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
제21회 신라문학대상 공모(2009. 10. 1 - 10. 31 (1개월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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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문협 | 2683 | | 2009-08-12 |
46 |
[엄지공모] '피서지에서 생긴 일'을 전해주세요 ( 8월 4일(화)~8월 13일(목)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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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 2728 | | 2009-08-06 |
45 |
김안과병원 당뇨병성망막증 수기 공모전 개최 (2009.8.9 일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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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안과병원 | 2797 | | 2009-07-09 |
44 |
제 10회 전국 가사 · 시조 창작 공모전 (2009. 9. 15 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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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군(한국가사문학관) | 3103 | | 2009-07-05 |
43 |
제19회 대한민국 장애인 문학상(접수 : 2009. 8.24. ~ 9.18) / 미술대전 작품 공모(접수 : 2009.9.21 ~ 9.2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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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장애인개발원 | 2795 | | 2009-06-30 |
42 |
육군3사관학교 제8회 충성대 문학상 공모 (2009.8. 28까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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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3사관학교 | 2794 | | 2009-06-11 |
41 |
지마켓과 함께하는 시골 밥상 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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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 2448 | | 2009-06-11 |
40 |
무궁화 스토리텔링 공모전(7/14 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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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 3868 | | 2009-06-01 |
39 |
테마수필 제6회, 1백만 원 고료 독후감 공모전(2008년 7월 20일 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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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수필 | 3208 | | 2009-05-09 |
38 |
부평 삶의 문학상 공모: 2009년 4월 1일(수) ~ 11월 30일(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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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구문화재단 | 2535 | | 2009-05-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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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경기도시공사“경기사랑愛”수필공모전(9/ 30마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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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시공사 | 3322 | | 2008-09-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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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 문예진흥기금 문학창작지원 사업 추가공모안내(추가 1차 접수기간 : 3. 9 ~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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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진흥기금 | 2643 | | 2009-03-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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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제 5회 지하철 에피소드 공모전 (2009년 1월 23일까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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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AM7 | 4916 | | 2009-01-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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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기념 이벤트] 공지영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2009-02-19~2009-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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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 3534 | | 2009-03-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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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씨 '엄마를 부탁해' 부산 낭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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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 2950 | | 2009-02-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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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당선작 고료 1억원) (2009년 8월 31일마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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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 2794 | | 2009-0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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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백만원 현상 공모 여성조선 시 문학상 (2009.3.22.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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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조선 | 2936 | | 2009-0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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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하신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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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책사랑 | 2809 | | 2009-0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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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멀티 문학상' 공모..4월 30일까지 제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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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재경신문 | 2878 | | 2008-1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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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진주신문 가을문예 공모 (2008년 10월 31일 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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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신문 | 3113 | | 2008-10-21 |
서울디지털대학교 제 1 회 사이버문학상 발표
6000여 편이 응모한 서울디지털대학교 제 1 회 사이버문학상이 막을 내렸다. 심사위원인 고은 시인, 이재무 시인, 유성호 문학평론가, 오봉옥 시인, 손택수 시인, 길상호 시인 등은 당선작으로 최란주의 ‘줄장미 붉은 손바닥’ 외 4편을, 가작으로 정상조의 ‘등 푸른 추억’ 외 5편을 선정했다. 2007년 서울디지털대학교 제 1 회 사이버문학상은 응모자가 848명, 응모작품은 6000여 편에 달했다. 이는 서울권 일간지 신문의 신춘문예를 상회한 수치이다. 뜨거운 관심에 감사드린다. 당선작은 500만원의 상금과 함께 계간 <시작>에 작품게재, 등단 시인으로 인정되며, 가작은 200만원의 상금과 상패가 수여된다. 시상식은 2월 22일(목) 오후 6시 서울디지털대학교 2층 회의실에서 열린다.
당선작 - 최란주 ‘줄장미 붉은 손바닥’ 외 4편
가작 - 정상조 ‘등 푸른 추억’ 외 5편
예심 심사위원-오봉옥(시인, 서울디지털대학교 교수), 손택수(시인), 길상호(시인)
본심 심사위원-고은(시인, 심사위원장), 이재무(시인, 『시작』주간), 유성호(문학평론가, 한국교원대 교수)
* 당선작 - 최란주
줄장미 붉은 손바닥
초여름 아침 등촌동 자동차공업사 옆 담벼락을 지나는데 줄장미 붉은 가시가 홑겹의 옷깃을 잡아끌었다. 출근길 발걸음이 함부로 뻗친 가시에 걸려 잠시 허둥거렸다. 제 毒手에 찔린 줄장미 꽃모가지들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옷깃을 움켜 쥔 줄장미 독 오른 손바닥들이 옛 애인을 붙잡고 늘어지던 내 넝쿨손 같아 도망치듯 전철역까지 줄행랑을 쳤다. 가슴을 쓸어내리는 손바닥이 십년 전처럼 까칠했다. 젠장, 외로움에 긁히고 그리움에 긁히는 게 사랑이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니는 사람들은 조금씩 긁힌 손바닥을 갖고 있다. 사람들은 쉽사리 상처를 보여주지 않는다. 악수가 따듯한 건 상처가 상처를 어루만져주기 때문이다. 가슴을 쓸어내리던 손바닥을 펴면 아직도 털어지지 않는 붉은 가시들, 종일 손바닥이 따가웠다. 태양의 모가지가 뭉툭뭉툭 지고 있었다.
카페 라 캄파넬라
큐빅이 박힌 하이힐을 신고 표범무늬 미니스커트에 엉덩이를 걸친 女子 살갗이 슬쩍 보이는 반라의 시스루를 두르고 알 듯 모를 듯 미소를 흘리며 서 있는 女子 얇고 가느다란 시선만 던져도 울퉁불퉁 심장이 뜨거운 사내들이 침 삼키며 눈독을 들이는 女子 뒤로 다가가 허리를 덥석 안아 버릴까 얇은 시스루를 확 벗겨 버릴까 이런, 그 女子의 입술에서 따듯한 영혼이 실핏줄처럼 퍼져 나가게 돌려 버릴까 젠장, 숨 막히게 맑은 투명한 에스라인 허리를 손가락 끝으로 간질여볼까 혀끝으로 꼭지가 짓무르도록 핥아 볼까 아아, 女子의 입 속으로 바람을 불어넣는다면 배가 부풀어 오를까 아니면 스커트가 벌렁거릴까 사내들이 동공이 커진 눈동자를 번뜩이며 다가온다 이런, 스커트 밑으로 밀고 들어오는 이 부드러움은 무엇인가 이봐, 눈 큰 겁쟁이, 축제 준비는 다 됐니? 자, 그럼 실컷 만져 봐, 뇌쇄적인 女子의 몸매, 이런 와인 잔은 아마 처음일 걸?
