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권 84호【민들레국수집】『 "가족도 친척도 아닌데 왜 도와주세요?" 』 - 서영남 -
<<민들레국수집>>

"가족도 친척도 아닌데 왜 도와주세요?" 

대식씨
민들레국수집에서 식사를 하고 계단에 힘없이 앉아있던 대식(가명)씨가 힘이 하나도 없
는 목소리로 도와달라고 합니다. 며칠 전에는 어디 시설에라도 들어갈 수 있게 소개를 해 
달라고 해서 서울역에 가면 노숙인 상담소가 있는데 그곳에 가서 상담해보라고 했습니
다. 다녀왔나 봅니다. 자기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없다고 합니다. 겨울은 다가오고, 추워
서 길에서 잠자기가 너무 힘들다고 합니다. 
대식씨는 1955년생입니다. 저보다 한 살 아래지만 예순도 훨씬 넘은 할아버지처럼 보입니
다. 집 짓는 일을 하다가 큰 회사가 부도나면서 덩달아 망했다고 합니다. 이혼한 후에는 
막노동을 하면서 떠돌이 생활을 했습니다. 당뇨가 심해서 몇 년 전부터는 일할 수 없어 거
리에서 지냅니다. 치아도 당뇨 때문에 쓸 수 없습니다. 겨우 맨밥에 된장이나 고추장을 비
벼서 먹습니다. 소원이 무엇인지 물어봤습니다. 그냥 조용히 죽는 것이 소원이라고 합니
다. 민들레의 집 식구가 되어 함께 살자고 했더니 미안하고 고마워서 어쩔 줄을 모릅니
다. 
대식씨는 힘이 하나도 없습니다. 민들레의 집 식구인 정호씨가 속옷과 겉옷을 갈아입혀드
렸습니다. 정호씨와 함께 목욕탕을 다녀오게 했습니다. 이발도 하게 했습니다. 정호씨는 
아저씨가 너무 말랐다고 측은해합니다. 
대식씨는 짐이 하나도 없습니다. 힘이 하나도 없어서 무엇을 들 엄두도 못 냅니다. 대식씨
가 덮을 이부자리와 옷가지와 세면도구를 챙겼습니다. 김과 라면 그리고 고등어자반도 
좀 챙겨서 옥련동 민들레의 집에 모셔 갔습니다. 오늘은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이불 덮고 
하늘보지 않고 잠을 잘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날 옥련동 민들레의 집에 가서 대식씨와 함께 민들레국수집 손님을 모시고 가면 언제
나 친절하게 도와주시는 동인의원에 갔습니다. 대식씨의 의료보험은 급여정지가 되어있
습니다. 원장 선생님 진찰을 하시고 혈당이 380이 나왔다고 합니다. 약을 일주일치 처방
해 주셨습니다. 돈도 받지 않으십니다.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할 수 있도록 진단서를 발
급해주시면서, 이런 상태라면 입원을 해야 하는데 하시면서 걱정하십니다. 밥은 하루 세 
끼 꼭 챙겨 드셔야 하고 약도 꼭 드시고 빨리 입원할 수 있도록 하라고 하십니다. 

