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에피소드 공모전 수상작
대상 - “엄마 쉬마려워!”
“엄마 쉬마려워!” 신유정 나는 여러 교통수단 중에 지하철을 가장 좋아한다. 승용차는 운전하는 내내 집중해야 해서 이동 시간 전부를 소비해야 하고 혹 운전을 하지 않더라도 운전자에 대한 배려 차원…
최우수상 - 신촌역 화장실에서 사랑의 본질을 토론하다
신촌역 화장실에서 사랑의 본질을 토론하다 신 동 은 안개 낀 마을로 기차가 들어오듯이 아련한 전철소리가 화장실로 울렸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모임이 있는 나는 뭔가 변화 된 모습을 보이고 싶은 마음…
우수상 - 지하철 'Return Book' 제안
지하철 'Return Book' 제안 박정은 성숙된 지하철 문화를 위해 독서이용 권장의 제안을 합니다. *제안 배경 유럽에서는 ‘벤치 북’이라고 하여 야외 공원이나 놀이터, 기타 공공장소에서 산책하며 책…
 
·  우수상 - 당신도 노약자입니다
2008-02-12
·  우수상- 딱, 5분!!
2008-02-12
·  우수상 - 당신은 천사와 지하철을 타본적이 있습니까?
2008-02-12
·  우수상 - 따뜻한 마음과의 동승
2008-02-12

=============================================================================

대상 - “엄마 쉬마려워!”
 
“엄마 쉬마려워!”

신유정

나는 여러 교통수단 중에 지하철을 가장 좋아한다.
승용차는 운전하는 내내 집중해야 해서 이동 시간 전부를 소비해야 하고 혹 운전을 하지 않더라도 운전자에 대한 배려 차원으로도 보조 운전자로서의 역할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버스는 너무 덜컹거려 멀미도 나고, 앉아서 무언가 할 일을 할 때 지하철에 비해 불편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콩나물 시루에 비유되는 출퇴근 전쟁 시간만 아니라면, 이내 여유로운 공간이 되는 지하철은 편안히 책도 읽고 생각도 할 수 있는 최상의 이동 공간이 된다.

그날도 이렇게 한적한 시간과 공간의 지하철 풍경이었다.
이런 시간 지하철 안에는 아이와 함께 한 아주머니들이 많다.

서울행 1호선 지하철은 동인천에서 용산까지만 운행하는 직행열차가 있다. 직행 열차는 사람들이 많이 승하차 하지 않는 역은 서지 않고 많이 이용하는 곳에서만 정차하는 열차이다. 대부분의 역들은 대부분 한 정거장 정도 지나치고 정차하는 식인데 유독 역곡에서 구로까지는 지나치는 정거장이 5장거장이나 된다.

그 아이엄마와 아이는 역곡역에서 승차했다.
이런 한적한 시간, 책을 읽지 않을 경우에 내가 지하철에서 많이 하는 행동은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이다. 특히나 특이한 모습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의 경우 더욱 눈이 간다.

그 모자(母子)는 처음부터 눈에 띄었다.
초록색과 노란색이 함께 들어간 예쁜 니트와 모자, 그리고 청바지와 부츠까지 아이와 엄마가 커플로 입은 두 사람은 내 맞은편 문이 열리자 환하게 등장하였다. 조금 튀어 보이긴 했지만 아이와 함게 입은 커플룩은 병아리를 연상시킬 만큼 귀엽고 기분까지 상큼하게 해주었다.

병아리 母子는 내가 마주 보이는 곳에 앉게 되었다.
그런데 차가 출발하자마자 아이는 “엄마, 쉬 마려워”하며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했다. 엄마는 당황하며 “그러게 화장실 다녀 오자니까”하며 살짝 핀잔을 주었지만 더 이상 꾸중하지 않고 어찌해야할지 생각하는 듯했다. 아이는 큰소리를 내며 소란을 피우는 건 아니지만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이 정말 급해 보여 지하철에 탄 나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의 주의가 집중되고 있었다.
“애들은 소변 마렵다는 말을 저렇게 급하게 얘기한다니까” 하며 어떤 아주머니들은 자신의 경험을 옆 사람과 이야기하기도 하고, “역들이 건너 뛰어 기차 서려면 멀었는데”하시며 걱정스레 말씀하시는 할아버지도 계시며 점점 사람들의 목소리도 커져갔다.
이제 아이의 소변 문제는 차 안 사람들 모두의 관심거리이자 걱정거리였다.