늦겨울
느그들은 나 죽기 전에 시집들 안 갈래 요새 아그들은 참말로 애인들도 잘 사귀드만 느그들은 여태 뭣했냐 저 시랭이 마을 사는 끝자는 아들을 셋이나 낳고도 그 머이메와 끝내뿔고 딴 서방을 꿰차고서 딸 하나를 낳아서 알콩달콩 잘도 키우고 살드그만 느그들은 여태 뭣했냐 넘들은 시방 손주를 장개보낸다고 청첩장을 뿌리고 난린디 나는 딸 셋 중 하나도 못 치워서 복장이 터져뿔것다 참말로, 근디 시방 어디여, 여즉 사무실이라고, 그놈에 사무실은 매미맹키로 붙어서 끄륵끄륵 일만 해싸면 무슨 똑바라진 사내자식 하나 엮어준다디 인제 그만 일을 끝내뿔고 싸게싸게 나와서 술 한 잔 먹어제끼고 맘에 든 사내가 있거던 거그서 그냥 모른척 자빠져쁘러 지도 사람인디 나 몰라라 하것냐 뽀뽀는 안 허더라도 업어다 이불에는 눕히지 않겄냐 그렇게 갈켜줘싸도 그노메 좋은 머리는 어따가 쓰는겨 초등핵교도 안 댕긴 명옥이도 남재 만나서 잘만 살더그만 대학까정 나온 느그들은 여태 뭣했냐 잔소리라 생각허들 말고 퍼득 정신차려 시간이 없당께 고놈이 고놈잉께 인제 고만 고르고 화딱 소매를 끌던지 바지가랑이를 잡아댕기든지 하랑께 술 몽땅 묵고 자빠져쁘러 고것이 최고여 그라고 나중 지가 안 그러고 고놈의 술땀시 그랗게 되야부렀서야 하면 그만이랑께
땡볕 법정
나는 당신의 마음을 홀린 죄로 땡볕 법정에 불려나와 재판을 받게 되었으니 그리움을 방사한 죄가 크다. 이에 법정구속을 명한다. 청포도 푸른 그늘 아래 남아있는 키스자국에 대한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고, 당신을 향한 나의 마음이 다른 이에게 도주할 우려가 있기에 오늘 이 시간부터 나를 추억 속에 감금하니 내가 가야할 장소는 후박나무가 내려다보이는 당신의 창문이다. 넓은 잎사귀 갈피마다 채워진 당신이란 책장을 넘기며 나는, 사랑이란 누구를 홀리는 것이 아니라 진정 사랑하는 이를 위해 미소를 머금는 것임을 알 때까지 나는, 당신이란 글자의 행간 사이로 쏟아져 들어오는 땡볕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또 무너지고
네모난 겨울
-법원사무실에서 바라본 풍경
육법전서 너머로 보이는 거리에는 실어증에 걸린 사람들로 북적인다. 한 장 남은 달력 위로 다급하게 달려드는 발자국 밑으로 마른 햇볕이 끼어든다. 오후 네 시의 아찔한 구멍 속으로 비둘기들이 들락거린다. 법원입구 플라스틱 화분에 담긴 툰드라꽃배추가 미색의 소환장을 던진다. 덜컹 내려앉는 사람들의 놀란 가슴을 짓누르는 판결문 낭독소리. 판결문은 양자 누구에게도 위로가 되지 못한다. 돌아서는 고소인의 뒷모습과 구속된 피고인의 뒷모습은 동전의 양면처럼 닮아 있다. 완벽한 증거들로 가득 찬 네모난 형사공판조서 속에서 각진 얼굴들이 빠져나오려고 아우성이다. 법원사무실에서 바라본 풍경 속에서 태극기는 여전히 높이높이 바람에 펄럭인다.
가작 - 정상조
등 푸른 추억
여기가 어딘지 몰라, 눈만 휘둥그레져 있는 고등어. 쭈그리고 앉아 있는 어머니의 뱃살처럼 켜켜이 쌓인 고등어는 시장바닥에 피어오르는 한기와 사람들의 흥정 소리에 대가리 없이도 그 사이를 헤엄쳐 나갔다. 대야에 남은 고등어는 그래도 대가리는 갖은 채, 밥상 위에서 지 몸 타는 줄 모르고 백열등만 응시했다. ‘또 고등어야’ 등 푸른 연기에 침묵은 소금처럼 스며들었다. 침묵의 수평선이 눈을 뜨자, 고등어는 아이의 입을 헤엄쳐 갔다. 목구멍에 잔가시가 걸려 아파하는 울음소리에 어머니는 맨밥을 밀어 넣으셨다. 고등어는 그 많은 가시를 삼키고도 아프지 않았을까. 아이가 남기고 간 상처들의 잔해를 어머니는 도둑고양이처럼 맨밥과 함께 목구멍으로 넘기셨다. 밤마다 파도치는 어머니의 뱃속에 고등어는 커가고 있었다. 다음 해, 간인지 쓸개인지 알 수 없을 커다란 어항이 어머니 몸속에서 나왔다. 그 곳에 고등어는 없었다. 다만 대형 고등어가 살았다는 붉은 흔적뿐. 퇴원 후에도 어머니는 뱃속에 고등어를 키우신다. 가끔, 내뿜는 담배연기 사이로 헤엄치는 등 푸른 추억이 떠오르곤 한다
마녀
4층 금강극장에 한 마녀가 살았다
그녀의 이름은 순자
마법에 빠진 동네 총각들은
TV에서 볼 수 있는 영화들을 극장에서 봤다
사내들이 계단을 오를 때마다 받쳤던
순정 한 방울, 주머니 속 먼지 두 스푼에 속눈썹 말아 올라간
그녀는 빗자루를 타고 종횡무진 날아다니며
사내들의 마음을 쓸어 담았다
마녀가 황금 빗자루를 쫓아
스크린 속으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자
탈색된 머리카락을 엮던 영식이 형은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털을 부여잡고 울었다
장대비가 쏟아지던 날
꼬여버린 빗질 따라 마녀사냥꾼들이 동네로 들어왔다
붉은 부적딱지에 집이 불타오르자
마녀의 어머니는 불을 끄기 위해 애를 썼지만
도착한 것은 구급차였다
이듬 해 병실에 마귀할멈이 나타났다
그녀의 얼굴에는 수면제 4알, 한숨 세 스푼이 만들어낸
층층 계단이 놓여 있었다 금강극장 계단보다 높았다
그녀의 손에는 회한(悔恨)에 젖은 대걸레가 쥐여져 있었다
스크린의 턱을 넘다가 남자 발에 걸려
빗자루는 걸레가 되었다고 했다
부적 딱지를 많이 삼켜
굽어진 그림자 얼룩으로 가득 찬 병실.
