리고 통성명을 했다. 통성명만 했을 뿐인데 뭔가 친한 친구가 된 것 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눈앞에 보이는 과자들과 술병에 기분이 좋아진 것일지도 모른다.
“자 한잔씩 들자~ 짠~”
온몸에 세포가 살아나는 느낌. 이곳이 내가 있어야 할 곳 인 것 같은 느낌. 그 희열은 정말 미칠 것만 같았던 나를 깨워 주었다.
방안 가득 퍼진 담배연기 또한 나의 모든 것을 살포시 연기로 덮어주었다. 황홀했다. 그 연기를 타고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얼마나 먹었을까? 효주가 나를 흔들어 깨우는 소리에 일어났다.
“야야! 고운이 일어나! 일어나! 돌아가야 한다고!!”
겨우 정신을 차렸다. 나는 이런 생활을 계속 할 줄 알고 편안히 먹었는데 돌아간다니 무슨 소리지? 무슨 소리냐고 어디를 돌아간다는 말이냐고 되물어보았다.
“야 빨리 안 들어가면 경찰들이 우리 찾게 되고 걸리면 끝장난다고!”
“무슨 끝장?”
“소년원으로 간다고! 보호관찰 대상자가 무슨 말인지 모르고 온 거냐?”
효주에게 의지하여 겨우 밖으로 걸어 나갔다. 효주는 계속 내 뺨을 때렸다.
“이렇게 정신 못 차리고 들어가면 우리 술 마신 거 다 알아! 큰일 난다고! ”
“으..으흥..응응 알았어”
센터 앞에 도착했다. 효주가 내 얼굴을 두 손으로 잡고 세게 흔들었다.
“야! 앞이야 지금이 아홉시야 우린 센터 규칙 어겨서 벌 받게 된다고! 그런데 술에 담배까지 폈다면 이야기가 달라져~ 그냥 센터 안에서의 벌로 끝나지 않는다고! ”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효주말로는 내가 소주 반병에 맥주 두 잔을 마셨다고 했다. 평소 친구들이랑 마실 때는 소주 두병도 거뜬하던 나였다. 제주도 소주 ‘한라산’은 전국 소주 중에 가장 높은 도수라고 큰소리 땅땅 치고는 이꼴 이라니...한발 한발 조심히 센터 앞까지 다다랐다. 시계는 9시 20분을 가르켰다.
입구 로비에는 모든 수녀님들이 앉아있었다. 아마도 우리 둘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죄송해요...” 효주가 땅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갓 수녀님이 되어 첫 생활을 이곳에서 시작한 지 3주일이 되었다는 스물다섯의 글라 수녀님은 우리를 보자마자 폭풍 같은 눈물을 쏟아 냈다. 그리고 우리 둘을 끌어안았다.
수녀님들은 우리를 기다려 준 것이다. 원래는 보호관찰대상자인 우리가 없어지면 경찰과 연락해서 사건경위를 조사하고 그 수위가 높으면 결국 소년원으로 가게 된다.
우리가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는지 40명의 아이들이 계단에서 빼꼼히 1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원장수녀님이 우리를 응접실로 데리고 갔다.
“어떻게 된거니? 효주야 니가먼저 말해봐~”
“죄송해요...”
“운이야 이리 가까이 와볼래?”
나는 가까이 갔다. 계속 어지러운 상태였다. 있는 힘 껏 정신을 차리려 노력했다.
“술 먹었구나! 술이 먹고 싶었구나 너희들?”
“...”
우리 둘 다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돌아와 줘서 고맙다~ 시간이 늦었으니 어서 올라가서 씻고 자도록 해~!”
아무런 질타도 하지 않았다. 어떤 각오를 하고 응접실로 들어갔는데 질타하는 소리는커녕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 어떤 생각 이신 걸까?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일제히 시선은 우리 둘에게 쏠렸다. 나는 방에 들어서면서 서서히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몸이 다시 내 맘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느낌을 받았다.
“아 냄새 봐라 진짜~ 너희 진짜 제 정신이 아니구나?”
센터에 오고 가장 많이 변해서 온 센터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서연이가 말했다.
“미안해 얘들아...미안해요 윤지언니...”
센터에서 이런 일탈행동은 정말 엄금 중에 엄금사항이다. 다들 비슷한 생활을 하다 온 친구들이다. 학생신분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하다가 온 이들. 그런 행동들을 반성하고 고쳐주고 변하게 도와주는 곳이 이 곳이다. ‘학생’ 으로서의 본분을 찾는 것이 이들의 공통적 목표이다. 그런데 단 한명이라도 어긋난 행동을 보이면 애써 참고 고쳐가고 있던 것들이 무너질 수가 있다. 그래서 서로서로 의지하며 비로소 나이에 맞는 옷을 입는 것이다.
조금 늦은 걸음마를 배우며 한걸음씩 힘들게 걸어가고 있는 이들에게 뒷걸음질 하게 만드는 것이다. 윤지언니가 앉으라며 먼저 입을 열었다.
“고운이 너 술 얼마나 먹었냐? 꼴 봐라 ”
“많이 아..안 먹었어”
“김효주 넌 내가 그렇게 일러주고 충고 했는데도 결국 이런 짓을 하냐?”
“....미안해 언니”
“나한테 미안하다고 해서 될 것이 아닌 거 알잖아 온 식구들 마음 흔들리게 해놓은 거 어떻게 책임 질거야? 누가 밖에 나가 놀기 싫어서 가만히 있는 줄 알아? ”
“다신 안 그럴게 언니...” 효주가 진심을 담아 말하는 것이 나는 느껴졌다.
“효주 너는 운이 진짜 센터에서 잘 할 수 있게 도와주고 운이 너는 이제 여기 가족이라는 거 잊지 말고 모든 행동해. 다들 나가는 날 까지 최선을 다하라고 ”
그 날 이후 나에게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표정 없이 1주일 동안 살았던 나는 표정을 찾기 시작했다. 내가 함께 살기 싫다던 ‘그런 아이들’ 이 아니었다.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목표로 하고 열심히 공부하기로 했다. 생활시간표에 맞춰 착실하게 생활했고 모든 것에 마음을 열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힘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분명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자신을 이기려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나를 점점 자극 한 것 같았다.