그러나 사실 뽀족한 방법이 있는가? 아이가 참을 수 밖에.
아니면 최악의 경우 옷에 실수를 하게 되거나..

이런 와중에 아이는 이제 한계가 왔다는 듯 엄마의 팔을 잡고 콩콩 뛰기 시작했고 아이 얼굴이 노래지는 것 같기도 하고 정말 고통스러워보였다.

이때 우리의 자랑스러운 엄마가 결단을 내린 듯 신고 있던 부츠를 벗었다.
갑자기 신발을 벗는 황당한 모습에 무슨 일인가 싶어 멍하니 보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사실 신에 뭐가 들어갔거나 해서 다시 신는가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 이 와중에 신을 고쳐 신는 것이 이해가 안 간다며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신을 급하게 벗어들고는 엄마가 한 다음 행동은 아이의 바지와 팬티를 벗기고 자신의 부츠를 아이의 다리 사이에 갖다 대는 것이다.
아이가 급했던 지라 옷을 벗기는 중간에 실수를 했을 수도 있는데 이 어린 아이도 부츠에 소변을 누어 보는 것은 처음이라 당황했는지 엄마를 한 번 보고 눈을 똥그랗게 뜨더니만 그 다음에야 시원한 소리와 함께 소변을 누게 되었다.

그 후 사람들도 너무 황당하여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지켜보고 있었고, 잠시 후 먼저 도착한 열차 때문에 잠시 정차한다는 방송이 울리며 구로에 다가와 지하철이 멈추자 주위 아주머니들께서 “소변 안 누게 했으면 오래 기다리게 해서 실수했을 뻔 했다”며 아기 엄마가 잘 했다는 칭찬을 하셨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작은 소리로 부츠 어떻게 하냐며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아이는 다시 평온한 상태의 얼굴로 돌아왔고, 엄마의 도움으로 옷을 다시 단정히 정리한 아이는 엄마와 손을 잡고 구로 역에서 처음 탔을 때의 귀엽고 밝은 모습으로 지하철에서 내렸다. 아까와 달라진 것은 발에 신던 부츠가 한 손에 들려진 것 뿐이다.

모자가 내린 다음 엄마의 행동에 대해 한 참 생각해봤는데..
물론 버릴 통이 있어 그것으로 해결했다면 좋았겠지만..
나름대로 그 상황에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던 것 같다.
엄마가 비록 한 쪽 부츠 없이 집에 가야하는 불편함과 부끄러움을 감내해야 하지만 아이가 옷을 버려 집에 까지 불편하게 가지 않게 되었고, 다른 사람이 지하철에 남겨진 소변 자국 때문에 불쾌하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정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엄마의 재치가 돋보이는 결정이었던 것 같다.

수 많은 다른 사람들이 이용하는 지하철.
우리에게 이동수단으로서 편리함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이렇게 재미있고 조금은 황당한 일로 즐거운 경험을 주기도 한다.
이렇게 내가 지하철을 좋아하는 이유는 한 가지 더 생겼다 
=========================================================

최우수상 - 신촌역 화장실에서 사랑의 본질을 토론하다

 

신촌역 화장실에서 사랑의 본질을 토론하다

신 동 은


안개 낀 마을로 기차가 들어오듯이 아련한 전철소리가 화장실로 울렸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모임이 있는 나는 뭔가 변화 된 모습을 보이고 싶은 마음에 지하철 화장실로 들어와 이리저리 몸을 돌려보며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있는 중이었다. 거울을 보며 이런 저런 표정도 지어보았다.(물론, 혼자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뭐 그다지 눈에 띄는 변화는 없다 할지라도, 시간이라는 놈이 나를 원만히 그대로 놔두었을 리는 없을 테니까. 이 정도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거울보기를 그만 두고 수도꼭지를 틀었다.

