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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2회 시흥문학상' 전국 공모를 2011년 10월 1일 부터 31일까지 한 달 간 공모하여 성황리에 마감하였습니다. 그동안 시흥문학상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면서 그 결과를 알려드립니다. 총 응모자는 670여명, 시 부문 2,100여 편, 수필 부문 450여 편 접수 심사위원 시 부문 박찬일 시인(추계예술대학교 교수). 홍은택 시인(대진대학교 교수) 수필 부문 오창익 수필가(《創作隨筆》발행인) 최균희 아동문학가(송파문인협회 부회장). 그동안 시흥문인협회는 장려상 등 다수의 수상자를 배출해왔으나 올해부터는 시흥문학상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대상 1명과 각 부문 우수상 2명만 선정하기로 '시흥문학상 운영위원회'의 결정이 있었습니다 심사총평 32분의 시 160편이 본심으로 올라왔다. 수준이 고른 작품들을 낸 응모자가 여러 분 있었다. 응모작 중에 1편이 수준급이어도 나머지 작품들이 거기에 미치지 못하면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문제는 공력이다. 그리고 내공이다. 내공은 내용과 관계하고 공력은 표현 능력과 관계한다. 대상으로 뽑힌 시 [늘 푸른 응급실]은 내공과 공력 모두에서 수준 위에 올라섰다. “늘 푸른 응급실 / 그곳은 따뜻한 밖이며 서늘한 안이다”에서 누가 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수작을 받은 [유형별 연애 지침서]에서는 ‘모던’이 향기를 뿜어냈다. 일상에서 뿜어져나오는 형식이 만만치 않은 인생 역정을 상기하게 한다. [꿈 꾸는 거인] 외 4편 역시 만만치 않은 삶의 역정을 상기하게 하였다. 기계공업이 아닌 오래된 수공업에 의해 단련되었다는 인상을 받았다. 선외가 되었다면 두고두고 아쉬워할 빌미를 제공했을 것이다. 선외로 남은 작품들에 대해서 한 마디 하면, 다시 강조하면, 고르지 않은 수준이 문제였다. 그리고 새로움의 부족이었다. 개성적인 제목의 부족, 개성적인 배치의 부족, 개성적인 내용의 부족이었다.
23분의 수필 46편이 본심으로 올랐다. 수필 우수작으로 뽑힌 [똬리]는 사라져가는 우리 삶 속의 생활도구를 소재로 하여 그 생김새, 구실들을 우주와 관련시켜 통찰한 것이 돋보였다. 어머님의 흐트러지지 않은 생활의 중심을 똬리와 연결시키고, 고된 삶을 받쳐준 상징으로 표현한 것이 압권이었다. 특히 똬리를 어머니의 빛나는 왕관으로 끝을 마감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수필 [피아니시모]는 “인생은 합창이다. 합창은 비빔밥이다”라고 본문에서의 표현처럼 더불어 사는 우리네 삶을 합창곡에 견주어 주제화시킨 수작이었다. 심사위원 : 홍은택시인, 오창익 수필가, 최균희 아동문학가
시상식 일시 : 11월 25일(금) 오후 7시 장소 : 시흥시 청소년수련관 한울림관<시흥문학 제21집> 출판기념회와 겸합니다. -------------------------------------------------------------------------
당선 작품
대상 (시)
늘푸른 응급실
이언지
