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국수집**
민들레국수집 부설- '민들레의 꿈' 공부방
거리에서 지내는 우리 손님들 중에는 고아원 출신들이 많습니다. 혼자서 살아보려고 발버
둥 치다가 지쳐버린 사람들입니다. 민들레국수집의 손님인 경수 씨는 스물 세 살입니다.
자유공원에서 노숙을 합니다. 하루에 두 번은 식사하러 옵니다. 올 때마다 인사하는 법을
가르쳐봅니다. 인사하는 것을 얼마나 어색하게 여기는지 고개만 까딱합니다. 그리고 씩
웃으며 머리를 긁적입니다. 열두 살 때 고아원을 탈출했습니다. 형들에게 맞는 것이 제일
무서웠다고 합니다. 십 년이 넘도록 자유공원 근처에서 노숙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꿈도
희망도 없습니다. 그저 배만 고프지 않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민들레국수집에서 어린 손님을 만나면 가슴이 아픕니다. 열 살 남짓한 사내아이가 어른들
과 함께 밥 먹으러 옵니다. 중학교를 다니다가 말고 가출해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다가
배고파서 찾아오는 어린 손님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부모가 이혼한 아이, 할머니와 사는
아이, 아버지와 사는 아이들이 대부분입니다. 그저 밥을 맘껏 먹도록 하고 달걀 프라이라
도 해서 하나 더 얹어줄 뿐입니다. 그저 바라만 볼 뿐입니다.
교도소에서 만난 형제들 중에서 중범죄자들은 대개 중학교 다닐 나이에 막바지 인생을 삽
니다. 그러다 결국은 막다른 길에 이르고 맙니다. 교도소를 찾아다니며 형제들을 만나고,
노숙자에게 밥 한 끼 대접하면서 느낀 것이 있습니다. 아이 때부터 돌보아야 한다는 것입
니다. 아무리 비뚤어진 인생이라도 아이 때라면 5년, 10년 정도 사랑을 쏟으면 변할 것이
라고 믿습니다. 그 아이가 변해서 행복해 하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살아가는데 걸리는 시
간은 몇 년이 걸리더라도 재미있고 즐거운 시간일 것입니다.
민들레국수집 문을 연지 다섯 해가 가까워 올 무렵입니다. 5주년 기념으로 무엇을 하면 좋
을까 생각하다가 따뜻한 가정과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한 조그만 집을 만들기로 마
음먹었습니다. 2007년 7월 30일에 1만원을 입금해서 (가칭)민들레 공부방 통장을 만들었
습니다. 이천만 원 정도의 전셋집이라도 마련해서 아이들의 보금자리를 만들자고 민들레
국수집 홈페이지에서 모금을 시작했습니다. 세상의 일은 하느님이 계획하시고 우리는 일
을 합니다. 또 우리가 일을 벌이면 마무리는 하느님이 하십니다. 돈도 없이 일을 벌이는
것은 바로 하느님의 ‘빽’을 믿기 때문입니다.
민들레국수집이 있는 인천 동구 화수동에는 오래 전부터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진짜 민들
레공부방이 있습니다. 어느 날인가 전화가 왔습니다. 근처에 민들레공부방이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 왜 공부방 이름을 민들레로 했느냐는 항의 전화입니다. 알고 있다고 했습니
다. 기존의 공부방과는 성격이 다르고 딱히 어떤 이름을 지어야 하는지 생각하고 있는 중
이어서 가칭 민들레공부방으로 모금을 시작했으니 양해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공부방 전세금 마련을 위한 모금을 시작했습니다. 시작한지 백 일쯤 되었을 때입니다. 11
월 12일에 통장을 보았습니다. 어느 새 통장에 이천만 원도 넘는 돈이 모였습니다.
아이들의 보금자리를 민들레 공부방이라고 하면 참 좋은데 이미 동네에 민들레공부방이
있습니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민들레의 꿈 공부방"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민들레의 꿈
을 마련하기 위해서 동네를 돌아다녔습니다. 아이들이 밥 잘 먹고 잘 놀고 경쟁하지 않고
화목하게 살게 하면 참 좋겠습니다. 처음에는 아주 조그맣게 시작하려고 합니다. "민들레
의 꿈"을 꽃 피울 자리를 구하느라 좁은 화수동 동네를 꽤나 돌아다녔습니다. 이천만 원
을 가지고 마음에 드는 집을 찾기는 하늘의 별따기 보다 어렵습니다. 그래도 아주 다행스
럽게도 집을 구했습니다. 민들레국수집과 아주 가까운 곳입니다. 이층이고 열다섯 평정
도 됩니다.