“흐흑”

분명히 수도꼭지를 틀었는데, 100%순수 물소리가 아니었다. 이게 무슨 소리야? 나는 설마 수도꼭지가 울부짖었다고 예상하는 것을 아니었기에, 고개를 뒤로 돌려 대변칸 쪽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열약하다고 말 할 수 있는 여기 이 신촌역 화장실 대변칸 문짝들은 밋밋한 몸뚱이를 뽐내며 전부다 굳게 닫혀있었다. 도무지 어디에 누가 있는 건지 파악하기는 힘들었다. 그렇다고 남 대변보는데 문틈 사이로 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게 할 까닭도 사실은 없었다. 잠시 고개를 뒤로 젖혀 아가리 닫은 문짝들을 쳐다보다가 나는 다시 뿜어져 나오고 있는 물을 향해 손을 뻗어 CF처럼 물을 담아 간단히 손을 씻었다. 그리고 마무리로 여기저기 물때가 묻은 거울에 나를 비춰보다 다리를 한번 털고 뚜벅 뚜벅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저기요.”

대변칸 중 하나가 분명 나를 불렀겠다? 이는 필시 좀 전 내가 수도꼭지를 틀었을 때 울부짖었던 사람이리라. 왜냐하면 ‘저기요’하는 그 아무 의미 없는 대사에 물기가 촉촉했기 때문이다. 내가 틀었던 수도꼭지 마냥 터뜨리고 싶은 울음을 참아내며 간신히 외친게 틀림없다. 나는 어쨌거나 그 부름에 멈춰 설 수 밖에 없었다. 그 대상이 나인지 아닌지 정확하지 않더라도 일단은 멈추고 보는 게 예의이자 습관이었던 것이다. 칸막이를 구렁이 담넘듯이 타고 넘어와 들리는 ‘저기요’소리가 과연, 나를 향해 하는 부름이 확실한가에 대한 물음에 답하기 위해 나는 잠시 일단 대답을 보류하고 멈춰 섰다.

“저기요, 밖에 누… 누구… 계신 거죠?”

목소리의 성량이나 어투로 보아 분명 대변기에서 통화를 하는 무뢰한은 아님이 밝혀졌다. 그러나 여기서 잠깐, 한 가지 의아한 점이 있었는데, 내가 분명히 남자화장실에 있는 것인가? 나는 뜨끔한 맛에 잠시 주위를 둘러 보아 소변기가 있음을 확인했다. 소변기가 무려 5대나 비치된 것을 보아하니 남자화장실이 맞기는 한 모양이다. 그런데, 방금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여자 목소리로 들리는 것은 내 착각인가?

스스로의 물음에 답할 수 없었으며 솔직한 마음으로, 귀찮음도 있었던 나는 잠시 처참히 저 말을 무시해버리고 그냥 갈까 생각이 들었지만, 어쩐지 울먹거리는 여자의 목소리가 남자화장실 대변 칸에서 튀어나온다는 것이 꽤나 흥미롭고 재밌어서 일단은 대답을 한 뒤에 상황을 지켜보고자 마음을 먹었다.

“예… 왜 그러시죠?”

조심스레 대답하며, 새삼 누가 보지 않는데도 대변칸에 누가 있었는지 차마 몰랐었다는 표정을 했다.(내가 보기에도 나의 몸짓은 ‘어라? 거기 누구 있는거에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죄송한데요….”

“예….”

다음 이어질 말을 유도하는 짧은 대답을 하며 나는 머릿속으로 〈휴지 좀 가져다 달라〉라던가, 〈문이 잠겼어요〉라던가 하는 말들을 상상했다. 그리고 이러한 상상은 〈젠장, 귀찮게 됐다〉라는 심적 부담감 까지 안개 되었다.

“제 말 좀 들어주실 수 있어요?”

예상 못했던 대답이지만, 이거야 말로 재밌는 대답이다. 이미 바쁜 사람 붙잡아 놓고 당신의 말을 듣게끔 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 아닌가. 그러나 차분히 생각해 보면 그러한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게다. 이제부터 할 말에 귀 기울여 달라는 말이겠지. 여기서 또 나의 호기심이 짜증을 덮고 발동하였는데, 말하자면, 남자화장실에 와서 왜 여자가 훌쩍거리며 우는가, 또 낯선 이에게 왜 말을 거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예, 말씀하세요.”

내가 안심을 주는 듯 한 어조를 담아 조심스레 대답해 주었더니 그녀는 또 잠시 말을 잃다가 점점 흐느끼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죄송해요. 제가, 오늘 남자친구랑 헤어졌거든요.” 이미 충분히 상황 자체가 당황스러웠기에 이런 말을 듣고도 그다지 놀랍지는 않았지만 새삼 이런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 낯선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있는 대변칸 안의 그녀(이제는 확실하다)가 정말 대단해 보였다. 추후에야 생각난 것이지만 이것이야 말로 정말 몰래카메라에나 나올법한 일이었으며 만약 그랬다 하면 나는 여지없이 당해서 TV앞에 얼굴이 빨개졌을 것이다.