그녀는 오늘도 잘 닦기지 않는 얼룩을 어루만지고 있다
젖은 걸레가 마르는 날,
나는 순자에게 소박한 빗자루를 선물하고 싶다
단단한 붕어빵
좁아터진 붕어빵틀 속에
밀가루 반죽처럼 길게 늘인 콧물 단
꼬마 하나 이리저리 뛰어 다녔죠
코가 막혀 숨을 몰아쉬니
한숨쉬면 복달아난다는 말에 꼬마는 숨을 참으며 살았죠
넘실거리는 소주에 그날 번 일당 띄우고
큰소리로 항해하신 아빠 이름은 마도로스 김
밤마다 암고양이 울음소리가 꼬마 귓등을 간지럼 태우면
어김없이 다음날에는 얼어버린 붕어빵 몇 개 놓였지요
아가미까지 말라버린 붕어빵을 꼬마는 먹지 않았어요
킁킁거리는 소리에 소주 뚜껑으로
꼬마 주머니는 아빠 술배처럼 불룩해졌죠
꼬마는 붉은 해가 뜨는 밤보다
잠들 무렵에
암고양이 울음소리가 안 들릴까 걱정했죠
울음소리 들리지 않으면 아침이 오지 않았을라나,
더 이상 탈 배가 없어 대낮부터 들어온 아빠가
엄마 가슴에 술 붓자, 푸른곰팡이 찍히는 소리 들리네요
꼬마는 답답해 아궁이 뒤에서 몰래 한숨을 내쉬자
푸른곰팡이 집 전체에 퍼져, 꼬마 몸까지 피워 오르네요
꼬마는 101마리 달마시안 그린다고 수많은 푸른 점에
개 그림 그리는데 한마리가 부족하네요
집나간 개새끼, ‘멍멍’ 동네방네 짖어대는 소리가 정겹네요
그 날 밤 암고양이 울음소리 사라져 꼬마는 무서웠어요
한숨 소리에 암고양이 제 새끼 놔두고 달아난 줄 안
꼬마는 한숨을 감추기 위해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어요
마을 어귀에서 담배를 피우며 꼬마는 붕어빵을 굽네요
암고양이가 먹어본 건 단단한 붕어빵이라
후후 불어가면서요
최후의 만찬
맨주먹으로 세상을 주무르겠다고 하던 시절
공장 앞 부동산 화투판에서 공갈빵을 맛 본 아버지는
도너츠 구멍으로 보이는 세상이 작아보였다
도너츠에 이스트를 넣으신 아버지
부풀다 부풀다 터져버린 그 날,
도너츠는 설탕 옷 대신
붉은 차압딱지로 포장되어 나왔다
그 해 공장은 붉은 시럽에 빠져 익사했다
아버지는 직원들과 최후의 만찬을 가지기 위해
도너츠 구멍처럼 작아져 버린 방에
직원들은 서로 부둥켜안은 채 둥글게 앉았다
반죽은 여자가슴 주무르듯 해야 한다는 김씨 아저씨
세상 모든 것은 구멍 없이는 살수 없다고 소리치던 최씨 아저씨
모두들 채울 수 없는 목구멍에 술잔을 부었다
술에 불어버린 방에서는 한숨만이 여기저기서 피어올랐다
아버지는 도너츠가 불던 휘파람소리가 듣고 싶어 했지만
더 이상 만들 손이 없어 입으로 도너츠를 만들었다
집안 가득 흰 도너츠는 우주선처럼 날아오르며
매캐한 설탕 가루를 집안 가득 뿌렸다
긴 한숨을 타고 우주선이 내 머리 위로 착륙하려 하자,
아버지는 우주선을 향해 재떨이를 날리셨다
휭 휭 날아오르다 내 이마밖에 닿지 못한 무능함에
더욱 커진 우주선이
시럽처럼 붉어져가는 방을 졸라매자,
사람들은 울음 섞인 휘파람을 내쉬었다
면도
무딘 주름살 꺼내놓은 채
이젠 날도 서지 않은 면도기로
사내는 면도를 해본다
칼날 사이에 켜켜이 쌓인
사내의 모진 인생을 면도기는 안고 살았다
탁탁 털어내지만,
사내의 매끄러운 인생에 잘려나간
아버지의 두개의 손가락만이 세면대 위에 떨어진다
턱 주위에 거품을 바르자, 거울에 아버지 얼굴 보인다
제 숨 다 쉰 거품들
‘지 애비 닮아가네’ 소리에 사라지고
욕실에 던져진 구멍 난 양말에서
아버지 배꼼 얼굴을 내민다
무딘 면도날에 베인 상처 틈으로 흐르는
시간은 뚝 뚝 끊어진다
상처를 막자, 사내의 그림자에서 걸어 나오는 아버지
무딘 칼날로 그림자를 깎으려는 사내는
깎기지 않자 면도기를 버린다
혼자 면도를 할 수 있는 사내에게
아버지는 일회용이었다
팽팽한 면도기로 난도질을 해봐도 떨어지지 않는 그림자
불을 끄자
사내가 없고 아버지도 없다
섞이지 못한 채 고여 있는 침묵뿐.