아이들이 직업훈련 시간에 나는 혼자 자유 시간을 가졌다. 돌아다니며 아이들이 저마다 하고 싶은 분야를 열심히 배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분명 학교에서는 철저하게 버려지고 외면당한 채 학교와 멀어졌던 아이들 이였을 것이다. 평범한 중.고등학생들 처럼 미래를 논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냥 그렇게 사는 것에 익숙해져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 와서 같은 꿈을 꾸며 살고 있다니. 효주는 미용사를 꿈꾸며 머리를 만지고, 윤지언니는 메이크업을 배우고, 서연이는 열심히 제빵 기술을 배우며 제빵사를 꿈꾼다. 이곳에 와서 문학적 소질을 발견한 혜리는 열심히 글을 쓰고, 첨삭 받는다. 공모전에서도 다수의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 말로는 혜리는 가장 지독하게 마음의 문을 닫고 있던 아이라고 했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그 문을 서서히 열었고, 글 속에 자신의 이야기를 쓰면서 아픔을 승화시켰다고 한다.
다들 그렇게 생전 가져보지 못한 제대로 된 꿈을 꾸며 아픔을 승화시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직업훈련을 하기로 정했다. 이유는 어릴 적 추억 때문이다. 아빠는 퇴근하는 길에 할머니와 우리 자매를 위한 빵을 자주 사다 주셨다. 나와 연이가 좋아하는 슈크림, 소보루빵. 할머니를 위한 크림빵, 아빠가 좋아하는 단팥빵. 몇 개의 빵만으로 저녁에 한동안 빵 파티가 벌어졌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더 이상의 빵 파티는 없었다. 빵을 먹어도 아빠가 없으니 더 이상 빵 파티가 아니었다.
이 결심을 원장수녀님께 말씀드렸다. 그리고 필기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자습실에서 열심히 필기시험 기출문제를 풀고 있었다. 잠시 몸을 풀고 있었는데 밖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던 로사 수녀님과 눈이 마주쳤다. 수녀님은 놀라면서 특유의 그 웃음을 지으며 내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나는 쑥쓰러워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 날 저녁시간 이였다. 다 같이 밥을 먹는데 로사수녀님이 내 옆으로 오셨다.
“야야! 얘들아~ 내가 이 운이를 데리고 여기까지 왔다는 거 아니겠냐! 허허허”
“오~~~” 아이들은 함성을 질렀다.
로사 수녀님은 마치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처럼 브이를 그려대며 아이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낮에 했던 그 모습처럼 모든 치아를 드러내며 웃으며 내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살레센터 속에서 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로사 수녀님과도 많이 친해졌다. 넘어져도 웃고 혼을 내면서도 늘 싱글벙글 웃는 로사수녀님 에게 나는 ‘벙글 수녀님’ 이 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다. ‘싱글’ 은 뭔가 홀쭉한 사람이 웃는 모습 같고, ‘벙글’ 은 딱 로사 수녀님처럼 둥글둥글 통통한 사람이 웃는 모습 같았다. 그래서 ‘벙글’ 수녀님이라고 지었다. 하지만 왜 ‘싱글’ 이 아닌 ‘벙글’ 인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정말 결혼안한 ‘싱글’ 인데 별명 까지 ‘싱글’ 이면 내가 상처 입을까봐 운이가 배려를 해 준거지? 그치? 어우 어우 어우~~ 속 깊다 깊어 헤헤헤 하하하 ”
소녀처럼 싱글벙글 웃으며 이런 말씀을 하시는데 아니라고 말할 수 없어서 나도 함께 싱글벙글 웃으며 넘겨 버렸다.
공부한지 한달 만에 드디어 필기시험을 봤다. 그리고 당당히 합격했다. 컷트 라인을 훌쩍 넘는 점수로 나는 그 날 센터에서 하루영웅 대접을 받았다. 그렇게 조금씩 자신감을 얻기 시작했다. 물론 내가 다짐을 잘 지켜간 것도 있었다. 하지만 남다른 나를 위해 도와준 센터 가족들. 항상 기도해주고 기다려주고 들어주는 수녀님,선생님들. 적응을 도와주고 함께해준 친구, 동생들. 특히 윤지언니는 내게 정말 친 언니라는 느낌까지 주었다. 이렇게 남들에게 감사함을 느낀 것도 정말 오랜만이다.
5월이 왔다. 5월의 첫 주말. 바로 옆 시오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살레 가족 체육대회가 열렸다. 나는 피구선수로 출전 했다. 일주일 전부터 맹연습을 했으니 각오도 대단했다.
첫 게임에서 나는 살아남았다. 이리저리 펄펄 날아다녔다. 초등학생 때부터 피구는 항상 내 주 종목 이였다.
두 번 째 게임이 시작되고 나는 더욱더 승부욕이 불타올랐다. 공을 잡고 있는 힘껏 반대편 으로 던졌다. 그 순간 이였다.
“위 잉~”
갑자기 하늘이 하얘지고 나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운아!!!!정신차려봐!! 고운!!!!”
여기저기서 나를 목놓아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뺨을 철썩철썩 때리는 느낌도 났다. 하지만 나는 점점 초점이 흐릿해 졌고 그 후 기억이 나질 않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 이였다. 내 옆에는 로사 수녀님이 잠들어 있었다.
“수녀님...!” 말 한마디 하기도 힘들 정도로 몸이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운아! 운이 정신 들었어? 야 나 진짜 너 땜에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다!”
“나 왜 이런데요?”
“피구를 오래간만에 해서 무리가 왔다 나봐~ 그러게 살살 좀 하지!”
일주일 간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완벽히 몸을 회복하고 로사 수녀님의 차를 타고 센터로 돌아갔다. 아이들도 일주일 만에 봤다. 그 많은 아이들이 모두 병문안을 올 수 없으니 다들 나중에 퇴원하면 보기로 했다고 한다.
“괜찮아? 너 없는 동안 나 벌써 반죽 들어갔다!”
서연이가 은근히 보고 싶었다는 말을 한다. 효주는 자신의 MP3를 필요할 때 마다 빌려주겠다고 글썽인다. 윤지언니는 일주일 동안은 내 몫의 빨래,청소를 해주겠다고 했다.
“와~ 자주아파야 겠네!” 실없는 농담도 던져 보았다.
다시 센터로 돌아온 날 저녁 로사 수녀님이 우리방으로 들어오셨다.
“얘들아~ 나 잠시 운이한테 데이트 신청해도 되지이이이??”
