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통 직장인의 희망 퇴직기 (더보기)
   

 

변화의 공식.

평범함으로의 회귀를 꿈꾼다는 것.

직장인 시절에 가끔 자기계발서를 읽곤 했다. 처음은 긍정과 희망으로 시작한다. 좌절과 일어섬, 그리고 성공으로의 안착, 같은 줄기들을 가지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그리고 어느새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미 나는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간 줄 알았는데 아직도 갈 길이 먼 것 같다. 자기계발서는 그렇게 스스로를 늪으로 빠뜨린다. 직장을 다니며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배움을 시작하는 것도 벅찬데 버티기 위해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논리로 입사 때의 스펙 쌓기와 비슷한 노력을 시작한다. 나를 제외한 다른 이들이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 불안함은 내가 아닌 사회의 기준으로 나를 채워 넣게 만든다. 그렇게 열심히 산다는 것으로 포장된 노력들은 다시 생각해보면 고개를 갸우뚱하는 경우가 많다. 딱히 눈 앞에 성과가 보이지 않아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등록하고 공부하고 자격증을 따고 그런데 막상 얻어진 것들을 어떻게 활용하는지는 모른다.


백수가 되고 나니 박차고 나온 이전 직장인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야겠다는 욕심이 난다. 무엇을 어떻게라는 고민이 시작된다. 뒤적거리다 보면 이렇게나 많은 것들이 필요했던가를 새삼스레 깨닫는다. 노력면 하면 마법처럼 그리고 희망처럼 자기계발서의 공식대로만 하면 될 것 같기도 하다.  성공하는 이들의 멋진 인생과 낭비 없는 삶은 아무 생각 없는 나를 통째로 흔들어 놓곤 한다. 그건 책 속의 전지전능한 인물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각종 포털의 이렇게 성공했다는, 이렇게 취업했다는, 이렇게 멋진 아이디어가 인생을 바뀌었다는 작은 에피소드들의 인물들도 나의 영혼을 털어가곤 한다. 


어떻게 성공해야 할까. 대박집을 차릴까? 시험을 볼까? 자격증을 수십 개 따 볼까? 역시 공무원인가?

생각이 꼬리를 물지만 쉽사리 움직여지진 않는다. 너무 큰 위험부담을 짊어질 순 없고 사장은 아무나 하는 것도 아닌 데다가 자격증이 실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과 유학 다녀온 사람 치고 일 잘하는 사람 없었다는 나의 경험들이 끝을 알 수 없는 공부의 길도 아닌 것 같다 얘기한다. 


이렇게 성공했다는 무용담들이 인터넷을 떠돈다. 좌절과 일어섬, 성공에의 안착의 공식은 변하지 않는다. 거기에 하나 더, 돈은 적게 벌어도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건전한 삶의 방식이 첨가된다. 많이 가지지 않아도 행복하게 사는 법, 소유욕을 버리는 삶을 사람들이 이야기한다. 그런데 모두가 다 그렇게 어느 정도 된다 싶을 정도의 업종변경에 성공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버릴 수 있는 사람의 전제는 처음부터 가진 게 많은 사람이다. 


포털들의 상단에 올라온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클릭한다. 그다음 이야기가 내가 될지도 모른다는 어처구니 없는 꿈에 부풀어본다. 변형된 자기계발서의 늪을 여기서 만난다. 기왕 회사도 때려치우고 나왔는데 이 정도는 살아야만 한다라는 약간의 부담감에 저 정도는 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인생에 정답이 없다고 얘기하면서 우수 예시를 보고 답안지에 주어만 다르게 적어내는 것 같다. 마치 퇴직, 그 이후의 다른 삶은 하나의 정해진 공식처럼 회자된다.


백수가 돼보면 가장 좋으면서도 슬픈 것은 언젠가는 이 쉬어감을 멈춰야 한다는 것이다. 정해진 조건은 없다. 변화를 서서히 가져가든 급격히 다른 쪽으로 길을 틀든 어쨌든 언젠가는 쉬어감이 끝날 것이다. 회사 가기 싫다는 푸념을 하며 퇴직이 꿈인 이들에겐 그 끝이 성공일 거라 생각하고 부러움을 날리지만 모두가 성공인 것은 아니다. 이 길이 내 길이 아닌가벼~를 반복하며 1년씩을 방황하며 새로운 직을 전전하다 40대를 맞이하는 30대도 있고 오히려 적은 연봉의 악조건의 회사를 선택하는 이도 있다. 그리고 가장 많은 이들은 회사의 이름만 바꾼 채 다시 직장인으로 돌아간다. 