"아무 관계가 아닌데요."
대식씨와 함께 주민센터에 가서 말소된 주민등록을 살렸습니다. 과태료를 8만원을 냈습니
다. 주민등록증도 발급신청을 했습니다. 그런 다음 기초생활 수급자 신청을 했습니다. 며
칠 후에 주민센터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대식씨의 자녀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 부인
이 대전에서 찾아왔다고 합니다. 대식씨는 부인을 만날 면목이 없다면서 만나지 않겠다
고 합니다. 제가 가서 부인을 만났습니다. 아들이 결혼해서 잘 살고 있고 손자도 둘이나 
있다고 합니다. 이제야 나타나면 아들 가정이 힘드니까 기초생활 수급 신청을 포기하라
고 합니다. 대신 매달 돈을 조금씩 보내주겠다고 합니다. 대식씨도 아들에게 피해를 준다
면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지 않아도 좋다고 합니다. 
대식씨를 치료받게 하기 위해서는 의료보험을 살려야합니다. 함께 건강보험공단을 찾아
갔습니다. 건강보험료가 육십 몇 만원이나 연체되어 있습니다. 대식씨 사정을 이야기하
고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담당자가 친절하게 도와줍니다. 연체된 금액을 사십 몇 만 원으
로 조정해 줍니다. 그리고 24개월 분납으로 해 줍니다. 건강보험카드도 새로 발급해줍니
다. 빨리 병원 치료를 받으라고 합니다. 
점심을 함께 먹었습니다. 삼계탕을 어찌나 맛있게 드는지 한 그릇을 다 비운 다음에야 맛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동인의원에 가서 진찰했습니다. 원장 선생님이 혈당수치를 보시더
니 깜짝 놀랍니다. 595가 나왔습니다. 공복에 380이 나왔는데 식후에 이렇게 높게 나왔으
니 급히 종합병원에 입원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 다음에 진료의뢰서를 써 주십니다. 급
히 대식씨와 함께 기독병원으로 갔습니다. 
진찰을 받고 입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입원신청서를 쓰고 보증인 서명을 했습니다. 
직원이 대식씨와 무슨 관계냐고 물어봅니다. 
"아무 관계가 아닌데요." 
"가족도 친척도 아닌데 왜 도와주세요?" 
"어려운 처지를 옆에서 봤으니까 가족이나 친척이 아니라도 당연히 도와야죠." 
교도소에 가서 면회를 신청하거나 영치금을 넣어주거나 먹을거리를 넣어줄 때도 듣는 말
입니다. 민들레의 집 식구들을 병원에 모시고 가면 듣는 소리입니다. 아무 관계가 없는데 
왜 도와주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립니다. 

배가 고픕니다
다음날 베로니카가 대식씨에게 필요한 것들을 챙겨줍니다. 슬리퍼, 속옷, 수건 그리고 면
도기와 비누, 컵과 로션 등을 능숙하게 챙깁니다. 기독병원에 갔더니 대식씨가 병원 밥이 
너무 적어서 세 숟갈만 푸면 없다고 푸념합니다. 다음주간에 복부 CT 촬영을 해야 하는
데 비용이 16만원이라고 합니다. 비용을 미리 내야 CT 촬영을 한다고 합니다. 대식씨는 
몇 번이나 고맙다고 합니다. 죽을 목숨인데 덕분에 살았다고 합니다. 
민들레의 집 식구들이 번갈아가면서 대식씨 병수발을 합니다. 베로니카도 오전과 오후에 
병원에 들러 대식씨를 보살핍니다. 병원 밥이 너무 적다며 배고파합니다. 치아가 부실해
서 반찬을 거의 못 먹습니다. 그래서 간호사 선생님 몰래 오전에 우유 하나와 단팥빵 하나
만 가져다 드립니다. 
입원한지 며칠 만에 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혈당이 아직은 불안정하다고 합니다. 다음 
주 월요일에 퇴원하도록 해야겠다고 합니다. 말도 없고 어두웠던 대식씨가 웃기도 하고 
말도 조금씩 하기 시작합니다. 입원한지 열흘 만에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건강보험을 살
리지 않았다면 백사십만 원이 넘을 뻔 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육십만 원정도 들었습니
다. 
의사선생님이 대식씨가 퇴원해서 하루 세 끼 밥을 챙겨 드실 수 있는지 걱정을 합니다. 과
식을 해도 안 되고 굶어도 안 된다고 합니다. 운동도 열심히 해야 한다고 합니다. 하루 한 
번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하는데 끼니를 굶으면 큰일 난다고 합니다. 대식씨를 옥련동 민
들레의 집에서 지내게 하면 식사가 문제가 될 것 같아서 민들레국수집 옆에 단칸방을 하
나 얻었습니다. 대식씨는 전기밥솥에 밥을 할 줄은 압니다. 반찬은 만들 줄 모른다고 합니
다. 그래서 오전 아홉 시에 대식씨가 인슐린 주사를 맞고 삼십 분 후에 민들레국수집으로 
와서 아침을 들기로 했습니다. 
다진 소고기를 기름을 쓰지 않고 달군 프라이팬에 물을 사용해서 고기를 볶습니다. 두부 
된장국을 건더기가 많게 심심하게 끓였습니다. 콩나물과 시금치나물과 김치는 잘게 다져
드렸습니다. 점심에는 고기 조금 볶아드리고, 애호박을 새우젓에 심심하게 간해서 지져드
렸더니 이렇게 먹기 좋은 음식은 처음이라면서 흡족해합니다. 오랜 당뇨와 노숙으로 치아
가 거의 못 쓰게 되었습니다. 
대식씨가 민들레국수집이 쉬는 목요일과 금요일 이틀 동안 어떻게 식사를 하게 하면 좋을
까 고민하다가 중고 냉장고를 하나 샀습니다. 그리고 전기밥솥도 마련했습니다. 휴대용 
가스레인지도 장만했습니다. 그런 다음에 쌀과 보리쌀을 드리고 밥하는 방법을 알려드렸
습니다. 이틀 동안 드실 반찬은 대식씨가 드실 수 있도록 따로 만들었습니다. 가지를 쪄
서 기름을 넣지 않고 담백하게 무쳤습니다. 두부도 기름을 쓰지 않고 살짝 조렸습니다. 애
호박나물과 양배추는 잘게 다져서 냉장고에 넣어놓았습니다. 김과 생두부도 준비해 놓
고, 미역국도 이틀 동안 드실 수 있도록 준비했습니다. 초콜릿과 사탕 그리고 오렌지 주스
와 보리건빵도 챙겨 놓았습니다. 혹시 혈당이 급격히 내려가면 드실 수 있도록 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이 쉬는 이틀 동안 대식씨가 잘 지냈습니다. 그 많던 반찬과 주스와 과자도 
전부 다 드셨습니다. 주스와 사탕과 초콜릿은 혈당이 급격하게 내려갈 때 드시는 것이지 
배고프다고 드시는 것이 아니라고 몇 번을 이야기했더니 그제야 고개를 끄덕입니다. 배고
픔과 저혈당을 아직은 구분하기가 어려운 모양입니다. 