일몰 모습을 함께 바라보며 수녀님의 손을 잡고 집 주변을 산책했다. 그리고 수녀님은 나를 성당 안으로 데리고 갔다. 성당 안은 아주 깜깜했다. 수녀님은 조용히 앞으로 나가서 촛불을 키셨다.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아름다웠다. 그리고는 내 옆에 조용히 앉으셨다.
“운아...”
“네~”
“수녀님한테 이제 마음 많이 열어준 거 맞지?”
“네에...”
“수녀님이 지금부터 어떤 얘기를 해줄 거야. 운아 일단 잘 듣고 수녀님이 묻는 말에 잘 대답해줘 알았지?”
뭔지 모르게 이상한 기운이 감돌았다. 덜컥 겁부터 났다. 도대체 무엇일까? 무슨 말이기에 벙글이 수녀님 입가에 웃음기조차 싹 가시게 한 걸까?
“운아~ 네가 제주도에 있을 때 말이야~ 자의든, 타의든 성관계를 한 적이 있니?”
“네????”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갑자기 이런 당황스러운 질문이라니.! 그것도 성당에서 말이다.
“운아...” 벙글 수녀님은 내 배에 손을 올려놓았다.
“운아...지금 여기에 4개월 동안 너와 함께한 네 아이가 있대...”
믿을 수 없었다. 지금 벙글 수녀님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꿈인가? 아직 병원에서 깨어나지 않은 채 꿈속에 있는 것 일지도 몰라.
“네...? 네...? 뭐요? 아이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응! 운아...네가 쓰러졌던 날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 해 주셨단다”
“그..그럴리가요...그럴 리가 없...” 말을 이어나가려는 순간 지난 2월의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오빠들과 친구들과 함께 1박 2일 동안 해수욕장 근처 민박집에서 놀았다. 그래. 그 때 제정신도 아닌 채 다들 술에 취해 버렸 던 날. 다음날도 비몽사몽 제대로 다들 만취해버렸던 그 날 이였 던 것이다.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괴로웠다. 말도 되지 않는 일이다. 어떻게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 날 수 있지? 저번에 효주랑 술을 먹었을 때 평소 내 주량에 미치지 못하는 양을 마시고 내 몸이 그렇게 되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 이였던 것인가?
“운아...” 벙글 수녀님은 말없이 나를 안아주었다. 나는 수녀님을 밀쳐내고 소리를 질렀다.
“뭐야! 왜! 왜! 왜 나야? 또 나야? 어쩌라고!!! 나한테 어떻게 하라는 건데!!!”
그리고 내 배를 주먹으로 계속 내리쳤다.
“죽어! 죽어! 왜 넌 또 어디서 나타나서 날 괴롭혀! 왜! 왜! 왜! 아니야! 아니야! 아니라고!!”
수녀님은 놀라서 내 손목을 잡으며 나를 진정 시켰다.
“운아! 고운! 정신 차려! 왜이래! 고운!!”

수녀님들을 제외한 나머지 식구들은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리고 내가 어떠한 결정을 내리기 전 까지 비밀로 부치기로 했다.
냉수를 몇 잔 먹고 나서야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정신을 차렸다 해도 내 정신이 아니었다. 생활실로 올라가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수백 가지 생각이 들었다.
‘분명 민석 오빠다. 이제 와서 오빠한테 이 사실을 말하면 반응은 어떨까? 할머니나 연이가 받을 충격은? 내가 이곳에서 검정고시와 제빵사시험을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고 했을 때 눈물 흘리며 좋아했던 분이 바로 할머니 였다. 내가 아이를 낳는다 치자. 그럼 그 아이의 인생은? 나는 내 인생 책임도 못 져서 지금 열여덟이 되어서야 다시 걸음마를 하고 있는 사람이다. 나 혼자의 삶도 아직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사람이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다음 날 아침이 되자마자 벙글 수녀님에게로 달려갔다.
“수녀님! 저 제주도에 전화를 좀 해야겠어요”
수녀님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상담실에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전화를 빌려주셨다.
“채나야 나야...안부는 나중에 묻고 민석이 오빠 번호 좀 가르쳐 줄래?”
“야! 운이 너 진짜 너무하네! 얼마 만에 전화 와서 민석이 오빠 타령이야?”
“제발 채나야 나 지금 정말 급해서 그래 나중에 다 얘기 해줄게!”
민석이 오빠의 전화번호를 받고 나는 다급하게 민석이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민석이 오빠 핸드폰 맞죠?”
“어~ 누구냐?”
“저 운이에요...신평상고 고운이요....”
“야 너 감옥간애 아냐? 감옥에서 전화하는 거야? 근데 무슨 일이야? 전화를 다하고?”
비아냥 거리는 그 태도는 여전했다.
“아니요...저 보호처분 받고 센터에 와있어요. 저 오빠...사실은요...사실은...”
“야! 뭐야? 말을해 말을!”
“2월에 모래펜션 갔을때...그때...”
“아 사람 속 터지게 하려고 작정했어? 빨리 말해라”
“그 때 오빠가 저한테...그니깐... 저 오빠 애기 가졌다구요!!” 나는 두 눈 꼭 감고 얘기했다.
“....뭐...뭐? 뭐라고? 너 지금 무슨 소리야?”
“오빠 애기를 가진 것 같아요...저도 어제야 알았어요”
“그래서 지금 나보고 어쩌라고? 설마 책임 져 달라고? 그때면 지금 벌써 4개월 일 텐데 지금이야 알고서는 나한테 전화 와서 뭐 어쩌라는 거야?”
“아...아니 그게 아니라요 오빠!”
“진작 알았으면 낙태를 하든 어쩌든 했을 거 아냐? 4개월이나 되고서는 지금 뭘 하겠단 거야? 게다가 너 지금 상황을 봐라~야 암튼 이일로 다시 우리 엮이는 일 없었으면 좋겠다 황금같은 휴일아침에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야 이게? 나 끊는다 ! 이제 나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고 네가 알아서 하도록해! 아참! 돈 몇 푼은 줄 수 있으니까 문자로 계좌 남기던가~”
이런 비수 같은 말들을 남기고 전화는 끊겼다. 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수치 스러웠다. 그리고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상담실 밖으로 나왔다. 벙글 수녀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말하지 않았지만 수녀님은 무엇인가 직감적으로 느낀 것 같았다. 반 쯤 정신이 나간 채로 수녀님과 병원으로 향했다.
산부인과로 갔다. 다들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수녀님과 함께 온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가 산부인과로 넋 나간 채로 들어가는 것이 그들에겐 흥미로웠나 보다.