숨바꼭질
달빛 속으로 적막마저 숨은 밤
달동네에서 숨바꼭질이 시작된다
도둑고양이가 품고 있던 바람은
술래의 주먹 속에서 비명을 지른다
술래는 무너진 담벼락 따라 숨은 사람을 찾아 나선다
처음으로 잡혀 나온 사람은 ‘늘봄상회’할아버지
달동네에 뿌리내린 수염을 술래는 송두리째 뽑아간다
폐지를 덮고 자던 박스아줌마는
식어버린 아궁이에 숨어있다, 연탄집게에 엉켜 나온다
일찌감치 몇 푼의 보상금을 받고
숨바꼭질을 끝내는 사람들이 더러 나타난다
달빛 파편이 시퍼렇게 빛난 집에는
아버지가 버리고 간 소주병에 갇힌 채
숨어있는 남매 하나 깨져 나온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수묵화를 그렸던 집에
아무개 할아버지가 주검이 된 채 실려 나온다
모두 발견됐지만 끝끝내 한 소녀가 발견되지 않았다
숨바꼭질의 주도권은 술래에게 있으리라.
술래는 단단한 이빨을 드러내며 한 입 한 입 달을 집어 삼킨다
게걸스럽게 씹어대던 빛나는 잇몸에 흘러내린 핏줄기는
도둑고양이일까
이빨 틈에서 떨어져나간 이름표가
신문 하단 미아 찾기에 얼굴 없이 내려앉는다
달빛 찢어
마디마디에 붙인 대숲에서는
못 찾겠다, 꾀꼬리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 예심 심사평
문학의 위기 그 중에서도 시의 위기가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깊이 있는 사유를 요구하는 시의 언어보다는 즉흥적이고 유희적인 유행어에 더 환호하는 세대, 또한 그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자기검증도 없이 말초감각의 시어를 만들어가고 있는 시인들, 어느 때보다도 이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반면 가속화되고 있는 시대와 문화 환경 변화 속도를 어떻게 받아들여 새로운 감각의 시 역사를 만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이어지고 있는 시대이다. 이번 문학상 심사는 두 가지 문제에 대한 불안감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주었다.
우선 제 1회의 문학상 공모임에도 불구하고 응모자가 848명이나 되었고, 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예상의 수치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결과가 나오기까지 많은 노력들이 선행되었겠지만 일차적으로 문학에 관한 관심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 중에는 캐나다 교포로부터 조선족, 법조인, 교도소 재소자에 이르기까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도 많았다. 또한 그들이 시로서 형상화한 세계는 매우 개성적이어서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타국을 통해 전해진 詩心과 뜻밖의 장소에서 발견한 詩作의 모습은 변화를 가속화하고 있는 현대사회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시의 생명력을 증명하고 있었다.
작품들 속에는 인원수만큼 다양한 내용과 형식이 녹아들어 있었다. 산문과 운문의 중간 지점에서 새로운 시의 형식을 찾는 모습도 보였고, 현실과 환상세계를 오가며 시적 상상력을 확대해가는 목소리도 있었다. 자신의 시 문법을 만들어가는 응모자들의 작품들을 통해 먼 훗날의 한국 시의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었다. 반면 많은 응모자의 작품에서 습작기의 반복되는 문제점이 보이기도 했다. 기존 시인의 문법을 답습하고 있는 시, 감상에 젖어 주제를 잃어버린 시, 상상력과 사고의 깊이가 한정되어 있는 시 등등. 세계에 대한 주도면밀한 탐색과 자신만의 새로운 인식체계가 맞물릴 때 이런 문제점들은 보완되리라.
심사위원들은 깊이 있는 내용과 또 그것을 바라로는 새로운 시각이 엿보이는 작품들을 본심 대상작으로 선정하였다. 본심에 올라간 작품들은 저마다의 개성을 통해 발전해갈 가능성을 담고 있다고 본다. 모두 그 가능성을 찾아내는 시인이 되기를, 또 앞으로도 서울디지털대학교 문학상이 그 촉진제 역할을 계속해가기를 바라며 심사평을 마무리한다.
* 본심 심사평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학부와 계간 『시작』에서 주관하는 제1회 서울디지털대학교 사이버문학상에는 실로 많은 예비 시인들이 응모해주었다. 오랜 시간의 고심과 노력이 녹아 있는 가작(佳作)들 덕분에, 심사위원들은 매우 즐겁고도 보람있는 시 읽기를 경험했음을 고백한다. 이러한 현상은 ‘서울디지털대학교 사이버문학상’이 이제 첫 발을 내딛는 데도 불구하고 우리 문단에서 각별한 주목을 받고 있다는 유력한 증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아직도 시를 향한 열망이 우리 시대에도 마르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실물적 사례라고 생각된다. 또한 이는 경제적 효율성을 최상의 가치로 여기는 우리 사회의 풍토에 대한 반성적 거점을 여러 모로 보여준 긍정적 결과라고 할 것이다.
응모자들의 시편은, 담론적 집중성을 보이는 어떤 경향이나 세태에 편승하기보다는, 각자의 경험적 구체성을 바탕으로 언어 미학의 완성을 꾀하려는 의욕을 두루 보여주었다. 편차가 심하기는 했으나, 읽을 만한 시편들이 많았음을 기록하고 싶다. 이 모든 것이 개성과 완결성의 황금분할을 통해 우리 시의 미래를 개척해가려는 젊은 언어들의 긍정적 면모라고 생각된다.
예심을 통해 올라온 분들 가운데 심사위원들은 김재현, 김혜영, 이점순, 정상조, 조정숙, 최란주 씨(가나다 순) 등 여섯 분의 작품에 특별히 주목하였다. 이분들의 시편은 안정감과 패기, 익숙함과 낯섦, 산문 지향과 운문 지향, 서정의 구심과 원심 등 우리 시의 다양한 미학적 충동과 방향을 여러 방향에서 보여주어, 심사위원들로서는 어느 분이 당선자로 뽑히더라도 무방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만큼 작품적 성취가 균질적이고, 충분한 습작 시간을 담고 있었다. 그 가운데 심사위원들은 안정된 언어 구사나 주제의 진중함보다는, 시적 언어의 활력과 앞으로의 가능성을 풍부하게 내장하고 있는 언어를 높이 사서, 최란주 씨의 작품을 전원 합의하여 당선작으로 뽑기로 하였다.