돈도 없고 힘도 없지만 따스한 마음이 있습니다
퇴원한지 일주일 만에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약도 타오고 인슐린도 받아왔습니다. 건강보
험이 되어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점심을 먹고 병원에 갔는데 혈당이 210이 나왔다면서 아
주 좋아졌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시더랍니다. 약도 하루 세 번 먹는 것을 두 번으로 줄
였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밤에 너무 배가 고파서 죽을 것 같다고 합니다. 채소 죽을 끓여
서 밤에 드시도록 했더니 아주 좋아합니다. 대식씨가 병원에서 퇴원한지 한 달이 다 되어
갑니다. 점심 식사 전에 혈당을 재어 보았습니다. 160 정도가 나왔습니다. 오늘은 점심 식
사 후에 재어보았습니다. 혈당이 181이 나왔습니다. 대식씨는 노숙할 때 자기 병이 당뇨병
인 줄 몰랐습니다. 자기 병은 알 수 없는 '심신무력증'이라고 말했습니다. 온몸에 힘이 하
나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많이 걸어 다녀도 힘이 몸속에 남아 있다고 합니
다. 오전과 오후에 천천히 걸어 다니기를 많이 합니다. 웃기도 하고요. 국이 맛있어요? 물
어보면 참 맛있다고 합니다. 생태국이 이렇게 맛있는 줄 예전에는 몰랐다고 합니다. 이제
는 한밤중에 배가 고파서 깨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대식씨가 당뇨식을 할 수 있도록 돕다가 큰 선물을 얻었습니다. 저도 식사량과 음식을 조
절해야겠다 싶어서 비슷하게 식사를 했습니다. 과연 배가 많이 고픕니다. 대식씨 마음을 
이해할 것 같습니다. 어느새 허리띠의 구멍이 세 칸이나 줄었습니다. 그토록 줄이고 싶었
던 뱃살이 사라졌습니다. 우리가 애써 찾아 나서지 않아도 우리 주변에 가난한 사람이 있
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아직도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
람에겐 돈도 없고 힘도 없지만 따스한 마음이 있습니다. 바로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서영남 / 인천에서 <민들레국수집>이라는 무료식당을 하며, 가난한 모든 분들에게 식사
를 제공하고 있다. 6년 전 25년간의 수도 생활을 접고 출소자들의 자립을 돕다 식당을 