“뭘봐 이 개새끼들아!!!!” 나는 병원이 떠나가라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벙글 수녀님은 놀라서 그들에게 사과를 했다.
“미안해요~ 죄송해요 지금 아이가 아파서 그래요~ 죄송합니다! 죄송.죄송”
“아 뭐가 죄송하다는 거야! 저 사람들이 우리를 이상하게 쳐다보잖아요!!!”
센터에서 어렵게 찾아가던 나의 본 모습을 잃어버린 채 다시 그전에 나로 돌아오고 있었다.
내 차례가 왔다. 초음파로 내 배를 보여주었다. 분명 아이가 보였다. 그것도 아주 선명하게 아이의 형태가 보이는 것이다.
“아이는 건강하고 산모 상태도 좋습니다~ 다만 이제부터 관리를 잘 해주셔야 해요 무리는 금물입니다~ 탄산음료나 카페인, 술, 담배는 당연히 금지 인거 아시죠?”
말도 안된다. 이건 말도 안된다. 나는 2월 그 날 이후로도 엄청난 음주와 흡연을 해왔다. PC방에서 종일 게임을 하고, 오토바이 뒷자리에 타서 전력질주도 자주 했었다.
그런데 아이는 도대체 그것을 어떻게 버텨 낸 걸까? 아기야! 그냥 떠나가지 그랬니!!
“운아 아기 사진이야~” 벙글 수녀님은 내게 아기 초음파 사진을 건내 주었다.
어떤 느낌도 없었다. 그냥 거짓말이길 바랐다. 그리고 아직도 이것이 현실 이라는 것을 믿지 못했다. 센터로 돌아가서도 나는 무서움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았다. 매일 밤 악몽에 시달렸다. 아이가 나와서 뭐라고 속삭이는데 자세히 들리지가 않았다.
벙글 수녀님은 다시 벙글이를 되찾고 내게 평소처럼 대했다.
“운아~ 다음 검진은 2주일 뒤야~!” 귓속말로 속삭이고 사라 지셨다.
아이를 지울 수도 없다. 아이는 이미 아이의 모습으로 자라고 있었다. 그런 아이를 죽이는 끔찍한 짓은 할 수 없었다. 그럼 어쩌지...? 어쩌지...? 매일 밤 낮을 가리지 않는 악몽과 해결 못할 고민들로 나는 상상 못할 정도로 괴로움에 시달렸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난 어느 때 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생각했다. 아이와 함께 죽어서 다른 세상에서 아이와 함께 사는 것이다. 아이를 낳고 ‘미혼모’ 딱지가 붙은 못난 엄마와 평생 살아가느니...재판까지 받고 보호처분 받은 엄마,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엄마와 살아가느니 함께 죽는 편이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언제까지 계속되는 악몽을 견딜 수도 없는 노릇 이였다. 나중에는 더 못 견뎌서 내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리면 벙글 수녀님이 또 다른 수녀님들이 슬퍼하고 걱정하고 함께 힘들어 할 모습도 보기 싫었다. 동요할 아이들의 모습도...
그 곳에 함께 가면 아빠가 마중 나와 주시겠지? 나중에는 아빠가 그 곳에서 우리 둘을 지켜줄 거라는 생각에 들뜨기 까지 하는 것이다. 내일이다. 내일 정기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가는 날이다. 내일을 아빠 곁으로 가는 날로 잡았다. 스탠드를 켰다. 센터에서 한 번도 꺼내보지 못한 아기의 초음파 사진을 꺼내고 그 뒤에 마지막 편지를 써내려갔다.
“고 운의 마지막 편지. 할머니~ 드디어 마음잡은 큰 손녀 모습 보지도 못하고 내가 먼저 가서 미안해요~ 할머니는 한 50년 뒤에 와요~ 연이 혼자 두지 말구요 한 번도 죄송하단 말, 사랑한단 말 못해서 죄송해요 하지만 항상 사랑 했어요 지금도 사랑해요 할머니~ 고 연! 언니가 언니 노릇 한 번도 못하고 너한테 피해만 주다가네~ 언니 몫 까지 두배는 더 살다가 나중에 보자! 항상 지금처럼만 열심히 해! 미안해... 신평 상고 내 친구들아~ 채나,송희,해리,재희,수미,혜리,소라,지은,문지 몰라 일단 이것 밖에 기억이 안 난다! 이제라도 정신 차리고 공부 열심히 해봐~! 100살 때 다들 보자고~ 먼저 가서 미안하다~ 벙글 수녀님, 원장수녀님, 리바 수녀님 그 외 수녀님들과 선생님들~ 감사하고 죄송해요. 저를 믿어주시고 기다려주신 것 정말 감사드려요~엄마라고 꼭 한번 불러보고 싶었는데 이 곳에서라도 불러 볼게요! 엄마! 마지막으로 살레 아이들아~ 언니들! 정말 고마워 항상 열심히 해 지금처럼~ 절대 변하지 말고 알았지?...다들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슬퍼하지 말아주세요. 웃고 싶어서 떠납니다.
좋은 사람들 곁에 있다 떠나서 기분 좋은 고 운 올림 ”
마음이 한 결 편안 해 지는 것이다. 그렇게 마지막 편지를 쓰고 그 날 밤 편히 잠이 들었다.
다음 날 평소보다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잠에서 깼다. 점심식사를 마친 후 벙글 수녀님과 함께 병원으로 갔다. 아이가 무사하다는 이야기 나또한 건강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완전히 마음을 비웠기 때문에 어느 때 보다 평화로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수녀님은 네가 이렇게 다시 웃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싱글벙글 거렸다. 수녀님과 함께 수납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고 있었다. 직감을 느꼈다. 지금 이였다. 지금 나는 벙글 수녀님을 떠나 화장실로 가야했다.
“수녀님! 화장실 갔다 올게요”
“응! 어서 갔다와~”
화장실에 들어서자 조금씩 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와이셔츠 단추를 하나 씩 풀었다. 이 를 위해 오늘 티 위에 와이셔츠를 걸쳐 입었다. 그리고 주머니에는 초음파사진, 그 뒷장에는 나의 마지막 편지가 적혀 있었다. 와이셔츠와 허리띠를 함께 묶고 칸막이 쇠막대에 묶었다.
그리고 동그라미를 만들어 나를 맡겼다.
“안...녕...” 세상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새로 올 세상에게도...

“...”
눈이 뜨였다. 아빠였다.