최란주 씨의 작품들은, 비록 줄글 형식의 시편들이라 운율적 고려에서는 다소 취약하였으나, 활자의 안쪽에 만만찮은 시적 공간을 만들어 그 안에서 삶의 만화경(萬華鏡)을 두루 보여주는 활달한 역량을 보여주었다. 또한 일상의 활력 속에서 가장 근원적인 생의 상처며, 부드러움이며, 사랑을 노래하는 품과 격이 매우 미더워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경험적 구체성 속에 심미적 감각을 살려 재생하고 배열하는 언어적 힘이 밀도 있게 관찰되었다. 신뢰와 축하를 얹어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심사위원들로서는, 앞으로 더욱 젊고 패기에 찬 젊은 언어들이 우리 서울디지털대학교 사이버문학상에 관심을 가지고 도전해오기를 바란다. 이번에 당선되지 않은 분들도 더욱 정진하기를 바라고, 거듭 당선자에게 축하와 격려의 말씀을 드린다.
* 당선 소감
당선 - 최란주
밤새 꿈을 꾸었다. 줄장미 붉은 손바닥들이 나를 붙들고 늘어졌다. 떠나보낸 지 십년이 넘는 사랑이 새삼스럽게 가슴을 후벼 파기 시작했다. 이젠 잊었다고 생각했던 기억들이 일시에 떠올랐다. 독한 가시에 찔리면서도 시를 떠나보내지 못했던 건 별빛에 어깨를 기대며 시를 읽어주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붉게 꿈틀거렸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짝사랑만 하던 내게 비로소 따듯한 악수가 전해졌다. 정말 다행이다. 이젠 내 붉은 손바닥에도 새순이 돋아날 것이다. 새순에서 푸른 미소가 번지고, 뭉툭뭉툭 지던 태양의 모가지도 하늘로 떠올라 빛나는 여름 속에서 자라날 것이다. 꿈틀거리고 요동치며 오래도록 선연한 기운을 풀어낼 것이다. 가느다란 넝쿨로도 세상의 담벼락을 온통 휘감는 줄장미가 될 것이다.
영국의 낭만파 시인 셸리에 의하면 ‘시는 영원한 진실 속에 표현된 삶의 이미지’ 라고 한다. 앞으로 나는 시적 진실이 표현된 삶의 이미지를 묘사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부족한 작품을 뽑아주신 서울디지털대학교 여러 선생님들께 감사드리며, 날로 중요성을 더해가는 지식정보사회에서 서울디지털대학교의 위상이 더욱 더 빛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가작 - 정상조
며칠 전,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커피 생각에 잠시 책을 덮었다. 자판기 앞에서 커피를 뽑으려고 하는데 이미 자판기에는 500원이 들어가 있었다. 머릿속 나는 동전의 양면처럼 가질 것인가 말 것인가를 얘기하고 있었다. 주변은 고요했지만, 내 머릿속은 짤랑짤랑 동전소리로 시끄러웠다. 가져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 갈등 틈으로 거무튀튀한 손 하나 비집고 들어와 동전을 꺼내갔다. 안전모를 쓰고 계신 아저씨였다. ‘아직까지도 아무도 안 가져갔네. 세상 오래 살고 볼일이야.’ 미소 지으시며 아저씨는 걸어온 길을 되돌아가셨다. 나는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500원. 아저씨에게는 삭막한 세상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준 계기가 된 것이었다.
지금 내가 이 상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의문스럽다. 미숙한 나의 시를 보고 당선을 고민하시던 심사위원 선생님들 또한 이런 고민을 하지 않으셨을까한다. 시를 내 삶에 품고 품어, 훗날 그 분들 앞에서 오늘 고민하신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으시도록 노력할 것이다.
묵묵히 지켜봐주시던 부모님, 시를 처음 접하게 해주신 이사라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나를 항상 이끌어 주던 동생 병일이, 서울산업대 시모임 ‘끌림’ 동인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제 2 회 서울디지털대학교 사이버문학상 발표
제 2 회 서울디지털대학교 사이버문학상이 막을 내렸다. 심사위원인 도종환 시인, 이재무 시인, 유성호 문학평론가, 길상호 시인 등은 당선작으로 성백선의 ‘분합문’ 외 6편을, 가작으로 유원희의 ‘별을 파는 여자’ 외 4편을 선정했다. 2008년 제 2 회 서울디지털대학교 사이버문학상은 응모자가 674명, 응모작품은 4000여 편에 달했다. 이는 서울권 일간지 신문의 신춘문예를 상회한 수치이다. 뜨거운 관심에 감사드린다. 당선자들에게는 소정의 상금과 상패가 수여된다. 아울러 계간 문예 ‘시작’에도 작품이 실리게 된다. 시상식은 2월 28일(목) 오후 5시 서울디지털대학교 2층 회의실에서 열린다.
당선작 - 성백선 ‘분합문’ 외 6편
가작 - 유원희 ‘별을 파는 여자’ 외 4편
심사위원장 - 도종환 시인(한국 작가회의 사무총장)
심사위원 - 이재무(시인), 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 교수), 길상호(시인)
* 심사평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학부와 계간 『시작』이 주관하는 제2회 <서울디지털대학교 사이버문학상> 심사는, 674명이 응모한 가운데 풍성하게 치러졌다. 무엇보다도 우수한 작품들이 많았고, 오래 연마된 시의 행을 따라가는 일은 실로 즐거웠다. 특히 캐나다, 일본 등 국외에 거주하는 응모자들을 대하면서 심사위원들은, <서울디지털대학교 사이버문학상>이 다국적인 문화를 수용하고 사이버 공간에서의 문학 활동을 활성화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음을 공감했다. 또한 시편들의 내용과 형태는 다양한 연령과 삶의 모습을 추측케 했는데, 이를 통해 아직도 문학이 사회 전반에 녹아 있다는 희망도 얻게 되었다.
예심을 통해 올라온 응모작 가운데 심사위원들은 김강식, 김수정, 김지영, 성백선, 송하얀, 유원희, 이종숙, 현혜숙 씨(가나다 순) 등 여덟 분의 작품에 주목하였다. 완성도에 있어서 다소의 차이는 느껴졌지만, 이들의 시편들에는 모두 시적 안정과 변화를 주도해가는 힘이 내장되어 있었다. 그것은 결코 단기간의 습작으로 얻을 수 없는 힘이어서, 독자의 내면에 큰 파장을 일으킬 것이 분명했다. 심사위원들은 시의 완성도, 언어구사 능력, 구성력 등 다각적인 차원의 논의를 거친 끝에 세 명의 후보를 다시 선정하였다.