통권 83호【민들레국수집】『 민들레국수집 부설- '민들레의 꿈' 공부방 』 - 서영남 -
**민들레국수집**

민들레국수집 부설- '민들레의 꿈' 공부방 

거리에서 지내는 우리 손님들 중에는 고아원 출신들이 많습니다. 혼자서 살아보려고 발버
둥 치다가 지쳐버린 사람들입니다. 민들레국수집의 손님인 경수 씨는 스물 세 살입니다. 
자유공원에서 노숙을 합니다. 하루에 두 번은 식사하러 옵니다. 올 때마다 인사하는 법을 
가르쳐봅니다. 인사하는 것을 얼마나 어색하게 여기는지 고개만 까딱합니다. 그리고 씩 
웃으며 머리를 긁적입니다. 열두 살 때 고아원을 탈출했습니다. 형들에게 맞는 것이 제일 
무서웠다고 합니다. 십 년이 넘도록 자유공원 근처에서 노숙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꿈도 
희망도 없습니다. 그저 배만 고프지 않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민들레국수집에서 어린 손님을 만나면 가슴이 아픕니다. 열 살 남짓한 사내아이가 어른들
과 함께 밥 먹으러 옵니다. 중학교를 다니다가 말고 가출해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다가 
배고파서 찾아오는 어린 손님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부모가 이혼한 아이, 할머니와 사는 
아이, 아버지와 사는 아이들이 대부분입니다. 그저 밥을 맘껏 먹도록 하고 달걀 프라이라
도 해서 하나 더 얹어줄 뿐입니다. 그저 바라만 볼 뿐입니다.
교도소에서 만난 형제들 중에서 중범죄자들은 대개 중학교 다닐 나이에 막바지 인생을 삽
니다. 그러다 결국은 막다른 길에 이르고 맙니다. 교도소를 찾아다니며 형제들을 만나고, 
노숙자에게 밥 한 끼 대접하면서 느낀 것이 있습니다. 아이 때부터 돌보아야 한다는 것입
니다. 아무리 비뚤어진 인생이라도 아이 때라면 5년, 10년 정도 사랑을 쏟으면 변할 것이
라고 믿습니다. 그 아이가 변해서 행복해 하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살아가는데 걸리는 시
간은 몇 년이 걸리더라도 재미있고 즐거운 시간일 것입니다. 

민들레국수집 문을 연지 다섯 해가 가까워 올 무렵입니다. 5주년 기념으로 무엇을 하면 좋
을까 생각하다가 따뜻한 가정과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한 조그만 집을 만들기로 마
음먹었습니다. 2007년 7월 30일에 1만원을 입금해서 (가칭)민들레 공부방 통장을 만들었
습니다. 이천만 원 정도의 전셋집이라도 마련해서 아이들의 보금자리를 만들자고 민들레
국수집 홈페이지에서 모금을 시작했습니다. 세상의 일은 하느님이 계획하시고 우리는 일
을 합니다. 또 우리가 일을 벌이면 마무리는 하느님이 하십니다. 돈도 없이 일을 벌이는 
것은 바로 하느님의 ‘빽’을 믿기 때문입니다. 
민들레국수집이 있는 인천 동구 화수동에는 오래 전부터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진짜 민들
레공부방이 있습니다. 어느 날인가 전화가 왔습니다. 근처에 민들레공부방이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 왜 공부방 이름을 민들레로 했느냐는 항의 전화입니다. 알고 있다고 했습니
다. 기존의 공부방과는 성격이 다르고 딱히 어떤 이름을 지어야 하는지 생각하고 있는 중
이어서 가칭 민들레공부방으로 모금을 시작했으니 양해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공부방 전세금 마련을 위한 모금을 시작했습니다. 시작한지 백 일쯤 되었을 때입니다. 11
월 12일에 통장을 보았습니다. 어느 새 통장에 이천만 원도 넘는 돈이 모였습니다.  
아이들의 보금자리를 민들레 공부방이라고 하면 참 좋은데 이미 동네에 민들레공부방이 
있습니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민들레의 꿈 공부방"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민들레의 꿈
을 마련하기 위해서 동네를 돌아다녔습니다. 아이들이 밥 잘 먹고 잘 놀고 경쟁하지 않고 
화목하게 살게 하면 참 좋겠습니다. 처음에는 아주 조그맣게 시작하려고 합니다. "민들레
의 꿈"을 꽃 피울 자리를 구하느라 좁은 화수동 동네를 꽤나 돌아다녔습니다. 이천만 원
을 가지고 마음에 드는 집을 찾기는 하늘의 별따기 보다 어렵습니다. 그래도 아주 다행스
럽게도 집을 구했습니다. 민들레국수집과 아주 가까운 곳입니다. 이층이고 열다섯 평정
도 됩니다. 