아무튼 간에 그 상황에 닥쳐서는 그저 황당한 뿐 별 생각이 나지 않았으며, 오히려 어떤 쪽으로는 침착해져서 그녀의 대화를 응대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었다. 나는 침착하게 그녀의 갑작스런 그 말에 응대하려고 다음에 이어질 말을 머릿속 선택지에서 고르기 시작했다. 예를 들자면 “아, 유감이네요”하는 외국 영화에서나 등장하는 대사라던가, “아…네…”라고 말해 상대방의 기분은 허탈하게 만드는 대사라던가, “어이쿠 저런”이라는 어색한 효과음이라던가 하는 것들이었는데, 도무지 어떤 대답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이러한 대답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애초부터 상황이 부적절함에 핑계를 두고 일단은 그중에 가장 무난하다 싶은 “아…네…”를 선택하기로 했다.

“아…네….”

나는 최대한 정말 유감이라는 듯 한 어조를 담아 대답을 해주었다.

“그래서 울려고 화장실로 뛰어갔는데, 여자화장실이 꽉 차있고 줄까지 서 있는 거예요.”

그녀는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 지금 생각해도 그 상황이 서글펐는지 한번 훌쩍였다.

“할 수 없이 이리로 뛰어 왔죠. 마음 놓고 울고 싶은데 공간은 없고, 마침 남자 화장실이 비어있길래.”

“그래요, 잘 오셨어요.”

얼떨결에 말하긴 했지만 정말 코미디다. 내가 이 화장실에 주인이라도 되는 양, 방석을 깔고 손님 차대접이라도 하는 모양으로 대꾸를 한 셈이다. 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이건 정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할 만큼 부끄러운 응대였으며 실제로도 나는 가슴이 벌렁벌렁 할 정도로 내 자신의 실수에 놀라고 있었다.

“풋.”

방금 전까지 울고 있었음에도 불고하고 그녀는 내 대답이 웃기기는 했는 모양인지 가벼운 웃음을 터뜨렸다.

“울다가 웃으면 ... 털 .. 나는데”

익명성이야 보장되겠다, 얼굴까지 서로 마주보지 않는 셈에 용기를 얻어 나는 내 스스로의 실수를 무마시킬 겸, 그리고 오히려 그 실수를 승화시켜 유머로 변질 시키는 한 편, 앞으로의 대화에 있어서도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주지시키기 위해, 초면으로서는 상당히 실례되는 농담임에도 불구하고 입 밖으로 내게 되었다.

“하하”

예상대로 그녀는 웃었다. 그 웃음소리 끝에는 조그마한 물기가 젖어, 아직 슬픔을 완전 떨쳐내지 못했음을 드러내고 있었으나, 이 당황스러운 우리 둘 사이의 대화에 있어서도, 그리고 알 수 없는 얼굴을 가진 그녀의 비극에 있어서도 이 웃음은 충분히 엄청난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나도 그녀를 따라 가볍게 웃었으며, 괜스레 볼이 상기되어 누가 보면 주접을 떨고 있다고 말할 지도 모르는 상태가 되어있었다. 그것도 잡스런 냄새 풀풀 풍기는 화장실 안에서 말이다.

“왜 헤어졌어요?”

길거리에서 “나 헤어졌어요” 라고 등 뒤에 써 붙이고 우는 여자가 있다고 한들, 가서 왜 헤어졌냐고 물어보면 뺨을 맞는 것이 보통이겠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여자는 남자화장실에 들어와 굳이 타인에게 말을 먼저 걸음으로 해서 헤어졌음을 말했기에, 나로서는 먼저 이런 말을 물어봐 주는 것이 예의이자 센스였다. 그래도 내가 물어보는 것이 좀 예외였는 모양인지 콧소리를 흥 조그맣게 낸 그녀는 이어 남자친구와의 구구절절한 이야기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처음 몇 분간은 전혀 모르는 타인에게서 속내 깊이 찌든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이 꽤나 흥미로웠지만 오히려 이런 장점은 시간이 지날수록 단점이 되어, ‘내가 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어야 하지’하는 생각으로 바뀌기도 했으며 그러한 감정은 슬슬 부담으로 변모했다. 그러나 이런 부담감에도 불구하고 이 상황적 특이함(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대화를 시작한 이후로 남자화장실에 이용객이 한명도 없었다는 것이다)이 가진 알 수 없는 야릇함은 내게 그런 부담을 둘째 치고라도 쾌락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요소로 충분했다.