우선 김지영 씨의 작품 중에는 「모란꽃살문」이 눈에 들어왔다. 선암사 원통전의 모란꽃살문을 통해 설화 속 시간을 바라보는 눈길이 섬세하고 신선하게 다가오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뒤에 이어지는 작품들의 편차가 심해 아깝게도 최종 논의에서는 제외되고 말았다. 이에 따라 마지막으로 논의된 후보는 성백선, 유원희 씨였다. 이 중 유원희 씨의 작품은 다양한 삶의 모습을 진솔하게 시로 감싸 안는 진정성이 높이 평가되었으나 언어 반복, 시적 반전의 미약함 등이 지적되었다. 이에 비해 성백선 씨의 작품은 사물을 바라보는 인식의 깊이가 남달랐고, 내용과 형태의 완결성에도 무리가 없었다. 특히 「애어리염낭거미」는 거미의 생태를 어머니의 삶으로 반전시키는 시적 역량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그리하여 심사위원들은 논의를 거듭한 끝에 유원희 씨의 작품을 가작으로, 성백선 씨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결정하는 데 합의하였다.
당선되지 않은 분들에게는 이번 응모가 더욱 정진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기를 바라고, 당선자에게는 거듭 축하와 격려의 말씀을 드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두 번째 당선자를 낸 <서울디지털대학교 사이버문학상>이 해를 거듭할수록 더 큰 시인의 산실이 되길 기대한다.
* 당선작 - 성백선
분합문
보 기둥 위 쌓인 고요가
벽 치고 수장을 들인다
살대로 달빛무늬 낸 소목의 솜씨
칠흑에 갇혀가는 서까래 밑
둔탁한 배목이 서너 개 박히고 나면
수직을 가늠하는 다림추의 미동도 멈춰 선다
단절된 괴에 동그마니 남아
떨그럭떨그럭 파동을 견디던 등자쇠
건너편 지도리에게 여음을 흘려 보내지만
동선은 보이지 않고 온기는 멀다
속살 드러내어 내밀한 눈빛 당기던 탱탱한 거리엔
마주앉은 속내끼리 경계를 허무는 소리도
천장 긁어 샛길 내는 쥐들의 부산함도
벽채 타고 반경 좁히는 고양이 아기울음도 그쳤다
품고 놓아주기를 반복하는 간극은
언제나 짧은 망설임을 남겨
은은한 창 같은, 거칠은 벽 같은 발자욱이
상 머뭇거리는 문전
나누어졌다 싶으면 어느 결엔가 다시 합쳐져
누마루와 팔작지붕 사이 환했던 소통이
옹이 진 정적으로 무료할 즈음
설주를 에돌던 삭풍이라도 맞아들일 양
좁고 짧을지 모르는 생의 공간을
한 간 확장하듯
벽이었다가 문이기도 한 널
지금은 번쩍, 들어올려야 할 때
애어리염낭거미
누가 잎새 끝에
저토록 푸른 누각을 세웠을까
정교한 산실 들어선
우거진 수풀 한가운데
성자의 입김 가득할 것 같은 염낭엔
낙엽층을 배회하고 돌아온
성체가 몸 푸는지
부들 뿌리로부터 신음이 부화한다
산고를 둘러싼 우주의 소음들
한여름 어스름에 비껴가고
지금 막 알에서 깨어난 어린 것들은
세상으로의 탈피를 시도하느라
생별을 입에 물고 있다
뱃속 그득 비정의 즙 짜 넣으면서
아, 살아있는 것들의 살고자 함은
이토록 뼈를 깎는 일이던가
생존의 늪지대에서
천적으로 변태한 새끼들에게
제 살과 뼈 뜯어 먹히고
어미의 골육을 포식한
패륜의 바다 위
거미 피륙으로 짠 섬이 전설로 흐르다
소리 없이 가라앉는다
세상의 푸르게 눈물겨운 것
다 흘려주고
말없이 형체 없이
하늘 가신 내 어머니처럼
독살꽃
멀리 갯바위 사이로 한 사내가 보인다
나는 괭이갈매기 눈으로 그의 움직임을 앞지른다
꽃지에서 굴혈포까지
조난의 시간 밑으로 흘러든 항로가
흙모래를 털고
어깨에 찰박이는 뻘빛 그물이
촘촘한 하루치 숨을 토해내는
드문드문 난 들불의 흔적과 소나무 사이
간조를 기다리는
따개비 껍질 같은 오두막이 움푹하다
물때 맞춰 막아놓은 그의 생존이
수면을 차고 오르기를, 파닥이기를
간절하게 물은 빠져나갔건만
개펄 위 불쑥 솟은 뾰족한 독살
돌 꽃 돌꽃
'꽃만 나고 말았네유'
그의 비릿한 기다림에 나는 초저녁 붉새로 번졌다
물고기를 잡아먹고 살았던
선사 수렵시대 바닷바람이
방파제에 부딪혀 해무 속으로 사라진 뒤
삶의 편린들 짭조름히 잦아드는 포구에선
도회지 어부들이 뱃길을 닫고 있었다
근근한 그의 어족은 격랑에 휩쓸려
꾸르륵꾸르륵
해조음만 꽃 주위로 무성히 몰려다니고
나는 몸 구석구석 돋아난 돌꽃의 순을 따다가
그의 어장 가득한 물고기로 흐드러지게 피었다
아침, 모네의 정원
그곳엔
빛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가슴 부풀어오른 수련이
마알간 바람으로 머리를 빗고
부신 눈으로 첫 빛을 밟는다
밤새 태양으로부터 달려 온
맨발의 하루가 뒤따르며
보폭을 키우는 사이
투명한 채색이 시작되고
흩뿌려진 햇발 위 조금씩
드러나는 색색의 일정들은
더 선연한 제 색을 찾아갈까
갓 깨어난 버드나무 아래
그림자 숨긴 여백이
새벽 내음을 코끝에 묻힌 채
살풋 정오의 계단을 살핀다
햇살들의 빼곡한 일과가
어제에 이은 연작의 색감을
연못 위에 띄우는 찰나,
아직 이른 아침이다.