천주교 인천교구 사회복지회에서 "민들레의 꿈"을 위해서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커다란 
텔레비전, 세탁기, 에어컨, 책장, 이불, 방석, 자외선 살균기, 밥상, 거울, 전기밥솥, 전자
레인지, 살림살이에 필요한 그릇들 등등 거의 모든 것을 나누어주셨습니다. 1톤 트럭 두 
대에 가득 싣고도 다 못 실어서 다시 가서 실어왔습니다.
현판도 달았습니다. 현판 글씨는 청송교도소의 베드로 형제가 ‘민들레 꿈’이라고 글씨를 
써 주었습니다. 그 글씨를 가지고 나무에 새겨서 공부방에 걸었습니다. 
민들레국수집 5주년인 2008년 4월 1일에 "민들레의 꿈"을 시작했습니다. 저의 딸인 모니카
가 선생님입니다. 아이들과 첫 만남도 가졌습니다. 금지와 연주 그리고 성욱이가 첫 민들
레의 꿈의 가족입니다. 
영화 슈렉도 보지 못했습니다. 레고가 뭔지도 모릅니다. 입이 터질 만큼 맛있는 음식을 한
껏 먹고 싶다고 합니다. 금지의 꿈입니다. 금지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엄마는 
중국에서 왔습니다. 엄마 혼자 일해서 세 식구가 삽니다. 성욱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삽니다. 엄마 아빠는 본 적이 없습니다. 아이엠에프 때 어디론가 가셨는데 소식을 모릅니
다. 라면을 두 개 끓여먹고 싶은데 할머니는 하나만 끓여줍니다. 공부는 참 잘합니다. 연
주는 새 아빠와 사는데 집에 있는 것이 재미가 없습니다. 불량식품 먹는 것이 취미입니
다. 모니카가 아이들과 재미있게 게임도 하면서 아주 빨리 친해졌습니다. 
며칠 후에는 민들레의 꿈 뒤편 공터에 조그만 텃밭을 만들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의 대
성 씨가 밭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모종을 사다가 심었습니다. 고추와 가지 
그리고 호박도 심고 상추도 심었습니다. 
민들레의 꿈에 지영이가 새 식구가 되었습니다. 모니카가 민들레의 꿈에 찾아온 지영이
와 지영이 엄마에게 민들레의 꿈을 아주 잘 소개했습니다. 제2의 가정처럼 아이들이 행복
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돕고, 간식과 저녁도 먹고, 함께 놀고 숙제도 하고 책도 보고 좋은 영
화도 보고 그렇게 한다고 말입니다. 지영이 엄마가 그럼 한 달에 얼마를 내어야 하는지 물
어보았다고 합니다. 값이 없다고 했답니다. 지영이가 오고 싶어 하고, 학교 마치고 집에 
와도 엄마가 일하기에 지영이도 민들레의 꿈 가족이 되기로 했습니다. 

어제 베로니카가 민들레의 꿈 공부방을 깨끗하게 정리 정돈해 주었습니다. 책장도 설치했
고 책도 많이 있습니다. 이제 아늑한 보금자리가 되어갑니다. 아이들도 스스럼없이 놀러
와서 책도 읽습니다. 저녁 먹을 때는 몰려오기도 합니다. 참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모니
카 혼자서 쩔쩔 맵니다. 다행스럽게도 데레사 수녀님이 자원으로 민들레의 꿈에 오셨습니
다. 상주하면서 모니카와 함께 아이들과 지내기로 했습니다. 
데레사 수녀님이 오신 덕택에 민들레의 꿈에는 새 식구가 또 생겼습니다. 재희입니다. 초
등학교 5학년인데 지적발달 장애입니다. 엄마가 없습니다. 아빠와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삽니다. 초등학교는 다니지만 아이들과 어울리지도 못하고 공부도 너무 어렵습니다. 공부
방에도 가 봤지만 받아주는 곳이 없습니다. 데레사 수녀님이 공부방 아이들 의견을 들었
습니다. 아이들이 재희를 식구로 받아주기로 했답니다. 금지가 재희를 도와줄 수 있게 되
어서 행복하다고 합니다. 