사람들은 신중한 보폭으로 그곳을 찾는다 푸른 링거병을 든 나무 간호사들은 한결같이 친절하다 피톤치드를 처방하는 의사의 얼굴은 깊이 아파 본 자에게만 보일 것이다 ㅡ산이 뚜벅뚜벅 내게로 걸어온 순간 먼 슬픔은 시작되었다 하룻밤 사이 한층 다복한 꽃송이를 달고 선 산벚나무 아래 그곳 어디쯤에 흘렸을 내 눈물의 부스러기들을 더듬으며 산벚나무 하얀 꽃들을 올려다본다 제 살로 초록빛 띠를 두른 리기다소나무 옆 길게 팔을 늘어뜨린 산벚나무 하얀 손이 어깨를 건드린다 마주잡은 손의 감촉이 서늘하다 서늘함 속에 따뜻한 미소를 담고 사는 이들의 방 하얀 꽃잎 다섯 장에 서린 심연의 기둥을 들여다본다 사라져 갈 것이다 그 꽃들, 사라져 영원을 돌볼 것이다 홀로 오는 이들은 허리춤에 노래를 달고 오기도 하는데 기댄 사람, 누운 사람, 소리지르는 사람 마른 소나무 거꾸로 매달려 절벽에 의지하듯* 한순간 몸을 열어 귀기울이다 보면 아픈 시간도 금세 지나갈 것이다 늘 푸른 응급실 그곳은 따뜻한 밖이며 서늘한 안이다 처방전을 들고 내려오는 사람들의 얼굴이 한 잎 나뭇잎을 닮았다
* 이백 촉도난
시 부문 - 우수상
유형별 연애 지침서
이면(임현)
문 무엇보다 밀고 당기는 게 중요하죠 무턱대고 들어가려 했다간 벽이 됩니다 이건 원리예요 쉽게 변하지 않아요 열 번 두드려 안 열릴 문 없다지만, 요즘 세상에 어디 가당키나 한가요? 달로 내딛는 첫발처럼, 그래요 지구인을 위한 이벤트라고 생각해요 일종의 쇼라구요 자존심은 6분의 1 만능열쇠나 맞는 열쇠나 그게 그거 아닌가요? 어쨌든 열어보란 소립니다 노크는 필수 기본부터 지켜요 그런데, 아까부터 왜 자꾸 밀어요? ‘당기시오’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윈도우 정기적인 업데이트 요망
막차 누군가의 내장이 되는 일이란 몰려오는 잠처럼 지루해 버튼같이 불거진 젖꼭지를 붉어질 때까지 누르고 싶어져 따옴표처럼 손을 들고 있어야 할 때도 있지 할 말 따위 그 안에 갇혀 들리지 않아 귀를 숨기고 자는 사람들 풍경이 바뀌어도 자리를 비킬 줄 몰라 동전 같은 무표정을 흔들고 싶어 꿈들이 짤랑짤랑 튀어나와 차창에 엉겨 붙을 거야 덜컹거리는 연애는 멀미가 나 뿌옇게 흐려지는 건 밖이 아니라 네 눈꺼풀이야 나는 온몸이 귀 먹먹한 고막을 뚫듯 밤을 미는, 지루한 숨소리를 듣는 중이지
시 - 우수상
꿈꾸는 거인
김효용 달의 지면을 외눈의 거인이 걷는다 당신의 방까지 이어진 가느다란 진동을 오랜 청취자인 화병이 듣고 있다 수도꼭지가 반쯤 자세를 틀고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감상을 쏟아놓는다 이국의 땅을 돌아온 침묵이 달의 계곡에 쌓이고 있다 들끓는 그 곳을 건너는 거인이 당신의 꿈을 꾸고 있다 길은 달의 뒷면으로 이어져있다 당신이 수도꼭지를 틀고 화병의 물을 가는 사이 달이 몸을 튼다 거인이 심연을 낚아 올린다
수필 부문- 우수상 피아니시모
남택수 무대 위로 조명이 쏟아졌다. 갑자기 눈이 부시며 청중석이 어두워졌다. 조금 지나자 앞좌석의 얼굴들이 차츰 희미하게 나타났다. 무대 왼쪽에서 탑라이트를 받으며 지휘자와 반주자가 들어왔다. 객석에서 우레 같은 박수가 터졌다. 지휘자는 까만 연미복을, 반주자는 화려한 드레스를 입었다. 관중을 향해 깊숙이 인사를 마친 지휘자가 뒤로 돌아서서 웃었다. 연주자들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억지로 웃었지만, 사실은 지휘자가 더 긴장하는 것 같았다. 무대에 입장하여 파트별로 줄을 서고 첫 곡을 연주하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어찌나 긴지 조명을 받는 정수리가 뜨끈뜨끈하고 목덜미에 진땀이 배어났다. 