갈릴레이 망원경
이미 일순간의 착시가 사라진 지 오래였어요
투명한 유리 곱게 갈아 오목한 얼굴에 썼어요
겹겹이 둘러진 포물선 띠가 벗겨져 나갔어요
알몸으로 원점에 서 있는 그대 우뚝하였어요
태양의 흑점을 찾듯 그대 심장을 더듬었어요
천체를 떠다닌 빛과 박동 소리가 몰려왔어요
가까이 반사된 자리에 홍염이 이글거렸어요
산란을 마친 낮이 밤의 깊이로 빠져들었어요
차갑고 무표정한 거리가 환히 웃고 있었어요
쌍안에서 굴절하던 그대도 고색창연하였어요
시야를 가렸던 처음 내 눈은 선입견이었어요
흐린 초점 다시 맞춰 선명한 심상 포착했어요
그대 뒤돌아서면 반대편에 거울을 세워뒀어요
때론 도구도 정직하고 부드러운 눈길이었어요
관측을 마친 나는 목성의 가니메데가 되었어요
기꺼이 그대 곁을 돌고 도는 위성으로 살았어요
바퀴
길모퉁이 담벼락에
곯아떨어진 질주가 푸석하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루하루의 간격을 조율해 주던 삶의 속도들
어느 막다른 길목에 멈춰 선 것일까
울퉁불퉁한 일상 날렵히 나르던 회전은
비포장의 순간들을 갓길에 부려놓고
생애 어디 구간쯤 정체돼 있는지
온종일 시간 헛도는 소리만 헐렁하네
언제고 든든한 바람 넣은 탄력 위
휘파람 싣고 페달 밟으면
혼미한 내일의 여정에라도
동그라미 그려가며 오를 수 있을 텐데
역주행하다가, 전력투구하다가 가뿐 숨
평평히 고르고 윤활유 주입하면서
모난 길 훌쩍 건너뛸 수도 있을 텐데
환상 속에서는 늘 가파른 언덕 다다른
바퀴가 신들린 발처럼 날아다니고
내 어제의 지체된 두 바퀴도
주어진 거리만큼은 완주하려는지
지금 막 막힌 길목을 우회하고 있네
뚜껑
오피스텔에서 내려다 본 운니동 기와집들
검은 뚜껑들이 다닥다닥 세월을 덮고 있다
뚜껑을 열면
그늘 쓰고 문명을 피해 들어앉았던
개화 덜 된 세간살이가 비춰지면서
속속들이 차있는 나직한 군상들의 내부가
햇빛에 파르라니 눈 흘길 것 같다
뚜껑 속에 잠겨 있는
벽에 걸린 아이 낙서의 표정
마당 가운데 흐르는 수도의 사계절
개집 옆 작은 화분들의 자투리 여유
담장에 널린 이불의 낮과 밤
대문에 세워둔 자전거에 감긴 거리
한 사람당 할당된 시간과 공간이 똘똘 뭉쳐져
제자리에서 굴러가고는
세월의 뭉치마다
속도 다른 흔적들이
지워질랑 말랑한 뚜껑엔 다시
리모델링된 비밀번호가 채워지고
내 뚜껑은 24시간 개방돼 있어도
모호한 채 무늬만 내고 있는데
어느 날 열린 지붕 아래
테라스가 된 발 밑에서
내 뚜껑 속을 올려다보고 손짓하는
40년 전 상고머리 계집아이가 생경한 건
낮은 곳 앞서 흐른 삶의 기복들도
덮개 안에서는 그만치
출렁거리다 넘치고 싶었나보다
* 가작 - 유원희
별을 파는 여자
남구로역에 발 뻗어 먹고사는 삼성식품, 여자는
초저녁이면 문을 내리고
친정으로 별의 씨앗을 구하러 간다
하늘밭으로 나서는 여자의 손엔 망태가 없다
별의 씨앗을 담아오는 것은 손도, 호주머니도 아닌
언제부턴가 불쑥 뛰어나온 그녀의 두꺼운 등이다
별은 진열하지 않고 등에서 하나씩 꺼내 판다
아침이면 가게 앞으로 쪼르륵 쪼르륵 발소리가 몰려든다
직업소개소 봉고차에 실려 가지 못한 사내들이
밤새 염불로 굴렸던 시커먼 한숨을 뱉어 낸다
여자는 별 하나씩을 사내의 가슴밭에 밀어 넣는다
별 키우는 법은, 입꼬리를 높이 올려 설명해주고
혹시 아프거나 칭얼거리면
반드시 진찰 받으러 오라는 눈짓도 잊지 않는다
물 건너에 탯줄을 둔 검붉은 손도
커피 자판기에서 아침을 들이키는 지팡이도
여자가 등에서 꺼내준 별씨 하나씩을 담아 간다
가게 앞엔 별계단이 있다
그 별계단에 올라 본 사람만이
여자의 키가 허리쯤에 있다는 것을 안다
그녀의 밥그릇은 작다
별씨를 가득 싣기엔 배보다 등이 불러야한다
여자가 TV를 보면서 사발면을 들이킨다
가을 가뭄에 말라버린 별들이 브라운관에서 우르르 쏟아진다
여자는 자꾸 블라우스 속으로 손을 집어넣는다
1-day
동네 안경점에서 구입한 1-day 콘텍트렌즈, 아침마다 비누로 손을 씻고 렌즈 속에 내 몸을 집어넣는다 통통한 허벅지 한쪽은 남겨둔다 아차하다 쓸개 빠진 여자, 간이 배 밖에서 펄떡거린 여자는 맵시가 없다 잘못 잠근 블라우스 단추는 그대로 둔다 하루쯤 옆으로 걸어도 좋을 것 같다 구두는 광을 내야한다 가끔 태양이 트림을 하면 1.0 시력으로는 받아낼 수가 없다 에스라인 몸매로 집을 나서 첫 번째로 만난 남자에게 청혼을 한다 아침 결혼식 주례는 신호등이 딱이다 아프리카 여자들처럼 배꼽에 피어싱을 한다 하루 세 번 결혼식에 그 정도의 멋은 기본이다 내 배꼽에 입을 맞춘 남자들은 쇠로 만든 콩깍지를 쉬운다 시계가 오른쪽으로 고개를 기웃 할 때 중혼 준비를 한다 이번엔 젖꼭지에 피어싱을 한 남자를 택해 혓바닥으로 마빈 게이* 노래를 연주한다 되돌림표가 없는 악보에 남자를 태운다 세 번째는 대머리 남자가 좋다 이마에 누드 문신을 그린다 두 명의 남편들이 축전을 보내온다 그래도 걱정 없다 뚱뚱해도 자고나면 또 처녀, 내일은 내일의 렌즈가 필요하닌까
*마빈 게이 - 미국 흑인 R&B 가수, 음악프로듀서 1984년 45세 나이로 사망
담벼락 병동
대학병원 담벼락이 철거되고 있다
넝쿨장미의 인대들도 톱니바퀴에 몸을 내주고 있다
병실 유리창에서 담을 넘봤던 눈빛들이
동네 밖으로 산책을 시작한다
여름내 방문객들이 흘려준