“아빠!!!!!” 다가가서 아빠품에 안겼다.
“운아 너 왜 이런 짓을 했어! 아빠도 하고 후회하며 이곳에서도 편히 못 지내고 있는데!”
“아빠..보고 싶었어 아빠...아빠...” 나는 엉엉 울며 초등학생 때로 돌아갔다.
“고 운! 내 딸 고운아 아빠가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아니야 아니야~ 이제부터 지켜주면 되잖아~”
“무슨 소리야! 저리가 빨리!~ 나가! 빨리! ”
아빠는 나를 밀쳐냈다. 나를 계속 어딘 가로 밀쳐냈다. 엄청나게 큰 구멍으로 다 달았다.
“아빠!!! 왜그래!! 이러지마 나 빠질 것 같단 말야~ 아빠!!”
아빠는 나를 그 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나는 그 깊은 구멍으로 빠져들었다.
그 구멍에 빠지고 나는 잠시 정신을 잃었었다. 살며시 다시 눈을 떴다.
뭐지...? 왜 벙글 수녀님이 보이는 거지? 원장 수녀님도 보였다. 리바 수녀님도 보였다. 눈을 반쯤 힘들게 떠 보았다. 지금 나는 어디로 온 것 일까? 눈을 더 크게 뜨려 노력했다.
“고운 이 녀석아 정신이 쫌 들어? 응? 정신이 든 거야??”
원장 수녀님이 소리쳤다. 내가 끄덕거렸다 그러자 벙글 수녀님이 병실이 떠나갈 듯 울기 시작했다. 벙글 수녀님이 우신다. 딱 싱글벙글 밖에 모르는 줄 알았는데 통곡을 하신다.
희미하게 눈을 뜨고 고개를 들려 했다. 목에서 엄청난 통증이 느껴져서 일어날 수 가 없었다. 원장수녀님이 눈물 가득한 얼굴로 내 손을 잡았다.
“운아...그대로 있어!”
수녀님들이 다 같이 손에 손을 마주 잡았다. 수녀님들의 마주잡은 손은 떨리고 있었다.
“감사합니다...정말...정말로 감사합니다.”
나는 3일 만에 깨어났다고 했다. 병실 화장실로 비춰진 내 모습은 처참했다. 목에는 보라색 멍 자국이 가득했고 얼굴도 내 모습이 아니었다. 그렇게 한참동안 내 모습을 지켜보다가 갑자기 정신이 번뜩 들었다.
“수녀님! 아기는요? 아기는??”
벙글 수녀님은 두 손을 내 배에 갔다 대더니 엷은 미소를 띄었다.
“아직 숨 쉬고 있는 거에요?”
벙글 수녀님이 입술을 굳게 다물고 고개를 끄덕 거렸다.
일주일 뒤 나는 퇴원을 하고 다시 살레센터로 돌아갔다. 봉고차에서 센터까지 가는 길은 그 어느 때 보다 멀고 길었다. 어둠 속을 지나 다시 내게로 내리쬐고 있는 밝은 햇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그리고 내 옆을 지키는 이 든든한 엄마들. 무슨 행복을 주려는지 지독하게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계속 살아남아 준 내 뱃속에 아이. 지금 나는 어디를 살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할머니는, 또 연이는 함께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나는 사는 것처럼 살 수 는 있는 것일까? 내가 지금 어떻게 다시 걸어 다니고 차를 타고 창 밖 풍경을 볼 수 있는 것인지 혼란스러웠고 정신이 없었다. 어떻게 길을 따라 왔는지도 모르게 다시 나는 살레센터로 왔다. 내리자마자 온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 딛는 것도 정말 힘들었다. 내 떨리는 몸을 수녀님들이 말없이 부축해 주었다.
생활실로 돌아왔다.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문 앞에서 서성거렸다. 도저히 문을 벌컥 열 수가 없었다. 나는 이미 예전 고운이 아닌 것이다. 문 앞에서 손잡이에 손을 올리고 한참을 가만히 이었다. 손잡이 위로 떠있는 손이 점점 더 떨려왔다.
“고운이! 뭐하냐? ”
뒤를 돌아보니 윤지언니가 있었다. 손잡이 위에 떠서 떨고 있는 내 손위에 언니의 손이 겹쳐지고 마침내 생활실의 문이 활짝 열렸다. 여전한 아이들 그리고 여전한 내 자리.
“야! 고운!!!!”
“운이 언니!!!”
아이들이 나를 반긴다. 분명 나를 반기고 있다. 이들은 나의 상황을 알고 있는 것일까? 그저 병원에 잠시 입원했다가 돌아온 줄 아는 것일까? 그런 느낌의 반김이다.
“봐라 왜 문 앞에서 서성거리긴 서성거리냐?”
윤지언니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앉지도 눕지도 못한 채 멍하니 있었다. 그냥 예전 같지 않음을 느꼈다. 그들은 여전히 똑같은 모습일지 모르겠지만 난 다른 것이다. 나의 임신사실은 센터에도 큰 파장을 일으킬 것이고 아이들이 동요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는 또 다시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한다. 그 곳에서는 또 얼마나 많은 벽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 일까?
그렇게 나는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있었다. 내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는지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혹시 전해들은 나의 이러저러한 소식들이 다시금 그들에게 되새겨 져 내가 또 다르게 느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날 저녁 세상에서 가장 넘기기 힘든 저녁식사를 했다. 항상 시끌벅적 했고 밥풀이 이곳저곳 튈 정도로 격렬한 수다가 오갔던 식사시간이다. 내가 다시 옴으로 인해서 이렇게 살레센터가 조용해진 것이다. 미안함, 그리고 엄습하는 두려움에 20분이 20일 같이 느껴졌다.
저녁식사를 마친 후 생활실로 가는 계단을 올랐다. 언제 올지 모르는 무서운 통보를 기다리며 입은 바싹바싹 말라갔다. 15계단도 되지 않는데 힘들게 올라가고 있었다. 그 때 효주가 내 어깨를 툭 치더니 아무 말 없이 나를 끌고 계단 밑으로 내려갔다.
“어디가?”
“야! 우리 얼마만인데 왜 그렇게 입 닫고 살고 있는 거냐? 나가서 배드민턴이라도 치자!”
“아냐 난 들어가서 쉬려고~”
“고운! 너 지금 점심 때 와서 밥 먹기 전까지 계속 쉬어놓고 무슨 또 쉰단 거냐? 따라와”
효주는 막무가내로 나를 배드민턴장으로 끌고 갔다. 배드민턴 도구들이 있는 보스코실로 들어갔다. 내가 자주 사용하던 형광 빛 배드민턴 라켓 바로 위에 있었다.