지휘자를 향해 몸을 돌리고 다리를 약간 벌려 편한 자세를 취했다. 피아노의 첫 음이 울리고 지휘자가 가볍게 손을 움직였다. 첫 곡은 무반주 연주이다. 베이스와 바리톤 파트가 아주 여리게 두 마디를 먼저 부르면 테너가 따라 나와 화음을 붙였다. 객석에서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귀와 눈을 어둠 건너편의 무대를 향해 집중하고 있다. 연주자는 내 목소리와 함께 옆 사람과 조금 멀리서 부르는 다른 파트의 소리도 함께 들어야 한다. 작고 여린 목소리가 모이고 섞여 화음을 이뤄 청중에게 전달된다. 높은 소리로 힘차게 부르는 합창이 웅장하고 큰 감동을 줄 수도 있지만, 청중은 작은 소리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연주자 또한 작고 여린 음으로 나타내기가 훨씬 어렵고 까다롭다. 오늘은 정기연주회 날이다. 두 해 동안 연습한 결과를 발표하는 날이다. 100명이 넘는 남자들은 매주 월요일 저녁 함께 연습하였다. 단원들은 직업과 직장이 제각각이며 사는 동네도 서로 다르다. 여든이 넘은 노익장부터 40대의 장년도 있다. 뒷줄에는 키가 큰사람이 앞줄에는 작은 사람이 앉았다. 목소리의 높이와 색깔도 가지각색이다. 높고 뾰족한 소리, 낮고 굵직한 소리, 느끼하게 기름진 소리, 밝지만 튀는 소리도 있다. 또 이들은 살아온 길도 같지 않다. 대개 사회에서 제법 영향력을 행사하며 나름대로 성공한 사람들이다. 이렇게 서로 다르고 개성 있는 사람들이지만 서로 양보하며 이웃을 돕는 자세를 배우고 체험한다. 합창은 성부聲部간 적당한 균형과 조화가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합창은 비빔밥과도 같다. 고슬고슬한 하얀 쌀밥 위에 콩나물무침, 무채, 비름나물, 고사리, 호박 양파 버섯볶음 등의 들나물을 색깔 맞춰 골고루 얹고, 다진 쇠고기와 달걀반숙에 고추장, 참기름을 살짝 둘러 고루고루 쓱쓱 비비면 둘이 먹다가 셋이 죽어도 모르도록 맛있는 비빔밥이 된다. 참기름이 고소하다고 너무 많이 부으면 느끼해서 안 되고, 고추 값이 비싸다고 고추장을 듬뿍 떠 넣으면 매워서 먹지 못한다. 귀하고 비싼 것일수록 꼭 필요한 만큼만 넣어야 제 맛이 난다. 특히 향이 높은 재료는 더욱 그러하다. 합창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한 파트의 인원이 두드러지게 많거나 적으면 균형이 깨어지고, 성량이 풍부하고 음악적인 재능이 뛰어난 한 사람이 제소리를 끝까지 올린다면 소음騷音에 불과하다. 내 소리는 다른 사람의 소리와 반드시 어울려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소리 높여 크게 불러야 할 부분은 몇 소절뿐이다. 초등학교 시절 음악 시간이 있었다. 전교에 하나밖에 없는 풍금을 쉬는 시간에 다른 교실에서 옮겨 왔다. 개미가 죽은 풍뎅이를 끌고 오듯 여남은 놈들이 풍금의 앞뒤 양쪽에 빽빽이 붙어 까치발로 들어야 했다. 손가락이 굵은 남자 선생님께서 두 발로 페달을 밟으며 풍금을 탔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반주에 맞춰 목청이 터지도록 노래를 불렀다. 그저 큰소리로 씩씩하게 부르면 되는 줄 알았다. 피아니시모(pp)는 들어보지도 못했다. 훈련소에서 군가는 무조건 크게 불러야 했다. 휴식시간에도 소대별 군가시합이 벌어졌다. 음정과 박자는 무시하고 목에 핏줄이 서도록 악을 썼다. 