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특공대의 운명, 깻잎 한장두께 차이로 갈렸다

등록 :2012-03-02 21:45

     
비행기나 제복이 좋아서 입대
남의 전쟁서 희생된 조선인들
유족증언 등 통해 사연 읽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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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7호] 2010.08.09

 
관련 연재물

[발굴화제]“日 해군에도 조선인 가미카제 특공대 있었다”

비행예과연습생 부대인 ‘특병종예과연 109분대’ 기록 확인… 지금까지 육군 가미카제만 알려져

배연홍  프리랜서·전 선데이마이니치 기자 


   일본 육군이 조선인을 대상으로 ‘특별지원병’ 제도를 실시한 것은 중일전쟁이 발생한 이듬해인 1938년이다. 대륙에서 전쟁이 장기화되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되자 병력을 보충하고자 식민통치 아래 있던 조선인을 끌어들였다. 이와 동시에 조종사가 되는 지름길이었던 육군 소년비행병학교에 입대하는 조선의 젊은이도 급증했다.
   
출처: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C02&nNewsNumb=002117100008
     



http://kid.chosun.com/


[놀면서 배우는 세계사](14) 무사들이 다스린 '日 막부 시대'(1192년~1600년대 초반)


입력 : 2012.10.08 09:33

귀족 호위하던 사무라이, 힘 모아 정권 장악
'최고 장군' 쇼군, 천황 대신 나라 다스리게 돼
1세대 막부 무너지자 100년 후계자의 난 시작

하지만 이들은 ‘타이라씨(平氏)’와 ‘겐지(源氏)’라는 두 집안으로 나뉘어 대립하고 있었고, 1159년에는 이들 사이에 ‘헤이지의 난’이라는 전쟁이 일어났지요. 여기서 패한 미나모토노 요시토모의 아들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훗날 가마쿠라 막부를 세우게 됩니다.

출처 : http://kid.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07/2012100700790.html


[박정희의 생애]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111)


입력 : 1998/02/20 19:13

(24) 무사도 .

                         
                    

박정희는 일본육사에서 무사도 정신의 정수를 발견했다. 그가 교육
을 받았던 1942∼44년에는 이미 대평양전쟁이 일본에 불리하게 돌아
가고 있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vc/content_view/content_view.html?contid=1998022070300




** [역사저널 그날 231회 군국주의의 광기 - 731부대와 마루타   2019.08.11 일

** [역사저널 그날 234회 나는 조선인 카미카제다  2019.09.01 일


** 조선인 카미카제 김선재

** 최정근 아리랑 특공병 (한글자막)  


** [KBS 파노라마]   전쟁과 일본  1편 전범이 된 조선 청년들    2014.08.01 금

** KBS파노라마 플러스_전범이 된 조선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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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데스크] 철거된 '일(日)징병 특공대원 위령비'

입력 2008.05.27 22:17 | 수정 2008.05.27 23:04

                  
일본 자살특공대 가미카제(神風) 대원으로 덧없이 생을 마감한 한국인 탁경현(卓庚鉉)씨의 넋을 위로하는 위령비가 그의 고향 경남 사천시에 건립됐다가 돌연 철거됐다. 탁씨는 1945년 5월 11일 일본 육군 전투기로 가고시마(鹿兒島) 기지를 출격해 오키나와(沖繩) 앞바다에서 25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위령비 건립은 '친한파'로 널리 알려진 여배우 구로다 후쿠미(黑田福美)씨가 주도했다. 구로다씨는 "한국 이름을 갖고도 일본인으로 죽어간 조선 청년을 혼이라도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자"고 호소했다. 이에 많은 재일교포들이 호응했다. 사천시도 위령비 건립 부지를 제공하는 등 적극 협조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5/27/200805270170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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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가고시마와 정한론(征韓論)

입력 : 2004/11/08 18:37 | 수정 : 2004/11/08 18:37

가고시마는 19세기 말 메이지(明治)유신과 정한론(征韓論)의 발상지로서 우리에겐 또 한번 낯설지 않은 이름이 됐다. 또 다른 유신 추진 세력인 조슈(長州·지금의 야마구치현 하기)와 함께 이른바 삿초(사쓰마·조슈)동맹을 맺어 혁명을 완성시킨 사쓰마가 지금의 가고시마다. 이 삿초동맹을 성사시키고 막부의 본거지인 에도(江戶·지금의 도쿄)를 함락시킨 유신의 일등공신이 바로 사쓰마의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였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vc/content_view/content_view.html?contid=2004110870461


조선인 가미카제…반딧불이 꿈꿨지만 사쿠라의 요괴가 된 사람들

등록 :2019-02-12 11:01수정 :2019-02-12 19:54

‘나는 조선인 가미카제다’ 지은이의 ‘가미카제 아리랑’ 리뷰

 
일제강점기를 산 조선인들은 각자 다양한 삶의 지문을 찍어냈다. 그중엔 일본 천황 보위를 명분으로 스무살 꽃다운 나이에 자살특공대에 뛰어든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왜 그랬을까? 그들의 내면 풍경은 어떠할까? 연극 <가미카제 아리랑>의 토대가 된 <나는 조선인 가미카제다>(2012년·서해문집)를 펴낸 길윤형 기자가 이 연극을 리뷰했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music/881767.html#csidx783c57761a098f989e40febfc8dd211



** 가미카제 기념관을 가다 (4) : 아리랑 부르고 출격한 한국인 탁경현 소위

** 단편 애니메이션 '환'


출구 없는
바다 (2006)Deguchi no nai umi, 出口のない海 평점 7.2/
출구 없는 바다
(PC에서 chrome으로 봐야 함. 사기성의 광고들이 뜨는 것은 닫아버리고.
스마트폰에서는 Adblock browser로 봐야 함. 거의 대부분의 광고창들을 막아줌. 삼성인터넷이나 explorer browser로 보면 스마트폰이 또라이폰 됨.)

** [KBS역사저널 그날]  234회    나는 조선인 가미카제다               2019.09.01 일





1489명 학적부 샅샅이…일제 민족차별 ‘현미경 해부’

등록 :2021-01-29 04:59수정 :2021-01-29 11:40



1925년 개교한 강경상업학교 1489명 학적부 뒤져 ‘일상 차별’ 실증
“조선족·탈북민·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 극복해야 한국사회 선진화”

식민지 민족차별의 일상사: 중등학교 입학부터 취업 이후까지
정연태 지음/푸른역사·2만원


원문보기:



 

** 가미카제 특공대원이 출격 하루 전 부른 노래는? 예상하지 못한 아리랑의 등장에 모두가 충격을 받는데,,│#어쩌다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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