“이봐라! 주인님 기다린다고 제일 위에서 웃고 있네!”
문을 열고 배드민턴장으로 나가려는데 갑자기 모든 불이 꺼졌다.
“어? 뭐야? 정전인가? 빨리 나가자~”
효주는 말없이 나를 보스코 실 가장 중앙으로 밀었다. 그리고 그 곳에 놓은 의자에 앉혔다.
“뭐하는 거야?”
그 때 스크린이 내려오고 ‘거위의꿈’ 를 배경음악으로 한 동영상이 플레이 되었다. 자막이 크게 떴다.
“TO. 고운...왜 그렇게 어깨가 쳐져 있는 거야! 제주여성의 당참을 보여주겠다며! 우리 앞에서 ‘감수광’ 가르쳐주던 그 고운 어디 갔니! 뭘 그렇게 고민해? 우리는 살레가족 이잖아! 지금은 거위지만 나중에 밖으로 나가서는 백조가 될 우리잖아~! ”
자막이 멈추고 살레아이들이 한명 씩 나와서 한마디씩 하는 장면이 나왔다.
“야! 나다 너의 베스트 프랜드! 김효주다~ 너 그런 모습 진짜 아냐~ 돌아와라 응? 난 조카가 생겨서 참 좋다 ”
“운이 언니! 나 서연이야~ 언니 나랑 같이 감귤빵 개발도 하고 커서 빵집도 차리기로 했잖아! 어깨 펴! 힘내!”
“윤지언니다~고운이! 내가 너 최대한 도와줄게! 알지? 나 진짜 네 언니인거? 아기한테는 큰 이모로 불리길 바란다! 다들 이렇게 웃으면서 널 기다리고 있다~ 빨리 돌아오고 다시 함께 이불 덮자! ”
식구들이 돌아가면서 나에게 영상을 남겼다. 다들 나의 모든 것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알고도 나와 함께 생활하겠다고 여전히 그대로인 모습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목이 메이고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원장수녀님이야 운아! 우리는 여전히 너를 사랑하고 너와 함께하는 가족 이란다 괜찮아~ 다 괜찮아”
“고...고운아...! 그냥 사랑해! 여전히 네가 어떤 모습이든 사랑한다~!!”
수녀님의 모습에 나는 참던 눈물이 한꺼번에 터져버렸다. 울먹이며 말을 이어나가다 ‘사랑해!’ 라고 외치는 벙글 수녀님의 모습..그리고 마지막으로 ‘괜찮아. 우린 가족이니까 여전히 사랑해’ 라는 자막이 뜨고 불이 켜졌다. 살레가족들이 모두 뛰어나와 나를 안아주었다. 그렇게 가장 든든한 울타리 속에서 그대로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아니 새롭게 살레가족이 되었다. 정말 ‘가족’ 이 되었다. 할머니와 동생에게 나의 새로운 소식을 전할 때 또 다시 고비가 오는 듯 했다. 하지만 살레가족이 있어 그 순간도 버틸 수 있었다.
배가 불러오는 크기만큼 가족들과의 관계가 더욱 더 끈끈해 졌다. 나를 짓누르던 향수병과 나의 잘못된 습관들이 나아져 갔다. 아무 꿈도 아무 미래도 없이 그저 내일은 내일의 방향대로만 흘러갔던 내 인생도 바뀌어 갔다.
식구들과 함께 아기의 태명도 지었다. 살레센터에 와서 희망을 봤으니 ‘망이’ 라고 지었다.
나의 최대 목표이던 제빵사 시험에 합격했다. 그것도 살레센터 사상 최고점으로 말이다. 내가 합격증을 들고 들어오자 살레센터는 그야말로 파티분위기 였다. 다들 박수치며 신나하는데 벙글 수녀님은 또 울고 계셨다. 가서 수녀님을 세상에서 가장 힘껏 안아주었다. 효주와 윤지언니가 가마를 만들어 나를 생활실 까지 태우고 올라갔다.
“야야 망이까지 있으니까 어우 바위덩어리가 따로 없네! 어휴”
효주와 나는 같은 날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그날은 울음바다 였다. 식구들과 자원봉사 선생님들 까지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농구공 두 개는 든 것 같은 내 배에 대고 다들 소리쳤다.
“망아! 너희 엄마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아? 엄마 힘들게 하지 말고 조용히 있다가 나와야해~! ”
봄에 들어왔던 살레센터에서 첫 겨울을 맞이했다. 11월이 왔다. 내 배는 정말 동산만큼 불러있었다. 그리고 망이가 세상 빛을 보는 날이기도 하다. 식구들은 모두 내게 맞추는 생활을 했다. 혼자 어떤 작은 일도 하게 두지 않았다. 살레식구 막내부터 가장 연장자인 원장 수녀님까지 모든 이들이 나와 망이를 배려해주는 것이다. 식사 중에 구역질이 나면 모두가 달려들어 부축해서 화장실로 데려다 주었고, 나도 모르게 예민해지면 다들 내 눈치를 보았다. 벙글 수녀님은 초저녁 쯤 항상 통기타를 들고 오셨다. 태교음악이라며 노래를 불러주셨다. 그렇게 다들 애쓰고 힘쓰셨다. 그 결과로 나는 11월 15일 아주 건강한 여자아이 ‘망이’ 를 낳았다. 망이는 세상에서 가장 따듯한 그곳에서 수십 명의 이모들과 함께 자라났다. 초보엄마 초보 중에 초보엄마인 나는 젖을 물리는 것 빼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선생님, 수녀님들이 합세해서 망이를 돌보아 주었다. 그렇게 망이는 11월부터 3월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때 까지 살레센터에서 살았다. 잘 울지도 않고 ‘까꿍’ 한번이면 ‘까르르’ 하고 웃는 망이는 살레가족들에게 기쁨을 주었다. 3월이 왔다. 내가 이 곳에 어떻게 들어오고 또 망이는 어떻게 낳았으며, 1년은 어떻게 지나간 것인지...떠나기 전날 밤은 잠을 한숨도 못 잤다. 먼저 이곳을 떠난 윤지언니와 효주. 그들도 이런 마음 이였을까?