칠월 달에는 비가 많이 왔습니다. 오후부터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더니 밤새 많은 비
가 내렸습니다. 민들레의 꿈 공부방에도 비가 새어 전기가 나갔습니다. 데레사 수녀님이 
고생이 많습니다. 이 큰 비에는 새 집이 아닌 허름한 집들은 거의 비가 샙니다. 민들레국
수집도 비가 새어서 대성 씨가 밤새도록 빗물 받느라고 고생했습니다. 
비 때문에 고생하던 칠월 어느 날 주민센터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빠와 두 아이가 있는
데 도와줄 수 있는지 물어봅니다. 서둘러 주민센터에 갔더니 서른 중반의 아빠와 아들과 
딸이 난감한 표정으로 있습니다. 백만 원을 빌렸다가 못 갚고 빚에 쫓겨 인천으로 도망 왔
는데 갈 곳도 없다고 합니다. 아침도 굶었고 주머니엔 이천 원이 전부라고 합니다. 중국집
에 가서 늦은 점심을 시켰습니다. 배고픈 아이들은 남김없이 먹었는데 아빠는 반쯤 먹다
가 못 먹습니다. 아이들 먹이느라고 며칠을 굶어서 그런 모양입니다. 
백만 원 보증금에 월 십삼만 원 단칸방을 얻었습니다. 살림살이도 중고로 마련했습니다. 
아이들은 민들레의 꿈에서 모자라는 공부를 하고 내년에 복학하기로 했습니다. 아이 아빠
는 식당에 취직을 했습니다. 민들레의 꿈에는 덕진이와 희진이가 새 식구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여름방학이 시작되었지만 민들레의 꿈은 여름 캠프까지 계속 열었습니다. 아이
들은 생전 처음 캠프를 가 본다고 합니다. 캠프 가기 전날 저녁부터 민들레의 꿈에서 함
께 자기로 했습니다. 
캠프 가기 전날에 베로니카와 함께 과일을 사들고 민들레의 꿈에 갔습니다. 함께 저녁을 
먹었습니다. 금지가 식사 전 기도를 바쳤고요. 덕진이와 희진이도 얌전하게 식사를 합니
다. 후식으로 참외를 수녀님이 예쁘게 접시에 담았습니다. 아이들이 참외보다 참외 껍질
이 맛있다고 합니다. 수녀님이 껍질을 두툼하게 깎았습니다. 
내일 오전에 봉사자들이 모두 모이면 아이들은 단양으로 출발하고요. 단양 유스 호스텔에
는 미리 봉사자들이 와서 아이들 저녁과 바비큐 파티도 준비해 놓는다고 합니다. 토요일 
오후에 돌아오면 열흘 정도 공부방 방학이 됩니다. 

민들레의 꿈의 덕진이와 희진이는 오전에 특별 과외공부를 합니다. 선생님이 귀한 시간 
내어서 공부를 가르치는데 덕진이는 제대로 학교 다녔으면 중 1인데도 요즘 초등학교 4학
년 과정도 어려워서 쩔쩔 맵니다. 공부하기를 싫어합니다. 희진이는 초등학교 4학년을 다
니다 말았습니다. 희진이는 얌전히 공부하는 편입니다. 오후에는 두 아이를 데리고 심리
치료를 하러 다닙니다. 아이들이 점점 밝게 변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참 멋진 일입니다. 
우리 손님들과 감옥에서 고생하는 형제들과 출소한 형제들은 참 시나브로 천천히 변하는 
것에 비하면 기적 같은 일입니다. 

서영남 / 인천에서 <민들레국수집>이라는 무료식당을 하며, 가난한 모든 분들에게 식사
를 제공하고 있다. 5년 전 25년간의 수도 생활을 접고 출소자들의 자립을 돕다 식당을 열
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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