천주교 인천교구 사회복지회에서 "민들레의 꿈"을 위해서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커다란
텔레비전, 세탁기, 에어컨, 책장, 이불, 방석, 자외선 살균기, 밥상, 거울, 전기밥솥, 전자
레인지, 살림살이에 필요한 그릇들 등등 거의 모든 것을 나누어주셨습니다. 1톤 트럭 두
대에 가득 싣고도 다 못 실어서 다시 가서 실어왔습니다.
현판도 달았습니다. 현판 글씨는 청송교도소의 베드로 형제가 ‘민들레 꿈’이라고 글씨를
써 주었습니다. 그 글씨를 가지고 나무에 새겨서 공부방에 걸었습니다.
민들레국수집 5주년인 2008년 4월 1일에 "민들레의 꿈"을 시작했습니다. 저의 딸인 모니카
가 선생님입니다. 아이들과 첫 만남도 가졌습니다. 금지와 연주 그리고 성욱이가 첫 민들
레의 꿈의 가족입니다.
영화 슈렉도 보지 못했습니다. 레고가 뭔지도 모릅니다. 입이 터질 만큼 맛있는 음식을 한
껏 먹고 싶다고 합니다. 금지의 꿈입니다. 금지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엄마는
중국에서 왔습니다. 엄마 혼자 일해서 세 식구가 삽니다. 성욱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삽니다. 엄마 아빠는 본 적이 없습니다. 아이엠에프 때 어디론가 가셨는데 소식을 모릅니
다. 라면을 두 개 끓여먹고 싶은데 할머니는 하나만 끓여줍니다. 공부는 참 잘합니다. 연
주는 새 아빠와 사는데 집에 있는 것이 재미가 없습니다. 불량식품 먹는 것이 취미입니
다. 모니카가 아이들과 재미있게 게임도 하면서 아주 빨리 친해졌습니다.
며칠 후에는 민들레의 꿈 뒤편 공터에 조그만 텃밭을 만들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의 대
성 씨가 밭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모종을 사다가 심었습니다. 고추와 가지
그리고 호박도 심고 상추도 심었습니다.
민들레의 꿈에 지영이가 새 식구가 되었습니다. 모니카가 민들레의 꿈에 찾아온 지영이
와 지영이 엄마에게 민들레의 꿈을 아주 잘 소개했습니다. 제2의 가정처럼 아이들이 행복
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돕고, 간식과 저녁도 먹고, 함께 놀고 숙제도 하고 책도 보고 좋은 영
화도 보고 그렇게 한다고 말입니다. 지영이 엄마가 그럼 한 달에 얼마를 내어야 하는지 물
어보았다고 합니다. 값이 없다고 했답니다. 지영이가 오고 싶어 하고, 학교 마치고 집에
와도 엄마가 일하기에 지영이도 민들레의 꿈 가족이 되기로 했습니다.
어제 베로니카가 민들레의 꿈 공부방을 깨끗하게 정리 정돈해 주었습니다. 책장도 설치했
고 책도 많이 있습니다. 이제 아늑한 보금자리가 되어갑니다. 아이들도 스스럼없이 놀러
와서 책도 읽습니다. 저녁 먹을 때는 몰려오기도 합니다. 참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모니
카 혼자서 쩔쩔 맵니다. 다행스럽게도 데레사 수녀님이 자원으로 민들레의 꿈에 오셨습니
다. 상주하면서 모니카와 함께 아이들과 지내기로 했습니다.
데레사 수녀님이 오신 덕택에 민들레의 꿈에는 새 식구가 또 생겼습니다. 재희입니다. 초
등학교 5학년인데 지적발달 장애입니다. 엄마가 없습니다. 아빠와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삽니다. 초등학교는 다니지만 아이들과 어울리지도 못하고 공부도 너무 어렵습니다. 공부
방에도 가 봤지만 받아주는 곳이 없습니다. 데레사 수녀님이 공부방 아이들 의견을 들었
습니다. 아이들이 재희를 식구로 받아주기로 했답니다. 금지가 재희를 도와줄 수 있게 되
어서 행복하다고 합니다.
칠월 달에는 비가 많이 왔습니다. 오후부터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더니 밤새 많은 비
가 내렸습니다. 민들레의 꿈 공부방에도 비가 새어 전기가 나갔습니다. 데레사 수녀님이
고생이 많습니다. 이 큰 비에는 새 집이 아닌 허름한 집들은 거의 비가 샙니다. 민들레국
수집도 비가 새어서 대성 씨가 밤새도록 빗물 받느라고 고생했습니다.