‘고 운! 안녕! 이것은 슬프지만 행복한 안 녕! 그리고 망이도 안녕! 꼭 다시 보자’
1년간 살레센터에서의 시간은 꿈 이였고, 친구였고, 가족 이였다. 나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은 곳.
“안.녕....!”
마지막으로 벙글 수녀님의 차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벙글 수녀님은 입술을 깨물며 우리가 탑승구에서 보이지 않을 때 까지 손을 흔들어 주셨다. 드디어 1년 만에 내 집으로 간다. 그리고 달라진 내 모습을 보여줄 많은 이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그리고 우리 네 식구가 웃으며 살 그 곳으로 간다. 심장이 아주 큰 소리로 뛰기 시작했다.
제주도에 도착했다. 망이는 첫 비행인데도 아주 씩씩하게 잘 버텨냈다.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는 가슴이 터져 버릴 것 같았다. 연이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본 망이의 모습에 적지 않게 당황한 모습이었다.
드디어 현관문을 연다. 손이 바르르 떨렸다. 들어가자 마자 나는 할머니를 찾기 시작했다.
“할머니! 운이 왔어요! 검정고시랑 제빵사 시험 다 합격한 할머니 손녀 운이 왔어요!”
할머니는 거실에서 등을 돌리고 앉아 계셨다. 무언가를 드시고 계셨다. 그리고 게슴츠레 나를 쳐다 보셨다.
“운이? 운이 와샤?(왔니) 운이야 그런데 이 애기는 누게고?”
“할머니! 할머니 증손녀야~ 예쁘지? ”
“으으응? 증..증손녀? 증손녀가 뭐에요 언니?”
“응? 할머니! 왜 그래 손녀의 딸이 증손녀 잖아~할머니~?”
“네 네! 저는 할머니 아닙니다! 저는 김 순 채 입니다!”
“하...하...할머니?”
연이가 울음을 터트리며 소리쳤다.
“할머니 치매야! 치매라고!! 두달 전에 초기증상 보이고 지금은 완전히 심해졌어....”
“연아...무슨 소리야 그게? 고연! 왜 나한테 안 말했어?”
“나도 전화 하려고 했다고!!그런데 이거 좀 봐...”
연이가 편지 하나를 내밀었다. 할머니가 치매 초기일 때 잠시 정신이 돌아왔을 때 썼던 편지라고 했다.
“운아~ 할머니가 아무래도 네가 집에 오면 너에게 운이라고 불러주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우리 손녀 이름 백번 천번 부르고 있어~망이도 꼭 보고 싶은데...네가 올 때쯤 내가 기적처럼 몸이 나아서 이 편지가 네 손에 없었으면 좋겠다. 만약 이 편지를 보고 있다면 나를 요양원으로 보내다오. 고모에게 전화해서 꼭 나를 요양원을 보내다오~ 운이야 미안하다, 그리고 사랑한다 할머니가 운이, 그리고 연이를 많이 사랑한다. ”
할머니...내가 살레센터에서 할머니랑 연이와 즐겁게 빵파티를 할 생각에 얼마나 행복했는데...그리고 검정고시 합격증과 제빵기능사 합격증을 가장 먼저 자랑하고 싶었던 것도 할머니인데...울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복잡한 집안사정이 가득한 고모들에게 연락할 수도 없는 노릇 이였다. 가장 행복 하고 싶었던 오늘 이였는데... 온 몸에 힘이 빠졌다. 일단 망이를 재우기로 했다. 자장가를 불러주며 재우는데 할머니가 와서 자신도 재워달라고 하셨다. 망이와 할머니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며 재워주었다. 그리고 멍하니 집안 곳곳을 둘러보았다. 여전히 그대로 였다.
문득 본 옷장 맨 위에는 아빠의 유품들이 담긴 상자가 있었다. 그 상자 속에서 이것저것을 꺼내어 보았다. 우리어릴 적 함께 찍은 사진들. 그리고 아빠의 안경,볼펜. 그리고 눈에 익은 노란 책이 있었다. 어디서 봤더라?... 한참을 고민하다가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아빠가 돌아가시던 날 이웃 아줌마 댁에서 보다가 다 보지 못했던 그 책이었다. ‘꽃들에게 희망을’ 책 첫 장에는 아빠의 글이 새겨져 있었다. ‘훗 날 나의 자식에게 읽어주고 싶다! 1987年’
하늘로 향해 높이 치솟아있는 애벌레 기둥. 수십만의 애벌레들이 서로를 밟고 올라가서 하늘로 다다르는 것. 그들은 아무도 하늘에 무엇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단지 다른 이들이 그렇게 행동 하길래 자신도 이끌려 그 무리가 된 것 이였다. 중간에서 만난 줄무늬애벌레와 노란 애벌레는 그 무리를 빠져나와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논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줄무늬애벌레는 다시 기둥위엔 뭐가 있을까 궁금해 노란애벌레를 떠나 다시 올라간다. 혼자 남은 노란 애벌레는 자연 속에서 먹이를 먹고., 고치를 짓고.긴 밤을 자다 드디어 아름다운 노랑나비가 된다. 그 모습을 본 줄무늬애벌레는 결심을 하고 다시 기둥을 내려온다. 평범히 먹이를 먹고 고치를 짓고 기나긴 시간 끝에 드디어 나비가 된다. 둘은 행복하게 꽃들 사이로 날아다니면서 맛있는 꿀을 먹는다. 그리고 다른 애벌레들도 서서히 이 모습을 아름답게 느기고 평범하고 아름다운생활로 돌아가 나비가 된다.
“아빠...아빠는 왜 우리와 함께 나비가 되지 않고 기둥에게 져 버린 거야..?.”
아빠가 눈 앞에 아른아른 거렸다. 아빠 생각에 먹먹해 졌다. 그래, 나비가 되면 된다. 나도, 할머니도, 연이도, 그리고 망이도..그렇게 다들 어른이 되어 가는 것이다. 거꾸로 흘러가는 할머니의 시간을 내가 맞춰주며 할머니가 내게 그랬 듯 감싸주어야 한다. 살레센터에서 내가 내딛는 첫걸음을 배우고 느꼈다. 이제는 정말 나에게 모든 것이 맡겨 진 것이다. 내가 그저 기둥을 만들어 위태롭게 하늘을 궁금해 할 것인가. 아니면 내가 이겨내고 떼어냈던 절망적이고 어두운 그 것들을 생각하며 고치를 만들어 나중에 나비가 되어 날아 갈 것인가? 고운나비가 되자! 그래 날아갈 모습을 상상하자!