보송보송한 사연들을 취재한 은행나무가
노란 쪽지를 병실로 휙휙 날린다
양손 보따리에 끌려 다닌 발걸음들
무너진 담벼락에 눈물과 한숨을 맡겨 놓고
억지웃음으로 병실로 향한다
뒤뚱거리는 발자국에서 배냇냄새가 기어 나오고
머리를 붕대로 감싼 휠체어 노인은
길 건너 죽집에서 햇볕을 끌어다 쓴다
의족으로 키를 맞춘 목발 아이는
대학꽃집 화분에 제 발목을 심는다
구로시장 앉은뱅이 의자들도
골다공증 치료를 받아 또 무거운 하루를 받아낸다
세상의 가위질에 긁힌 골목길들이 회진을 기다리는 동안
온 동네가 회복실로 옮겨간다
작업복 이력서
드르륵 드르륵 귀를 세운 엄마의 재봉틀이
모락모락 솥뚜껑을 넘어갑니다
새벽 등성이를 넘어갑니다
드르렁 드르렁 아버지 지난 발자국들도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폅니다
누비처럼 앉아있는 부스럼딱지 위로
데굴데굴 실밥 타고 굴러갑니다
골목길을 짊어졌던 갈지자걸음도 끌려 와
꽁꽁 실밥 속에 묶여집니다
너털웃음에 덧댄 침 자국이 보일까봐
재봉틀 바퀴가 너스레를 떱니다
아버지 얼굴에 웃음소리가 풀리지 않도록
꼭꼭 실밥을 동여맵니다
흐린 손금을 풀어 마지막 실밥을 동여맵니다
아버지 키가 한 뼘이나 자랐습니다
구로동엔 펭귄이 산다
구로2동 우체국 계단 입구를 지키는 펭귄 우편함
앞 집 구두 수선 노인과 수다를 떨다
가끔 행인이 밀어 넣은 편지를 받아먹고
관할지역과 타 지역으로 나눠진 두 입을 옴질옴질 거린다
아침이면 우편함에서 뒤뚱뒤뚱 뛰쳐나와
저녁내 남극에서 보내온 우편물을 스케이트에 싣고
슬로우 슬로우 퀵퀵 오른발, 왼발을 동네 이불속으로 밀어 넣는다
이층집 세발 할머니네는 노란 스쿠터를
편식하는 경식에겐 크릴새우를
33번지 노처녀는 총각을
아래층 새댁은 아파트당첨권을
통통한 은아에겐 비키니 수영대회 포스터를 배달하면
구로동 한낮에 오로라가 떠오른다
구로디지털단지역엔 온갖 펭귄들이 돌아다닌다
가끔은 누군가에게 보내고 싶은
집안의 펭귄들이
우편번호부를 뒤적거린다
* 당선소감
당선작 - 성백선
<시 쓰는 기쁨과 아름다움>
입춘이 갓 지난 봄의 문턱에서 뜻하지 않은 당선 희소식을 접하게 되니 놀라움과 설레임으로 만감이 교차합니다. 수많은 나와 만나며 시의 행간을 더듬던 시간 속에는, 저만치 나앉은 빛들과 거의 잊혀져 가는 기억들이 단절을 벗고 소통의 한 길을 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지금 이대로의 삶에서 한 가지씩은 더 보태어 살고 싶은 간절한 무엇이 있을 터, 그것이 詩라는 이름으로 내게 와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슬픔과 아픔을 높이 끌어올리고, 단단한 느낌표를 곤고한 삶에 새겨 주었다면 이 얼마나 위무 어린 독려이며 가슴 벅찬 행진일까요.
이제 다시 돌아 올 봄 앞에 시간의 얼굴을 씻고, 연둣빛 시어를 펼쳐 꿈 먹은 길을 향하려 합니다. 그 길에 눈부신 슬픔과 아름다운 아픔이 서려 있길 바라면서 울퉁불퉁하고 휘어진 길이 더 묘미 있는 건, 힘들어 지칠 때마다 사랑스러운 사람들과 손 잡고 함께 나누는 온정의 이야기들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란 것도 잊지 않으렵니다.
서울디지털대학교와 미흡한 점이 많은 시를 당선작으로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깊이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 드리고, 밤늦도록 컴퓨터를 껴안고 시의 언덕을 오르내리던 내게 건강을 염려해 준 가족들에게 고마운 마음 전하며, 언제나 정신적 든든한 후원자이신 이동순 교수님과 온라인 오프라인을 통해 함께 습작의 과정을 즐겨 준 시창작 문우님들께 이 영광을 바칩니다.
가작 - 유원희
터널 속을 걸었습니다. 어둠이 내 몸을 사각사각 먹어갔습니다. 누군가에게 아프다고 소리 지르고 싶어 거리공원으로 갔습니다. 겨울바람만이 나를 껴안고 울어줄 뿐이었습니다. 내 가슴이 그렇게 쪼글쪼글 말라 갈 때 ‘별을 파는 그녀’를 만났습니다. 그녀가 등에서 꺼내 준 별씨를 받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나를 향해 환하게 웃어주고, 때론 아프다고 칭얼거리는 별. 별이 있어 내 삶이 더욱 간절해지고 진지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부족한 나의 시를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기쁜 소식에 맨 먼저 생각나는 하늘에 계신 할머니, 사랑합니다. 문학이 무엇인지, 진정성 있는 글을 치열하게 쓰도록 지도해 주신 오봉옥선생님께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e시인회의, 홍시, 뿌리문학회, 미우회, 시사랑 동아리 회원들과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리고 신이 내게 선물해준 친구 화옥에게 이 기쁨을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