비 때문에 고생하던 칠월 어느 날 주민센터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빠와 두 아이가 있는
데 도와줄 수 있는지 물어봅니다. 서둘러 주민센터에 갔더니 서른 중반의 아빠와 아들과
딸이 난감한 표정으로 있습니다. 백만 원을 빌렸다가 못 갚고 빚에 쫓겨 인천으로 도망 왔
는데 갈 곳도 없다고 합니다. 아침도 굶었고 주머니엔 이천 원이 전부라고 합니다. 중국집
에 가서 늦은 점심을 시켰습니다. 배고픈 아이들은 남김없이 먹었는데 아빠는 반쯤 먹다
가 못 먹습니다. 아이들 먹이느라고 며칠을 굶어서 그런 모양입니다.
백만 원 보증금에 월 십삼만 원 단칸방을 얻었습니다. 살림살이도 중고로 마련했습니다.
아이들은 민들레의 꿈에서 모자라는 공부를 하고 내년에 복학하기로 했습니다. 아이 아빠
는 식당에 취직을 했습니다. 민들레의 꿈에는 덕진이와 희진이가 새 식구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여름방학이 시작되었지만 민들레의 꿈은 여름 캠프까지 계속 열었습니다. 아이
들은 생전 처음 캠프를 가 본다고 합니다. 캠프 가기 전날 저녁부터 민들레의 꿈에서 함
께 자기로 했습니다.
캠프 가기 전날에 베로니카와 함께 과일을 사들고 민들레의 꿈에 갔습니다. 함께 저녁을
먹었습니다. 금지가 식사 전 기도를 바쳤고요. 덕진이와 희진이도 얌전하게 식사를 합니
다. 후식으로 참외를 수녀님이 예쁘게 접시에 담았습니다. 아이들이 참외보다 참외 껍질
이 맛있다고 합니다. 수녀님이 껍질을 두툼하게 깎았습니다.
내일 오전에 봉사자들이 모두 모이면 아이들은 단양으로 출발하고요. 단양 유스 호스텔에
는 미리 봉사자들이 와서 아이들 저녁과 바비큐 파티도 준비해 놓는다고 합니다. 토요일
오후에 돌아오면 열흘 정도 공부방 방학이 됩니다.
민들레의 꿈의 덕진이와 희진이는 오전에 특별 과외공부를 합니다. 선생님이 귀한 시간
내어서 공부를 가르치는데 덕진이는 제대로 학교 다녔으면 중 1인데도 요즘 초등학교 4학
년 과정도 어려워서 쩔쩔 맵니다. 공부하기를 싫어합니다. 희진이는 초등학교 4학년을 다
니다 말았습니다. 희진이는 얌전히 공부하는 편입니다. 오후에는 두 아이를 데리고 심리
치료를 하러 다닙니다. 아이들이 점점 밝게 변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참 멋진 일입니다.
우리 손님들과 감옥에서 고생하는 형제들과 출소한 형제들은 참 시나브로 천천히 변하는
것에 비하면 기적 같은 일입니다.
서영남 / 인천에서 <민들레국수집>이라는 무료식당을 하며, 가난한 모든 분들에게 식사
를 제공하고 있다. 5년 전 25년간의 수도 생활을 접고 출소자들의 자립을 돕다 식당을 열
게 되었다. |
민들레 국수집은 배고픈 사람에게 동정을 베푸는 곳이 아니라 섬기는 곳입니다
열 사람이 앉으면 꽉 차버리는 작은 식당이지만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곱 시간 동안에는 찾아오신 분들이
맛있게 식사를 하실 수 있는 곳 입니다.
매주 토,일,월,화,수 닷새 동안 문을 열고 목, 금요일에는 쉽니다.
매일 150-300여명분의 식사를 대접하고 있습니다.
두세 번 오셔서 식사할 수도 있습니다.
간단한 뷔페식입니다.
비록 민들레 국수집에 십자가가 벽에 걸려 있지만
찾아 오신 분이 마음에도 없는 기도는 하지 않아도 좋고, 잘 살아라,
일 해라는 잔소리를 하지 않는 곳입니다.
가난하고 배고픈 이들의 작은 쉼터!
“하느님의 대사들”
곤궁에 빠져있으면서
구걸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는
곤궁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단순히 좋은 일을 할
기회를 만들어 준다.
현대 사회는 거지를
게으름뱅이나 비렁뱅이라고 부르며
발가락의 때처럼 여긴다.
그러나
예전에 그리스의 사람들은
곤궁한 사람을
하느님의 대사라고 불렀다.
당신들이 게으름뱅이나 비렁뱅이라는 이름으로 불러도
사실은 하느님의 대사들이다.
하느님의 대사로서
당신들은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로부터
음식과 옷과 안식처를 받아야 한다.
회교의 선생들은 하느님께서 환대할 것을 명령하신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환대는 회교 국가에서
행해지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국가에서는
환대의 의무를 가르치지도 않고 실행하고 있지도 않다.
-피터 모린-
고맙습니다. 행복한 여행이 되십시오.
서영남 올림