듣자하니 남자친구얘기는 별로 특별할 게 없는 이야기였다. 세상이 다 아는,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조회수가 많은 하트 그림 같았다. 이런 일반적인 이야기가 한편으로는 나를 실망시킨 것이 사실이었으나, 한편으로는 오히려, 더 특이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면 이 상황적 특이성이 주는 쾌락이 감소하지 않았을까 싶었기에 묘한 안도감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가 거의 끝마칠 때 쯤 해서 깨달은게 있다고 한다면, 초반 그저 위안을 주고 싶었던 ‘착한사람’으로서의 내가, 운명을 핑계 삼아 여자를 꼬실만한 기회를 갖게 됐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진짜 운명이 아니라면 무엇이 운명이랴? 남자화장실에서 처음 만난 연인들을 들어 본적이 있는가? 나는 듣도 보도 못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런 정도의 운명이라면 TV에 나가서 떠들어 댄들 부끄럽지 않다.

“정말…너무 사랑하는데…헤어지자고 말하는 그 사람 앞에서, 차마 싫다고 말하지 못하고, 그러자고 해버렸어요. 내가 그렇게 매몰차게 찬성하면, 그 사람이 잡아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점차 나에게 지난 추억들을 말하며 감정이 고조되어 있었던 그녀는 마침내 헤어지는 순간의 감정들을 다시 마음속에 품는 순간 또다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뒷짐을 지고 신발로 화장실 타일을 콩콩 찍었다. 뭐라고 말하기 무안한 순간이었다. 시계를 보았다. 이미 친구들과 약속은 40분 정도가 늦어있었다.(원래부터 20분가량 늦었었지만)

“힘내야죠!”

이런 징징짜는 분위기 일수록 갑작스런 결단력을 통해 소리를 빽 지르는 것이 분위기를 바꾸는 데에도 큰 몫을 하고 우울한 사람으로 하여금 가동 시킬 수 있는 법이다. 그녀는 예상대로 꽤나 감동 받은 것 같았고 중요한 건 이 다음이다. 괜히 구구절절 왜 힘내야 하는가, 왜 당신이 소중한 사람인가를 설명해 주면, 나는 그저 착한 사람으로만 남아, 여기 화장실에서 그녀를 도와준 자랑스런 시민이 될 뿐일게다. 하지만 이것은 안 될 말이었다. 나는 좀 더 실질적이어야 했다. 나는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최대한 급하게, 그러나 성의 있게

“힘이 되어드릴께요, 언제든 연락하세요.”라는 말을 적고, 그 밑에는 그 글자보다 크고 또박또박하게 내 핸드폰 번호를 적어 놓았다.

“전 이만 약속이 있어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나는 그렇게 말을 중얼 거리며 동시에 써놓은 쪽지를 대변칸 문틈 사이로 밀어 넣었다. ‘바스락’ 종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종이 집는 소리가 찰바득 하고 들려왔다. 이 순간 “꼭 연락하세요”라고 말하면 흑심이 뻔히 보이는 짓이기에, 나는 “그럼, 기운내세요”라는 대사를 선택하고는 재빨리 뛰어 나갔다. 여기서 그녀의 감사의 말을 제대로 듣게 되면, 다시 만날 이유 중 하나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느닷없이 떠나 버리는 것이 나의 신비성을 부각시키며, 그녀로 하여금 산뜻한 이미지를 살릴 수 있는 효과를 내게 될 것이었다. 이런 생각들과 함께, 나는 금세 어려운 이를 도와주는 착한 내가 다시 살아나, 뿌듯함을 느끼며 자기만족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온 표정으로 드러났으며, 가슴은 벅차올랐다. 이윽고 한숨을 푹 쉬며 웃은 나는 이미 약속 시간이 많이 늦어버린 모임장소 주최측에게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날 저녁 “오늘 정말 감사했어요, 다음에 한번 뵐 수 있을까요?” 하는 내용의 메시지를 받은 게 사실이며, 나는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잠시 생각해 보건데, 나에게 이런 문자 메시지를 쓰는 동안 한 글자 한 글자에는 헤어진 남자친구에 대한 연정이 담겨져 있었을 것이며, 아직도 사랑하는데 하는 중얼거림 또한 서려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날 친구들과 술을 진탕 퍼마시며, 몇 차례나 화장실을 들락거려 웩웩 토를 했다.
〈끝〉

===============================================================

우수상 - 지하철 'Return Book' 제안

 

지하철 'Return Book' 제안

박정은

성숙된 지하철 문화를 위해 독서이용 권장의 제안을 합니다.