아직도 나를 만난 이들은 뭘 할 거냐는 질문을 한다. 이제는 계획이 있겠지 혹은 이제는 말해도 상관없지 않냐는 어투이다. 일 년은 아무 생각 없이 진심으로 놀아보겠다는 나의 결심을 믿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부부가 동시에 회사를 그만두고 놀면서도 아무 생각 없지는 않을 거라는 이들의 믿음에 답을 해주고 싶지만 아직 내겐 8개월의 시간이 남아있다. 대답은 일년이 지난 후에 하는 걸로.


우리는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을 성공한 사람들에게 맞춘다. 그래서 백수가 되어서 망하는 이보다는 더 잘 사는 이들에게 조명을 비춘다. 적당히 살고 있는 사람들로 얘기한다. 세상은 밝고 아직 도전할만하고 도전만 하면 성공할 것 같다는 환상을 원한다. 우리가 소비하는 많은 이야기들 대부분은 환상이다. 진짜 좌절해서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조명하지 않는다. 막상 맞딱뜨리면 무직, 백수가 된다는 것은 무척이나 심리적으로 어렵다. 평범한 것은 실패하고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아쉬운 것이 바로 그 점이다. 아무도 실직, 그 이후의 실패를 모두가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일이라는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나가면 고생이고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며 외면한다. 도전에 당연히 따라붙은 위험이니 감수해야 하고 그러게 다들 꾹 참고 다니는데 왜 나갔냐는 싸늘한 반응이다.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것이다. 사실 다 알지 않나? 우리나라에 멀쩡한 회사가 몇이나 있는지. 


퇴직금과 위로금을 받아 들고 뭔가 거창한 일을 벌이는 이들이 곳곳에서 보인다.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만나는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 중 도전을 선택한 이들은 흥분하며 외친다. 대박을 꿈꾼다. 모두가 대박 나길 바라지만 들어만 봐도 뭔가 미심쩍은 경우다 더 많다. 얼마나 많은 자영업자들이 오늘도 사라지고 벤처기업들이 무너지는지 우리는 모른다. 작은 아이디어로 새로운 사는 삶을 사는 이들만이 검색에 걸릴 뿐이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우리가 진짜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선택한 쉬어감을 진정으로 만끽하는 이가 몇이나 있을까. 아마 바로 이직을 했더라면 나는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직장인에게 실업급여를 타가는 실직자는 남 일이다. 바로 내 눈 앞에 펼쳐졌던 권고사직의 시즌이 지나면 그 불안함 대신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이 더 큰 법이다. 


실패해도 괜찮아.라는 말은 청년 때는 많이 듣는다. 그런데, 3,40대의 실직자들은 실패하면 안 괜찮다. 스스로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가 아닌 말 집안 전체가 그대로 망하는 것이다. 어느 문제가 우선순위에 있다는 것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현실이 계속 대물림 될 것이기에 우리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제 막 직장에 들어간 신입들도 어렵게 들어간 일터에서 나와 같은 수순으로 젊음을 불태우다 언젠가는 쉬어가야 할 텐데, 그 쉬어감이 절대 실패하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있을까. 


평범함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버리고 백수가 되어본다. 아무 생각 없이 쉬어간다. 말이 쉽지, 사회는 계속 번쩍거리고 내가 생각했던 아이템들은 이미 시장에 나와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대박을 꿈꾸다 사라진다. 그 불안함, 그 마음을 어떻게든 잡아야 망하더라도 속은 편할 수 있다. 계획을 세워서 퇴직을 꿈꾸는 이들, 언젠가는 회사를 벗어나겠다 오늘도 마음을 다잡을 테지만 백수도 만만치 않다. 


그러니까 뛰쳐나올 거라면 변화를 꿈꾼다면 아무 조건도 달지 말고 꿈도 계획도 다 접어놓고 순순하게 놀 마음 하나, 그것만은 단단히 챙겨야 할 것이다. 우리 백수 중 누군가는 오늘도 실패하고 있을 것이다. 내일은 그게 내가 될지도 모른다. 현실은 슬프지만 마음만은 즐겁게, 백수가 살아가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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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 날아가버리는 희망. 어쩌면 불기도 전에 날아가버릴지도 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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