현관문을 박차고 나갔다. 제과점 아르바이트 공고를 찾았다. ‘중졸’의 학력이 걸린다고? 아니? 나는 당당하게 나의 이력서를 제출했다. 쉽게 일자리를 주지 않을 것을 안다. 하지만 내가 그 것에 동조하여 어깨가 쳐지면 안 된다.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모든 곳에 들어갔다. 꿈틀거리는 나를 본 것일까? ‘하루방 베이커리’에서 연락이 왔다.
새벽같이 나가 반죽을 하고, 어제 넣어둔 반죽을 꺼내고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만은 벅찼다. 그리고 나는 서연이와 함께이다. 외가댁이 제주인 서연이가 제주로 내려왔다. 나와 함께 꿈을 이루겠다고 함께 하고 있다. 이렇게 다른 애벌레 둘이 만났다. 우리는 ‘감귤빵’ 을 엄청나게 연구하고 있다. 사장님도 우리의 연구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곧 우리의 이름을 딴 엄청난 맛의 ‘감귤빵’ 이 출시될지도 모르겠다. 가장 먼저 우리 집 어른아이 우리 할머니에게 시식권한을 부여할 것이다.
나는 ‘어른연습’ 중이다. 모든 이들이 함께 한다. 시도조차 못했을 어른연습은 좋은 리듬과 느낌으로 현재도 한창 진행 중이다.

제23회 부산가톨릭문예작품공모전 심사평  
 등록일 : 2011/11/18 17:32

올해 공모전에는 전 장르에 걸쳐 186명, 517편이 응모되었으며, 9명의 심사위원이 장르별로 나누어 심사하였다. 대부분 이메일을 통해 응모했는데, 편집 과정에서 미숙한 곳이 많았다. 산문의 경우 단락을 나누는 것, 원고지 쓰기의 원칙, 철자 띄어쓰기 등 기초적인 정서법 등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또한 주제에 대해 집중하는 내용이 부족하기도 했다.
아쉽게도 이번에는 최우수작으로 추천할만한 작품이 없었다. 이 공모전이 순수 신인들의 등용문인 만큼, 등단한 작가나 기성작가들은 제외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입선이건 선외건 조금만 문학적 소양을 갖추면 경지에 오를 수 있는 작품들이 많았다. 입선에 들지 못한 분들도 용기를 가지고 분발해 주시기를 바란다.
우수작 이경자 씨의 ‘나는 오늘도 빨래를 한다’는 상상력이 매우 돋보이는 작품으로 시어들의 유기적 연결이 자연스럽고 의성어의 적절한 구사와 영혼의 빨래씻기로 이어지는 착상이 기발하였다. 큰 발전이 기대된다.
다른 우수작 양지영 씨의 동화 ‘아름다운 가게의 크리스마스’는 사물을 바라보는 따스한 눈과 동심의 세계를 잘 그리고 있으며,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환상의 세계를 통하여 동화의 재미를 느끼게 하는 작품이었다.

부산가톨릭문인협회회장 정경수 대건 안드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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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8 2024년 제4회 열 줄 소설 공모전 (2024. 06. 10(월) ~ 07. 21(일)) & 수상작 발표 (08. 22.목)* updateimage
상상마당아카데미
1161   2024-07-08
427 원미닛고 제4회 1분소설공모전 (2025.6.2~6.30)* newimage
원미닛고
3   2025-06-08
426 2025년 제 25회 산림문화작품공모전 (2025.6.3~7.23 접수) * image
산림조합중앙회
13   2025-06-04
425 제29회 근로자문학제 수상자 명단 발표(2008/8/5) 2
근로복지공단
4952   2008-08-05
424 2024년 제 10회 철도문학상 공모전 안내 (2024. 4. 22.(월) ~ 6. 2.(일)) & 수상작 발표 image
한국철도문화재단
1107   2024-07-07
423 2025년 고용보험 수기 공모전 (2025.4.7~2025.5.9.까지 접수) image
한국고용정보원
57   2025-04-22
422 "실업극복 수기 당선작" image
매일신문
4420   2009-01-30
421 2010 제 17회 대한항공 여행사진공모전(2010.9.3 마감) 2 image
대한항공
2713   2010-07-23
420 2025년 제11회 철도문학상 공모전 안내 (2025. 4. 21.(월) ~ 6. 1.(일) 마감)* image
한국철도문화재단
46   2025-04-23
419 2022년 오뚜기 제2회 푸드 에세이 공모전 ( 2022년 2월 15일(화) ~ 4월 5일(화) ) & 수상작 발표 (2022.05.06) image
오뚜기
2385   2022-03-20
418 【부산광역시】 제1회 계단문학상 공모전 : 2025. 3. 24.(월) ~ 2025. 5. 12.(월)까지 접수 * 1 image
소통24
108   2025-04-17
417 2018년 문화예술제제39회 근로자문화예술제개최 안내 (문학분야 : 2018년 7월 16일(월) ~ 8월 31일(금)접수) image
근로복지공단
2247   2018-03-15
416 2024년 국민내일배움카드 우수사례 수기·콘텐츠 공모전 (2024. 6. 10.(월) ~ 2024. 7. 14.(일)) & 수상작 발표* image
고용노동부
1208   2024-07-09
415 영축총림 통도사 화엄산림법회 신행수기 공모(2020.12.30. 마감 & 당선작 발표 image
불교신문
2086   2020-12-16
414 2021년 제21회 산림문화작품공모전 (2021.6.1.화~7.28.수 17시 마감) & 수상작 발표 image
산림조합중앙회
2313   2021-07-18
413 2017년 제5회 등대문학상공모전 (2017.9.30. 마감) ?& 수상작 발표 image
울산항만공사
2617   2017-09-02
412 2019년 제11회 손바닥문학상 공모 (2019년 11월10일 밤 12시 접수 마감) image
한겨레21
2223   2019-10-17
411 2024년 대한민국 편지쓰기 공모전 (2024.5. 14.(화) ~ 9. 10.(화) ) & 당선작 발표* image
우정사업본부
1208   2024-07-09
410 2024년 제 24회 산림문화작품공모전 (2024.6.3~7.31 접수) & 당선작 발표 image
산림조합중앙회
1211   2024-06-08
409 2024년 제1회 “어르신의 재치와 유머” 짧은 시 공모전( 2월 15일~3월 15일까지) & 당선작 발표 image
대한노인회
1326   2024-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