*제안 배경
유럽에서는 ‘벤치 북’이라고 하여 야외 공원이나 놀이터, 기타 공공장소에서 산책하며 책을 읽은 사람이 자신이 머물렀던 벤치에 않을 다음 사람에게 책을 읽어 볼 수 있도록 벤치에 책을 놓고 가는 문화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 지하철도 이와같이 ‘벤치 북’문화처럼 책을 돌아가면서 볼 수 있도록 독서 문화의 장을 마련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Return Book" 제안을 하게 되었습니다.
독서는 읽고 나서 소장하는 차원의 가치도 있지만, 읽고 나서 다른 사람에게도 지식을 전달하고 함께 공유할 때 비로소 그 가치가 빛을 바란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돈을 주고 사서 본 책을 불특정 다수에게 선의로 제공했을 때 다른 누군가도 나와 같이 책을 제공하여 그 혜택이 결국 나에게 돌아올 수 있는 사이클 원리라고 생각합니다.
지하철을 자주 이용하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지하철 이용 시 이런 점이 개선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나, 이런 아이디어가 기획되어 지하철 이용이 좀 더 즐거워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점을 아래와 같이 제안해 봅니다.

*책 제공자
1. 일반인 : 일반인이 책을 읽었는데 내용이 너무 좋고 다른 사람도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책을 지하철 이용 시 도서함에 비치해 놓습니다.
미국 여성도서협회상 50회 수상자인 낸시펄은 시애틀 공공도서관 사서로 일하면서 ‘시애틀 전시민이 책 한권을 같이 읽는다면’이라는 프로젝트가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인물입니다. 그녀는 독서 장려에 공헌한 점을 인정받아 수상의 수혜를 입은 일반인 이었습니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이 위와같이 좋은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일반인이 책을 기부하는 방법입니다.

2. 출판인 : 책의 홍보와 광고효과 그리고 마케팅 전략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지하철이용 고객이 특별히 할 일이 없어 비치된 책을 읽다가 목적지에 도착한 경우 읽던 책의 뒷내용이 궁금하거나 잠깐 읽었지만 내용이 참 좋아서 소장가치가 있다고 인정된 경우 구매까지 이어질 수 있는 영업 전략일 수 있습니다.

3. 기업이나 단체 : 가끔 보면 사회에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기업이나 자선단체에서 사회 봉사활동을 한다던지 아니면 모금활동, 기부활동을 하는데 회사의 이미지 쇄신이나 공익사업의 한 방법으로 홍보차원에서 책을 기부하는 방법입니다. 책에 회사 로고를 붙여놓아도 괜찮을것 같습니다.

*책 구독자
1. 지하철 이용고객 누구나 : 평소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 누구나가 해당되고 예를 들면 장거리 가는데 특별히 MP3, 책, DMB, 신문 등을 준비하지 못해서 이동하는 동안 마땅히 할 게 없어서 지루한 분들이 지하철 이용시간동안 보다 유익하고 보람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책을 권하고 독서 문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2. 외국인 : 여행이나 일 등 여러 가지 목적으로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이동수단으로 지하철을 이용했을 때 한국의 지하철 이미지 보다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는 효과가 있을 것같습니다. 각 나라마다 그 나라의 특징이 있듯이 한국을 소개하고 한국의 문화를 일부라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도서함 위치
승강장이나 역사 쪽에 자리하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실속적인 효과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TV라면 모를까 잠깐 기다리는데 도서함을 이용하는 것 자체에 한계가 있고 도서함 국극적인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하철 않에 위치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봅니다. 가장 접근성이 높고 이용률도 높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도서함의 이익을 직접 체함한 시민의 다음번에 또 이용할 것이고 그 시민이 나중에는 책 제공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가장 적절한 위치라고 사료됩니다.

아래와 같은 위치와 도서함 모형사진을 첨부 자료로 제공합니다.

이 게시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