주먹을 불끈 쥐고 위아래로 흔들면서, 양손을 허리에 얹고 상체를 좌우로 반동시키면서 군가를 불렀다. 살벌한 감정의 표현이었다. 셈과 여림 가운데 오직 포르티시모(ff)만 존재하였다. 음악 실력이 뛰어나고 마음씨도 너그러운 지휘자는 극히 드물다. 오늘의 지휘자는 명문 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하고 오랫동안 음악대학 교수로 가르치다가 정년퇴직한 음악가이다. 가곡과 성가를 수십 곡 창작하였으며 그 가운데 널리 알려진 작품도 많다. 자신의 기대만큼 단원들이 따라주지 못하면 그만 신경질이 발동한다. 베이스파트가 연습할 때 테너파트가 떠들면 음정이 불안한 베이스 대신에 테너가 혼이 난다. 연습 중 아무리 더워도 에어컨은 켜지 못하게 하고, 한 곡을 연습하는 동안 수십 번을 끊고 다시 시키니 여간한 인내심으로는 견디기 어렵다. 단원 모두의 마음이 하나 되고 소리가 하나 되기까지 수백 번의 반복연습이 필요했다. 지휘자가 가장 강조하여 부탁하는 말은 ‘제발 자기 소리를 낮추고 남의 소리에 맞추어 감정을 조절하라.’는 것이었다. 두 번째 곡의 전주가 시작되었다. 소프라노와 알토의 현란한 악상에 바리톤 베이스는 단조로우면서도 묵직하게 이를 받쳐 화음을 맞추는 형식이다. 피아노를 향했던 지휘자의 손끝이 합창단으로 돌아오면서 피아니시모를 요구한다. 네 파트가 모두 같은 음으로 시작하여 둘째 마디에서 알토와 베이스가 가사를 붙이고, 나머지 두 파트는 계속 허밍으로 진행되었다. 긴 머리의 예쁜 소녀가 들판을 지나 냇물을 건너고 자갈밭을 걷다가 숲으로 들어갔다. 시원한 바람 소리와 새들의 지저귐으로 평화롭던 숲 속에 갑자기 사나운 짐승이 튀어나왔다. 짐승에게 쫓기는 소녀의 걸음은 빨라지고 숨소리도 거칠어졌다. 무서운 짐승이 달려들어 넘어지는 순간 쾅하는 총소리에 짐승은 멀리 달아나고 주인공은 무사히 구출되었다. 이 순간 합창은 피아니시모에서 갑자기 포르티시모로 전환되었다. 균형과 조화가 잘 이루어지는 가운데 다이나믹스 표현이 극대화되는 효과이다. 객석에서의 놀람과 감탄이 무대까지 밀려왔다. 지금까지 나의 삶은 피아니시모로 진행되었다. 어려서는 조부모가 계신 집안에서 어른의 말씀을 무조건 순종하였다. 자라면서 형의 그늘에 가려 항상 2인자에 불과하였고, 초등학교에서는 모범생이란 굴레에 갇혀 행동의 제약을 받았다. 도시의 상급학교로 진학하여 촌닭을 면하지 못하였으며, 군대에서는 졸병으로 억압을 받았다. 직장에서 기세부림은 언감생심이었고, 가장으로 자식 뒷바라지하다가 허리가 휘었다. 이제 할 일을 어지간히 했나 싶으니 팔다리가 저리고 체력이 고갈되어 마누라의 힐난에 맞서기도 버겁다. 인생은 합창이다. 합창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각자의 목소리를 조절하여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내 주장보다는 남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아이는 아이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이웃과 어울려 살아야 한다. 항상 조심하며 낮춰 살다 보면 언젠가는 큰 소리를 낼 날이 있게 마련이다. 합창이 피아니시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절정에서 포르티시모로 치닫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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